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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당신의 당신 / 문혜연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

새의 밑면만 지나갑니다

깊이 가라앉은 바닥, 그곳에서 우리는

떠오를 수 없는 낮은 음, 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

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

안녕, 당신, 안녕

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받아요

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나봅니다




  <당선소감>


   "몰라서 아름답던 순간들… 사랑을 담아 詩 쓸 것"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을 두 번 찾아가고, 두 번 실패했습니다. 첫 번째는 내부를, 두 번째는 외부를 수리 중이었습니다. 늘 어디를 허물고 있는 이상의 집을 보며, 어쩌면 세 번째 방문에도 이곳은 제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작은 돌이 주는 아픔을,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감사히 쓰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모를 때 사랑이 생겨난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당신의 모든 것을 알 때 당신은 제 것이 아닙니다. 몰라서 아름답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사랑을 담아 시를 쓰겠습니다.

  딸의 느린 발걸음을 쓰다듬으며 비춰 주시는, 가장 큰 나의 해와 달, 엄마 아빠, 감사해요. 동생 해정, 너는 나의 큰 자랑이야. 이서화씨, 당신의 글에 대한 열정이 늘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시의 뼈와 살, 그 사이를 흐르는 피의 뜨거움을 알려주신 최승호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시를 읽는 눈이 얼마나 깊고 넓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신 유성호 교수님, 처음 제 글을 보여 드리던 떨림을 다시 느낍니다. 부서지고 또 부서지면서도 나눠주신 온기로 다시 쓰겠습니다.




  ● 1992년 제주 출생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동 대학원 석사 졸업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

 

  <심사평>


  "새와 인간의 관계 통해 이 시대 사는 '우리'를 성찰


  시가 운문의 세계인데도 산문적 진술의 세계를 현란하게 드러낸 시가 많았다. 행갈이와 연 구분이 무시된 산문 형태 시를 많이 투고하는 현상은 한국 시의 미래를 위해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내적 운율과 침묵으로 함축되는 시의 본질적 부분이 신인들의 시에서 도외시되는 까닭은 산문성에 기울어진 한국 시단의 유행을 비판 없이 쉽게 따른 탓이다. 산문 시대일수록 시인이라면 시의 고유한 본질을 지켜나가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시를 왜 써야 하는지 그 필연성마저 결여돼 사유의 얄팍함이 엿보인다. 시의 본문은 물론이고 제목에까지 외래어나 외국어를 남발하는 점은 그 필연성의 결핍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최종심까지 거론된 시는 '당신의 당신' '만년설' '사랑하는 언니' 세 편이다. '사랑하는 언니'는 어미가 통일돼 있지 않은 데다 지나치게 연 구분이 많아 전체적으로 발랄하지만 다소 가벼워 보인다는 점, '만년설'은 오랜 습작 과정이 느껴질 정도로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반면 구태의연함으로써 신선미가 부족하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당신의 당신'은 시적 감각이 신선하고 섬세하며 사유의 개성이 깊어 신뢰가 갔다. 새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내면적 삶을 성찰하게 하는 높이가 돋보였다. 당선자는 더욱 노력함으로써 한국 시의 미래가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문정희, 최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