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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신호등 / 이지연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대기업에 다니며 순탄한 생활을 이어가던 입사 3년차 민환. 어느 날 전날의 무리한 음주로 인한 숙취 때문에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던 길 매번 걸리던 신호등 앞, 차안에서 다리를 저는 남자아이와 함께 보도에 서 있는 30대 중반의 한 여자를 보게 된다. 잠깐이었다.

그 이후 그녀의 잔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신도 모를 어떤 느낌으로 자꾸만 그녀에게 빠져든다. 결국 그 느낌을 찾아 우여곡절 끝에 다시 그녀를 그 장소에서 보게 되지만 그것도 단지 며칠 뿐 다시 보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다 그녀에 대한 느낌이 점점 깊어만 가고 아쉬움에 나날을 보내 던 어느 운명적인 날. 마침내 그녀를 우연한 곳에서 조우하게 된다. 기쁨과 설렘에 찬 민환과 첫 인상에 끌린 미연. 둘은 한 동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며 흐르는 감성에 자신들의 느낌을 그대로 맡기면서 행복한 세계에 접어든다.

그러나 서로를 알아 갈면 갈수록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란 어둠이 서서히 드리워지고 특히나 6살 남자아이 혼외자를 둔 미연으로서 그 고심은 깊어만 간다. 마침내 시련은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데... 선택의 기로에 선 미연은 민환을 위해서라도 떠나기로 결심했고 마지못해 설득에 응한 민환은 그녀를 보내고 한동안 자신을 잃고 방황한다.

통영으로 떠난 그녀 또한 멀리 있는 민환에 대한 애수가 깊어만 가다 어느 날 마침내 민환은 그녀를 찾아 자신에게 처음으로 다가 온 사랑을 위해 현실의 벽을 무너뜨린다.  

 

 

  <당선소감>

 

   -

태생이 나 자신을 표출하는 것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이런 저런 취미를 섭렵했으나 모두 금방 싫증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글쓰기는 싫증이 난 적이 없다.

국문학을 전공으로 했지만 주로 읽는 쪽이었지 쓰는 쪽은 아니어서 전문적으로 작문에 대해 배우거나 누구와 글을 나눠본 적이 없다.

요즘처럼 선험적 지식에 쉽게 닿을 수 있는 시대가 있었을까?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다양한 매체로, 방대한 양을 언제든지 간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식을 접하면 접할수록 도리어 어렵고 자취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며, 레토닉의 과잉으로 함몰되는 과정을 지나 아정한 글에 매력을 느끼는 단계에 왔다. 교훈을 직관적으로 주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고 반전에 집착하는 버릇도 버리게 되었다. 

부족한 글이지만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욕심에 처음으로 도전한 신춘문예에서 예상치 못한 입상으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미지의 선상에서 세상을 느끼는 호흡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어떤 결실에 이르기를 갈망하면서 마치 긴 터널을 지나온 것만 같다. 솔직한 표현과 공감의 표현 사이에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비록 나만의 고뇌였을까 자문하기를 수차례. 이 상을 받고 앞으로의 글쓰기가 더 막막해졌지만 백자같은 글을 지어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환히나 감격을 주는 글보다는 잔잔한 위로를 주는 작가를 꿈꿔본다. 

미물에까지 온기가 느껴지는 2026년이 되길 바라며 새해를 벅찬 기대감과 건강한 고민으로 맞이하게 해주신 현대경제신문에 감사 인사를 드린다.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소설적 형상화를 시도한 '너는 흔들리는 꽃잎처럼', 만남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엮어 나아가는 '신호등'

이 백여 편이 넘는 작품에 대한 예심이 이루어진 뒤에 여섯 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본심에 올라온 모든 작품이 인간의 삶과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관찰을 담은 수준작이었다.

