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광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평평한 지구, 탈출기 / 송유나
<당선작>
평평한 지구, 탈출기 / 송유나
그 애와 처음 만났을 때, 얼굴보다 먼저 보인 건 정수리였다. 그 애는 깔려죽은 개구리처럼 꿈쩍도 않고 볼썽 사납게 넘어져 있었다. 작은 두상은 동그랗고, 새까만 머리칼로 빽빽했다. 그 주먹만 한 머리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이 성급해진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손부터 불쑥 내밀었다. 그 애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내가 건넨 성의를 의도치 않게 무시하고는 스스로 팔꿈치를 세워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 떨어진 책과 필기구를 가방 안에 도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이상하리만큼 차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밀은 손을 머쓱하게 거두고 바짓단에 슥슥 닦아내었다. 그리고 내 신발 바로 앞으로 굴러온 밤색 양장본 표지의 낡은 책을 주워주었다. 촌스럽게, 책등에는 자기 이름이 적힌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신달석.’
달석은 그제야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랑 이름 비슷하네. ‘달’자 돌림.’
나는 굳이 달석의 손을 펼쳐서 그 책을 쥐어주었다. 『Zetetic Astronomy: Earth not a Globe!』. 닳고 닳아 희미해진 책의 제목은 조금 괴이했다. 지구는 글러브가 아니라고? 야구 책인가. 내가 영단어를 우스꽝스럽게 오독하는 동안, 달석은 나를 주시하며 인위적일 정도로 새빨간 쌍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
급전이 필요한 연말이었다. 30만원. 달석이 너 30만원 있냐? 달석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너 10만원은 있냐? 5만원은? 만원은? 오천 원도 없냐? 거슬러 곤두박질치는 응찰가에도 연신 고개만 내저었다. 새끼야, 구라까지 마. 담배 한 갑이 사천오백원인데 오천원이 없어? 나는 달석의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보란 듯이 흔들어댔다. 됐어, 벼룩의 간을 빼먹지. 달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은 열지도 않으면서 실실 웃고 있었다. 달석은 몸도 얼굴도 무척 말랐지만, 웃을 때만큼은 얼굴에 살이 붙었다. 애굣살과 앞 광대는 살금 올라오고 인디언 보조개는 쏙 들어가서 매끈하던 안면이 울룩불룩해졌다. 그게 예뻤다.
“딴 사람한테 빌리면?”
“너 같은 얼간이가 아니고서야 누가 나한테 돈 삼십을 빌려줘.”
“여기저기 조금씩.”
“싫어. 구걸하기 싫어.”
“구걸하지 말고.”
“어떻게.”
“일단 빌리면.”
달석은 세 가지 습관으로 사람 짜증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첫째는 곤란할 때마다 나오는 회피성 미소, 둘째는 말꼬리를 잘라먹는 버릇, 마지막은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한마디로 추려내면 속없는 인간 특성의 집합체. 바다에 던져놓으면 미역 한 가닥 건져 올리지 못할 성긴 그물망 같은 애였다. 멍청이. 내 손에서 담뱃갑을 뺏어간 달석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별안간 신난 망아지처럼 좁은 골목을 뛰어다녔다. 나는 그의 들썩거리는 뒤통수에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머리로는 달석의 마지막 말을 열심히 곱씹는 중이었다. 이 맥락에서 ‘일단 비빔면’이 왜 나오는지. 그게 먹고 싶은가, 달석이 집에 ‘팔도 비빔면’이 있었던가, 하고. 그리고는 정말 달석의 집에 팔도 비빔면을 사들고 가서, 익힌 면을 소스와 비비기 위해 일회용 나무젓가락의 종이포장을 물어뜯다가, 그 말이 ‘비빔면’이 아니었다는 걸 느닷없이 깨달았다.
