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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얼음 창고 / 이경숙

 

- 새로 단장한 사주문 옆의 얼음 창고는 더 낡아 보였다

- 문 씨는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창고 문이 사라졌어!”

- 새롭게 칠한 붉은색 창고 벽은 두세 조각으로 부서졌다

- 문 씨가 전기톱으로 사주문 나무 기둥을 자르고 있었다


나는 얼음을 자르고 있는 문 씨를 보았다. 두 동강이 난 얼음은 자로 잰 듯 길이가 비슷해 보인다. 문 씨는 소매로 땀을 훔쳐내고 한 토막을 다시 자르기 위해 얼음 위에 홈을 파고 전기톱을 가져다 댔지만 전원은 켜질 듯하다 이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잠잠해졌다. 플러그를 뺐다 다시 꽂아 보았지만 전기톱은 움직이지 않는다. 수염이 듬성듬성 있는 턱에 땀이 맺혔다. 전기톱과 씨름하던 그는 톱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무리 만져도 손에 익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허리를 두드리며 서 있는 문 씨를 보다 얼음 창고 문이 눈에 들어왔다. 창고 문은 문 씨의 바지처럼 낡았고 못 보던 종이가 붙어 있었다. 5월 20일까지 창고를 철거해 달라는 내용의 공고문이었다. 한 달 전부터 환경미화를 위해 무허가 건물을 철거한다는 현수막이 상가 앞에 걸려 있었다. 커피잔을 평상 가장자리에 놓았다. 나는 상가에서 ‘커피 이모’로 통했다. 상가를 누비며 배달을 하다 보니 얻은 별명이다.

문 씨가 전기톱을 처음 사용했을 때가 생각났다. 내가 신신 상가에 발을 디디고 자리를 막 잡던 시기였다.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의 남자가 얼음을 자르고 있었다. 연장은 나무 자르는 톱을 사용했다. 톱날이 얼음에 닿을 때마다 하얀 눈이 평상에 쌓였다. 눈처럼 부드럽게 뭉쳐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에 전해지는 시원한 느낌은 눈과 같았다. 얼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내 모습을 보고 문 씨가 상가에 뭐 하러 왔냐고 물었다. 봄볕 같은 따뜻한 말투였다. 나는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할 거라고 했다. 문 씨의 도움으로 얼음 창고 옆 상가를 얻을 수 있었고, 그가 부재중일 때 얼음을 대신 팔아주곤 했다. 커피 배달이 잦아질 쯤 문 씨의 나무 톱이 부러져 버렸다. 얼음에 홈을 파주지 않아 이에 물렸다고 했다. 얼음에도 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문 씨가 공고문을 잡아뗐고 네 조각으로 찢었다. 떨어진 종잇조각 너머로 사주문의 기둥이 보였다. 신신 상가를 살리기 위해 홍보 차원에서 짓는 문이다. 현판만 달면 문 준공식을 할 거였다. 사주문의 첫인상은 짓다 만 절처럼 보였다. 벽 없이 지붕과 기둥만 덩그러니 세워져서 어떻게 보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갈색과 초록으로 단층을 칠하는 데 꼬박 보름이 걸렸다. 화사한 단층은 신신 상가의 녹슬고 오래된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이면 기둥의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져 인도를 어두침침하게 했다.

사주문 건설업자인 엄 소장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주문 뒤에 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조각난 공고문을 힐긋 봤다.

“내일까지입니다.”

문 씨는 엄 소장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커피 이모 넉 잔.”

엄 소장은 커피를 자주 시켜 먹었다. 사주문 공사를 하면서 커피 매출은 늘었다.

“아 그러고, 얼음을 다른 걸로 써. 어제 먹고 배탈 났어.”

그 말을 듣고 문 씨가 얼음을 자르던 평상에서 내려섰다. 엄 소장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문 씨의 눈가가 반짝였다. 너무 작아 있는 듯 없는 듯한 문 씨의 눈동자를 확실하게 보기는 처음이었다. 번들거리는 눈빛이 얼음을 닮았다. 차갑고 서늘했다. 나는 두 사람을 떼어냈다. 문 씨와 엄 소장이 싸움을 한다면 커피 판매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얼음도 식품인데 위생에 신경 써야 안 됩니까? 매연에 절은 음식은 불량식품이죠.”

엄 소장은 문 씨를 보며 어린아이 놀리듯 한마디를 더 하고 사주문 쪽으로 갔다.

승강장에 버스가 서더니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무리의 사람들을 싣고 떠났다. 문 씨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평상 위에 남아 있던 얼음가루를 얼굴에 문질렀다.

