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후드 지온 / 신나라
<당선작>
후드 지온 / 신나라
“아직 5월이지만 오늘 낮 최고 기온은 33도로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습니다. 낮 야외활동을 자제하시고, 충분한 수분섭취로 건강관리에 유의 바랍니다.”
언니는 일기예보를 듣더니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후드 집업에 팔을 넣었다. 더위 따위는 상관없이 목 끝까지 지퍼를 올렸다. 언니는 나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지온아, 덥지 않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후드까지 눌러썼다.
학교 친구들은 나를 ‘후드 지온’이라고 부른다. 매일 긴소매 지퍼형 후드인 ‘후드 집업’을 입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찜통더위에도 절대로 후드 집업을 벗지 않는 나를 신기하게 여겼지만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팔의 흉터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
나는 오른쪽 팔꿈치 안쪽에 어른 손바닥 크기만 한 흉터가 있다. 어릴 때 화상으로 생겼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커피포트에 물이 끓고 있었는데 커피포트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신기하다며 손으로 계속 잡는 시늉을 하다가 손잡이를 건드리면서 끓인 물이 내 팔에 쏟아졌다고 한다.
내 팔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건 유치원 때 알았다. 아니 그전부터 알았다. 엄마, 아빠, 언니는 매끈한 팔을 가졌으니까. 쭈글쭈글하고 퍼석퍼석한 팔 안쪽의 흉터가 만져질 때마다 굵은 사포로 내 마음을 긁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마음이 까슬까슬하게 일어났다. 늘 붕대로 감겨있었던 팔이 스치듯 닿기만 해도 아파서 엉엉 울었던 기억은 흉터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4학년이 되도록 나는 단 한 번도 내 팔의 흉터를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신체검사 때도 체육대회 때도 그리고 소풍 때도 모두 후드 집업으로 잘 넘어갔다. 하지만 일주일 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존 수영 안내장을 나누어줄게요. 생존 수영 수업 때 필요한 수영복, 수경, 수모에 대한 안내가 자세히 적혀있으니 오늘 꼭 부모님께 보여주고 다음 주까지 준비하세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생존 수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앞이 하얘졌다. 반 친구들이 탈의실에서 혹은 수영장 안에서 내 흉터를 보게 될 거라는 사실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다. 그날부터 온몸에 힘이 빠졌다. 먹고 싶지도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일주일째 생존 수영 수업을 빠질 방법을 생각해보았지만 한 달에 네 번이나 있는 생존 수영 수업을 계속 빠질 방법은 없었다. ‘수영 수업은 정규 교육과정 내에 이뤄지는 활동으로 모든 학생의 참여를 원칙으로 합니다’라는 안내장의 문구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안내장의 착용 가능한 수영복 사진 중 긴소매 지퍼형 래시가드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영장 안에서는 래시가드를 입으면 되지만, 샤워실과 탈의실이 문제였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조금 일찍 나와서 옷을 갈아입을 계획을 세웠다.
생존 수영 수업 날, 후드 집업 안에 긴소매 래시가드를 입고 학교에 가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밤새 머릿속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몇 번이고 상황을 그렸다. 생존 수영 수업시간 내내 친구들은 물에 뜨는 법을 배우며 재미있다고 신이 났지만, 나는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수업이 끝나기 전 친구들보다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계만 바라보았다.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나는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물에서 먼저 나가면 안 될까요?”
“그래, 5분 정도 남았으니 화장실 다녀와서 샤워실 입구에서 기다리렴. 입구가 같으니까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서 있으면 돼.”
수영장에서 나온 나는 화장실로 향하는 듯 배를 움켜쥐고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샤워실 샤워기의 물을 틀고 바로 머리와 몸을 대충 적셨다. 래시가드를 입은 채로 수영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서 샤워가운처럼 몸에 둘렀다. 물기를 닦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샤워실에서 나와 탈의실 옷장을 열고, 옷을 주섬주섬 꺼냈다. 나는 반 친구들이 올까 봐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물에 젖은 래시가드를 벗지도 않은 채, 티셔츠를 목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후드 집업의 후드를 머리에 걸쳤다. 재빠르게 래시가드 지퍼를 내리고 팔을 빼자마자, 목에 걸어놓은 티셔츠의 소매로 양팔을 넣었다. 물에 젖은 몸에 티가 달라붙어서 질척댔다. 바로 후드 집업에 오른팔을 넣는 순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보았다. 분명 조금 전 확인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바로 뒤에 서윤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반쯤 젖은 티를 입고 후드 집업에 한쪽 팔을 넣은 나를.
나는 깜짝 놀라서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빨리 다른 팔을 후드 집업에 넣으며 지퍼를 순식간에 올렸다. 내 머리카락에서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이 후드를 반쯤 적셨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물방울인지 진땀인지 구별이 되질 않았다. 서윤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가리키고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차례로 가리켰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집어 들었다. 샤워실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음이 타들어 갔다.
