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축복 / 이덕원
<당선작>
축복 / 이덕원
용수 씨와는 이태 전 삼촌네 가게에서 함께 일한 사이였다. 3월 초부터 6월 말까지였으니까 넉 달에 조금 못 미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격동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내 귀향과 상경도 탄핵과 대선도 모두 그해 봄을 전후해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두 가지 일에 관한 기억이 딱 들어맞는 건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세간의 열띤 분위기에서 한발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인터넷으로 대충 파악하고 마는 식이었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때는 왠지 그랬다. 그래서 나중에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됐을 때는 내가 체감하며 통과해온 시간이 도리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용수 씨를 우연히 본 날 내가 그런 경험을 얘기하자 여자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디 다른 세상에라도 갔다 왔느냐고.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 바람이 찬 3월의 첫 주말 아침이었다. 그래서인지 출근 첫날 아침을 떠올리면 발부리에 차이는 이면도로의 아스팔트가 아주 딱딱했던 기억이 난다. 상가주택단지 초입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리다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자 복(福) 자가 거꾸로 쓰인 출입문과 손에 쥔 휴대폰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첫날부터 지각을 해서야 쓰겠느냐는 아버지의 성화에 일찍 도착하기는 했지만 바로 들어가자니 서먹한 시간만 길어질 것 같아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어쨌든 지각만 하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닌가. 휴대폰 속 숫자가 ‘8:59’로 바뀌는 순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출입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야지 싶었다.
문득 출입문 위에 달린 빨간 간판이 눈에 띄었다. 양각으로 돌출된 간판에는 중국의 한 지명(地名)이 한자로 크게, 한글로 작게 쓰여 있었다. 아버지에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사람들이 아 거기, 할 만큼 익숙한 지명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중국에 관해 얘기한다고 쳤을 때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인 단어였다. 휴대폰을 열고 가게 이름을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내려가서 백과사전 쪽을 보니 오래전 사라진 나라의 수도 이름이라고 나와 있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막상 우리식 한자음으로든 현지 원음으로든 아주 익숙한, 그래서 중국집 상호로 널리 쓰이는 다른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다시 올려다봤다. 가본 적 없거니와 갈 수도 없는 도시라니, 갑자기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난로를 막 켰는지 홀에 석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난로에 빙 둘러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아까 오토바이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들이었는데 아무래도 배달원들 같았다. 내가 고개를 꾸벅이며 새로 일하게 된 카운터라고 말하자 그들은 경계를 풀고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다시 호로록댔다. 나는 그들과 잠시 통성명을 나눈 뒤 안쪽으로 들어가 주방문을 열었다. 주방에서는 나보다 열댓 살씩 많아 보이는 중년 남자들이 벌써부터 분주히 몸을 놀리고 있었다. 나는 눈치껏 간단히 인사만 드리고 주방문을 다시 닫았다. 배달원들은 맞붙은 사인용 식탁 두 개에 둘러앉고 있었다. 노란 단무지가 꽉 들어찬 플라스틱 팩과 까만 춘장이 든 스테인리스 통, 깍둑썰기 된 양파가 담긴 비닐봉지, 하얀 일회용 반찬 용기가 식탁 위에 어수선하게 올려져 있었다. 배달 반찬을 싸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리 봐둔 대로 출입문 밖에 놓인 우산꽂이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 들었다. 아직까지는 발 좀 들어보라고 하기가 어려운 사이였으므로 일단 그들 쪽은 내버려두고 다른 쪽부터 쓸 생각이었다.
“배 회장, 어제 반찬 몇 개 남았지?”
내용과 달리 목소리는 빽빽거리는 투였다. 비질을 멈추고 배달원들 쪽을 쳐다봤다. 그들 중 맏형이라고 한 남자가 눈을 부릅뜬 채 식탁 끝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제 남은 거 없습니다아. 저녁에 모자라서 제가 열 개 더 쌌습니다아.”
맨 끝에 앉은 남자가 그렇게 대답했는데 말끝을 올리는 게 왠지 퉁명스러웠다. 마치 여태 그런 것도 확인하지 않고 뭐했느냐고 책망이라도 하는 듯했다. 실제로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식탁 위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정작 그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원기둥 모양의 랩을 매만지는 데만 열중이었다. 배용수. 통성명을 할 때 들은 그의 이름이었다. 가게에서 막내라고 했는데 그를 둘러싼 다른 직원들의 분위기랄까,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태도랄까, 그런 게 좀 이상해 보였다. 그를 부르는 호칭만 해도 그랬다. 배 회장이라니. 직함은 아니고 별명일 텐데 어떤 사람일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토실하면서 발그레한 볼이며 슬리퍼 앞으로 한껏 삐져나온 흰 양말 차림의 발이며 그들 중에서도 회장이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말해주신 사람도 하필 그였다. 아버지는 그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주시며 모르는 게 있거든 그에게 물어보면 될 거라고 했다. 삼촌네 가게에 들르셨을 때 보니 그가 숙모의 일을 곧잘 거들어주더라는 것이었다. 배달이 없을 때면 홀로 나와서 전화도 받아주고 테이블 세팅까지 해준다는 모양이었다.
