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명왕성 유일 전파사 / 김향숙

 

모든 가전家電엔 명왕성冥王星 하나 두둥실 들어있다고 했다 목숨 다하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을 못하는 것이 제명이라고, 별명이 백과사전인 그 사내는 모르는 게 없다 이 빛나는 지구도 저 없으면 돌지 않는다고 사십 년 기름때 묻은 공구함을 가리킨다 공구들의 명칭마다엔 알파벳 하나씩 휘어지고 벗겨진 곳곳에 일본식 표현이 살짝 묻어있다


오일마다 망가진 것들이 몰려드는 난전亂廛, 배운 적 없는 어깨너머의 기술로 만지작거리면 고장 난 밥솥이 빨간 눈을 켜고, 커피포트 녹음기 선풍기와 마음 고장 심하게 난 이웃까지 불러 앉혀놓고 막걸리 한 잔 따라주면서 다독다독 고친다


십자와 일자,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있으면 퇴출당한 명왕성도 거뜬히 고친다고 큰소리치는 명왕성 유일 전파사 그 사내


봄날이어서 수리 마친 가전들


저러다 파란 이파리들 막 돋아날까 걱정스러운데


고친 카세트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


흥겨운 듯 절절한 트로트가 그 뒤를 따라간다




  <당선소감>

  "시 쓰기는 ‘나의 색’ 찾아가는 길"


  출발이라는 설렘의 빛깔은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색입니다.

  시 쓰기는 나의 색을 찾아가는 방법이어서 무채색인 나에게 색을 입히는 일이기에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듯 그렇게 시를 만나며 지냈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너무 낡아서 희망이라는 말을 주저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라지는 직업이 새로 생기는 직업의 배가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유한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숙련의 시간 또한 사라진다는 말이 되겠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저의 직업은 희망을 희망하는 일입니다. 그 희망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기쁨이 어디서 생겨났겠습니까. 아직 숙련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 쓰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가겠습니다. 시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말이죠.

  지금쯤 곶감에 흰 분粉이 내리고 있을 고향 상주에서는 구순의 낡고 낡은 엄마가 사람들과 정겹게 둘러앉아 은하계에서 퇴출된 명왕성冥王星을 뚝딱뚝딱 고치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격려해 주신 마경덕 선생님 이종섶 선생님 이승하 교수님 윤성택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를 믿어준 남편과 신영이, 그리고 함께 공부한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께 큰 절 올립니다.

  첫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 1966년 경북 상주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
 


 

  <심사평>


  "삶의 애환 건강한 시선으로 그려내"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품은 예년에 비해 대폭 늘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문화의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인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미적 정서와 예술적 영혼으로 맑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투고된 작품 중에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5편이다. '다가선다는 것', '활짝 핀 귀', '데칼코마니', '조충도', '명왕성 유일 전파사'가 바로 그것들이다. 5편 모두 당선작으로 하여도 괜찮을 만한 작품성과 시적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중에 한 편을 당선작으로 정해야 하는 만큼 심사위원들은 이것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논의하였다.

  우선, '다가선다는 것'은 그 표현의 아름다움과 참신함이 눈길을 끌었지만 시적 메시지가 모호하고 약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활짝 핀 귀'는 맹인의 삶을 소재로 하여 역설적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주목되었지만 조금 식상한 발상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데칼코마니'는 자연의 형상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해내는 놀라운 안목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 인식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언급되었다.

  '조충도'와 '명왕성 유일 전파사'는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심각한 논의를 거치게 한 작품들이다. '조충도'는 매우 섬세한 감각과 참신한 표현으로 아름다운 시적 세계를 구축했지만 당대적 삶에 대한 인식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명왕성 유일 전파사'는 무엇보다 당대적 삶의 애환을 건강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물에다 해학적이고도 물활적인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운생동한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점이 놀라운 점으로 주목받았다. 이에 '명왕성 유일 전파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선자는 더욱 정진하여 한국 문단의 별이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 성선경, 김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