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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전자레인지 / 이한솔

  자기 전엔 늘 종말을 생각한다. 갑자기 지구가 펑 하고 터지는 것 말고, 불행이 해일처럼 닥쳐서 평생 머릿속에 새기며 살던 미래 계획이나 주택 청약 따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단 미친 듯이 뛰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상황들. 나는 방 안에 이불을 구겨 안고 웅크려 누워 있다. 만약 그땐 어떻게 할지 머리를 굴린다. 몇 번을 뒤척인다. 모로 돌아누울 때는 끙, 소리가 나오다가 정자세로 다시 누울 때는 한숨이 비집고 나온다. 상상 속의 내가 도망치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웨엥, 웨엥, 웨엥. 날카로운 음이 울린다. 정말 지구의 폭발을 경고하는 것처럼 울리는 이 소리는 사실 알람이다.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이만 일어나야 한다. 차라리 종말이 들이닥쳤으면 좋겠다. 얻은 것은 결국 하나도 없는데 아침은 죽지도 않고 온다. 매일 매일.

‘사셨나요?’

  문자가 와 있었다. 다짜고짜 뭘 샀냐는 거야. 스팸 문자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며칠 전 중고 사이트에 전자레인지를 산다고 내 전화번호와 함께 글을 올린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파려는 사람이 나에게 보낸 문자였다. 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좁은 원룸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침대도 에어컨도 가스레인지도 있는데 전자레인지만 없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것들은 내가 이 집에 살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생색이라도 내듯 존재감을 내뿜었다. 어떤 때엔 위축이 들기도 한다. 암만 내가 이 집에서 누워 자고 똥을 싸도 집 안에 덩어리가 큰 살림살이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 집에 놀러 온 사람처럼 숨 막히는 생활을 이어 나갔다. 이 공간에 온전히 내 물건을 두고 싶었고, 떠올린 것이 전자레인지였다. 무슨 일이 생겨도 언제든지 들고 뛸 수 있는 적당한 무게와 크기의 전자레인지. 나는 그게 제일 필요했다. 문자를 보자마자 졸음이 밀려온다. 나는 답장을 하는 대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대충 묶는다. 출근하고 나서 답장을 하든가 말든가 해야겠다. 신발을 신는데 하품이 나온다. 오늘부터는 종말이고 뭐고 잠이나 자자. 실패할 걸 알지만 항상 다짐한다.

  나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편의점은 쉬지 않고 열려 있다. 그러려면 안을 지키는 사람들이 여러 명 필요했다. 형광등은 꺼지지 않아도 사람은 주기적으로 다섯 시간 이상 꺼져야 했다.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오전과 오후와 야간으로 나누어져 교대했다. 오전은 내가 일하는 시간이다. 오후는 점장이 했고 야간은 일이 힘든 건지 사람이 자주 바뀌었다. 며칠을 마주친 뒤 이제는 안면을 좀 텄겠다, 싶으면 아르바이트생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들.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있는 남자에게 대충 인사를 한 뒤 창고에 들어가 편의점 로고가 새겨진 조끼로 갈아입었다. 밖으로 나가 포스기의 입력된 금액과 금고 안에 있는 돈이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내가 카운터에 자리를 잡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뒤 창고에 들어가 조끼를 벗고 외투를 입고 나온다. 나는 금고에서 천 원권부터 오만원권까지 지폐를 센 뒤 포스기에 금액을 입력한다. 남자에게 확인했다고 말하자 남자가 편의점을 나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오전 아르바이트 일과가 시작된다. 나는 카운터에 있는 담배와 긁는 복권이 몇 장이 있는지 확인하고 간단하게 바닥 청소를 한 뒤에,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에 신경을 안 쓰는 척하며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CCTV가 공간의 모든 꼭짓점에 달려있어도 훔칠 사람은 어떻게든 훔치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개 손님이 매대를 보고 서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손님이 몸을 돌리면 휴대전화를 봤다. 내가 손님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됐다. 일면식이 없는 사이지만 나는 그들을 적당히 신뢰해야 했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구입하는 물건들이 대부분 비슷하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한 편의점이라 과자나 술, 담배가 많이 팔린다. 생각보다 김밥이나 도시락 같은 데워 먹는 즉석식품이 잘 팔리지 않았다. 라면도 컵라면보다는 봉지라면이 더 잘 팔렸다. 아무래도 가족 단위로 살고 있어 밥은 집에서 해 먹는 것이겠지. 나는 종종 카운터에 서서 손님이 가져온 물건에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그 손님이 여기서 산 물건을 밖에서 먹고 쓰는 것을 상상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라 생각하면 알 수 없이 묘한 마음이 든다. 특히 중년의 여자가 급하게 들어와 건전지나 생리대를 사 가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삼 년 전에 자살했다. 일평생 사람들의 주목이라곤 거리를 걷다가 매미가 정수리 위로 떨어져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그 거리에 있던 행인들이 당신을 잠깐 쳐다본 게 다였던 사람은 죽고 나서야 주목을 받았다. 생활고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50대 김모 씨가 자택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되었단 비극이 비슷한 내용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앞세우곤 인터넷 기사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엄마의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 밑 언저리에 ‘생활고 자살’이라는 표현으로 떠올랐으나 그날 노총각 이미지의 탤런트가 깜짝 결혼 발표를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휴대전화로 엄마의 기사를 모두 눌러 꼼꼼히 정독했었다. 기사에는 채도가 낮아서 얼핏 보기에는 을씨년스러운 사진이 곁들여 있었다. 우리 집이었다. 근처에는 폴리스 라인이 쳐 있었다. ‘출입 금지’라고 쓰여 있는 저 노란 줄 너머의 공간은 내가 매일 보는, 매일 문을 여는 곳이었다. 나는 조사를 받고 나온 경찰서 앞에서 그 사진을 한참 쳐다봤었다.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은데 그곳은 암만 봐도 우리 집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어서도 집에 갈 수 없었다.