“배 회장, 한 대 빨고 와서 싸자.”
이번에도 맏형의 목소리였다.
“전 다 싸고 나서 피울 겁니다아.”
용수 씨가 냉큼 받아쳤다. 여전히 어조는 퉁명스러웠고 시선은 무릎 위 랩에 고정된 채였다.
“그럼 우리끼리 한 대 후딱 빨고 올게.”
맏형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배달원들도 기다렸다는 듯 맏형을 따라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세우고 있다 그런 맏형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맏형은 물고 있던 담배를 빼 들고는 내게 담배를 안 피우느냐고 물었다. 그냥 안 피운다고 하면 샌님으로 보일 것 같아 끊은 지 좀 됐다고 대답했다. 맏형은 오, 대단하네, 하더니 출입문을 밀고 나갔다. 다른 배달원들도 서로 히죽대면서 맏형의 뒤를 따랐다.
홀에는 이제 용수 씨와 나만 남아 있었다. 지금이 기회구나 싶었다. 나는 슬금슬금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의자 밑에 빗자루를 밀어 넣었다. 다른 배달원들이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바닥을 쓸어야 했다. 그렇게 서너 번 비질을 했을까. 어휴…… 하고 옆에서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나오는 한숨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다분히 의식하고 그에게 자신의 못마땅함을 밝히는 그런 한숨이었다.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인 채 비질을 이어갔다. 이윽고 갑자기 거칠게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나더니 바닥이 쿵쿵 울렸다. 곁눈으로 슬쩍 그의 동태를 살폈다. 그는 식탁 앞에 선 채 빈 반찬 용기들을 쭉 늘어놓고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혼자서 다하려는 모양이었다. 그가 혼자 고스톱을 치는 사람처럼 일인 다역을 하며 이리저리 오가는 사이 나는 비질을 대강 마칠 수 있었다. 그때 다른 배달원들이 출입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왔고, 나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부랴부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러서 잠시 숨을 참아야 했다.
“근데 배 회장, 오늘 단무지 많이 몇 개 싸면 돼? 이십 개? 아님 삼십 개?”
또 맏형이었다. 나는 쓰레받기를 쓰레기통에 기울이며 저 형은 왜 자꾸 저러나 생각했다. 첫날부터 사람 불안하게. 그러다 어휴…… 하는 긴 한숨 소리를 듣고 다시 배달원들 쪽을 바라봤다.
“빨간 날인데 육십 갠 싸야죠!”
용수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고개도 쳐들고 있었는데 통성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왼쪽 눈만 한껏 치뜬 채였다.
그해 설 연휴 직후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아버지는 내게 고향으로 내려와 삼촌네 가게 일을 잠시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숙모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받는 동안 카운터 볼 사람을 구한다는데 어디 아무에게나 믿고 맡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일순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삼촌네서 일머리를 배워 부모님 가게를 물려받으라는 뜻 같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그 덕에 먹고 입고 배울 수 있었지만 장사에 관해서라면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많은 부모가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자기 자식만은 자신들처럼 살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셨고 나 역시 부모님의 그런 기대에 어렵잖게 부응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로서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이뤄지지 않았던 일이 앞으로라고 이뤄진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모님 가게나 삼촌네 가게나 홀보다는 배달의 비중이 훨씬 큰 한국식 중국집이었다. 그렇다고 다 같은 배달집은 또 아니었는데 삼촌네만 해도 오토바이가 여섯 대나 되는 데다 배달도 홀을 지나 출입문으로 나가지 않고 주방에서 뒷문으로 돌아 나가는, 제법 규모와 체계를 갖춘 가게였다. 그에 비하면 면 단위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부모님 가게는 구멍가게라고밖에 볼 수 없었고, 그건 아버지도 인정하시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삼촌을 자랑스러워하며 내가 그놈 그거 일낼 줄 알았다니까,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그럴 때 보면 삼촌의 성공에 자신의 지분도 좀 있다고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지분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삼촌은 내가 어릴 적 부모님 가게에서 일을 처음 배웠으니까. 어릴 적이기는 마찬가지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삼촌은 중학교를 갓 졸업한 십 대였다. 그래서 그때만 해도 나는 삼촌을 형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다 삼촌이 부모님 가게를 그만두고 시내로 나간 뒤부터 삼촌이라고 부르게 됐던 건데, 아버지가 삼촌에게 이제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내게는 앞으로 형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형이라고 부르면 아버지가 내 형의 형이 되는 격이라 부자지간에 족보가 꼬인다는 논리였다. 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호칭 정리였으나, 삼촌은 어엿한 성인이었고 나만 여전히 십 대였다. 지금이야 쭉 삼촌이라고 불러온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입에 뱄지만 처음에는 한동안 형이라고 불렀다 삼촌이라고 정정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배달원들이 삼촌과 어떤 관계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용수 씨와 함께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맏형을 비롯한 다른 배달원들은 식탁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는데 가만 보니 다들 삼촌을 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어쩐지…… 원래는 형이 거기 여자 뽑는다고 했었거든.”