사주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엄 소장이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옮기면 어떨까요?”

“눈에 거슬리지 않네요. 사주문이 잘 보이겠어요.”

엄 소장의 고갯짓 한 번에 삽차는 승강장 표지판으로 다가섰다.

신신 상가가 생긴 이래로 장승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승강장 표지판에 끈이 매어졌다. 엔진이 몇 번 기합소리를 내자 표지판의 밑동은 쉽게 흔들렸다. 삽차의 힘은 표지판의 저항을 순식간에 없앴고, 파르르 떨고 있던 기둥은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버려진 고철처럼 누워 버렸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지나치던 승강장 표지판은 끈에 매달려 삽차가 움직이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얼음 창고 앞으로 옮겨졌다. 고철이 되어버린 승강장 표지판은 어떤 이정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문 씨는 창고 옆에 누워 있는 표지판을 노려봤다.

“불법 건물 철거반이 오면 나중에 한꺼번에 실어 가면 돼!”

엄 소장이 인부들이 다지는 땅을 지켜보며 말했다.

“깨끗해졌네요.”

남자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주문 앞으로 간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엄 소장에게 말했다.

“저, 저 얼음 창고 빨리 치워요.”

“내일이면 끝납니다.”

문 씨가 남자에게 다가서려 하자 엄 소장이 막고 나섰다. 햇빛에 바래 누런색을 띤 창고는 버스표지판 하고 같이 신신 상가 입구에서 삼십 년을 지냈다. 문 씨는 얼음 창고를 올려다봤다. 글자는 지워져 흔적만 보이고 녹물과 찌든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새로 단장한 사주문 옆의 창고는 더 낡아 보였다. 엄 소장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이 집 얼음 먹으면 배탈 난다고, 위생과에 신고해 버릴까?”

문 씨가 얼음을 자르는 평상 위로 뛰어올랐다. 자르다 만 얼음 두 덩이가 햇볕 아래서 녹고 있었다. 문 씨는 한 덩이를 엄 소장에게 던졌다. 바위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얼음은 몇 바퀴 구르더니 엄 소장 앞에 멈췄다. 엄 소장이 얼음에 발을 올리고 문 씨를 쳐다봤다. 얼음이 녹으면서 안전화에 묻어있던 흙이 섞여 흘렀다. 문 씨는 엄 소장에게 한 덩이를 마저 던졌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얼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파편이 승강장 표지판을 맞혔다.

“엄마, 겨울이 다시 와?”

구경을 하던 아이 하나가 부서진 얼음을 보고 말했다. 엄 소장은 문 씨를 뒤로하고 남자와 사주문 쪽으로 사라졌다.

“사장님 각얼음 하나 줘요.”

나는 문 씨를 살피며 말했다.

“오늘은 장사 그만할래. 다른 데 가서 사.”

문 씨는 창고 문을 잠그고 사주문과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매지구름 한 조각이 하늘에 떠 있었다.

오후 들어 햇살이 피부를 뚫고 들어올 정도로 강해졌다. 민소매 셔츠를 입었지만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각얼음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엄 소장이 안전화에 묻은 흙을 털면서 들어왔다.

“빙수 하나.”

커피를 하루에도 네댓 잔을 먹는 엄 소장이다. 커피를 타려던 손을 멈추고 얼음을 갈았다. 파란색 투명 그릇에 설산처럼 쌓인 얼음가루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걸터앉은 엄 소장의 시선이 빙수 그릇에 고정되었다. 팥과 연유를 넣은 빙수였다.

“선풍기 없어?”

빙수를 입에 떠 넣으며 엄 소장이 말했다. 오월인데도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공사는 언제 끝나는데요?”

“현판만 달면 돼.”

빙수 안의 팥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며 엄 소장은 입을 그릇에 가져다 댔다. 빙수를 먹고 남은 그릇에는 으깨지다 만 팥들이 남았다. 투명한 밑바닥에 쌓인 팥의 모습이 작은 동물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 소장은 남은 팥을 숟가락으로 으깼다. 팥의 둥그런 형체는 사라지고 진흙탕 같은 팥물이 그릇을 채웠다. 흙바닥에서 뒹굴며 녹아가던 문 사장의 얼음이 생각났다.

“얼음집은 언제 떠난대?”

그릇을 한편 귀퉁이로 밀치며 말했다.

“여기 터줏대감인데 비키겠어요. 그 땅 불하받으려고 알아보던데.”

“아이고 두야.”

