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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경운기는 늙은 소처럼 엎드려 있었다. 사내는 양수기를 꺼내 경운기 헤드 위에 연결한 뒤 스타칭 막대를 플라이휠에 꽂았다. 플라이휠을 돌리다 이른 타이밍에 스로틀 밸브를 놓았다. 초조한 마음과 달리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일분일초가 아쉬웠다. 세 번째 시도 끝에 경운기는 밭은 기침소리를 냈다. 헤드가 서서히 열기를 띠었다. 트레일러에 양수용 호스, 나락포대, 방수포, 삽을 싣고 보를 향해 경운기를 몰았다. 국도에는 차 한 대 다니지 않았다. 사내는 기어를 고속 모드에 놓았다. 해가 뜨기 전에 물을 퍼내야 했다. 어둠이 걷히기 전에 사체를 찾아내야했다. 사내는 굴속에 매몰된 자식을 찾아 다시 굴을 파고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경운기는 천공기가 되어 어둠을 파나갔다. 별들이 떠있지 않은, 구름 낀 하늘이 두려웠다.

달력이나 시계보다 구름의 높이, 산과 들의 빛깔, 하천의 수량, 햇빛의 농도, 그림자의 기울기에 의존해 살아온 세월이 이십 년을 넘었다. 나락에 맺힌 이슬들이 말라간다 싶으면 아침때가 지나 있었고 배가 고프다 싶으면 점심때가 넘어 있었고 기계를 점검하다 어둡다 싶으면 저녁때가 지나있었다. 늘 밥 때를 넘겨 귀가하는 통에 식구들은 주린 배를 참아가며 사내를 기다리고는 했다. 기다리는 사람 생각 좀 하라는 아내의 질책에 먼저 먹지 그랬냐며 쏘아붙이는 재미로 살아왔다. 그렇게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달래가는 거라고, 그게 인생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잘못 살아온 걸까. 아내는 아들이 가슴통증과 천식기를 달고 사는 이유가 죽은 시아버지 때문이라 생각하고 굿판을 벌이기까지 했다. 사내는 자신의 아버지를 잡귀로 만든 굿판을 보면서도 말릴 수 없었다. 그래서라도 아들의 건강이 나아진다면 더한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든 되겠지. 이정표가 가리키는 행정구역이 고향집과 가까워질수록 사내의 아들 녀석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는 차 속도를 줄이고 덮개를 열어 오픈카로 전환했다. 차 실내에 흐르던 다푸트 펑크의 음악이 고요한 시골 밤을 흔들었다. 꼰대라면 돈은 있을게 분명했다. 현금이 없으면 논을 담보 잡혀서라도 마련할 수 있을 거다. 논이 삼사 십 마지기쯤 된다 했던가. 한 마지기가 이백 평이니까 평당 십만 원만 나가도 이천, 세 마지기면 육천. 지금껏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나중에 아버지 소리라도 듣지. 그럼 돈은 있다고 치고 어떻게 뜯어 내냐가 문젠데. 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수가 안 떠올랐다. 이미 등록금 부풀리기도 써먹었고 전세비 구라도 친 상태였다. 합의볼 일이라도 있다 해야 하려나. 고리대금업체에서 나온 건달패가 눈앞에서 흔들어 대던 신체포기각서가 떠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소똥 몇 삽 뜨고 입맛 없는 척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드러눕지 뭐.

그는 아버지의 터덜터덜 걷는 걸음을 보면 이유모를 화가 났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다. 땅이 있으면 뭐한가. 그 땅은 돈이 아니라 족쇄였다. 한평생 제 주인을 경운기처럼 굴리는 실질적인 지주였다. 그렇게 일만 해서 얻는 건 뭔가. 손이 소나무껍질처럼 갈라지도록 누가 알아주던가. 꼰대 입을 통해 들은 할아버지의 삶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그렇게 살아 무슨 낙이 있을까. 그러니 할아버지도 결국에는 자살을 택하고 만 거다.