맏형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무안해진 나는 입을 다물고 반찬을 담는 데 열중했다. 반찬가게에서 사 온 얼마 안 되는 반찬을 접시에 반씩 나눠 담아야 했다.
“어, 사장님 오셨다.”
용수 씨가 가게 통유리를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검은색 대형 세단 한 대가 가게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삼촌에게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비닐장갑을 양손에 낀 채 가게 앞까지 나가 삼촌을 맞았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삼촌은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컴퓨터 비밀번호 말고 나머지 질문에는 좀 있으면 숙모 올 거야, 하고 미루거나 용수가 알 걸, 하고 떠넘기기만 할 뿐이었다.
아침을 먹고 카운터 의자에 앉아 숙모를 기다렸다. 등받이와 쿠션은 없이 동그란 플라스틱 시트 하나만 얹어진 회전의자였다. 엉덩이로 의자 바퀴를 부드럽게 굴리며 주위 동선을 살펴봤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상하좌우가 바뀐 복 자 사이로 눈이 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배식구가 주방 안을 앉은 눈높이로 오려내고 있었다. 옆에서 삼촌이 이제 내 공간이니 불편한 게 있으면 마음대로 바꿔도 된다고 말했다. 네, 하고 대답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전 열 시께 돼서야 배가 제법 불룩한 여자가 가게로 들어왔는데, 그쪽에서 먼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더라면 손님인 줄 알고 혼자신가요? 하고 물을 뻔했다. 숙모라고 해봤자 결혼식 때 한 번 본 게 전부였거니와 그날 본 모습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숙모는 방긋 웃으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 가게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숙모 덕분에 첫날 점심은 무사히 지나갔다. 숙모는 두 대의 가게 전화와 자신의 휴대폰 앱으로 들어오는 배달 주문을 포스(POS)에 입력하면서 동시에 홀 주문을 포스에 입력하고 주방에서 내주는 홀 음식을 서빙하기도 했다. 삼촌은 홀 주문을 받아 숙모에게 알려주고 결제해주기만 하면 그만이었고,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 손님이 오갈 때마다 물병과 컵을 가져다주거나 식탁을 치웠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좀 한가해지자 삼촌은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갔고 나는 카운터에 놓인 컴퓨터 앞에서 숙모에게 포스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모님 어떻게 나오셨어용?”
주방문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뒤에서 혀 짧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용수 씨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었다. 아침 내내 본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그는 한술 더 떠서 그릇을 찾으러 다녀오는 길에 샀다며 유명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을 숙모에게 건넸다. 숙모가 좋아하는 맛만 골랐다는 걸 보면 처음 사 온 게 아닌 듯했다. 그 아이스크림 때문에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숙모가 내게 아이스크림을 덜어주려고 하자 그가 사모님 드시라고 사온 건데…… 하며 홀에서 지키고 섰던 것이다. 중간에서 난처해하는 숙모에게 나는 괜찮다고, 아이스크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고 그제야 그도 안심한 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숙모는 용수 씨가 좀 별나요,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덜어 내게 건넸다.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달콤한 맛이었다.
