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매일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꿈에서 아빠 죽이기 / 한동엽

<당선작>
꿈에서 아빠 죽이기 / 한동엽
등장인물
남자 목에 휴대용 선풍기를 걸고 있다.
여자 다지증.
아버지 배가 풍선처럼 기괴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무대
가운데 아버지가 누워있는 이동식 침대.
무대의 공간은 장별 전환에 따라 꿈속과 현실을 자유로이 오간다.
1. 남자
남자가 주춤주춤, 거대하고 육중한 선풍기를 안아 들고 입장한다.
남자는 말하면서 선풍기 총 다섯 대를 무대 바깥에서 갖고 들어와 아버지 방향으로 설치한다.
남자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을 아십니까?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들어왔답니다.
(사이)
몹시도 더운 여름밤이었어요.
우리 집은 전기료 나간다고 에어컨 못 틀게 했거든요. 근데
그럴 거면 에어컨은 왜 사다 놓은 거냐 이 말입니다.
안 그래요?
… 물론 그런 이유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마- 지구상에 살아남은 아버지는 한 명도 남지 않았을 테죠.
(사이)
에어컨을 좀
아니 선풍기라도 좀 실컷 틀게 해주는 아빠가 나한테도 있었더라면 그럼
나는 좀 더 시원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때의 이, 찐득찐득한 게 이렇게, 잠을 잘 때마다 피부에 다 스며들어 가지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렇게
만두.
만두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 어쩌면 난 커다란 찜기 안에 들어있는 걸까.
(사이)
이런 것만 생각하면 좀 화나지 않아요?
고기만두.
김치만두.
새우만두. 넓적만두. 왕만두. 잘해봐야
우유찐빵!
… 그러니까 억울하고요
덥고
답답하고 후텁하고 슬퍼가지고 그러니까
선풍기를 틀고 자면 왜 사람이 죽게 되는가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질 않았던 거예요.
아버지 숨을,
숨을 쉬질 못하겠어.
남자 (동시에) 숨을 쉬질 못하게 된다는데 아니 씨발,
그건 안 틀어도 똑같은 거거든요 숨이
이렇게 쉬어지지가 않는다고요 숨이.
아빤
아버지 (힘에 겨운 숨소리)
남자 아빤 왜 모를까.
이렇게 당연한 걸 아빤 왜 모르고 있을까.
남산만치 부풀어 오른 배때기를 붙들고 아빤 왜 누워만 있을까. 찜기처럼
숨을 머금고만 있을까.
(짧은 사이)
몇 가지 가설들을 생각해봤어요.
아빠가 어렸을 때는요, 에어컨이라는 게 없었다는 거예요.
요만한 교실 안에 오십 명씩 칠십 명씩 드글드글 껴앉았는데
너무 더웠던 거죠. 너무 더워서
아버진 지금도 그때를
더위를 견디던 때를 무슨 무공훈장처럼 말씀하시거든요.
적과 싸우다 보니 적과 닮아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더운 사람이 되어서 덥다 보니까 눕게 되는 게 아닐까.
아빠는 만두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찜기 속 만두처럼 커다란
남산만한
왕 고기만두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남자는 설치가 완료된 다섯 대의 대형 선풍기를 하나씩 하나씩 켜면서 말한다.
풍속은 강풍. 바람소리가 거세다.
아버지의 숨소리는 점차 힘겨워진다.
남자 선풍기를 다룰 때는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렸을 때요.
선풍기 날개가 이렇게 돌잖아요.
그게 조금만 더 느리게 움직이면 숨을 쉴 수도 있지 않을까.
잠을 자는 와중에도요, 선풍기를 틀고서도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짧은 사이)
아버지 몰래. 틈에다가
손가락을 밀어 넣어서 날개를 이렇게 딱! 잡으려고 했는데
아!!!
(짧은 사이)
피가 아주 많이 났어요. 피가 철철 났어요 어떻게,
어떡하지,
(짧은 사이)
선풍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는
아빠는 그때도 똑같아.
아빠는 누워만 있었지.
아빠는 일어나 보지도 않았어.
아빠
나 피 나.
아빠
나 피가 난다구.
아버지 (힘겨운 숨소리)
남자 아빠!!
(침묵)
그 무더웠던 여름밤에
조용하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선풍기는
그 무시무시한 대가리를 들이밀고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덮쳐올 것 같았고
… 그건 분명 숨 막히는 밤이었지요.
전부 켜진 선풍기. 소음이 심하다.
남자의 목소리는 외침처럼 이를 뚫고 나아간다.
남자 나는요! 우리 아빠가.
아주 무능력하고 멍청하고!
별, 노인네처럼 늙어빠져서는 게을러빠진 게!
아주 구제불능 같은
아주 구제불능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번 당해보라는 거예요.
정신 좀 차리라고.
정신 좀 차리라고!!!
남자는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코에다 대고 휴대용 선풍기를 켠다.
그 상태로 정지한 채 말한다.
남자 그래도 아마 죽진 않을 거예요.
생명력 하나는 끈질겨 먹은 게 나를 꼭 닮았으니까.
사실 이건 현실이 아니고
제 꿈속이거든요.
정확히는 자각몽이죠.
나는 꿈을 꿀 때마다 아빠를 데려다 놓고 선풍기를 틀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 아빠는- 일어나지도 않고 숨을 쉬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거 있죠.
2. 여자
남자는 아버지의 코에 휴대용 선풍기를 가져다 댄 그 상태 그대로 정지해있다.
여자가 선풍기를 하나씩 끄며 등장한다.
여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섯.
나는 손가락이 여섯 개.
나만 여섯 개.
