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우수상]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 / 배연해

<당선작>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 / 배연해
이 소설은 한국인 남자와 대만 원주민 여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다. 우연이 매개하는 운명 속에서 사랑이 맺어지고 부서지는 이야기다. 사랑이 부서진 폐허 위에서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시간을 이중적으로 전개하는 플롯으로 엮는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과거 삶과 사랑 이야기가 배경을 이루며 1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단속적으로 흘러간다. 또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현재 삶의 현장에서 과거를 반추하며 결정적인 자기 변화를 이루는 10일 남짓의 시간이 흐른다. 과거 속에 현재가 끼어들고 현재 속에서 과거가 되살아나는 구조로 전개된다.
프롤로그: 대단원 이후의 이야기가 도입부를 이룬다. 새롭게 태어난 주인공의 삶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준다. 주인공의 현재 삶을 이끈 고유한 시간과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부. 시간 속의 사랑에서
과메기는 물고기가 아니다: 주인공이 구룡포로 흘러든다. 5년간 지내던 지리산 암자에서 스님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가슴에 안고 떠나왔다.
“이제 산을 내려가서 흘러가보게. 발이 가는 데로 가고, 발이 머무는 만큼 머물고, 내키는 대로 하게.”
그 수수께끼의 전후 맥락과 주인공의 과거는 베일에 싸여있다. 마침 구룡포에서는 과메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구룡포에서 새로운 현실과 마주할 전기를 마련해줄 우연과 만난다. 과메기 판매 부스에서 일하는 박씨 아줌마와 식당에서 듣게 되는 오징어 채낚기 어선 이야기가 그것이다. 주인공이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타게 될 계기가 준비된다.
템플스테이로 바뀐 지리산 산행: 구룡포 민박집에 투숙한 주인공이 지리산과 인연을 맺게 된 과거를 회상한다. 현재에 끼어드는 과거의 시작이다. 주인공은 대학생 시절 지리산 산행길에 우연히 무착암이란 절에서 묵게 된다. 여기서 멘토가 될 대우 스님을 만난다. 무착암에서 곶감 만드는 일을 거들며 스님으로부터 인생의 좌우명이 될 이야기를 듣는다.
“거사님의 지금 그 생각과 의견을 만드는 내용과 논리는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서 연유했는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구룡포의 잠 못 이루는 밤: 주인공이 어선을 타기로 결심한다. 바다의 막장에 들어가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스님의 수수께끼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씨 아줌마의 도움으로 횟집 사장을 만나면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의 선원이 될 길이 열린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현재형 과거로 시작된다. 주인공의 두뇌를 지배하는 미지의 무엇이 그의 정신세계를 형성한 과거 시간과 경험을 생생하게 영화로 재현한다. 정치학도인 주인공은 대만에서 중국 정치를 전공하며 석사학위를 받는다. 연구 과정에서 정치학보다는 도가사상, 특히 장자에 매력을 느끼고 진로를 고민한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대만 원주민 트럭 운전자를 만나고, 그 인연으로 그의 친척 누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여자(샹샹)는 한족 남친과 실연한 슬픔 속에서 원주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과거를 영화로 보여주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미지의 특별한 영화감독(Unknown Special Director, USD)'으로 설정했다.>
그녀들이 살아가는 세상: 구룡포에서 어선 승선을 기다리는 주인공은 박씨 아줌마가 살아온 삶과 다방 여자들의 삶을 이야기 듣는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타인의 치열한 삶을 접하고 깊은 자기 회의에 빠진다. 껍데기를 깨고 세상으로 나올 발걸음을 암시한다.
사랑은 사랑이 한다: USD가 다시 과거를 재현한다. 주인공과 샹샹의 사랑이 무르익어 간다. 인간의 자아에서 사랑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다뤄진다. 샹샹이 집착하는 대만 원주민의 전통문화와 함께 주인공의 정신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장철학이 소개된다.
