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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옆사람 / 고수경

  금요일 밤에 그녀는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시간엔 남편에게 말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택시비를 결제해서 혼자 집에 왔다. 그가 옷을 갈아입을 때 그녀는 침대에 앉아 물었다.

"어쩌다 지갑을 잃어버렸어?"

"도둑맞은 것 같아."

김이 서린 무테안경을 닦으며 남편이 말했다.

"어디서?"

"버스 탈 때까진 있었어. 가방에 넣어두고 잤는데 일어나서 보니까 없어진 거야."

  그녀는 누군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가는데 잠이 안 깼던 거냐고 묻지는 않았다. 남편은 아침 여덟 시부터 열두 시간을 일하고 곧장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두 시간 타고 왔다. 일요일 오후에도 같은 버스를 타고 내려갈 것이다. 코트와 가디건, 셔츠를 벗고 파자마로 갈아입은 남편은 더 왜소해 보였다.

"고속버스에서 지갑을 훔쳐갈 수 있는 건 옆에 앉은 사람뿐이잖아. 게다가 난 창가에 앉았거든. 그 사람이 자고 있길래 깨면 물어보려고 했지. 터미널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다 내리는데 계속 자는 척을 하더라."

"이상한 사람이네."

"당신이 그 사람을 봤어야 하는데. 덩치는 산만해서는 옷은 더럽고 냄새나고. 뭘 먹다가 떨어뜨려서 줍는 데도 한참 걸렸어. 그러더니 금방 잠든 거야. 저기요, 저기요, 하면서 깨우는데 팔짱 끼고 고개 푹 숙이고 꼼짝도 안 하는 거지."

"진짜로 자고 있었던 거 아닐까?"

"나도 자는 척이랑 진짜 잠든 것 정도는 구분해. 그렇게 곤히 잠들었다면 숨소리가 안 날 수 없어."

"그래서 그냥 온 거야?"

  이번에도? 그녀는 뒷말을 삼켰다.

"거기서 뭘 어쩌겠어. 기사가 가서 어깨를 흔드는데도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더라."

  남편은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자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괘씸하다. 안 그래? 어떻게 바로 옆사람 물건을 훔치고 자는 척을 해? 버스회사에 가서 씨씨티비를 봐야겠어."

"그거 보려면 경찰 데려가야 하잖아."

  남편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이번에는 그가 씨씨티비를 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낮 열두 시에 남편의 친구 결혼식을 다녀온 뒤 저녁 다섯 시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야 했다. 일요일에는 친정에 가서 식사를 하고 터미널에서 남편을 배웅해 줄 예정이었다.

"잠깐."

남편은 가방을 뒤지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뮤지컬 티켓이 지갑에 들어 있어."

"그럼 경찰서는 공연 시간에 가면 되겠네."

  그녀는 침대 맡에 둔 뮤지컬 원작 소설책을 협탁 서랍에 넣었다. 유명 배우만 나오면 예매하고 보는 남편에게 주려고 산 책이었다. 내용을 알고 보는 것과 아무 것도 모르고 보는 건 전혀 다르니까. 어쨌든 남편은 뮤지컬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책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숨을 고르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치약을 짰다.

"그 티켓까지 보상하라고 할 거야."

  그가 칫솔을 문 채 웅얼거렸다. 그 뮤지컬은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되어서 남편은 두 자리를 구하기 위해 티켓 값만큼의 웃돈을 얹어 암표를 샀다. 두 장을 네 장 가격에 산 셈이었다. 그가 보상 받겠다는 건 두 장 값일까, 네 장 값일까.

"티켓 값대로 받겠다는 거지?"

  그녀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남편이 입을 헹굴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양치를 마치고 물기를 털면서 말했다.

"내가 그 티켓을 살 때 쓴 돈을 받겠다는 거야."

"글쎄. 그건 좀 힘들 걸."

"내가 손해 본 금액을 그대로 받겠다는데 왜?"

"경찰서에서 암표 값을 다 받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어?"