꼰대는 그가 대학에서 대단한 걸 배우는 줄 알았고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생활에서 그가 맞본 건 무력감이었다. 어차피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될 거라면 젊을 때만이라도 지르고 살 작정이었다. 고향 어른들이 그를 망나니라 하는 것도, 대학 동기들이 막장인생이라 떠들어 대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각자 인생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아우디를 뽑으니까 옆자리에 한 번 타보려는 계집애들과 한 번 빌릴 수 있을까 싶어 껄떡대는 놈들이 생기지 않았던가.

그는 석 달 전에 장만한 아우디 티티(TT) 컨버터블을 몰고 시골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해서 꼰대에게 받은 전세비 삼천 만원에 사채 사천 만원을 더해 구입한 차였다. 할부로 사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신용카드 발급이 안 됐다. 그래도 차는 갖고 싶고 돈 나올 구멍은 없고 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야간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뛰면 사채 이자와 원금은 조금씩 갚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복리이잔가 뭔가 하는 게 뒷덜미를 잡아채기 시작했다. 갚는다고 갚아도 이자는 불어갔다. 그는 일이 그렇게 된 게 다 꼰대 탓 같았다. 애초에 화끈하게 육천만원을 줬으면 사채 이자가 이렇게까지 불어나지는 않았다. 요즘 세상에 삼천으로 전세를 구하라니. 판잣집이나 구하라는 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육천만원은 뜯어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석 달밖에 안 탄 애마는 물론 자신의 장기까지 내주게 될 판이었다.

새벽 두 시, 국도를 달린 지 십 여분이 지나도록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몇 대쯤 앞서 달리고 있어주면 보란 듯이 추월해줄 텐데 말이다. 그는 상향등을 켜고 도로 중앙으로 달렸다. 구불구불한 게 나름 운전할 맛은 났다. 고향집과 백여 미터 떨어진 용연교에 이르러 그는 차를 세웠다. 차를 뽑으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그는 엔진 공회전 소리를 즐기기 위해 음악을 끄고 양발을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페달 위에 동시에 올렸다. 브레이크를 꾹 밟은 채 액셀러레이터에 올린 발을 움직였다. 아르피엠(RPM)4500까지 올렸을 때 차량에 달린 시계의 초침이 12를 가리켰다. 순간 브레이크 페달에 올려두었던 발을 뗐고 동시에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꾹 밟았다. 차는 스키드 소리를 내면서 튕겨지듯 달려 나갔다. 급가속이 주는 체감속도는 환상적이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치며 잽싸게 제로백(0100km에 도달하는 시간)에 걸린 시간을 확인했다. 7. 카달로그에 적혀있던 것에는 못 미쳤지만 그건 처음 해봤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때 퍽 하고 차량 우측에 뭔가 부딪혔다.

뭐지?

사내는 기계 점검을 마치고 나면 습관적으로 손바닥의 냄새를 맡았다. 그때마다 진한 금속 냄새, 피비린내와 닮은 냄새가 올라왔다. 그 냄새는 기계에 녹이 슬수록 진해졌고 덩달아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도 진해졌다. 농사를 지을수록 사내의 몸은 경운기를 닮아갔다. 경운기의 페인트가 벗겨지는 만큼 사내의 피부도 벗겨졌고 톱니며 베어링들이 닳은 만큼 그의 관절들도 닳아갔다. 주 기어박스에 붙어있던 조작설명서 스티커는 닳아 떨어진 지 오래였고 같은 세월 그의 손에서는 손금들이 하나둘 사라져 이제 두 줄 밖에 남지 않았다. 기름때 사이로 유독 하얗게 보이는 두 줄의 손금은 사라진 손금들이 합해진 것처럼 깊었다. 사내는 겨울이면 미처 수리하지 못하고 방치한 부러지고 구멍 난 부분에 용접봉을 들이댔고 탁해진 윤활유들을 교체했다. 경운기 수리가 끝나면 읍내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경운기는 낡아갔고 사내는 늙어갔다. 간혹 서럽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선친의 소가 생각났고 그러다 보면 살며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어찌할 수 없었으니 또한 괜찮았다.

당신 오늘 풍기씨네 애 봤어요?”

막 씻고 들어온 그에게 먼저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아내가 물었다.

