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우수상] 구슬을 던지다 / 오유경

<당선작>
구슬을 던지다 / 오유경
바람이 차가운 어느 늦가을, 주연은 인파가 북적이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손에는 친구에게 받은 선물가방이 들려 있다. 발도로프 인형이다. 주연은 친구들의 축하가 탐탁지 않아 모임 중간에 나와 버린 상태. 허기를 느낀 주연은 가까운 노점으로 향한다.
붕어빵을 기다리는 동안 주연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자를 마주친다. 주연은 한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굉음을 듣는다.
시선을 돌린 주연은 버스가 자신 쪽으로 돌진하는 것을 본다. 주연은 사람들과 황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가지만, 아이 엄마와 유모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한다. 주연은 달려가 그들을 구하나, 결국 자신은 피하지 못한다. 인도를 쓸어버린 버스는 가게를 들이받고 멈춘다. 곧 구급차가 도착하고, 주연은 자신에게 뛰어오는 상윤의 환영을 본 뒤 정신을 잃는다.
얼마 전 주연은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늦기 전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해서다. 오랜 절친 지수를 만나는 날, 지수는 아들이 힙합에 몰입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주연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뭐가 나쁜 거냐고 반문한다. 지하철 안에서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는 독특한 외모의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주연이 글을 쓰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예언하듯 앞으로 주연이 겪을 시행착오에 대해 말해준다.
주연은 매일 도서관을 다니며 고전을 읽고 습작을 시작한다. 생각과는 달리 바른 문장하나도 쉽지 않은 일. 노력 끝에 첫 단편소설 「가위질」을 완성한다. 주연은 뿌듯해 하지만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열람실에서 만난 학생이 구립 문화원의 글쓰기 특강에 참가해 볼 것을 권유한다. 작가의 첨삭을 기대하는 주연. 그러나 특강은 부실했고, 돌아온 원고에는 성의 없는 한 줄 코멘트뿐이다.
마침 전 직장에서 연락이 온다. 업무는 줄이고 연봉은 올려줄테니 복귀하라는 파격적인 제안. 주연은 과감하게 거절한다. 문화센터 글쓰기 반에 공석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
반에는 시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수강생들은 모두 고령이다. 주연은 실망하지만, 강사와 수강생들의 분위기에 점차 고무된다. 그들은 문우를 자처하며 작품을 열편만 써보자는 <열편네>를 조직. 습작에 박차를 가해 주연은 다섯 번째 소설을 완성하고, 공모전에 투고하지만 모두 고배를 마신다.
남편 선우는 주연이 아이를 갖는 것에 더 노력하길 원한다. 그들은 10년 넘게 난임 병원을 다녔는데도 소식이 없는 상태. 거듭되는 시술에 주연은 지쳐있다. 선우는 남은 냉동배아를 이식해 보자고 한다. 배아의 보관기간은 최대 5년, 폐기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것.
어느 날 주연은 심한 독감에 걸려 기이한 꿈을 꾼다. 금으로 된 소들이 떼를 지어 질주하는 꿈. 내용을 들은 지수는 태몽이 틀림없다고 하지만, 주연은 반신반의한다. 문화센터 열편네 멤버 중 한 어르신이 갑자기 세상을 떴음을 뒤늦게 알게 되고, 주연은 학창 시절 겪었던 친구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선우는 주연의 건강을 걱정하며, 한의사인 이모에게 데려다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주연은 자신이 늘 글쓰기와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익숙한 한 줄을 확인. 임신 실패에 안도하는 자신을 보고 굉장히 놀란다. 주연은 지금까지 진심으로 임신을 원했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글쓰기 반에 복귀한 주연은 <열편네> 멤버들과 지역 백일장대회에 참가한다. 거침없이 글을 써 나가고, 좋은 결과를 자신하지만 탈락. 실망하는 가운데 심사위원의 전화를 받는다. 주연이 제출했던 「브란데의 백야와 튀김우동」을 더 써보라는 격려였다.
선우 동생 현우와 약혼녀 세정이 주연의 집에 방문한 날. 세정은 주연에게 자기가 먼저 임신해도 되냐며 허락을 구하는데, 주연은 당황스럽다. 그 즈음 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본사의 구매 담당자 리케로부터 메일을 받는 주연. 그녀가 곧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다.