‘서윤이가 봤을까? 혹시 내 팔에 흉터가 있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어떡하지?’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흉터를 봤을까 봐. 피부가 부드럽지 않고 울퉁불퉁한 걸 보고 날 이상하게 볼까 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집에 오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현관 입구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엄마는 머리를 잘 안 말려서 그런 거 같다며 내 머리를 드라이기로 바짝 말려주었다. 젖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티셔츠를 힘겹게 벗은 후, 엄마가 꺼내준 보송보송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열이 나서인지 아니면 젖은 티셔츠를 오래 입고 있었던 탓인지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저녁때가 되자 엄마는 미지근한 물로 적신 수건을 들고 와서 뜨거워진 내 몸을 닦아주었다. 내 흉터에 엄마의 물수건이 부드럽게 지나갔다.
‘엄마, 연필로 쓴 글씨를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것처럼 흉터도 수건으로 닦으면 지워져?’
유치원 때, 흉터를 지우겠다고 수건으로 계속 문지르던 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밤사이 열이 내렸다. 걱정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다시 후드 집업을 입었다. 몸이 좋진 않지만, 아무래도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실에서 서윤이부터 찾았다. 자리에 앉아있는 서윤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눈을 돌렸다. 쉬는 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서윤이가 계속 신경 쓰였다. 힐끔거리며 서윤이를 눈으로 계속 찾았다. 서윤이와 눈이 계속 마주치자 서윤이가 내 눈을 피하는 눈치였다. 나는 서윤이가 내 팔의 흉터를 본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서윤이는 민진이와 복도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서윤이는 교실 앞문에 서 있는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흉터를 봤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서윤이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피며 나는 계속 교실 앞문에 막대기처럼 서 있었다. 그때였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들어오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 바람에 나는 휘청하며 복도에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 팔꿈치 가까이 후드 집업이 훅 벗겨지듯 내려갔다. 종일 서윤이를 살피느라 후드 집업의 지퍼가 내려간 줄 몰랐던 나는 넘어지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도에 있던 친구들이 나를 쳐다봤다. 서윤이와 민진이가 괜찮냐면서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나는 팔꿈치까지 내려간 후드 집업을 재빨리 올리며 서윤이를 흘겨봤다. 서윤이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복도에서 일어나서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운동장 벤치에서 숨을 고르며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뜨겁게 달궈진 운동장의 공기가 숨을 쉴 때마다 내 입속으로 훅훅 들어왔다.
“지온아, 넘어진 건 괜찮아?”
서윤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운동장만 바라보다가 자리를 피하려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서윤이는 입고 있는 반바지를 조금 올리더니 나에게 다리를 내밀었다.
“이건 백반증이야.”
서윤이는 허벅지에 있는 하얗고 큰 부분을 가리켰다. 얼룩덜룩하게 하얀 무늬가 서윤이 다리에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숙인 채 위를 힐끔 보며 서윤이의 표정을 살폈다. 서윤이는 말했다.
“다섯 살 때 생겼어. 우리 엄마, 아빠가 나만의 특별한 점이라고 해서 난 아무렇지 않게 다녔거든. 근데 유치원 때 한 친구가 그러더라. 허벅지에 우유를 흘리고 다니는 것같이 이상하다고. 그때 처음으로 이게 이상한 건가 생각돼서 없앨 방법을 검색했어. 그런데 백반증이 있는 외국 모델 사진이 나오더라고. 너무 당당하고 멋있었어. 나도 이젠 이 점이 나만 가진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해. 내 백반증을 보고 오늘 나를 어색하게 대했다면 나는 괜찮아.”
나는 서윤이의 말을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 서윤이 눈치를 살피며 서윤이를 피하는 내 모습이 백반증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서윤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보더니 교실로 들어가겠다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곧 교실 쪽으로 발을 돌렸다. 당황한 나는 다급해져서 서윤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백반증은 몰랐어. 어제 못 봤거든.”
서윤이가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난 네가 놀란 줄 알았어. 가끔 내 다리를 보고 놀란 친구들이 어색하게 대할 때가 있거든.”
나는 멈칫했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서윤이가 지금 느꼈을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어색하게 대한 이유에 대해 서윤이에게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내 심장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사실… 난, 팔에 흉터가 있어. 어제 옷 갈아입을 때 네가 내 흉터를 보고 날 피한다고 생각했어. 민진이와 내 흉터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어.”
“아, 민진이가 어제 내 다리에 뭐냐고 묻길래 백반증 이야기한 건데.”
한동안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서윤이가 입을 열었다.
“흉터는 못 봤어. 흉터는 비밀이지?”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백반증이 비밀일 때가 있었거든.”
서윤이가 작게 말했다. 나는 문득 궁금했다.
“너는 괜찮아? 백반증을 보여주는 거?”
“응, 나는 아무렇지 않아. 내 피부인걸.”
