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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호통버스 / 신수나

 

  “잘 갔다 와.” 

  엄마가 버스에 내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앞사람을 따라 단말기에 버스카드를 댔다. ‘삑’ 하는 소리가 높고 짧게 났다. 엄마처럼 단호하고 냉정하다.

  엄마가 버스에 날 태우는 순간, 할머니를 보러 갈 꿈은 날아갔다. 우리 집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에 있다. 그런데도 엄마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명종합학원에 날 등록시켰다. 매일 엄마가 차로 학원에 데려다준다. 날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시내에서 볼일을 본다. 학원만 갔다 오면 하루해가 꼴깍 넘어간다. 하지만 견딜만하다. 엄마는 시내에 가면 피자나 햄버거 같은 거로 날 달래주니까. 

  엄마랑 막 집을 나서는데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가 사라졌다는 거다. 학원엔 다 갔다. 할머니를 찾으러 가는 게 먼저다. 내 입은 표정관리 중인데 주먹이 ‘앗싸’를 외쳤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버스 정류장으로 끌었다.

  “나, 버스 한 번도 안 타봤는데?”

  이럴 때 자신감을 보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눈과 입꼬리를 최대한 늘어뜨리고 촉촉한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본다. 그런데 괜한 연극이 아니다. 혼자 버스 타는 건 정말, 자신 없다. 

  “이번 기회에 한 번 타 봐. 4학년이면 혼자 버스 정도 탈 수 있을 나이야.”

  엄마는 단칼에 잘랐다. 초등 4학년이면 어쩌고 하는 학습지광고는 들어봤어도, 4학년이면 혼자 버스 탈 나이라는 말은 또 처음이다.

  엄마는 재빨리 버스 앱을 내 핸드폰에 깔았다. 버스 정류장 옆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도 한 장 샀다. 난 맨밥을 삼키는 것처럼 엄마의 설명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엄마, 나도 할머니 찾으러 갈래. 지금 학원이 문제야?”

  난 팔을 크게 내저으며 정류장을 나오려 했다. 엄마가 내 팔을 낚아챘다.

  “넌 학원가는 게 도와주는 거야. 괜히 거치적거리기만 하지. 엄만 경찰서로, 길거리로, 찾아봐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이러다 나까지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엄마를 올려다봤다. 

  “네가 어린애야? 스스로 할 때도 됐잖아. 4학년이나 된 녀석이. 집 주소도 알겠다. 엄마 아빠 전화번호도 다 아는 데 뭐가 문제니?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

  역시나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닌 ‘4학년’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4학년이면 스스로 알아서 할 나이? 그럼 학원을 가고 안 가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한창 생각 중인데, 엄마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정신 차리고 학원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엄마는 열심히 할머니 찾을 테니.”

  이럴 때면 할머니가 정말 그립다. 물론 아프기 전의 할머니 말이다. 엄마가 공부 타령을 하면, 할머니는 “애들은 노는 게 공부”라며 호통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호통은커녕 “할머니!”하고 불러도 못 알아본다. 더 이상 날 ‘통통이’라고도 부르지도 않는다. 내가 어릴 때 하도 통통 뛰어다닌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었다. 애가 도대체 가만있지를 않는다고 엄마는 불만이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린애가 가만있으면 어디 아픈 거라며, 그게 다 건강한 증거라며 또 호통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할머니는 나를 ‘통통이’라고 불렀다. 그땐 그게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지금 할머니가 날 통통아, 라고 한번 불러만 준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할머닌 도대체 어딜 가신 걸까.

  버스는 내 속도 모르고 신나게 달렸다. 한참 달리던 버스가 멈춘 곳은 재래시장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무슨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떠들썩했다. 할머니들은 크고 작은 보따리들을 버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언젠가 할머니 손에 끌려 시장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 속에 우리 할머니도 있다면, 나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느닷없는 호통 소리가 들렸다. 

  “다 산 노인네처럼 어린 게 왜 그렇게 축 처져 있어. 통통아! 기운 차려! ”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거짓말처럼 진짜 우리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다가갈 틈도 없이 할머니는 어느새 내 앞으로 와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할머니가 날 알아보고, 통통이라고 불렀다. 

  “진짜 우리 할머니 맞아요?”

  “할미면 그냥 할미지, 진짜 할미, 가짜 할미가 있더냐?”

  그런데 할머니 얼굴을 보니 어딘가 달라 보인다. 생기 있다고나 할까? 참, 이럴 때가 아니다.