이들 작품이 보여 주듯, 다양한 시각에서 인간의 삶과 현실을 깊이 관찰하고 이를 소설화하는 일에 성심과 열정을 다한 모든 응모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앞서는 때가 없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우리말 사용의 껄끄러움이 감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어휘 사용이나 문장 구사가 자연스럽지 못한 예들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일을 쉽지 않게 할 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방식의 면에서 아쉬움이 함께할 때도 있었다. 

의욕이 지나쳤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야기의 개연성이 기대에 못 미치는 예도 있었고, 주제 자체가 모호한 것이 되는 예도 있었다.

아울러, 지나치게 방대한 소재와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이야기의 짜임새가 풀어지고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피상적인 것이 되고 마는 예도 있었다. 주제와 소재는 참신하나, 필요 이상으로 세부 묘사에 집중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서술을 거듭함으로써 문장이 장황해지고, 이로 인해 글이 답답한 것이 되고 마는 예도 있었다.

이런 아쉬움과 함께 작품들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 눈에 띄는 작품 한 편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는 신영탁 씨의「너는 흔들리는 꽃잎처럼」이다.

이 작품의 정황 묘사나 인물 묘사에서 군더더기가 좀처럼 짚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장 구사의 면에서도 응분의 섬세함과 유려함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작품의 짜임새 면에서도 크게 문제 삼을 데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너는 흔들리는 꽃잎처럼」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치 않은 필력으로 소설적 형상화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나날 가운데 '11월 10일'에서 '11월 24일'까지 보름 동안의 평범한 이야기가 소재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극적인 이야기 전개라고 할 만한 것이 따로 짚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 자체가 밋밋하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는 작중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서현'의 “배고파”라는 중얼거림을 작품의 시작부분에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을 이루는 것은 몸으로 또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어쩌다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와 마음을 나누는 가운데 ‘배고픔’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는 따뜻한 이야기다. 

결국,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작가는 그네들이 마침내 ‘배고픔’을 뒤로 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암시함으로써, 소설 문학이 요구하는 작품의 완결성을 확보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작가는 우리를 몸의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먹는 것들과 마시는 것들에 대해 풍부한 묘사를 담고 있기도 한데, 그 모든 묘사는 마음의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의 배경(背景)뿐만 아니라 전경(前景)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 읽어야 할 작품이 여럿 남아 있었기에 최종 판단을 보류하고 모든 작품에 대한 읽기를 마쳤다. 이어서 예심을 맡아 하신 분과 상의하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너는 흔들리는 꽃잎처럼」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아울러, 이제까지의 읽은 작품들을 다시금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 이지연 씨의 「신호등」을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느 한 미혼 남성이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추고 있는 동안 차창 밖의 어느 한 젊은 여성에게 이끌리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여성과 가까운 사이가 되고, 둘 사이의 만남을 어렵게 하는 요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사랑을 성취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기야, 누군가가 우여곡절 끝에 누군가와의 사랑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만남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엮어 나아가는 작가적 역량에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였다. 이 점을 감안하여, 「신호등」을 우수작으로 올리고자 한다.

이렇게 당선작과 우수작을 선정했지만, 끝내 선정하지 못한 네 편의 작품 가운데 아깝지 않은 것이 없다. 이들 작품의 작가들에게도 곧 기쁨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마음 깊이 희망한다. 그리고 당선작과 우수작이라는 영광을 안게 된 신영탁 씨와 이지연 씨 두 분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 장경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핵심 장치: ‘신호등’은 사랑이 시작되는 정지(멈춤)의 장치

이 작품의 출발은 “늘 걸리던 신호등”에서의 찰나의 목격입니다. 신호등은 단순 배경이 아니라,

  • 멈춤: 일상의 관성(출근/성과/속도)을 강제로 끊는 장치
  • 보류: 선택을 미루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다/서다)
  • 경계: 차 안(민환의 세계) ↔ 횡단보도/보도(미연의 세계) 사이의 선

즉, 사랑이 ‘진행(Go)’이 아니라 **정지(Red)**에서 시작된다는 역설이 작품의 미학적 뼈대가 됩니다.


