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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비밀의 창고 / 이인혜

 

  1. 기획의도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많은 컨텐츠들이 과거를 바꿔 행복한 미래로 나아간다는 컨셉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판타지적인 재미와 통쾌한 대리만족을 줄 수는 있으나 내 삶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하여, 새로운 주제로 재해석한 타입슬립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미 잘못 된 과거를 바로잡아야만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 대신

과거는 과거대로 흘러가게 보내준 후 그 미련을 놓아야만 새로운 미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취지의 이야기다.


우리의 현실에서 결코 과거는 달라질 수 없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는 있다.

힘든 과거에 발목 잡힌 누군가에게 내일도 삶은 계속 된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주고 싶다.


2. 등장인물


한승호 

38세 남. 최고식품 영업부 과장. 가정과 바쁜 회사 업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그럭저럭 평탄한 삶을 살던 중 한꺼번에 아내와 아이를 잃고 절망한다.


진유라 

37세 여. 승호의 아내. 사랑스러운 현모양처지만 가끔 고집스럽게 굴 때가 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상냥한 타입. 까페 해와달을 운영 중이다.


주희정 

38세 여. 승호의 오랜 단짝으로 현재 같은 회사 동료. 오래 전부터 승호를 짝사랑해온 건 비밀이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묵묵히 승호의 행복을 바란다.


한해달 

7세 여 승호와 유라의 딸. 어려도 강단 있으며 깐깐한 애어른.


박상태

45세 남. 유라, 해달의 교통사고 가해자. 그 또한 평범한 한 가족의 가장이다. 주사가 있다.


상태처 

42세 여. 박상태의 처.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한 의지를 가진다.


수린 

7세 여. 박상태의 딸.


최부장 

51세 남. 최고식품 영업부 부장.


김호석 

32세 남. 최고식품 영업부 대리.


3. 줄거리


중소 규모의 식품 회사 영업부 과장인 한승호는 전국에 지점이 120개가 넘는 대형마트인 L마트에서 발주 의사를 전달해듣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나뿐인 딸 해달의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던 날.

유치원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승호는 자신의 차를 아내인 유라에게 빌려주게 되고 정작 본인은 야근 때문에 재롱잔치에 불참하게 된다.

미안한 마음에 케익을 사가려던 승호는 비가 쏟아지자 아내인 유라에게 빵집으로 마중 나와달란 부탁을 하게 되고.

부탁대로 빵집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유라의 차를 음주운전 중이던 덤프트럭이 덮치게 되면서 승호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게 된다.

케이크를 산답시고 마중 나오라는 부탁을 하지만 않았다면…

아니 야근을 포기하고 재롱잔치에 참석 했다면…

애초에 차를 빌려주지만 않았어도…

가족이 그렇게 된 것은 전부 본인 탓이라 여기던 승호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방황하고 있을 때, 승호 눈앞에 평소엔 본 적 없던 낯선 나무문이 나타난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회색 벽으로 사방이 막혀 어둠을 머금고 있을 뿐이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그 문을 다시 닫으려는 승호의 귀에 어렴풋이 딸 해달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해달을 찾아보지만 해달이 있을 리 만무하고.

허무하게 다시 문을 열어 밖으로 온 승호는 자신이 일주일 전, 즉 사고 하루 전 날 아침으로 돌아왔음을 알게 된다.

모든 상황이 일주일 전과 똑같이 흘러간다.

그렇다면 사고를 피해 가족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고 당일이 오자 승호는 회사도 결근하고 꼭 필요한 이동은 차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며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줄인다.

재롱잔치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슬아슬하게 돌진하는 덤프트럭을 가까스로 피한 승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행복한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잠이 깬 순간, 본인이 누워있는 자리는 그 비밀의 창고 안이다.


 


승호가 다시 창고 문을 열고 나가는데 사고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그러니까 승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현재로 되돌아왔다.


과거를 바꿨으니 현재의 아내와 딸도 살아 있을 거란 승호의 기대를 무참히 밟아버리는 여자 동료 희정.


그녀는 아내와 딸이 6일 전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단 소식을 전한다.


즉, 승호가 과거로 돌아가는 바람에 원래 죽었어야할 시간은 피했지만 그 다음날 똑같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절망할 새도 없는 승호는 희정을 보내고 다시 비밀의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번엔 아내와 딸을 비밀의 창고로 데려와 현재로 건너뛰게 할 작전인 것이다.


 


허나 영문도 모르고 승호 손에 이끌려 창고 안으로 들어온 유라와 해달은 방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오로지 이 창고는 승호만이 들락날락 할 수 있었던 것.


 


어떻게 해야 두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승호의 뇌리에 이미지가 하나 떠오른다.


바로 유라와 해달을 덮쳤던 덤프트럭이다.


승호의 개입으로 시간이 바뀌고 장소가 달라져도 유라와 해달은 똑같은 덤프트럭에 의해 사망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승호는 교통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을 찾아가 가해자 인적사항을 묻지만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는다.


결국 흥신소를 통해 가해 운전자의 인적사항을 알아낸 승호.


유라의 주방에서 흉기를 꺼내들고 비장하게 비밀의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한편, 어딘가 이상한 승호의 행동에 마음 쓰이던 희정은 승호네 집을 방문했다가 벽에 한번도 본 적 없는 나무문이 반쯤 열려 어둠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본다.


희정이 승호의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승호는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희정은 승호를 지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복잡하게 얽혀버리고 마는데…





비밀의 창고 - 프롤로그


 


정사각형의 회색 창고 방.


눈에 보이는 거라곤 어둠뿐인 공간 안에 승호가 우두커니 서있다.


그 순간, 승호의 귀에 또렷이 들려오는 해달과 유라의 웃음소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홱 돌아보는 승호.


벽 한 면에 나무로 된 방문이 보인다. 소리는 그 곳에서 난 듯 하다.


그 문을 열어 밖으로 뛰쳐나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환한 빛이 승호를 집어삼킨다.


눈이 부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눈을 감는 승호, 다시 천천히 눈을 뜬다.


승호의 동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카메라.


검은 동공 속, ‘비밀의 창고’ 타이틀 오른다.


 


까페 해와 달 (승호의 집) / 낮


 


고급 주택가 초입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2층 양옥.


1층은 ‘cafe 해와 달’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까페고 2층은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승호네 집이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골목 안으로 걸어오는 여자, 희정.


잠시 멈춰서서 집 외관을 둘러보는 희정의 눈빛이 복잡하다.


마음먹은 듯 다시 가게 쪽으로 향하는데 유리문 벽에 귀여운 글씨로 써붙인 안내문구 보인다. ‘직접 만든 잼, 과일청 팔아요 ^^’


무심한 시선을 거두는 희정, 안으로 들어간다.


딸랑딸랑- 문에 매단 풍경이 먼저 울리면서 안에서 왁자한 소음이 쏟아져 나온다.


 


까페 홀 / 낮


 


가장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재밌는 농담이라도 한 듯 웃고 있는 승호, 최부장, 호석이 보인다.


 


승호 (웃다가 먼저 발견하고 미소) 희정아. 어서 와.


희정 (복잡함 숨기고 미소) …내가 좀 늦었지?


최부장 주대리 설마 주말에 불러냈다고 시위 하는 거 아니지?


희정 부장님두 차암…


호석 주대리님이 주말이라고 뭐 하는 게 있는 줄 아세요? 그냥 집에서


미드 다운 받아 보면서 맥주나 마신답니다.


희정 그러는 넌 게임만 하잖아.


유라 (E)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주방에서 김이 폴폴 나는 커다란 냄비를 가져오는 승호의 아내, 유라.


유라의 뒤에 자석처럼 들러붙은 해달도 보인다.


 


유라 해물이 좋길래 해물찜 해봤어요.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해달이도 얼른 앉아서 먹어.


해달 (새초롬히 앉으면)


최부장 어후, 맛있는 냄새. 이 얼마만에 먹어보는 집밥이냐.


호석 사모님이 밥 안해 주세요?


최부장 우리 와이프, 나보다 더 바빠! 나보다 더 잘 벌고! 주말엔 내가


요리사다.


일동 (웃고) 잘 먹겠습니다 / 맛있겠네요~


유라 우리 남편 과장 달고 턱도 안냈다면서요? 이이가 이렇게 무심해요.


희정 늘 잘 챙겨주시는데요 뭘.


유라 아아… 그래요?


희정 참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자상한 남편에 토끼같은 딸까지…


유라 네 뭐…


해달 (도도하게) 우리 아빠 별로 안 자상한데.


일동 (으잉?하는 얼굴로 보는)


해달 우리 아빤 회사 일땜에 맨날 바빠요.


승호 우리 해달이 많이 삐쳤구나?


최부장 에이~ 그건 아니다. 한과장 회사에선 맨날 일찍 퇴근하려고


7시만 넘어가도 안절부절을 못 하는데.


승호 내가 이래요. 집에선 회사 일땜에 인정 못 받고. 회사에선 집 땜에


인정 못 받고. (웃으면)


희정 (티슈 건네며) 여기 옷에 튀었다.


승호 응? 어디…?


희정 (티슈로 옷 카라 부분 닦아주는)


유라 (그 모습 의아하게 보고) !!


승호 내가 할게. (본인이 하면)


희정 (유라 시선 느끼고 아차 싶은. 어색하게 시선 외면한다) …


 


유라, 분위기 전환할 겸 뒷 테이블에 뒀던 소포장한 잼병을 하나씩 건넨다.


잼 뚜껑에 해와 달을 그린 독특한 로고가 박혀 있다.


 


유라 이거 하나씩 가져가서 드셔 보세요.


직접 만든 생강청이랑 블루베리 잼이에요.


최/호석 와~ 이 귀한 걸 다 주시고… / 감사합니다!


희정 (안 받고 머뭇머뭇)


유라 희정씨도 하나 가져가세요.


희정 전에 주신 것도 많이 남아 있어서요. 혼자 살다보니 먹을 사람도


없고.


유라 전에…요? 전에 언제요? 제가 또 드린 적이 있었나요?


희정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멋쩍은 웃음) 착각했나 봐요. 주세요.


유라 (촉이 안 좋고) …


 


승호네 안방 / 밤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 마친 승호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나온다.


침대엔 유라가 벌써 누워 등을 돌리고 있다.


 


승호 (옆에 누우며) …자?


유라 …


승호 (어깨 잡으며) 여보, 오늘 고마워. 당신 덕에 내 면이 섰다.


유라 …


승호 이상하다~ 분명 안 자는 것 같은데 자는 척을 하네. 또 뭐가 골이 나셨을까.


유라 (그제야 삐죽) 골은 무슨.


승호 (피식) 거봐, 안 자잖아.


유라 (돌아서 승호 보며) 그 희정씨란 여자… 어떤 사람이야?


승호 희정이? 뭐 그냥… 무난하니 일 잘하는 직장 후배이자, 내 고교 동창. 당신도 알면서 뭘 물어?


유라 고등학교 때 친했어?


승호 하나도 안 친했다니까. 난 희정이가 한울고 나왔다고 말하기 전까진 기억도 전혀 못했는데 뭘.


유라 정말 그게 다야?


승호 그거 말고 뭐가 있을라나… (생각하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유라 그냥.


승호 이거 그냥이 그냥이 아닌데. 우리 여보 질투하는 구나? (큭큭)


유라 질투는 무슨!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팩 돌아누우면)


승호 (뒤에서 안으며) 아이, 우리 여본 질투할 때 제일 섹시하더라~


유라 (앙탈) 하지마아~ 하지 말라니까?


 


승호의 집 앞 / 아침


 


출근하는 듯 정장차림의 승호가 까페 문을 열고 나온다.


까페 옆 차고로 가 차에 시동을 거는 승호.


그런데 계기판에 라이트가 나갔다는 경고등이 뜬다.


승호, 내려서 차를 살피는데 유라가 다가온다.


 


유라 왜 그래?


승호 아니. 헤드라이트 나갔나봐.


유라 그래? 오늘 차 내가 좀 쓸랬는데.


승호 차는 왜?


유라 (가재미 눈) 또 까먹은 거야? 오늘 해달이 재롱잔치라니까.


승호 (비명처럼 이마에 손 대고) 아아! 맞다!


유라 유치원 버스 운행 안한대서. 자기도 꼬옥! 올 거지?


승호 노력해볼게. 하하… 차 당신이 타. 지금 고칠 시간이 없으니까


조심해서 타구~ 나 지하철 타려면 뛰어야겠다.


유라 재롱잔치 꼭 오는거다? (뒷통수 대고) 다녀와요~


 


회사 복도 + 회의실 / 낮


 


복도를 빠르게 걷는 승호 옆을 따라 붙으며, 서류 건네는 희정.


 


희정 여기 L마트 구매부 강팀장이 보낸 발주서, 홀리데이 세일 페스타


진행 자료.


승호 (정신없이 받고) 어, 고마워.


희정 잠깐만. 넥타이 삐뚤어졌어.


 


희정, 승호의 넥타이를 고쳐 메주다가 승호와 눈이 마주치자 묘하게 웃는다.


 


승호 내가 할게.


 


승호, 희정 손 풀고 본인이 넥타이 고쳐 메더니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엔 이미 최부장과 L마트 강팀장이 자리하고 있다.


 


승호 (깎듯이) 반갑습니다. 최고식품 한승호 과장입니다.