  남편은 물을 세게 틀고 세수를 했다. 그녀는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화장실에서 그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사람이 도둑질하기 전의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야."

  그녀는 눈을 감았다. 도둑질은 그 사람이 했다지만 남편도 뭔가를 할 수 있었을 거다. 애초에 어떻게든 깨워서 지갑을 돌려받았더라면 아무 일 없이 뮤지컬을 보러 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을 만지기 싫었다면 버스 기사가 깨울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다. 그녀가 보기엔 남편은 결정적인 심증을 갖고도 지갑 찾기를 스스로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일 찾을 수 있겠지?"

  씻고 나온 남편이 그녀의 옆에 누우면서 물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은 한숨을 쉬고 돌아누웠다. 그녀가 아는 남편은 그녀와 함께 사는 삼 년 동안 그녀가 자는 척하는 걸 한 번도 알아채지 못했다. 자는 척한다는 걸 알면서 내버려 둔 걸 수도 있었다. 지금 남편도 잠든 척 하는 거라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그 사람은 잠들었던 게 아니었다. 그녀와 남편은 다음날 아침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골라놓고 거실에서 사과를 깎아 먹는 중이었다. 남편은 태블릿으로 집 근처의 경찰서를 검색하고 있었고 그녀는 텔레비전 뉴스를 봤다. 시위 현장 뉴스가 지나간 뒤 그들이 사는 지역의 터미널이 나왔다. 뒤이어 남편이 타는 고속버스가 보였고 버스 기사가 흥분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흔들어 깨웠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자세히 보니까 숨도 안 쉬었고요."

  남편이 태블릿을 내려놓았고 그녀도 사과를 깎던 손을 멈췄다. 기사의 신고를 받고 온 구급차가 한 일은 시신을 안치소에 데려다준 것뿐이었다. 경찰 측에서는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사인을 추측했다. 남편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어젯밤까지 버스 회사에 경찰관을 대동해서 버스 내부의 씨씨티비를 볼 거라고 말했다. 열두 시간 뒤에 그 씨씨티비를 뉴스로 보게 될 줄 모르고서. 승객들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누가 남편인지를 알아보았다. 화면에서 클로즈업된 좌석의 창가 쪽에 앉은 사람일 테니까.

  남편의 옆에 앉은 사람이 약을 먹으려다가 약통을 놓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는 커다란 몸집 때문인지 약통을 쉽게 줍지 못했다. 그녀는 끙끙거리는 그 남자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창 쪽에 몸을 붙이는 옆사람을 봤다. 전국에서 지금 이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같은 화면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결국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의자 밑의 약통을 가까스로 주웠다.

"뭘 저렇게까지 보여주는 거야?"



  남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듯이. 아닌 게 아니라 뉴스에서는 그 남자가 숨을 거두고 있는 듯한 장면까지 보여주었다. 불뚝 튀어나온 배 위에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가 어느 순간 고개를 떨궜다. 남자가 죽은 건 이후였을 수도 있지만 뉴스의 연출은 확실히 남자가 이때 죽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시청자들이 더 안타까워하도록. 다음 컷에서는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난 뒤 옆사람이 그 남자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왔다. 남자는 물론 눈을 뜨지 못했고 옆사람은 힘겹게 그 남자를 거쳐 통로로 나간 뒤에 남자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혹시나 지갑을 갖고 있을까 했던 거야."

  그 옆사람, 아니, 남편이 설명했다. 그때 기사가 그들 쪽으로 걸어갔고 옆사람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버스에서 내렸다. 화면은 기사가 혼자 남은 남자의 어깨를 흔드는 장면에서 다시 좌석에 사람들이 타고 있을 때로 넘어갔다. 그 위에 리포터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사람이 가득 찬 고속버스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이 시민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남편이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그는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먹다 남긴 사과가 거뭇하게 시들어보였다. 그녀는 칼끝으로 사과를 건드렸다. 원래 시든 사과였나.

"난 정말 몰랐어."

  이윽고 남편이 우울하게 말했다.

"그런 상태인 줄 알았다면 뭐라도 했을 거야."

"뭐라도?"