빙수를 빨리 먹어서인지 아님 문 씨 때문인지 엄 소장이 머리를 감쌌다. 엄 소장의 찡그린 얼굴을 보며 얼음 창고 문을 닫던 문 씨를 떠올렸다. 얼음 창고가 없어지면 문 씨가 어디로 갈지 궁금했다. 다른 곳에 상가를 얻더라도 지금처럼 익숙해지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그의 나이 오십이 넘었다. 망설임이 있을 수밖에.

“아까 같이 있던 사람은 누구예요?”

“구청 건축과 공무원. 사주문 보러 왔잖아.”

“창고 살릴 방법 없을까요?”

“벌써 끝난 일야.”

엄 소장은 안전화에 묻어있던 흙을 손가락으로 긁어냈다. 잘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씨름 중이다.

“이놈 왜 이렇게 질겨.”

엄 소장의 목소리가 어른 하나가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좁은 커피숍 벽면을 때렸다. 더위 때문인지 냉장고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좁은 실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엄 소장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문으로 문 씨가 들어왔다.

“커피 이모, 창고 문 봤어?”

“네?”

빙수 그릇을 치우며 쳐다본 문 씨의 얼굴에는 팥죽색 땀이 흐르고 있었다. 즐겨 신던 장화가 아닌 못 보던 낡은 운동화를 신었다.

“문을 왜 여기서 찾아!”

엄 소장이 손부채를 하며 말했다. 문 씨가 그제야 그를 발견했는지 흘끔 봤다. 엄 소장은 허리를 펴며 등을 벽에 기댔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문 씨를 봤다. 문 씨는 손을 맞잡고 비비기 시작했다. 수금하러 올 때마다 보던 버릇이다. 얼음값 달라는 말을 못 해 한참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얼음 창고 문이 사라졌어!”

“문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왜 없어져요?”

문 씨는 내 손을 잡고 끌었다. 얼음 창고는 치아가 다 빠진 할머니의 입처럼 구멍이 났고 문이 있어야 할 곳에는 비틀린 경첩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 씨는 얼음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파이프에 맺힌 성에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바닥에 있는 긴 얼음은 가운데부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문 씨는 녹고 있는 얼음을 냉기가 남아 있는 벽면 쪽으로 밀고, 고인 물을 퍼냈다. 냉동고 지붕 위에 있는 팬은 문 씨가 물을 퍼내는 속도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바닥에 흥건하던 물이 없어지자 문 씨는 허리를 폈다.

나는 얼음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에어컨을 튼 것처럼 시원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식용 각얼음은 벌써 다 녹았는지 봉긋하던 봉지가 납작해졌다. 새로 거래를 할 얼음집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언제 왔는지 엄 소장이 손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며 얼음 창고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평상 위로 뛰어오르더니 얼음 창고로 들어왔다.

“으, 시원타.”

엄 소장을 보던 문 씨는 얼음처럼 굳었다. 이마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고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물의 수위가 다시 올라갔다. 엄 소장은 신발 바닥에 묻어있던 흙을 바닥에 비비며 닦아냈다. 얼음물은 흙탕이 되었다.

엄 소장이 어깨를 밀면서 밖으로 나섰다. 문 씨는 투명하던 얼음이 점점 탁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손에 들고 있던 바가지를 놓쳤다. 붉은 바가지가 물 위를 떠다녔다. 천장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바가지 안으로 떨어지며 얼음 창고 안이 울렸다.

“얼음을 지켜야 돼.”

문 씨의 혼잣말이 창고 벽면을 치며 떠다녔다.

“문 사장님, 큰 비닐을 구해서 입구를 막아요.”

내 제안에 정신이 든 듯, 창고 밖으로 나온 문 씨는 상가 철물점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의 녹색 조끼가 시야에서 점점이 사라졌다.

“이사 비용 부담할 수 있는데.”

엄 소장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장판이 된 창고가 그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엄 소장이 입꼬리를 무너뜨리며 웃었다. 문 씨가 한자리에 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문 씨가 파란 비닐천막을 들고 나타났다. 천막은 입구를 가리기에 충분했다. 누렇게 낡은 창고와 파란색 천막은 어울리지 않았다. 창고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파랗게 질려버린 혀를 늘어트리며 죽어가는 동물처럼 보였다. 문 씨는 창고 안의 냉기가 새지 않게 하려고 천막을 바닥에 고정했다. 벽돌 세 개가 나란히 줄지어 섰다. 천막의 주름을 펴려고 문 씨는 다림질하듯이 손을 놀렸다. 죽어가는 동물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듯 손동작이 섬세했다. 천막의 옆 부분은 미세하게 벌어졌고 그 틈으로 냉기가 새어 나왔다. 문 씨는 평상에서 뛰어내려 창고를 바라봤다. 벗어진 이마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렸다.