“담배 하나.”

  또 시작됐다. 감색 등산복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들어와 무심하게 말한다. 거의 사흘에 한 번꼴은 이 소리를 듣는다. 내 뒤에 전시된 담배 종류만 해도 몇십 가지인데, 그걸 다 뭉뚱그려 “담배 하나 달라”고 하면 내가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내가 독심술을 쓰는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막 시작했던 초반에는 친절하게 “어느 것 드릴까요”라든가, 혹은 “몇 밀리 피우세요” 하고 다시 물었었지만 육 개월이 넘게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저런 작자들은 내가 암만 친절하고 싹싹하게 굴어도 싸가지 밥 말아 먹은 태도로 나온다. 나는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미지근한 표정으로 그에게 건성으로 다시 묻는다.

“어떤 거요.”

 “던힐.”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하마터면 속으로 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침과 함께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삼킨다. 던힐도 타르 함량에 따라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더는 남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제일 많이 팔리는 것으로 남자에게 내민다.

“아, 이거 말고 저기 하얀색.”

  남자는 내 뒤에 있는 담배 매대로 손가락을 뻗는다. 나는 재빨리 남자가 가리킨 담배를 꺼내 바코드를 찍고 값을 불렀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코로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날숨에 화가 섞여 뜨겁다. 사천오백 원입니다. 남자가 오천 원을 내밀고, 나는 그것을 오백 원으로 바꿔 다시 남자에게 건넨다. 남자가 등을 돌려 나간다. 다시 유리문에 종이 딸랑, 하고 울린다.

“안녕히 개새야.”

  언젠가 한 유머 사이트에 그런 글이 올라왔었다. 아르바이트하다가 진상을 만나면 “안녕히 가세요” 하지 말고 “안녕히 개새야” 라고 인사하라고. 듣는 사람은 가세요, 할 것을 계세요,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아차 싶어 흘려 발음한 것처럼 들릴 것이라고. 나는 그 글을 본 이후로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오늘도 밖으로 나가는 남자의 등에 대고 말한다.

  손님이 뜸할 즈음엔 매대에 비어 있는 공간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매장 안을 한 번 둘러보니 라면이 몇 종류 비어 있었다. 나는 채워야 할 종류를 확인하고 창고에 가서 라면을 꺼낸다. 위쪽에 있는 상자를 열려고 두 팔을 쭉 뻗는데 조끼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짧게 울린다. 나는 두 팔에 안고 있던 라면 봉지를 한쪽 팔로 몰아서 끌어안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아직 주무세요?’

