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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 노혜진

 

예순두 살에 뽀얀 속살입니다 시야각으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 벗고 만날 수 있고 온몸을 훑고도 괜찮아요 엄마는 때수건과 우유를 손에 들고 옵니다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두꺼운 발톱과 무좀을 병이라 부릅니다 탕의 수증기는 소리와 이야기를 불러 모읍니다 “그 발톱으로 네일 숍에 왔대” 동료들이 웃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엄마 얘기만 합니다 아빠 얘기만 하는 동료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없니?” 질문은 되돌려집니다 알고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동료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차 하면서 재채기처럼 웃었습니다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만큼 웃음거리들이 쉽게 배어나오는 회사입니다 제가 오늘 재채기를 했던가요


바디 클렌저에서 수영장 냄새가 납니다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 떠오릅니다 카페 화장실 앞에서 스콘을 먹어야 했어요 열고 닫히는 문은 섬이었다가 여름이다가 코끼리였습니다 삼십 분 동안 읽었는데요 시 한 편을 오래 보았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책을 동료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쓰는 몰입을 알 리 없어요 동료가 농담을 던졌습니다 “등단을 못 하겠구나” 엉뚱한 발언을 잘 하는 저의 별명은 소설가입니다 “시를 씁니다” 말하지 않아요 동료들은 알고도 모르는 것일까요


“친구들은 어때요?” 하면 엄마가 떠오릅니다 저의 벗입니다 같은 원 안의 피자를 먹고 다른 날 같은 구두를 신습니다 즐거운 시간은 떼어 두었다가 서로에게 선물합니다 기억이 풍성해지면 쪼그라드는 현재들 진짜 벗들은 기억의 원 안에 있어요


항공사가 부도 직전이라는 소문이 돕니다 엄마는 키위를 반으로 자릅니다 포도를 씻고 귤을 깝니다 키위의 씨만큼 늘어나는 의혹들 과일 열한 통을 들고 출근합니다 회사일까 집단일까 궁금합니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과일은 엄마에게 달아 두는 외상입니다


조금만 당돌해집시다 구호가 필요합니다 동료는 잘난 척을 하다 동료들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저도 잘난 척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는 말고 조금만요


늙어도 우리는 무섭습니다 엄마는 겁보입니다 매일 밤이 오다니 엄마는 차를 몰고 저를 데리러 옵니다 보조석의 방석은 꽃무늬입니다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



  <당선소감>


   "시가 드디어 말을 걸어 오네요"


  "눈이 내렸습니다. 택배 상자를 여니 작은 담요 두 개에 싸인 프린트기가 있습니다. 상자 몇 개로 구성된 저의 이삿짐, 그 마지막 상자가 도착했나 봅니다. 급히 요청한 것은 아니니 보내는 사람 자유의 선택이었을, 덤인 것 같아요. 이 프린트기로 출력을 했고 걸었고 무인우편창구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늘을 보존하고 싶습니다. ‘잠은 어떻게 자는 것이었더라?’ 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김소연 선생님을 만나 시를 쓰던 시간 너무 소중합니다. 이만교 선생님을 만났고 시를 알게 된 그 여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곳이 그리울 때면 이 기쁜 소식을 알리는 상상을 했습니다. 정말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 시를 다정하게 토닥여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국일보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시를 말하고 시로 놀던 문우들 즐거웠어요. 또 만나요.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친구들, 지인들 보고 싶었습니다. 친척과 특히 따뜻한 이모 감사해요. 쓰는 것에 대해 가끔 간결한 말로 지지를 보내준 동생아 고마워. 순수했던 아빠에게는 언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겠습니다. 독특한 벗, 엄마에게 흘러넘치는 사랑을 드립니다.

  지금쯤 1월 1일이 제게 와 주어 고맙습니다. 주로 일하고 남은 시간을 엮어 읽고 쓰고 휴식하던 시간들. 빠른 결과를 바라기도 하는 세상에서 아주 천천히 쌓여 가는 문학의 여정에 대한 이해를 바라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묵묵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썼습니다. 이상하게 끝날 것만 같던 저의 이상한 시간들이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말 못하는 시가 수년 동안 침묵을 견디다 겨우 저에게 한 문장을 건넨 것 같은 사건입니다. 시도 그간 저에게 무척이나 말 걸고 싶었던 것 맞죠? 영원히 읽으면서 영원히 쓰고 싶습니다."



  ● 1977년 광주 출생 
  ● 세종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심사평>


  "모두가 충분히 시라고 부를 만한 진짜 시"


  심사위원의 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않은 작품은 다음 3편과 같다. 노혜진씨의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김겨울씨의 ‘형벌’, 정유소씨의 ‘외나무다리’. 정유소씨의 작품은 일상의 균열을 끝내 잡아내는 관찰의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 전반에서 보이는 단단한 진술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지점에서는 예상된 시의 흐름을 살짝 비틀어보는 엉뚱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김겨울씨의 작품은 상상의 영역에서 독특한 영토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에 비해 지나치게 평면적인 제목은 시를 보는 이의 자세조차 느슨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목도 시에 포함된다. 아주 유력한 방식으로.

  당선의 영예는 노혜진씨에게 돌아갔다. 신춘문예 발표 시즌마다 들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노혜진의 작품은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요즘 시가 시답지 않게 길다, 최근 시는 언어를 정제하지 못한다, 산문시의 경향이 한국시를 망친다 등등.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인가? 노혜진의 시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가령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라는 다소 소설적인 문장은 시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에 비해 길게 나열된 ‘엄마’의 특정되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그 의미가 넓어진다. 그렇게 우아해진 부분 외 나머지 것들을 더 궁금하게 한다. 나는 이런 전개를 시적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이 없다. 경쾌한 발성, 산문 형식을 지탱하는 관점의 전환과 독특한 리듬감, 페이지 전반을 아우르는 페이소스… 이 모두가 충분히 이미 시라고 부를 만했다. 요즈음 시가 아니고, 진짜 시.

  이번 심사는 예심과 본심이 함께 진행되었다. 시인에게는 전부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취향을 근거로, 다른 이의 취향을 설득하는 작업을 더욱 치밀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시와 시, 시인과 시인이 서로에게 육박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하여 새로이 등장한 노혜진 시인의 손을 잡고, ‘시라는 것’을 두고 벌이는 유구한 전쟁의 복판을 함께 걸어가도 되겠다 싶다. 앞으로 그가 이룰 겸허한 돌파를 응원한다.

 

심사위원 : 황인숙, 김민정,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