“다행이다.”

문 씨가 흘러내린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시발, 더 흉측해졌네.”

엄 소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문 씨를 바라봤다. 인부로 보이는 남자가 엄 소장을 향해 다가왔다.

“사장님, 현판 달 위치 확인해 주소.”

엄 소장은 남자를 따라 사주문을 향해 잰걸음으로 갔다.

“문 사장님, 창고 문은 어떻게 할 거예요?”

“찾아야지. 아침까지도 멀쩡하던 문이 사라졌잖아.”

“고물상부터 가보죠.”

문 씨는 내 말에 동의하며 두 정거장 위에 있는 고물상을 향해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상가의 간판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는 아직 지평선으로 내려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냉장고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고,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커피 배달 주문도 뜸해졌다. 주판에서 얻어온 냉장고 유리문에서는 연신 물이 흘러내렸다. 행주로 유리문을 닦아내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 씨가 흙 묻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냉커피 하나 말아줘.”

커피잔을 받아든 문 씨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사장님, 문은 찾았어요?”

문 씨는 커피를 냉수처럼 벌컥 들이켜다 말고 나를 올려다봤다.

“수레 좀 빌려줘. 빌어먹을 것들.”

출퇴근할 때 밀고 다니는 수레를 내줬다. 수레를 물끄러미 보던 문 씨가 종이컵을 우그러뜨렸다.

“거기다 갖다 버리면 못 찾아낼 것 같아?”

“어디 있던데요?”

“나 좀 도와.”

나는 선뜻 따라나섰다. 문이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고 주의’라는 노란색 팻말이었다. 해거름에 힘을 잃은 빛은 창고 문을 누더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사주문 공사를 하면서 철거된 보도블록과 기와 공사를 하면서 남은 황토와 기초 공사를 하면서 버려진 흙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창고 문 표면에는 찍혀 움푹 팬 상처가 여럿 나 있었다. 문 아래쪽에는 황토가 덕지덕지 묻었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은색 속살이 드러났다.

문 씨는 ‘사고 주의’ 팻말을 발로 차버렸다. 폐자재가 늘어놓아져 있는 공터로 들어가 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다. 문은 일어날 듯하다가 드러누워버렸다. 무게 때문에 일으켜 세우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힘에 부치는지 문 씨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문 사장님, 내일 사람 불러서 옮겨요.”

문 씨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공터로 들어갔다. 문을 앞뒤로 잡고 끌다시피 해서 수레에 겨우 실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얼음 창고 입구를 막은 천막은 어둠 속에서 검은 맨홀처럼 보였다. 문 씨는 문을 문틀에 맞추기 위해 조금씩 움직였다. 갑자기 눈이 부셨다. 사주문에 설치한 조명시설에 불이 들어왔다. 경주 안압지에서 본 적이 있다. 밤인데도 안압지의 건물들이 낮에 본 것처럼 환하게 보였다. 잠깐 암흑이 찾아왔다가 사물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문 씨도 손으로 눈을 비볐다. 온몸으로 받치고 있던 창고 문이 순간 흔들거렸다. 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그나마 붙어있던 경첩은 떨어져 나갔다.

창고 안이 불빛에 드러났다. 흘러내리던 물은 얼어서 고드름이 되었고, 바닥에 두껍게 언 얼음은 아이스링크를 연상시켰다. 쌓여 있던 장 얼음은 녹아 바닥과 하나가 되거나 호수 안의 인공 섬같이 솟아 있기도 했다. 얼음을 자르는 데 쓰이는 연장에는 살얼음이 덮여 있었다. 걸어 놓았던 집게가 흔들리면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살얼음이 떨어졌다. 문 씨의 이마를 때렸고 혹이 뿔처럼 부풀어 올랐다. 문 씨는 눈을 끔뻑거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경첩을 주워 문 씨는 주머니에 넣었다. 문을 안고 일으켜 세웠다. 문은 겨우 네 귀퉁이가 맞게 들어갔다. 창고 지붕에 있던 팬이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창고 문에 팬 흠집을 보던 문 씨가 사주문 지붕을 흘겨봤다.

“어떻게 하면 넘어질까?”

“뭘요?”

