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어린 손님 / 한유진

“어서 오세요. 여기는 동물 체험 카페입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방에서 뿜어대는 수증기 때문에 축축한 공기가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것 같았다. 나는 카페 안을 빙 둘러보았다.

“엄마, 저쪽인가 봐.”

  내가 동물 체험하는 쪽을 가리켰다. 동물을 만져 볼 생각에 신이 나서 사육장이 늘어선 곳으로 뛰어갔다. 카페에 있는 여러 동물을 보니 부기가 생각났다. 부기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거북이다. 처음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작아서 정말 귀여웠다. 하지만 2년이 지나자 어른 손바닥만큼 커지고 냄새도 났다.

“하은아, 요새 부기는 잘 들여다보지도 않더니. 동물 체험은 이번 한 번만이야!”

  엄마가 슬쩍 눈을 흘겼다. 체험 장소로 가던 나는 카페 벽에 쓰인 말이 눈에 들어왔다.

<동물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조심해서 체험해 주세요!>

  체험 시간이 되자 사장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사장님은 바닥까지 끌리는 하얀 옷을 입었는데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어깨에는 털이 복슬복슬했다.

“모두 깨끗하게 손 씻었죠? 이제 거북이와 도마뱀에게 먹이를 주고 이구아나도 만져 볼 거예요. 이 체험으로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동물과 더 가까워지면 좋겠네요.”

  사장님은 나에게 거북이 먹이를 주었다. 플라스틱 통 안에 젖은 채소가 들어 있었다. 나는 거북이 등딱지가 바짝 마른 것처럼 보여서 통 안에 든 물을 뿌려 주었다.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동물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사장님은 거북이를 달래듯 쓰다듬었다. 똑같은 무늬가 그려진 거북이 등이 신기해서 나도 따라 만져보았다.

“이제 도마뱀에게 먹이를 줄게요.”

  사장님이 집게로 작은 귀뚜라미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참을 들고 있었지만 도마뱀이 먹이를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귀뚜라미를 떨어뜨릴까 봐 도마뱀 입을 톡톡 두드렸다. 도마뱀이 먹이를 콱 깨무는 순간 깜짝 놀라 집게를 확 잡아당기고 말았다. 그 바람에 도마뱀이 눈을 감고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사장님이 이구아나를 내 팔에 올려 주었다. 내가 팔을 살짝 움직이자 이구아나가 움찔하며 발톱에 힘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떨어뜨릴까 봐 꽉 그러안았다. 이구아나가 싫었는지 머리를 바깥으로 비죽 내밀었다. 그러자 사장님이 이구아나를 내 팔에서 떼어냈다.

“이제는 자유롭게 관람하는 시간입니다. 사고 싶은 동물이 있으면 저를 부르세요.”

  사장님이 사육장 쪽을 가리켰다.

  나는 체험 카페를 한 바퀴 돌아보다가 이상한 수조를 발견했다. 수조 안에는 부기만한 거북이들이 가득했다. 목이 길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이 뱀처럼 보여서 징그러웠다.

“이건 거북이 고아원이야.”

  체험시켜 주던 사장님이 와서 말했다.

“거북이 고아원이요?”

“거북이는 수명이 길잖아. 새끼는 귀엽다고 많이 키워도 이만큼 크고 나면 키우기 어려워서 다시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

“그럼 얘들이 전부 버려진 거북이라는 거예요? 연못에 풀어 주면 되잖아요.”

  나는 사장님 눈치를 살폈다.

“안 돼! 방생은 불법이기도 하지만 거북이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하고 다 죽거든.”

  사장님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북이들을 살살 떼어놓았다.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가족처럼 생각해도 이렇게 작은 동물은 체험하듯 키우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장님이 반대편에 있는 수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새끼 거북이를 사려고 줄 선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모두 기대에 찬 얼굴로 거북이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르고 있었다.

  부기도 새끼였을 때 목을 길게 빼고 헤엄치면서 먹이를 받아먹었다. 걷는 건지 헤엄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허우적대는 짧은 다리가 무척 귀여웠다. 뾰족한 입과 툭 튀어나온 눈이 개구리 같기도 하고 앙증맞았다. 또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물속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지금은 덩치가 커져서 헤엄을 잘 치지도 않지만.

  나는 거북이 고아원을 한 번 더 보았다. 연못에 풀어 주지 못할 거면 그곳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엄마한테 한 게 문제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부기가 없었다. 부기가 살던 수조가 청소되어 발코니에 놓여 있었다. 부기 등딱지를 비추던 램프, 올라가서 쉬던 거북이섬도 옆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 설마 부기를 그곳에 가져다준 거야?”