출근길에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 날이었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영업시간이 되기 무섭게 배달 주문이 밀려들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카운터 앞에 앉았다 사오십 분 지나서야 겨우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어느새 사위가 밝아져 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출입문으로 희뿌연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여놓았던 우산꽂이를 들어 출입문 밖에 도로 내다 놓았다.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날씨가 쾌청했다. 카운터로 돌아오는데 배식구 사이에서 알록달록한 비옷들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배식구로 다가가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미지근한 공기와 요란한 소음이 훅 얼굴을 덮쳤다. 바스락거리는 초록색 비옷의 끝자락을 잡아당기자 맏형이 놀란 토끼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나는 비가 그쳤으니 비옷을 벗으셔도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맏형은 비옷의 단추를 끄르며 자기가 비옷만 입으면 비가 그친다고 투덜거렸다. 자신이 비옷을 벗으면 이제 비가 또 막 쏟아질 거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W는 달용이들이 축복받은 도시라니까.”
이상한 건 날씨에 관한 기억만이 아니었다. 삼촌의 말에는 분명 뼈가 들어 있었다. 실제로 배달원들이 축복받은 도시라는 삼촌의 말은 배달 음식점 사장이 축복받지 못한 도시라는 푸념처럼 들렸다. 아무래도 낮 동안 눈이나 비가 와야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삼촌네 가게는 눈비 따위를 바라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바빴다. 나만 해도 벌써 일이 버거울 정도였는데 숙모가 알려준 노하우를 총동원해도 혼자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물론 점심때와 저녁때는 삼촌이 옆에 있었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 삼촌은 나 대신 전화를 받아주거나 홀 계산을 맡아주거나 손님이 여기요, 하고 부른 이유를 알려줬다. 문제는 그러다가도 한숨 돌릴 만하다 싶으면 바로 삼촌이 가게를 빠져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어쩌다 초저녁부터 배달 주문과 홀 손님이 동시에 몰리기라도 하면 나 혼자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나르는데 전화벨은 울려대지, 전화 받고 있는 걸 뻔히 보고도 계산해달라고 손님은 보채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화장실도 가장 한가한 시간, 적절한 타이밍에 달려갔다 달려와야 했는데 카운터 책상부터 연결된 고무줄을 허리에 매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최대한 늘리면 건물 공용 화장실까지 갈 수는 있지만 탄성 때문에 이내 휙 되돌아오고야 마는.
숙모와 함께 있을 때처럼 용수 씨가 가끔 홀로 나와서 일을 거들어주면 좋으련만 그는 나를 매몰차게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배식구 사이로 불러도 못 들은 척하기 일쑤였고 어쩌다 말을 붙여도 모르겠는데요, 하고 잡아떼거나 한심하다는 듯 어휴…… 하고 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아니,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배달 가서 가게로 전화나 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처음에 나는 모니터에 배용수, 라고 뜨기에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저 용순데요. 형 이거 계산 틀린 거 같은데…….”
명백히 따지는 투였고 듣기에 따라서는 시비조였다. 나는 잠깐만요, 하고 시간을 번 뒤 용수 씨가 배달 간 곳의 주문을 확인했다. 탕수육세트에서 식사만 다른 메뉴로 바꿔준 주문이었다.
메뉴판에는 없어도 예전부터 받아와 포스에도 등록돼 있었고 당연히 전표에 있는 가격도 숙모가 등록해놓은 그대로였다. 그가 틀리고 내가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숙모는 믿어도 나는 못 믿겠는지 그는 번번이 가게로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사실 용수 씨는 다른 배달원들에게도 골칫거리였다. 일례로 배달 앱 내(內) 결제나 계좌이체처럼 완불인 주문이다 싶으면 배달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포장대 앞에 섰다가도 전표를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식이었다. 마감 후 정산을 할 때 보면 혼자서 일을 다한 것처럼 뽐내는 그이기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매일 저녁 그는 굳이 포스의 배달원별 집계를 띄워달라고 한 뒤 오늘도 자기가 배달을 제일 많이 갔다느니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느니 너스레를 떨곤 했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 맏형이 귀띔해주기를 그런 그도 두 기준에서 가끔 다른 배달원에게 밀리는 날이 있는데 그때 최후의 보루로 삼는 게 바로 현금이라고 했다. 그래도 뭐 현찰은 내가 다 벌어왔네, 하고 자기 위안을 삼곤 한다고. 그래서 전표를 보고 현금인 것 같은 주문 위주로 배달을 골라서 간다는 것이었다.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 그릇은 카드로 안 된다고 빡빡 우기더라며 배달원 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전화를 받은 일이라든지, 배달원이 카드기에 배터리가 없대서 가게로 직접 왔다는 손님의 카드를 긁어줬던 일이라든지. 그것도 다 용수 씨가 현금 결제를 유도하다 그런 일인 모양이었다. 자기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가 왜 배 회장이라고 불리는지 점점 알 것 같았다.