아침에 웃배미 논 가다가 본 것 같은디. 갸는 왜?”

해지도록 집에 안 들어왔나 봐요.”

별일이야 있겄는가. 친구 집에라도 간 게지.”

풍기씨네 애라면 나이 마흔에 낳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늦둥이를 말했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그 애를 부를 때 원래 이름 대신 오복이라고 불렀다. 늦은 나이에 나서일까. 뒤통수가 납작했고 목이 짧은 오복이는 선천적인 질환이 있다 했다. 애들끼리 멋모르고 별명처럼 오복이라 불렀지만 어른들이 그 애칭을 붙여준 데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라는 속뜻이 있었다. 애들이 하룻밤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대수는 아니지만 풍기부부로서는 남들과는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사내의 아들도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지라 아내는 풍기 마누라랑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어찌됐건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사내는 아이 부모의 애간장 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먼저 잠든 아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내의 숨에서 젖은 볏짚 냄새가 났다. 곰삭은 풀냄새와 마른 흙냄새가 뒤섞인, 그런 냄새였다. 사내는 자기 다리를 아내의 다리 위에 얹었다. 언제부턴가 아내와 그는 본능적으로 서로의 다리에 자기 다리를 얹었다. 환부에 얹히는 무게감이 얼마간 통증을 잊게 했다. 그러나 아내의 야윈 다리는 사내의 다리 위에 얹혀도 별 무게감이 없었다.

아내의 소란에 눈을 떴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왔다 했다. 사내는 눈을 비비며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세시 반이었다.

아들이 집에 온 건 군 제대 후로는 반년 만이었다. 웬 차일까. 사내는 녀석이 몰고 온 새빨간 승용차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는 선배에게서 빌린 거라고 했다. 차를 뽑아주지 않는다고 시위라도 하는 것일까.

밖에 세워두면 먼지 쌓인다니까.”

아들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차고로 쓰던 곳에는 양파를 쌓아둬서 사내의 경운기도 축사 구석에 세워둔 상황이었다.

그라믄 축사 안에라도 세워 둘라냐?”

이 차가 얼마짜린 줄 알고 하는 소리야. 차에 똥내 배게.”

안 되겄음, 방수포 씌워라.”

아들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축사 안을 살피고 돌아왔다.

경운기 세운 자리에 있던 소는 어디 갔어?”

사료 값 외상 갚느라고 팔았다.”

경운기 좀 빼. 내차 주차하게.”

사내는 경운기를 빼내고자 축사 안으로 들어갔다. 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경운기는 당장 버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았다. 두 번 교체한 트레일러 상판은 녹이 심하게 슬었고 숭숭 구멍까지 뚫렸다. 엔진에서는 윤활유가 샜고 이미 세 번이나 교체한 연료노즐도 다시 삭았다. 손잡이가 부러져 용접으로 붙인 흔적도 남았다. 이제 연료노즐이나 엔진 접합부의 가스캣 교체 정도로는 회복을 바라기 어려웠다.

사내는 축사 안으로 들어서는 아들의 차가 어딘지 꺼림칙했다. 읍내에서 한 번도 못 본 차였다. 시트에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납작한 데다 도자기 그릇처럼 매끈한 게 한 번이라도 본적이 있다면 기억에 남을 만했다. 차 문도 양 쪽에 하나씩, 두 개밖에 안 달린 조그만 차가 소리는 경운기만큼 요란했다. 스포츠카 어쩌고저쩌고 떠들던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게 그런 차일까. 제 말로는 빌려온 차라지만 어딘지 미심쩍었다. 대학교 일 학년 때 여자애 하나를 데려 온 뒤 대뜸 임신했다 털어놨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결혼을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사내의 고민과 달리 아들은 낙태를 시키기로 작정하고 온 듯했다. 기어코 낙태수술비와 여자애 몸조리 비용을 챙겨 돌아갔었다.

아들이 축사를 나간 뒤 사내는 승용차를 살폈다. 차 유리에 코팅이 진해 안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빌려온 차가 맞을까. 아들은 경운기를 빼 달라 할 때 분명 제 차라고 말했다. 석 달 전에 송금해준 전세비가 떠오르는 순간 오히려 사내는 의심을 거뒀다. 설마 아니겠지. 아무렴 그 돈으로 차를 샀으려고.