주연이 습작품 중 「미모사」를 통째로 삭제했을 무렵, 글쓰기 반에 박상윤이 들어온다. 육아 휴직 중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상윤. 그는 첫 만남부터 주연에게 호감을 갖는다. 주연의 차가운 외면에서 뜨거운 열정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동생 내외가 먼저 임신하기 전에 빨리 아이를 갖자는 선우. 주연은 임신이 경쟁이냐며 그와 크게 다툰다. 선우는 왜곡된 부성으로 열대어와 거북이 같은 반려동물을 들이기 시작한다. 집안 곳곳이 어항으로 채워질수록 주연은 마음이 텅 비는 것을 느낀다.
전세 만기로 이사하는 날, 선우는 말없이 사라진다. 짐이 옮겨지는 사이 주연은 이삿짐센터 직원한테 성희롱을 당한다. 상황이 끝난 후에야 선우가 나타나고, 그가 열대어 분양을 받아 온 것을 안 주연은 마음이 식어버린다.
이사 후 마음을 다잡고 주연은 소설 「바이쥬 번역기」를 탈고한다. 선우는 지방발령으로 대구에 내려간다. 주연이 혼자 있던 어느 날, 선우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세정이 이미 임신했음을 밝히는 어머니는 주연을 안쓰러워하며 운다. 자신이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됐음을 깨닫는 주연. 주위엔 오염된 어항들 안의 수중생물들 뿐이다. 주말마다 집에 오겠다는 약속을 어기는 선우. 그들 사이는 조금씩 멀어진다.
상윤은 주연이 발표한 글마다 높이 평가하고, 도움이 될 거라며 소설 합평 모임에 초대한다. 늦은 저녁, 작은 식당에 모인 멤버들 앞에서 주연은 자신의 미니픽션 「온기」를 발표하다 갑자기 눈물을 터트린다. 당황한 상윤은 주연의 차를 대신 운전해 주기로 한다. 주연이 리케를 마중하러 공항에 바로 가야 했던 것. 상윤은 주연을 즐겁게 해 주려 노력한다.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른 그들은 곰 조형물에 비치되어 있는 <느린 우체통>에다 1년 뒤의 자신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각자 써서 부친다.
공항에 도착한 그들은 리케의 즉흥적인 제안에 따라 다 같이 경주로 떠난다. 동틀 무렵 석굴암에 도착. 주연과 상윤은 함께 통일대종 타종을 하게 된다. 둘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흐른다. 관광을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술에 취한 주연은 숙소에서 잠들어 버린다. 한밤중 깨어난 주연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것을 느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주연은 상윤과 가까워진다. 문학에 관한 대화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주연은 자신이 소설에서 묘사했던 배경과 똑같은 장면을 실제로 마주친다. 그때 상윤이 다가와 주연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상윤의 복직과 동시에 센터를 끊는 주연. 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과정을 찾는다. 예전에 백일장 심사위원이 추천해 준 문학의 집에 등록. 수업 첫날, 주연은 강의실에서 상윤을 마주치고 놀란다. 수업종료 후 빠져나가려는 주연을 상윤이 가로막는다. 왜 자신을 피하냐고 얼굴을 붉히는 상윤. 텅 빈 교실에서 상윤은 주연을 안으며 자신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애원한다. 주연은 상윤의 연락처를 지워버린다. 그를 지우려 애쓸수록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현우의 결혼식 날. 주연은 편도염으로 목소리가 안 나오는 힘겨운 상태다. 주연을 위로한다며 한 마디씩 건네는 하객들. 어머니는 주연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술해 볼 것을 간청한다. 식이 끝난 후 주연은 호흡 곤란을 느끼고, 홀로 찬바람을 맞으며 마포대교를 건넌다. 집의 반대방향으로 걷던 주연은 자신이 상윤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배아의 폐기가 임박했다는 최후통첩, 주연은 마지막으로 시술을 받기로 한다. 이번에도 분명히 임신에 실패할 것이라 확신하는 주연. 시술을 끝으로 남편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겠다고 결심한다. 둘 사이에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아 이식 9일 후, 주연은 처음으로 피검사에서 임신 수치를 확인한다. 선우는 굉장히 기뻐하며 여왕대접을 해 주지만. 주연은 당황스럽다. 안정될 때까지 푹 쉬라며 옆을 지키는 선우. 주연은 종일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상윤에 대한 생각뿐이다.