USD는 역시 대단하다: 주인공이 구룡포에서 어선 승선을 기다리며 감정적인 혼란을 겪는다. 지리산 생활에서 안정되는 듯했던 마음이 흔들리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져든다. USD가 주인공의 심경을 헤아린 듯 주인공의 과거 사랑을 재현한다.
원주민 전통 혼례식: USD 영화를 통해 주인공이 샹샹과 결혼하게 되는 맥락을 이야기한다. IMF 사태로 인해 부모님이 죽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주인공은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샹샹을 향한 사랑 속에서 주인공은 기존의 틀을 벗고 현실을 마주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귀국할 경우 샹샹이 안게 될 정신적 고통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청혼한다. 두 사람은 원주민 전통 양식의 혼례를 치른다. 결혼식을 통해 전통문화와 관습을 우리 시대의 시각에서 되돌아본다.
구룡포의 용은 열 마리: 어선을 기다리며 정신적 혼란을 겪는 주인공이 구룡포 호미곶에서 새해 일출을 본다. 거기서 구룡포 지명의 유래를 알게 된다. 용 열 마리가 승천하다 한 마리는 떨어지고 아홉 마리가 승천했다고 한다. 그러면 바다로 떨어진 용 한 마리는 어떻게 됐을까? 장차 용과의 신화적인 만남을 이루게 될 이야기를 예비한다. 이날 드디어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탈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승선을 하루 앞둔 주인공은 갈등을 겪는다. 다가올 뱃일에 대한 압박감과 샹샹을 향한 그리움이 교차한다.
짧은 이별은 언제나 신혼: USD가 주인공과 샹샹이 결혼 후 어떻게 사랑을 이어나갔는지 보여준다. 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함께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한국과 대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별거한다. 방학과 휴가 기간을 이용한 ‘셔틀 러브’의 아쉬움과 그리움 속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은 뜨겁게 유지된다. 두 사람이 사랑하면서도 같이 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이 제시된다. 두 사람은 마침내 6년 만에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기로 한다.
2부. 시간 너머 사랑으로
채낚기 어선은 낮에 잠든다: 주인공이 오징어 채낚기 어선의 선원으로 바다에 나왔다. 배를 기다린 지 7일 만이다. 배를 타기 직전과 직후의 심리적 갈등이 묘사된다. 선상 생활의 단면과 함께 선원과 선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막장도 인간의 또 다른 삶터: 채낚기 어선에서 진행되는 오징어잡이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오징어를 잡으며 선상에서 겪는 주인공의 심리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된다. 뱃일은 바다의 막장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이고 인간사의 양면이 존재한다. 주인공은 선원들의 다양한 배경과 충격적인 선상 생활의 모습, 그리고 고된 노동을 통해 강렬한 현실 체험을 한다. 거듭남을 위한 정신적 발판이 조금씩 마련된다.
샹샹 아주 멀리 떠나가다: USD가 주인공의 인생에서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경험을 영화로 재현한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한국으로 주인공을 만나러 왔던 샹샹이 서울에서 폭력에 희생되어 죽는다.
고래는 멀리서도 이야기한다: 샹샹이 사고를 당한 날을 바다에서 맞은 주인공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이야기한다. 간절한 그리움과 애통함이 교차한다. 고래들은 대양을 사이에 둔 엄청난 거리에서도 저주파로 교신한다. 그렇다면 생사가 갈라놓은 주인공과 샹샹의 거리도 극복할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의 신화적 해후를 암시한다.
난 너를 보내지 않았어: USD 영화를 통해 샹샹을 잃은 주인공의 심리가 그려진다. 삶 자체가 무너져버린 상실의 거대한 공허감과 비통함과 죄책감, 무의식적 자기보존 본능이 공존하는 상태다. 시간이 가면서 샹샹이 떠났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그 사실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다. 내면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계기가 필요하다.
