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광남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쫄보 훈련일기 / 윤소정

<당선작>
쫄보 훈련일기 / 윤소정
〈훈련일기 시작〉
목표: 쫄보를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닭으로!
이유: 할아버지 생신에 잡힐 위기.
장소: 귀신의 집
남은 시간 : 7일
쫄보가 우리 집에 온 건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노란 솜뭉치 같은 쫄보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어디를 가도 따라왔고, 내가 안 보이면 슬프게 울었다. 부리로 톡톡 건드리며 장난을 치거나 내 다리 위에 앉아 TV를 보기도 했다.
쫄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이제는 진짜 닭처럼 보였다. 새벽이면 어둠을 뚫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꼬끼……끼오! 어느 날은 옆집 아줌마가 시끄럽다고 투덜댔다.
“더 크기 전에 잡는 게 낫지 않아요?”
나는 깜짝 놀라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쫄보는 우리 가족이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데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생일 때 삼계탕을 할까 봐요. 여름이니까 몸보신도 할 겸.”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떻게든 쫄보를 구해야 해.’
며칠 전 TV에서 봤던 신기한 동물들이 떠올랐다. 코로 붓을 잡고 그림 그리는 코끼리, 노래 부르는 원숭이, 두 발로 걷는 고양이.
‘쫄보도 유명해지면 괜찮을 거야.’
먼저 연습할 장소가 필요했다. 동네 아이들이 귀신의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 딱이었다. 뒷산이라 쫄보가 울어도 아무도 모를 거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쫄보를 품에 안고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해가 쨍쨍한데도 산속은 으슥했다. 무서웠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왜 안 오는 거야.’
시우와 귀신의 집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우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갈 생각을 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심장 소리가 쿵쿵 귀에 울렸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시우가 달려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 몰래 나오느라.”
“야, 너부터 들어가.”
팔꿈치로 시우를 툭 쳤다.
시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낡은 대문을 밀었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렸다. 고요한 산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 곱슬머리가 쫙 펴지는 느낌이다.
쫄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그때였다. 어깨 위로 차가운 손이 스르륵 올라왔다.
“으아아악, 귀신이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쫄보가 품에서 빠져나와 뒤뚱뒤뚱 걸어갔다.
“하하. 강태산, 이 겁쟁이! 귀신이 어딨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나은이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너희 여기서 뭐 해?”
시우가 턱으로 쫄보를 가리켰다.
“얘 훈련.”
쫄보는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내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나은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아지도 아니고 닭을 훈련해?”
시우와 함께 준비해 온 짐들을 꺼냈다. 나은이의 입이 ‘와’하고 벌어졌다.
“뭐가 이렇게 많아?”
“쫄보가 뭘 잘할지 모르잖아. 다 해보려고.”
내 말을 듣고 나은이가 실실 웃었다.
“근데 쫄보? 닭 이름이 쫄보야? 너랑 딱인데?”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겁이 많고, 하도 나를 쫄쫄 쫓아다녀서 지어준 이름인데 하필 나은이에게 들켰다. 이제 온 동네 애들한테 소문날 게 뻔했다. 벌써 ‘쫄보, 쫄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다. 색종이를 펼쳐 바닥에 늘어놓았다.
시우가 물었다.
“색종이 고르는 것부터 할 거야?”
“응. 쫄보가 좋아하는 색이 있을 수도 있잖아.”
나는 쫄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색이 마음에 들어?”
쫄보는 답 대신 산뜻한 공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리를 놀리듯 휙휙 피해 다녔다.
“자, 형아 따라 해봐.”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은 채 입으로 색종이를 물어 흔들어 보였다. 쫄보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 장애물 달리기부터 할까?”
수수깡을 차례로 놓았다.
“이걸 뛰어넘는 거야. 알았지?”
쫄보는 수수깡을 넘어 성큼성큼 걸었다. 내가 횡단보도 흰색은 건너뛰고 검은색만 밟는 것처럼.
“옳지. 잘한……”
말을 끝내기도 전에 쫄보가 수수깡을 툭 걷어찼다.
“안 돼, 쫄보.”
