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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덩굴장미 / 김영삼

 

저 불은 끌 수 없다


차가운 불


소나기 지나가자 주춤하던 불길 거세게 되살아나 담장을 또 활활 태운다 잔주름 늘어나는 벽돌담만 녹이면 단숨에 세상을 삼킬 수 있다는 건가 막무가내로 담장을 오르는 불살, 한 번도 불붙어 본 적 없는, 마를 대로 마른 장작 같은 몸뚱이 확! 불 질러 놓고 재 한줌 남기지 않고 스러져도 좋을 무덤, 큼직한 불꽃이 서로 팔들을 엮고 저들의 등을 밟고 올라선 불꽃들이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룬 곳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불을 다오, 저들의 영토에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


불똥은 땅에 떨어져 꽃으로 자꾸 피어나는데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



  <당선소감>


   나의 詩는 제로… 100을 향해 달려간다


  퇴근 준비를 하다가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내가 쓰던 작은 방을 망연히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그러면서 대책도 없이 큰 일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詩 농사를 지으면서, 나는 농사법이 서툰데다 게으름까지 겸비하고 있어 나의 수확은 늘 초라하여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시 농사를 다시 지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던 터다.

  시는 제로(0)와 백(100)의 싸움이라고 한다. 백이 아니면 나머지는 다 제로여서 중간이 없는 장르가 시라고 나의 스승은 항상 말한다. 나는 백을 향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늘 2%가 부족하다. 하여, 아직은 나의 시는 제로다. 당선 소식이 백의 목표까지 꼭 달려가서 소음이 아닌 귀에 즐거운 경적을 울려보라고 교부해준 임시면허증을 받은 느낌이다. 한적한 곳에서 부단히 주행연습을 하여 당당하게 대로에 나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안다.

  많이 부족한 글을 뽑아준 심사위원들에게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詩作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와 어머니, 착한 아들 다빈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강릉원주대학교 시창작반 문우들, 악당들, 냉정한 평가를 아끼지 않던 무명 비평가, 큰 힘이 되어주었던 홍종화 시인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 강원대 체육교육과 졸업.
 ● 강릉원주대 시창작반 수료.
 ● 율곡중 교사.
 



  <심사평>


  참신한 언어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좋아


  금년도 응모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작품 수는 많았으나 특출한 작품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언어의 시들과 신춘문예라는 옷을 입고 등장한 작품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은 자칫 진실성이 결여되어 가식적이고 허영적인 글이 되기 쉽다.

  이번 심사에서는 오늘 이 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시, 새로운 언어감각의 시, 그리고 신인다운 특성과 참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본심에 올라온 열다섯 분의 작품 중 오영애씨의 `흰 꽃이 지다'는 언어감각은 뛰어났지만 주제의식의 깊이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정솔씨의 `공룡능선'은 비유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당선작인 김영삼씨의 `덩굴장미' 외 `初冬'은 뛰어난 언어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좋았다.

  예를 들면 `덩굴장미'를 `차가운 불'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또한 “자신이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라는 비유는 매우 신선하고 감각적이었다. 주제의식 역시 보편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특히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라는 표현은 생명의 상징성을 아이러니한 표현 기법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이었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이승훈, 이영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