용과 인간은 시간이 다르다: 주인공이 용을 만난다. 샹샹이 죽은 날을 맞아 용이 찾아온다. 구룡포에서 바다로 떨어졌다고 이야기되는 그 용이다. 용과의 만남을 통해 주인공은 샹샹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들어설 전기를 맞게 된다. USD 영화의 비밀이 풀린다. 감독은 용이다. 용은 자신이 주인공에게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만, 찾아온 결정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용은 인간의 시간이 다른 생명의 시간과 다르다면서 오징어가 왜 죽지 않는지 알려준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준다. 그건 인간의 의지다. 다만 인간은 그 의지를 주로 무언가를 망치는 데 발휘한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다시 찾은 무착암에서: 용이 주인공의 과거 시간을 재현할 마지막 영화를 보여준다. 무착암에서 5년을 보내며 새로운 정신세계를 형성할 준비를 한다. 격렬한 내면의 갈등을 겪으며 자신을 이해하는 첫발을 내딛고, 또 과거의 상처와 화해할 기반을 닦는다. 그러나 상처는 재발하고 집착은 여전하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정신이 성숙해지는 모습이 드러난다. 산사 생활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 고민이 제기되고, 인간의 인식과 존재적 한계가 문제로 떠오른다. 삶과 죽음이 이야기된다. 그러나 답은 찾을 수 없다. 마침내 대우 스님의 수수께끼가 주어지고 주인공은 하산한다. 주인공이 지리산에서 내려와 구룡포로 오게 된 배경이 여기서 밝혀진다.
영화의 비밀은 풀렸지만: 용이 다음 날 다시 나타난다. 주인공은 용을 따라 바닷속의 새로운 세계로 여행한다. 여행 중에 여의주는 인간세계의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 의식의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건 존재하지 않는 ‘본래’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다. 아울러 인간 존재의 한계와 그 한계를 넘어설 방향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만남의 무지개 소리: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용이 주인공을 데려간 세계는 죽은 자의 세계다. 우리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죽으면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 일단 머무는 곳이다. 그들은 죽지만 죽지 않는다. 떠나온 세계와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곳의 시간은 인간세계 시간과 다르다. 죽은 자들이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제각기 다르다. 떠나온 세계에 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까지 죽은 자들은 여기서 고통을 받는다.
주인공은 여기서 샹샹을 본다. 샹샹은 주인공의 집착으로 인해 죽은 자들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은 200만 년이 넘는다. 그런 사실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정신적 죽음에 이른다. 재생한 주인공의 두뇌는 새롭게 프로그램되고 샹샹을 향한 집착은 사라진다. 고통에서 놓여난 샹샹은 비로소 다른 세계로 떠난다. 진정한 사랑이야말로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에필로그: 과학의 시대, 물질주의 시대에 인간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짤막한 은유를 담았다. 사랑은 거리와 시간을 초월한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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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응모한 뒤 대만을 며칠간 다녀왔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연인 샹샹과 함께 했던 몇몇 배경 장소들을 거닐었다.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에 눈물이 나왔다. 소설을 쓰는 동안 너무도 강렬하게 나를 지배했고, 또 나와 함께 했던 샹샹은 곁에 없었다. 내가 만든 가공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꿈을 꾸는 주체로서의 나는 가공이 아닌가?
과학의 시대, 기술의 시대, 과학으로 인간 정신을 해체하려는 시대, 돈과 권력이 손잡고 초인간적 트랜스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시대. 이 시대에 인간과 인간 정신의 고유함은 어떻게 모색해야 할까? 인간은 어떻게 인간일 수 있을까? 소설의 저변에 흐르는 문제의식이었다. 사랑과 자유를 향한 의지, 그리고 여기에서 연유되는 몸부림에서 답을 찾아보려 했다. 애초에 나의 능력을 완전히 넘어서는 시도였다. 그런 줄 알면서도 발버둥을 쳐보았다.
첫 소설은 첫사랑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온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어쩌다 글이 스스로 알아서 나아갈 때는 황홀했다. 작품 구상에서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격렬하고 뜨겁고 긴 시간이었다. 식사나 양치질을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체중이 3kg 빠졌다. 추석날 한밤에 초고를 끝낸 뒤 침대 위에 쓰러진 채 꺼져가는 정신을 붙들었다. “원고를 지금 이메일로 매제에게 보내야 하는데…… 내일 아침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날 밤 메일을 보내지 못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다.