강팀장 (깐깐한 표정, 눈인사만)


최부장 (흥분해서 격앙 된) L마트에서 우리 간장 시음해보시고는 식품 코너 젤 좋은 로얄층에 진열해주시겠대! 우리같은 중소기업 제품이 로얄층에 진열되는 거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 거 알지?


승호 (화색 돌며 꾸벅!) 정말 감사드립니다!


최부장 오늘 L마트 본점에서 판촉 이벤트 있을 거니까 가서 우리 최고식품


간장이 최고라는 걸 증명해 보이자구!


승호 (멈칫) 오늘…요?


최부장 왜… 안돼? 아무래도 첫 이벤튼데 사람 쓰기도 영 못미덥구…


강팀장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앞에 놓인 커피 마시는)


승호 아, 아닙니다! 안되는 게 어딨습니까?


 


마트 / 초저녁


 


빨간 앞치마 두르고 마트 시식회 하는 최부장과 승호.


최부장이 호객행위를 하고 승호는 간장을 찍어먹을 전을 부치고 있다.


간간히 시계 확인하며 애가 타는 표정인데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간장을 시음하기 위해 우루루 몰려든다.


 


최부장 한과장, 기름 떨어졌다. 빨리 창고 가서 가져와.


승호 네!


 


승호, 급하게 뛰어가다 제 발이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시큰대는 발목을 어루만지다가 벌떡 일어서서 절룩이며 창고로 뛰는 승호의 뒷모습.


 


유치원 강당 / 초저녁


 


재롱잔치 무대가 한참이다. 귀여운 마녀 옷 입고 거울 앞에 앉아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야무지게 대사 외우는 해달.


그 모습 흐뭇하게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고 있는데 톡이 들어와 화면을 가린다.


‘여보, 정말 미안해. 대신 해달이 좋아하는 우유 생크림 케익 사갈게 :)’


톡 보고 살짝 서운한 표정 짓는 유라. 고개 돌려 강당 창문을 바라보면 어느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빵집 / 밤


 


신문지로 머리를 가렸으나 흠뻑 젖은 승호가 빵집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손엔 서류가방과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마트 봉지가 들려있다.


 


승호 (옷의 물기 털어내며) 우유 생크림 케익 예약 주문했는데요.


백설공주 데코 된 거요...


알바 (주방 돌아보고) 아, 20분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은데요.


승호 20분… 네. 기다리죠.


 


승호, 의자에 앉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님’


 


유라 (F, 대뜸) 어디야? 해달이 밥 안 먹고 케익 먹는다고 쫄쫄 굶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승호 20분만 기다리면 된대. (마트 봉지 보고) 오늘 마트 판촉 행사


갔다가 당신 좋아하는 한우 꼬리뼈 샀다? (하다가 재채기)


유라 (F) 웬 재채기? 설마 비 오는데 우산도 안 쓴 거 아니지?


승호 (뜨끔) 집 앞인데 뭐어…


유라 (F) 못 살아! 비 쫄딱 맞은 케익 먹으라구? 게다가 가방에


꼬리뼈에 케익상자까지 어떻게 다 들고 와. 데리러 갈게.


승호 (화색 돌며) …그럴래 그럼? 나 오늘 하루 종일 마트 안 헤집고 다녀서 정말 피곤하다… 응… 바로 집 앞 빵집이야. 고마워.


 


(시간경과) 앉은 채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승호.


 


빵집 앞 사거리 / 밤


 


운전석엔 유라가 뒷좌석 카시트엔 해달이 앉아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대각선 너머 통유리로 된 빵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승호 모습도 보인다. 피식 웃는 유라.


마침내 신호가 바뀌고 차선 따라 천천히 좌회전하는 유라. 그런데 비틀거리며 중앙선을 침범해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덤프트럭이 보인다.


미처 비명 지를 새도 없이 눈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는데 순식간에 유라가 탄 차의 앞유리가 박살나며 트럭의 범퍼가 밀고 들어온다.


쾅!!! 와그장창… 엄청난 굉음이 울린다.





빵집 / 밤


 


그 굉음에 잠에서 깬 승호. 클래식이 흐르는 빵집 안은 평화롭기 이를 데 없다.


 


알바 케익 나왔습니다.


승호 (멍한) 아, 네…


 


데코레이션으로 백설공주 캐릭터가 놓인 케익 보고 미소 지으며 ‘여보님’에게 전화거는 승호. 신호음 울리지만 상대방에선 받지 않고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다. 고개를 갸웃 하며 빵집 문 열고 나오면 교통사고로 엉망진창이 된 도로 사정 보인다. 놀란 듯 우뚝 멈춰 서지만 이내 발길을 재촉하는데 순간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보면, cafe 해와 달 로고가 박힌 잼 병의 뚜껑이다. 툭… 케익과 마트 봉지를 떨어트리는 승호.


 


승호 아냐… 그럴… 그럴 리 없어…


 


승호, 비척이며 사고 현장으로 다가간다. 반파 된 차량에서 막 시신을 꺼내는 구급대원들 사이로 피투성이 된 유라 얼굴이 보인다.


 


승호 (현실감 없이) 유… 유라…? 유라야!!!!! 안돼, 유라야!!!


 


구급대원들의 저지에도 절규하며 필사적으로 유라를 끌어안는 승호.


힘없이 늘어진 유라를 보며 꺽… 꺽… 숨넘어가는 소리만 내는데 뒷좌석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대원들의 들것이 승호를 스쳐지나간다. 역시나 피투성이 된 해달, 그래도 눈을 뜨고 있다!


 


구급차 안 / 밤


 


온갖 호스 다 달고 누워있는 해달,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인데…


 


해달 …아빠…


승호 (뚝뚝 떨어지는 눈물 닦고) 해달아… 괜찮아. 괜찮으니까 좀만 버텨.


곧 병원이야. 우리 해달이 잘 버틸 수 있지?


해달 해달이 백설공주 연극… 잘 했는데… 왜… 안 보러왔어?


승호 (억장이 무너지는) 아빠… 아빠가… (차마 말을 못 잇는데)


해달 (충혈되는 눈) 아빠한테… 칭찬 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는데…


승호 (숨조차 쉴 수 없다) !!!


 


어린 해달의 팔목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승호 해달… 해달아… (절규) 해달아!!!!!!


 


장례식장 / 낮


 


유라와 해달… 영정사진 두 개가 놓여있다.


며칠 사이 얼굴이 반쪽이 된 채 넋 나가 있는 승호.


희정과 최부장, 호석이 참담한 얼굴로 들어온다.


망가진 승호를 보고 애써 눈물을 삼키는 희정.


 


승호의 집 / 밤


 


- 영정 사진 두 개가 놓인 거실에 우두커니 서있는 승호.


그런 승호 앞에 유라와 해달의 환영이 나타난다. 해달, 만화 영화 보고 있고 유라가 과일을 깎아 해달 입에 쏙 넣어준다.


 


- 안방 문을 열어본다. 유라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다가 승호를 보고 씨익 미소 짓는다.


 


- 해달 방문을 열어본다. 그림일기 그리고 있는 해달. 승호, 유라, 해달 세 식구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다.


 


- 집안 어디에도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가는 승호.


 


1층 까페 / 밤


 


밖으로 나가려다가 만들다만 수제청을 보는 승호. 무심히 다가가 한 입 맛본다. 꾹 참았던 승호의 눈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천천히 발길을 돌려 주방으로 가본다. 손때 묻어있는 주방기기, 액자에 걸린 가족사진 등이 보이고. 가족사진 아래 걸린 디지털시계 보인다. 2016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2분이다.


그런데 그 옆에 주방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낡은 나무문이 하나 있다. 이게 뭔가 싶어서 나무문을 만져보는 승호, 혼란스러운 눈길.


 


승호 여기… 이런 게 있었나…


 


문손잡이를 삐걱 돌려본다. 안에서 어둠이 쏟아져 나온다.


그때 까르륵- 웃는 해달 웃음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듯한 소리로 전달된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피는 승호. 당연히 아무도 없다.


잘 못 들었나 싶은데 다시 한번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 어둠 속 저 너머에서 들려온 듯 하다. 망설이다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승호의 발.


 


비밀의 창고


 


승호가 안으로 들어오자 문이 저절로 닫힌다.


회색 벽으로 꽉 막힌 공간. 안엔 아무것도 없다. 경계의 눈으로 살피는데…


 


유라 (E) 해달아! 장난치면 못 써!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오는 유라 목소리. 승호, 사방을 살펴본다. 방문 너머에서 미세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승호 유라… 유라야!!


 


얼른 방문을 열고 나가는데 너무 환한 빛이 쏟아져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1층 까페 / 낮


 


해가 쨍쨍하게 뜬 환한 아침이다.


급작스런 변화에 어리둥절한 승호가 주변을 둘러보는데 문득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2016년 12월 22일 오전 11시 35분. 혼란스런 눈으로 시계를 보다가 까페 홀을 보면,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승호 누구…세요?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여자, 유라다!


승호, 일시정지된 것처럼 아무 현실감 없이 유라를 보고만 있다.


 


유라 (장난스레) 당신 와이픈데요!


승호 …!!!


유라 왜 그래? 꼭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피식) 그러고 있지 말고 청소 좀 해줘. 손님들 올 건데 깔끔한 모습 보여야지.


 


보면 유라는 평소처럼 수제 청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독특한 해와 달 로고가 새겨진 뚜껑을 야무지게 닫는 유라의 손.


 


승호 당신… 정말 당신 맞아?


유라 못 믿겠으면… (얼굴 확 들이밀며) 봐봐! 어디 달라진 거 있나…


 


말 끝나기도 전에 부서질 듯 유라를 확 끌어안는 승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유라 (안긴 상태로 이상하다는 듯) 당신… 왜 그래? 꿈 꿨어?


승호 (울먹이며) 그런가봐… (다시 한 번 유라 몸 여기저기 살피고)


당신 정말 괜찮은 거지…?


유라 그러엄! 애두 아니구… 무슨 꿈을 꿨길래 눈물까지 흘려?


 


승호,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유라를 확 끌어 안는다.


그때 문에 매단 풍경이 울리면서 과자 봉지 든 해달이 들어온다.


‘해달아!’ 외치며 유라와 해달을 동시에 꼬옥 끌어안는 승호.


이어서 시끌벅적 들어오는 최부장, 호석 그런 승호보고 쿡 웃는다.


 


호석 아이쿠. 우리가 부부 사이를 방해했나 봅니다?


유라 (쑥스런 미소) 어서 오세요.


최부장 이야~ 제수씨 가게 정말 이쁘네요. 잡지에 실려두 되겠어.


승호 (얼떨떨)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일동 (동시에 귀신 보듯 휙~ 승호를 돌아본다) …?


 


(점프)


희정이 복잡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희정 (표정 숨기고) ... 내가 좀 늦었지?


승호 (혼란스러움에, 들어온지도 모르고) ...


최부장 주대리 설마 주말에 불러냈다고 시위 하는 거 아니지?


희정 부장님두 차암…


호석 주대리님이 주말이라고 뭐 하는 게 있는 줄 아세요? 그냥 집에서


미드 다운 받아 보면서 맥주나 마신답니다.


희정 그러는 넌 게임만 하잖아.


유라 (E)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주방에서 김이 폴폴 나는 커다란 냄비를 가져오는 승호의 아내, 유라.


유라의 뒤에 자석처럼 들러붙은 해달도 보인다.


이 모든 상황을 현실감 없이 그저 멍~ 하게 구경하듯 바라보는 승호.


 


승호 다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일동 (황당한 얼굴로 승호 보면)


승호 (못 견디겠는 듯 벌떡 일어서서) 나 잠깐… 자리 좀…


 


승호, 도망치듯 주방으로 들어간다.


 


주방 / 아침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를 다시 한 번 보는 승호.


2016년 12월 22일 오후 1시 45분… 본인 핸드폰도 확인해 본다.


디지털 시계와 같다.


 


승호 일주일 전으로… 돌아온 거야...? 말도 안돼…


 


받아들이기 힘든 승호, 이마에 손을 짚으며 생각에 잠기는데 다가와 어깨에 손 올리는 희정.


 


희정 (걱정스런) …괜찮아?


승호 (지나치게 놀라며) 어어…! …주방엔 왜?


희정 물 좀 가지러…


 


희정,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 열어서 물병을 꺼낸다.


뒤늦게 주방에 따라 들어온 유라가 그런 희정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본다.


 


안방 / 밤


 


잠 든 유라 옆에서 눈 뜨고 천장을 바라보는 승호.


 


승호 (작은 목소리로) …자?


 


기척에 돌아눕는 유라, 이번엔 정말로 잠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유라의 손을 꼬옥 잡고 망부석처럼 앉아 곁을 지키는 승호.


 


해달 방 / 밤


 


아기자기한 공주님 방.


이불을 차 내고 잠든 해달의 이불을 얌전히 여며주는 승호.


흐트러진 해달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곁을 지킨다.


창문 너머로 어느새 푸르게 동이 터오며 아침 해가 떠오른다.


 


까페 앞 차고 / 아침


 


차의 시동을 거는 유라. 전조등에 문제 있다는 경고등이 뜨자 내려서 살피는데 승호가 큰일난 것처럼 뛰어온다.


 


승호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유라 어후, 깜짝이야… (가슴 쓸어내리며) 오늘 차 내가 쓴댔잖아.