육손이라고 들어봤어요?
(짧은 사이)
아빤 어렸을 때 손가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대요.
자기도 몰랐나 봐요. 나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 근데 그 떼어버린 손가락이요,
몰랐을 때야 상관이 없는 거지만
알고 나서부터는 뭐랄까- 자꾸 생각나고
근지러운 모양이죠? 아빤
내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자꾸자꾸 훔쳐보거든요.
밥 먹을 때도 티비 볼 때도
안 그런 척하지만 나는 알아요.
아빠가 곁눈질로
내 손가락을 훑어보고 있다는 거
(침묵)
떼버리고 싶었거든요 확
짤라버릴까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아요.
(짧은 사이)
손가락이
아버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거잖아.
여자 아빠가 말했어요.
아버지 그거
우성 유전자다.
고이고이 간직해.
여자 그래서 난 여섯 번째 손가락을 달게 된 거예요.
(사이)
우성이 무슨 말인고- 하면
자꾸자꾸 자라난다는 소리죠.
자꾸자꾸 돋아난다는 거예요.
짤라내도 떼어내도 박박 긁어도
아빠가 육손이면
나도 육손이
아빠가 육손이라
나도 육손이. 나도
나도 아빠의 손가락이 보고 싶어
(사이)
여름밤이었던 거 같아요.
아시다시피 여름은 몹시 덥고 눅눅하고
안방에선 선풍기 소리만
푸---- 시끄러워요.
방문을 열고
(침대로 다가가며)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어요.
(사이)
잠을 자고 있더라고요? 아빤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죽은 것처럼.
아빠의 수북한
털 난
팔의 끝엔 축축한 손이 매달려있고
손의
마디의
끝을 따라가 보면 손가락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 아빠의 여섯 번째 손가락은 어디쯤에 돋아나있던 걸까요?
(아버지의 손을 매만지며)
아빠의 손가락은 못생겼어요.
짜리몽땅하고요 축축하고요
엄지손가락은 어찌나 넓대대한지 무슨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 같아요.
아빠한테도 여섯 번째 손가락이 있었더라면
내 기다랗고 매끈한 손가락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징그러웠겠죠.
더러웠겠죠? 당장 짤라버리고 싶었을 거예요 아빠는
아버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빨기 시작한다)
여자 …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빠는
손가락이 돋아나는 꿈을 꾸고 있을까.
난
아빠의 커다란 다리가 세 짝이나 됐으면 좋겠고
눈깔이 열여섯 개씩 여기저기 사방팔방에 달려있어서 눈물을
눈물을 좀 흘려봤으면 좋겠고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면 거기서 그 대신
손가락이 오천만 개씩 돋아났으면 좋겠고
푸--- 푸-----
사이.
여자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잡아, 조심스레 선풍기 창살 틈새에 집어넣으면서
여자 아빠의 손가락을 선풍기에 가져다 넣으면-
아빠는 잠에서 깰까.
꿈에서 깰까.
마취된 것처럼, 꿈쩍도 않을까.
(긴장이 고조되는 사이)
근데요, 이대로 선풍기를 틀면 안 될 것 같은 게
그럼 손가락이 네 개가 되는 거잖아요 다섯 개가 아니라.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 아빠는 손가락이 다섯 개잖아.
그럼 날더러 뭘 자르라고 하는 건데?
… 이럼 안 되는 거잖아.
이건 불공평하잖아 아빠. 난 그럼 어떡하라는 거야.
꿈에서 깨기도 전에 난
어쩔 줄 모르고 속이
막 애가 타다가
(이동식 침대를 끌고 무대 밖으로 향하며, 빠르게)
모르겠어요 병원에 데려가야 되나? 절벽에 갖다가 던져버릴까? 그런데 방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잠에서 자꾸 깨는 거 있죠.
2장에서 여자의 움직임으로 인해, 아버지와 선풍기 사이에는 거리가 확보된다.
정지된 상태로 있던 남자가 눈앞에 있던 아버지가 사라졌음을 인지한다.
3. 조우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마치 쌍성계처럼, 아버지와 선풍기를 두 극점으로 해서 타원형의 호를 그리며 술래잡기하듯 교차해서 오고 간다. 예컨대 남자가 아버지에서 선풍기 쪽으로 이동한다면, 여자는 선풍기에서 아버지 쪽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남자 그런데 이상하죠?
여자 이건 분명히 내 꿈인데. 선풍기가 왜 다섯 대나 있는 건지.
남자 (선풍기를 켠다) 그게 왜 자꾸 꺼지는 건지.
여자 선풍기가 여기 원래 켜져 있었나?
남자 아빠는 왜 여기 와있는 거야?
여자 (선풍기를 끈다)
남자 (아버지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사이.
여자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남자 안방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자 쥐죽은 듯
남자 조용하고 (선풍기를 켠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자 눅눅하고 또 색이 바래져있고 (아버지를 다시 옮긴다)
남자 왜 그런 걸까요? 꿈은 왜 항상 익숙할까요.
여자 푸--- 선풍기 소리는 자꾸 어디서 들리는 건지.
남자 아빠- (아버지를 돌려놓는다)
아빠 맘대로 움직이고 그럼 안 되는 거야.
여자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선풍기를 끈다)
꿈은 그래서 꾸는 거래요.
난 스포트라이트를 한숨에 받는 유명인이 될 수도 있었고 또
하늘을 날거나 또
뭐 아무튼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었겠죠 중요한 건
(아버지를 다시 옮긴다) 그런 꿈은 제대로 꾸어지지가 않거든요.