모이를 주며 어르려 했지만 쫄보는 이미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기우뚱하더니 결국 내 다리를 베고 누워 버렸다.
“어휴, 오늘은 그만하자.”
나도 그대로 드러누웠다. 기대하던 첫날치고는 좀 엉망이었다.
〈훈련일기 1일째〉
시간이 없는데…… 내일은 잘할 수 있겠지?
쫄보와 연습한 지 벌써 다섯째 날이었다. 쫄보는 빨간 색종이를 가장 좋아했고 가끔은 노란색에 관심을 보였다. 몇 번만 더 하면 무조건 빨간색을 고를 것 같았다. 수수깡을 뛰어넘는 것도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완벽하진 않았다.
이번엔 플라스틱 컵을 양쪽으로 길게 늘어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새로운 훈련을 시도했다. 쫄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컵을 뻥뻥 차며 뛰어다녔다.
“너 정말 형아 말 안 들을래?”
쫄보가 얄미우면서도 걱정스러웠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시우가 말했다.
“유튜브에서 춤추는 앵무새를 봤거든. 닭도 새잖아. 그게 더 쉬울지도?”
좋은 생각이었다. 쫄보는 고개를 까딱까딱 잘 흔드니까 조금만 훈련하면 춤추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음악을 틀어주면 훨씬 잘할 수도 있다.
쫄보의 날개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렇게 퍼덕거려 봐.”
나은이가 톡 쏘듯 말했다.
“그거 동물 학대 아냐?”
“뭐, 뭐라고?”
그 사이에 쫄보는 내 손에서 벗어나 저만치 달아났다.
“봐, 하기 싫어하는데 네가 억지로 시키는 거잖아.”
‘알지도 못하면서.’
화가 났는데 이상하게 ‘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을 때 시우가 대신 나섰다.
“넌 왜 와서 시비야? 이건 쫄보 살리려고 하는 거거든.”
나은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할머니한테 솔직하게 말해. 그냥 부탁하면 되지.”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혀 왔다. 차라리 쫄보를 멀리 풀어줘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쫄보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데, 날 찾아 울지도 모른다.
꼬꽥끼.
평소와 조금 다른 소리였다. 뒤돌아보니 쫄보가 가시덤불 사이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러다 다쳐.”
쫄보를 달래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다리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고, 따가운지 자꾸 몸을 움찔거렸다.
〈훈련일기 5일째〉
쫄보가 다쳤다. 정말 내가 괴롭히는 걸까?
나은이 말이 맞다. 겁쟁이는 쫄보가 아니라 나였다.
이튿날 시우가 우리 집으로 왔다.
“쫄보는 괜찮아? 훈련하러 안 가?”
어제 발라준 약이 잘 맞았나 보다. 쫄보는 다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다행이었지만 마음 한쪽은 조급해졌다. 당장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인데, 쫄보를 계속 훈련시켜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망설임이 커졌다.
‘이젠 정말 이 방법밖에 없어.’
가족사진을 쫄보에게 들이밀었다.
“잘 봐. 할아버지, 할머니가 널 잡으러 오면 무조건 도망가야 해.”
쫄보는 내 말보다 팔랑거리며 날아오른 나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간신히 사진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를 쪼아댔다.
“시우야, 쫄보 오늘 너희 집 닭장에 두면 안 돼?”
어딘가에 숨겨야 했다. 내가 깨기도 전에 할머니 손에 잡히면 끝이니까.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두 팔로 쫄보를 감싸안고 시우네 집으로 갔다. 닭이 이렇게 많으니 쫄보 하나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다. 조심조심 닭장 문을 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옆집 아줌마였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니?”
꼬……꼬끼.
‘지금 울면 안 돼.’
재빨리 쫄보의 부리를 막고 시우에게 속삭였다.
“야, 뛰어.”
우리는 뒷산을 향해 냅다 달렸다.
어느새 해가 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산길은 동네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돌아보았다.
천천히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마룻바닥이 삐거덕 소리를 냈다. 처음엔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문틈으로 달빛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더듬더듬 그릇에 물을 담고 모이를 놓았다. 쫄보만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서워서 밤새 울면 어쩌지.’