승호 (무슨 상황인지 알겠고) 헤드라이트 나갔잖아. 차 타지 마.


유라 오늘 재롱잔치라 유치원 버스 운행 안한대. 연극할 때 쓸 짐도 많은데…


승호 (말 끊고) 오늘은 아무데도 가지 말고 집에 있자.


유라 (황당) 뭐어?


승호 오늘만이야. 딱 오늘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데도 가지 말고 우리 세 식구 다 같이 집에 있자고.


(지체없이 ‘최부장님’에게 전화거는) 부장님…? 저 한과장입니다.


유라 (말리듯) 여보오!


 


회사 회의실 / 아침


 


희정, 핸드폰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있는 최부장에게 자료 건네고, 호석도 미팅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분위기다.


 


희정 여기 L마트 구매부 강팀장이 보낸 발주서, 홀리데이 세일 페스타


진행 자료에요.


최부장 (통화중인 승호에게) 뭐라고? 결근? 문자 못봤어? L마트 강팀장이


오늘 회사에 온다니까!


승호 (F) 예. 봤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기회인거 잘 아는데… 저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최부장 (황당) 한과장! (뚜 끊기자) 야, 한승호!!! 얘 갑자기 왜 이래?


희정 (걱정스럽고) …



거실 / 아침


 


잔뜩 심술 난 해달이 소파에 무릎 세우고 앉아 앞만 노려보고 있다.


안방에서 목소리 높여 대화하는 승호와 유라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자 귀를 틀어막아버리는 해달.


 


안방 / 아침


 


유라 해달이 세달 전부터 발레학원까지 포기해가며 준비한 연극이야.


근데 아무 이유도 없이 가지 말라는 게… 이게 말이 돼?!


승호 나중에… 오늘만 지나면 다 설명할게.


유라 당신 어제부터 정말 이상해! …무슨 일 있는 거야?


승호 (뭐라 설명해야할지 암담하고) …


유라 나 괜찮아. 들을 준비 돼있어.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


무슨 일 있는 거지?


승호 (한숨 삼키며) 그런 거 아냐…


유라 여보!!!


해달 (E) 너무해!!!


 


어느새 안방 문 열고 그 앞에 서있는 해달.


 


승호 해달아...


 


해달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는 승호.


 


(플래쉬 백)


해달 해달이 백설공주 연극… 잘 했는데… 왜… 안 보러왔어?


 


지하철 / 낮


 


연극에 쓸 짐을 한가득 들고 지하철 역사에 앉아 지하철이 오길 기다리는 승호, 유라, 해달.


 


해달 지하철 타면 삥 돌아가야 하는데 왜 지하철 탔어?


승호 차가 고장 났어. 지하철은 안전하니까 괜찮을 거야.


해달 차 고장 났으면 버스 타두 됐잖아. 버스는 세 정거장인데…


승호 버스도 위험해.


유라 (어이없고) …


 


유치원 강당 / 초저녁


 


재롱잔치 무대가 한참이다. 귀여운 마녀 옷 입고 거울 앞에 앉아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야무지게 대사 외우는 해달.


유라가 그 모습 흐뭇하게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다가 옆의 승호를 보면 놀랍게도 승호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점프)


무대가 끝나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꽃다발을 건넨다.


승호도 얼른 해달을 안아 올린다.


 


해달 공주가 아니라 마녀라서 실망했지?


승호 아아니! 아빤 우리 해달이밖에 안보였어. 해달이가 세상에서 제일 잘했어!


해달 근데 아빠 왜 울어?


승호 (또 울컥) 우리 해달이 너무 기특해서… 자랑스러워서…


그게 너무 감사해서… 그래서…


 


빵집 앞 사거리 / 밤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승호, 유라, 해달.


승호가 빵집을 보면 빵집은 여전히 불이 꺼져 있다.


그때 보행자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고 세 가족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비틀거리며 돌진해오는 덤프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승호의 눈을 찌른다.


 


승호 안돼!!!!


 


비명지르며 유라와 해달을 동시에 품에 안아 트럭을 피해 넘어져 구르는 승호.


다행히 트럭은 제 차선 찾아 멀어지고 유라와 해달도 무사하다.


 


승호 (멀어지는 트럭보며) 됐어… 이제 됐어!!! 다 끝났어…


 


안도와 기쁨에 젖어있던 승호, 얼른 유라와 해달 일으켜 세우고 갈 길 간다.




안방 /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승호. 천천히 고개 돌려 옆을 보면 유라가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승호 여보…


유라 (잠결에) 응?


승호 살면서 이런 기분 처음이야… 당신이 내 와이프고 해달이가 내 딸이라 정말… 너무 행복하다.


유라 (눈 감은 채 자세 고쳐 누우며) …왜 안하던 소릴.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승호 (정색하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유라 그냥 한 말이야. 당신 잠 못 자서 예민한 가부다. 얼른 자.


어제도 한숨도 못 잤다며…


승호 (정색 풀고) 응… 자야지… 이제 맘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승호.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 천천히 눈을 감더니 그대로 잠이 든다.


 


비밀의 창고


 


서서히 눈뜨는 승호, 허나 눈 앞에 보이는 건 암흑 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쓰다듬어 본다. 비밀의 창고 안이다!


 


승호 유라야…? 해달아!!


 


승호, 황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까페 주방 / 밤


 


문을 열고 나오면 시선에 들어오는 디지털 시계. 2016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3분… 주방엔 유라가 만들다 만 수제청이 그대로 놓여있다!


아직 현실감각 돌아오지 않은 승호가 황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가본다.


 


거실 / 밤


 


영정사진 두 개,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다!


 


승호 말도 안돼…!! 아니 어떻게… 분명히 피했는데…


 


승호,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망연자실해 영정사진을 보고 있는데 1층에서 초인종 벨소리 들린다.


 


까페 홀 / 밤


 


벨을 누른 사람은 희정이었다.


 


(점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승호와 희정. 희정의 핸드폰,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희정 상 치르고 집에 혼자 있는 거… 걱정돼서 와 봤어.


승호 유라랑 해달이… 어떻게 된 거야? 분명 살았는데 왜 영정사진이 방에 있냐고!!


희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횡단보도 / 아침


 


등원준비 마친 해달과 유라가 저 멀리 다가오는 유치원 버스를 보고 탈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유치원 버스 앞에 끼어드는 덤프트럭, 인도 위로 올라와 두 여자를 덮친다.


귀를 찢는 유라의 비명.


 


까페 홀 + 주방


 


무섭도록 빨갛게 눈이 충혈된 승호,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승호 (생각에 잠겨) 희정아… 미안한데… 너 그만 가라.


희정 승호야?


승호 (버럭) 가라고! 좀!


희정 …!!


승호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내가 지금 급히 할 일이 있어서…


희정 (차분히) 승호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24시간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전화 줘. 응?


 


까페 앞 / 밤


 


무거운 발걸음으로 까페를 나오던 희정, 잠시 서서 주머니와 가방 속을 뒤적이다가 다시 까페 쪽을 돌아본다.


 


승호네 집 / 밤


 


희정, 조심스레 들어오며,


 


희정 잠깐 핸드폰을 두고 가서…


 


그런데 안은 조용하다.


 


희정 (의아한) …승호야?


 


희정, 천천히 주방 쪽으로 가본다. 주방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문이 반쯤 열려있고 안에선 어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 쪽에 다가가 경계 어린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한 발짝 내딛는 희정.


 


비밀의 창고


 


희정이 안으로 들어오자 방문이 저절로 닫힌다.


순간 놀라는 희정, 긴장 풀지 않고 사방을 둘러본다.


하지만 어둠 외엔 보이는 것이 없다.


단단한 회색 벽을 손으로 만져보다가 다시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나오면,


 


까페 주방 + 홀 /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까페 주방은 희정이 들어가기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희정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있었는데. 승호 얜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비밀의 창고를 돌아보는 희정.


홀로 걸어나가 핸드폰 챙겨 밖으로 나간다.


 


까페 홀 + 주방 / 낮


 


비밀의 창고 문을 열고 나온 승호가 디지털 시계부터 확인한다.


2016년 12월 22일 오전 11시 35분, 일주일 전으로 돌아왔다!


까페 홀에선 여전히 유라가 수제 청을 만들고 있다.


 


유라 (기척에 돌아보며) 당신 거기서 뭐해? 그러고 있지 말고 청소 좀


해줘. 손님들 올 건데 깔끔한 모습 보여야지.


승호 잠깐만. 해달이 곧 들어올 거야.


유라 어?


 


그때 정말로 해달이 과자봉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승호 여보, 해달아. 얼른 이리 와!


유라 당신 왜 그래?


승호 빨리 이리로 오라니까.


 


마음 급한 승호, 다짜고짜 유라와 해달 손을 낚아채 주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 바람에 해달이 먹고 있던 과자봉지가 우르르 쏟아진다.


 


해달 아아! 아빠, 아파!


유라 놓구 말해. 무슨 일인데 그래?


승호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잠깐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유라 (팔 뿌리치며) 얘기해주기 전까진 싫어! 왜 당신 마음대로야?


승호 유라야! 그러니까… 우리가 시간을 건너뛰어야지만…


(말하는 본인도 혼란스럽고) 그러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돼.


저 방… 저 방 안에 잠시만 들어갔다 나오면, 그러면 틀림없이 다른 세상이 되어 있을 거야. 그땐 다 괜찮을 거라고!


유라 (너무 절박한 눈빛에) 무슨 일인진 몰라도… 당신 말대로 하면 정말 괜찮은 거야? 다?


승호 그럴 거야. 그러니까 내 손 잡아. 해달이도 이리 와.


해달 무서워!


승호 무서울 거 하나 없어! 엄마 아빠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승호가 한 팔로 해달을 안아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론 유라 손을 꽉 잡은 채


주방의 방문 앞에 서서 문손잡이를 돌린다.


유라와 해달 얼굴을 눈에 새기 듯 한번 씩 바라본 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는데…


 


까페 주방 / 밤 - 점프


 


다시 창고 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오는 승호.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유라와 해달이 없다!


다시 돌아서서 창고 문을 열어 안을 살피는 승호.


 


승호 유라야? 해달아!!


 


비밀의 창고 안에선 아무런 응답이 없다.


홀 쪽을 돌아봐도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2층 승호네 거실 / 밤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승호.


 


승호 유라야!!!! 해달아!!!!


 


하지만 승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나란히 놓인 영정사진이다.


그걸 보고 그대로 주저앉는 승호.


 


승호 나만… 빠져나온 거야?


 


괴롭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스스로를 닦달한다.


 


승호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생각을 해. 생각!! 생각 좀!! 제발…


 


어느 순간 승호의 핏발 선 눈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도로. 빵집 앞 사거리 - 회상


 


- 좌회전 하던 유라의 차를 덤프트럭이 덮치던 모습.


 


- 횡단보도를 건너던 승호네 가족을 가까스로 비껴가던 덤프트럭.


 


-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 유라와 해달 쪽으로 돌진하는 덤프트럭.


모두 같은 트럭이다!!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계 / 낮


 


조서 작성하며 고성이 오가고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리는 등 산만한 내부.


담당 경찰이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승호를 본다.


 


경찰 사고 가해자 연락처요?


승호 예. 좀 알 수 있을까요?


경찰 그게 왜 필요하신데요? 형사합의도 안하는 걸로 기소 된 건데...


승호 그냥 꼭 알아야 될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경찰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거라 함부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민사 소송 거시려고요?


승호 (머뭇머뭇) …


경찰 그러려면 지금 진행 중인 재판 판결이 나오길 기다리세요.


그 담에, 항소하면서 소송에 필요한 서류 법원에


신청할 수 있으니까요.


승호 지금 제가 판결 기다리고 뭐 그럴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경찰 왜 소릴 지르세요? 어쨌든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없네요.


(딴 일 보는)


 


경찰서 앞 / 낮


 


허탈하고 씁쓴할 얼굴로 경찰서를 빠져나오는 승호.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데 전봇대에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붙어있는 흥신소 전단지가 보인다.


 


흥신소 거리 / 낮


 


주로 문 닫은 작은 가게들이 쭉 늘어선 곳.


따닥따닥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간판들, 거리에 아무렇게나 삐죽 버려져 있는 고장난 기계나 쇳덩이들.


분명 낮임에도 어두컴컴한 그 길을 돌고 돌고 또 도는 승호.


마침내 허름한 상가 2층에 위치한 간판을 발견한다.


 


까페 홀 / 초저녁


 


흥신소에서 받은 듯한 서류봉투를 든 승호가 안으로 들어오다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희정을 보고 놀란다.


 


승호 희정이 니가 여기 웬 일이야?


희정 문이 열려있길래. 어디… 다녀와?


승호 (서류봉투 뒤로 숨기며) 아무 것도 아냐. 무슨 일인데?


희정 말도 없이 출근 안했기에 걱정 돼서 와봤어. 전화도 꺼 놓구.


승호 (미처 생각 못한) 아아…


희정 출근 왜 안했어? 무슨 일 있어?


승호 …희정아. 나 유라랑 해달이… 살릴 방법 알아냈어.


희정 (황당) …뭐?


승호 내 말 믿기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 그치만…


희정 (냉정히) 유라씨랑 해달이 이제 그만 보내줘.


승호 …살릴 수 있다니까? 살릴 수 있는데 왜 보내줘!


너라면 그럴 수 있니?!