남자 …… 바람이 너무 쎄? (선풍기를 켠다)
그래서 뒤로- 뒤로- 자꾸만 밀려나는 거야?
여자 잘 나가다가도 뭔가 덜컥(아버지의 침대가 더 이상 밀리지 않는다)
거리고 뜻대로 되지가 않고 밀어도
밀어도- 밀리지가 않는 이-
벽,
이 씨발 무슨 벽 같은 게, 자꾸 처 밀리지가 않고 아빤
남자 거짓말쟁이야!
선풍기가 꺼져 있잖아!
선풍기는 아빠가 껐잖아!
선풍기는 아빠가 못 틀게 하잖아!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면서-
아빠가 죽는다면서-!
여자 이러다보면 오싹해져요.
뒷골이 무서워져요.
… 잘 세어지지는 않는데,
울고 난 것처럼 눈앞이 뿌얘서 잘 보이지는 않는데 내 손등이
내 손등이 너무 거칠고
(빠르게) 징그러워요 손가락이 너무 여러 개가 달려있어요. 몇 개가 달렸는지 끝이 잘 보이지 않고 어둡고 캄캄하고
아버지는 아우성치듯, "아"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굵은 굉음이 깔린다.
남자와 여자의 위치 전환은 쫓고 쫓기듯, 강박적으로 이루어진다.
남자 아빠.
여자 그때부터 나는 도망가는 거예요.
남자 아빠!
여자 정신없이 도망치는 거예요.
남자 (숨을 헐떡이며 아버지를 돌려놓는다) 아빠가 자꾸 이러니까 내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아.
아버지 ("아"소리를 멈추고) 양반은 뜨거운 걸 잘 먹어야 되는 거야.
남자 (쫓겨나면서) 뭐라고?
여자 (흐느끼며 아버지를 옮겨놓는다) 아빠. 아빠. 일어나 봐.
난 뭘 해야 될까? 난 아빠 가지고 뭘 하고 싶은 걸까?
아버지 손주도- 손녀도- 나를 닮았네?
여자 (쫓겨나면서) 어?
남자와 여자의 위치 전환은 이제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남자 이건 분명히 내 꿈인데
여자 내 건데도 내 거 같지가 않고 항상 쫓기는 듯한 기분.
남자 절대로 눈을 마주치진 않아요
여자 꿈속에서 눈을 마주치면 그럼 꿈에서 깨게 될까 봐.
남자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꿈에서 깨게 될까 봐.
여자 … 그런데 이상하죠.
남자 이 상황은 이미 겪어본 것 같고
여자 영원히 살아본 것 같고
남자 자꾸 엮이게 되는 것 같고,
여자 자꾸 꼬이게 되는 것 같고.
남자 익숙하고도 생경한
여자 생경하고도 익숙한
남자 그런 존재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여자 그런 존재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남자와 여자는 아버지의 침대를 사이에 두고 그 앞에서 얼어붙는다.
침대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철퍼덕 바닥에 떨어진다.
남자와 여자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여자 어.
남자 어?
여자 어어?
남자 으어어어!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두 사람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여자 … 만두?
남자 그, 손가락 여자!?
여자 뭐라고요?!
아버지가 두 사람 사이에 불쑥 껴든다.
아버지 나- 배가 너무 뜨거워-
남자와 여자는 아버지를 확인하고, 반 박자 늦게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며 퇴장한다.
아버지 요기 아래가 너무 더워- 속에가-
배꼽이 쑥하고 빠져버릴 것 같단 말이야-
만져줘- 쓰다듬어 줘-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아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아
핏덩이들아--
아버지는 배를 부여잡고 뒤로 발라당 쓰러진다.
4. 만두
남자의 만둣집. 선풍기 한 대, 2인용 테이블, 의자가 있다.
아버지는 만두 찜기가 되고, 침대는 이동식 찜기 받침이 된다.
남자는 찜기가 된 아버지 앞에 가만 서 있다.
여자는 남자를 쏘아보다가- 성큼성큼 다가서더니
여자 사장님.
남자 네?
여자 제가 손가락 얘기를 했던 적 있던가요.
남자 아니요.
여자 그쵸.
여자는 남자를 계속해서 쏘아본다.
남자는 여자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선풍기를 켠다.
침묵이 이어지다가
남자 만두, 드릴까요.
여자 … 네.
남자 왕 고기만두.
여자 (끄덕)
남자 이 인분이죠.
여자 네.
여자는 테이블에 가 앉아 계속해서 남자를 주시한다.
남자는 아버지의 배를 연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아버지의 배 안에는 소복하게 만두가 가득 차 있다.
남자는 아버지의 배에서 왕만두를 여섯 개 꺼내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 아빠 얘기를 했던 적은요?
남자 없는 것, 같은데요.
여자 그쵸.
여자는 만두를 먹는다. 남자는 만두를 빚는다.
긴 침묵.
여자 전
아빠한테서 태어났대요.
남자 저도 그래요.
여자 정말일까요?
남자 ?
여자 (만두를 먹는다)
제 몸이요
아빠한테서 태어났다는 게
… 그걸 태어났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만두가
빚어가지고 태어나지는 건 아닌 거잖아요 그런 거처럼.
침묵.
여자 근데요. 선풍기는 왜 자꾸 트시는 거예요?
남자 네?
여자 선풍기를요. 다섯 대씩 틀어놓을 이유가 있어요?
남자는 만두를 빚다 말고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어제 꿈에 사장님이 나왔어요.
남자 … 저도요.
여자 저보고 그랬잖아요.
(남자를 따라하며) 그, 손가락 여자!?
사이.
여자는 만두를 먹으면서,
여자 제 손가락이 몇 갠지 알아요?