나는 분명 어린 나이었지만 사람의 행간을 읽을 줄은 알았다.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던 당시에는 더욱 예민하게 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석의 행간이 읽힌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달석은 말도 행동도 애매한 선에서 멈춰버리니까 그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공백의 면은 마치 다른 차원의 일처럼 느껴졌다. 확신과 불신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이전까지 나는 달석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더 알 필요도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냥 빌리라고 말했던 찰나의 장면을 어렵사리 다시 떠올렸다. 몇 분 전 일이 마치 10년 전 기억처럼 묘연했다. 흐릿한 스케치에 켜켜이 덧칠을 반복하자 담뱃갑을 뺏어가던 행위와 일순 번뜩이던 눈빛만은 선연해졌다. 평소에 보던 맹탕 같은 눈이 아니었다. 아니, 완전한 초면이었다.
나는 옷에 달린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집어 까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길바닥에 탈탈 털어냈다. 4등분으로 접어놓은 만 원짜리 지폐 두 장, 다 쓴 휴지처럼 구겨놓은 천 원짜리 넉 장, 오백 원이 하나. 백 원이 두 개. 오십 원이 다시 하나. 백의 자리는 떨구고, 이만 사천 원. 삼십만 원에서 제하면 이십칠만 육천 원. 그러니까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십칠만 육천 원이 절실한 어느 12월의 초입이었다.
중학생 주제에 현금 십만 원을 지갑에 꽂고 등하교를 하는 급우가 있다는 것을, 십만 원이 아무개의 뱃속으로 홀라당 들어가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선생님은 조례시간에 30명이 조금 안되는 학생들을 앉혀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눈을 감으라고 시켰다.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은 진실함이며,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또 이렇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결국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나는 시설에서 살고 있다는 미경이와 함께 교무실로 불려갔다. 선생님은 우리 둘을 앉혀놓고 아까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리고 나와 미경이를 멀찍이 앉혀두고, 에이포지 한 장씩을 주었다. 선생님은 잠깐 나가있을 테니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솔직하게 글로 털어놓으라고 했다. 선생님만의 도둑잡기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하게 십만 원을 훔치지 않았다고 적었다. 선생님 덕분에 이번 기말고사 수학 점수가 20점이나 올랐다고, 감사하다고도 적었다. 두 문장 적고 나니 더 쓸 말이 없어서 서랍을 뒤적거렸다. 미경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미경과 나는 남들보다 약 30분 정도 늦게 하교했다. 덕분에 친하지도 않고 말을 별로 섞어본 적도 없는 미경이와 길이 갈릴 때까지 나란히 걸어가야 했다.
“하고 싶은 말 하라시길래, 욕만 잔뜩 적었다.”
미경이는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사레가 걸린 듯 분출해냈다. 나는 잘했다고 대답하려다가 눈자위가 시뻘게진 미경을 보고 입술만 깨물었다. ‘동인 헌책방’ 앞에서 미경과 나의 행선지가 갈렸다. 미경이는 지하철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나는 그와 반대쪽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밀집되어 있는 A동으로 가야 했다. 나는 이쪽으로 가. 내 미적지근한 작별인사에 미경은 ‘으응’하고 감탄사인지 대답인지 모를 소리를 내면서 티 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굴리며 저기에 내가 들어갈 만한 수준의 건물이 있는지 찾고 있는 듯 했다. 누가 봐도 네가 저 부자 동네에 갈 일이 뭐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우리 이모가 저기 살아. 엄마가 이모한테 김치 두 쪽 받아오라네. 김장철이잖아.”
나는 사람의 눈을 보고 거짓말을 하면 꼭 사족이 붙었다. 다행히 미경이는 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빠 없는 가난한 집의 외동딸이라는 인적사항 정도였기 때문에 의심 없이 돌아섰다.
그러나 기철에게는 둘러대는 식의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기철이 나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거나 우리가 서로에 관해 익히 꿰차고 있다거나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기철은 교회에 잘 오지 않아서 자주 보지 못했다. 내가 교회에 발을 끊은 이후로는 나와 기철 사이에 만남은 고사하고 문자 한 통도 전무했다. 적게 쳐도 반년만인 그와의 재회는 온전히 나에 의해 연출된 것이었다. 기철은 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오랜 공백이 무색하게 즉각적으로 경계의 촉을 곤두세웠다. 곳곳에 책잡힐만한 사건사고들을 심어놓은 족속들의 대표적인 방어기제였다.
