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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투명해도 선명한 / 김성욱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병원 로비였습니다.

“넌 무슨 일로 왔니? 난 심장이 안 좋아서 가끔 치료받으러 오는데, 재수 없으면 지금처럼 꼼짝없이 병원에 입원해야 돼.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니? 병원은 참 재미없는 곳이거든.”

  환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옆자리에 털썩 앉아 마치 저를 잘 알고 있기라도 하듯 말을 걸어왔습니다. 처음엔 다른 사람과 착각한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저를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죠. 주위를 둘러봐도 그 아이 곁엔 저밖에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제 표정을 보며 아이가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이상하게 볼 거 없어. 아까도 말했잖아. 병원은 재미없는 곳이라고. 그래서 가끔 여기에 내려와 아무한테나 말을 거는 습관이 생긴 것뿐이야. 침대에만 누워있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쭉 빠져버리거든.”

  그 아이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론 불편했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거든요. 때마침 수납을 마친 엄마가 저에게 손짓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중 그 아이와 또 한 번 눈이 마주쳤습니다.

“내 이름은 최도희야. 너는?”

  유별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에 왠지 마음이 끌렸습니다.

“호영이. 이호영.”

  집으로 돌아와 곧장 침대에 누웠습니다. 새로 꺼낸 이불 냄새에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도희 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저도 도희와 같은 심장병 환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구멍이 났는데,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아프다는 걸 알게 됐죠. 의사선생님은 구멍이 크지 않아 꾸준히 치료 받으면 금방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벌써 몇 년째 듣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항상 천천히 걸어 다녀야했고,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생활도 따분했습니다. 아무도 제 옆에 오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쉬는 시간에도, 점심을 먹을 때도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꼭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도희는 달랐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스스럼없이 말을 걸 정도로 성격이 아주 밝은 아이였습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환하게 웃고 있는 도희의 얼굴이 머리에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뒤 엄마와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는데 의사선생님은 생각보다 치료경과가 좋지 않다고 했어요. 상태가 나빠지면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엄마는 절 걱정스럽게 바라봤습니다. 제가 아픈 게 모두 엄마 아빠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병원 수납처에 가 있는 동안 저는 로비 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어쩌면 도희를 또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때였습니다.

“야, 이호영!”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도희가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 여기서 뭐해? 혹시 날 찾고 있었던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속마음을 들킨다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나 화장실 찾고 있었어. 정말이야. 아까 물을 너무 많이 마셨거든.”

“그랬구나. 난 또 네가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줄 알았지 뭐야.”

  도희가 입을 삐죽 내밀며 저를 지나쳐갔습니다. 이대로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볼 것 같았습니다.

“오늘 검사결과 보러 온 거야. 나도 너랑 똑같은 병이거든.”

  불쑥 튀어나온 말에 도희가 걸음을 멈추고 저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아프다는 신호는 아니었습니다. 그 두근거림을 손바닥으로 느꼈는지 도희가 가만히 미소 지었습니다.

“기특하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열심히 버텨주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동안은 그냥 쓸모없는 심장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도희 말을 듣고 나니 지금껏 버텨온 구멍 난 심장이 왠지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도희는 곧 수술을 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 같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텐데 도희는 아무렇지 않아보였습니다.

“그게 뭐가 무섭니? 빨리 낫기만 한다면 난 열 번이라도 받을 수 있어.”

  도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씩씩한 아이였습니다. 환자복만 아니면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에 입원했을 땐 어딜 가나 항상 링거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도희의 두 팔은 자유로웠습니다. 거기다 수술을 앞둔 사람이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도희가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봤습니다. 수척한 모습의 아저씨가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빠야. 예전엔 무척 건강하고 멋졌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아픈 사람 같아. 그래서 더 힘내고 싶어. 빨리 건강해져야 아빠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까.”

  도희가 의자에서 일어나 준비운동 하듯 팔을 돌렸습니다. 왠지 저까지 힘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도희에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나 또 올게. 내일도 내려와 있을 거지?”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저를 쳐다봤지만 제 눈엔 손을 흔드는 도희밖에 안 보였습니다.

  다음날 학교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섰습니다. 평소 같으면 교실에서 엄마를 기다렸을 텐데, 이 날은 특별히 허락을 맡아 혼자 버스정류장으로 향할 수 있었죠. 학교에서 병원까지 네 정거장 밖에 되지 않아서 혼자 가는데 어렵지 않았어요. 도희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할아버지 한 분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리한테 말했어요. 넌 참 못된 강아지구나, 라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아리가 고개를 푹 숙이는 거 있죠? 꼭 제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어요.”

  제가 가까이 와있는 것도 모르고 도희는 할아버지와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도희를 불렀습니다. 도희가 벌떡 일어나 저를 반겼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친구가 와서 이만 가봐야 하거든요. 다음에 또 재미있는 얘기 해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도희를 따라 저도 할아버지께 인사했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절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본관 옆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햇빛을 가려주고 있어 눈을 찡그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죠.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겨서 즐거웠습니다. 이날따라 말도 술술 잘 나왔습니다.