축사 밖으로 나왔더니 아들이 후크를 들고 서 있었다.

퇴비 안 쳐내?”

쳐 내야제. 나 혼자서 하믄 된다.”

녀석은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축사로 들어갔다.

인석아, 공부하는 놈이 뭔 기력이 있다고 그랴. 내비둬라.”

아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퇴비에 후크를 쑤셔 넣었다.

하더라도 옷이나 갈아입고 혀.”

사내는 군대를 갔다 오고도 여전히 비쩍 마른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녀석은 자라는 내내 부모의 애간장을 태웠다. 어떤 날은 새벽 내 가슴통증을 호소했고 어떤 날은 조퇴를 하고 돌아와 종일 누워 있었다. 읍내 병원에서 인근 시의 종합병원으로 다시 대학병원에서 한의원으로 병원을 옮겨봤지만 뚜렷한 병명조차 듣지 못했다. 때문에 사내와 아내의 신경은 종일 아들에게 쏠려 있었다. 모종이 좋지 않아 모내기 후로도 유독 신경이 쓰인 모들을 들여다 볼 때의 심정이랄까. 하루라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노랗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아들이었다.

녀석은 집과 떨어져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눈에 띄게 변했다. 무슨 말을 해도 건성건성 대꾸했고 돈이 필요하면 맡겨놓은 듯 보챘다. 그런 모습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제 나이 때는 그런 거라 생각했다. 옆에서 녀석의 힘쓰는 소리가 들리니 간만에 힘이 났다. 진로를 막고 선 소 궁둥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비켜서게 하는 짓이 흐뭇했다.

아들은 말없이 퇴비만 쳐냈다. 원 녀석도. 반 년 만에 불쑥 나타난 주제에 일을 돕는 것도 모자라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 아들을 보자 다시금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뭔 고민이라도 있냐?”

사내는 땀이 등골을 타고 흐를 때쯤 되어 물었다.

. 고민이야 항상 돈이지 별 거 있어.”

다 괜찮으니까 여자애 임신시켰다는 말은 안 했으면 싶었다. 옥구슬 같은 새끼라지만 녀석이 하는 짓이 버릇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녀석의 망나니짓이 다 자신의 업보 같아 싫은 말 한번 속 시원하게 하지 못했다.

사내는 귀농을 하자마자 선친 몰래 소를 팔았었다. 경운기만 있으면 누구보도 훌륭한 농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확신이 선친에게 가닿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소를 직접 우시장까지 끌고 갔다. 선친은 비어있는 축사와 마당에 서있는 경운기를 본 뒤에도 성을 내지는 않았다. 사내를 향해 농사꾼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선친이 했던 말은 사내에게 닿지 않았다. 사내는 농사를 물려받고 싶었지 소로 쟁기질 하던 무력한 모습을 물려받고 싶던 게 아니었다. 선친의 소를 판 뒤로 이상하게 가세가 기울어졌다. 소가 한 마리씩 거품을 물기 시작하더니 하나 둘 죽어나갔다. 일 년 쯤 지나 축사는 텅 비게 됐고 선친은 그 축사 안에서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사내는 선친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게 자신과 자신이 산 경운기 탓 같았다. 선친이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난 아들은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았다.

아래 다 쳐내려고 했던 퇴비를 반만 쳐냈다. 축사 밖으로 나와 대추나무 밑에 있는 평상에 녀석과 나란히 앉았다. 사내의 축사에 있는 소들은 노동이란 걸 모르고 살다 가는 것들이다. 그 노동의 몫은 온전히 경운기에게 이전되었다. 선친이 소를 식구로 여겼다면 사내에게는 경운기가 그랬다. 경운기는 겉보기와는 달리 거칠었다. 경운기 운전을 독학으로 배우면서 그는 여러 번 땅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겨우 좀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만난 내리막에서는 사이드클러치 조작법이 반대로 바뀌는 통에 길 아닌 곳을 들이박거나 전복되기까지 했다.