희정 승호야. 제발… 과거는 그만 잊고 현재를 살아.


승호 그래. 못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희정아. 내가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우리 얘긴 다음에 하자.


희정 (안타까움에 억장이 무너지는) …


승호 (시선 피하며) 나 좀… 혼자 있을게.


 


희정이 무거운 걸음으로 까페를 나간다.


희정이 가기를 기다린 승호, 까페 테이블 위 유라가 만들다 만 수제청 옆에 놓인 주방칼을 키친타올로 잘 감싸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는다.


흥신소에서 받은 서류봉투까지 챙겨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승호.


 


까페 홀 / 아침


 


여전히 변함없는 일주일 전의 아침 풍경.


승호가 빠른 걸음으로 주방에서 홀로 걸어나온다.


수제청을 만들고 있던 유라가 돌아보며 말한다.


 


유라 그러고 있지 말고 청소 좀 해줘. 손님들 올 건데 깔끔한 모습


보여야지.


승호 지금 그럴 시간 없어. 회사 사람들도 전부 오지 말라고 전해.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유라 당신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왜 그러는데?


승호 설명도 나중에.


 


승호, 지체하지 않고 까페를 빠져나간다.


 


유라 (뒤에 대고) 여보!!


 


까페 앞 / 아침


 


까페를 빠져나오던 승호가 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해달과 부딪힌다.


해달이 들고 있던 과자 봉지가 우르르 쏟아진다.


 


해달 (울먹) 이거… 방금 사 온 건데! 아빠 너무해!


승호 아빠가 미안. 해달아, 빨리 안에 들어가 있어.


해달 싫어. 다시 과자 사 올래.


승호 (버럭) 빨리 들어가 있으래두!! 절대 집 밖에 나오면 안돼. 알았어?!


해달 (그런 승호 낯설고 무섭다 으앙! 울음 터트리며) 엄마아!!!


 


해달이 울면서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는 승호.


그때 모퉁이를 돌아 이쪽으로 오는 최부장과 호석이 보인다.


 


최부장 어, 한과장. 나와 있었네? 우리가 너무 일찍 왔나?


승호 (곤란한) …


호석 들어가시죠, 과장님.


승호 죄송한데 제가 중요한 볼 일이 있어서요.


최부장 (황당) …응? 오늘 한과장이 우리 초대한 거 아니었어?


승호 저 가볼 데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승호, 황당함에 일시정지라도 된 듯 굳어있는 두 사람에게 목례하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까페 앞 모퉁이 / 낮


 


모퉁이를 돌아나온 승호, 주변에 아무도 없나 잘 살핀 후 천천히 서류봉투를 개봉해 본다.


가해자(박상태)의 이름과 사진, 핸드폰 번호, 인적사항 쭉 나온다.


주소를 보는 승호. ‘서울시 **구 **동 61번지 B01호’



승호 (흔들리는 동공) …같은 동네잖아…? 허!


 


거리 / 낮


 


분명 같은 동네임에도 승호네 집 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거리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아이들은 차도에서 뛰놀고 어디선가 목청 높여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등 산만한 거리를 지나 어느 다세대 주택 앞에 서는 승호.


서류 봉투 속 주소를 확인해보고는 맞는 듯 천천히 다가간다.


하나의 건물에 현관문이 여러 개다.


그 중 B01호는 반지하이고 거리에서 B01호의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승호가 발소리를 유의하며 창가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본다.


 


박상태의 집 / 낮


 


작은 공간에 수납하기 위해 애쓴 역력이 가득한 집.


그래도 청소를 잘한 듯 깨끗하고 아늑하다.


해달 또래의 여자아이(수린)가 해달이 먹던 것과 똑같은 과자를 먹으며 만화영화를 보고 있다.


상태의 아내는 손바닥만한 주방에서 미역국을 끓이는 중이다.


 


수린 엄마, 아빤 언제 와?


상태처 (힐끗 시계 보고) 곧 오실 거야. 오늘은 꼭 오신댔으니까 걱정 말구


과자 너무 먹지 마. 미역국에 밥 먹어야지.


수린 미역국 싫은데. 오늘 진짜 케익 먹을 수 있어?


상태처 그러엄! 아빠가 케익도 꼬옥 사온댔어!


수린 와! 신난다! 나 과자 안 먹고 케익 기다릴래! (손 싹싹 털고)


상태처 (피식 웃다가 미역국 간 보고는 불 끈다) 아빠한테 전화 한 통 해볼까?


 


상태네 집 앞 / 낮


 


슬쩍 엿보던 승호, 양복 안주머니에 숨겨뒀던 칼을 슬쩍 꺼내 본다.


 


승호 (스스로 경멸스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승호, 다시 칼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도망치듯 뒷걸음질로 멀어지는데


뒤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던 누군가와 부딪힌다.


그 바람에 양복 안주머니에 미처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칼이 바닥에 떨어진다.


쨍그랑!!!


뒤에서 부딪힌 누군가는 케익 상자를 떨어트린다.


퍽!!!


당황스런 눈으로 뒤를 돌아보는 승호, 그런데 승호와 부딪힌 남자, 박상태다!


박상태가 바닥에 떨어진 칼을 보고 놀란 듯 승호를 바라본다.


 


대치하듯 긴장 상태로 서로의 눈을 주시하고 있는 두 사람…


 


승호 (믿든 안 믿든 상관없는) 버리려고… 가져 나온 건데…


상태 칼을… 버리려고요?


승호 …예.


 


상태, 허리 굽혀 본인이 칼을 주워든다.


그리곤 날카로운 눈매로 칼날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한다.


저절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승호.


 


상태 (별안간 씨익 웃으며) 여깄습니다. 아직 더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상태, 칼날을 본인 쪽으로, 칼 손잡이를 승호 쪽으로 해서 건넨다.


그런 상태의 미소가 너무도 해맑아… 그 이질감에 시간이 멈춘 듯 상태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승호.


시선 느낀 상태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긴장 늦추지 않고 칼을 건네받아 안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는 얼른 허리를 숙여 승호가 떨어트린 케익을 주워주는데 그 케익, 백설공주 케익이다.


 


(플래쉬 백)


승호 (옷의 물기 털어내며) 우유 생크림 케익 예약 주문했는데요.


백설공주 데코된 거요…


 


상태 (받으려고 손 내밀며) 감사합니다.


승호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나) 아… 여기. 케익이 망가졌네요.


죄송해서 어쩌죠…


상태 할 수 없죠. 괜찮습니다. (가려는데)


승호 저기요.


상태 (돌아보며) 네?


승호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하세요…


상태 (황당하게 보다가 그냥 들어가는) …


 


상태네 / 낮


 


초를 켠 케잌 앞에 모여앉아 있는 상태, 상태처, 수린.


망가진 부분을 나름 수정한 듯 그럴듯한 모양새가 되어 있다.


 


일동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수린이… 생일 축하합니다.


수린 (후- 불어 불 끄고) 나, 나 소원빌게. 잠깐만 초 뽑지 마.


상태 무슨 소원인데?


수린 그건 비밀!


상태 아빠가 알아야 하나님한테 소원 전달해주지. 우리 수린이 소원 좀


들어주세요~ 하고.


수린 (소곤대는) 그럼 우리끼리 비밀인데… 이번 1월 1일에 우리 가족 다 같이 해 뜨는거 보게 해달라고 빌었어.


상태 우와! 엄청 신나겠다?


상태처 수린이 소원 빌려구? 오늘도 빌어놓구?


수린 그치만 수린이 소원이 많은 걸. 말 잘 들었으니까


다 들어주실거야. 그치 아빠?


상태 그러엄!


상태처 이제 케익 먹을까?


 


상태처가 케익을 잘라 접시에 올리는데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백설공주가 바닥으로 톡 떨어진다.


그 순간 타이밍을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듯 신나게 울려대는 상태의 핸드폰.


동시에 고개 돌려 핸드폰을 바라보는 세 가족.


 


상태 (확인하곤 살짝 어두워지며) …김소장이네.


 


그 말에 수린과 상태처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티나지 않게 한숨을 쉰다.


 


상태처 오늘은 받지마요, 응? 또 불러서 술 퍼 멕일 거 아냐.


술 입에도 못 대는 사람한테.


수린 아빠 또 나가야 해? 오늘은 안 가면 안돼?


상태 (계속 울리는 전화보며 망설이다가 끊길 듯 하자 얼른 받는) …네.


박상탭니다. 아유 아닙니다. 네, 네. (하고) …네 알겠습니다.


 


전화 끊는 상태, 속상해 있는 수린과 상태처에게 미안한 표정 지으며 말한다.


 


상태 …또 호출이네. 나라고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냐. 김소장 호출 거절하면 일감 줄어드는 거 당신도 잘 알잖아…


수린아. 아빠가 올 때 곰인형 사올게.


수린 치이…


상태 (나갈 채비하며) 바로 출근해야할지 모르니까 차 갖구 갈게.


상태처 (반 포기) …조심해요. 술 마시면 운전은 하지 말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열어 밖에 나가는 상태.


 


상태네 집 앞 / 낮


 


상태가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상태네 집 건물 뒤편에 숨어있던 승호가 나와 상태 뒤를 조심스레 따라간다.


 


까페 해와 달 / 낮


 


테이블 위에 차려진 해물찜이 거의 다 비워져 있다.


테이블에 앉아 ‘여보님’에게 전화 거는 유라.


상대방이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성이 흘러나오자 갸웃 하며 끊는다.


 


유라 전활 안 받네요. 이럴 사람이 아닌데…


최부장 한과장 무슨 일 있어요? 아까 요 앞에서 마주쳤을 때도 얼굴이


영 아니던데…


유라 글쎄요 저도 잘… 별다른 일은 없는데.


호석 금방 들어오겠죠. 저, 제수씨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유라, 얼른 뒷 테이블에 뒀던 소포장한 잼병을 하나씩 건넨다.


잼 뚜껑에 해와 달을 그린 독특한 로고가 박혀 있다.


 


유라 이거 하나씩 가져가서 드셔 보세요.


직접 만든 생강청이랑 블루베리 잼이에요.


최/호석 와~ 이 귀한 걸 다 주시고… / 감사합니다!


희정 (안 받고 머뭇머뭇)


유라 희정씨도 하나 가져가세요.


희정 전 됐어요…


유라 (무안한) 네?


희정 아… 아니에요. 주세요. 감사합니다.


 


희정네 / 초저녁


 


희정이 혼자 사는 오피스텔.


지친 얼굴로 들어와 냉장고 문부터 여는 희정.


안엔 해와 달 로고가 박힌 잼병이 꽤 많다.


한숨 쉬며 하나 더 채워넣는 희정, 무표정하게 다시 냉장고 문 닫는다.


 


공터 / 초저녁


 


- 화물차들을 주차해놓은 어느 공터로 들어오는 상태.


자신의 덤프트럭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승호, 근처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탄다.


 


대포집 / 밤


 


와글와글- 소란스럽고 사람이 미어터지는 허름한 대포집.


유난히 덩치 큰 김소장이 화물 기사 몇몇과 푸짐한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그 무리로 다가가는 상태, 깍듯이 숙여 인사한다.


 


상태 김소장님! 저 왔습니다.


김소장 응? 어어! 박기사. 여기 앉아. 온다고 고생 했네. 한 잔 해.


상태 …예. 근데 제가 술을 잘 못 해서…


김소장 응?


상태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꾸역꾸역 삼키고)


김소장 오늘 딸래미 생일이었다며? 이거 내가 괜히 불러낸 건가.


상태 아닙…니다. 김소장님이 부르면 언제라도 와야죠… 하하…


 


대포지 앞 / 밤


 


열어놓은 문 사이로 그 모습이 훤히 다 보이는 승호.


 


(플래쉬백)


L마트 강팀장 앞에 굽신거리던 승호 모습.


 


승호 (멈칫) 오늘…요?


승호 아, 아닙니다! 안되는 게 어딨습니까?


 


자신과 상태의 닮은 모습에 허탈하고 씁쓸한… 자조적 미소가 떠오르는 승호.


 


승호 …허!


 


그때 술을 잘 못 마시는 듯 구역질을 참으며 밖으로 뛰쳐나오는 상태.


승호, 얼른 몸을 돌려세운다.


 


대포집 앞 전봇대 / 밤


 


혼자 전봇대 부여잡고 구역질을 해대는 상태.


겨우 속이 진정된 듯 주머니 속에 핸드폰 꺼내 전화를 건다.


 


상태 여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응. 밤 샐 분위기야. 미안해.


(하고) 곰인형…?


상태처 (F) 작년 생일에도 곰인형 사준대놓고 못 사줬잖아. 아빠가 올해는 꼭 사 올 거라고… 곰인형 기다린다고 잠도 안자고 있어.


상태 (마음 편치 않은) …그래… 알았어.


 


힘없이 전화 끊는 상태, 한참을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거리 / 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얼굴로 살짝 비틀거리며 유흥가 거리를 헤메는 상태.


드디어 잡화점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가게에서 제일 커다란 곰인형 하나를 등에 업고 나오는 상태.


 


공원 주차장 / 밤


 


한적한 공원의 주차장에 세워둔 트럭 조수석에 곰인형을 앉히는 상태.


시동을 걸고 출발 하려다 요의를 느낀 듯 주변을 살핀다.


저 멀리 간이 공중 화장실 불빛이 보이자, 시동 걸어놓은 채 내리고...