2차 피검사 후 산모수첩까지 받은 주연.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 주연은 대학동창들과의 약속자리에 간다. 주연의 임신을 축하하면서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실망한 주연은 크게 화를 내고 자리를 뜬다.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을 모른 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는 주연.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지만 후유증은 크다. 선우는 서울로 돌아와 주연을 극진히 간호한다. 아이를 갖는 것 보다 둘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선우. 요양병원에서 1년 가까이 있던 주연은 도구에 의지해 거동이 가능해지지만, 사라진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목발을 짚고 집에 온 날, 방에 쌓인 책들과 컴퓨터 파일을 보고 주연은 의아함을 느낀다. 자신이 쓴 소설 「가벽」의 맥락도 이해하지 못한다. 예전부터 구독했다는 문학잡지가 매달 날아오고, 박상윤이 문학상을 받았다는 글을 우연히 본다. 주연은 어쩐지 그 이름이 익숙하다.
선우는 주연에게 글쓰기를 독려하며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대출해다 준다. 주연은 읽거나 쓰는 걸 어려워하면서도 자신이 가졌던 욕망을 어렴풋이 느낀다.
어느 날 선우는 주연 앞으로 온 편지를 내민다. <느린 우체통>이라 쓰인 봉투에는 곰의 조형물이 그려져 있다. 주연은 의아해하며 내용물을 확인하고, 자신을 똑같이 그려 놓은 펜드로잉과 손 편지를 확인한다. 비로소 상윤을 기억하는 주연. 그가 1년 후의 자신에게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 영종대교에서 느린 편지를 쓰던 날, 상윤은 주연의 것을 우체통에 넣어주겠다면서 가져갔었고, 자신의 편지로 몰래 바꿔 주연의 집으로 부쳤던 것. 선우는 누구의 편지냐고 묻지만 주연은 기억이 안 난다며 얼버무린다. 그 후 주연은 습작했던 소설파일을 찾아 하나씩 읽어 나간다. 상윤과 나누었던 대화도 되살아난다.
얼마 후 선우는 신축 도서관의 축하공연에 주연을 데려간다. 선우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 뮤지컬 곡이 흐른다. 무대는 안개로 가득 차고 하늘에서는 거품으로 된 눈이 흩날린다. 주연은 관객석에 앉아 기시감을 느낀다. 이어지는 겨울왕국의 <렛잇고>. 주연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아이를 데리고 온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주연과 눈이 마주친 상윤. 그들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흐르고, 상윤은 주연에게 잘 쓰고 있었냐고, 다 쓰게 되면 다시 꼭 만나자고 말한다. 선우가 돌아오고 상윤은 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돌아간다.
집으로 온 주연은 컴퓨터를 켜고 워드프로그램의 새 문서를 연다. 그리고 천천히 자판을 두드려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당선소감>
"꿈에 대하여"
부잣집 딸이면 좋았겠지만, 딸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몸보신을 위해 나를 낳았다. 셋째 언니를 출산하고 크게 아팠는데, 하나를 더 낳아야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할머니들이 권했기 때문.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를 보며 ‘핵폭탄을 떨어뜨리면 깨끗이 정리 되겠는 걸’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당시엔 유효한 이론이었나 보다.
본의 아니게 계획적으로 출생한 나는 대가족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손이 필요할 때마다 식구들은 나를 불렀다. 자잘한 호출을 피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했다. 무릇 독서하는 자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집안의 암묵적인 룰 덕분이었다.
안데르센 동화에 심취하며 나는 부잣집 양녀로 팔려가는 행복한 꿈을 꾼다. 정작 꿈이 뭐냐고 묻는 어른들에겐 과학자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허위로 답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하면 그들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돈을 줬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손에 쥐어지는 게 많다는 걸 체득했다.
소설을 쓰게 된 경위를 쫓다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 안 좋은 기억들도 희석되어 아름다워진다는데 나는 예외인가 보다. 여러 이유로 얌전히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자매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독서량은 우리들 중 최하위이지만, 결국 나 혼자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은 이토록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이 소설은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쓴 작품이다(송구합니다. 업무는 차질 없이 처리했습니다). 몇 년 숙성을 거치는 동안, 습작물 중 유일하게 등장인물이 꿈에 발현했다. 그들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 우리는 어떻게 되냐고 슬픈 눈으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문장을 매만져야 했고,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이 풀리지 않아 잘라버릴 결심을 할 때쯤 당선 연락을 받았다.