“너 내 눈보고 똑바로 말해. 나한테 십오 만원 삥 뜯어서 어따 쓰시겠다고?”
“학원비. 이제 나도 공부 좀 해야지. 학원 안다니는 애 없어, 요샌. 여기 밑에 싸게 하는 데 있어. 아저씨랑 아줌마랑 부부서 하는 종합학원에, 영어만.”
“하, 씨발. 너 뭐 잘못 먹었냐? 갑자기 쳐들어와서 뭔 좆같은 구라질이야.”
기철은 욕지거리를 해대며 미간을 짚었다. 사실 A동은 이모가 아닌 기철이 사는 곳이었다. 나는 미경과 헤어지고 기철의 집 앞으로 쳐들어갔다. 기철의 집은 로얄 아파트에 있었다. 로얄 아파트는 부동산 창문에 붙어있는 전단지 속 전세금만 해도 5-6억을 훌쩍 뛰어넘는 이 동네 최고가 시세의 최고급 아파트였다. 6년 전 A동에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아파트의 기세에 밀려 A동의 터주대감처럼 명맥을 지키던 구종 빌라가 기어코 철거되고, 그 자리에 이 ‘로얄 아파트’가 새로이 들어섰다. 세상에, 100층짜리 아파트란다. 100층짜리 아파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횡횡하게 돌았던 소문이었다. 실상은 61층이었지만, 그 때의 우리에겐 100층이나 다름없었다. 공사현장을 구경하러 가자는 친구들을 따라 A동으로 달려갔을 때, 잭과 콩나무 속 콩나무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 타워크레인이 로고장난감 같은 철조물은 끝도 없이 쌓아올리고 있는 장면을 보았던 게 기억이 난다.
물론 기철이 나에게 자기 집주소를 얼레발레 까발릴 얼간이는 아니었다. 집 주소는커녕 자신의 동네 이름조차 의도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비겁자였다. 그러나 나는 매년 이맘때쯤에, 기철의 집에서 밤새도록 김장 일을 돕고 새벽에 돌아왔던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새벽까지 스스로 뺨을 꼬집으며 깨어 있다가, 녹초가 되어 현관문을 여는 엄마의 품에 달려들곤 했다. 남의 집 노동 잔치에 ‘베풂’이라는 명목으로 일을 도왔다는 게 민망스러울만큼 ‘베풂’ 없는 깨끗한 맨손으로 들어온 엄마는 나를 안아들었다. 덕분에 나는 기철네의 김치 양념 한 번 찍어 먹어본 적이 없었다. 대신 돌처럼 딱딱하게 뭉친 엄마의 어깨를 주무르며 기철의 집이 얼마만큼 좋으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이 주변에서 제일가는 부자들이 산다는 으리으리한 아파트들 사이에서도 기철이 집이 가장 크고 높다고 대답했다. 63빌딩도 아닌데 층수가 61층까지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목사님은 로얄 아파트에 사시는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로얄 아파트 입구의 굳게 닫힌 유리문에 몸을 기대고 기철에게 전화를 했다. 기철아, 나 네 집 앞이야. 니네 아파트 진짜 좋네. 안까지 들어온 건 처음이야. 틈을 주면 눈치 빠른 기철이 추궁해올까봐 곧바로 다음 대사를 쳤다. 목사님 오늘 금요예배 안 가셔? 이 시간에 집에 계시네. 아, 목사님이 방금 나보고 요새 왜 교회 안 오냐고, 저녁이라도 하고 가라고 그러시던데. 나 그래도 돼? 그러자 기철은 나를 죽이네 살리네 하며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둔 목사님이 어쩌고 하는 대사들을 지우면서, 손바닥에 흥건히 찬 땀을 교복 마이에 닦아냈다.