 


공중 화장실 / 밤


 


파리한 형광등 불빛이 스스로 꺼졌다…켜졌다를 반복하며 찌르르한 소리를 내는 음침한 화장실.


상태가 서서 소변을 누고 있는데 스윽 들어와 세면대에서 손 씻는 승호.


 


승호 (상태 쪽 보지 않고) …운전 하지 마시죠.


상태 (알딸딸한 상태에서 잘 못 들었나 싶은) …예?


승호 …술 드셨잖아요. 운전은… 하지 마시죠?


상태 (얼굴 확인하고 놀라 황급히 바지 추스르며) 당신… 당신 뭐야?


당신 아까 집 앞에 있던 그 사람 아냐?!


승호 부탁합니다. 차 몰지 마세요.


상태 이런 미친놈이…! 당신 뭐야, 스토커야?!!


 


승호, 말이 안통하겠다 싶어 먼저 화장실을 빠져 나가려는데 상태가 승호의 팔목을 거칠게 낚아채 돌려세운다.


 


상태 (눈 돌아간) 뭐냐고 묻잖아아!!!


승호 절대 그럴 사람처럼 안 보여서 당황스러웠는데… 주사가 있으시네.


술 마시니 딴 사람 되네요.


상태 뭐어?!


승호 …저한테 주사 그만 부리시고 운전대나 잡지 마세요.


 


퍽!!!


승호의 얼굴을 가격하는 상태.


입술에 터져 피가 흐르건만 전혀 개의치 않는 승호, 경고의 눈빛을 한 번 던진 후 팔목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밖으로 나간다.


 


덤프트럭 안 / 밤


 


여전히 술이 덜 깨 빨개진 얼굴로 트럭을 모는 상태.


트럭이 승호 동네 빵집 사거리에 가까워져 온다.


그때 운전석 뒷공간에서 스윽 얼굴을 내미는 승호!!



눈만 내놓고 예리하게 앞을 주시한다.


빵집 사거리 앞, 좌회전 신호 받아 서있는 유라가 보인다!


유라를 보자마자 팔을 뻗어 핸들을 확 꺾는 승호.


뒤에 승호가 있는지조차 까맣게 몰랐던 상태가 놀라 핸들을 뺏기지 않으려 힘을 준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자 차가 심하게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승호 놔!!! 놓으라구!!!


상태 당신 뭐야!!! 운전 중에 뭐하는 짓이야!!


지금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승호 설명 할 시간 없어. 당신이 안 놓으면… 내 와이프랑 딸이 죽어!!!


 


유라차가 좌회전하는 게 보인다.


이대로라면 유라의 차를 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마음 급한 승호, 양복 안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상태의 옆구리를 찌른다.


 


승호 (찌른 본인이 더 괴롭다, 절규) 으아아아악!!!


 


그대로 고꾸라지며 팔에 힘 빠져 핸들을 놓는 상태, 의식 잃는다.


차는 가까스로 빵집 담벼락에 처박히며 멈춘다.


 


덤프트럭 안 / 밤 - 시간경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사이렌 소리에 기절해 있던 승호가 눈을 뜬다.


벨트를 하지 않아 대시보드에 머리를 부딪친 듯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앞을 가린다.


옆에 여전히 고꾸라져 있는 상태 보고 헉… 숨을 삼키며 도망치듯 트럭에서 내리는 승호.


 


빵집 사거리 / 밤


 


트럭에서 내리고 보니 빵집 앞은 더 아수라장이다.


도로 위 완전히 뭉개져있는 차가 보인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다가가는 승호 발밑에 밟히는 그 것!


까페 해와 달 로고가 박힌 잼 뚜껑이다!!


 


승호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그런 승호의 귀에 주변에서 떠드는 구경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구경1 중앙선 넘어 달리던 트럭 피하려고 멈췄는데 뒤차가 못 멈추고


그대로 깔아뭉갰대요.


승호 (무릎 꺾여 주저앉으며) 아아아… 안돼… 안돼!!!!!!!!!!!!!!


 


그대로 의식을 놓으며 혼절하는 승호. (F.0)


 


구치소 / 낮


 


서서히 눈 뜨는 승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쇠창살.


낯 선 풍경에 벌떡 일어나 본다.


분명 구치소 안이고, 승호 본인은 수감번호가 찍힌 수의 차림이다!!


수감번호 1231.


상황이 이해가지 않는 승호, 쇠창살에 매달려 지나가던 교관에게 묻는다.


 


승호 저기, 내가 왜 여깄는 겁니까?


교관 (어이없다는 듯)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 되셨잖습니까.


승호 (단어조차 생경한) 살인…미수요?


 


(플래쉬 백)


상태를 주방 칼로 찌르던 승호.


 


승호 그래서 내가 여기… 안돼… 안돼… 내가 여깄으면 안돼…


(쇠창살 탕탕 치며) 안된다구!!!


 


핏발 선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는 승호의 짐승같은 표정에서…


 


구치소 / 낮 - 시간경과


 


세상이 끝난 것처럼 미동 없이 앉아있는 승호의 얼굴에 떨어지는 햇빛 한 줌.


문득 필사적으로 벽 사방 면을 둘러본다.


마치 어딘가에 비밀의 창고문이 있지 않을까 찾기라도 하는 듯.


하지만 사방은 벽으로 꽉 막혀있고


한참을 둘러보던 승호, 돌연 호흡곤란이 오는 듯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때 배식구를 통해 밥과 국, 반찬이 들어온다.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관심을 보이지 않는 승호.


 


(시간 경과)


밥통을 수거해 가는 사동 청소부.


음식물이 그대로 들어있자 무뚝뚝하게 한 마디 건넨다.


 


청소부 그러다 뒤져. 뭔 죄를 졌는진 몰라도 살아서 갚어.


굶어 뒤진다고 진 죄가 읎어지지 않으니께.


승호 …그럼 어떻게 하면 죄가 사라지는데요? 저… 정말 여기서 꼭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청소부 …뭘 어떻게 해도 사라지진 않제. 그냥…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여. 그렇게 품고 사는 거여. 담부턴 한 알도 남기지 말구 다 처먹어. (쌩 가는)


승호 …


 


그때 교관이 다가와 삐걱- 쇳소리가 나는 문을 연다.


 


교관 1231. 면회다.


 


접견실 / 낮


 


접견실 맞은편에 희정이 앉아있다.


예상한 듯 덤덤하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야위고 초췌한 몰골로 희정 앞에 앉는 승호.


 


희정 승호야…


승호 (눈도 못 마주치고) 왜 왔어.


희정 (그 말 아프지만) …춥진 않아? 밥은 괜찮게 나오구?


승호 희정아. 나 여기 있으면 안돼. 죄 값… 다 치를 수 있어!


있는데…! 지금은 안돼.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희정 …그래?


승호 내 얘기가 미친 사람 말처럼 들린다는 거 잘 알아.


근데 나 미친 거 아냐. 희정이 넌…알지?


희정 …응. 알아.


승호 (정말 아는가 싶고) …믿어줘서 고맙다. 교도관 말론 재판이 열릴 거고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진 여기서 나갈 수가 없대.


근데 난… 그런 걸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


희정 그래. 알아. 내가… 도와줄까?


승호 (멈칫) !! …그래줄 수 있어?


희정 내가 도와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


승호 …뭘 해줄까? 뭐든 말만 해. 다 들어줄 테니까.


희정 그래? 그럼…


승호 (보면)


희정 (단호한) 그만해줘.


승호 (눈썹 찌푸리는) …뭐?


희정 원하는 대로 도와줄게. 대신 넌…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해.


그 다음엔… 유라씨랑 해달이 그만 놔줘.


승호 (혼란스럽고) !!


희정 약속할 수 있어?


 


회사 / 낮


 


결제판을 들고 와 최부장에게 내미는 희정.


안을 열어보면 월차계획서가 들어있다.


 


최부장 주대리 월차 쓰게?


희정 네.


최부장 하필 월 말에…? 젤 바쁜거 빤히 알면서.


희정 죄송해요. 꼭 그 날이어야 해서요.


 


최부장이 결제란에 싸인을 하는데 호석이 뛰어들어온다.


 


호석 부장님! 부장님! 한과장님요.


최/희 (동시에 보면)


호석 교통사고로 입원한 줄 알고 있었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 중이래요!!


희정 (알고 있었다, 표정 어두워지고) …


최부장 (충격, 벌떡 일어서는) 뭐어?!!


호석 밑에 경찰 와 있어요! 탐문 조사를 한 대나 뭐래나…


최부장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와글와글 소란스러워지는 내부 분위기에 흔들림 없이 가방 챙겨서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희정.


 


검사실 / 낮


 


검사실에 소환 당해서 신문 받는 승호.


 


검사 (타이핑 하며) *월 *일 오후 9시 경 한아름 공원 화장실에서


피해자 박상태씨와 시비가 붙었죠?


승호 (아니라곤 못 하겠고) …네.


검사 그래서 보복을 목적으로 박상태씨의 트럭에 몰래 탔죠?


승호 …네.


검사 한참을 달리다가 **동 사거리에서 운전 중이던 박상태씨의


옆구리를 집에서 가져온 주방 칼로 찔렀죠?


승호 …네.


검사 (갸웃) 시비가 붙기 전에 미리 주방 칼을 가지고 나왔네요?


승호 …그건…


검사 왜 가지고 나왔죠?


승호 (뭐라 해야 할 지) …


검사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계획적 살인입니까?


승호 …어차피 제가 하는 말 못 믿으실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검사 박상태씨하고는 원래 알던 사이였어요?


승호 …아뇨.


검사 (대포집 사진 내밀며) 여기 어딘지 알죠?


승호 네.


검사 여기서 한승호씨를 봤다는 목격자가 있어요. 여기서 박상태씨를


지켜보고 있었죠?


승호 …


검사 (지도에 줄 그으며) 그럼 여기서부터 공원까지 따라갔다가 시비가 붙었단 말인데… 이게 다 우연이라고요? 그 말을 누가 믿습니까.


승호 …


검사 죄질이 불량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으며 거짓 진술로 일관한다…


다 포기하고 싶어요? 여기서 인생 쫑 내고 싶냐고요.


승호 내 인생… 어차피 그 날 이후로 다 끝났어요…


 


몽타주. 구치소의 밤 / 밤


 


- 민원 접수실.


희정이 자그마한 상자를 접수한다.




접수실에 앉아있는 교관이 상자를 열어보면 플라스틱 테로 된 안경이 들어있다.


 


- 승호에게 안경을 전달해주는 교관.


교관이 가고나면 승호가 안경 다리를 부러뜨려본다.


플라스틱 안에 자그마한 철심이 박혀 삐죽 튀어나온다.


 


- 달빛을 조명 삼아 달력을 보며 머릿속으로 수를 세는 승호.


잠자리에 들지 않고 팔굽혀 펴기, 줄 없는 줄넘기를 하며 몸을 만든다.


 


구치소 앞 / 아침


 


호송 줄에 묶인 승호가 교관에게 붙들려 앞마당으로 나온다.


갑작스런 햇살에 눈부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질질 끌려가듯 호송버스에 타는 승호.


호송 버스가 출발한다.


무심히 철망 밖의 세상을 구경하는 승호의 손가락 사이에 철심이 숨겨져 있다.


 


도로 / 낮


 


도로가에 차를 세워둔 채 앞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희정.


저 멀리 다가오는 호송버스를 발견하고는 마음먹은 듯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한적한 도로 / 낮


 


신호 받아 선 호송버스.


그때 버스 옆으로 다가 온 희정이 빵빵! 클랙션을 울리며 차창을 내려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기사 무슨 일이시죠?


희정 차 밑에서 연기가 나는데요?


 


얼른 백미러로 확인해보면 정말 하얀 연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다.


같이 탄 교관과 경위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철사로 수갑을 푼 승호가 앞을 막고 있던 경위에게 발길질을 하며 차에서 뛰어 내린다.


 


교관1 저 놈 잡아!!


 


미리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던 희정의 차 조수석에 올라타는 승호.


희정의 차가 부우왕- 배기가스를 토해내며 미끄러지듯 출발한다.


 


경위 (무전 치는) 수감번호 1231. 현재 호송차에서 탈옥하여


도주 중이다. 차량번호 **가 1001


기사 (버스 밑에서 주워들고) …이거 바퀴벌레 연막탄인데요?


일동 (황당) !!!


 


도로 / 낮


 


경찰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희정의 뒤를 쫓고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앞 선 차들을 추월해 경찰차를 따돌리는 희정.


 


승호 (희정의 옆 모습 보며) 희정아… 정말 미안하다…


희정 (앞만 보며) 마지막이라는 것만 명심해.


 


까페 해와 달 앞 / 낮


 


끼이이익- 멈춰 서는 희정의 차.


간발의 차로 경찰차도 해와 달 앞에 멈춰 선다.


 


희정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뛰어!!


승호 희정아!!


희정 뛰라구!!!


 


차에서 내려 까페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승호.


 


비밀의 창고 앞 / 낮


 


승호, 주방으로 튀어와 창고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다가 멈칫, 돌아본다.


희정이 경찰에 에워싸여 있다.


승호를 바라보는 희정의 눈에 가득한 눈물을 보는 승호, 순간 기분이 이상하다.


희정의 팔목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는 경찰들.


 


희정 (승호 보며 입모양으로) 난 괜찮아…


 


더 지체않고 방문을 열어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승호.


