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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스프링클러 / 연지민

 

땅속에 고래가 산다

숨을 내쉴 때마다

분수처럼 하늘로 퍼지는 물줄기

땅속에 숨은 고래

콧구멍만 내놓고

뱅글뱅글 물을 뿜는 걸 보니

너 혹시

140년 동안 아무도 본 적 없다는

부채이빨고래 아냐?


 

  <당선소감>

 

   다음 생도 글밭 언저리에 살겠습니다

  서른, 처음으로 글 숲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냥 가보고 싶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나를 찾아가는, 조금은 가벼운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유혹이 사라진 뒤 마주한 현실은 구중궁궐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문이 가로막았고, 어찌어찌 그 문을 밀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나선 여행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고, 끝나지 않는 길이 되어 문학의 그림자를 좇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칫댈 때마다 그 문들은 더 단단해지라는, 더 열정을 쏟으라는, 더 깊어지라는 강력한 시그널이었습니다. 어둑한 글 숲에서 걷기를 멈추지 않고 문장의 버거움을 견디고 있는 것은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나다운 나였기 때문입니다. 돌고 돌아 글 쓰는 일이 업이 된 지 오랩니다. 그런데도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여전히 시의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이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서 하면 된다는 이 느긋함은 또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저보다 더 안타깝게 바라봐주시고 마음 써주신 분들에게 늦게나마 결실을 보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딸보다 더 소녀 같은 송기순 여사, 산처럼 든든한 가족들, 사랑합니다. 문학의 나침반이 되어주신 임승빈 함기석 시인님, 아동문학에 길라잡이가 되어주신 전병호 박혜선 시인님,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질투와 존경의 대상인 글밭 친구들과 문우들, 그리고 빛나는 순간을 선물해주신 부산일보에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다음 생도 글밭 언저리에서 살고 있겠습니다.  

●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 청주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 충청타임즈 기자


 

  <심사평>

 

  호기심을 부르는 재미·신선함 눈길

  올해 응모 편수는 동시 709편, 동화 190편으로 창작 열기가 대단했다. 동시는 쉬우면서도 강한 울림이 있어야 하는데 어린이에게 낯선 소재가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작년보다 소재가 다양하고 시를 다루는 수준이 높았다. 동화는 대체로 문장을 오래 연마해온 흔적이 뚜렷하여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서사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창조에는 대부분 소홀하여 독자를 사건 속으로 훅 끌고 들어가지 못해 이야기의 재미를 돋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선에 오른 작품은 동시 네 편과 동화 두 편으로 모두 여섯 편이었다. 동화 ‘나는 누구일까요?’는 문장이 건강하고 제목도 좋았다. 그런데 누군지 밝혀보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독자에게 힌트도 안 남기고 작가 혼자 가버리는 바람에 쫄깃쫄깃한 서사를 만들지 못했다. 어려운 상황의 그 ‘누구’는 뚜렷한 캐릭터가 없어 스스로 극복하는 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안이한 결말이 되었다. ‘탐정 구구’는 캐릭터와 문장도 살아 있었으나 마지막에 탐정보다는 착한 어른으로 캐릭터가 변경된 것이 사족이었다. 동시 ‘링거’와 ‘할머니 뿔’은 함축미가 뛰어나고 재미있으나 나머지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았고, ‘소 한 마리’는 은유가 돋보였으나 간결미가 부족하였다. 마지막 남은 ‘스프링클러’는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재미와 신선함이 압권이었다. 작품 수준이 고른 것으로 보아서 오랜 습작 시기를 거쳤다고 보여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견이 없었다. 꾸준한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구옥순, 배유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