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작] 폐허를 서성일 것인가, 잔해를 수습할 것인가 〈드라이브 마이 카〉 / 윤성민
폐허를 서성일 것인가, 잔해를 수습할 것인가 〈드라이브 마이 카〉 / 윤성민 [장평] 1. 끝이 난 세계, 그 이후 ‘이야기’는 ‘천일야화’에서 생사의 문제다. 왕비의 불륜을 목격한 샤리야르 왕은 복수심에 3년여간 여인들을 침실로 부르고, 날이 밝으면 그들을 참수한다. 여인들은 왕과 몸은 섞었으나 이야기를 섞는 데 실패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왕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 결과는 죽음이었다. 셰에라자드는 달랐다. 그는 “옛날에 재산이 많은 상인이 있었는데…”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던지 샤리야르 왕은 목을 친다는 사실도 잊고 매일 밤 이야기를 청했다. 그렇게 1001일 밤이 이어져 셰에라자드는 살아남았다. 이야기가 셰에라자드를 생존하게 했고, 샤리야르 왕을 참회하게 했다. 이 아랍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