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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이름 /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당선소감>


   "서진배, 오늘은 당신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묻는다 “어떻게 지내니?”"


  “어떻게 지내니?” 당신이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당신이 내 안부를 물어오는 걸 보면 나는 제법 잘 지내는 듯도 해요.” 대답한다. 내가 당신의 안부를 물으면 당신은 “해질녘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거기 백일홍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붉게 웃는다” 대답한다. 그런 거짓말을 내가 받아쓴다. 당신은 나의 안부를, 나는 당신의 안부를, 당신은 백일홍의 안부를, 백일홍은 당신의 안부를, 나는 백일홍의 안부를 묻는다.

  당신이 내 몸 안에 담아놓은 사투리를 전부 쏟아내고 서울의 냄새가 나는 언어로 시의 첫 줄을 시작하고 싶었다.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 몸이 계단처럼 꺾여버리는 당신, 의자의 자세를 가진 당신은 더럽고 낮은 장소 어디에도 앉는다.

  당신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묻고 싶다 오늘은. 안부를 언제나 당신에게 빼앗겨버리고는 했으니까. 어떻게 지내시는가, 당신. 하지만, 나의 ‘어떻게’와 당신의 ‘어떻게’가 포개져 버린다. 찌찌뽕.

  당신의 찌찌를 꼬집어 주고 싶다. 요 것, 요 것 때문에 내가 당신의 사투리를 앓습니다. 요 것에서 흘러나온 당신의 사투리를 내가 빨아먹고 자랐습니다.

  바깥의 안부를 먼저 묻는 당신의 사투리를 받아쓰겠다.



  ● 


 

  <심사평>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담담히 말하는 시선 인상적


  예심을 거쳐 올라온 예비 시인 17명의 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몇 가지 읽을 수 있었다. 실험적인 시보다 서정적인 시가 우세했으며,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시보다 일상을 포착하거나 가족, 가난 등 서정시의 전통적인 주제를 다룬 시가 많았다. 비정규직, 청년 실업, 성폭력 및 미투 운동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고 뜨거운데, 오늘의 시가 시대 현실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시단에 이슈가 별로 없는 현상이 응모작에도 투영된 듯하다.

  17명의 작품 중 7명의 작품을 먼저 추렸고, 그 중에서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보인 3명의 작품을 두고 본격적으로 토론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하현’ ‘새가 하는 일’ ‘이름’이었다.

  ‘하현’은 달이 차고 이우는 것과 만두를 빚는 한 여자의 노동을 겹쳐 놓는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달을 보며 “한 여자의 붉은 생애”를 떠올리는 시상의 전개가 설득력이 있기는 했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새가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 중 가장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였다. “나무는 새가 펴는 우산”이라는 이미지와 나무에서 새와 매니큐어와 우산으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전개가 역동적이었지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부모의 기대치와 어긋난 자신의 생을 들여다본 ‘이름’은 자신의 몸과 헛도는 큰 옷,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담담히 말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가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로 유전되는 가족의 삶과 상처에서 빠져나와 그로부터 달아나는 상상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름’을 호명하기로 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미처 호명하지 못한 예비 시인들에게는 꼭 다음을 기약하자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눈 밝은 선자가 당신의 시를 호명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심사위원 : 이하석, 이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