그래도 집에 데려갈 순 없었다.
“조금만 참아. 눈 뜨자마자 올게.”
쫄보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말을 다 이해한다는 듯 조그맣게 고개까지 끄덕였다. 얌전한 쫄보를 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얼른 방문을 닫고 나왔다.
겨우 아침이 밝았다. 신발을 구겨 신은 채 뛰쳐나갔다. 쫄보한테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닭이 없어요! 어쩐지 새벽에 조용하다 했더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
“어허, 요즘 제법 잘 날아다닌다 싶더니만.”
“혹시 밤에 너구리나 고양이가 잡아간 건 아니겠죠?”
숨이 턱 막혔다. 산짐승들이 쫄보를 해칠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귀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쫄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눈을 꽉 감은 채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쫄보가 나에게 달려와 주길 바랐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 실눈을 뜨고 봤다. 어디에도 없었다.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왔을지도 몰라.’
온 동네 닭장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다.
꼬끼오!
우렁찬 쫄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담을 넘어갔던 모양이야. 문 앞에 서 있지 뭐냐.”
‘이 바보, 할아버지를 보면 도망치라고 했잖아.’
팔을 활짝 벌리자 쫄보가 날개를 펼치고 뛰어올랐다. 작은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눈이 따끔거렸다. 쫄보가 살포시 내 어깨에 기댔다.
퍼뜩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이란 게 생각났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쫄보가 얼마나 똑똑한지 보세요.”
색종이를 마당에 흩뿌렸다.
“빨간 색종이 골라봐. 빨간색.”
쫄보는 색종이 위를 통통대며 뛰어다녔다.
“아니, 이건 수수깡이 아니잖아.”
허둥지둥 수수깡을 늘어놓았다.
“이 위로 뛰는 거야.”
쫄보는 수수깡을 물고 장난스럽게 머리를 까딱였다.
“다 잊어버린 거야? 왜 하나도 못 해? 우리 연습 많이 했잖아.”
아무리 재촉해도 쫄보는 귀찮은지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할아버지는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쫄보에게 걸어갔다.
“안돼, 할아버지. 가지 마. 쫄보 먹지 말라고.”
할아버지 바지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쫄보랑 헤어지기 싫다고요.”
할아버지는 나를 번쩍 일으켜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우리 태산이가 쫄보한테 정이 많이 들었구나.”
어느새 나온 쫄보도 똘망똘망하게 눈을 빛내며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쫄보랑 계속 같이 살아도 되는 거죠?”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쫄보의 머리도 톡톡 두드려주었다. 나는 쫄보를 꽉 껴안았다. 쫄보가 답답해서 낑낑거렸지만 더 꼭 끌어안았다.
살랑 바람이 땀에 젖은 머리를 식혀 주었다. 마당 위로 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웠다.
쫄보야, TV 스타가 아니어도 돼. 그냥 너라서 좋아.
훈련 끝.
<당선소감>
아이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며 묵묵히 써 나갈 터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외할머니 댁의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인 병아리가 살던 곳이었죠. 마당 한구석의 하얀 강아지도 떠올랐습니다. 겁이 많던 저는 그들을 피해 최대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요. 안방 깊숙한 곳의 다락방, 본채와 떨어져 있던 창고, 그 안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던 동화책. 외할아버지는 그 책들이 엄마가 어렸을 때 읽던 것이라며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어린 엄마의 손때가 묻어 있는 동화책은 정말 보물 같았어요. 누렇게 빛바랜 종이에 담긴 이야기들이 어찌나 정겹게 느껴지던지요.
한때는 전공 서적이 아닌 책을 읽는 것이 사치라 여겼습니다. 소설 한 권 읽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던 시기였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과학을 동화로 풀어낸 책을 만난 순간, 흑백의 활자로만 떠돌던 지식이 선명한 색으로 물들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동화가 다시 보였어요. 당연하게 지나치던 어린이 자료실은 옛날 외할머니 댁 창고처럼 신비로운 공간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음속에서 욕심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에이, 넌 상상력이 부족하잖아. 안돼.’라며 포기하려는 나와, ‘뭐 어때, 일단 한번 써봐.’라고 등을 떠미는 내가 싸웠습니다.
