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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궤 / 하미경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되었을 때였다. 방 한쪽 구석에 그것이 있었다. 거무튀튀한 색의 반닫이였다. 칠이 벗겨진 건지 칠을 한 적이 없었던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표면이 거칠었다.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가운데에는 까만 쇠 구멍이 위에 두 개, 아래에 세 개가 있었다. 다섯 개 구멍을 일렬로 꿰어 길쭉한 쇠를 걸어 두었다. 걸쇠 아래쪽에는 경첩이 있었는데 군데군데 녹이 슬어 얼룩덜룩했다. 오래된 물건처럼 보였다. 나보다 먼저 방을 차지하고 있는 궤가 어쩐지 방의 주인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상상해보았다. 슬그머니 열어볼 생각도 했지만 열쇠도 없었고 혹시 열었다가 뭔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아 보이기도 했다. 그즈음 나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비밀이 아니었지만 비밀처럼 간직한 일기를 쓰며 나는 조금씩 자랐다. 지금 봐도 어려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또박또박 일기장에 쓰기도 했다.

새벽까지 책을 읽다보면 방이 점점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체온에 의지한 채 잠이 들었다가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느라 불을 때면 그제야 구들 위로 몸을 폈다. 장판에 손을 대고 미지근한 기운을 느끼면서 깊은 잠이 들었다. 겨울아침 늦잠은 순전히 뜨끈한 방구들 때문이었다. 세상모르고 자다가 고무장갑을 낀 손에 엉덩이를 맞고서야 깼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버스를 놓치겠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갔다. 행복이 뭔지 잘 몰랐지만 크게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말뜻을 아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내밀었지만 보호자의 도장은 찍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팠지만 고등학교에 못 갈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성적도 좋아서 장학생이었으니 도장만 찍으면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머니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도 말이 없었다. 학교는 보내줘야 한다며 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입을 꽉 다문 궤처럼 어머니는 입에는 열쇠도 없는 자물쇠가 달렸다. 졸업식이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나는 냉골에 궤와 함께 처박혀 있었다. 나랑 어울리던 친구들은 나의 사정을 이해할 수없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도 나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이란 이렇게 힘이 센 것인가. 아무리그래도 진학을 해야한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불안은 온갖 수식어가 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중에 제일 큰 불안은 집에 머물러있다는 것이었다.

잠도 오지 않고 밥맛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고집이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고집이 장점이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허튼 짓이 아니라면 사람이 강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집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씀도 자주하셨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내게 일러둔 말씀이었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내하는 대로 내버려두다니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집을 떠나야겠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말을 걸 수 도 없을 만큼 완강한 어머니였다. 나도 속을 내보이기 싫었다. 끙끙거리며 궤를 들여다보았다. 나랑 몇 년을 함께 살았던 그것의 속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칠이 벗어지고 녹이 슬어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내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았다.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궤에 내 마음을 털어 놓았다. 나는 집을 떠날 거야.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사흘 동안 냉골에서 얻은 결론은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학교를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얼마 전 견학을 갔던 공장이 생각났다. 그곳은 여러 가지 공정을 거쳐 실을 만들어 천을 짜는 곳이었다. 각 공정마다 조금씩 하는 일이 달랐는데 각 공정마다 중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작업복을 입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중학교에서 봤던 친구들이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맡은 일을 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은 꽤 어른스러웠다. 나는 이런 곳이 있었나 싶어 자세히 보았다. 할 수 있다면 주경야독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미리 서류를 내고 지원을 했어야 했다.

늦은 게 아닐까. 과연 그곳에서 나를 받아줄까. 벌써 졸업을 했으니 학교선생님을 찾아 갈 생각도 못한 채 무작정 공장으로 향했다. 주머니에는 달랑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뿐이었다. 버스를 타고나니 그것마저 없어졌다. 걸어야했다. 새로 만든 도로였다. 공단이조성된지얼마되지않았을때였으니다니던 차도 없었다. 보도블록도 제대로 깔지 않은 길이었다. 말라붙은 개망초 대궁이 제멋대로 바람에 날렸다. 2월이라 바람이 찼다. 자꾸만 눈을 헤집는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났다. 슬프지는 않았지만 얼얼한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너무 짰다. 눈물길을 따라 볼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를 따라오던 그림자가 짧아졌다가 어느새 길어져 나를 앞서 걸었다. 그림자를 밟으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갔던 길을 걸어가려니 멀기만 했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웅크린 채 계속 걸었다. 길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행여나 길을 잃을까 확인하며 걷고 또 걸었다. 어둠살이끼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그곳에 도착했다.