“우리 학교에도 이만한 느티나무가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야. 교실은 병원처럼 답답해서 싫은데 거기만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심심한 것도 사라지고 혼자라는 생각도 안 들어.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아도 그 나무는 항상 날 기다려주니까. 도희 너처럼 말이야.”

  친구한테 제 감정을 솔직히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쑥스러웠지만 다행히 도희는 제 말을 잘 받아줬습니다.

“우와,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 걸?”

“정말? 분명히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래서 가끔 네가 우리 학교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생각했어. 우리 반 아이들은 너처럼 먼저 말 걸어주지 않거든. 치사하지 않니? 아픈 게 내 잘못도 아닌데 항상 날 투명인간 취급한다니까.”

“바보야, 꼭 누가 말을 걸어줘야 말을 하니? 난 그런 거 답답해서 싫어.”

  당황스러웠습니다. 누구보다 저를 제일 많이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도희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아니, 난 몸이 약하니까 당연히 옆에서 관심 가져줘야 한다는 건데?”

“관심을 안 주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니?”

  도희는 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 반 아이들을 편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널 조심스러워하는 걸 수도 있어. 네가 책상에만 엎드려있으니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거라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도 너랑 똑같은 투명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난 누구보다 수다스럽고 성격도 유별나지. 거기다 예쁘기까지 하잖아?”

  도희가 장난스럽게 입가를 올렸지만 저는 웃을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제 표정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도희가 다독거리며 말했습니다.

“겁내지 말고 네가 먼저 아이들한테 다가가 봐. 내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넌 나보다 더 잘 해낼 거야. 약속할 수 있지?”

  도희가 환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걸 받아주지 않았죠.

“나 집에 갈래.”

  도희를 혼자 내버려둔 채 저는 심통 난 얼굴로 공원을 빠져나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자꾸만 도희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있는 데도 옆에서 계속 도희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사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아이들 앞에 나서지 못했다는 걸요. 그걸 숨기고 싶었는데 도희가 콕 짚어서 말을 하니까 저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다 저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는데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도희에 대한 원망이 차츰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도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화라도 걸면 쉽게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번호를 물어보지 못했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도희와 함께 있던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다행히 할아버지는 그날도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오늘은 도희 안 왔어요?”

  할아버지가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대뜸 화부터 냈습니다.

“예끼, 이놈. 어른을 그렇게 놀리면 못써. 어제도 누가 있는 것처럼 굴더니, 왜 자꾸 찾아와서 이상한 소릴 해. 난 또 무슨 귀신이 붙었나 했네.”

  심술 맞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말벗이 돼준 고마운 도희를 모른 척 하다니 말이에요. 할아버지의 호통에 저는 쫓겨나듯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때 주차장 너머로 도희 아빠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도희 아빠는 그때보다 더 힘이 없어보였습니다.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걸음걸이도 이상했습니다. 도희 아빠의 까만 양복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가 저까지 짓누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도희 아빠가 들어간 곳은 장례식장 안이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저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갔을 땐 이미 도희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 잃은 아이처럼 저는 장례식장 안을 정신없이 헤맸습니다. 당장이라도 도희가 나타나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줄 것만 같았습니다.

“너 여기서 뭐해? 혹시 날 찾고 있었던 거야?”

  도희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걸음을 멈췄습니다. 도희가 방긋 웃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짜 도희가 아니었습니다. 안내판 속 도희의 영정사진이었습니다. 저는 우두커니 서서 도희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어수선한 장례식장 안에서 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어른들이 도희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 했나 몰라. 수술 날짜까지 잡아놓고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1년 동안 못 깨어나고 계속 중환자실에만 누워있었잖아. 병치레 하느라 친구 하나 제대로 못 사귀었을 텐데, 거기서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희는 분명 저와 함께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사진 속 얼굴은 제가 알고 있는 도희가 맞았습니다.

‘넌 나보다 더 잘 해낼 거야. 약속할 수 있지?’

  도희의 마지막 말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빈소 앞에 섰습니다. 똑같은 사진인데도 액자에 크게 걸려 있어 도희 얼굴이 더 잘 보였습니다. 도희와 눈을 맞추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응, 약속할게. 앞으로 겁쟁이처럼 피하지도 않을 거고, 너처럼 씩씩하게 잘 지낼 거야. 그래서 네 몫까지 친구도 많이 사귈 테니까 꼭 지켜봐줘. 그리고 어제 화내서 미안해. 오늘 그 말 하려고 온 건데…….’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했습니다.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에 도희 얼굴이 점점 투명해져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도희는 제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있었습니다. 미안해할 것 없다고, 떠나기 전 친구가 생겨서 기뻤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잘 가, 도희야.’


 

  <당선소감>

 

   유쾌함과 감동선사…편안히 다가가는 작가 꿈꿔

  원고를 마치고 서둘러 우체국으로 향했습니다. 신춘문예 접수마감까지 아직 5일 정도 남아있었지만 주말을 제외하면 그리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곧 우편물 차량이 출발한다는 말에 마음을 졸이면서 봉투에 주소를 적었습니다. 혹시나 잘못 기재하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시간을 조금 넘겼지만 우체국 직원의 도움으로 다행히 그날 원고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딱 거기까지가 올해 저의 목표였습니다. 1년 동안 준비한 원고 전부를 그냥 컴퓨터에 묵혀두긴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욕심을 부린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 보고 배울 것이 많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처음엔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행운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작가의 꿈을 안고 나름 열심히 글을 써왔지만 스스로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은 걸 보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나봅니다.