나는 문이 사라진 충격을 이제야 받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문 씨는 신중한 걸음으로 사주문을 향해 나아갔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사람이 버스 승강장이 없어졌다며 두리번거렸다. 문 씨는 손짓으로 창고 앞으로 옮겨간 버스 표지판 기둥을 가리켰다. 가로등의 희미한 빛을 받고 있는 기둥은 눈에 선뜻 띄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얼음 창고 주변을 뱅뱅 돌면서 당황해했다. 내가 창고 앞에 있다고 말하자, 없어진 줄 알았다고 했다. 막차가 아직 가지 않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주문을 가리키며 뭐냐고 물었다. 전통 한옥 양식의 문이라는 내 말에 돈이 썩어난다고 했다.

사주문의 네 기둥은 골리앗 크레인의 거대한 다리처럼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육중한 다리는 문 씨를 밟아 으스러뜨릴 것 같았다.

문 씨는 상가 안쪽을 향해 서 있는 기둥을 힘껏 안았다. 흰색 기둥에 황토색 무늬가 생겼다. 문 씨는 기둥을 오르려다 번번이 미끄러졌다. 그가 두 팔로 안기에는 기둥이 너무 두꺼웠다. 문 씨가 기둥과 씨름하는 사이, 엄 소장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엄 소장을 가로막았다. 엄 소장이 나를 밀치고 문 씨의 허리를 잡아끌었다. 문 씨가 접착제를 바른 듯 기둥에 달라붙었다. 문 씨와 엄 소장의 실랑이가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엄 소장이 문 씨를 기어이 기둥에서 떼어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문 씨가 엄 소장을 향해 검은색 물건을 꺼냈다. 얼음 창고에서 보았던 집게였다.

“세금 낸다고 했잖아.”

문 씨가 악을 써댔다.

“다 끝난 일 조용히 마무리하죠.”

엄 소장이 손으로 입술을 훔치며 웃었다.

“땅, 산다고 했잖아. 불하받게 손써 줘.”

“도시 환경 해친다고.”

“누구를 위한 문, 문, 문이야!”

문 씨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빛처럼 흩어졌다. 문 씨는 집게로 엄 소장을 집으려 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다리가 잡혔다. 그는 다리를 잡아끌며 얼음 창고 쪽으로 가려 했다. 엄 소장은 균형을 잡으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허벅지에 힘을 줬고 다리를 힘차게 몇 번 흔들었다. 문 씨가 균형을 잃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얼음처럼 넘어졌다. 엄 소장이 집게를 낚아채 도로 쪽으로 던졌다. 차가 지나가면서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두세 번 들리더니 사위가 조용해졌다.

조명에 비친 엄 소장의 입술은 처마처럼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한껏 뻗어 있었다. 눈썹은 서까래를 지탱하는 대들보같이 일자로 이마 위를 가로질렀다. 잡은 먹이를 먹기 전에 여유를 즐기는 포식자처럼 문 씨를 내려다봤다. 문 씨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엄 소장이 앞에 버티고 서 있어서 누구도 문 씨를 일으켜주는 이는 없었다. 문 씨와 눈이 마주치기 싫어 나는 기둥 뒤로 뒷걸음질 쳤다. 뒹굴던 문 씨는 겨우 일어나 앉았다. 엄 소장이 문 씨의 어깨를 누르며 올라탔다.

“참, 말 많네. 엎어져 있으라고.”

문 씨의 옷깃이 조명에 날아드는 나방같이 나풀거렸다. 엄 소장은 가볍게 내려섰다. 문 씨는 휘청거리며 일어나더니 집게가 날아간 어둠 속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폭염주의보는 해제되지 않았다. 커피 배달 주문이 밀려 있었고 오후가 되기 전에 얼음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어젯밤에 벌어졌던 사주문 결투 이야기는 신신 상가에 숨 막히는 더위처럼 퍼졌다. 상가 사람들의 질문에 배달이 더뎌졌다. 얼음 창고 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고 문 씨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오후에 쓸 얼음을 어디에 주문해야 할지 막막했다. 문 씨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멘트가 사라지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음이 있냐는 물음에 문 씨는 오라고 했다.

문 씨는 창고 문에 바짝 붙어 있었다. 비틀어져 있던 경첩도 고쳐졌고 팬 소리도 순조롭게 들렸다. 문 씨는 내가 온 것도 모르고 뭔가를 했다. 인기척을 내자 돌아본 그의 손에는 붓과 페인트 통이 들려 있었다. 벽체는 사주문과 같은 붉은 벽돌색으로 칠해졌고 문은 초록매실 색으로 칠이 되고 있었다. 사주문 천장의 화려한 꽃무늬가 생각났다. 뭐 하냐는 내 물음에 문 씨는 진지한 말투로 답했다.