서윤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직접 흉터가 있다고 서윤이에게 말했는데,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흉터를 알게 될까 봐 걱정했던 어제와 다르게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보다 서윤이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서윤이의 당당했던 목소리가 까슬까슬하게 일어난 내 마음에 와서 쿵쿵 부딪쳤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두 팔을 천장으로 뻗었다. 그리고 오른팔의 내 흉터에 왼손을 올렸다. 문득,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줬던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 ‘지온이 피부는 용감해’라고 말하던 아빠의 목소리, 아프지 말라고 후후 불어줬던 언니의 입김이 생각났다. 내 피부의 거친 상처가 둥글둥글 아물면서 흉터가 되는 동안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둥글둥글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학교 갈 준비를 하며 나는 후드 집업을 계속 바라보았다. 후드 집업 소매에 팔을 넣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려다가 가슴까지 반만 올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가는 동안 지퍼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공동현관에 나오자 아침부터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5월인데 이렇게 덥다니. 나는 지퍼를 끝까지 내렸다. 그리고 후드 집업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걷어 올린 소매를 따라 내 흉터가 천천히 드러났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팔을 감쌌다. 시원했다.
눈앞에 등교하는 서윤이와 민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서윤아, 민진아, 같이 가자!”
뒤돌아보는 서윤이와 민진이를 향해 나는 걷어 올린 오른팔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당선소감>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동화를 계속 쓰고 싶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화와 그림책을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안의 수많은 어린아이와 마주했습니다.
동화는 ‘소심했던 어린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실패를 경험했던 어린 나’에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그래서 저도 동화로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화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고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계속해도 되는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동화를 읽으며 힘을 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적어도 지난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동화를 쓰길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것 같아서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 힘으로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동화를 쓰고 싶다고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에 힘을 실어주신 한국일보와 신춘문예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글의 주인공처럼 저도 꼭 움켜쥐었던 후드 집업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조금은 시원한 마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 같습니다. 흉터투성이고 허점투성이여서 두렵지만, 당당하고 기쁘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함께 동화를 쓰며 힘을 보태주는 도글의 글벗과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는 오랜 친구들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딸의 투정을 받아주는 부모님. 아빠 딸, 엄마 딸이어서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묵묵히 큰마음으로 이해해주는 남편과 저의 보물인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계속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1979년 출생
● 원광대 순수미술학부 서예학과 졸업
● 원광대 대학원 석사 졸업
<심사평>
흉터 하나씩 숨기며 살아갈 어린이에게 용기가 되어주기에 충분
심사는 이력서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면접장 같다. 작품을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응모자의 기대 어린 시선을 느낀다. 그럼에도 결국 심사에서 따져야 할 시선은 작품이 어린이를 보는 시선이다. 응모작 중에는 치매, 이혼, 반려동물, 친구, 이성, 교실, 투병, 환경 등 기시감 넘치는 소재와 접근 방식이 넘쳤다. 세상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흔들리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찾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그 가운데 장점이 눈에 띄는 세 작품이 있어 본심에서 논의했다.
'은혜 갚은 두꺼비'는 옛이야기와 동요에 나오는 두꺼비를 신축 아파트 한복판에 데려다 놓은 시도가 능청스럽고 재미있었다. 무리해 장만한 새 아파트 때문에 가족 모두 저마다의 문제를 안게 되는데 그 사정을 자연스레 풀어놓다가 두꺼비의 등장으로 가족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도 희망적이었다. 다만 대출과 장거리 출퇴근, 새집 증후군, 친구 관계처럼 실제적인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두꺼비가 어디까지 은혜를 갚은 걸까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엄마를 모셔 오래'는 도시의 그늘에서 일찍 철들 수밖에 없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빈곤, 다문화, 이혼, 차별, 일탈은 어쩌면 연쇄적인 문제여서 이를 차례로 만날 수밖에 없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래전에 사회 전반에 떠올랐던 문제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까지 반복되어 식상할 수 있지만 경찰차를 타고 가면서도 셀카를 찍는 어린이들, 부모가 뭐라 하든 우정 불변을 다짐하는 어린이다움 속에서 하늘을 덮은 무게를 이기려 몸부림치는 새싹을 보게 된 감동은 크다. 다만, 초반에 산뜻했던 구어체 서술의 장점이 작품이 진행될수록 은근한 피로감으로 바뀐다는 점을 밝혀둔다.
'후드 지온'은 안정되고 섬세한 문장과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팔의 흉터로 마음까지 상처를 입은 지온이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안전수영 수업 준비로 고민하는 사정, 비밀 계획을 세워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 과정이 선명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뜻밖의 친구에게 들키고 그 친구와 결국 소통하며 자신의 문제를 마주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는 결말까지 절실함이 느껴졌다. 으레 신춘문예 응모작에 기대하는 도전이나 파격은 아니어도 크고 작은 흉터 하나씩 숨기며 살아갈 어린이 독자에게 용기가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세 작품 가운데 어린이의 고민을 절실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낸 '후드 지온'을 당선작으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선자께 축하드리며 지금 속도와 호흡 그대로 차분하게 걸어가시길 응원한다.
심사위원 : 김남중,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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