기철은 도착하자마자 내가 했던 모든 말이 송두리째 거짓이었다는 걸 알고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거기다 대고 나는 뻔뻔하게 당장 한 달 학원비가 필요하니 십오 만원을 빌려 달라 요구했다. 주먹이 날라 오기 직전이었다. 나는 단언컨대 기철 같은 버러지 새끼를 무서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저 주먹에 맞아 코가 부러지는 건 무서웠다. 그래서 줄곧 나는 그의 치부를 나만의 방어기제로 이용해왔다. 내가 기철을 이렇게 오라가라할 수 있는 것도 그의 각양각색의 치부들 덕분이었다. 아마 기철의 치부책 목차에는 나의 이름이 가장 크게 박혀있을 것이다. 조금 변한 것이 있다면, 지금의 나는 방어모드가 아니라 공격태세였다.
“그럼 어떡해. 목사님, 아니 너희 아버님한테 싹 꼬발라?”
“야, 오늘 너 어디서 지랄 작두 타고 왔냐?”
“뭐부터 말해? 네가 위조된 명문대 재학증명서 들고 다니면서 한 달에 80받고 사기과외하고 있다는 것부터 말할까?”
기철은 돈만 주면 다 가는 촌구석의 모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숨기고 다녀야한다는 암묵적 지령이 성가셨는지, 입학하고 두어 번 왕래만 하다가 그만 두었다고 했다. 술만 진창 먹고 다녔다. 아들이 아버지를 쪽팔려 하는 것만큼, 아버지도 아들을 창피해했다. 아버지는 술에 떡이 된 채 자퇴서를 꼬깃꼬깃 접어온 아들에게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노라고 선언했다. 기철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생존 방식이 다름 아닌 ‘사기’였다.
1년 전, 나는 기철이 사기칠 때의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격한 바 있었다. 그를 알고 난 이래에 처음으로, 기철의 이목구비가 목사님과 판박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기철이 학력위조로 얻은 직장은 내 반 짝지이던 지우의 과외 선생 자리였다. 지우가 새로 온 과외 선생님에게 푹 빠져서 짝지인 나한테 그와 관련된 여담을 조잘거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 지우는 기철이 완벽범죄를 위해 꾸며온 가명을 들먹이며 그를 연세대 뇌섹남으로 요약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인근의 서점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참고서를 고르고 있는 둘을 발견했을 때, 지우가 묘사한 모든 문장이 전부 기철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얽힌 인연이 순전히 재밌다고만 생각했다. 일부러 친한 척 인사를 건넨 것도 어떤 의중도 없는 행동이었다. 나의 인사를 받은 기철은 눈 깜짝할 새에 당황한 기색을 말끔히 지워냈다. 그가 연기한 낯빛은 건실하다 못해 옹골차 보였다. 주말예배마다 신도들을 맞이했던 목사님과 소름이 돋을 만큼 똑같은 표정으로, 지우에게 나를 교회 같이 다니던 동생이라며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급하게 교회 문제로 나와 단 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지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점 밖으로 나왔다.
1년 전의 그는 어린 구석이 있긴 했다. 나를 붙잡고 너무 쉽게 자신의 가정사와 더불어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기철은 자신의 아버지가 교회에서 아들을 연세대 재학생으로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그가 입을 털기 전까지는 진짜 연세대생인줄 알았다는 내막은 추호도 모르는 듯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모른척하고 그의 변명을 들었다. 그러고는 맹랑한 척 조건을 내걸었다. 이 사실을 숨겨주는 대신에, 피지행 비행기 명단에 우리 엄마를 빼달라고 했다. 기철은 나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 해 나의 여름이 기약 없는 구조요청으로 점철되고 있었음을 기철은 몰랐을 것이다. 엄마를 사탄의 속삭임으로부터 구원하여, 나를 구원하라고 기도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번민하며 절박했다. 그리고 어른들의 비폭력적 무관심과 방임에 거듭 절망한 나는 순수함을 불온함으로 갈아 끼워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 기철의 입김으로 엄마는 피지 이주 명단에서 빠졌다. 나는 한 며칠 눈물만 흘리는 엄마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했다.