"약통을 주워준다든지. 아니, 만약 그 사람이 약통을 주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했다면 내가 진짜 나쁜 놈이지. 그 사람은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고 난 그게 약통인지도 몰랐단 말이야."

  긴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 골라놓은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오전 열 시가 넘어서였다. 남편은 거실에 혼자 있다가 들어와서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선물했던 시계를 차고 실크 넥타이를 맸다. 그녀 역시 예물로 받았던 가방을 들었다. 그들은 각자 신발장 안 깊숙한 곳에서 아끼는 구두를 꺼내어 신고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

  남편이 전화를 걸던 간밤에 그녀는 동네 산책로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9,876보, 9,877보, 걸음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숫자가 올라갔다. 숫자 아래에서는 작은 나무가 자라났다. 만 보를 채우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막 등지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는 어플이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이 오기 전에 만 보를 채웠고 직장에서도 틈틈이 어플을 켜 완성된 나무들의 목록을 보곤 했다. 9,900보를 넘긴 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남편에게 전화가 오자 수신거부를 해버렸다. 그때 그녀에게는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이 중요했다. 10,000이라는 숫자와 다 자란 나무 그림을 보는 것도. 그녀는 창밖의 클락션 소리를 들으면서 어제의 기분을 떠올렸다.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의 주변 도로에서 차가 밀려 한참이나 멈춰 서 있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몰랐다. 그건 사고였고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실제로도 그랬다. 남편이 약통을 주워주지 않아서 그 사람이 죽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처럼 연출했지만 누구도 승객 중 하나가 심장마비로 조용히 죽어가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그녀가 거기 있었더라도 남편만큼이나 그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는 왜 남편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는지 스스로 묻고 싶었다.

  웨딩홀 로비는 차려 입은 하객들로 북적였고 코트를 벗어도 될 만큼 훈기가 돌았다. 그녀는 현금인출기를 찾는 남편 옆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들은 전에 이곳을 와 보았다. 웨딩홀 투어를 다니면서. 그때는 그들의 선택지가 명확했다. 예산이 정해져 있었고 그들은 미적 취향과 하객 인원도 비슷했으니까. 상견례 직후 할 일이 정신없이 쏟아졌지만 둘이서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하나하나 해나갔다. 주말에는 웨딩 화보를 촬영하거나 혼수와 예단을 보러 다니고 저녁마다 서로의 지인들을 만나 청첩장을 돌렸다. 지역 복지센터의 직원들에게도 식사를 대접했다. 아직 남편이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그 시기에 그녀는 이따금 마음이 여유로웠다. 자기 시간을 아껴 복지센터에 다녀온 뒤 욕실 타일을 고르고 그녀의 의견을 묻는 남편을 보면 말이다. 지금처럼 서로를 믿고 기대면서 살아요. 복지센터의 센터장이 하객으로 와서 건넨 덕담이었다. 그녀가 센터장을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현금인출기는 로비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그녀는 돈을 뽑아 남편에게 빌려주었다.

"많이 친한 친구야? 축의금을 왜 이렇게 많이 내?"

  그녀가 묻자 그는 돈을 세다가 턱으로 홀을 가리켰다.

"호텔 결혼식장이니까. 코스 요리가 나오는 데야. 게다가 우린 두 명이잖아."

  그녀는 까마득히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대리석 벽과 바닥에 비치는 샹들리에 조명 때문에 눈이 시렸다. 남편은 돈을 넣은 봉투에 이름을 써서 신랑 쪽 테이블에 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남편을 불렀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넘기고 흰 장갑을 낀 신랑 옆에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남편은 그녀를 데리고 가서 인사를 나누다가 물었다.

"종훈이는? 아직 안 온 거야?"

"아침에 연락 받았는데, 어제 회사 부장 모친상 다녀왔대."

  신랑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장례식 다녀오고 여길 오겠냐."

  남편은 다른 친구들을 돌아봤다. 다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뭔가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녀는 남편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남편이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왜, 장례식 때문에 부정 탈까 봐? 그런 건 미신 아냐?"