  아까 그 전자레인지를 팔려는 사람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집에서 나올 때 온 문자에 답장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팔려는 사람이 이렇게 문자를 신경 써서 보내나? 중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파는 사람에게 물건이 팔렸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는 사례는 봤어도 팔려는 사람이 구매자의 아침잠까지 걱정한다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중고 사이트에 글을 자세하게 올린 것도 아니다. ‘삽니다’ 게시판에 대충 내가 사는 지역과 함께 전자레인지를 직거래로 사고 싶다는 문장 한 줄만 쓴 게 전부였다. 그걸 어제저녁에 올렸으니, 이 사람은 내가 글을 올린 지 하루가 채 되지 문자를 두 통이나 보냈다. 할 일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인가. 나는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손을 뻗어 상자에 있는 라면을 꺼낸다.

  사람이 자살한 집은 아무도 사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머물 수도, 아예 집이 없는 사람처럼 방황할 수도 없었다. 집주인은 하루가 멀다하고 나에게 전화를 해댔지만, 나는 받을 수 없었다. 집에 있으면 엄마가 변기를 내리며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았다. 조사가 모두 끝나고 엄마의 사망신고까지 한 이후에는 현관문 앞에 쳐 있던 노란 폴리스 라인도 걷어졌다. 나는 한동안 같은 반 친구의 집에 머물렀다. 가끔 옷이나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러 그곳에 들어갈 때면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옥죄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거실 바닥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에는 번개탄이 검게 그을린 프라이팬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외에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방에 들어가려 거실을 지날 때마다 나는 숨을 참아야 했다. 저 앞에 엎드린 채로 쓰러져 있던 엄마의 모습이 생경했다. 분명 사람이 사는 집인데 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집을 비롯해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우리 것이었는데 나는 매번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사람이 하나 죽었을 뿐인데 기사 사진이 보여주던 현관문의 안과 밖은 모두 폐허였다. 현실의 입소문은 인터넷 기사보다 빨랐다. 지은 지 이십 년이 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낡은 아파트에 경찰차가 몇 번, 구급차가 한 번을 다녀가니 주민들은 들춰낸 돌에 모여 있던 개미처럼 빠르게 흩어지면서 소문을 전하기 바빴다. 한 층에 열 가구가 넘게 살아서, 현관문이 벽에 따개비처럼 줄지어 붙어있던 복도를 걸을 때마다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이웃들을 그날 거의 볼 수 있었다. 놀라움과 껄끄러움이 동시에 떠오르던 그 표정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활짝 열린 현관으로 경찰이 드나드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이곳은 주로 중장년의 사람들이 산다.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은 머리가 희거나 얼굴 피부가 늘어져 있다. 함께 사는 가족 중에 젊은 사람이 있는 노인들은 편의점에 올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최근에 깨달았다. 언젠가 레토르트 삼계탕을 사던 남자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원래는 딸이랑 같이 사는데….”, “우리 딸이 일본으로 출장을 가서…”, “원래 지 애비 밥을 잘 챙겨주는 아이인데…”하고 나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혼자 살지 않는다는 걸 나에게 굳이 알리려는 손님의 속사정을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바코드를 찍고 돈을 받아서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 봉투 드릴까요”, 하는 인사만 겉으로 잘하고 월급이나 받으면 그만이다. 진짜 혼자 사는 사람들은 늘 사는 것만 산다. 가끔 새로운 물건을 가끔 새로운 것을 사갈 때가 있다. 달에 한 번쯤은. 그건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도 혼자서 편의점을 자주 갔을까.

‘저기요’



  라면을 채우고 일어서는데 또 문자가 왔다. 헤어진 사이에 온 연락도 세 번이면 구질구질해진다. 세 번을 연달아 온 문자가 휴대전화 화면에 가득 뜨자 짜증이 난다. 처음에 문자가 왔을 때는 가격과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물어보려 했으나, 지금은 얼굴은커녕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이 사람에게 싫증이 나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답장을 안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종일 연락이 올 것 같다. 아예 싹을 잘라 버리자. 나는 카운터에 들어와 답장을 보낸다.

‘안 사요 죄송합니다’

  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그 사람에게서 답장이 온다.

‘이거 거의 새 건데요?’

  어쩌라고. 나는 화면을 보며 중얼거린다. 사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내가 할 일은 끝났다. 하지만 그 사람은 거듭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싸게 드릴게요’

 “왜 이러는 거야, 진짜.”