나는 기어코 기철에게 십오 만원을 뜯어냈다. 위협의 범위가 지우와의 부적절한 관계로까지 물밀듯 퍼지자 기철은 황급히 나를 입막음시키며 곧장 현금인출기로 데려갔다. 십오 만원을 토해낸 그는 이젠 이런 협박 다신 안 통할 거라는 으름장으로 마지막 자존심을 부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귓바퀴를 얼리는 매서운 바람이 무색하게 자꾸만 차오르는 땀을 몇 차례나 다시 닦아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오늘 엄마 만나고 왔어요.”
그랬니. 이모의 목소리는 피곤에 잠겨 있었다.
“엄마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생활비 삼십 만원 이모한테 전해주래요. 공장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깜빡했대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는 거래요. 이모가 걱정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그 사이비 종교에 사기 당한 뒤로는 진짜 연 다 끊고요, 저도 그렇고 엄마도 정말 한 번도 간 적 없고... 이모 말대로 집까지 다 날리고 저랑 엄마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된 거, 다 사이비 그 놈들 때문인데, 어떻게 다시 거기로 가겠냐고. 엄마도 분이 안 삭히는지 그 얘기 하니까 역정을 막 내고... 엄마가 쓰는 가계부도 슬쩍 봤는데요, 제일은혜교회 계좌로 빠져나간 돈은 한 푼도 없었어요. 그 사기꾼 목사가 지어낸 엉터리 성경도요. 여튼 이모, 저 이번 달도 이모 집에서 살 수 있는 거죠? 제가.”
이모는 떨리는 한숨 한 번으로 애써서 쌓아올린 나의 엉성한 거짓말을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그건 어른들의 특권이었다. 나는 목이 메어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모가 내뱉는 정확하고 담담한 음절과 그것을 이루는 음소의 조각, 음성의 기류 따위가 나를 순식간에 풀어헤치는 듯, 옭아매는 듯, 그러다 다시 발가벗기는 듯 했다. 나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와 아득히 멀어져 갔다. 그 모든 해체의 과정이 놀랍도록 차분하게 느껴졌다.
달희야, 친구들 돈 훔쳐서 그 삼십 만원에 보탠 거니. 선생님 전화 오셨다. 오늘 학교에서 십 만원 도난사고가 있었다며. 선생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범인이 달희 너라는 친구들 증언이 많아서 상담실에 따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시더라. 마지막 회유책으로 에이포지에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 다 적으라고 하고 나갔는데, 돌아오니까 서랍 안에 넣어둔 학급비 오 만원을 훔쳐 갔더라면서. 달희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믿어주고 덮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고. 달희야, 이모 좀 봐줘라. 나보고 널 뭐 어떻게 하란 말이니. 네 엄마에 대해서도,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모는 모르겠다. 전에 너희 옆집 사셨던 엄마 친구 분이랑 통화했어. 그 사이비 목사 놈 장삿속에 말려 들어서 피지까지 갈 뻔 했다며. 피지가 하나님의 땅이라고, 지구 종말에 남을 마지막 낙토라고. 그 말도 안 되는 설교에 취해가지고 피지 옥수수농장 문턱까지 갔었는데, 자기가 뜯어말려서 겨우 한국에 남은 거라고 그러더라. 사실이니? 나 정말 너희 모녀 무섭다, 이젠. 어디까지 숨길 셈이야? 집 날린 것도 사기 당한 게 아니라, 그냥 그 황목사라는 인간한테 갖다 바친 거 아니야? 생활비 늦은 적 한 두 번 아니지만 이젠 그런 거 하나도 안중요해. 나라고 너 안 불쌍할까봐? 근데 너 데리고 살다가 너희 엄마, 어? 너보다 더 큰 빚덩이 지고 언니, 언니-하고 돌아오면 내 새끼는 내 남편은 어쩌고. 그 뿐이니?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집에선 발소리도 안내고 살더니. 나 참 기가 막혀서. 내가 이제 널 어떻게 믿니? 사이비에도 내 눈 피해서 몰래 다니는지 어떻게 알아? 달희야, 얘, 달희야. 달희야.