“부기가 이제 너무 컸잖니. 카페에 가서 물어보니까 받아 준다고 해서.”

  아침에 거북이 고아원 얘기를 잠깐 했을 뿐인데 엄마가 정말로 간 것이다. 텅 빈 부기 수조를 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곧바로 체험 카페로 달려갔다.

  카페 입구에 있는 나무 사이로 하얀 수증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손으로 수증기를 걷어 내며 카페 문을 찾았다. 문을 밀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손으로 두드려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다시 힘껏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문이 열리면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 바람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문이 닫힐까 봐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카페는 사방에서 물이 폭포처럼 떨어져 안쪽으로 흐르고 커다란 나무들로 빼곡했다. 동물들의 사육장이 전부 사라진 데다 나무 사이사이로 하얀 물안개가 뽀얗게 일어났다.

  카페 안에는 새가 날고 여기저기에서 동물 울음소리도 들렸다. 정글로 변한 카페 모습에 넋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자, 첫 번째 어린 손님이 오셨네요.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갑자기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걸어와 나를 넓적한 바위로 안내했다. 나는 얼결에 토끼를 따라갔다. 그러자 도마뱀이 바구니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도마뱀 님, 어린 손님에게 사탕을 먹여 보세요.”

  토끼가 말하자 도마뱀이 바구니에서 반질반질한 사탕을 꺼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움찔 물러났다. 토끼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손님, 무서워하지 마세요. 괴롭히는 게 아니랍니다. 우리는 어린 손님을 좋아해요.”

  토끼 말에 도마뱀이 사탕을 내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사탕은 이제껏 내가 본 어떤 것보다 반지르르 윤이 났다. 나는 마지못해 사탕을 받아먹었다.

“그렇죠! 어린 손님은 사탕을 좋아할 줄 알았어요!”

  토끼와 도마뱀이 신나서 펄쩍 뛰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알록달록한 새가 날아와 내 머리 위에 앉았다. 새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발톱에 힘을 꽉 주었다. 내가 손을 저으며 싫다고 하자 토끼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 손님, 새 님이 좋아서 만져 보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새가 내 머리 위를 톡톡거리며 걸어 다녔다. 나는 긴장되어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러자 이구아나가 얼음이 가득한 주스를 가지고 왔다.

“이구아나 님, 어린 손님이 목마른가 봐요. 주스를 먹여 보세요.”

  토끼 말에 이구아나가 나에게 얼음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주스를 건넸다. 내가 안 먹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토끼가 웃으며 말했다.

“어린 손님, 이건 몸에 좋은 음료수예요. 마시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답니다.”

  이구아나가 음료수를 나에게 내밀었다. 하는 수 없이 음료수를 받으려는데 이구아나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당겼다.

“으악!”

  나는 차갑고 까칠한 이구아나의 감촉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소리를 지르며 출구를 향해 냅다 뛰었다. 하지만 사방이 정글같이 변해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무 사이로 도망치다시피 달아나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하은아, 이쪽이야!”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까만 거북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덩치는 컸지만 팔다리가 짧고 입이 뾰족했다. 거북이는 툭 튀어나온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보았다.

“너, 너는!”

  내가 할 말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자 내 옆으로 걸어왔다.

“맞아. 하은아, 나는 부기야.”

  부기는 나를 조용한 연못가로 데리고 갔다.

“잠깐만. 물 좀 적시고.”

  부기는 연못에 들어가 헤엄쳤다. 수조에서 잘 움직이지도 않던 부기는 마치 물고기처럼 연못 속을 자유롭게 떠다녔다. 헤엄치는 모습이 멋있어서 부기한테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참 헤엄치던 부기가 연못에서 나왔다.

“하은아, 네가 여기 웬일이야?”

“너를 다시 데리고 가려고. 엄마가 너를 이리로 보낼 줄은 몰랐어.”

  부기가 나를 보며 검은 눈을 뒤룩거렸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입을 뗐다.

“부기야, 미안해. 이 말이 하고 싶었어.”

  부기가 천천히 걸어오더니 내 발 위에 자기 발을 살짝 포갰다. 부기의 발이 내 마음마저 누르는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웠다.

“하은아, 찾아와 줘서 고마워. 너를 다시 보니까 참 좋다.”

  부기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너를 연못 같은 곳에 놓아주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된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도 알아. 우리는 그런 곳에서 살 수 없다는 걸. 태어나서 그런 곳에 가 본 적도 없으니까. 햇빛을 받으며 넓은 곳에서 헤엄치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정글로 변했어도 사방이 꽉 막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나도 어린 손님 체험 중이었어. 네가 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체험은 어린 손님들을 만나는 일이라 모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나는 부기 등딱지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새끼 거북이였을 때처럼 마음을 담아서 부기를 바라보았다.