동화를 쓰는 2년은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발전이 없을까? 반짝이는 이야기를 쓰기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글을 향한 마음이, 애정이 아닌 집착인가 싶어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저녁, 예기치 못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도서관 동아리에서 문우들과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던 중이었죠. 당연히 차를 빼달라는 연락이라 생각했습니다. 평소 모르는 번호는 무시하던 제가 그날따라 서둘러 전화를 받은 이유였어요. 수많은 당선 소감에서 보았던 그 믿기지 않는 순간은 그렇게 제게 찾아왔습니다.
동이 트기 전 새벽하늘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되뇌며 견뎌온 한 해였습니다. 그 끝에 받은 이 기쁜 소식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달콤한 격려이자, 더 치열하게 쓰라는 엄중한 채찍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나누고 곁에서 힘이 되어준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멈추지 않고,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묵묵히 써 내려가겠습니다.
●
<심사평>
관념의 훈육 넘어 맑은 눈동자, 어린이다움 그리다
올해 신춘문예 동화 부문은 그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240여 편에 달하는 응모작은 동심의 회복을 꿈꾸는 예비 작가들의 뜨거운 열망을 보여주었다. 특히 전설과 민담의 변용, 역사적 모티브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던 점은 K-컬처의 도약이 아동문학의 뿌리를 얼마나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했다.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부터 노인 문제, 인공지능(AI) 담론까지 소재의 스펙트럼 또한 매우 다채로웠다.
동화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출발해 세상의 온기를 전하는 문학이다. 이는 단순히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성장의 역동성과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호기심을 포착해내는 일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응모작이 요즘 아이들의 변화를 놓친 채 어른의 시선으로 훈육하려 하거나 낡은 관념 속에 아이들을 가두어 두는 우를 범했다.
또한 동화의 고유한 미학인 ‘환상의 리얼리티’가 부족한 점도 아쉬웠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상상력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밝은 길목이 되어야 함에도 많은 작품이 개연성 없는 비약에 그치거나 단순히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만 환상을 도구화했다. 본 심사에서는 파격적인 형식 실험보다는 동화의 본령(本領)인 서사의 견고함과 동심의 진정성이 맞물린 작품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최종 후보작 중 「엄벙덤벙 낮도깨비들과 얼렁뚱땅 아이들」은 도깨비의 캐릭터 설정은 탁월했으나 결말의 도식적인 해결 방식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신선해 선생님」은 AI 상용화 시대를 배경으로 시의성 있는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인간과 기계라는 대척점 사이에서 작가의 의도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 점이 아쉬웠다. 소재의 참신함이 돋보인 「이상한 잠 법정의 피고인」은 흡입력이 강력했다. 하지만 결말에서 주인공의 반성이 성급하게 이루어져 내면적 고민의 깊이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숙고 끝에 「쫄보 훈련기」를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영악한 경제적 이익과 이기심이 동심을 잠식한 시대에, ‘어린이다움’을 간직한 인물을 만나는 것은 기쁨이었다. 특히 아주 미미한 생명의 떨림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지켜내려 애쓰는 주인공의 맑고 순수한 감각이 서사 곳곳에서 숨 쉬고 있음이 큰 강점이었다.
심사권에 오른 다른 수작들을 지면상 일일이 열거하지 못함을 양해 바라며, 응모자 모두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당선자에게는 아이들의 가슴에 밝은 꿈과 희망을 심는 작가로 거듭나길 기대하면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동화작가 배다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줄 핵심
닭 ‘쫄보’를 유명하게 만들어 살리려는 아이가, 결국 “훈련”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관계의 진심)으로 생명을 지켜내는 이야기.
결말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TV 스타가 아니어도 돼. 그냥 너라서 좋아.”
2) 제목 해석: 「쫄보 훈련일기」
제목에 이미 두 겹이 들어 있어요.
- 쫄보(닭): 겁이 많고 따라다니는 존재(애착 대상)
- 쫄보(나/태산): 사실 더 큰 겁쟁이는 화자(아이)임이 뒤에서 드러남
- 훈련일기: ‘훈련’이라는 형식을 빌린 성장기록. 그런데 진짜 훈련 대상은 닭이 아니라 아이의 용기입니다.