남자 아뇨.
여자 왜 모르는 척하지.
남자 네?
여자 보통은 열 개잖아요.
남자 네.
여자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신기하죠.
남자 아뇨.
여자 안 신기해요?
남자 … 죄송해요.
사이.
남자 (만두를 빚는다) 우린
같은 아빠한테서 태어났을까요.
여자 (고민하다가) 사장님은 손가락이 몇 갠데요?
(마지막 만두를 입에 넣는다)
남자 … 열 개요.
여자 (손가락을 쫙 펼쳐 남자에게 내보인다)
남자 그거, 유전이 안 될 수도 있는 거래요.
여자 그래서요?
남자 (만두를 빚는다) 그렇다고요.
여자는 일어서더니 남자에게 돈을 내민다.
여자 사장님. 선풍기 켜지 마세요.
손가락 집어넣고 싶어요.
여자는 선풍기를 끄고 퇴장한다.
남자는 꺼진 선풍기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슬쩍 집어넣어 본다.
5. 쇼핑
꿈속. 1970년대의 가전제품 쇼핑몰. 각양각색의 선풍기로 가득하다.
아버지는 판매원이다.
남자와 여자는 팔짱을 끼고 등장한다. 여자는 배가 불룩 나와 있다.
등장인물들의 말투는 1970년대와 현재를 오간다.
여자 배가 더부룩한 게
남자 어?
여자 만두를 너무 많이 먹었나 싶어요.
남자 만두?
여자 왕만두. 커다란 왕만두 여섯 개.
남자 여섯 개?
여자 네. 여섯 개.
남자 태몽을 꾼 거야?
여자 그랬, 을까요 제가?
남자 흠. 여섯 쌍둥이는 곤란한걸.
여자 설마요.
남자 여섯은 불길해. 영어로는 식스라고 하지. 사탄들이 좋아하는 숫자라고.
하나님께서 손가락을 육. 여섯 개가 아니라
파이브. 다섯 개로 만드신 건 그분 말씀에 다- 이유가 있으시다는 거야.
여자 네에.
남자 육. 육. 어감부터도 이- 모골이 쭈뼛해지는 구석이 있지?
여자 정말 그래요.
사이.
남자 (여자의 안색을 살피며) 어째 안색이 좋지 않은걸.
또- 여보의 손가락이 여섯 개라고 그러는 거야?
그건 부인과에서도 아주 손쉽게 떼어줄 수 있다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지 않았어. (여자의 배를 가리키며) 요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차피 기억도 하지 못할 거 어렸을 때 썩뚝, 떼어주는 게 썩 깔끔한 일처리가 되는 거겠지.
이건 탯줄을 잘라주는 거나 비슷한 거라고. 안 그래?
여자 그게 아니고요,
우리 결혼했어요?
사이.
남자 (둘러보더니) 우리 뭐하고 있었죠?
여자 선풍기.
남자 선풍기?
아버지 선풍기!
에- 소비자보호원에서 지난달 실시한 앙케트 조사에 의하면은요
예. 요- 선풍기. 선풍기가 신혼집에 있지 아니한 경우! 행복하고 단란한 부부생활. 그것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합니다.
선풍기가 없는 집의 경우에는요. 부부싸움이 심해지고. 부부관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공산이 크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혼까지 이르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여자 그게 참말이에요?
아버지 (보호망이 없는 철제 선풍기를 켠다)
자 그런 의미에서 먼저 소개해드릴 제품은 요 녀석인데요, 보기엔 단출해 보여도요, 알짜랍니다.
미군에서 산업용으로 찍어내던 걸 그대로! 가정용으로 불출받았습니다. 보시면 팬도 철제로 되어 있어서 튼튼하구요, 가격도 저렴하고 또 손가락이라도 가져다 댔다간 아주 깔끔하게 잘려 나갈 정도로 강력한 절삭력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바람의 세기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건데요,
미풍, 약풍, 그리고-
여자 (강풍을 누르기 직전, 깨면서) 싫어요!
(짧은 사이) 싫어요. 소리가 너무 무섭단 말…
아버지는 무시하고 강풍 버튼을 누른다.
금방이라도 팬이 튀어져 나올듯한 굉음이 들린다.
아버지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어디에도 부착될 수 있다는 거죠. 천장에도 바닥에도
손가락에도 더덕더덕 따개비처럼 일단 설치가 되고 나면 절대로 떼어낼 수가 없고요. 또
아빠가 학교 다닐 때는 교실에 팔십 명이 다닥다닥 앉아있었는데. 천장에 이거 하나 매달아 놓고 웽- 돌아갔던 거야.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난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지.
남자 난- 솔직히 말해 마음에 드는걸.
여자 전 싫어요.
남자 무서운 거야?
여자 저 왱왱거리는 소리가 싫어요. 잠이 오는 것 같고
어딘가 몽롱한 기분이 들잖아요?
남자 당신 만두를 너무 많이 먹은 게 아니야?
여자 … 만두라뇨?
남자 왕 고기만두를 여섯 개씩 집어먹었다고 그러잖았어.
여자 제가 먹은 건…… (헛구역질한다)
남자 괜찮아?
여자 미안해요. 제가 먹은 건 만두가 아니라 손가락이었어요.
(게워낸다)
남자 (아버지에게) 아무래도 입덧이 심한 모양이오.
보다시피 뱃속에 내 아이가 여섯 명씩이나 들어찼으니 말이지.
아버지 (선풍기를 끈다) 그렇다면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여섯째까지 안전입니다.