사내는 남은 연료가 바닥날 때쯤 해서 경운기를 고물상으로 몰고 갈 요량이었다. 아마 생각보다 적은 중량이 나올 것이다. 그간 녹슬어 떨어져 나간 무게가 적지 않았다. 사내는 처음 경운기를 몰고 논으로 향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직 페인트가 빛나는 경운기를 몰 때면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고속주행 모드로 달려도 가벼운 뜀박질 속도에 불과한 경운기였지만 그 속도는 사내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경운기를 고물상의 저울에 올려놓을 때의 심정이 가늠되지 않았다.

고물상? 얼마나 주는데.”

오만 원이나 하것제.”

오만 원? 내차 범퍼 값도 안 되네.”

녀석 너머로 추수 끝난 논이 노곤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구름도 바람도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영락없는 가을이었다. 추수 시기가 늦어져 외따로 출렁이는 논과 볏짚을 태운 시커먼 논, 묶인 볏단들이 듬성듬성 흩어진 논들, 들판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가을걷이 철이었다. 녀석은 집에 왔을 때부터 잔뜩 짜증이 나 있었다. 수업은 어쩌고 왔을까. 대학 생활에 문제가 있는 걸까. 명절도 아닌데 굳이 차를 빌려온 이유가 뭘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물을 수 없었다. 침묵도 대화라 할 수 있다면 사내는 말없는 것들과의 대화에 익숙했다. 가령 논과 경운기 같은 것들. 말없는 것들과의 대화는 손으로 이루어졌다. 물꼬가 막혔는데도 물이 찬다면 웃논의 논둑이 터진 거였다. 그러면 터진 논둑을 막으면 됐다. 경운기의 출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여과장치인 에어클리너나 냉각수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경운기는 지속적인 침묵으로 말을 걸었다. 사내는 그때마다 일일이 손으로 만져가며 여기냐 하고 물었다. 녀석이 매사에 짜증을 부리는 건 통증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고 가냐?"

사내가 경운기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몰라. 봐서."

"그랴? 마침 잘 됐네. 낼 동네 잔치한다고 보에 물푸기로 했는디 너도 가서 고기 좀 잡아라."

천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놈이 대꾸가 없었다. 대꾸만 없는 게 아니라 낯빛이 창백해졌다.

"어째 그라냐, 걍 쉬고 싶냐?"

"용연교 위에 보?"

"그라제. 니 애릴 적에는 둘이서 물 뿜어 잡지 않았냐. 요 근방에서는 거기가 젤로 잘 나오제."

"씨발, 무슨 물을 푼다고 지랄이야."

이놈이 애비한테 욕지거리를. 그러나 가만 보니 사내한테 뱉은 욕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눈가가 실룩실룩 거리는 게 뭔가 불안해 보였다. 사내는 가슴이 철렁했다. 한 때 한 달 주기로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게 공부하던 놈한테 퇴비 따위를 쳐내게 하는 게 아니었다. 저 마른 장작 같은 놈이 두 시간 퇴비를 쳐내는 일이 보통이겠는가.