즉, 표면적 목표는 “닭을 특별하게 만들기”지만
진짜 목표는 “내가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마음을 말하기”로 이동해요.
3) 이야기 구조가 아주 탄탄해요(7일 카운트다운)
작품은 긴박한 ‘7일’ 제한을 걸어 서사를 끌고 갑니다.
- 목표: 할아버지 생신 삼계탕 위기 → 남은 시간 7일
- 해결책(아이의 생각): 유명해지면 살아남는다(‘TV 스타 논리’)
- 장소: 귀신의 집(훈련장) → 겁을 키우는 공간에서 용기를 배우는 역설
- 기록 형식: 〈훈련일기 1일째〉, 〈훈련일기 5일째〉
→ 아이의 마음이 “확신 → 혼란 → 자각”으로 변하는 흐름을 표시
카운트다운 장치는 동화에서 자주 쓰는 장치인데, 긴장감을 만들 뿐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미루면 늦는다 → 결국 말해야 한다”로 가게 만드는 압박이 됩니다.
4) 줄거리(해석) 핵심 요약
- 병아리 ‘쫄보’가 집에 오고, 아이(태산)는 정이 깊어진다.
- 할머니가 할아버지 생신에 삼계탕을 말하며 쫄보가 “잡힐 위기”에 놓인다.
- 아이는 솔직히 말하기보다, 쫄보를 ‘특별한 닭’으로 만들어 살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 친구 시우와 ‘귀신의 집’에서 훈련을 시작하지만, 쫄보는 마음대로이고 훈련은 엉망이다.
- 나은이가 등장해 “그거 동물 학대 아니야?” “차라리 솔직히 말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 훈련 과정에서 쫄보가 다치고, 아이는 깨닫는다: “겁쟁이는 쫄보가 아니라 나였다.”
- 급해진 아이는 쫄보를 숨기려다 어둠 속 귀신의 집에 두고 온다(죄책감+불안).
- 다음 날 쫄보가 사라져 아이는 패닉이지만, 쫄보는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 아이는 마지막으로 훈련 성과를 보여주려 하지만 실패한다.
- 결국 아이는 울면서 진심을 말한다: “쫄보 먹지 말아줘. 헤어지기 싫어.”
- 할아버지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쫄보는 살아남는다.
- 결론: “유명해지지 않아도, 그냥 너라서 좋아.” → 관계의 확정.
5) 주제 5개: 이 동화가 깊은 이유
(1) ‘특별함의 논리’ vs ‘그 자체의 가치’
아이의 첫 해결책은 요즘 시대의 공식 같아요.
- 유명해지면 살아남는다
- 능력이 있으면 가치가 인정된다
이건 어른 세계의 규칙이기도 하죠.
그런데 작품은 이 논리를 끝에서 뒤집습니다.
- 쫄보는 훈련을 잘하지 못한다.
- 하지만 살아남는다.
- 이유는 “성과”가 아니라 “사랑(관계)” 때문이다.
즉 이 동화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는 뭔가를 ‘잘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다.
(2) “훈련”이란 이름의 불안: 사랑을 통제하려는 마음
태산은 쫄보를 살리려 하지만, 그 과정이 사실은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 색종이 고르기, 장애물, 컵 사이 통과, 춤…
- 이것들은 ‘쫄보가 살아남을 명분’을 만들기 위한 통제 장치예요.
나은이가 던진 말이 작품의 윤리적 중심을 찌릅니다.
“그거 동물 학대 아냐?”
여기서 동화는 아이를 악역으로 만들지 않아요.
“너 나빠!”가 아니라
“너 불안해서 그런 거지?”로 감싸며 성장으로 연결합니다.
(3) 진짜 쫄보는 누구인가: 거울 구조
제목 “쫄보”는 닭의 이름이지만, 사실은 주인공에게도 붙습니다.
- 시우/나은이가 놀리는 장면은 단순 개그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거울
- “겁쟁이는 쫄보가 아니라 나였다.”라는 문장은
**성장의 핵심 자각(전환점)**입니다.
즉 이 동화의 성장 서사는
“쫄보(닭)를 바꾸려다 → 내가 바뀌는 이야기”예요.