  헤어진 애인을 붙잡으려고 시답잖은 ‘자니?’, ‘자나 보네’, ‘잘 자’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고작 전자레인지를 팔기 위해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이 사람의 노력에 눈물이 날 뻔했지만, 짜증이 더 커서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크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곧 번뜩 아차, 싶은 마음이 든다. 손님이 들어오면 딸랑, 하고 흔들리는 종소리를 이 사람에게 신경 쓰느라 소리를 못 들었으면 어쩌나. 나는 고개를 들어 매장 안을 살린다. 한숨이 덜컥 나온다.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과자 매대 앞에 서 있던 교복을 입은 학생이 눈썹을 올려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사과한다. 내 혼잣말에 놀랐는지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어 있다. 나는 학생에게 서둘러 사과한다. 당신에게 향한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리려 과장된 몸짓으로 손바닥을 보인 채 손을 허공에 흔든다.

“아니, 아니. 혼잣말이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렇구나……. 학생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처럼 과자를 고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보며 그 사람에게 답장한다. 성질이 나니까 문자를 치는 손가락이 빨라진다.

‘뭐 얼마나 싸게 주실 건데요’

 ‘얼마까지 생각하셨어요?’

 ‘안 사려고 했다니까요’

 ‘그럼 글은 왜 올렸어요’

  답장은 빠르게 온다. 이제는 이 사람과의 말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필요했는데 지금은 안 필요해요’

 ‘얼마까지 생각하시는지 알려 주세요 그 값에 무조건 드릴게요’

 ‘공짜요’

  나는 문자를 보낸 뒤 학생이 들고 온 물건의 바코드를 찍는다. 삼천칠백 원입니다. 학생이 카드를 내민다. 나는 카드 결제기에 카드를 꽂는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니요. 기계음이 울리고 나는 카드를 뽑아 학생에게 건넨다. 보통이면 이쯤에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나 “안녕히 가세요”를 해야 하는데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자꾸 신경 쓰인다.

“저… 아까는 죄송했어요.”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학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학생에게 미소로 답한다. 학생이 나간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이 말은 정말 또 와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니 도착한 문자가 한 통도 없다. 그럼 그렇지. 진작 이렇게 대응할걸.

  퇴근까지 세 시간 남았을 때 물건이 새로 들어온다. 보통 오전 시간대에는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이 들어온다. 나는 우유 상자에 고이 담겨 온 식품들을 즉석식품 냉장 코너에 올려놓는다. 원래 있던 것들은 뒷면의 유통기한을 확인해 날짜가 지난 것들만 따로 모아 냉장창고로 가지고 간다. 보통 이런 걸 ‘폐기’라고 부른다. 유통기한이란 말 그대로 팔 수 있는 기간이 지난 것뿐이지, 먹어도 되는 음식들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식대는 보통 폐기로 해결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먹지 않는다. 저것들을 입에 넣는다는 건 마치 싱크홀 같이 깊고 어둡게 잠식된 엄마의 기억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냉장창고에서 나와 카운터로 돌아가는데 입안에서 쓴맛이 난다. 나는 엄마를 죽인 음식들을 팔고 있다.

 “우리 또 라면 먹어?”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건조한 눈빛으로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젓가락을 넣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끓였는지 라면이 불다 못해 퍼져 있었다. 새빨간 국물에서 매운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었다. 신라면이구나.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라면 1위가 신라면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싼 가격에 한국인이 생각하는 라면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해서 그런가, 우리 집 찬장에도 늘 신라면이 두세 봉지씩 쌓여있었다. 조용하게 움직이던 젓가락이 엄마의 입으로 들어갔다. 싱크대에 놓여 있는 싸구려 전자레인지는 무엇을 품고 있는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수현아.”

 엄마가 젓가락을 놓는다. 건조하던 엄마의 눈빛이 촉촉해진다.

 “미안해.”

 “…….”