수위실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 가려고 왔어요.”

수위아저씨가 놀라 달려 나왔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기숙사 방이었다. 혼자 쓸 수 있는 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 곳이 생겼다. 그것만으로 안도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힘들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니 웃음의 가면을 쓰고 씩씩하게 버텼다. 그래도 학교에 다닐수 있으니 집을 나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집을 떠난 것이 나의 선택이고 결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날 짠 눈물을 삼킨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어린 딸이 떠난 방에서 냉골을 견디며 더욱 치열하게 살았던 어머니의 삶을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식물의 씨앗들은 모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야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씨앗에게 담아놓은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품에서 그것을 배웠다. 떠나야할 시간이 왔음을 감지했을 때 주저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나에게만 침범 당하고 싶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 욕심 때문에 부모의 속을 긁어 아프게 하고도 모른 척했다. 고집만 피우지 말고 속을 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받아 줄 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속을 내보이는 일은 어렵다. 가슴 속에는 여전히 큰 궤 하나를 품고 산다. 하지만 가끔 넣어 둔속을 꺼내 보기도 하고 들려주기도 한다. 궤의 쓸모는 보관에 있다지만 너무 오래 묵으면 쓸 데가 없다. 마음속의 궤가 꽉 차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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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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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 경남 창녕 출생.

  ●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방송통신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졸업. 포남교회 집사.


 

  <심사평>


  "삶의 깊이와 무게 소통과 공감에 흡인력 발휘"


수필은 살아가면서 겪는 자신의 경험을 보여주고 거기서 느끼는 생각과 정서에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글이다. 단순한 경험담을 쓰는 것은 수기다. 수기는 좁은 의미(협의狹義)의 문학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독자와 감동으로써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주관에 따라서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문학성, 즉 독자에게 전달될 감동을 염두에 두었다. 신춘문예 첫 수필장르를 축하하며 응모작140여 편을 읽었다.

묵을 쑤다는 모녀가 묵을 쑤면서 딸의 눈으로 바라본 어머니에 대한 추억, 가난으로 해서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녹여내며 앙금으로 비유한 것이 좋았다. 문학성, 삶에 대한 깊은 이해. 전 달력 등 군더더기가 없는 글이다. 주제 결론 전개다 좋다. 개성적인 문체의 구사에 애를 더 쓴다면 나무랄 데가 없을 것 같다.

내 할머니는 탄탄한 문장력이요 단아한 글 솜씨였다. 하지만 할머니에 대한 너무 많은 일화가 되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아버지를 드러낼 수 있는 제재들을 집약적으로 선택했다면 글의 주제가 더욱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글의 흐름에 단락 나눔은 몹시 중요하다

새벽밥과 새벽예배는글의 주제가 분명하고 진솔하지만, 서두가 너무 길어서 전체적 구조의 밸런스가 허술했다. 전체적 구성과 내용단락, 형식단락의 구성 면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 결론으로 제시한 자유로운 영성에 대한 부분을 더욱 심화했다면 안정적인 형상화에 기여했을 것이다.

비상금따뜻함은 문학성, 문장력, 주제 등 두루 좋았다. 다만 본인의 고통을 지나치게 천착하여 전개가 일방적이고 제목도 다소 평면적인 감을 주었다.

어도魚道잎 솎음은 문장은 매끄럽지 못하지만 자신의 삶을 비유해서 글을 풀어나가고자 애쓴 흔적이 보였다.

묵을 쑤다이 두 편을 가지고 끝까지 고심을 했다. 궤 는 삶의 깊이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어머니와 자신을 은유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삶의 특별한 시기를 나직하지만 힘 있게 펼쳐냄으로써 소통과 공감에 흡인력을 발휘했다. 또 다른 작품 혜거당도 수작이다. 두 작품 모두 제목의 인상이 특별했다.

 

심사위원 : 은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