  “할머니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다들 할머니 찾고 난리 났어요, 얼른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핸드폰을 든 내 손을 잡았다. 

  “걱정 마라. 할미 잘 있는 거, 다들 알고 있어” 

  “정말요?”

  “근데 너 어디 가기에 그렇게 힘이 하나도 없냐?”

  “학원요.”

  “전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더니. 안 되겠다. 할머니랑 같이 가야겠다.”

  “어디요?”

  “놀 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많은데.”

  “아, 놀이동산요?” 

  “놀이동산보다 더 좋은데.”

  그때 버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 지나왔던 재래시장 이름이 또 나오는 게 아닌가? 

  ‘아까 잘못 들었나?’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할머니가 또 호통쳤다. 

  “어린 게 뭔 생각이 그리 많어. 어서 내려!”

  버스에서 할머니는 냉큼 뛰어내렸다. 기억이 돌아오니 할머니의 건강도 돌아왔나 보다. 할머니는 약을 사야 한다며 시장 입구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약국 안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로 가득했다. 모두 시외버스터미널처럼 여러 줄로 늘어선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약을 사기보다는 약국 앞 정류장에 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거라며, 할머니는 눈을 찡긋했다. 약국에서 따듯한 차랑 음료수를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노인들로 와글와글한 약국 안은 마치 초등학교 교실 같았다. 

  할머니는 물약을 하나 사서 마셨다, 그리고는 약국 안을 한 바퀴 돌며 오래전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노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물약이 젊어지는 샘물이라도 되는 걸까. 약국 문을 밀고 나가는 할머니의 새우등이 쫙 펴졌다. 팔을 앞뒤로 활달하게 흔들며 할머니는 성큼성큼 앞서갔다. 

  널찍하고 잘 정돈된 마트와는 달리 시장은 복작복작했다. 작은 가게들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늘어서 있었다. 가게 안은 물론 거리로도 과일이며, 채소가 쏟아질 것처럼 진열돼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은 골목과 골목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할머니를 따라 골목을 걷다 보면 그곳이 그곳 같아 보였다. 무슨 미로 속처럼. 파는 물건만 달랐다. 생선만 파는 거리가 쭉 나오다가, 방향을 틀면 또 옷만 파는 가게가 쭉 늘어서 있는 식이었다. 난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꼭 잡았다. 할머니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옷을 고르라고 하셨다. 난 엄마라면 촌스럽다고 절대 안 사주는 히어로 캐릭터 티셔츠를 골라 들었다. 할머니가 내 양어깨를 툭툭 쳤다. “오, 정말 멋진데!.”

  어느새 난 히어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유명 브랜드라며 엄마가 억지로 입힌 범생이 재킷은 온데간데없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싶었는데, 발에는 바퀴 달린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엄마에게 졸랐지만, 위험하다며 사주지 않던 신발이었다. 난 회전목마를 탈 때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데 달라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장 골목을 돌아 나올 때마다 할머니도 달라졌다. 허리가 펴져서 그런지 키도 커지고 점점 더 젊어졌다. 나중에는 하는 행동도 달라졌다.

  “통통아, 저것 봐라. 네가 좋아하는 뻥튀기구나.”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좋아하는 건데요.”

  할머니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두 손으로 뻥튀기를 와작와작 입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엿이나 강정 같은 것에 거리낌 없이 손을 뻗쳤다. 과일가게에서도 사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먹었다. 그러면서 내 입에도 막 넣어줬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자 할머니는 냅다 줄행랑을 쳤다. 할머니가 뛰니 나도 덩달아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왠지 할머니는 술래잡기라도 하듯 신난 표정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가게 주인들은 못 본 건지 못 본 척하는 건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할머니가 그릇이며, 냄비며 온갖 물건을 파는 잡화점 골목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머니가 길은 잃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려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할머니가 카트를 밀고 나타났다. 내가 다가갈 틈도 없이 할머니는 카트를 씽씽 몰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는 보이는 대로 물건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난 할머니 이상한 병에 걸린 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이라도 엄마한테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이상한 건 가게 주인들 태도였다. 할머니의 가트가 다닐 수 있도록 오히려 양쪽으로 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러더니 나중엔 카트를 향해 마구 물건을 던져 주는 게 아닌가. 카트가 무슨 골대라도 되는 것처럼. 고등어가 날아가고 배추가 공중을 떠다녔다. 신기한 건 그 많은 물건을 담아도 카트는 채워지지 않았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나도 보이는 대로 카트를 향해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호박을 통째로 집어넣고, 완구점에선 로봇이며 인형을 집어 마구 던져 넣었다. 더 넣을만한 물건이 없었는지, 할머니는 훌쩍 카트에 올라탔다. 카트는 모터가 달린 것처럼 저절로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만큼 젊어진 할머니가 날 훌쩍 들어 올려 가트에 태웠다. 가트는 시장 골목을 몇 바퀴나 뺑뺑이 치기 시작했다. 어떤 놀이기구보다 빠르고 신났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시장 끝에 있는 골목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주변은 틀림없는 시장이었는데 점점 단단한 흰색 벽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밝은 빛이 번쩍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천정에 주렁주렁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무슨 열매인가 했는데, 손잡이였다. 그러고 보니 창문 아래 의자들이 일렬로 놓여있고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버스 안이었다. 할머니도 가트도 흔적 없이 사라진 뒤였다. 나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숨을 헐떡였다.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너 어디야?”