 


주방 / 낮


 


경찰들이 까페 해와 달을 수색 중이다.


주방 안으로 들어와 보는 경찰들.


경찰1이 비밀의 창고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어 후레쉬 불빛을 비춰본다.


안엔 아무도, 아무 것도 없다.


다시 문을 닫는 경찰1.


 


경찰1 2층에도 없습니까?


경찰2 네…


경찰1 (믿기지 않는) 벌써 도주한 건가? …어떻게?


 


비밀의 창고 / 밤


 


승호, 막상 비밀의 창고까지는 왔으나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암담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다.


 


승호 나 때문에… 희정이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괴로운 승호, 생각을 떨치려는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드는데 그 순간 뭔가가 떠오른 듯 두 눈 커진다.


 


고등학교 / 낮 - 회상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는 고등학생의 승호.


공이 담장을 넘어 운동장 밖으로 날아가자 공을 찾기 위해 승호가 뛴다.


학교 앞 도로 끝에 놓인 공을 주우려고 도로로 내려서는데


갑자기 뒤에서 승호를 밀어 함께 바닥에 넘어지고 마는 여자애.


뺑뺑이 안경에 아무렇게나 삐친 단발머리를 한… 지금과는 사뭇 다른 희정이다.


승호가 넘어지면서 좀 전 승호가 서있던 자리위로 오토바이가 쌩- 지나간다.


희정이 승호를 구한 것이다.


 


승호 (놀란) …괜찮아?


희정 난 괜찮아…


 


하지만 치마 아래로 드러난 무릎에 피가 보이고.


 


승호 미안… 양호실 가야겠다. 흉터 남겠어.


희정 한승호… 맞지?


승호 어…


 


그제야 여자애 가슴팍에 이름표를 보는 승호. <주희정>


하지만 체육복을 입은 승호는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


 


승호 어떻게 알았어? 내 이름.


희정 (순간 얼굴 확 붉어지며 수줍어하는) …


친구1 (담장 너머로 얼굴만 내밀고) 야야 뭐해?


승호 어, 가.


친구2 연애 하냐?


승호 이것들이!!


희정 (여전히 수줍어 고개도 못들고) 난 괜찮아. 가 봐…


 


공을 주워 친구들 있는 쪽으로 가는 승호.


갸웃하며 다시 돌아보면 여전히 수줍은 미소로 승호를 바라보고 있는 희정.


 


회의실 / 아침 - 회상


 


‘최고식품 최종 면접장’ 안내 종이가 붙어있는 회의실.


최부장과 승호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상석에 앉아있고


맞은편엔 단정하게 갖춰 입은 면접자들 3명이 각 잡고 앉아있다.


 


최부장 주희정씨…? 지원 동기가 한승호 과장 때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승호 보며) 아는 사이야?


희정 (기대하고 보면)


승호 (악의 없이 해맑은) 아뇨. 처음 보는데요.


희정 (살짝 충격) !!


최부장 (이력서 보고) 어, 여기 한울고. 같은 고등학교네. 나이도 같고.


승호 (기억 날 듯 말 듯) 아아… 근데 왜 저 때문에 지원했는지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됩니까.


희정 (마음 가다듬고) 중소기업인 최고식품이 대기업 식품 브랜드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 히스토리를 들었습니다.


한승호 과장님께서 매일 아침 9시 L마트로 출근해서 최고식품의


제품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셨다고…


일동 (웃음)


희정 (승호 보며) 옆에서 도움이 되고 싶고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으쓱하면서도 쑥스러운 승호.


희정의 시선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는 걸 본다.


 


비밀의 창고


 


승호 (굳은) ... 주희정 설마...?


 


그때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목소리가 들려온다.


 


희정 (E, 동굴처럼 울리듯) 널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승호,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사방을 둘러보지만 어둠 뿐.


 


희정 (E, 귓가에 속삭이듯) 사랑해, 승호야… 사랑해!


 


받아들이기 힘든 듯 귀를 틀어막는 승호의 혼란 가득한 얼굴에서 (F.O)


 


까페 홀 / 낮


 


유난히 반짝거리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늑한 까페 홀.


테이블에 앉아 수제 청을 만드는 유라의 가녀린 손이 보인다.


독특한 해와 달 로고가 새겨진 새 잼병의 뚜껑을 열려하는데 힘이 부족한 건지 뚜껑이 뻑뻑한 건지 잘 되지 않는데…


마치 사랑과 영혼의 도자기 빚는 명장면처럼 뒤에서 손이 뻗어져 나와 가볍게 뚜껑을 열어주는 승호.


 


유라 (돌아보고 미소) 기척도 없이?


승호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이는) 내가 도와줄 일 없어?


유라 있지. 음… 청소 좀 해줄래? 손님들 올 건데 깔끔한 모습 보여야지.


 


승호, 말 끝나기가 무섭게 밀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는다.


 


승호 해물찜 할 거지?


유라 (놀란) …어떻게 알았어?


승호 …그냥 느낌에. 해물 손질 도와줄까?


유라 당신이 웬 일이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한승호답지 않은데.


승호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무심한 남편이었나?


유라 (엉덩이 톡 치고 지나가며) 이제라도 아니 됐네요.


승호 유라야.


유라 (돌아보면) …?


승호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평소에 갖고 싶었던 거나…


한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데는?


유라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


승호 생각해 봐. 생각해보고 얘기해줘.


 


그때 과자봉투 든 해달이 들어오고,


승호 해달을 보자마자 번쩍 공중에 들어올린다.


 


승호 우리 공주님 왔구나! 과자 먹지 말고 이따 맛있는 거 먹어야지~


해달 (꺄르륵 웃음 터지고) 과자도 맛있어!


승호 그럼 아빠 한 입. 아-


 


그때 시끌벅적 안으로 들어오는 최부장과 호석.


 


승호 (반갑게) 어서 오세요!


호석 아주 깨 볶는 냄새가 바깥까지 진동을 합니다?


최부장 그러니까 김대리도 얼른 장가 가!


유라 (미소 번지는)


 


승호네 거실 / 밤


 


거실로 나란히 올라오는 세 가족.


 


유라 당신 샤워할 거지? 해달이 내가 재울게.


승호 아냐. 내가 재울게. 당신 먼저 씻고 쉬고 있어. 오늘 피곤했잖아.


유라 별 일이야. 해달이 동화책 읽어주면 본인이 더 졸려서 힘들다며.


승호 (여지껏 본인 행동에 화나는) 이게 뭐가 힘들다고. 이것도 힘들면 차라리… 죽어야지.


유라 (섬뜩) 뭐어?!


 


승호가 해달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의아하게 보는 유라.


 


해달 방 / 밤


 


스탠드만 켜진 방 안.


해달이 잠옷 입고 누워있고 승호가 동화책을 읽어준다.


 


승호 …그러면 거울은 항상 대답했습니다. "왕비님이 제일 아름다우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은 백설공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답했습니다. 분노에 찬 왕비는 사냥꾼중 한명에게 백설공주를 숲으로 데려가서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해달 아빠.


승호 응, 해달아.


해달 아빠가 책 읽어주니까 좋아. 똑같은 책도 다른 느낌이야.


승호 …그래?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빠가 책 많이 읽어줄게.


해달이 요즘 소원이 뭐야? 하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있어?


해달 (끄덕끄덕)


승호 뭔데? 얘기해 봐.


해달 놀이공원.


승호 …가자. 내일 당장 가자.


해달 아빠 회사 안 가?


승호 하루 정도 뭐 어때? 해달이가 가고 싶다면 가야지.


해달 우와, 신나!


 


안방 / 아침


 


곤히 잠든 유라 옆 자리, 비어있다.


뚝딱뚝딱 서툰 도마질 소리가 들려온다.


설핏 눈 뜨는 유라.


 


주방 / 아침


 


유라의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승호가 김밥을 말고 있다.


옆구리 터지고 우스꽝스런 모양의 김밥을 썰어 도시락통에 옮겨담는 승호.


 


유라 당신, 안 잤어?


승호 잠이 안 와서. 간 좀 봐줄래? (한 입 쏙 넣어주면)


유라 (씹으며) 맛은 있네. 근데 당신 어제부터 좀 이상하네?


제 손으로 라면도 안 끓여먹던 사람이 김밥을 다…?


승호 이상이 아니라 정상이지. 원래 이랬어야 했는데…


그동안 너무 신경 못 쓴 거 같아서 미안해서…


유라 (다른 느낌으로 승호를 보는) !!


 


놀이공원 / 낮


 


- 쑤욱 떨어지는 바이킹에 탄 승호, 유라, 해달.


승호 두 팔 벌려 신나하고 유라와 해달은 무서워 비명 꺅 지른다.


 


- 회전목마에 혼자 탄 해달.


승호와 유라가 회전목마 밖에서 해달의 사진을 찍어준다.


그때 승호의 옷 안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


확인해보면 ‘회사’에서 온 전화다.


그대로 전원버튼 눌러 끄는 승호.


 


유라 (봤다) …오늘만 사니? 아니면, 회사에서 사고쳤어?


승호 내가 하루 없다고 회사가 어떻게 되진 않아.


난 그냥… 오늘 하루, 당신이랑 해달이 실컷…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유라 당신이 이런다구 내가 행복할 것 같아?


승호 …뭐?


유라 이렇게 여자 맘을 몰라요. 당신이 우리 행복하게 해주려고 무리해서 희생하는 거, 전혀 바라지 않아. 난 그냥 당신 스스로 행복하길 바래.


승호 (한 대 얻어맞은 듯 멍) …


유라 …안 가? 재롱잔치 늦겠다.


승호 유라야. 우리 재롱잔치 갔다가… 거기 가볼래?


유라 어디?


 


고등학교 / 밤


 


유난히 밝게 보이는 별들이 쏟아질 듯 장관을 이루고 있는 학교 운동장.


해달은 철봉에 매달려 혼자 놀고 있고 승호와 유라는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유라 갑자기 학교는 왜?


승호 여기서 모든 게 시작됐잖아.


유라 (보면)


승호 내가 당신 첫눈에 보자마자 반한 게… 여기라고.


 


그때 생각에 옅은 미소가 떠오르는 승호.


그런 승호와 유라 앞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축구하는 승호가 나타나며, 낮이 된다.


 


고등학교 / 낮 - 회상


 


담장을 넘은 공을 주워서 운동장 쪽으로 뛰어가는 승호.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면 희정이 수줍은 미소로 승호를 바라보고 있다.


승호가 뒤를 돌아보고 있는 바람에 앞에서 오던 다른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지 못하고 부딪히고 만다.


교복에 붙은 이름표, 진유라다.


 


유라 아아!


승호 어어, 미안!


 


유라, 부딪힌 어깨를 감싸쥐고 승호를 보는 순간,


승호,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굳어버린다.


유라, 다시 제 갈길 가는데 그런 유라의 뒷모습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는 승호.


 


승호 (친구들에게 뛰어가) 야야, 옆학교에 진유라라고 알아?


 


고등학교 / 밤 - 현재


 


유라 (처음 듣는 얘기) 정말이야? 날 그때 처음 봤다고?


승호 단순히 처음 봤겠어? 첫눈에 보자마자 딱! 내 여자다 한 눈에 알아봤지. 그래서 당신 다니는 학원 알아내서 일부러 같은 반 신청하고… 당신 베이커리 클래스 다니는 거 알고 거기도 따라가고.


유라 (피식) 다 우연인 것처럼?


승호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


 


그순간, 승호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


(플래쉬 백)


고등학생의 희정, 승호가 놓친 공 주워주며,


 


희정 한승호… 맞지?


 


회사 면접실에서의 희정, 승호를 바라본다.


 


최부장 지원동기가 한승호 과장 때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 같은 고등학교네.


희정 옆에서 도움이 되고 싶고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젓는 승호.


 


유라 왜 그래?


승호 아니… 그냥 괜한 기시감에.


유라 당신이 오래전부터 날 그렇게 좋아해줬다니… 새롭네.


근데 갑자기 고백하는 이유가 뭐야?


승호 알리고 싶었어. 말해주고 싶었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야.


 


유라, 승호의 두 뺨에 손을 대고 본인을 바라보게 한 후, 입술에 가볍게 키스한다.


그 순간, 갑자기 벤치에서 일어나 어둑진 곳으로 뛰어가는 승호.


 


유라 …여보?


 


운동장 일각 / 밤


 


어두컴컴한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숨죽여 흐느끼는 승호.


유라가 천천히 등 뒤로 다가온다.


 


유라 당신… 왜 그래? 내가 뭐 실수했어?


승호 유라야…


유라 말해…


승호 나 노력했어. 당신이랑 해달이 행복하게 해주고… 보내주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안돼. 도저히… 도저히 당신하고 해달이 보낼 수가 없어.


유라 보내다니 어딜?


승호 돌이킬 수 없는 거 알겠는데… 뼈저리게 잘 알겠는데


보낼 용기는 더 없다.


유라 여보…? 무슨 소리야, 그게. 알아듣게 말해!


승호 (뭔가를 결심한 눈빛)


 


집 몽타주 / 밤


 


- 안방 침대에 누워 잠든 유라의 이마에 키스하는 승호.


유라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 해달의 방에 들어와 해달 볼에도 뽀뽀하고 이불 잘 여며준다.


눈에 새기듯 한참을 지켜보는 승호.