4월이 되자 하루살이가 날아들지 않는 낮 동안에는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낼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다.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괜히 가슴이 설레고 그래서 이내 멋쩍어지는 그런 계절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상을 치우자마자 가게 앞까지 나가 봄볕을 쬐고 있었다. 앞에서는 배달원들이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믹스커피를 홀짝대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개점이 임박한 시간이라 나는 그들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면서도 안에서 전화가 울리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여야 했다. 먼저 울린 건 뜻밖에도 손에 쥔 휴대폰이었다. 삼촌의 전화였다. 내가 네, 삼촌, 하며 전화를 받자 배달원들이 입을 다물고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삼촌은 새벽에 숙모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게에는 저녁에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축하드린다고, 평일이라 괜찮을 테니 걱정 마시고 숙모나 잘 챙기시라고 했다. 내 말을 들은 배달원들이 무언극의 배우들처럼 소리 없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틈에 용수 씨도 끼어 있었는데 기뻐하는 이유는 다르지 싶었다.
평일이기는 해도 정신없이 바쁜 점심을 보내야 했다. 작업표시줄의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어느덧 오후 두 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의자를 미끄러뜨려 배식구로 다가앉았다. 포장대 선반의 오더랙에 커튼을 친 것처럼 빼곡히 꽂혀 있던 배달 전표들도 어느 정도 걷힌 상황이었다.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일회용이 아닌 그릇으로 배달을 간 곳들을 코스별로 묶어 출력했다. 고개를 돌리니 마침 용수 씨가 배달을 가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포장대 선반 위 프린터에서 수거 리스트들을 뽑아 든 그는 그중 제일 긴 한 장을 자신의 배달 전표 밑에 붙이고는 나머지 것들은 짧게 잘라 다른 배달 전표들에 나눠 붙였다.
그릇 수거 리스트를 뽑아줬으니 이제 전화선을 풀어둘 차례였다. 어김없이 전화선들이 배배 꼬여 있었다. 한가할 때 전화선을 풀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바쁠 때 수화기를 덥석 집다 전화기를 통째로 들어 올릴지 몰랐다. 나는 수화기를 집어 천천히 아래로 내려뜨렸다. 불통이 되지 않도록 다른 손으로는 후크스위치를 꾹 누른 채였다. 수화기가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았고 전화선이 조금씩 풀리면서 길어졌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 마음도 덩달아 풀리는 듯했다. 수화기를 올려놓고 두 번째 수화기를 집었을 때였다. 잠잠하던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첫 번째 전화기였다. 나는 수화기를 재빨리 바꿔 들고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전화를 끊고 음료수 냉장고에서 겨자가 담긴 페트병을 꺼냈다. 주문받은 메뉴 중에 양장피가 있기 때문이었다. 꿀렁꿀렁 소리가 나도록 페트병을 위아래로 흔들며 배식구로 주방 안의 상황을 살폈다. 잠시 후 칼판장님이 요리 접시를 손에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데친 해산물과 채 썬 채소가 접시 가장자리에 빙 둘러져 있었다. 화덕 앞에 서 있던 실장님이 칼판장님을 힐끗 돌아보고는 재료가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를 웍에 엎었다. 웍이 한 마리 용처럼 불을 확 뿜더니 몇 번 돌아가다 멎었다. 칼판장님이 웍 옆에 접시를 가져다 대자 실장님이 웍을 접시에 기울이며 배달 가자, 하고 외쳤다. 밖에서 대기 중인 배달원을 불러들이는 소리였다. 그것을 신호로 나도 밥공기에 겨자를 따르고 참기름을 한 방울 뿌렸다.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고개를 드니 벌써 차례가 돌아왔는지 용수 씨가 포장대 앞에 서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시선을 좇았다. 그가 다른 배달 전표에 나눠 붙였던 그릇 수거 리스트들이 오더랙 한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는 그릇 수거 리스트들을 전부 떼어내 자신의 배달 전표 아래 붙인 뒤 양장피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랩 틈에 대고 숨을 훅 들이마시자 신기하게도 양장피가 진공 포장된 듯 랩에 흡착됐다. 나는 겨자가 담긴 공기를 배식구 안으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뒤에서 겨자 공기를 발견한 그가 배식구로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당, 하고 웃었다.