 “엄마가 미안해.”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미 우편함에는 각종 요금을 독촉하는 우편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집주인은 하루가 멀다고 밀린 월세를 내라며 독촉 전화를 해댔다. 나도 남들처럼 반찬 투정이나 하는 딸이 되고 싶었지만, 겨우겨우 하루를 버티는 엄마에게 못된 자식이 된 것 같았다. 옛날엔 찢어지게 가난하면 겉모습에서부터 티가 났다는데, 요즘은 그런 세상도 아니었다. 값은 싸지만, 모양은 그럴듯한 물건들이 많았다. 당장 밖에만 나가도 프라이팬을 오천 원에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겉으로 보기엔 멀끔했지만 그뿐이었다. 금방 고장 나고 볼품없어졌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딱 그 값어치를 했다. 비싸게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이 오랫동안 견고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엄마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문제였다. 돈은 불어나지도 않으면서 생기는 족족 밀린 공과금이나 월세로 나갔다. 가난은 오늘 벌어서 어제 쓴 것들을 메꾸는 일이었다. 엄마는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 항아리에 물을 부었다. 엄마는 다시 젓가락을 들어 퍼진 면을 집어 올렸다. 몰래 먹는 것도 아니면서 면을 입에 넣고 소리 없이 씹었다. 전자레인지가 땡, 하고 우렁차게 소리를 낸다. 고작 고등학교 삼학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유서 한 장 없이 죽었다. 경찰은 엄마가 남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온 집 안을 뒤졌다. 그러나 작은 메모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와 내가 그곳에서 머문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학교 안에 있는 상담센터에서 내가 상담사에게 표정 없는 얼굴로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하는 동안의 일이었다. 내가 집에 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여러 군데 바닥에 찍힌 신발 자국만이 나를 반겼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봉안당에 엄마를 두고 나와서도 그랬다. 엄마가 남긴 돈으로 겨우 원룸을 구해 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나 하며 살고 있다. 목표나 꿈 따위는 없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분리수거함에서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꺼내 묶고 밖에다 내놓는다. 다시 들어와서 전자레인지 두 대의 문을 열어 그 안을 닦았다. 도대체 이 안에 음식을 넣을 때 무슨 짓을 하길래 매번 지저분할까. 요즘은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 컵라면이 많이 나왔다. 나무젓가락과 뜨거운 물이 항상 준비된 만큼 가게 안에서 컵라면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전자레인지 안은 항상 말라붙은 라면 국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 얼룩을 지우려면 수시로 닦아 줘야 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몸에 좋지도 않은 라면을 좋아할까.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 때문일까. 아니면 간편해서일까. 값이 싼 것도 큰 몫을 할 것 같았다. 하긴, 당장 편의점에 파는 샐러드만 해도 컵라면 세 개의 값을 훌쩍 넘는다. 건강 하려면 왜 돈이 더 많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가도 알 것 같지만, 굳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언제 어떤 감정으로 엄마 생각이 불쑥 튀어나올지 모른다. 차라리 모른 채 살고 싶다.

 전자레인지 안을 깔끔히 닦고 문을 닫는다. 그러고 보니 진짜 답장이 없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손님이 들어온다. 나는 오늘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상투적인 인사를 하며 간이 테이블을 닦는다. 가게 안에는 오래된 노래들이 반복적으로 쉼 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 점장의 취향이겠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발매된 노래였지만 하도 들어서 이제 몇 곡은 후렴을 따라 부를 수 있을 지경이다. 아무 관심 없이 듣는 음악이라 정확한 곡의 제목이나 부른 가수는 모른다. 그래도 지금 나오는 노래의 제목은 알 것만 같다. 꿍따리 샤바라나 빠빠빠가 여러 번 반복되니 ‘꿍따리 샤바라’나 ‘빠빠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학생 몇 살이에요?”

 “저요?”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손에 캔커피와 생리대를 들고 나에게 묻는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에는 궁금증이 진하게 묻어 있다.

 “어떻게 이 노래를 알아요? 내 딸이랑 비슷한 나이 같아 보이는데.”

 우리 딸이 스무 살이거든요. 우리 딸도 이 노래 좋아해. 학생네 엄마가 이런 노래 자주 들어요? 여자의 말끝을 흐린다. 나는 잠깐 고민한다. 내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다. 점장님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그냥 사실을 말할까. 왠지 이 여자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걸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문득 솟구친다. 편의점에서 내가 속사정을 말하지 않는 이상 내 모습은 삶의 풍파라곤 겪어본 적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계절을 모르는 발목 없는 양말 때문에 발목이 시리다.