그 날 밤, 달석의 집으로 갔다. 달석 책상 위의 성경과 원서를 번갈아 읽었다. 성경의 구절도 원서의 영어도 알아먹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나는 달석에게 황목사 말하는 천국을 믿느냐고 했다. 달석은 고개를 저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학설을 믿느냐고 했다. 달석은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 교리가 사이비인 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나랑 같은 교회를 다녔냐고,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어째서 지구평면설을 제창하는 책을 들고 다니느냐고. 나는 조금 울분에 차서 따졌다. 달석은 진실을 좇는 건 물 위를 걷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둥근 지구를 둥글게 그리려고 악을 쓰는 것보다, 그냥 평평하다고 생각하고 누워버리는 게 더 살만하다고 했다. 난생 처음으로 밤을 새며 달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달석에게 얼마나 내 이야기만을 고집하고 있었는지 알았다. 더불어,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 말하는 동시에 남의 인생을 곡해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도 깨달았다. 보일러 선 위에 급히 장판을 덧댄 것 같은 방바닥은 공간이 떠서 울퉁불퉁했다. 물 위의 걷는 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달석의 손을 잡았다.
다음 날 나는 성경과 원서 책을 들고 ‘동인 헌책방’으로 갔다. ‘동인 헌책방’은 항상 그랬듯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성경의 맨 뒷장을 찢었다. 그 위에 참회의 기록을 적어냈다.
B중학교 3학년 5반 학급비 절도 : 50,000
‘동인책방’ 금고 털이 : 70,000
기철에게 공갈 및 협박 : 150,000
그리고 그 위에 이십칠 만원을 담은 봉투를 올려놓으려다가 한참의 숙고 끝에 이십 만원은 도로 빼갔다. 이 이십 만원이랑 내가 가진 이만 사천 원, 그리고 신달석 담배비 오천 원 합쳐서, 우리 도망가야겠다. 여기보단 덜 춥고, 피지보다는 덜 따듯한 곳으로. 탈출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당선소감>
"소설을 내 삶의 한 축으로 두기로 결정"
어떤 일들은 그것이 가진 물리적 시간성을 초월하는 공백기를 필요로 한다. 수십 번의 새벽을 연료처럼 태우고 난 뒤에야 해석이 가능해지는 고대의 상형문자 같은 사건. 나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그런 류의 일이었다. 동네 마트에서 당선 전화를 받은 그날부터 수상소감 마감일 알림 문자가 온 오늘까지, 나는 신춘문예라는 거대한 이름과의 일정한 거리를 조정하려 갖은 애를 썼다. 과도하게 사로잡힌 상태로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겪은 바 없는 성취와 행운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나는 매일 더 밀착해오는 꿈같은 현실이 여전히 혼란스럽다.
수능을 치른 후,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내가 고등학교 3년 동안 예상했던 경우의 수보다 훨씬 좁고 인색한 것이었다. 경영학과와 한국어문학과를 두 손에 쥐고 각자의 경중을 비교하면서 나는 내가 현실과 이상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흑백논리나 다름없는 빈곤한 식견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상의 카테고리에 속해있었던 한국어문학과에 진학하여 소설이라는 장르를 내 삶의 한 축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소설가 함정임 교수님을 만났다. 함정임 교수님의 강의는 내가 이 학과에 진학하며 진정으로 꿈꾸었던, 오롯이 소설을 위한 소설에 의한 강의였다. 그래서 교수님의 커리큘럼을 따르는 일에는 특별한 목적이 필요치 않았다. 마치 자성에 이끌리듯 자연스레 모든 강의를 수강했다.