남자와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아버지 (다른 선풍기를 켠다) 그런 차에서 요건-
알콩달콩한 가정을 필히 꾸려나가야 할 신혼부부에게 특히! 제가 추천을 드리는 제품인데요, 금성서 나온 역풍 선풍깁니다. 보시면 보호망이 씌워져 있어 안전하구요, 강약조절. 뭐 회전기능은 기본으로 탑재가 되어있는 데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자면요,
(비밀 이야기를 하듯) 밤새도록 선풍기를 켜놓고 주무셔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자 그게 무슨 소리요?
아버지 그간 밤중에 무더위로 잠도 들지 못하고, 얼마나 수고로우셨습니까?
남자 (황망하게) 아빠가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면서.
아버지 이제 어엿한 가장이 되셨으니까요? 그런 시간은- 완전히 끝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밀착해서) 자, 하단부에 타이머가 보이십니까?
타이머를 한 번 설정하면요, 총 수십억 개의 톱니바퀴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남자 … 째깍째깍째깍째깍.
아버지 (버튼을 누른다) 강풍부터 시작해서요,
여자 (구역질 한다)
남자 (얼굴을 들이밀고) 째깍째깍째깍째깍
아버지 약풍.
남자 째깍째깍째깍째깍
아버지 그리고 미풍.
남자 째깍째깍째깍째깍
아버지 인제 아시겠습니까? 째깍째깍째깍째깍, 1시간의 단위가 삼천육백 번의 횟수로 반복된 후에는 선풍기 날개의 움직임이
(정지버튼을 누른다) 탁
그치게 되고요.
여자 사장님.
아버지 그 뒤로는 날개가 역회전.
아침까지 1시간에 1000회전의 초미풍이 선풍기 뒤로부터 불어나옵니다.
이것이 잠자는 리듬에 맞추어 바람이 변하는 금성의 꿈길의 바람.
밤새도록 선풍기를 켜놓고 주무셔도 걱정 없습니다.
여자 사장님-
아버지 째깍째깍째깍째깍, 만두 찜기에도 비슷한 게 달려있지 않나요? 그렇죠?
남자 째깍째깍째깍째깍, 정말 그렇소.
여자 사장님!
남자 (황망하게) 네?
여자 저 배가 너무 아픈데-
아버지 (남자의 주의를 돌리며) 진통이 시작됐나 보죠.
여자 먹은 게 잘못됐나 봐요-
남자 만두가요?
아버지 (남자에게) 사장님.
남자 (황망하게) 네?
아버지 아직-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았는데요.
남자 선풍기가요?
여자는 고통에 겨워 "아"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아버지 날개가 없는 선풍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남자 아니요,
아버지 둥근 고리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속이 텅- 비어있어요.
날개가 없는데 어떻게 바람이 나올 수 있느냐. 압력 차를 이용하는 건데요,
남자 죄송한데,
아버지 준비되셨어요?
남자 네?
아버지 공기를 빨아들입니다! (숨을 들이마신다)
남자 (숨을 들이마신다)
아버지 다시! 아랫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다시 숨을 들이마신다)
남자 (다시 숨을 들이마신다)
아버지 아---
남자 … 아-
아버지 (소리를 높여서) 아----
남자 아--
아버지 (더 소리를 높여서) 아-----
아버지의 "아" 소리가 여자의 "아" 소리를 상회한다.
아버지는 선풍기 헤드가 회전하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남자에게 한 걸음씩 다가선다.
남자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친다.
남자가 아버지에게 붙잡히기 직전, 여자가 아버지를 거세게 밀친다.
아버지는 "아" 소리를 내며 뒤로 발라당 넘어진다.
아버지는 넘어지고서도 가동을 멈추지 않는 선풍기처럼,
머리를 원의 중심으로 호를 그리며 하반신을 털털털털 움직인다.
여자 사장님!!
남자 네.
여자 우리 사람을 죽였어요.
남자 네.
여자 도망가야 돼요.
짧은 사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퇴장한다.
6. 작전회의
다시, 남자의 만둣집.
여자는 자리에 앉아있고, 남자는 만두를 빚는다.
여자 사장님.
남자 네.
여자 평소랑은 달랐잖아요.
남자 네.
여자 왜 그런 꿈을 꾸게 됐을까요?
침묵.
여자 무슨 생각해요?
남자 저요?
여자 네.
남자 별 생각 안 하는데요. 만두 빚을 때는
사이.
여자 사장님 만두 먹고 배탈 났어요.
남자 꿈에서요?
여자 사장님 평소에 그런 꿈 꾸죠.
남자 네? … 아니요?
여자 손님이 여자면 손을 막 들여다보고 그러잖아요.
남자 제가요?
여자 아니에요?
남자 … 아뇨 뭐, 무의식, 적인 거니까요. 그냥 보일 수도 있는 거고…
여자 꿈이니까 무의식이겠죠 당연히.
짧은 사이.
남자 근데 그거 꿈은 같이 꾼 거잖아요.
여자 같이 꿨다고요?
남자 아뇨, 뭐- 저 혼자 꾼 건 아니니까…
짧은 사이.
여자 사장님.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장님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요 70년대에서 온 사람 같애.
사장님하고 뭘 결혼을 하고 그러기는커녕 손도 잡기 싫어요. 손 닿기도 싫다고요. 그리고 그 씨발, 목에 휴대용 선풍기 그거 좀 갖다 처 버리든가 어떻게 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남자 (휴대용 선풍기를 바라보다가) 더워서요. 찜기 앞에 서 있다 보면…
침묵.
남자 만두, 드실래요.
… 돈 안 받을 건데.
침묵.
남자 … 전
고마웠는데. 그래도 고무적인 건, 아빠를 죽였잖아요.