소설 쓰기는 강렬한 시간과 삶, 나아가 또 다른 삶을 체험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느꼈다. 나를 소설의 주인공에 완전히 투사하고 살았다. 내가 그였고, 그가 나였다. 휴지로 눈물을 닦아가며 글을 썼다. 남성적 페르소나에 매몰돼있던 나의 여성성, 또는 감성이 모조리 흘러나오는 듯했다. 때로는 사도마조히즘적인 희열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고된 행복감을 또다시 맛보고 싶다.
문학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저의 첫 소설을 입상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상이 아니라 채찍질이라고 생각한다. 환갑 진갑을 넘긴 나이에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등단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죄스럽다. 일찍부터 애정과 기대로 힘을 주신 숙부님 배우근 한양대 석좌교수님과 백승대 영남대 교수님께 특히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속적인 피드백과 함께 응모와 관련된 모든 준비를 대신해 준 매제 전영오,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어 준 동생 연택과 경애, 동기 부여해준 딸 주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소설은 처음 썼다. 영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15년 일했다. 서울디지털대학 중국학부 겸임교수로 2년 강의했다. 대만 정치대학 동아연구소와 상하이 복단대학 경제학원에서 연수했다. 대만 정치대학 국제관계연구센터 객좌연구원과 베이징 소재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를 잠시 지냈다.
<심사평>
유려한 문장의 ‘구슬을 던지다’, 인문학 지식이 돋보인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쓰든 자신의 정신세계를 서사로 들어내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의미를 건네는 일이다. 작가가 재미에 담은 의미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감동은 멀어지고, 함께 그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슬을 던지다」 (오유경)과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 (박연해)가 최종심에 남았고, 장편소설의 장단점을 서로 견줄 수 있어서, 모두 우수상으로 결정했다.
「구슬을 던지다」는 10년 넘는 난임을 겪은 부부의 삶이다. 그러니 시의성이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남편은 애완 열대어·거북이를 기르고, 아내는 소설 습작 활동으로 영위하는 삶에 피로감이 쌓이면서 생활에 균열을 일으킨다.
작가는 감성이 풍부한 유려한 문장으로 부부의 삶을 풀어간다. 거기에 많은 독서와 음악 소양은 서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면서 감성을 짙게 드러낸다. 하지만 지나칠때는 서사속에서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작가의 염두에 두었을까.
두 갈래 서사를 서로 교차시킨다. 난임 문제는 남편의 미련 있음과 아내의 관심 없음으로 대결한다. 대신에 아내는 밖으로 눈을 돌려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다가 한 남자에게 몰입한다. 하지만 소극적이어서 결말로 가는 서사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막상 어쩌다가 임신이 이루어졌을 때는 교통사고를 당해 결말로 간다. 또 하나의 서사인 소설 습작도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미결 상태다.
장점이 많은 내용인데, 초반의 서사 진행이 설득력을 갖기에 부족했다. 대학 시절에 글쓰기를 했고, 졸업 후에는 장르를 정해 쓰기까지 했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는, ‘몇 차례 계절이 바뀌도록’ 왜 그리 더듬거렸을까.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는 작가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이 돋보인다.
청년일 때 우연히 감동을 준 스님이 중심 배경이고 보면, 서사가 종결로 가기 위해서는 방황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속에 이성 관계와 그에 따른 상실이 필요했을 것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내용이 더욱 색달라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터.
주인공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고, 그것도 대만의 원주민을 선택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바다 위에서 매우 불안정하고 육체가 극한점에 달한, 힘든 상태에서도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건이라면 ‘경이적인 모멘트’를 행할 장소로 그만한 곳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자칫하면 ‘전설따라 삼천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넘쳐나는 인문과학 지식 역시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전지적 시점이 아니더라도, 화자가 유식함을 자랑하는 것 같으면, 세상 사람들은 딴전을 피우기 마련이다.