 “그냥…… 가사가 좋아서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는 계산을 하고 나간다. 딸이 스무 살이구나.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엄마가 없었는데. 아랫배가 아리다. 나도 생리할 때 됐나. 투명한 유리 벽 밖으로 여자가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여자가 멀어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는다. 여자가 걷는 걸음이 음악의 박자와 이상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가사가 좋긴 개뿔. 노래 제목이 뭔지도 정확히 모른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 희비가 엇갈린 세상 속에서.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퇴근 한 시간 전. 이 시간이 되면 머릿속엔 온통 퇴근하고 싶은 마음밖에 남지 않는다. 다시 손님을 쳐다보지 않는 척 쳐다보며 ‘신뢰하는 감시’를 하고, 바코드를 찍고, 인사를 하고, 물건을 채워 넣는다. 그 사람에게서 다시 문자가 온다.

 ‘알겠어요 줄게요 나오기 편한 장소 알려 줘요’

 문자를 보자마자 횡재했다는 생각보다는 덜컥 겁부터 난다. 아까 집요하게 물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공짜로 달라는 말에 덜컥 알겠다고 하는 걸 보니 이건 인신매매나 범죄일 게 확실하다. 왜 멍청이같이 꾸역꾸역 답장했을까, 후회된다. 나는 지금이라도 번호를 차단해야겠다 싶어 그 사람의 번호의 상세 정보를 볼 수 있는 표시를 누른다. 번호에 대한 정보를 제일 밑으로 내리니 ‘발신자 차단’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 사람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범죄 이런 거 아니에요 믿어 주세요’

  더욱더 범죄라는 확신이 든다. 화면 위쪽에 미리 보기로 뜨는 문자를 무시하고 다시 번호를 차단하려고 하는데 또 문자가 온다. 이 사람 미쳤나?

 ‘예비 신랑이 죽었어요’

 ‘혼수로 들인 물건을 처리해야 해요’

  퇴근 후 나는 놀이터로 향한다. 편의점이나 집 근처에서 만날까 고민했지만, 동정에 호소하는 범죄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 향하는 놀이터는 집이나 편의점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나마 안전한 곳이 어디일까, 했는데 답은 놀이터였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니 지금쯤이면 코흘리개 꼬마 한 명쯤은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놀이터에는 CCTV가 24시간 돌아간다. 또 언제든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을 부를 수 있는 비상 버튼도 있다. 매번 지나가다가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놀이터로 가는 동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 낯선 소리라도 나면 나는 쓰레기를 뒤지다 들킨 도둑고양이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왔던 길을 돌아가거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조금 쫀 것뿐이다. 놀이터가 가까워질수록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겁먹을 거면서 나는 왜 놀이터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마주친 적도 없는 생판 남에게 왜 나는 기시감을 느낀 것일까.

 놀이터에 가까워지니 발걸음이 아까보다 더 조심스러워진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 요즘엔 이 시간에 다들 학교나 학원에 있나. 아, 요즘 애들은 놀이터에서 안 노나? 하긴 편의점에 오는 초등학생만 해도 전부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뒤에서 나를 붙잡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척 굴며 놀이터를 한 번 훑어본다. 놀이터는 한적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돌아가려 몸을 돌린다. 그때 저기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전자레인지를 들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저랑 문자 하신 분 맞죠?”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오늘 처음 봤는데도 많이 야위어 보인다. 표정이나 말씨처럼 눈에 보이는 여자의 모든 행동은 힘겹게 여자의 몸에서 출력되는 듯했다. 얼핏 보기에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갓 서른을 넘긴 느낌이다. 여자는 나에게 전자레인지를 넘긴다. 나는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전자레인지를 받아 들면서도 여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여자가 나를 보며 피식 소리 내어 작게 웃는다.

 “아직도 내가 의심이 가요?”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 그게. 그러니까…” 해버린다. 여자가 미소 짓는다. 바람이 살짝 불고 느슨하게 묶어 삐져나온 여자의 잔머리가 살짝 흔들린다.

 “믿어 줘요. 나 진짜 신랑 죽은 거 맞아.”

 그걸 의심한 게 아니었는데. 졸지에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수습할 만한 문장을 급하게 생각을 한다.

 “그게 아니라…….”

 “그럼 왜 그렇게 겁먹은 똥강아지처럼 있어요?”

 “이거 진짜 공짜로 주시는 거 맞나 하고…….”

 여자에게 미안해진다.

  어쩌다 보니 나는 여자와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전자레인지를 내 발목 근처에 내려놓고 여자가 따라 주는 막걸리를 받아 마셨다. 여자가 잔에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켠 뒤 우리 사이에 놓인 김치전을 찢어 먹는다. 술은 역시 낮술이지. 여자가 혼잣말한다. 나도 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마신다. 여자가 나에게 묻는다.