 


비밀의 창고


 


비밀의 창고 문을 열어 깜깜한 어둠 속으로 들어온 승호.


옷 안주머니에서 천천히 꺼내는 것, 유라의 주방칼이다.


마치 의식을 치루듯 팔목 소매를 걷는 승호.


감은 두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F.O)


 


회사 회의실 / 낮


 


최부장과 희정, 호석 외 회의 중이다.


 


최부장 L홈쇼핑 간장게장 행사 말야. 이거 누가 갈 거야?


희정 그거 쇼 호스트 옆에서 1분 30초 멘트도 쳐야 하잖아요.


최고식품의 얼굴을 선보이는 건데… 원래 하기로 했던 한과장이


하는 게…


최부장 없으니까 하는 소리 아냐! 그러게 오늘 같은 날 누가 무단결근


하래? (호석 보며) 최대리가 할래?


호석 (기회다) 제가요? 정말… 해도 되려나…?


최부장 해! 해! 누구라도 해야지 별 수 있어?


희정 …


 


회사 사무실 / 낮


 


회의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일동들.


희정, 문득 빈 승호자리 보며 낮게 한숨쉬는데


뒤따라오던 호석, 방금 통화 마친 듯 핸드폰 내리며 외친다.


 


호석 (멍) 방금 연락 받았는데… 지금 한과장님이… 위독…하다는 데요?


최부장 (놀라 다시 벌떡 일어서며) 뭐어?!


희정 !!!


 


병원 응급실 / 낮


 


죽은 듯 누워있는 승호의 왼손에 붕대가 칭칭 감겨있다.


교통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이 참담한 얼굴로 승호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뛰어 들어오는 희정과 최부장, 호석…


 


희정 (믿을 수 없다, 승호에 매달려) 승호야… 승호야!!! 정신 차려봐!


눈 좀 떠보라구!!


최부장 어떻게 된 겁니까?


경찰 아시다시피 며칠전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어서…


신변을 비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심전도가 일직선을 그리며 삐익- 경고음을 내기 시작한다.


 


희정 (필사적으로 부둥켜안고) 안돼, 안돼!!! 이건 아니지!


이렇겐 안돼지!


호석 (말리며) 주대리님, 그만하세요!


 


우루루 몰려와 제세동기 작동하는 의료진들.


한 번, 두 번… 충격에 허공으로 튕기는 승호의 몸.


전압을 올려 한 번 더 강한 자극을 주자 심전도가 미세하게나마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한다.


 


병실 / 밤


 


고비는 넘겼으나 여전히 의식 없이 죽은 듯 누워있는 승호의 손을 꼭 붙잡고 곁을 지키는 희정.


 


희정 (기도하듯) 제발… 제발 살아줘.


승호 …


희정 난 널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어디선가 들었던 말… 새끼손가락이 가늘게 떨려오는 승호.


 


희정 (온 진심을 담아, 눈물 흘리며) 사랑해… 승호야. 사랑해!


 


그때 희정의 옆 벽에 새로운 형태의 나무문이 나타난다.


뒤늦게 알아차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는 희정!


 


비밀의 창고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희정.


회색 벽이 어둠을 가두고 있는… 전에 와본 적 있는 그 공간이다.


안을 둘러봐도 별다른 게 없자, 다시 나무문 손잡이를 돌려 밖으로 나가는데…


 


까페 앞 / 낮


 


어느새 까페 해와 달 앞에 서 있는 희정!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본인 옷차림과 주변을 살핀다.


얼른 핸드폰 꺼내 날짜 확인하는 희정.


일주일 전으로 돌아왔음을 알아차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까페 안을 들여다본다.


최부장, 호석, 유라가 담소를 나누며 웃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승호가 앉아있을만한 자리는 화분에 가려 승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복잡한 표정으로 까페를 향해 걸어가는 희정. (2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해맑게 웃고 있는 승호를 보고 우뚝 멈춰선다.


 


희정 (울컥) 승호야…!


 


마치 희정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까페 안에서 희정을 바라보는 승호.


애타는 희정의 심정 아는지 모르는지 승호는 무심히 고개 돌려버린다.


 


까페 안 / 낮


 


희정, 애써 태연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희정 (복잡함 숨기고 미소) …내가 좀 늦었지?


최부장 주대리 설마 주말에 불러냈다고 시위 하는 거 아니지?


희정 (어색, 시선 외면) 부장님두 차암…


호석 주대리님이 주말이라고 뭐 하는 게 있는 줄 아세요? 그냥 집에서 미드 다운 받아 보면서 맥주나 마신답니다.


희정 …


유라 (E)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유라가 김이 폴폴 오르는 해물찜 냄비를 가져온다.


해물찜과 유라를 번갈아보며 매우 행복해하는 승호를 의식하는 희정.


 


희정 참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자상한 남편에 토끼같은 딸까지…


유라 네 뭐…


해달 (도도하게) 우리 아빠 별로 안 자상한데.


일동 (으잉?하는 얼굴로 보는)


해달 우리 아빤 회사 일땜에 맨날 바빠요.


희정 해달이가… 좀 더 크면 분명 아빨 이해할 수 있을텐데… 시간이 참 야속하다, 그지…?


해달 (찌푸리며) 네?!


유라 (신경 쓰이는 듯 희정 보면) …


승호 (혼자 딴 생각에 잠겨 서서히 표정 굳어가고) …


희정 (어색한 분위기 감지하고) 전…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볼게요.


유라 (뒷테이블에서 소포장한 잼병 건네며) 이거. 직접 담근


생강청이랑 블루베리 잼이에요.


희정 …네.


 


희정 오피스텔 / 초저녁


 


냉장고 문을 여는 희정, 이미 일렬로 줄 세워져있는 많은 잼병들 사이, 오늘 받은 잼병을 더 채워 넣는다.


한숨 쉬며 냉장고 문을 닫는 희정.


냉장고 옆에 걸린 달력을 보며 무언가 결심하는 눈빛이다.


희정이 씻기 위해 욕실 안으로 걸어들어가며 희정의 오피스텔 내부가 보인다.


언제 찍었을지 모를... 승호와 함께 한 사진들이 액자가 되어 수십 개가 걸려있다.


 


회사 / 아침


 


출근해서 각자 업무 보고 있는 바쁘고 활기찬 아침의 사무실.


호석의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맹렬하게 울려댄다.


눈으론 서류 체크하며, 수화기를 들어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는 호석.


 


호석 (받으며) 최고식품 영업부 김호석입니다. (하고) 네… 무슨 일 있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할게요.


(끊고 최부장에게) 부장님. 한과장님 오늘 출근 못 한다는데요?


최부장 한과장이? 갑자기 왜?


 


호석, 본인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 하는데 책상 위에 놔둔 핸드폰이 지잉- 울린다.


메시지 확인하는 호석.


 


호석 (갸웃) 주대리님도… 못 온다는데요…? 오늘 무슨 날인가?


최부장 허, 뭐야 갑자기들?! 회사가 오고 싶을 때만 오는 놀이터야?


 


놀이공원 / 낮


 


- 쑤욱 떨어지는 바이킹에 탄 승호, 유라, 해달.


승호 두 팔 벌려 신나하고 유라와 해달은 무서워 비명 꺅 지른다.


 


- 바이킹 아래에서 그런 세 가족을 지켜보는 희정.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체크한다.


 


고등학교 / 밤


 


벤치에 앉아 애틋하게 대화 나누는 승호와 유라의 뒷모습이 보인다.


교문 근처에 숨어 그 둘을 아프게 바라보는 희정.


 


승호 첫눈에 보자마자 딱! 내 여자다 한 눈에


알아봤지. 그래서 당신 다니는 학원 알아내서 일부러 같은 반


신청하고… 당신 베이커리 클래스 다니는 거 알고 거기도 따라가고.


유라 (피식) 다 우연인 것처럼?


승호 / 알리고 싶었어. 말해주고 싶었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야.


 


유라와 승호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희정.


차마 더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다.


 


희정 …나도 같은 날 처음 대화 나눴어. 감정은 그보다 더 먼저야.


내가 먼저 사랑했어. 훨씬 더 오래됐다구…


 


흐르는 눈물을 닦는 희정, 더는 그 곳에 있고 싶지 않아 먼저 자리를 뜬다.


 


집 앞 / 밤


 


까페 해와 달 간판 불이 꺼진다.


잠시 후 2층 집 불도 모두 꺼진다.


까페 앞 전봇대 아래 서 있던 희정,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손목시계로 시간을 체크한다.


마음먹은 듯 천천히 까페 입구로 다가선다.


주변에 누가 없나 살핀 후 마치 본인 집처럼 비밀번호를 누르는 희정.


또로록- 잠금이 해제된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희정.


 


방 / 밤


 


- 해달이 공주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다.


살짝 방문을 열어 안을 확인하는 희정.


 


- 안방 방문도 열어본다. 유라가 잠들어있고 예상대로 승호는 침실에 없다.


 


홀 + 주방 /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주방 쪽을 보는 희정.


승호가 주방 바닥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고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잠시동안 흐느끼던 승호가 무슨 의식을 치루듯 천천히 왼팔 소매를 걷는다.


그의 오른 손엔 유라의 주방칼이 들려있다.


 


희정 (사색이 되는) 안돼!! 안돼, 승호야!!


 


갑작스런 희정의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는 승호의 충혈된 눈.


희정, 승호의 시선 응수하면서 천천히 승호를 향해 다가가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는다.


 


희정 그거… 이리 줘…


 


승호의 손에 들린 주방칼을 뺏으려고 하는 희정.


 


승호 (칼 쥔 손에 힘 꽉 주고) 너… 뭐야? 니가 여기 왜 있어!


희정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리 달라니까!


승호 (조용하지만 무섭게 내뱉는) …가.


희정 승호야...


승호 가라고, 좀!!!!


희정 …못 가.


승호 뭐?


희정 너 이렇게 두곤… 죽어도 못 가.


승호 (헛웃음) 너… 니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에 아프게 승호를 바라보던 희정, 다시 승호가 쥔 칼을 뺏으려든다.


 


희정 이것 좀 놓구 말해!


승호 저리 꺼지라고!!!


 


승호, 희정을 확 떠다민다.


희정이 아일랜드 식탁쪽으로 넘어지며 위에 놓여있던 양념통과 잼병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지며 깨진다.


와장창창!!


 


안방 / 밤


 


곤히 잠들어 있던 유라, 시끄러운 소리에 번쩍 눈을 뜬다.


문득 옆을 본다.


승호가 빠져 나간 흔적이 보이는 침구 상태.


 


주방 / 밤


 


희정이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조각을 손으로 집는 바람에 피가 흥건히 베어나온다.


 


승호 (막상 다치니 놀란) …괜찮…


희정 (피 뚝뚝 흘리며 버럭) 제발 정신 차려!! 내가 누구냐고?


승호 …희정아?


희정 나야. 내가 누군지 정말 모르겠어?!!


승호 (왜 저러나 싶고) …?


희정 나라구. 나 주희정이야…!!


승호 그래. 주희정…


희정 (O.L꾹 참았던 설움 폭발하는) 당신 와이프라구!!


 


시간이 멈춘 듯 움직임 없던 승호, 한참만에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승호 너... 뭐라 그랬니...?!


희정 (울먹이며) 나 당신 와이프라구... 왜 날 몰라 봐!!!


승호 정말 미쳤어?!


 


희정, 못 믿을 줄 알았다는 듯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희정과 턱시도 입은 승호의 사진 아래, 날짜가 보인다.


2020년 4월...


 


희정 너 지금 유라씨랑 해달이 안 보내주면… 2020년까지도 쭉 지옥생활 하게 될 거야. 그 모습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왔어.


이제라도 제발 맘 강하게 먹어!


승호 (패닉)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어!!!


유라 (E)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동시에 돌아보는 승호와 희정.


주방 입구에 충격받아 파르르 떨고 있는 유라가 서있다.


 


승호 유라야, 그런 거 아냐!


유라 방금 한 말! 대체 무슨 소리냐구!!


 


희정도 승호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데…


 


해달 (E) 엄마 아빠 싸워?


 


소란에 해달까지 계단에 서서 세 사람을 내려다본다.


 


승호 해달아…


 


더 못 견디겠는 유라, 도망치듯 가게를 뛰쳐 나가고…


 


해달 엄마!! 같이 가!! (뒤쫓는)


승호 유라야, 해달아!! (본인도 쫓아가려는데)


 


그런 승호의 팔목 꽉 붙들고 안 놔주는 희정.


 


승호 놔.


희정 지금 가면… 보지 말아야 할 걸 보게 될 거야.


승호 너 진짜 소름 돋게 왜 이래 정말!! 가. 꺼져!!


당장 내 앞에서 꺼지라구!!!


 


빵집 사거리 / 밤


 


유라, 파리한 안색으로 무작정 앞을 향해 뛰어가는데 뒤에서 해달이 부르는 목소리.


 


해달 엄마, 같이 가.


 


유라 돌아보면 잠옷 차림의 해달이 짝짝이 슬리퍼를 신고 나온 모습이다.


 


유라 (일부러 냉정히) 해달이 넌 빨리 집에 가 있어.


해달 싫어. 엄마 따라 갈래.


유라 빨리! 춥잖아! 감기 걸려. 집에 가 있어, 얼른!


해달 (싫다고 고개 저으면)


유라 (촉촉한 눈으로) 그럼… 엄마 따라 갈래?


