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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경 청년신춘문예 - 장편소설

대학때 방송반 활동…대본 쓰며 글맛 들려 시나리오 · 희곡도 썼죠
25년 살아온 동네가 무대…심각한 재개발 문제 '유쾌한 패싸움' 으로 풀어

장편소설 당선자 최지운 씨는 "재미있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당선까지 되다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며 기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재개발 지역처럼 한국 사회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곳도 없다. 이해관계나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싸움이 벌어지는 곳. 큰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고, 영문 모른 채 쫓겨나는 사람도 있다.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서 이런 재개발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최지운 씨(34·선경어학원 강사)의 《옥수동 타이거스》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2006~2008년 재개발 붐을 타고 서울 옥수동에 찾아온 갈등을 ‘학원 코믹물’로 슬쩍 바꿔놓은 재치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용공고의 모델인 동호공고는 공고에 대한 주민들의 ‘비호감’ 때문에 서울방송고로 바뀌었다. 최씨는 이 사실을 취재하면서 “이건 소설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전남 여수 출생인 최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 금호동으로 이사왔다. 전셋값이 올라 고등학교 2학년 때 근처 신당동으로 이사해 25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지역의 역사를 꿰고 이야기를 장악한 게 당선 비결 중 하나였다. 세밀한 장소 묘사도 이점이었다. 그러면서도 소설의 재미를 위해 힘을 뺐다. 

“이 작품이 재개발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룬 건 기존 청소년 소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로 그 안의 청소년 개개인 삶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렇지만 학생들 한 명 한 명 사이에까지 사회적 갈등을 넣고 싶진 않았어요. ‘누가 더 싸움 잘하느냐’만 가리면 되는 학생들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주제를 말하고 싶었죠. 또 재미있게 읽다 보면 사회 문제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터넷의 ‘팝업 창’처럼 곳곳에 허구적인 인용문을 등장시키는 형식적 파괴도 보여줬다.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서울시 교육감 선거 후보에 출마했던 J씨의 인터뷰 기사에서’ 등의 유머러스한 내용을 인용문으로 삽입하는 식이다. 취재를 위해 신문기사 등 자료를 찾다가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소설적 재미와 사회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1998년 한국항공대 항공재료공학과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했다. 그러다 대학 방송국 활동을 하게 됐고 방송대본을 쓰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군에 입대해 수능공부를 다시 시작한 그는 2003년 동국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엔 서울과기대 산업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대학원 시절 소설 수업시간에 중편으로 썼던 작품. 이후 취재를 더 하고 에피소드를 늘려 살을 붙였다.

그는 당선 통보를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에 받았다.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던 중이었다. “올해도 떨어졌구나 하며 마음을 털고 있었는데 당선 통보란 걸 알고 멍했죠. 복사기는 계속 윙윙 돌아가고 저는 멍하고. 그러고 있다가 계속 일했습니다. 무지 바쁜 날이었거든요.”

부모님께는 당선 사실을 늦게 알렸다. 자정이나 돼야 끝나는 일 때문이었다. 그동안 부모님은 글쓰는 걸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과소평가 때문에 더 열심히 썼던 것도 사실이에요. 뭔가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수상 소식을 알리니 놀라시더라고요. 고료도 많고요.(웃음)”

인터뷰 내내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늘은 늦게 출근한다고 말했어요. 다들 놀라워하더라고요. 대치동 영어학원 선생 중에 누가 신춘문예에 당선될 줄 알았겠어요. 교보문고에 진열된 제 책을 보고싶다는 꿈을 이뤄 저도 정말 기쁩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장편소설 '옥수동 타이거스' 줄거리 ) 오호장군-캡틴파이브 맞대결…옥수동 뉴타운사업 갈등 그려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남산의 끝자락. 성동구와 중구를 가르는 그곳에 매봉산이 있다. 과거에는 대한민국 하위 5%의 빈민층이 이 산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현재는 응봉근린공원을 경계로 대한민국 상위 5%의 부유층과 함께 산다. 재개발 사업으로 매봉산 오른편의 달동네가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까닭이다.

옥수동이란 지명을 버리길 원했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서울시에 요구해 따로 중구 서당동이라는 행정구역을 편성한다. 