‘평평한 지구, 탈출기’는 그 커리큘럼의 대미를 장식한 ‘소설 창작과 현장작가연구’ 수업 중에 완성한 나의 첫 단편소설이다. 함정임 교수님이 없었다면 지금 당선소감을 쓰고 있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서사를 향한 나의 꿈은 이따금씩 명료하게 떠올라 나를 숨 가쁘게 하다가도 흔적도 없이 침전되어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제자리걸음만 계속되던 어느 날 광남일보 신춘문예가 나의 작고 허름한 방 안으로 불시착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껏 나의 삶에 소설만큼 소설다운 존재는 없었다는 것이다. 소설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가, 한 문단을 며칠에 걸쳐 고쳐 쓰는 자아도취 프로페셔널이 되었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문장이, 벼랑 끝의 나를 구원하기도 했다. 창작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감각. 나는 이 감각을 영원히 사랑하고, 오랫동안 이에 무뎌지지 못해 날이 선 글을 쓰고 싶다.
미흡한 글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광남일보에 감사드린다. ‘평평한 지구, 탈출기’를 정성스레 읽고 평해준 학우들, 영혼의 삼발이에게 고맙다. 단 한 순간도 내 편이 아닌 적 없었던 우리 가족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한다. 나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무언가를 믿지 않고는 살아가기엔 버거운 날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들이 주는 사랑에 기대어 이겨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빠른 쾌유를 기도합니다.
● 부산 출생
●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재학
<심사평>
"경쾌한 문장·거침없는 진술 매력적"
문학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지만, 그래도 여전히 쓰고자 하는 욕망만큼은 식지 않아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응모편수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놀라웠지만 여전히 세대를 불문하고 문학을 꿈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또 놀라웠다. 응모 편수가 거의 모두라 할 만큼 자연이나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겪는 커다란 갈등보다는 한 개인의 사소한 일상들을 다루고 있어 우리의 삶이 그만큼 파편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주제 역시 해마다 그 해의 이슈에 따라 쏠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쏠림도 없었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작가만의 개성적 문장으로 서술해나가면서 재미는 물론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 까닭에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쓰는 내내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문제의식과 더불어 삶에 대한 성찰, 안정된 문장과 상황을 잘 묘파해내는 표현력은 작가가 갖춰야 할 기본적 조건들이다. 여기다 이야기에 걸맞는 개성적 인물과 완결된 플롯이 만났을 때 비로소 작품의 완성도와 더불어 작품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문제의식이 부족하거나 갈등이나 긴장감이 없이 밋밋했다. 그러다보니 인물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이야기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나마 비문과 오문과 단어의 오용은 크게 찾아볼 수 없어 다행이었다.
우선 끝까지 남은 작품은 ‘평평한 지구, 탈출기’, ‘신발’, ‘물들어본다’, ‘앨리스의 시간’ 등 4편이었다.
‘물들어본다’는 안정적인 문장과 차분한 전개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큰 사건이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다소 지루한 감을 주었다. ‘앨리스의 시간’은 미세한 감정의 파동들을 섬세하게 잘 묘사해냈지만 인물의 관계와 서사의 흐름이 식상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발’은 진정성이 돋보여 읽고 난 뒤 여운이 남았다. 문학의 힘은 삶의 여정에서 얻은 통증과 갈등을 들여다보고 그걸 사회화하는 것에서 나온다. 신발이 주는 상징도 좋았고, 지난한 삶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아픔을 진솔하게 진술하는 작가의 태도도 좋았다.
‘평평한 지구, 탈출기’는 경쾌한 문장과 거침없는 진술이 꽤 매력적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의 완급을 잘 조절해냄으로써 재미를 잃지 않은 것도 장점이었다. 자칫 이분법적인 윤리관에 함몰될 수 있는 위험마저도 개성적 인물과 생생한 표현력으로 잘 극복해 냈다.
당선작을 놓고 ‘신발’과 ‘평평한 지구, 탈출기’를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평평한 지구, 탈출기’가 갖고 있는 인물과 플롯, 문장이 ‘신발’보다 우세해 ‘평평한 지구, 탈출기’를 당선작으로 올렸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와 함께 좋은 작품을 쓰라는 격려를, 다른 분들에게 실망하지 말고 계속 작품을 쓰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심사위원 : 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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