하루는 아침에 시재(時在)를 나눠주고 보니 용수 씨가 지폐를 뒤집고 돌려가며 새로 포개고 있었다. 아, 헌 돈이 왜 이렇게 많아, 하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튿날부터 나는 그의 시재만큼은 새 돈에 가까운 걸로 챙겼고 지폐의 방향도 한쪽으로 맞춰서 줬다. 언젠가 펄쩍 뛰는 모습을 본 뒤로는 그가 쓰지 않으면 그의 휴대폰 충전기를 서랍에 넣어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도록 해줬고, 마감 후 정산을 하다 그가 현금이 많아 세기도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면 역시 에이스! 하고 추어올려 줬다. 그러자 그가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계산이 틀린 거 아니냐는 확인 전화를 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배달이 없을 때면 홀로 나와 숙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일도 거들어 줬던 것이다.
용수 씨가 배달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고 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양장피를 주문한 손님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수화기를 들었다.
“아니,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시킨 지 한 시간이 다 됐구만.”
죄송하다고 대답하면서 눈으로는 포스에 찍힌 주문 시간을 확인했다. 손님의 말과 달리 주문한 지 사십 분이 막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지적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했다. 식식거리는 그에게 나는 죄송하다고, 도착하실 때 됐을 거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사십 분가량 더 흘렀을까. 용수 씨가 주방 뒷문으로 들어왔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에게 이리 와보라고 손짓했다.
“용수 씨, 배달 갔던 데서 뭐라 안 해요?”
용수 씨가 배달통을 내려놓고 배식구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예, 암말 안 하던데요?”
용수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아, 다행이네. 좀 막돼먹은 사람 같길래 걱정했는데.”
“왜요? 그 새끼가 형한테 지랄했어요?”
용수 씨가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며 물었다. 나는 아뇨, 하며 모니터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뿌옇게 흐려지는 눈으로 작업표시줄의 시계를 확인했다. 마감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6월부터는 때 이른 무더위 때문에 종일 출입문을 닫은 채 에어컨을 돌려야 했다. 믹스커피를 양껏 타 주방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시는데도 배달원들은 수시로 홀로 나왔고 한번 나오면 최대한 오래 머무르려고 했다. 그때마다 다들 와, 여긴 천국이네, 천국, 하고 중얼거려서 나를 괜히 미안해지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미안해한 쪽은 주방 식구들이었다. 배식구로 새어 나오는 열기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전과 달리 지나가는 얼굴들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들려오는 대화에도 짜증이 역력히 배어 있었다. 나로서는 주문을 넣을 때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도 주방 분위기가 몹시 살벌했다. 용수 씨가 배달을 여러 건 묶어 한꺼번에 가려고 이거랑 이거 같이 못 나와요? 하고 보챈 게 화근이었다. 안 된다는 실장님의 말에 골이 난 그가 배달을 다녀와서는 퉁탕거리며 배달통을 내려놓았고 그 소리를 들은 실장님이 지금 나한테 시위하는 거냐며 노발대발했던 것이다. 그는 옆 통에 걸려서 그런 거라고 항변하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홀은 홀대로 또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삼촌의 상가연합회 회장 선출을 축하하는 모임이 홀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업종마다 마감 시간이 다르다 보니 사장님들이 가게를 연신 들락거리고 있었다.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 나는 손으로 한쪽 귀를 틀어막고 전화를 받아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자연히 옆에서 대화를 엿듣게 됐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인 삼촌에게 질문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 전화가 걸려온 건 대화의 주제가 W시에서 장사가 가장 잘된다는 다른 중국집으로 넘어간 직후였다. 삼십 분쯤 전에 인근 아파트에서 주문한 손님의 전화였다. 나는 수화기에 손을 올린 채 배식구를 들여다봤다. 맏형이 포장대 앞에 서서 음식을 포장하고 있었다. 맏형에게 큰 소리로 전표 번호를 대며 진행 상황을 물었다. 맏형이 오더랙에 꽂힌 배달 전표들을 좌우로 훑어보더니 간 거 같은데? 하고 대답했다. 나는 안심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주문하셨죠? 이제 도착하실 때 됐습니다.”
“아뇨, 음식 받았는데요. 이게 뭐예요? 국물 다 쏟았잖아요.”
목소리로 봐서는 스물 안팎일 것 같은 남자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가는 길에 랩이 터져서 국물이 너무 없으시다는 거죠?”
“아니, 것도 그렇고, 배달통 들고 들어와서 현관에다 국물 다 쏟았다고요. 운동화들까지 싹 젖었는데 이거 어쩔 거예요? 배달하는 분이 정상도 아닌 거 같아서 웬만하면 안 이러려고 했는데, 미안하단 말도 없이 그냥 가더라고요.”