"미신을 믿는 게 아니라 예의를 지키는 거지. 남의 경사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 거고."

  다른 친구가 신랑을 거들었다. 남편이 그녀를 봤고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멀리서 한복을 입은 중년 여자가 신랑을 불렀다. 신랑은 남편의 어깨를 툭 치고 그녀에게 말했다.

"제수씨, 와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새 대화는 웨딩홀의 끝없이 높은 층고와 기둥마다 장식된 생화로 넘어가 있었는데 남편이 끼어들었다.

"정말 너희도 다 믿어? 그런 미신을?"

"미신을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답답해하면서 말했다.

"너 왜 계속 그 얘기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홀에서 그들만 화환 옆에 서 있었다. 들어가기나 하자. 가만히 있던 친구가 먼저 걸어갔고 나머지는 그 뒤를 따랐다. 남편과 그녀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식장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 섰다.

"어떡하지?"

  그녀가 묻자 남편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어."

"이미 와서 얼굴도 봐버렸는데 그건 괜찮은 거야?"

"아직은 우리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니까. 계속 모르게 하면 돼."

"이 사람들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러더라도 우리 잘못은 아니지. 그건 말 그대로 미신이니까.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거야."

"우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식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신랑이 상기된 얼굴로 문 앞에 서서 입장을 준비했다. 그녀와 남편은 신랑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뒤로 빠졌다. 식장 안에서 사회자가 신랑을 소개했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자. 남편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그들은 좁고 빠른 보폭으로 홀을 가로질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뒤에서 웅장한 피아노 선율과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유모차를 데리고 탄 대가족 틈에 끼어 내려갈 때도. 주차장에서 걸을 때 자신의 구두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서 그녀는 새삼 놀랐다. 차에 탄 그들이 문을 닫고 벨트를 매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적막이 내려앉았다.

*

  이건 내 탓은 아니야. 그녀는 말할 수 있었다. 이 년 전에도 그랬다. 후임이 작업한 서류의 실수를 뒤처리하느라 주말에도 잔업을 해야 했다. 그날 역시 연극을 예매해뒀던 남편은 극장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는 주말마다 각종 공연이나 낭독회 혹은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그런 게 충청도의 소도시에서 일하는 대가라는 듯이.

  카페에는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둘이서 온 사람들도 할 일을 하다 간혹 몇 마디를 나누었다. 남편은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집중해서 세 시간 만에 일을 마쳤다. 파일을 저장한 뒤 화장실에 가다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테이블 작으니까 커피 조심해.

  커피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남편은 자리에 없었고 노트북은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노트북을 들었다. 화면이 먹통이었다. 왜 그래? 돌아온 남편이 물었다. 어디 갔었어? 그녀가 묻자 그는 휴대폰을 들어보였다. 전화가 와서. 여긴 너무 조용하잖아.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각자 노트북과 태블릿, 두꺼운 책을 보거나 뭔가를 적고 있었다.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는 것처럼.

  그녀는 카운터에 가서 씨씨티비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관을 데려오셔야 보실 수 있어요. 매니저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공연 시간까지는 이십 분이 남아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라도 물어보자. 그녀는 짐을 챙기는 남편에게 말했다. 뭐라고 물어보게? 그가 주저하며 물었다. 그녀는 옆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중에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남의 노트북을 떨어뜨려놓고 그냥 가는 게 말이 되냐고. 연극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날 수리 센터에 갔다가 새 노트북을 사러 갈 때도. 다시 생각하니까 진짜 괘씸하네. 안 그래?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뒤로 이 년이 지나는 동안 후임은 연봉을 올려 이직했고 그녀는 과장을 달았다. 카페는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남편도, 후임도, 카페의 매니저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지금 그녀는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던 그 순간.