“부기야, 다시 집으로 가자.”

  내가 부기 발을 잡으려고 하자 부기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곳이 내 집이야. 내가 사는 곳이 내 집.”

  그때 갑자기 새들이 날아왔다.

“어린 손님이 저기 있다!”

  새들이 내 머리 위를 날자 토끼와 도마뱀, 이구아나가 음식을 들고 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허둥댔다.

“하은아, 빨리 날 따라와.”

  부기가 앞장서며 서둘렀다. 순식간에 연못가를 돌아 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달렸다. 나는 부기를 따라가다가 카페 벽에 쓰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손님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조심해서 체험해 주세요!>

  폭포 소리가 들리고 물안개가 뽀얗게 일어나는 길을 지나니 출구가 나왔다.

“하은아, 다 왔어. 어서 문 열어.”

  부기가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나는 힘껏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습한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나까지 밀어냈다. 나는 부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문이 바로 닫히면서 문 사이로 부기 목소리가 들렸다.

“하은아, 잘 가. 어린 손님들에게 전해 줘. 우리는 모두 어린 손님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이야!”

  카페 입구에 있는 나무 사이로 하얀 수증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주변이 구름에 잠긴 것처럼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러다 수증기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카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멍하니 카페를 바라보았다. 어린 손님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체험하러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옷을 입은 사장님이 앞에 나와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동물 체험 카페입니다.”

 

  <당선소감>

 

   “기대하던 봄의 청보리향이 벌써 날아온 것 같아”

  눈이 많이 오던 날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제주도 올레길을 함께 걷는 어릴 적 친구들입니다. 다가올 봄에 걸을 청보리길을 이야기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소란스러웠지만 ‘당선’이라는 말이 똑똑히 들렸습니다.

  올레길 하나의 코스에는 걷기 쉬운 평지가 있는가 하면 흥미로운 마을길도 있고 감탄을 자아내는 바닷길도 있습니다. 또한 반드시 넘어야 하는 오름과 계단이 있습니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힘들게 오르다 보면 가슴이 아플 만큼 숨이 차오릅니다. 이미 올레길을 완주한 친구가 앞에서 말합니다.

“숨넘어갈 정도를 몇 번 겪으면 그게 익숙해져.”

  여러 코스를 걸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오르막이 나올까 봐 두렵지도 않습니다. 동화 쓰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올레지기처럼 길을 알려 주시는 선생님들과 앞서 걸은 길에서 손 내미는 선배님들, 숨 고르며 함께 걷는 글벗들에게 감사합니다. 동화의 길에서 이제 한 코스 걸었다고 도장 찍어 주신 광주일보와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엄마의 이야기 밭에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는 지우와 승언이, 아내가 가는 길을 묵묵히 응원하는 남편 이준호 씨,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맙습니다.

  기대하던 봄의 청보리향이 벌써 제 곁에 날아온 것만 같습니다. 풋풋하고 촉촉한 향기를 담아 독자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 서울 출생
● 한겨레아동문학 동화창작모임 ‘수작’ 활동


 

  <심사평>

 

  “안정된 구성…어린이들 흥미 가질 만한 서사 돋보여”

  열정으로 빚은 응모작을 심사하면서 먼저 문자 텍스트보다 이미지 텍스트를 선호하고 더 즐기는 어린이 독자들은 어떤 작품을 원할까를 염두에 뒀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동물과의 교감, 결손가정, 노인 문제, 친구와의 갈등, 환경 파괴, AI 등 다채로웠다. ‘말 지우개’, ‘목소리를 훔친 오르골’, ‘호랑이 땅’, ‘생각 공장’, ‘괴물 가로등’, ‘1번은 되기 싫어’ 등은 많은 정성을 쏟은 게 느껴졌다.

  하지만 글쓴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을 쓴다고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요소와 어린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과 서사가 중요하다.

  최종심에 오른 ‘행운이 오던 날’은 유기묘 만남을 문학적 장치로 활용한 점은 돋보였지만, 관념적으로 처리한 결말이 아쉬웠다.

  ‘자매 섬이 된 형제섬’은 탄탄한 문장력과 상징 장치 활용이 돋보였다. 하지만 감상적인 갈등 해결과 작가의 의도를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완성도가 떨어졌다.

  ‘어린 손님’은 안정된 구성과 어린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서사 진행이 돋보였다. 주제 의식을 상상력이 구축한 판타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과 짜임새 있는 사건으로 형상화하였기에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응모자 모두에게 무한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배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