심사위원 : 이상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 문장 핵심
‘상실’ 앞에서 사람이 끝내 붙잡는 “본래(원형)”에 대한 집착을, 바다(막장 노동)와 신화(용/여의주/사후 세계)와 철학(노장/불교적 질문)으로 통과시키며, “사랑=놓아줌”으로 재정의하는 이야기.
이 작품은 단순한 러브스토리라기보다, 사랑을 빌려 **“인간이 왜 집착하는가 / 어떻게 놓을 수 있는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서사예요.
2) 제목: “오징어는 죽지 않는다”의 뜻 (작품 내부 논리로)
제목은 과학상식이 아니라 서사의 은유입니다. 작품 속에서 오징어는 두 층위로 작동해요.
- 현실 층위(노동/막장/생존)
- 채낚기 어선의 오징어잡이는 “바다의 막장”으로 불리죠.
- 여기서 오징어는 **생존을 위해 밤을 불태우는 존재(빛에 끌려 올라오는 존재)**이고,
- 주인공은 그 세계에 뛰어들며 “관념의 껍데기”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 형이상학 층위(죽음/사후/연결)
- 결말부의 “죽은 자의 세계” 설정에서 핵심 문장: “그들은 죽지만 죽지 않는다.”
- 즉 오징어는 “생명체 일반”의 대리 상징이 됩니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다른 차원에서 ‘연결’로 남아 있는 것.
정리하면 제목은
**‘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연결/기억/의식)’**과
**‘그 연결을 인간이 집착으로 오염시키는 방식’**을 동시에 가리켜요.
3) 플롯의 엔진: “이중 시간 + 침입하는 과거(USD)”
당신이 요약한 구조가 아주 중요합니다.
- 현재: 구룡포 → 어선 승선 → 10일 남짓 ‘현장’의 시간
- 과거: 대만 유학/샹샹과 사랑/결혼/별거/비극 → 10여 년의 단속
여기에 USD(Unknown Special Director)가 등장하면서 과거가 단순 회상이 아니라,
**‘강제 상영되는 내면 영화’**처럼 현재를 침입해요.
이 장치는 효과가 두 가지예요.
- 상실은 ‘기억’이 아니라 ‘침입’이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건 추억이 아니라 원치 않는데도 재생되는 장면들이 되죠.
- USD는 트라우마/죄책감/애도의 강제 반복을 서사화한 장치로 읽힙니다.
- 독자가 “철학”을 그냥 강의로 듣지 않게 함
- 철학(장자/노장/불교적 질문)이 서사에 들어오면 자칫 설교가 되기 쉬운데,
- USD가 보여주는 건 ‘이론’이 아니라 인물의 내장(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장면이 되면서,
관념이 사건과 감정에 묶입니다.
4) 1부의 핵심 주제: “사랑이 시작되는 방식 = 정체성의 균열”
샹샹은 단순 로맨스 대상이 아니라 정체성의 균열을 가진 인물로 설정돼요.
- 샹샹: 한족 남친과의 실연 + 원주민 정체성 찾기
- 주인공: 정치학/중국정치 연구 → 도가사상(장자)로 이동 → “진로·존재” 흔들림
즉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둘 다 자기 기반이 흔들릴 때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사랑은 달콤한 안정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아가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으로 태어나요.
(이게 뒤에 “집착” 문제로 연결됩니다.)
5) 2부의 핵심 주제: “현실의 막장 + 신화적 상승”의 병치
2부는 톤이 확 바뀝니다.
- 어선의 사실적 노동 묘사(현실 바닥)
- 샹샹의 폭력적 죽음(인간 세계의 참혹함)
- 용/여의주/죽은 자의 세계(신화적 초월)
이 조합이 왜 필요한가?
(1) “바닥”이 없으면 “초월”은 공중에 뜹니다
심사평에서 “전설따라 삼천리 위험”을 말하죠.
이 작품이 그 위험을 버티려면 **현실의 무게(노동/선상 관계/막장)**가 반드시 필요해요.
- 주인공이 바다에서 몸이 부서질 때,
- 관념(장자/불교)이 몸의 경험으로 번역됩니다.