"어째 어디가 아프냐? 숨이 안 쉬어져?"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집으로 걸었다. 이럴 땐 짐짓 모르는 채 하는 게 나았다. 걱정에 괜히 더 물었다가는 발작을 일으킬 지도 몰랐다. 사내는 소 사료를 주기 위해 다시 축사로 들어갔다. 아들이 몰고 온 차가 소와 경운기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혹 선친이 경운기를 바라볼 때의 심정도 이랬을까. 사료통을 향해 차를 지나치다 보니 앞바퀴와 보닛 사이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새벽에 그의 차와 부딪힌 건 아이였다. 막 차에서 내렸을 때만 해도 차가 지나온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량의 우측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니 앞바퀴와 보닛 사이의 휀더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젠장. 뭔가 친 건 확실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걸까. 그는 차머리를 돌려 전조등으로 자신이 지나온 도로를 비춰보았다. 뭔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슬리퍼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그때서야 몸이 떨려왔다. 도로 옆 논으로 시선을 돌리자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운전석으로도 쓰러진 아이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차 후미 쪽 방향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오토바이? 아니 자전건가? 희미했지만 자신의 행각이 샅샅이 드러낼 것 같은 불빛이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을 뿐 생각이 모이지 않았다. 일단 도로에 떨어진 슬리퍼를 주워들었다. 그런 후 아이와 희미한 불빛을 번갈아 보았다. 불빛이 서서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논으로 뛰어들었다. 아이는 엎어져 있었고 미동이 없었다. 애야 하고 불러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 뒤 아이를 뒤집었다. 심장이 터질 듯 고동쳤다. 어두워서 아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코에 손을 댔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의 코에서 떨던 손을 목의 동맥 위로 옮겼다. 맥박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손의 감각이 마비 된 걸까. 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느냐 말이다. 그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떡해야 할까. 그는 초조와 공포로 의식이 끊길 것만 같았다. 입 안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희미한 불빛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는 아이를 숨길만한 곳을 찾아 주위를 살폈다. 평평한 논 뿐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들쳐 맸다. 그때 도로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얼어붙었던 그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발을 뗐다. 발소리에 놀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 같이 도로를 건너 달아났다. 그는 놀라 쓰러질 뻔 했지만 간신히 버텼다.

트렁크에 아이를 실은 그는 불빛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 방향은 용연교가 있는 곳이었다. 백미러에 비치던 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단 차를 세운 뒤 전조등을 껐다. 누군가 자신의 차를 보게 될까 두려웠다. 마음이 급했지만 눈이 어둠에 익을 때를 기다려 서행했다. 미친놈, 미친놈. 쓸데없이 제로백 따위를 해서는. 때늦은 자책이 들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아이를 숨기는 것뿐이었다.

그는 용연교 옆으로 난 방죽길로 차의 방향을 꺾었다. 풀이 많고 길의 폭이 좁아 승용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길이었지만 그 때문에 다른 차들은 올 일이 없었다. 다리에서 백여 미터만 상류로 올라가면 보가 있었다. 시커먼 물속은 그가 지나오며 본 곳 중에 그나마 안전한 곳처럼 보였다. 차를 세운 뒤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를 열기 전 지금까지의 일은 다 꿈이었다고 빌어봤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트렁크 안의 조명등에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납작한 얼굴에 눈초리가 올라간 눈은 감긴 상태였다. 눈가에 덧살이 있었고 코가 낮은 아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았으나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출혈은 많지 않았다. 코에서 흐르는 게 전부였다. 얼른 보면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아이의 대동맥에 손가락을 갔다댔다. 여전히 맥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보 주위를 비롯해 다리와 도로에 이르기까지 불빛은 없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의 허리에나 찰까 싶은 아이였지만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방죽에서 보의 둑에 이르는 내리막길은 열 발짝도 안 됐지만 그는 다리가 떨려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 했다. 둑 위에 이른 그는 아이를 잽싸게 물에 던졌다. 그 사이 어둠에 눈이 적응돼 밤의 풍경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고 그는 더 불안해졌다. 아이가 물에 떴는지 가라앉았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이 그는 둑을 등졌다. 뒤돌아서는 순간 그는 숨이 멎을 뻔했다.

경운기였다. 내려올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거겠지만 그가 서 있는 쪽으로 헤드를 둔 경운기는 감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헤드 앞에 달린 헤드라이트가 그의 행각을 모두 지켜본 듯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 시키며 달아나 듯 차 안으로 숨어들었다. 더 이상 차에 아이는 없었지만 여전히 라이트를 켤 수 없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마음과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조차 빨리 몰 수 없는 상황에 그는 숨이 막혔다. 그로서는 마을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눈에 띠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어쩌다 집에 다 와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제 자신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곳이 사라지자 속도를 높일 수가 없었다. 눈앞은 어둡기만 했다. 조금만 속도를 높이거나 방심하면 도로가의 논에 빠질 수 있었다. 계기판의 최대시속은 시속 240km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는 이제 20km만 넘어도 불안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온 후로 내내 인터넷 검색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패드에 뺑소니, 사체유기 들을 검색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곳에 버리는 게 아니었다. 저수지나 산속에 버렸어야 했다. 당장 내일 보의 물을 뿜는다니. 꼰대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써 없던 일로 생각하려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사체가 발견되면 사인이 밝혀지고 수사가 착수될 거다. 이곳을 벗어나기도 전에 잡힐 지도 모른다. 꼰대에게 말을 할까. 꼰대라면 물을 퍼내지 못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꼰대 앞에서는 거짓말만 나왔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꼰대만, 꼰대만 생각났다.

