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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카스텔라 / 임지선

 

이야기는 모래가 영주 이모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화자는 두 사람이다. 엄마와 딸. 무해는 동네에서 길을 잃은 뒤 의사로부터 초로기 치매진단을 받는다. 65세 이전에 나타나는 치매를 초로기 치매라고 한다. 초로기 치매의 특징은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진단 후 생존 기간은 5~6년으로 짧다. 무해는 재난 때문에 국가를 탈출한 난민이었다. 무해는 남편이 사망한 뒤 남은 가족이라곤 하나뿐인 딸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로 한다. 무해는 유년 시절 북한에서 즐겨 먹던 농마국수를 해 먹으며 딸에게 고백할 기회를 얻는다.

무해는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 이름들은 무해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것이었다. 그 이름들로 사는 것이 세계 속에 자신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끼워 넣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해에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은 난민후이구가였다. 무해가 살았던 국경 도시들은 거친 세계였다. 무해가 부드러운 세계를 처음으로 맞본 것은 압록강을 통해 밀수로 들어온 카스텔라였다. 무해에게 카스텔라는 비일상의 이미지였다. 달콤함과 부드러움의 세계는 일상에 숨겨진 또 다른 욕망이었다.



한편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무해는 과거의 기억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천히 다른 방식으로 쳐다보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천히 보는 것은 무엇이든 각별하게 만든다. 기억은 시간이며, 자기 자신이었다. 왜곡된 기억보다 사실만을 적는 기록이 진실하다고 생각했던 무해는 어느 날, 기록하는 일을 중단한다. 적어도 왜곡된 기억은 자신이 대상과 사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지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첫눈이 오기 전, 무해는 자신의 짐을 정리한다.

결국 기억을 잃어가는 무해에겐 기록을 중단한 노트 하나만이 남는다. 무해에게 남은 건 관계였고, 무해가 남긴 것도 관계였다. 그리고 어느 날 모래는 카스텔라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당선소감>


   "매일 심장이 뛰는 나…멀리 오래갔으면"


당선 통보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북한 관련 동영상에 한참 빠져 있었다. 정확히 42분 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당선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경제신문사에 보냈던 소설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었다. 겁이 덜컥 났다.

‘2018 한경 신춘문예에 처음 도전했고,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내가 분노가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을 싫어하고, 말을 좋아하면서도 말에 상처받았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서 소설을 쓰게 됐고, 쓰면서 겨우 사람을 이해하고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특히 이번 소설은 쉽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쉽게 써버린 글이 될까 봐 두려웠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내게 큰 변화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었다.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쓰지 않는 시간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쓰지 않는 시간을 잘 보내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소설 쓰는 시간을 줄이고 정해놓은 시간대에 정해진 원고량만 썼다.

그렇게 쓰는 시간과 쓰지 않는 시간의 균형을 맞춰가니 소설 쓰기가 훨씬 자유로워졌다. 매일 욕망을 누르고, 자기 절제를 하고, 시간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비로소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매일 심장이 뛰었다. 멀리, 오래가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눈여겨봐준 심사위원 분들께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는 약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 서원대 과학교육학과 졸업.


 

  <심사평>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문답…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

140여 편의 투고작 중 본심에 오른 작품은 폴리테이아’ ‘케이크’ ‘추란의 고백’ ‘카스텔라였다. 이 가운데 작품이 구현한 세계의 단순함이나 낯익은 주제의식 등의 이유로 두 편의 작품이 먼저 걸러졌고 최종으로 추란의 고백카스텔라가 경합했다. ‘추란의 고백은 부동산 투기업을 소재로 한국 사회의 병든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무엇보다도 디테일이 상당했다. 그런데 제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이 소설의 사실성에 힘을 부여한 데 비해 그것과 갈등하며 삶을 꾸려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생생하지 못했다. 뻔한 죄의식의 서사와 출생과 관련한 반전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을 약화시키는 면모였다.

급변하는 남북한 관계의 변화가 소설의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카스텔라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넘어 남으로 내려온 한 인물의 기억에 관한 서사다. 치매를 겪는 이 여인에게 기억은 아주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억의 태반은 고통스러운 것들이다. 소설은 고통을 겪는 인간이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그와 전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공동의 세계를 이룩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물론 이 물음과 답은 직설적이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는 것들인데, 이 이야기의 성분들은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선자의 앞날에 더 많은 이야기가 찾아와주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 윤대녕, 윤성희, 구병모, 송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