  “엄마, 나랑 할머니랑……”

  “할머닌 벌써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계셔.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엄청 피곤하신가 보다. 근데 넌 도대체 어디야? 학원도 안 왔다고 하고.”

  그때였다.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을 알리는 버스 안내방송이 들렸다. 전화기 너머로도 그 소리가 들렸는지, 엄마가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가 버스에서 잠이 들어 꿈이라도 꾼 걸까? 근데 어떻게 도로 집 앞이야?”

  버스정류장에 날 내려놓은 버스는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호통 소리 같은 경적을 울리며.





  <당선소감>


   동화의 즐거움 많은 아이와 나누고 싶어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으로 동화와 인연을 시작했습니다. 내 아이에게 좋은 동화를 읽어주고 싶다는 의욕에 먼저 동화 읽는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10여 년 가까이 지역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세상에 이런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구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감히 이야기를 써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요. 어느 날 남편이 묻더군요. 동화 모임을 하면서 왜 동화를 쓰지 않느냐고. 그때까지도, 난 그냥 동화 읽는 사람이지, 하면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까 뒤늦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 아이들과 누리던 동화의 즐거움을 이제는 더 많은 아이와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로요. 

  언젠가 한 강연회에서 어느 동화작가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동화작가는 동심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라 동심을 무한히 추구하는 사람이다”

  제가 오랫동안 간직하고 되뇌던 말입니다. 내가 과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늘 반신반의 했는데, 당선을 계기로 용기를 갖게 됩니다. 많이 부족한 제 글을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제가 동화를 꾸준히 쓸 수 있도록 도와준 동화창작 모임 ‘그 아이’를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영원히 함께 성장하고 같이 가고 싶습니다. 어린아이 달래듯 격려와 질책으로 가르침 주신 정임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충북 청주 출생.

  ● 충북대 철학과 졸업. 

  ● 2012 장생포 고래 창작동화 최우수상 수상.

  ● 2016 충성대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심사평>


  상징적 주제가 일으키는 감응력 뛰어나


  지난해보다 대폭 양적 증가를 보인 동화 응모 경향을 보며 내심 기대를 했지만 수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주로 보내는 편지’는 서정적 서간문 형식의 동화다. 별을 좋아하다 사경을 헤매는 삼촌의 깨어남을 간전함으로 소망하는 작품이다. 동화적 틀을 세워 전개했더라면 아쉬움을 보였다. ‘마법 신발을 신어 봐’는 신발을 일인칭 화자로 설정한 특색있는 작품이다. 문장은 안정되어 있으나 평이한 구성 혹은 도식적인 몇몇 장면이 거슬렸다. 

  ‘삼동이네 파란색 리본 곰인형’은 아파트 단지의 갈등과 대립을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를 이분법적 대립으로 그려낸 시각이 자꾸 걸렸다. 동화의 본질이 통합과 위로와 희망이란 점에서 그렇다.

  ‘호통버스’는 간결한 문체, 자연스런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할머니의 실종 사건은 노인 문제를, 학원가로 종일 뛰어다니는 주인공의 심리적 억압은 아동문제를 상기시킨다. 이중주제의식의 효과를 전략화한 작품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소 평이한 구성이나 노인 실종 이야기가 새로운 소재가 아니지만 ‘호통버스’라는 상징적 주제가 일으키는 감응력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되어 당선작으로 낙점하게 되었다.

 

심사위원 : 윤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