그제야 배달 간 사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짬뽕은 다시 보내주면 되겠지만 운동화는 세탁비라도 줘야 할 텐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수화기를 옆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촌은 터질 듯 상기된 얼굴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나는 삼촌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 손님과의 통화 내용을 고스란히 전했다. 그러자 삼촌은 용수 씨가 오거든 음식을 다시 가져다주면서 잘 얘기하고 오라 그러라고 말했다. 내가 그래도 세탁비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삼촌은 그것도 그가 알아서 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시지 말고 삼촌이 직접 전화를 받아보시죠?”
나는 허리를 세우고 삼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삼촌이 정색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옆에서 다른 사장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삼촌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삼촌은 표정을 바꾸고 좌중에 양해를 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나는 삼촌의 뒤를 따라갔다.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 네…… 네, 들었습니다. 직원이 부족해서 일당을 썼더니 이런 일이 생기네요. 네, 맞습니다. 정상은 아니시더라고요. 일당 분 오시면 음식 다시 해서 보낼 테니까 그분이랑 얘기 잘하시면 됩니다.”
삼촌이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배식구를 바라보며 용수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옆에서 다른 사장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삼촌은 별일 아니라고 하더니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하고 물었다. 이윽고 용수 씨가 뒷문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배식구로 다가앉으며 그를 손짓해 불렀다. 그가 배달통을 든 채 배식구로 다가와서 허리를 숙였다. 내가 손님과의 통화 내용과 삼촌의 지시를 차례로 전하자 그는 아이씨, 하더니 짬뽕을 담아 들고 밖으로 다시 나갔다. 고개를 돌려 삼촌을 바라봤다. 삼촌과 다른 사장님들은 아직도 W시에서 장사가 가장 잘된다는 중국집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근데 이제 이사장네가 넘버원 돼야지?”
한 사장님이 삼촌에게 물었다.
“아유, 거긴 못 따라가요. 거긴 완전 공장이에요, 공장.”
십 분 남짓 지났을까. 옆에서 나직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충전 중인 용수 씨의 휴대폰이었다. 그 위에 만육천 원을 출금했다는 문자가 하나 떠 있었다. 시재로 세탁비를 물어준 용수 씨가 돌아오는 길에 ATM기에서 돈을 뽑은 모양이었다. 나는 시재에 돈을 채워 넣고 있을 용수 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 퇴계 이황의 그림을 방향이 맞도록 차곡차곡 포개고 있을 모습을. 헌 돈이 왜 이렇게 많아, 하고 투덜거리고 있을 모습을. 그 일이 있고 보름쯤 지나 나는 삼촌네 가게를 그만뒀다. 반나절 사이 갑작스레 이뤄진 결정이었다. 내가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고 전화를 드리자마자 아버지는 당장 내일부터 삼촌네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삼촌에게는 자신이 얘기할 테니 면접 준비나 잘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말하겠다고 한 뒤 저녁에 가게로 돌아온 삼촌에게 내 상황과 아버지의 결정을 알렸다. 삼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얼굴에는 네가?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이건 다소 과장된 기억인지도 모른다. 당시 내가 삼촌에게 느꼈던 서운함이나 그 뒤 소원해진 아버지와 삼촌의 관계 탓에 얼마간 왜곡돼버린 기억인지도.
어쨌든 나는 두 번의 면접도 마저 합격한 뒤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처음에는 얼마나 기뻤는지 가만있다가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서 연신 표정 관리를 하며 주위를 살펴야 했다. 이제부터 모든 게 좋아지리라고, 내 삶이 좋은 쪽으로 바뀌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좋아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용물은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뀐 느낌이었달까. 어쩌면 꽤나 공평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해 봄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모든 게 나빠지리라고만 생각했었으니까. 모든 게 나빠지리라고 생각했었을 때 아주 나빠지지는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게 좋아지리라고 생각했을 때도 아주 좋아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로서는 손해를 본 게 별로 없는 셈이었는데 그래도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용수 씨를 본 건 그런 씁쓸함이 극에 달해 있던 지난 금요일 점심이었다. 나는 팀 동료들과 기분 전환 삼아 외식을 하고 회사 앞 사거리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사이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코트 안으로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구둣발을 종종거려야 했다. 이윽고 파란불이 들어오면서 차들이 일제히 정지선 언저리에 멈춰 섰고, 우리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때 차들 사이에서 오토바이가 하나둘 빠져나오더니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하나같이 안장 뒤에 배달 박스가 달린 영업용 오토바이들이었다. 횡단보도를 반 정도 건넜을 즈음 나는 앞쪽에 서 있는 오토바이들 가운데서 용수 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알아본 건 은색 헬멧 안면부와 검은색 마스크 사이로 드러나 있는 눈이었다. 한 쌍이면서도 토라진 연인처럼 불화하고 있는 눈.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홱 돌렸다. 티가 나지 않게 은근히 걷는 속도도 높였다. 그러면서 용수 씨가 여기까지 웬일이지 생각했다. 여기만 해도 그의 행동반경 밖이 아니었던가. 그러다 인도에 다다른 뒤에야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봤다. 동료들이 대화를 나누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반대편 신호등에서 파란불이 깜빡대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용수 씨를 찾았다. 하지만 오토바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멀리 반대편 도로를 바라봤다. 오토바이 예닐곱 대가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들은 차들 사이로 사라졌다 나타나면서 점점 작아졌고 이내 점처럼 작아지더니 지평선 너머로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지평선 위로 뿌옇게 흐린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내릴지 모른다더니 금방이라도 쏟아질 기세였다. 문득 이런 날이면 용수 씨가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삼촌을 대신해 그에게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곤 했었다. 그의 말이 차라리 삼촌의 비아냥대로 엄살이기를 바라면서.