측근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구슬을 던지다」라고 했더니 <오징어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냐는 말을 들었다. 내용을 궁금해 하기에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는 얘기라고 해줬다. 그랬더니 깐부 할아버지가 구슬 한번 대차게 던지는가보다고 감탄했다. 다들 당선을 믿지 않아서 너무 좋다. 나도 못 믿겠는데 그들이 믿을 리 없다. 진정한 친구들이다.
소설가가 되려고 소설을 쓴다는 내게, 소설을 쓰고 있으니 엄마는 이미 소설가라고 했던 나의 보물 하정. 글 쓰는 아내를 열렬히 그리고 묵묵히 지지해 주는 남편. 양가 가족들. 오랫동안 성과 없는 제자를 기꺼이 살펴주신 표명희 선생님, 적토마처럼 질주하라 격려해 주셨던 김종광 선생님. 흑석동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 양분이 되었다. 2024년 뜨거운 여름에 더욱 뜨겁게 만났던 새벽감성1집 문우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신춘문예 중 유일하게 장편소설을 공모해 주신 현대경제신문에도 감사드린다. 계속해서 문청들에게 기회의 장이 되길 희망한다.
부디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에 무사히 안착하길.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제38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마로니에전국여성 백일장 산문부문 장원
<심사평>
유려한 문장의 ‘구슬을 던지다’, 인문학 지식이 돋보인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쓰든 자신의 정신세계를 서사로 들어내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의미를 건네는 일이다. 작가가 재미에 담은 의미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감동은 멀어지고, 함께 그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슬을 던지다」 (오유경)과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 (박연해)가 최종심에 남았고, 장편소설의 장단점을 서로 견줄 수 있어서, 모두 우수상으로 결정했다.
「구슬을 던지다」는 10년 넘는 난임을 겪은 부부의 삶이다. 그러니 시의성이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남편은 애완 열대어·거북이를 기르고, 아내는 소설 습작 활동으로 영위하는 삶에 피로감이 쌓이면서 생활에 균열을 일으킨다.
작가는 감성이 풍부한 유려한 문장으로 부부의 삶을 풀어간다. 거기에 많은 독서와 음악 소양은 서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면서 감성을 짙게 드러낸다. 하지만 지나칠때는 서사속에서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작가의 염두에 두었을까.
두 갈래 서사를 서로 교차시킨다. 난임 문제는 남편의 미련 있음과 아내의 관심 없음으로 대결한다. 대신에 아내는 밖으로 눈을 돌려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다가 한 남자에게 몰입한다. 하지만 소극적이어서 결말로 가는 서사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막상 어쩌다가 임신이 이루어졌을 때는 교통사고를 당해 결말로 간다. 또 하나의 서사인 소설 습작도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미결 상태다.
장점이 많은 내용인데, 초반의 서사 진행이 설득력을 갖기에 부족했다. 대학 시절에 글쓰기를 했고, 졸업 후에는 장르를 정해 쓰기까지 했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는, ‘몇 차례 계절이 바뀌도록’ 왜 그리 더듬거렸을까.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는 작가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이 돋보인다.
청년일 때 우연히 감동을 준 스님이 중심 배경이고 보면, 서사가 종결로 가기 위해서는 방황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속에 이성 관계와 그에 따른 상실이 필요했을 것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내용이 더욱 색달라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터.
주인공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고, 그것도 대만의 원주민을 선택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바다 위에서 매우 불안정하고 육체가 극한점에 달한, 힘든 상태에서도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건이라면 ‘경이적인 모멘트’를 행할 장소로 그만한 곳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자칫하면 ‘전설따라 삼천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넘쳐나는 인문과학 지식 역시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전지적 시점이 아니더라도, 화자가 유식함을 자랑하는 것 같으면, 세상 사람들은 딴전을 피우기 마련이다.