(4) ‘귀신의 집’ 상징: 공포의 장소에서 용기를 배우다
훈련 장소가 왜 하필 귀신의 집일까요?
-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장소(공포의 상징)
- 그곳에서 아이는 매번 덜덜 떱니다(심장 소리, 차가운 손, 삐거덕 마룻바닥…)
하지만 역설적으로, 마지막에 아이가 해야 했던 용기는
귀신의 집에서 얻은 용기가 아니라 집 마당에서 말하는 용기였어요.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 잃어버릴까 봐 두려움
- 어른에게 말할 용기 없음
- 거절당할까 봐 공포
즉 귀신의 집은 내 마음의 귀신을 상징합니다.
(5) ‘솔직함’이 세상을 바꾸는 순간
태산은 끝내 “훈련 결과”로 설득하지 못합니다.
대신 눈물과 말로 설득해요.
- “안돼, 할아버지. 가지 마. 쫄보 먹지 말라고.”
- “쫄보랑 헤어지기 싫다고요.”
이 순간 아이는
‘머리로 세운 전략’이 아니라
‘가슴의 진실’을 꺼냅니다.
동화가 어린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해요.
말해야 바뀐다. 울어도 괜찮다. 마음은 설득이 된다.
6) 인물 분석: 셋의 역할이 딱 맞물려요
● 태산(‘나’)
- 애착이 깊고 책임감도 있지만, 거절/상실을 두려워하는 아이
- 그래서 우회 전략(훈련)으로 도망감
- 그러나 상처 사건(쫄보가 다침) 이후 “내가 겁쟁이”임을 인정
- 마지막엔 말함(성장)
● 쫄보(닭)
- 단순 ‘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태산의 감정 변화를 끌어내는 거울/관계의 증거
- 훈련을 잘 못하지만, “어깨에 기대는 장면”처럼 감정적 교감이 강함
- 결국 ‘성과’가 아니라 ‘관계’로 살아남는 존재
● 나은이(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캐릭터)
- “동물 학대 아냐?”
- “그럴 거면 솔직히 말해.”
→ 동화의 윤리적 나침반 - 이 캐릭터 덕분에 이야기가 ‘훈련 성공담’이 아니라 성장담이 됩니다.
● 시우(현실적 협력자)
- 같이 가주고, 아이의 계획을 돕고,
- 중간중간 대안(춤추는 새 영상)을 제시하지만
근본적 전환은 못 함
→ 시우는 “친구의 역할”, 나은이는 “각성의 역할”이에요.
7) 상징/디테일 읽기(이 작품이 잘 쓴 지점)
● ‘빨간 색종이’
빨강은 종종 “정답/목표/하나로 고르는 선택”을 상징해요.
태산은 쫄보가 빨강을 고르면 뭔가 ‘특별함의 증거’가 생길 거라 믿죠.
하지만 마지막엔 빨강도, 수수깡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 “정답을 만들려는 강박”이 무너지고 “관계의 진실”이 남습니다.
● “훈련일기”의 문장
- 1일째: “시간이 없는데… 내일은 잘할 수 있겠지?” → 불안/조급
- 5일째: “정말 내가 괴롭히는 걸까?” → 윤리적 자각
- 끝: “훈련 끝.” → 훈련은 닭이 아니라 내 마음을 위한 과정이었음이 확정
● 귀신의 집의 소리들
“끼이익”, “삐거덕”, “발소리가 크게 울림”
→ 어린이 감각(청각)을 통해 공포를 만들어내고
그 공포가 “마음의 불안”과 결합됩니다.
8) 결말 해석: ‘특별해져야 살 수 있다’에서 ‘그냥 너라서 좋다’로
이 작품은 감동이 “닭이 살아서”가 아니라
아이의 가치관이 바뀌어서 옵니다.
- 처음: “유명해지면 괜찮을 거야.”
- 끝: “TV 스타가 아니어도 돼.”
즉, 동화는 아이에게 ‘성과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
존재 중심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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