  우리가 없어진 걸 금방 알 텐데. 전화 오면 뭐라고 할까?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남편이 물었다. 몸이 아프다고 해. 당신이? 아니, 당신이 아프다고 해야 둘 다 간 게 납득되지. 나는 당신 일행일 뿐이니까. 그게 크게 상관있나? 그럼. 이런 대화를 나누고 한 블록을 더 지날 때까지도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걱정이 들었다. 아무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남편은 기어변속기에 놓아둔 휴대폰을 자주 내려다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옆 차선에서 끼어들던 소형차에 부딪혔을 것이다. 뒤차들이 차례로 멈추는 소리와 클락션 소리가 따라붙었다. 소형차도 멈추었다가 끼어들어 앞서갔다. 그녀는 남편을 보면서 안전벨트를 붙잡았다.

"무슨 운전을 저렇게 하냐."

  남편이 헛기침을 했다. 이후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휴대폰 대신 그녀를 힐끔거렸다. 친구들이 그를 찾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차를 주차한 뒤 남편은 몇 걸음 뒤에서 그녀를 따라왔다. 그녀는 아파트 입구에 먼저 들어가 그가 들어올 때까지 자동 유리문이 닫히지 않도록 서 있었다.

  한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저녁처럼 피곤했다. 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누웠다. 남편은 조용히 그녀를 지나쳐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뒤적였다. 욕실을 청소하고 나와서 파자마 밑단이 젖은 채였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초밥이나 시켜먹을까? 그래. 그녀가 스마트폰의 배달 어플을 켜서 초밥을 주문하고 있을 때 남편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당신 정말 몰랐어?"

"뭘?"

"그럴 땐 남의 경사에 가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그땐 생각 못했어."

"그러면 당신도 잘못한 거네."

"글쎄. 그런가."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에 주문이 접수되었다는 창이 떴다. 정말 그녀가 남편과 똑같이 잘못한 걸까? 죽은 사람을 본 것은 그녀가 아니었는데. 그 결혼식의 신랑도 그녀가 아닌 남편의 친구였다. 생각은 당신이 했어야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년 전에 당신이 노트북을 지켜봤어야지, 라고 말하려 했던 것처럼. 정작 그녀가 잔업을 하게 했던 후임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임은 그 주말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후로도 영영 몰랐다.

  이제는 다 끝났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녀와 남편은 오늘 하루 동안 이 집에서 푹 쉴 거고 내일이면 남편은 근무지로 돌아간다.

  그래도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호텔 코스 요리 대신 동네 가게 초밥이라니, 하는 표정으로 초밥이 든 봉투를 건네받았다. 그들은 식탁에 마주 앉아 플라스틱 팩을 열었다. 와사비의 매운 향과 초밥 특유의 냄새가 퍼졌다. 그녀는 두 점을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남편은 엄지와 검지로 세 번째 초밥을 집어 들었다.

"손으로 집어 먹지 마. 젓가락 있잖아."

  그는 그녀가 건넨 젓가락을 받아서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당신 원래 글쎄라는 말을 자주 썼나?"

"뭐?"

"어제부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글쎄, 라고 하고 있어. 오늘도 그렇고."

"그랬나? 뭐 나쁜 말은 아니잖아."

"왠지 기분이 별로야."

"말을 조심스럽게 하려는 건데. 조심스러워하는 게 별로야?"

"아니,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녀는 초밥 팩의 뚜껑을 닫았다. 와사비 때문에 코가 매웠다. 남편도 입을 닦고 물을 마셨다.

"내가 정말 그렇게 잘못한 거야?"

  그가 젓가락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해? 어떻게 하면 더 나았을까?"

"당신이 아주 잘못한 건 아닐 거야."

  그녀는 얼떨결에 말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오늘따라 별로네."

  먼저 일어선 남편이 초밥 팩을 냉장고 안에 넣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은 이 초밥을 시켜먹었다. 정말 맛이 달라진 걸까. 남편은 안방에 들어갔고 그녀는 식탁에 앉아 생각했다. 당장 이 주 전까지만 해도 바로 이 식탁에서 맛있게 먹었는데. 그때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들은 뭔가를 고민하다가 서로의 눈을 마주보곤 했다. 다음 주말이면 다 괜찮아질까?

* "이걸 찾았어."

  남편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녀는 부스스하게 일어나 눈을 감았다 떴다.