심사위원 : 이상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압력(가족/사회)과 ‘쓰고 싶다’는 욕망(자기/창작) 사이에서 찢기는 여성이,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가 ‘느린 편지’를 통해 다시 자기 욕망을 회복하고 “첫 문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이 소설의 마지막은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서사의 시작(첫 문장)’으로 회귀하는 구조예요. 그래서 읽고 나면 “끝났다”보다 “이제 시작한다”가 남습니다.
2) 제목 ‘구슬’은 뭘 뜻하나
제목이 던지는 질문은 이거예요.
- 구슬(작은 것) 하나를 던지면,
- 그 작은 힘이 굴러가며 게임의 판을 바꾸듯
- 주연의 삶에서도 작은 선택/우연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 작품에서 ‘구슬’은 한 가지 의미가 아니라 여러 의미가 겹쳐져요. 대표적으로:
- 난임/배아
- 냉동배아는 ‘작은 생명’(구슬처럼 보관되는 가능성)이고, 폐기일이 다가오며 “선택을 강요”합니다.
- 문장/이야기 씨앗
- 첫 단편 「가위질」, 미니픽션 「온기」, 「브란데의 백야와 튀김우동」… 이런 작품들은 ‘구슬’처럼 작게 시작하지만, 굴러가며 주연의 인생을 바꿉니다.
- 사랑/관계의 결정적 순간
- 상윤이 ‘느린 우체통’에서 주연의 편지를 바꿔치기해 1년 뒤에 보내는 행위는,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주연의 기억을 “복원”시키는 결정타가 됩니다.
- 이게 바로 “구슬 한 번 던져 판을 바꾸는” 장치예요.
즉 제목은 ‘오징어게임’ 같은 직접 패러디라기보다, 인생이란 작은 것 하나가 굴러가며 판이 바뀌는 게임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3) 이야기의 뼈대: “두 개의 서사”가 교차한다
심사평에도 나오는 포인트인데, 이 작품은 큰 축이 2개예요.
A축: 난임(부부/가족/시간의 압력)
- 선우는 “아이”를 원한다 → 점점 경쟁/성과로 만든다(동생 내외 임신, 시댁 압박)
- 주연은 계속 시술에 지친다 → 어느 순간 **‘실패에 안도’**하는 자신을 보고 충격받는다
→ “나는 정말 원했나?”로 질문이 바뀜 - 배아 폐기일이 임박 →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폭력처럼 다가온다
B축: 글쓰기(자기/욕망/성장)
- 회사를 그만두고 ‘늦기 전에’ 쓰려 함
- 도서관, 고전, 습작, 특강 실패, 공모전 낙방
- 문화센터 ‘열편네’(공동체)가 생기며 버틴다
- 상윤 등장: 주연의 글을 제대로 읽어주는 타자(=인정/호명)
이 두 축은 계속 서로를 방해해요.
- 난임의 시간표는 글쓰기 시간을 잠식하고,
- 글쓰기 욕망은 난임의 의무를 “의심”하게 만들죠.
결국 사고는 이 둘을 한 번에 “리셋”합니다.
그 리셋이 ‘비극’이면서도 동시에 새 시작을 위한 장치로 작동해요.
4) 1부 프롤로그의 버스 사고: 왜 맨 앞에 놓였나
맨 앞의 사고 장면은 단순 사건이 아니라 이 소설의 핵심 질문을 한 번에 깔아주는 프롤로그예요.
- 주연은 “친구들의 축하”가 탐탁지 않아 도망쳐 나온 상태
→ 이미 “축하받아야 할 삶”이 불편한 사람임을 보여줌 - 발도로프 인형(선물)
→ 아이/양육/‘좋은 엄마’ 상징이자,
동시에 ‘타인이 준 역할’의 상징처럼 읽힙니다. - 주연이 아이 엄마와 유모차를 구하다 자신은 피하지 못함
→ 타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선택
→ 이건 훗날 주연이 겪는 “부모/아이/가족” 문제의 역설적 거울이에요.
(나는 남의 아이를 구하지만, 내 아이 문제에서는 갈라진다)
그리고 “상윤의 환영”을 본 뒤 기절
→ 상윤은 이후 ‘현실의 인물’이면서도 주연에게는 욕망/문학/다른 삶의 가능성처럼 ‘환영’의 성격을 가져요.
5) 가장 강력한 상징 5개
이 작품은 상징이 생활물건에 붙어 있어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아파요.