 “혼자 살아요?”

 “네.”

 “그렇구나.”

 여자는 더 묻지 않는다. 보통의 어른들은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을 알면 나를 인터뷰라도 하듯 질문을 우수수 쏟았다. 이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니? 학교도 안 다니면서 왜 혼자 살아? 부모님은 어디 가시고. 부모님 안 계셔? 돌아가셨어? 어쩌다가. 내가 솔직하게 대답하면 동정이나 할 만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아이고. 불쌍해라, 하며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여자는 연거푸 두 잔을 마시고 나도 여자를 따라 홀짝홀짝 막걸리를 마신다. 여자와 나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술만 마셔댄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머리가 어지러웠다. 먼저 취한 건 여자였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도 참 이상해. 자기들 궁금하다고 막 물어보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조심스러운 사람인 척 물어보면 뭐 해. 어차피 궁금해 죽겠다는 거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주어가 없는데도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이해가 간다.

 “티를 안 내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항상 슬플 수는 없잖아. 어떻게 사람이 24시간 내내 울면서 살아요?”

 “그러니까요.”

 “학생도 사실 궁금해서 나온 거죠? 그런 불쌍한 사람 얼굴이나 보자, 하고.”

 “아니요.”

 여자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미 여자의 볼이 붉어진 지 오래다. 여자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형광등 빛에 닿아 반짝거린다. 말을 하려니까 엄마 생각이 난다.

 “그냥, 공짜 전자레인지가 가지고 싶어서요.”

 “…….”

 “저 공짜 좋아하거든요.”

 여자가 웃는다. 곧 김치전 위로 잔을 든다. 나도 따라 잔을 들어 여자의 잔에 부딪힌다. 우리는 그렇게 막걸리를 몇 병을 짧은 시간 안에 마셔 버린다.

  밖은 이제야 막 어두워지려고 한다. 여자는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문다. 나는 여자에게 받은 전자레인지를 끌어안고 그 옆에 서서 찬 공기를 맞는다. 취기가 좀 가시는 기분이다. 여자는 자신의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더 꺼내 나에게 건넨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여자가 대충 담배를 제 주머니에 넣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곧 연기를 내뱉으며 말한다.

 “올해는 12월 21일이래요.”

 “뭐가요?”

 “지구 종말.”

 여자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웃긴 건지 킥킥댄다. 여자가 웃는 것을 보니 내 입에서도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우리는 한참을 웃는다. 여자가 담배 필터를 다시 입에 물고 길게 빨아들이더니 내뱉는다. 술은 사람을 자꾸만 실없게 한다. 웃음이 입가에서 가시지 않은 채로 하고 싶은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

 “뭐만 하면 종말이래.”

 내가 말을 하자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여자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없이 담배를 피운다. 곧 필터 근처까지 타들자 손가락을 털어 꽁초를 바닥으로 튕겼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자 바람이 불고 불씨가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린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지구 종말 같은 소리 하네…….”

 여자는 헤어지기 전에 비틀대는 몸을 애써 지탱하며 꼬인 발음으로 나에게 말했다. 잘 가요. 혹시나 우울해도 죽지 말고요.

  집에 돌아와서 휴대전화로 엄마의 기사를 검색한다. 오랜만에 찾아보는 기사였다. ‘생활고’라는 단어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뒤섞인 글이 휴대전화 화면을 가득 채운다. 현관문 사진도 보인다.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진 낡은 현관문 앞에는 자전거 한 대와 분리수거를 할 때 쓰던 사과 상자, 그리고 택배 상자가 쌓여있었다. 택배는 엄마가 죽기 전에 주문해 놓은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것들을 열어 볼 엄두가 나질 않아 모두 버렸었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겉에 붙은 운송장 스티커에 짧게 쓰여 있었다. 라면이 아닌, 신선하고 파릇해 오래 조리해야 했던 것들은 상자 안에서 엄마가 열기만을 기다리다가 모두 상해버렸다. 나는 사진에서 택배 상자 부분을 엄지로 쓸어내린다. 엄마의 흔적이었다. 엄마는 이걸 어떤 마음으로 주문했을까. 죽기 전에 요리를 해서 나랑 먹으려고 했을까. 아님, 당신이 죽고 나서 나는 라면만 먹고 살지 말라고 주문을 한 것이었을까. 유서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밖에 들은 적이 없으니 엄마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더듬더듬 전자레인지 코드를 콘센트에 꽂는다. 전자레인지는 새것처럼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흠집이나 말라 비틀어진 밥알 하나 없이 새하얗고 반짝이는 모습의 전자레인지가 여자를 닮았다. 전기가 공급되자마자 작은 흑백 화면에 지금 시간이 깜박거린다. 한참 바라보다가 전자레인지의 레버를 돌린다. 전자레인지는 우웅, 하며 돌아간다. 결혼하려던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어느 순가 땡, 하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린다. 나는 또 더 레버를 돌린다. 땡, 소리가 나면 또 레버를 돌리고 땡, 소리가 또 나면 다시 레버를 돌린다. 엄마에게 종말이 찾아오기 전에 울린 경보음은 어떤 소리였을지 돌아가는 전자레인지를 보며 가늠한다. 사람들은 진짜 종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끝>