"가방 안주머니에 있더라고."

  뮤지컬 티켓이었다.

"지갑에 넣어놨다며."

"아니었나봐. 다행이지. 지금 준비하고 가서 근처에서 뭘 먹으면 시간이 딱 맞을 거야."

"그걸 보러 가자고?"

"봐야지. 티켓이 있는데."

  그녀는 눈을 비볐다. 아직 잠이 덜 깬 건지는 몰라도 그 뮤지컬을 보러 가고 싶지 않았다. 무려 두 배의 값을 주고 어렵게 산 티켓인데. 지갑은 잃어버렸지만 티켓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 기뻐해야 할 텐데. 그녀는 팔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그래? 가는 길에 약 사먹을래? 감기 때문에 이걸 안 볼 수는 없잖아."

"궁금했던 게 있는데."

  그녀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결혼식장에서는 왜 나가자고 한 거야? 어차피 아무도 모르니까 괜찮다면서."

"그건 또 왜? 꼭 지금 얘기해야 해?"

  남편이 시계를 보면서 되물었다. 그녀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안방으로 걸어갔다. 혹시라도 그 부부에게 불운이 끼칠까 봐, 혹은 어젯밤의 그 사람이 아직 마음에 걸려서. 그는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다시 물어본다면 말이다. 안방에서 옷장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의 나무 심는 어플을 켰다. 메인에 어제 완성된 나무 그림과 그녀가 선택한 지역명이 떴다. 캄보디아의 캄퐁 스페우. 맨발로 물을 긷는 아이들의 학교 옆에 숲이 조성될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일이 벌써 절반 이상 일어나고 있었다.

*

  그들은 오전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현관을 나섰다. 그녀는 결혼식에 갈 때 신은 구두보다 굽이 낮은 구두를 신었는데 집을 나서자 아파트 복도에 또각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면서 시계를 봤다. 세 시 삼십 분. 그들은 불과 다섯 시간 전에 나란히 앉아 사과를 깎아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한기를 느껴 팔을 감싸 안았다.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된 사람이 옆사람을 피해 몸을 뒤로 젖히는 씨씨티비를 보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얼마나 먼 곳으로 갈까? 그들이 이 주 전 주말에 초밥 두 팩을 모두 비우면서 했던 이야기는 여행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신이 결정해. 남편은 초밥을 집었던 손을 닦으며 선택권을 넘겼다. 따뜻한 방콕. 혹은 한겨울의 블라디보스토크. 전혀 다른 두 도시를 놓고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약국 앞에 세워줘."

  상가 쪽을 지나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진짜 아픈 거야?"

  그녀는 약국에서 감기약과 생수를 사왔다. 약 봉투를 뜯는 그녀를 그가 흘끔거렸다. 약을 삼킨 뒤 나머지 약을 글라스박스에 넣다가 그녀는 문득 물었다.

"그런데 지갑에는 뭐가 있었어?"

"주민등록증이랑 신용카드, 오티피 카드, 그런 거."

"어디까지 갖고 있었는데?"

"터미널까진 있었어. 거기서 커피를 샀거든. 아, 그건 스마트폰으로 결제했나. 회사에 놔두고 왔나?"

"그런 거면 진짜 웃기는 거지."

"뭐가 웃겨, 다행이지. 재발급 받아야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녀는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어젯밤의 남편을 기억했다. 이 뮤지컬을 무사히 보고 월요일에 지갑까지 찾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돌려받는 거였다.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지 않아도 되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상태.

"그래, 지갑을 찾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남편이 회사에서 지갑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동료들의 원성을 들으며 사무실 전체를 뒤지고 씨씨티비까지 확인한 끝에 점심시간에 주민 센터와 은행을 찾아가는 남편. 그녀는 몸이 더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남편이 그녀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이 약이 잘 듣는 것 같다고 옆사람에게 말했다.