1) 냉동배아 ‘폐기일’
- “5년 보관, 폐기 임박”은
시간을 숫자로 만드는 사회의 폭력이에요. - 사랑이나 욕망이 아니라 관리/처리의 언어로 생명이 다뤄지는 순간이죠.
- 주연의 불안은 “아이를 못 갖는다”보다
“내 삶이 행정처리 당한다”는 공포에 가까워집니다.
2) 어항(열대어/거북이)
- 선우가 왜곡된 부성으로 물고기를 들이는 장면이 아주 중요해요.
- 아이 대신 어항이 집을 채우는 건
부성의 대체물, 혹은 통제 가능한 생명에 대한 집착입니다. - 게다가 어항이 오염되어 간다 →
가족의 관계도, 집의 공기도, 감정도 같이 썩어가는 이미지.
3) ‘느린 우체통’ 편지
- 1년 뒤 도착하는 편지는 “시간차”를 이용해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가 됩니다. - 특히 상윤이 주연 편지를 “바꿔치기”한 설정은,
한편으로는 침범/조작처럼 불편할 수도 있지만,
서사적으로는 “주연이 자기 자신에게서 사라진 것을 타인이 보관했다가 돌려주는” 장치예요.
→ 즉 주연의 욕망(문학/사랑)은 남이 대신 저장해둔 파일처럼 남아 있다가 복원됩니다.
4) ‘첫 문장’
- 결말에서 주연은 새 문서에 첫 문장을 씁니다.
- 이건 “사고 이전으로 돌아간다”가 아니라
기억을 잃고도 다시 쓸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 즉 이 작품은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 엔딩입니다.
5) 마포대교/석굴암/통일대종 같은 장소들
- 다리(마포대교) = 삶과 죽음, 되돌림과 이탈의 경계
- 석굴암 새벽/종 = 의식(儀式), 깨달음, 혹은 금기 넘기 직전의 떨림
→ 이런 장소들은 주연이 “역할(아내/며느리)”에서 잠깐 빠져나와
자기 욕망을 확인하는 장면에 붙어 있어요.
6) 주연·선우·상윤: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삼각형의 의미
이 작품의 삼각관계는 흔한 멜로드라마가 아니고, 세 가지 삶의 원리가 충돌하는 구조예요.
주연 = “자기 욕망(쓰기) vs 의무(임신)” 사이의 몸
-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임테기 한 줄을 보고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 ‘원한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해야 한다’였음을 깨닫죠.
선우 = “성과로 사랑을 증명하려는 사람”
- 처음엔 아이가 “부부의 미래”라고 믿음
- 나중엔 사고 이후 “아이보다 둘의 행복”을 깨닫지만, 이미 늦습니다.
- 열대어/거북이는 선우의 불안을 보여줘요.
(내가 뭔가를 돌보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싶다)
상윤 = “읽어주는 타자 / 다른 삶의 가능성”
- 상윤은 주연에게 ‘연애 상대’이기 전에,
주연의 글을 읽고 가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 그래서 상윤을 지우려 할수록 주연은 흔들립니다.
그 사람을 지운다는 건 곧 자기 욕망의 증인을 지우는 일이거든요.
7) 사고와 기억상실: 잔인한데, 왜 필요했나
이 장치는 위험해요. 잘못 쓰면 “작위적 비극”이 되니까요.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사고는 기능이 분명합니다.
- 임신의 성패, 공모전 당락, 부부 갈등 같은 모든 “점수표”를 한 번에 무력화
- 주연이 잃어버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문맥(왜 내가 쓰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 그래서 편지/기시감/문장 같은 “서사적 회복 장치”가 의미를 가짐
결국 회복의 핵심은 “기억이 돌아온다”가 아니라,
**‘욕망이 돌아온다’**예요.
8) 제목과 결말이 맞물리는 방식
결말에서 주연은 “상윤을 다시 만난다”가 아니라
워드의 새 문서를 열고 “첫 문장”을 씁니다.
이게 바로 구슬의 ‘던짐’이에요.
- 구슬을 던진다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시작입니다. - “문장 하나”가 굴러가서
다시 삶의 판을 움직이게 하겠다는 선택.
즉 이 소설은
출산/성공/완성이 아니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결말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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