“예쁜 게 최고라잖아.”

문 씨는 얼음을 내어줄 기색도 없이 칠에만 열중했다. 그는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화가처럼 섬세했다. 문틈의 이음새도 놓치지 않았다. 칠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문 씨는 평상에서 내려와 지긋이 얼음 창고와 사주문을 번갈아 바라봤다. 덧칠을 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붓을 가다듬었다. 가지런히 빗긴 붓은 부드럽게 벽을 쓰다듬는 듯했다. 문 씨는 손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미간에 힘을 주는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이마 주름들이 두드러졌다. 얼음 창고는 새 옷을 입었다. 문 씨는 맵시 꾸미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역량을 어떻게 해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얼음 창고의 옷 갈아입히기가 끝날 무렵 버스의 경음기 소리가 들렸다. 창고 문에 붉은색으로 글자를 적던 문 씨는 손을 삐끗했다. 얼음이라는 글자는 매끄럽게 써지지 않았다. 문 씨는 붓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의 손과 팔에 붉은색과 연두색의 점들이 점박이 문양처럼 프린트되었다. 그가 문 옆에 선다면 사주문의 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 문 씨가 서 있는 평상에 시선이 갔다. 얼음 창고는 새 옷을 입었지만 평상은 낡은 그대로였다. 중간에 덧대어진 나무가 연해 두드러져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멍이 뚫렸다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칠을 할 거면 평상도 해야지 왜 빼먹었는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문 씨가 내게로 걸어왔다. 연두색 바탕의 붉은 글씨는 눈에 잘 띄었다. 얼음 창고가 여기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흡족한 미소를 본 것 같았다. 문 씨는 갈 때는 깨끗하게 가야지, 하며 중얼거렸다. 의아해하는 나를 뒤로하고 그는 버스 승강장으로 갔다.

승강장은 위치를 옮겨서 그런지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세웠던 표지판의 모습이 달라져 보였다. 다리가 하나인 것도 그대로, 녹물이 흘러내린 흔적도 그대로, 정차하는 버스 번호도 그대로였다. 문 씨가 표지판을 잡더니 힘을 쓰기 시작했다. 얼음 창고 앞으로 옮겨온 승강장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삽차가 땅을 파서 묻고 난 후 시멘트로 마감을 해 놓았다. 문 씨가 아무리 힘을 써도 표지판은 움직이지 않았다. 밀고 당기고 씨름을 하는 문 씨가 안쓰러웠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철봉을 잡고 곡예를 하는 원숭이 같았다. 그만두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커피 배달 주문이다. 얼음을 사러 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문 씨를 불러 얼음을 내달라고 했다. 표지판 기둥에 손이 붙어버렸는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알아서 꺼내 가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얼음들이 녹아서 한데 뭉쳐 있던 창고 안이 생각났다. 쓸 만한 얼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문 씨에게 새 얼음을 가져다 놓았냐고 물었지만 아니라는 답만 돌아왔다. 정오의 햇볕에 문 씨의 그림자가 짧아졌다. 냉커피 주문을 받지 못하면 손해가 많이 난다. 근처에 있는 마트라도 가야 했다. 문 씨가 도와달라고 나를 잡았다. 기둥은 뽑히지 않을 거라며 나는 거절했다.

“기울어졌어.”

“뭐가요?”

문 씨가 표지판의 머리 쪽을 가리켰다. 도로 쪽으로 머리 부분이 넘어가 있었다. 문 씨에게 왜 바로 세우려 하는지 물었다.

“이쁘지 않잖아.”

“표지판이 예쁜 거 하고 뭔 상관인데요.”

“기울어져 있으면 언젠가 또 뽑힐 거야.”

나는 얼음 창고와 문 씨와 표지판을 번갈아 봤다. 깨끗한 새 옷을 입고 한낮의 태양 아래 서 있는 얼음 창고는 예뻤다. 삼십 년 세월 신신 상가를 지키고 있던 문 씨와 표지판은 지쳐 보였다. 문 씨는 상가에서 청춘을 흘려보냈다. 젊고 탄탄했던 몸은 구부정한 등과 톱질하다 다친 상처로 남았다. 문 씨의 구부정한 등을 볼 때마다 녹슬어 가는 상가 아케이드가 생각났다. 얼마 못 가 바스러져서 상가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홍보를 위해서 사주문을 만든다는 말이 들렸을 때 반가웠다. 먹고살기가 나아질 것 같았다. 문 씨도 어떤 문이 들어서는지 궁금하다고 말하곤 했다. 얼음 창고 옆으로 보이는 사주문은 신상품처럼 말끔해 보였다. 나도 문 씨처럼 상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사주문이 들어섬으로 해서 상가가 살아난다면 가게의 매출은 오를 것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 씨에게 그만두라고 재차 말을 했다. 그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엄 소장이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엄 소장은 문 씨를 본척만척하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얼음 창고 문에 붙였다. 어제 보았던 공고문이었다.