  <당선소감>

   "이길을 걷고 있다는 걸 문학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거 거짓말 아니에요?” 당선 전화를 받던 날, 내가 처음 했던 말이다. 그때 나는 같은 과 친구들과 서울에 있었다. 당시 친구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기대에 가득 찬 친구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한참을 부둥켜 끌어안고 울었다.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소설을 계속 써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소설이라는 게 참 야속해서, 읽고 쓸수록 깊고 소중해져 나는 쓸 자격이 없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이 질문의 결론을 “그만 쓰자”고 결정을 지어버렸다. 그래도 열심히 한 게 있으니 투고는 해 보고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당선되었다.

  내가 당선된 것이 신의 덕분인지, 혹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신한다. 사람을 따라가는 똥강아지처럼 나는 소설의 뒤를 한참 쫓았었다. 발을 나란히 할 수도 없어 뒤에서 따라갔더니 이제야 나를 돌아봐 주었다. 이제는 그만 쓸 수 없다.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문학에게 들킨 이상, 나는 마음껏 사랑하고 슬퍼하다가, 잠깐 숨을 고른 뒤에 자리에 앉아 글을 쓸 것이다.

  부족한 저를 가르쳐주신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예민한 딸을 키워 준 엄마와 아빠, 고맙고 많이 사랑해요. 다른 가족들도 고맙습니다. 동생 용혁이도, 나의 정제된 위로가 되어 준 마루도, 아늑한 존재 같은 아라와 정원이도 고마워. 그리고 나에게 문학이자 응원이 되어 주는 하옥단문 친구들과 지속 가능한 청춘 같은 김성모락밴드 친구들. 우리 앞으로도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 주며 함께 글을 쓰자. 그리고 이 글을 읽어 주신 당신께도 고맙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 1996년 서울 출생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상처입은 세대의 이야기 담담하게 그려

  문학이 하는 일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삶을 한겹씩 들어내면서 그 속의 슬픔과 상실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 이제 막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신산한 삶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채우기도 전에 텅비어버린 청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신의 일상과 밀착되어 있는 이야기를 성심껏 전달하는 소설들은 언제나 읽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소설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라도 중요한 것은 먼저 그 성실한 자세일 것이다. 반면 독특한 소재를 골라 치밀하게 연구하고 그 묘사에 공을 들인 작품들은 흥미롭다. 흥미로우나 그 소재가 생활 속으로 충분히 녹아들지 못해 아쉬운 작품들도 있다. ‘무엇을 쓰기 위해서’ 들인 노력이 보이기는 하지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잘 짚이지가 않는 소설들.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질문들을 좀 더 공들여 생각해보시기를 바란다.

  ‘가티’와 ‘체온의 향방’이 끝까지 눈에 띄었다.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제기한 ‘가티’는 아주 좋은 작품이지만 여러가지 이야기가 한데로 모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전자레인지’는 상처입은 세대의 초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하루하루의 젊음을 지워가는 세대의 이야기는 독특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어디에나 있는 삶, 어디에나 있는 상실과 상처. 그러나, 상실을 바라보는 이 작가의 시선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거의 다름없는 상처라고 하더라도 그 상처는 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것과 마주하는 법도 다를 수 밖에 없을 터인데, 이 작가는 그 틈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틈을 담담하게 매운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기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김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