2) 인물 대비가 만드는 서사의 엔진

민환: “순탄함” 속에 비어 있는 결핍

겉으론 부유한 배경 + 대기업 + 안정된 커리어지만, 첫 장면이 숙취/지각이라는 게 의미 있어요.
“정상 궤도”에 있으나 어딘가 자기 삶의 주행 감각이 흐려진 상태에서 미연을 봅니다.

  • 이 인물의 사랑은 ‘연애’보다 삶의 리셋 버튼에 가깝게 작동할 가능성이 큼

미연: ‘현실’이라는 무게를 가진 인물

“6살 남자아이 혼외자”라는 설정은 멜로드라마적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 읽으면

  •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대가(사회적 시선/책임/양육)**를 계산해야 하는 인물
  • “떠남”은 배신이 아니라 자기/아이/상대의 생존을 동시에 고려한 윤리적 선택으로 제시될 여지가 큼

여기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의 사랑이 “감정의 문제”이기 전에 현실의 중력에 의해 시험받는다는 점입니다.


3) 서사 구조: ‘목격 → 집착 → 성취 → 현실 → 분리 → 추적 → 재결합’

요약만 놓고 보면 구조는 꽤 정석적인 “만남 서사”예요.

  1. 우연한 목격(신호등): 감정이 발화되는 순간
  2. 잔상/끌림(집착에 가까운 반복): ‘설명 불가한 느낌’이 동력
  3. 재회/접근: 감정이 현실로 내려앉음
  4. 행복 구간: 흐르는 감성에 “맡김”
  5. 현실의 어둠(아이/편견/격차): 갈등의 본체
  6. 자기희생적 이별(미연의 결단)
  7. 방황(민환의 붕괴)
  8. 통영(거리의 상징화)
  9.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는 재결합(민환의 결단)

심사평이 “만남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엮는다”라고 한 건, 아마 이 정석 구조를 설명 과잉 없이 장면의 흐름으로 매끈하게 연결했다는 뜻으로 읽혀요.


4) ‘통영’의 의미: 공간이 감정의 두께가 되는 방식

통영은 단순한 배경 전환이라기보다,

  • 도피/유배: 미연이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선택한 물러섬
  • 거리의 증폭: 사랑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거리
  • 재선택의 공간: “다시 가는” 행위로 결심을 증명하는 무대

즉, 이 작품은 “사랑한다”를 말로 증명하는 대신, 거리를 건너는 행동으로 증명하게 합니다.


5) 작품이 품은 위험과, 동시에 가능성

이 설정은 자칫 익숙한 멜로로 미끄러질 위험도 있어요.

  • 미연이 “아이 때문에 떠나는 여성”으로만 소비되면 → 여성의 주체성 약화
  • 민환의 결단이 “구원자 남성” 서사로 보이면 → 관계가 수직화될 수 있음

반대로 이 작품이 더 문학적으로 강해지려면(요약 안에서도 가능성이 보임),

  • 미연의 떠남을 “희생”이 아니라 주체적 윤리/현실 감각의 선택으로 끝까지 밀고,
  • 민환의 ‘벽을 무너뜨림’이 로맨틱한 선언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대가(가족/회사/계급적 관성의 균열)로 구체화되면,
    익숙한 플롯이 오히려 묵직해질 수 있습니다.

6) 제목을 살리는 해석: 신호등 = 사랑의 “멈춤-기다림-건너감”

신호등은 관계의 리듬이기도 해요.

  • 멈춤(정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 기다림(체류): 현실을 조정하는 시간
  • 건너감(횡단): 편견과 책임을 “통과”하는 시간

결국 “현실의 벽을 무너뜨린다”는 건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게 아니라, 빨간불 앞에서도 건너갈 준비를 하는 것에 더 가깝게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