- 그래서 용의 가르침이 “뜬구름”이 아니라 살기 위한 언어가 될 가능성이 생겨요.
(2) 애도 서사의 핵심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남은 자의 시간’입니다
샹샹의 죽음은 사건이지만,
작품의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예요.
- “난 너를 보내지 않았어” 파트가 말하듯,
- 남은 자는 사실을 알아도 내면이 수용을 거부합니다.
- 그 거부가 작품 후반의 “죽은 자의 세계”로 이어져요.
6) 용(구룡포의 떨어진 용) = 무엇의 상징인가
용은 단순 판타지 장치가 아니라, 서사의 핵심 해석키입니다.
1) USD의 정체: “감독은 용이다”
이 반전의 의미:
- 주인공에게 과거를 상영하던 힘은
단순 기억장치가 아니라 **‘인간을 넘어선 시간의 존재’**에 가까움.
즉 이 작품은 “내 기억은 내 것이야”가 아니라
내 기억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더 큰 시간/질서에 의해 편집될 수 있다는 세계관을 세웁니다.
2) “용과 인간은 시간이 다르다”
이건 곧,
- 인간이 붙잡는 집착은 짧은 시간 안에서 즉시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고,
- 용의 시간은 놓아주는 데 필요한 충분한 길이를 상징합니다.
7) 결말의 핵심 사상: “사랑 = 집착에서 벗어남”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샹샹을 봅니다.
- 샹샹은 주인공의 집착 때문에 200만 년의 고통을 겪는다.
- 충격 → 주인공의 “정신적 죽음”
- 재생(리부팅) → 집착 제거
- 샹샹 해방 → 다른 세계로 떠남
이건 굉장히 선명한 메시지예요.
- “내가 사랑해서 못 놓는 거야”는 사실
- “내가 못 놓는 방식으로 상대를 계속 붙잡아 고통 주는 거야”로 뒤집힙니다.
즉 이 작품에서 **진정한 사랑은 ‘붙잡음’이 아니라 ‘해방’**입니다.
여기서 작품은 아주 과감해요.
일반 로맨스는 “끝까지 사랑”이 미덕인데,
여긴 “끝까지 사랑”이 곧 끝까지 집착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죠.
8) 이 작품의 큰 질문 3개
이 소설이 실제로 던지는 질문은 대략 이렇게 정리됩니다.
-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무엇인가?
→ 작품은 “의지”라고 답하면서도,
그 의지가 대개 망치는 데 쓰인다고 비판합니다. - 우리는 왜 ‘본래’를 찾는가?
→ 여의주가 말하는 핵심:
존재하지 않는 “본래(원형/완벽한 과거/완전한 사랑)”에 대한 집착이 갈등의 뿌리. - 상실 이후의 사랑은 가능한가?
→ 가능하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붙잡는 사랑” → “놓아주는 사랑”
9) 강점과 위험(심사평의 포인트를 작품 안에서 풀면)
심사평이 매우 정확한 경고를 합니다: 인문학 지식 과잉, 전설화 위험.
강점
- 바다 노동(현실) + 철학(사유) + 신화(상상력)의 “스케일”이 큼
- USD/용/죽은 자 세계가 “애도”를 시각화하고 체험화함
- 사랑을 “윤리”로 재정의(놓아줌)하는 결말의 칼날이 날카롭다
위험
- 철학/지식이 인물의 피와 살이 아니라 “화자의 과시”로 보일 순간이 생김
- 신화 장치가 현실의 설득력을 뚫고 나오면 “전설따라 삼천리”가 됨
- 200만 년 같은 압도적 숫자는 강렬하지만, 독자에겐 “감정의 접지”가 끊길 수도 있음
(너무 커서 실감이 안 나는 순간)
이 작품이 완성도를 더 높이려면(합평 관점)
지식/신화를 ‘장면의 필연’으로 더 강하게 묶는 기술이 필요해요.
즉 “말로 설명”이 아니라 “사건이 어쩔 수 없이 그 지점으로 끌고 가게” 만드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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