〈끝〉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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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맏이 겸 영재인 언니와 막내 겸 아들인 동생 사이에서 어정쩡한 둘째 딸로 자랐다. 머리든 뭐든 가지고 태어난 게 없으니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가족들을 웃기려 했다. 엄마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일화는 일곱 살쯤 피자 박스를 머리에 이고 다닌 일이다. 나중에 그건 웃기려던 거였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아냐, 그건 백 퍼센트 식탐이었어, 라며 웃었다.

  그러니까 나는 귀엽긴 해도 자랑할 만한 자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외할머니는 나를 다짜고짜 믿으셨다. 아무 근거도 없이 얘가 뭔가가 될 거라고 장담하면서. 말의 힘은 참 신기하다. 내 글쓰기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니까.

  해명할 게 하나 더 있다. 중학생 때 내 백일장 상장을 모아둔 파일에 누군가 실수로 언니의 이름을 붙인 걸 보고 울었던 이유. 집에서 쫓겨나도 울지 않던 애가 울자 가족들은 많이 당황했는데 나는 말을 못했다. 그 파일만큼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만의 것이라고. 그게 없으면 나는 피자 박스를 이고 다니던 일곱 살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아직도 그렇다. 나는 소설을 빼면 남는 게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내내 걸어오고 뛰어왔다. 밑창이 닳기 직전 튼튼한 새 신을 신겨주신 매일신문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을 뵐 낯이 생겼다. 함께 걷는 동안 주저앉을 때마다 일으켜 준 노른자, 도란, 소란, 연작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왜 이렇게 느리니, 저글링하면서 걸을 순 없니 같은 말 않고 응원석에서 기다려준 가족들, 친구들과 하이파이브 한 번씩 해야겠다.

  이제 고백하지만 나는 가끔 당선 소감을 쓰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소감의 끝에는 항상 조경란 선생님이 계셨다. 여러 버전을 생각해두었는데 결국 꺼내온 건 2013년 겨울의 흑석동 지하 강의실이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수업, 어디서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던 순간. 선생님은 다 들으시고 짧게 대답하셨다. 고수경아. 계속 소설을 써라. 나의 모든 동력은 그 한 마디가 전부다.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동 대학원 석사 수료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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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읽고 생각하는 과정은 달랐다. 흥미로운 발상, 이색적인 소재 등에 이끌려 기대감을 가졌으나 끝내 아쉬움만 안게 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신인답게 참신하지만 신인답게 가볍다고나 할까. 그 또한 신인이니까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등단작이 대표작이다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이 꽤 있던 호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냉장고'는 냉장고 안에 피신공간을 만들고 산 아버지 얘기가 눈길을 끌었으나 희화적인 서사로 서툴게 마무리되었다. '식구'는 자본의 위력에 굴종한 한 식구를 '다초점 서술'로 담았으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소박했다. 유해물질이 누출되는 발전소 지대에서 치명적인 병을 앓게 된 주민들의 정황을 그린 '수영장'은 수영장에서 만난 알츠하이머 환자와 아동학대 피해자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가 돋보였으나 끝내 뻔한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친애하는 나의'는 이런 자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항일투쟁을 시도하는 소집단의 갈등을 썩 '리얼하게' 다뤘지만, 그 소재가 아무래도 단편미학을 창출하는 단계까지 가기에는 무리로 보였다. '나쁜 소식'은 새로 개발되는 아파트 단지의 어수선한 한 모퉁이를 입체적 공간으로 설정해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는 청춘의 연애담을 거침없는 서술로 담았지만, 끝내 '이걸로 무엇을 생각하게 하려는 걸까'라는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다.

  '옆사람'은 최종에 오른 11편 중에서 소재가 단순하고 문체가 무난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되었다. 버스 좌석의 옆사람이 앉은 채 사망해 있던 것을 모르고 하차한 사연을 모티브로 주말부부로 사는 두 남녀의 삶을 눈앞에 있는 듯 그려냈다. 다소 무미해 보이는 서술이 우리가 무심코 살아가는 일상의 이면에 뜻밖에도 많은 불가해한 사실들이 내재돼 있음을 알려주는 데 주효했다고 느껴졌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박덕규, 김인숙, 이연주, 권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