단지 바로 옆에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문제아들이 모인 ‘용공고’가 자리한다. 개천과 같은 용공고에서 열심히 공부해 용이 돼서 졸업하라는 심오한 뜻이 담긴 실업계 고등학교다. 이 학교에 서울시교육청의 이전 명령이 내려온다. 용공고가 불순한 학생들의 아지트가 돼 주변 학교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고 범죄의 온상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들의 자제가 다닐 초등학교를 마련하기 위해 용공고 부지에 눈독을 들인 서당동 주민들이 서울시교육청과 로비를 벌인 결과였다. 딱히 이전할 곳을 마련하지 못한 용공고에 기다리는 운명은 폐교였다. 용공고 학생들은 이에 격렬히 저항한다. 이런 위기에 처한 용공고에는 싸움을 잘하는 다섯 녀석이 모여 결성한 ‘오호장군’이라는 폭력서클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한편 서당동에는 ‘용공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시설과 명성을 자랑하는 ‘중앙외고’가 있다.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의 선민의식으로 인해 질시와 미움을 받는다. 이 학교의 다섯 녀석이 모여 결성한 서클이 ‘캡틴파이브’다. 

이들은 부잣집 도련님들에 공부밖에 모르는 샌님이라는 편견을 깨고 엄청난 싸움 실력으로 자신들과 중앙외고 학생들을 괴롭히는 놈들을 모조리 때려눕힌다. 

한편 2008년에 새로이 들어선 정부는 매봉산 왼편의 달동네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옥수동 뉴타운’ 사업을 추진한다.

당선 소감 ) "너희 얘기가 책으로 나온단다"

4월로 넘어가는 어느 화창한 봄날, 주인공이 다니는 용공고의 모델 학교를 방문했다. 한참을 학교 구석구석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잠시 후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보아하니 이 학교 학생들이었다. “아저씨는 뭔데 여기서 우리 학교를 살피는 거예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무섭다는 질풍노도의 고등학생들에게 붙잡힌 거 아닌가? “어…. 다름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데 이 학교가 주무대거든. 그래서 자료조사 하느라고.”

학생들은 어느새 경계를 풀고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그거 책으로 나와요?”

그만 말문이 탁 막혔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가능한, 그 전엔 그저 한 개인의 끄적거림에 불과하다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실망할 텐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작품이 탄생했다. 다시 그 학교를 찾아간들 어느 봄날에 날 상대해 주었던 그 학생들은 자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지면을 빌려 그들에게 다소나마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 “드디어 너희 학교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게 됐어. 그러니 꼭 한 번 봐 줘.”

당선 소식에 마치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었던 동국대 문창과 03학번 동기들과 서울과기대 산업대학원 문창과 선후배 여러분, 글만 쓰고 살아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일도 서투른 나를 직원 이상으로 따뜻하게 대해준 선경어학원 식구들, 부족한 제 작품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해 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1979년 전남 여수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 산업대학원 문예창작학 석사.

장편소설 부문 응모작들을 살펴보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왼쪽부터), 문학평론가 장은수, 소설가 박성원 씨.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심사평 ) "새로운 기법 · 재미 · 사회성  3박자 갖춰"

본심에 올라온 다섯 편의 소설 모두가 실력을 갖췄다. 근래에 불기 시작한 장편소설의 바람이 청년문학도에까지 깊게 확대됐음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김은정의 ‘최씨네 종말 탈출기’는 어린애의 시선으로 가족과 현대사회의 단면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 솜씨가 제법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어린애의 입장에서만 대화를 나열하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이 점을 녹여낸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될 것이다.

장애를 지닌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의경의 ‘자그맣고 둥글고 삐죽삐죽한’은 안정된 문장으로 서사를 차분하게 이끌어나가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소설의 핵심이 될 만한 사건의 형상화가 없는 게 단점으로 논의됐다.

이미령의 ‘올드맨 소프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소설을 많이 써 본 솜씨가 드러났다. 그러나 장편이 주는 분량에 대한 강박감이 있었을까. 1부의 전개와는 달리 2부에서는 힘이 처졌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심하게 만든 것은 이하의 ‘윤봉길을 막아라’였다. 타임 슬립을 통해 과거를 종횡무진하고 대체역사와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서사의 플롯이 재미있었다. 또 사회의 이면을 들추는 사유와 진정성이 함께 들어있어 좋은 소설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서사의 정밀함이 다소 부족하고 타임 슬립이라는 환상성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게 심사위원들을 마지막까지 머뭇거리게 했다. 

당선작은 바로 최지운의 ‘옥수동 타이거스’다. 매봉산과 옥수동 등을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의 성장기를 그린 이 소설은 첫회라는 상징성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첫회인 만큼 새로움에 기준점을 두었다. 좋은 소설은 뻔한 소재를 새롭게 전달한다. 고등학교의 일진 이야기는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르다. 게임에서부터 삼국지라는 고전, 영화적 기법의 차용까지 다양한 장치가 섞여 있어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올 새로운 소설의 출현을 예견하고 있다. 마치 팝업 창이 튀어나오듯 소설 중간중간에 삽입된 각종 인터뷰 등은 재미뿐만 아니라 소설이 갖춰야 할 사회성이라는 덕목을 잘 보여준다. 

은희경·장은수·박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