저는 혼자서는 한 번도 못 그래봤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같이 힘을 합치다 보면 어떻게…
여자 어떻게?
남자 …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침묵.
여자 죽이는 걸로는 안 돼요.
남자 네?
여자 죽이면- 그럼 또 도망쳐야 되잖아요.
그럼 다시 또 꿈에서 깰 거고
남자 그럼 다시 또 꿈을 꿔야 되고…
사이.
여자 죽이는 게 아니라 지워버려야 되는데. 아예 삭제를 시켜버려야 되는데.
남자 … 어떻게요?
사이.
여자 제가 깨달은 거는요, 선풍기는
그 구조로 봤을 때 한 번 넘어지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다는 거예요.
남자 … 넘어뜨리면, 되는 거예요?
여자와 남자, 눈을 마주친다.
7. 아
아버지는 5장의 상태 그대로 넘어진 채 가동 중이다.
남자와 여자는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채 경계하면서 아버지에게 다가선다.
여자가 아버지를 발로 찬다. 아버지는 고장 난 기계처럼, 급작스레 "아"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 소리 외에는 위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침묵.
그리고 방향을 잃어버린, 침묵.
남자 이제
뭐하죠?
여자는 아버지를 무대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있는 힘껏 당기지만,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예의 가동을 계속한다.
여자 이 씨발 좀
남자 (관찰하며) 그게요
여자 도와줘 봐요.
남자 어디서 봤는데
여자 네?
남자 선풍기가요, 따개비 같은 거라 떼어낼 수가 없는 거래요.
여자 이 씨발
(사이)
아빠. 아빠. 일어나.
일어나봐 아빠 쫌
일어나 보라고.
죽지 마. 이대로 뒤지지 말고
사라져버리란 말이야.
사라져.
사라지라고… 응?
여자, 힘을 다해 아버지 곁에 쓰러진다.
아버지의 작동이 점차 멎는다.
여자 나는 왜 육손일까요. 나는 왜 불운할까요.
나는 왜
태어나게 된 거지.
남자 좀 허전하지 않아요?
여자 … 네?
사이.
남자는 목에 걸고 있던 휴대용 선풍기에 대고 "아"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여자 … 뭐하는 거예요?
남자 아--- 아-
어렸을 때요, 이거 못하게 했어요 귀신 나온다고.
왜 그랬을까요?
여자 그랬구나…
남자 … 졸리면 침대에 가 누워있을래요?
여자는 비척비척 침대에 가 눕는다.
남자는 아버지의 타이머를 조정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멎었던 아버지의 작동과 "아" 소리가 재개된다.
여자 … 뭐라고요?
남자 어디서 들었는데 선풍기에는 타이머가 있대요.
여자 뭐라,
남자 그게- 뭐라 그랬더라 아무튼 아주 복잡한 건데 뭐가 계속 끊이지 않고 맞물려서요-
여자 잘 안 들려요-
남자 타이머를 설정하면- 선풍기를 틀고 자도 괜찮은 거래요-
남자가 타이머 조정을 마치자 아버지가 다시 일어선다.
남자는 조심스레 침대와 대칭되는 위치에 자신의 휴대용 선풍기를 내려놓는다.
아버지는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3장에서 남자와 여자가 했던 연쇄적 움직임을 침대와 휴대용 선풍기 사이에서 무한히 반복한다. 이에 따라 침대는 계속해서 요동친다.
여자는 그동안 침대에서 눈을 감고 말한다.
여자 저- 소리가 잘 안 들려요. 선풍기 소리도
(짧은 사이)
안 들리고요…
(사이)
할머니가 되어버렸나 봐요. 자꾸
옛날 일이 생각이 나고
영원히 살아 본 것 같고 (흐느낀다)
아버지의 작동을 확인한 남자는 여자 곁에 가서 눕는다.
남자 누우니까요. 졸리지 않아요?
여자 졸려요…
흔들리는 거 같고 몽롱하고요
남자 저요, 처음으로 뭔가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여자 우리
너무 늙어버렸을까요
남자 아버지가 없어졌어요.
여자 … 정말요?
남자 괜찮아요.
우리 자식이 있으니까요.
여자 …
우리한테
자식이 있어요?
남자 손가락이 다섯 개예요.
여자 이상하네.
그럼
내 자식이 아닌데…
아버지의 움직임이 계속된다. 아버지의 "아" 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막.
<당선소감>
-
이 글을 찾아 읽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넷 중 하나. 매일신문 관계자이거나, 희곡을 쓰는 사람이거나, 나의 지인이거나, 나 자신이거나.
매일신문 관계자분들께. 부족함이 많은 희곡입니다. 장점을 더 크게 봐주셨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더 열심히 살고 즐거이 읽고 눈 크게 뜨고 어렵게 쓰겠습니다. 그러라는 격려로 받겠습니다.
희곡을 쓰는 분들께. 몇 년 동안 신춘문예 떨어지면서, 당선작과 심사평과 소감을 읽고 또 읽으면서, 언젠가 당선 소감을 쓰게 된다면 꼭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지면을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들릴까 조심스럽지만요, 계속해서 써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의 희곡이 궁금하고요, 읽고 싶어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나의 지인들. 당적사(당선소감에 적히는 사람들)! 정말로 너희들 이름을 당선소감에 적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당적사 정회원 권민경 오수빈 임태성 정종관, 전문객원 문태극 이수빈, 평객원 15인 모두. 너희들 아니었으면 계속 쓰지 못했을 거야. 고대극회 고맙습니다.