“한 시에 뜯으러 옵니다.”

얼음 창고 철거가 정해진 듯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문 씨는 일어나지 않고 창고 문에 붙어 있는 종이가 나부끼는 모습만 쳐다봤다.

버스 경음기 소리가 거칠게 울었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 앞에 누워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의 마지막 점멸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온 것 같았다. 버스 승강장은 횡단보도와 가까웠다.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횡단보도에 정차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만 들렸다. 엄 소장도 구경꾼으로 버스 주위를 맴돌았다. 문 씨는 표지판 기둥을 잡고 일어나려고 버둥대다 누워버렸다. 정오의 햇볕이 피부에 닿자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점심시간이 지나 엄 소장은 삽차와 함께 얼음 창고 앞에 섰다. 그는 문에 붙어 있던 공고문을 뗐다. 삽차의 팔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듯이 옆면을 쳤다. 얼음 창고는 부르르 떨면서 버텼다. 문 씨는 창고의 떨림을 주먹을 쥐고 보고 있었다.

새로 이어 붙인 문이 먼저 떨어져 나갔다. 얼음 창고 내부의 냉기가 빠져나오면서 하얀 연기처럼 보였다. 그다음에 오른쪽 벽이, 왼쪽 벽이,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오른쪽 벽이 무너질 때는 얼음이 파편처럼 튀었다. 왼쪽 벽이 무너질 때는 벽면에 영글어 있던 고드름들이 낙과하는 열매처럼 떨어졌다. 천장이 무너질 때는 파이프에 남아 있던 냉매가 쉬쉬 소리를 내면서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뒤쪽 벽만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뒷벽이 무너지면서 얼음들이 하얀 안개처럼 흩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엄마 눈이 내려요! 눈싸움할 수 있겠어요!”

구경을 하며 서 있던 아이가 얼음 가루를 보며 좋아했다. 아이의 웃음이 해맑다. 문 씨는 하늘에서 하늘거리며 내리는 얼음을 손으로 받았다. 그는 입안에 그것들을 털어 넣었다. 문 씨의 볼 근육들이 바삐 움직였다. 땅에 떨어진 얼음들은 데워진 땅의 열기로 녹았다.

엄 소장의 수신호가 다시 내려졌다.

삽차가 넘어진 창고 벽 위로 올라서더니 밟았다. 문 씨가 새로 칠한 붉은색 벽은 두세 조각으로 부서지면서 나뉘었다. 끈으로 묶어진 문은 땅바닥에서 질질 끌려다녔다. 새로 쓴 얼음이라는 글자는 긁혀서 색이 지워졌다. 문은 트럭 짐칸에 실렸다. 창고가 있던 자리는 공터로 변했다. 팥죽색 흙이 드러났다. 그곳에 건물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 씨가 그것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괜찮으냐고 문 씨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박힌 것을 뽑아내는 것이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다.

엄 소장은 구청에서 나온 직원을 안내하며 사주문의 완공 여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현판을 가져오라고 직원에게 지시했다. 엄 소장이 현판의 위치를 잡고 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움직여 보지만 조금씩 어긋났다. 내일 있을 완공식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고 구청 직원이 말했다. 내가 배달한 커피로 목을 축이고 엄 소장이 직원하고 자리를 바꿨다. 현판을 걸던 직원이 천장을 가로지르는 대들보를 가리켰다. 틀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구청 직원이 각도기로 재기 시작했다. 대들보를 받치고 있던 기둥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침하하고 있었다. 신신 상가가 지어지기 전에 미나리꽝이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구청 직원의 질책에 엄 소장의 낯빛이 붉게 바뀌었다.