  사실 지금도 동화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지식도 얕을뿐더러 감정표현도 서툽니다. 그래서 동화 한 편 쓰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글을 쓰는 것보다 중간 중간 수정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동안 단편동화를 쓰면서 아이들의 눈높이는 어디까지인지, 무엇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는지를 숱하게 고민해왔습니다. 어쩌면 평생 풀어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 길이 왠지 즐거울 것만 같습니다.

  동화라는 문턱 너머로 이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 여행이 설레기도 하지만 거센 폭풍우와 만날까 두렵기도 합니다. 넘어야 할 산도 많겠죠.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유쾌함과 감동을 주는 동화,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써나가겠습니다. 따듯한 느낌으로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저에게 이런 큰 기회를 주신 광남일보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더 정진하겠습니다. 뜬구름 잡듯 글을 써오던 저를 이만큼 이끌어주신 우현옥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함께 공부한 동화누리 회원들과 이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우편물을 전달해주신 우체국 직원 분들께도 고맙단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격려해준 우리 가족. 고맙고 사랑합니다.

● 1973년 서울 출생
● 안양전문대학 시각디자인과 졸업
● 경기 구리시 아동문학 동아리 동화누리 활동


 

  <심사평>

 

  환상적 상황 ‘짜임새 서사’로 설득력 있게 전개

  동화 부문에 응모한 작품 수는, 중앙 일간지의 응모작 편수와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170편이었다. 응모작의 수에 비례해서 작품들의 수준도 고르게 높은 편이었다.

  물론 문학 작품의 평가는 상대적이니까, 평가 기준을 엄정하게 적용했을 때는 상당수의 작품이 유사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응모작은 사실적인 성격의 작품(사실동화, 소년소설)과 비사실적인 성격의 작품(환상동화, 판타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앞으로도 신춘과 같은 공모전에 응모할, 창작에 열정을 쏟을 사람들을 위해 이 문제점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사실적인 작품들이 보여준 문제점은, 인물의 행동이나 서사의 전개가 자연스럽지 않고 허술하게 건너뛴다는 점이다. 사실적인 이야기는 현실 법칙의 핍진성과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으로 비사실적인 작품들 다수가 보여준 공통적인 문제점은, 환상적인 장치나 방법이 정교하지 않고 독자에게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타지의 인물이나 공간은 작가 그 나름의 명확한 법칙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단순히 기이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5편이었다.

  먼저 ‘나는 웃지 않는다’는 거실에서 아빠가 쓰러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놀러 갈 생각에 신이 나서 옷을 고르고 있던 아이의 죄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웃지 않는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하여 서사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주인공의 의식과 행동에 작위적인 측면이 있었다.

  ‘최고의 선물’은 개성적인 도깨비가 등장하는 환상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깨비가 소원을 엉뚱하게 들어주는 설정으로 사투리와 표준어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즉 차별에 대해 생각하자는 주제를 말하고 있다. 사투리가 흥미롭게 구사되는 대화, 재치 있는 반전 등의 장점이 돋보이지만, 서사의 시공간이나 사건 전개가 소품으로 느껴져서 아쉽다.

  ‘오리농장 조개맨’은 전형적인 사실주의 계열의 동화다. 악취가 심할 수밖에 없는 친구의 오리농장을 간 아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활극과도 같은 사건이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아이들의 생활이 건강하게 그려지는 장점이 있는데, 이 작품 자체로는 독자가 인물들과 사건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

  ‘소문난 맛집’은 새의 시각으로 인간의 행동을 보는 이야기인데, 할아버지와 아이가 새에게 맛집을 차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새똥 때문에 발생한 아래층의 항의를 피해 나무에 ‘버드피더’를 만들어주는 따듯한 마음이 감동을 주는 동화인데, 무난한 감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실 170편의 작품에서 한 편의 당선작으로 선정된다는 것, 즉 맨 앞자리에 서려면 무난히 잘 쓴 작품,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는 부족하다. 참신한 서사, 그리고 그 서사가 묵직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의 4편은 아쉬웠다.

  남은 작품 ‘투명해도 선명한’은 심장병으로 병원에 간 주인공이 ‘도희’라는 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다. 도희는 1년 전에 쓰러져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죽게 되는 아이이고, 주인공은 유체 이탈한 영혼을 만나는 셈이다. 이 사실을 독자는 결말 부분에 가서 알게 되는데, 이 환상적인 상황이 짜임새 있는 서사로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따라서 도희가 떠나면서 준,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라는 메시지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영혼을 한 인물로 생생하게 살려낸 참신한 서사, 무리없이 전달되는 무게있는 주제를 높이 사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며 응모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창작자가 되겠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분쇄되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삶의 시간을 창조적으로 살겠다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겠다는 결심이니, 어떤 일회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삶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기 바란다.

심사위원 : 배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