뒤에서 입사 동기가 어서 가자고 나를 불렀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배달 가자, 하고 중얼거렸다.
<당선소감>
"소설은 나의 오판·실패 돌아보는 과정"
저는 자주 오판하고 그래서 실패합니다. 지난 몇 년간 저 자신에 관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뿐입니다. 한번은 그런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조금은 덜 오판하고 작게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면서요. 다른 것은 몰라도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더군요. 제게 소설은 오판과 실패를 돌아보는 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이라는 존재에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맙습니다.
소설은 제가 엉망일 때마다 부여잡을 수 있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오랜 친구 앞에서 아이처럼 울어버린 5년 전 겨울밤에도, 지친 부모님께 위안을 드릴 수 없어 자책한 지난여름에도 저는 소설 덕분에 겨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잊지 않고 계속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아는 만큼 말하고 느낀 만큼 쓰겠습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 꿈에서 뵌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께 들은 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종종 그 말을 떠올렸고, 그러면 거짓말처럼 선생님 특유의 차가운 눈빛과 단호한 목소리가 눈앞에서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아마도 저는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이고 좋은 소설이란 또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단점보다 장점을 봐주신 구효서 선생님과 조경란 선생님, 손홍규 선생님, 김성중 선생님, 윤고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1983년 강원 원주 출생
● 한림대 언론정보 졸업
<심사평>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독자의 하루를 돌아보게 한 ‘축복’"
본심에 올라온 총 10편 중, 심사위원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논의한 응모작은 세 편이었다. ‘후에’는 스스로 오래 버텼다고 말하며 교직을 떠난 ‘엄마’라는 캐릭터가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엄마와 나, 친구 진후, 이렇게 셋이 금요일마다 생강떡볶이를 먹으며 한 시절을 보내는 소박한 시절에 대한 회상도. 극적인 상황들 없이도 어떤 작은 것으로 독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줄 안다는 점이 엿보이기도 했다.
‘유실물’은 개성으로만 보자면 가장 돋보이는 응모작이었다. 특히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입힌 학생을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의도적으로 잠적한 K의 가방 안에 든 유실물이 꼭 딜도여야만 했을까?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사의 조롱과 딜도, 신체의 결함 등으로만 K의 연민과 의미를 말해주기에는 너무 단순한 상징과 구조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이 단편 전체에 드러난, 수염이 나서 면도를 하는 아내 캐릭터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어떤 소설은 독자에게 축복과 같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연민을 놓치지 않고 또한 그것으로서 독자 자신의 하루를,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면 말이다. ‘축복’은 ‘달용이’라고 불리는 중국집 배달원들, 그 중에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일에 관해서라면 베테랑 격인 배용수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튼튼한 직장과 탄생을 앞둔 아이, 아주 좋아진 게 아니어도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점들 모두 축복일 것이다. 그리하여 “배달 가자”라는 마음으로 각자의 일터로 나갈 수 있는 매일 매일의 삶도. 다만 ‘축복’에서 달용이들이 축복받은 도시 W에서 일하는 용수 씨가 그런 이중적 주제를 아우를 만한 어떤 행동을 취했거나, 시간이 흐른 후 용수 씨를 거리에서 우연히 스친 화자가 그 시절을 회상하는 점이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두 사람만의 감정의 인과가 조금 더 쌓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소설적 의미와 인물들과 일터의 생생함이 살아 있는 ‘축복’을 올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
심사위원 : 구효서, 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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