언제 왔는지 문 씨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얼음을 자르던 전기톱이 들려 있었다. 은색 날이 햇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문 씨가 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늘따라 더 날카롭게 보였다. 문 씨가 전기톱의 전원을 켰다. 기둥 가까이 톱을 가져다 댔다. 엔진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기둥에 홈이 파이고 톱밥이 튀었다. 엄 소장이 문 씨를 말렸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홈이 점점 깊어졌다. 문 씨의 톱날이 얼음이 아니라 나무 기둥을 자르고 있었다. 문 씨의 톱 소리와 엄 소장의 고함소리가 상가 안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어딘가에서 “커피 이모”하고 불렀다.

나는 조각난 얼음 창고와 문 씨를 번갈아 쳐다봤다. 얼음 창고의 조각들을 실은 트럭이 상가를 빠져나갔다. 폭염에 녹는 얼음처럼 문 씨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문 씨를 뒤로하고 가게로 향했다. 전기톱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당선소감>


   "내 글이 꽃 피고 열매 맺을 때까지 매일 쓰겠다"


치자나무의 잎이 마르며 시름시름 앓았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엄마가 보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왜 아끼고, 보듬어 주지 않았냐고. 등짝을 맞은 듯했다. 마른 잎을 자르고 물이 잘 스며들게 화분갈이를 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며칠을 기다렸다. 연둣빛 잎사귀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글을 쓴다고 막상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글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잎이 돋은 나무를 보며 글을 아끼고 보듬은 시간이 얼마였는지 되돌아봤다. 새잎을 돋게 할 만큼 정성을 들였던가. 하루에 한 번은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매일 밥을 먹듯이 글은 써야 한다며 게으른 제자를 부드럽게 타이르셨다. 이것이 아끼고 보듬는 자세일 것이다. 내 글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염원하며 오늘도 치자나무에 물을 준다.

교통사고를 당하셨지만 불굴의 의지로 회복하신 김영웅 엄마, 믿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나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는 이정훈, 네가 내 동생이어서 기분이 좋다. 내 영혼의 동반자 이경욱,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제 기쁜 목소리 들리시죠?

갈 길을 몰라 휘청거리던 제게 지지대가 되어주신 장창호 선생님, 글 잘 쓰고 있냐고 물어주시던 동리목월의 이채형 선생님 고맙습니다. 스터디 문우들, 당신들이 있어서 제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제 손을 잡아주신 조갑상 선생님, 함정임 선생님, 이미욱 선생님, 강희철 선생님과 국제신문에 감사합니다.


  ● 1972년 울산 출생. 
  ● 한국소설 2019년 60회 신인상 물고기 비늘 당선. 
  ● 21세기 소설가 협회 동인.


 

  <심사평>


  지문·대사는 절제력, 주제 관철은 집중력 돋보여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은 10편이었다. 이중 최종 본심 대상으로 ‘잭나이프’ ‘닥터 백’ 그리고 ‘얼음 창고’였다. ‘잭나이프’는 고령화 사회 진입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부모를 매개로 한 가족 서사 유형이다. 이 경우 소설의 본령인 윤리(moral)를 다루는 작가의 관점과 태도, 새로운 인물(관계)을 창조하는 안목과 기술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 소설은 그 지점을 어느 정도 성취하고 있으나, 중반 이후부터 문장과 서사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약화되는 한계가 있었다. ‘닥터 백’은 호주 멜버른을 무대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흘러들어온 한국인 체류자들의 유동적인 삶의 한 시기를 닥터 백이라는 인물과 타로 가게를 중심으로 펼친다. 인물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장악력으로 세부 구성에서 독자의 신뢰와 신비감을 확보했으나 결정적으로 서사 전환의 시간 운용이 불균질하여 맥락적으로 혼선을 빚는 단점을 노출했다.

‘얼음 창고’는 얼음처럼 녹아버리고 사라지는 덧없음과 삶의 패배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새로운 상권을 도모하기 위해 낡은 상가 건물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건설하는 것과 허물어 없애는 것의 대치 상황과 그 끝을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구도에서 승자는 정해져 있고, 서사의 흐름도 짐작 가능하다. 이런 흐름에서 어떤 새로움, 어떤 특징을 찾을 수 있을까. ‘얼음 창고’는 지문과 대사 운용에서 작가의 절제력이 뛰어나고, 소재를 주제로 관철시키는 집중력이 확실하다. 자칫 구태의연하게 흐를 인물과 공간이 작가의 오랜 관찰에서 도려낸 듯 적확하게 묘사되어 행위와 장면이 선명하고 진실하다. 소설가의 자질이 과학자의 관찰력을 전제로 한다는 것, 자칫 간과하는 삶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응모자분들께 격려의 마음을, 당선자에게 축하와 정진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 조갑상, 함정임, 이미욱, 강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