연극에 관한 모든 걸 학생회관에서 공연장에서 거울방에서 배웠어요. 지오디 쓸 오골계 랫츠 하창마 뺑이 아마더워, 같이 연극을 만들었던 그 기억으로 지금도 연극을 쓰고 있어요. 김태희 교수님,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었을 때 교수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김종훈 교수님, 시적인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적인 건 연극적인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배웠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사랑하는 정엽이 나의 가족. 공부 안 하고 하냥 속만 썩여대도 언제나 믿고 응원해주어서 고마워. 영진 효재 재혁 나의 친구들, 대뜸 희곡 내밀어도 읽어준 나의 독자들, 언제나 의지가 되어준 서우, 모두 고마워.
마지막으로 나 자신. 이 글을 언제 다시 읽어보게 될진 모르겠지만,
난 정말 최고야. 난 정말 짱이야!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외쳐주고 싶어요.
● 1999년 서울 출생 ●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심사평>
-
올해 매일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는 개인의 내밀한 기억에서 출발해 동시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하려는 시도들이 고르게 응모되었다. 가족 내부의 갈등과 상처, 경쟁 사회 속에서 소진되는 개인의 존엄, 부재와 상실의 감각, AI 환경 속 인간관계의 변화 등 다양한 문제의식이 탐색되었다. 전반적으로 주제 의식은 선명했으나, 이를 무대 언어, 영상 언어로 조직해내는 방식에서는 작품마다 완성도의 편차가 드러났다.
최종 심사에는 희곡 '별지', '살', '부재의 빈자리', '신;구독해지', '최종 면접', '꿈에서 아빠 죽이기', 시나리오 '팔락팔락' 등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올랐다. 이들 작품은 각기 다른 문제의식과 형식적 시도를 통해 희곡으로서, 시나리오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종 논의 끝에 '꿈에서 아빠 죽이기'를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꿈과 현실, 과거의 기억이 교차하는 구조를 통해 가족 내부에 축적된 억압과 상처를 밀도 있게 드러내며, '아버지'라는 존재를 공포와 사랑이 동시에 내면화된 대상으로 그려 심리극으로서의 완성도를 확보했다. 특히 폭력적이고 금기적인 상상을 '꿈'이라는 심리적 공간에 배치해 죄책감과 분노, 사랑과 해방을 함께 포착해낸 점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성취라 할 수 있다.
최종 후보작 가운데 '최종 면접'은 극도로 일상적인 '면접'이라는 상황을 통해, 개인이 어떻게 시스템 앞에서 언어·존엄·윤리까지 거래하게 되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구조가 돋보였다. 다만 문제 의식이 전면에 드러나 인물의 선택과 감정이 비교적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꿈에서 아빠 죽이기'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 동시대 가족 구조와 세대 감정에 보편적으로 닿는 공감력을 지닌 작품이다. 이번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작가가 앞으로도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를 희곡적 언어로 꾸준히 탐구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최종 심사에 오른 다른 작품들 또한 각자의 작가의식과 잠재력을 보여주었으며, 모든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창작의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 김수미, 최원종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이 작품을 한 문장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금기적 상상을 “자각몽”에 가둬 실행해 보지만, 꿈은 오히려 아버지를 ‘시스템(타이머/반복/소음)’으로 영속화시키는 심리극.
제목이 ‘죽이기’인데, 끝으로 갈수록 목표가 **죽임 → 삭제(지우기)**로 이동하는 점이 핵심이에요. 그런데 그 “삭제”가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기계처럼 재가동됩니다.
2) 등장인물 설정이 이미 상징이다
- 남자: 목에 휴대용 선풍기
→ 숨(호흡)과 열(찜기/더위)을 동시에 끼고 사는 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는 자”인데, 목에 이미 아버지의 장치를 건 채 등장해요. - 여자: 다지증(육손)
→ “우성 유전자”라는 아버지의 말로 정당화된, 정상성의 폭력이 몸에 박힌 상태. ‘잘라내도 근질근질’은 억압이 남기는 잔열. - 아버지: 배가 풍선처럼 기괴하게 부풀어
→ 아버지가 ‘인격’이기보다 팽창한 몸/덩어리/찜기로 표상됩니다. 말하자면 “가부장”이 아니라 열·압력·무게 그 자체.
이 세 사람은 “성격”보다 “몸의 결함/장치”로 먼저 정의돼요. 그래서 작품은 처음부터 심리극이면서 바디 호러의 질감도 갖습니다.
3) 무대 언어의 중심축: 선풍기·만두·손가락·“아”
이 희곡에서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오브제-언어예요.
① 선풍기 = 호흡을 빼앗는 ‘문명/가정/아버지’의 장치
-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 괴담은 사실상 가정 규율입니다.
죽는 건 과학이 아니라 규율을 어기면 “벌받는다”는 공포죠. - 남자는 “안 틀어도 똑같이 숨이 안 쉬어진다”고 말해요.
즉 선풍기는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숨 막히는 삶의 증폭 장치.
② 만두/찜기 = ‘아버지의 배’가 곧 가정의 압력솥
남자가 스스로 “만두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아버지는 진짜로 찜기가 됩니다(4장).
이 변환은 비유가 현실을 삼키는 꿈의 폭력이에요.
③ 손가락(다섯/여섯) = 유전이 아니라 “정상/비정상”의 판결
여자의 육손은 ‘특이함’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과 말(“우성 유전자다”)에 의해 의미가 고정된 신체예요.
그래서 여자는 “불공평”을 말합니다.
아버지 손가락을 선풍기에 넣어 자르면 아버지는 “네 개가” 되는데, 그럼 자기가 당한 규율(잘라내기)은 누구에게 향하는가—이 질문이 튀어나오죠.
