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현대경제 신춘문예 시 우수상] 산 능선 / 박마리아
<당선작>
산 능선 / 박마리아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 비탈진 곳에
엄마는 엄마를 묻고
사는 곳을 떠나지 못했다
재개발로 아침에 잠시 다녀가는 햇빛처럼
모두가 떠나갈 때도 붙박이처럼 꼼짝 않고
그 자리를 버텨왔다
그 산 능선 바로 밑에 남편을 묻고
그 쪽으로 앉은 엄마의 어깨에
비스듬한 산비탈이 생기고 난 후
엄마도 그 산이 되었다
같은 모습으로 앉아 멀리 보이는
그 산을 바라보며
엄마얘기를 할 때 가장 빛났던
엄마의 눈이 행했던 숲을 더듬는다
생의 한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엄마는 무너졌다가 일어섰고
그 봉우리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을 때도
피하지 않더니 영원히 그 곳에 잠들었다
어느덧 매미 소리 귀뚜라미에게 넘겨준 가을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엄마처럼 우두커니 앉아
계절의 옷을 걸친 산봉우리 비탈진 곳을
그림에 담는다
십 오층에서 바라본 야트막한 산 뒤로
비쭉 솟은 산봉우리 세 개
오늘도 그 산에 나무 한 그루 심었다
조만간 저 산 허물어
고층아파트 짓는다는데
산비탈을 내려오면 어디에서 우리는 만날까
우두커니가 되어 바라볼 곳 없어진다는 것
엄마의 산 능선을 오르내리며
산이 된 하루가 노을에 떠밀려 가는 저녁
여전히 그 곳에 앉아 있다
<당선소감>
-
낯선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받은 수화기를 타고 아주 낯선 목소리가 전해 준 당선 소식,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껏 써 내려간 것이 시였다는 것을요. 살다보면 세상과 인위적인 단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어둠과 같은 깊은 침묵 속에 혼자 덜렁 놓여 질 때를 만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왕성하게 펼치던 사업을 하루아침에 접어야 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등 돌리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살면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바쁘다는 이유로 치료도 미루고 밤낮없이 뛰어다니다 마주한 현실은 도저히 제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나중엔 병원에서 호스를 끼고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까지 갔죠. 그때 제 병실을 지키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엄마는 평생 일기를 쓰셨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웅크리고 앉아 작은 노트에 적어나가던 엄마가 딱 두 번 일기쓰기를 멈춘 때가 있습니다. 작은 아들, 그러니까 저에겐 둘째 오빠가 세상을 등졌을 때 엄마의 일기장엔 긴 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제가 병상에 누워 멍한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 엄마도 저와 같은 눈으로 저만 바라보았지만 한 번도 그간의 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1인실 간이침대에 새우처럼 돌돌 말아 잠이 든 엄마를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을 글로 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6년 정도 흘렀습니다.
우연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기형도문학관이 있는데 그 곳에서 시 창작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김언 선생님의 수업이었는데 첫날 강의를 잊지 못합니다.
“시는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다 보면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고 그것을 알아야 자기 자신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한다. 그게 시작노트이고 그것을 정리하면 본인만의 시가 된다고 하신 그 수업을 듣고 집으로 오는데 하늘이 유독 맑고 청명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주말마다 마경덕 선생님의 시 창작 수업에 참석합니다. 수업을 들으러 갈 땐 습관처럼 클래식 라디오 프로를 들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가지만 집으로 돌아올 땐 선생님이 하신 묵직한 삶의 얘기를 곱씹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릅니다. 치열하게 살아 온 얘기를 시로 승화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힐링이라는 선물을 주고 계신 두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겉으론 표현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늘 마음속으로 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나의 가족들과 하늘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계실 우리 엄마, 특히 제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늘 용기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요셉, 너무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의 시를 뽑아주신 현대경제신문 심사위원님들 덕분에 숨겨져 있던 저의 글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 1968년 강원 출생
● 한국외국어대학원 국제금융 MBA 졸업
<심사평>
동화적이면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작품
고맙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현대경제신문>에서 응모하는 신춘문예 시 작품들을 읽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선은 응모된 작품의 양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시적 표현에 대한 열도가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한 증거인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인간이 시를 필요로 하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가 많을 때 그런 것이란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여러 차례 읽어 이진호 씨의 「감자밭에서 왜 양을 세니」를 당선작으로 뽑고 박마리아 님의 「산 능선」을 가작으로 뽑습니다. 또한 최종심까지 겨룬 작품은 양일동 님의 「아방가르드 여인」이었음을 밝힙니다.
응모작품 가운데 다수작품들이 시 표현 이전에 그친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기 내부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무심히 쏟아낸 것 같은 작품들이 그런 작품들입니다. 어디까지나 시에는 형식(언어)에 대한 고려(考慮)와 내용(감정)에 대한 정제(整齊)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당선작으로 뽑힌 이진호 씨의 「감자밭에서 왜 양을 세니」는 동화적이면서 나름 서사 구조를 바탕에 깔고 있는 귀여운 작품이었습니다. 함께 보낸 작품도 비교적 완성도가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작으로 뽑힌 작품 「산 능선」 역시 서사구조가 바탕에 깔린 짜임새 있는 서정시였습니다. 개인의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곤조곤 다가오는 숨결이 매우 정겨운 작품이었습니다.
선에 든 분들에게 축하를, 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 위로를 드립니다.
심사위원 :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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