해달 (망설임 없이) 따라 갈래.


 


유라, 더는 내치지 못하고 해달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 앞에 선다.


 


해달 엄마, 근데 우리 어디 가?


유라 …멀리. 아주 멀리 갈 거야.


 


마침내 파란 불로 바뀌는 신호등.


유라와 해달, 손 잡고 횡단보도 건너는데 저 멀리 미친 듯 질주해오는 덤프트럭 불빛이 보인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유라와 해달 둘 다 마취라도 된 듯 꼼짝않고 그 불빛을 홀린 듯 바라보는데…!


 


빵집 사거리 근처 / 밤


 


승호, 유라와 해달을 뒤쫓아 빵집 사거리 근처까지 왔다.


막 횡단보도가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서려하는데 그런 승호의 어깨를 잡는 희정.


그 순간 끼이이익- 하는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퍽!!! 어마어마한 충격음이 전달된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은 승호의 동공이 풀리는데…


 


희정 니가 이런다고… 바뀌지 않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구!


 


그대로 무릎이 꺾이는 승호.


그런 승호를 참담하게 내려다보는 희정.


멀리서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두 사람, 인력으로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절망의 분위기 속에 멈춰있다. (F.O)


 


거실 / 아침


 


감고 있는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경련을 하듯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번쩍 눈을 치켜뜨는 승호.


현실감각 돌아오지 않은 듯 얼떨떨하게 주변을 살펴보는데…


거실에 영정사진 두 개가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본인은 상복 차림이다.


 


실감나는 꿈이라도 꾼 듯…


혹은 아주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


매우 낯설게 상황을 인지하는 승호.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 벨이 울린다. 주희정이다.


혼란스러움에 받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핸드폰에 뜬 날짜가 눈에 보인다.


2017년 1월 1일이다.


1층에서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까페 입구 / 아침


 


승호, 부스스한 몰골로 까페 현관문을 열어주면 중년의 부동산남과 새 가족(부모와 어린 아들)이 와있다.


 


승호 누구세요…?


부동산 집 내놓으셨죠? 집 보러 왔습니다.


 


집 몽타주 / 아침


 


- 안방을 둘러보는 부부.


 


- 해달의 침대 위로 올라가 콩콩 뛰어보는 어린 아들.


 


- 부동산이 까페를 소개한다.


 


부동산 까페 하시면서 살림집도 같이 되어 있구요.


주택가 초입이라 목이 좋아 장사도 잘 됩니다.


저… 사장님?


승호 (부르는지 모르고 멍하게 서있는) …


부동산 사장님?


승호 …예?


부동산 집 구매하시는 분께 수제 잼 만드는 법 전수 가능하신지…


보통 가게를 넘길 땐 레시피도 같이 넘기거든요.


승호 (가슴 한 쪽이 뻥 뚫린 듯) … 그렇겐 못 하겠는데요.


일동 (쌔한) …?


부동산 (분위기 전환 차) 주방도 보시죠. 넓고 창고도 따로 있습니다.


 


일동, 승호만 홀에 남겨두고 일제히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부동산 (안에서 묻는 E) 사장님? 창고가 어딨나요?


 


주방 / 아침


 


무감각하게 땅만 보고 안으로 들어오던 승호, 비밀의 창고가 있던 자리로 간다.


 


승호 (보지도 않고) …여기. 조명을 달아야 할 거에요.


부동산 …예?


 


그제야 고개 들어 비밀의 창고 문을 마주하고 선 승호.


문이 사라져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벽 여기저기를 더듬어보는 승호.


이를 지켜보는 새주인들, 꺼림칙하다는 듯 고개 절레절레 젓는다.


 


승호 (귀신에 홀린 기분) !!


 


집. 정리 몽타주 / 낮


 


- 우두커니 서서 영정사진을 오래토록 바라보는 승호.


그것을 꺼내 보자기에 곱게 싼다.


보자기에 싼 영정사진을 상자에 넣어 뚜껑을 닫는 승호.


메마른 눈물이 한 줄기 뚝 떨어진다.


 


- 묵을 때를 벗겨내듯 샤워를 하는 승호.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낯설다는 듯 바라보다가, 깔끔하게 면도도 한다.


 


경찰서 / 낮


 


교통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을 찾아온 승호.


 


경찰 (알아보고) 아… 어쩐 일이세요? 앉으세요.


승호 (앉으며, 겨우 입 떼는) …교통사고 형사 합의… 해주려구요.


경찰 갑자기 마음 바뀐 이유라도…?


승호 (너무나 긴 얘기, 초월한 듯 먼 곳 바라보는) …


 


빵집 / 낮


 


케이크 진열대에 진열 된 백설공주 케이크를 바라보는 승호.


잠시 후, 누군가가 승호 앞에 선다.


상태처가 10년은 늙은 듯한 몰골로 나타난다.


 


상태처 (앉지도 못하고 절절 메며) 만나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승호 …앉으세요.


상태처 (앉아서도 연신 고개 주억거리며) 정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 누구보다 알아요. 그치만… (물기 묻은) 그 사람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 안한 딸도 있고…


승호 압니다.


상태처 (어떻게? 하는 눈으로 보다가 주머니 뒤적이며) …정말로 염치없지만 이거…


 


귀퉁이가 헤져 낡아빠진 통장을 두 손으로 내미는 상태처.


승호, 통장을 열어본다.


매달 5만원… 어떤 달은 10만원… 그렇게 야금야금 모은 돈이 700만 원 가량 들어있다.


 


상태처 …그동안 애 아빠랑 저 열심히 모은 저축이에요. 더 드리고 싶어도 저희 형편이 그거밖에…


승호 (통장 덮는다)


상태처 (승호 두 손 맞잡으며) 정말 턱도 없는 거 아는데… 천천히 갚을게요.


승호 (황급히 손 빼며) …이런 거 받으려고 한 거 아닙니다.


상태처 그래도 받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그리고…


(진심, 눈물나는) 너무 감사합니다…


 


통장 두고 그대로 일어서는 승호.


 


구치소 면회실 / 낮


 


수의 입은 박상태가 나온다.


면목없는 듯 고개 푹 숙이는 그의 가슴팍 수감번호, 1231이다.


 


상태 (유구무언으로 땅만 보고 있으면) …


승호 당신 용서하러 온 거 아닙니다.


상태 …네.


승호 그냥 당신 잊고 살려고… 당신과 당신이랑 있었던 일 모두 지우려고… 안 그럼 내가 살 수가 없어서… 그래서마지막으로 보러 온 거에요.


상태 …네.


승호 술 끊으세요.


상태 (울컥) …네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상태, 본인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 잠시 그 모습 보다가 먼저 일어서는 승호.


 


빵집 / 초저녁


 


백설공주 케이크가 진열대에서 빠진다.


케익 상자에 곱게 포장되는 백설공주 케이크.


 


상태네 / 초저녁


 


수린, 혼자 거실에 엎드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상태, 상태처, 수린이 바닷가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보는 그림이다.


그때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관 쪽을 돌아보는 수린.


 


김밥가게 / 초저녁


 


앞치마 푸르고 주방 쪽에다 인사하는 상태처.


 


상태처 저 퇴근할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주방 김밥 두 줄 챙겨 가. 애 먹여.


상태처 …괜찮은데 …미안해서요. (하고) …고맙습니다.


 


상태처, 미리 포장해둔 김밥 두 줄을 챙겨드는데 가게 앞으로 승호인 듯 승호와 닮은 듯한 남자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상태처 …?


 


상태네 현관 / 초저녁


 


김밥 두 줄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상태처, 현관에 예쁜 케익상자가 놓여있는 걸 본다.


그때 수린이 뛰쳐나와 상태처 품에 안긴다.


 


수린 엄마! (냄새 맡으며 실망) …오늘 저녁도 김밥이야?


상태처 으응… 왜, 싫어?


수린 맨날 똑같은 것만 먹으니… (그제야 케익 상자 발견하고는)


어? 케익상자다!!


상태처 (사방 살피며) 우리 꺼 아닌 거 같은데…


수린 (금세 들뜬) 아냐! 수린이 꺼 맞아! 봐봐, 백설공주잖아! 아빠가 해 뜨는 거 보러 못 가는 대신, 수린이가 좋아하는 케이크 보내줬나봐!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처의 머리위로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는다.


동시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상태처, 수린.


흰 눈발이 날리며 세상을 덮고 있다. 




회사 / 아침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틈, 느릿느릿 쭈뼛쭈뼛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승호.


승호가 들어오자 최부장과 호석이 조금은 어색하게, 어렵게 승호를 맞이한다.


 


최부장 한과장, 어서 와. 정말 고생했어.


승호 …늦어서 죄송합니다.


호석 …괜찮으세요?


승호 (뭐라 해야 할지) …어.


최부장 한과장 없는 동안 한과장 업무를 김대리가 다 했어.


김대리, 인수인계 할 건 하고 알려줘야 할 거 알려주고.


호석 네.


최부장 그동안 밀린 업무파악 하는데도 시간 걸릴 거야.


마음 느긋하게 먹으라고.


승호 (낯설게 사무실 둘러본다)


최부장 이따 L마트 강팀장 올 거니까 회의 준비 좀 부탁해.


(막상 시켜놓고 불편한) …그 정돈 할 수 있지?


승호 그럼요.


 


승호, 본인 자리에 가방 내려놓는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희정의 시선 느낀다.


그 시선 외면하는 승호, 도망치듯 회의실로 향한다.


 


회의실 / 아침


 


각 자리마다 생수병과 회의 자료를 세팅하는 승호.


생수병 하나가 모자란다.


 


탕비실 / 아침


 


냉장고 문을 열어 새 생수병을 하나 꺼낸 후 다시 문을 닫는 승호.


문득 뭔가를 본 듯 다시 문을 열어본다.


안에 반쯤 비워진 잼병이 들어있다.


승호의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까페 해와 달 로고…


예상치 못하게 울컥, 눈물이 솟는 승호.


 


그런 승호의 옆으로 비밀의 창고 문이 다시 생겨난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문 앞에 다가가는 승호.


손잡이에 손을 올리려는데 안으로 들어오는 희정.


 


희정 …괜찮아?


승호 (손 내리고 비스듬히 돌아서서 눈 맞추지 않고) …어.


 


희정, 승호 뒤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려 조심히 토닥여준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다시 탕비실을 나가는 희정.


혼자 남은 승호, 희정의 손이 닿았던 어깨에 본인 손을 올려본다.


마치 희정의 손 온기를 가두려는 듯이.


다시 고개 돌리는 승호, 비밀의 창고 문이 있던 자리를 본다.


하지만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곳엔 그저 흰 벽이 있을 뿐이다.


 


복도 / 아침


 


생수병을 들고 회의실을 향해 걸어가는 승호.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또각또각…계속해서 전진하는 승호의 뒷모습 부감으로 보이며 엔딩. 




  <당선소감>


   난, 글 공장의 직장인… 확신하고 의심하며 정진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던 오후에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 당선을 알리는 낭랑한 목소리를 현실감 없이 듣고 있는데 제 심장 뛰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릴 정도로 요동치며 마음껏 기뻐하더군요. 제 자각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실감이 나면서 여러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커피를 벗 삼으면서 노트북과 씨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작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썼습니다. 글 공장에 다니는 직장인처럼 오전에 시작해 오후에는 끝내는 일상을 반복하며 하루는 내 글을 확신하고 또 다음 날은 내 글을 의심하며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은 글을 혼자 그렇게 열심히 쓸까?’라고 자문하곤 했었는데, 당선 전화를 받은 지금은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써라”라고 누군가 말해준 듯해 행복하고 설렙니다. 

 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무조건적인 신뢰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과 아들, 존경하는 부모님, 가족께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같은 고민을 안고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작품을 쓰고 있을 글동무와 늘 의지가 되는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글공부를 하면서 좋은 스승님들께 많은 가르침 받았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만 마음껏 기뻐하고 내일부턴 다시 글 공장의 직장인이 되어 매일매일 성실하게 글을 써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83년 경남 양산 출생.

  ●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창작반 수료.


 

  <심사평>


  익숙한 소재의 ‘시간여행’… 무리한 꾸밈 없어 안정 


  올해 시나리오 응모작은 72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10편 중에서 당선작을 내는 일은 쉽고도 어려웠다. 다시 말해, 당선작과 각축을 벌일 만한 작품이 없었고, 또한 당선작을 내면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루었던 시간 여행을 소재로 삼은 ‘비밀의 창고’는 상황 설정이 새롭지 않아서 기시감도 들었다. 하지만 과거를 바꿔서 현재를 다시 쟁취한다는 기존의 익숙한 전개보다는 과거를 놓아주고 새로운 미래를 피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소박한 차별화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처음 만난 인물들이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극을 끌어가는 ‘나이스 크리스마스’는 연극적인 독특함보다는 산만함이 더해 점수를 잃었다. 제주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해녀들의 삶을 보듬은 ‘숨비소리’는 착하고 건강한 시나리오지만, 주인공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집착해 작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비밀의 창고’는 결선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안정된 글 솜씨를 보였고, 무리해서 꾸미지 않은 덕에 작가의 차분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를 다룬 탓에 점수를 크게 얻지 못했기에,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는 심정은 칭찬이라기보다는 격려에 가까움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그만큼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이 크다.

 

심사위원 : 이정향, 주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