④ “아” 소리 = 신음·진통·경보음·정지되지 않는 모터
아버지는 점점 **말보다 ‘아’**로 존재합니다.
이 “아”는 의미가 빈 소리처럼 보이지만, 무대에서는 가장 강한 신호예요.
- 병실 신음 같고
- 분만의 진통 같고
- 고장 난 기계의 경보 같고
- 아이가 부모에게서 들었던 원초적 소리 같아요.
결국 마지막에 무대는 “아”로 가득 차며 막을 내리죠. 언어의 실패가 무대의 성공으로 전환되는 지점입니다.
4) 장별로 핵심 기능만 딱 잡아 읽기
1장 남자: “아버지 살해”가 아니라 “숨의 복수”
남자는 선풍기 5대를 설치하며 가설을 늘어놓는데, 이 장의 요지는 이거예요.
- 아버지는 “더위를 견딘 서사”를 훈장처럼 말한다
- 그 서사가 남자의 현재를 찜기처럼 만든다
- 그래서 남자는 꿈속에서라도 아버지에게 숨 막힘을 되돌려준다
그런데 중요한 문장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 아빠는… 죽지도 않는 거 있죠.”
여기서부터 이 작품은 ‘죽이기’가 아니라 **죽지 않는 것(끝나지 않는 트라우마)**의 이야기로 확 바뀝니다.
2장 여자: ‘유전’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이 남긴 상처
여자는 여섯 손가락을 “떼어버리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더 무서운 건 손가락 자체가 아니라
아버지가 훔쳐보는 시선이에요.
손가락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곁눈질은, 딸의 몸을 “판정”하는 눈.
여자가 아버지 손가락을 선풍기 틈에 넣는 순간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 행위는 폭력인데, 동시에 “나만 당할 순 없어”라는 불공평의 윤리가 붙어 있어요.
3장 조우: “내 꿈인데 내 맘대로 안 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아버지/선풍기를 두 극점으로 타원 궤도 술래잡기를 합니다.
이 동선은 정확히 “강박”이에요.
- 켜면 꺼지고
- 돌려놓으면 옮겨지고
- 밀면 벽에 막히고
- 꿈인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구조
여기서 아버지의 대사는 섬뜩하게 현실을 박습니다.
“양반은 뜨거운 걸 잘 먹어야 되는 거야.”
‘뜨거운 걸 견뎌라’는 말은 세대 윤리이자 폭력의 정당화죠.
(더위를 견딘 자가 ‘양반’이라는 규율.)
4장 만두: 관계의 현실화(만둣집) + 아버지의 비인간화(찜기)
아버지의 배를 열면 만두가 나오고, 남자는 여섯 개를 건넵니다.
여섯은 여자의 육손과 연결되고, “태어남”의 의미가 흔들립니다.
여자의 질문이 날카롭죠.
“만두가 빚어가지고 태어나지는 건 아닌 거잖아요.”
즉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이 정말 자연스러운가?
가정/혈연이 “생산”이자 “제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여기서 솟습니다.
5장 쇼핑: 1970년대 광고 언어로 ‘가부장 시스템’이 드러난다
여기서 아버지는 판매원입니다.
아버지 개인이 아니라 **시대의 목소리(광고, 앙케트, 안전, 이혼)**가 됩니다.
- 보호망 없는 선풍기(절삭) = 폭력의 노골적 형태
- 타이머 선풍기 = 폭력을 “안전”으로 포장하는 시스템
- 역풍/무풍 선풍기 = 더 정교해진 통제의 장치
여자가 말합니다.
“제가 먹은 건 만두가 아니라 손가락이었어요.”
임신/출산의 이미지가 육손과 결합되며, “아버지의 규율”이 다음 세대로 재생산되는 공포가 폭발합니다.
6장 작전회의: 목표 변경 “죽이기 → 삭제”
여자가 정확히 선언해요.
“죽이는 걸로는 안 돼요… 지워버려야 되는데.”
여기서 관객은 깨닫습니다.
아버지를 ‘죽여도’ 죄책감/추억/규율은 남는다. 그러니 “삭제”를 꿈꾸게 된다.
7장 아: 삭제는 실패하고, 반복이 승리한다
아버지는 넘어져도 따개비처럼 떼어낼 수 없고, “아”로 다시 켜집니다.
남자는 휴대용 선풍기에 대고 “아”를 내며, 아버지의 언어를 스스로 재현하죠.
결말이 무서운 이유는 이겁니다.
- 아버지가 사라진 게 아니라
- 아버지가 **프로그램(반복 동작/타이머)**이 되어 남고
- 남자와 여자는 침대에 누워 그 반복을 “몽롱함”으로 받아들이며 잠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가 던지는 한 줄:
“그럼 내 자식이 아닌데…”
‘정상(다섯 손가락)’으로 만들어진 아이는 결국 “나(육손)의 세계”가 아닌, 아버지의 세계 쪽에 더 가깝다는 공포예요.
즉 삭제가 아니라 승계가 일어난 겁니다.
5) 왜 이 작품이 ‘무대 작품’으로 강한가
- **소리(선풍기/“아”)**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관객의 신체를 공격합니다.
- **오브제(선풍기/침대/찜기)**가 인물보다 더 강한 ‘사건’을 만듭니다.
- **반복 동선(타원 궤도)**이 “트라우마의 회귀”를 말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보여줍니다.
말로 설득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관객이 “숨 막힘”을 체감하게 만드는 쪽이에요. 그래서 심사평에서 말한 “무대 언어로 조직해내는 방식”과 정확히 맞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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