저녁 식사가 끝나가도록 아들은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내도 그다지 입맛이 돌지 않았다. 밥을 물에 말아 넘겼다.

"풍기아제네 애 있잖아요. 밤새 안 들어왔다네."

한동안 잠잠하더니 아무래도 제 친구 집에서 잤나 보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래도 생각 있는 어른이라면 늦게라도 애 부모에게 연통은 넣어줬을 텐데. 그때 아들이 몰고 온 차의 찌그러진 부분이 생각났다. 아니겠지. 설마 하면서도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마침 녀석이 차를 몰고 온 것도 어제가 아닌가. 식사를 마친 사내는 쓰레기통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아내가 저녁 설거지를 할 때면 쓰레기를 소각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살다보니 각자 일이 자연스레 정해졌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쓰레기 중 종이쪼가리에 불을 붙였다.

샘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들이었다. 녀석은 샘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가로등 빛에 가려 몇 개 안 뜬 별조차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가로등은 이끼 낀 시멘트 블록 담장 위로 뻗은 전신주에 달려 있었다. 가로등 아래 샘은 물때와 물이끼가 번갈아 자리교체를 해온 통에 푸르스름하게 물든지 오래였다. 아내가 설거지물을 쏟았는지 샘의 배관에서 쪼르르 물이 떨어졌다. 작은 소리들은 제 행각을 들킨 초보도둑처럼 달아나지도 달려들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내는 이제는 녀석이 집에 온 이유를 물어야 할 때라 생각했다.

사내가 부르자 녀석이 그의 곁에 다가와 쭈그리고 앉았다.

"할 말 있음 엄마 안 듣는 여그서 해라."

"무슨 할 말."

"니 그 차 진짜로 빌린 차여?"

"맞다니까."

"그려? 그라믄 인자부터는 빌려 타지 말어라. 매상 끝나믄 한 대 사줄 것인 게. 탈것은 함부로 빌리는 거시 아니여."

좋아할 줄 알았던 녀석이 대꾸가 없었다. 좋아하기는커녕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고것 땜시 온 거 아니었냐?"

대답 대신 녀석의 어깨춤이 들썩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놈이 왜 울고 지랄일까. 차라리 욕을 하고 떼를 쓰지 불길하게 왜 운단 말이냐. 사내는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땅치 않았다. 사내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의 머리를 만져 본 건 녀석이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집에, 집에 오다 애를 쳤어."

잘못 들었을까. 사내는 정신줄이 끊길 것 같아 이를 악다물었다. 설마설마 했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니다. 아닐 거다.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 녀석이 차 말고 더 필요한 게 있는 거다. 그래서 꼼수를 부리는 걸 거다.

"이놈아 뭔 소리여. 나가 잘못 들었다냐?"

"애를 쳤다니까."

애를 치다니. 그걸 왜 이제서 말하는 걸까. 눈물이라고는 생전 안 보이던 놈이 왜 울면서 말하냐는 말이다. 병원에 입원한 정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오복이가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아내의 말과 녀석이 애를 치었다는 말이 겹쳤다. 애라 해봐야 몇 되지 않는 시골마을이었다. 사내는 이렇게 된 게 다 방정맞은 생각을 했던 자신 때문만 같았다. 사내는 더 이상 방정맞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자제해 가며 물었다.

"그래서 어쨌냐. 병원에는 데리고 갔냐? 어디가 많이 다쳤다냐?"

", 보에 버렸어."

눈앞이 깜깜했다. 심장에 파스를 붙인 듯 홧홧했다.

"죽었단 말이여? 그 아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이 사형을 선고하는 판관의 망치질 같았다. 사지의 힘이 주르륵 빠져 나갔다.

"이 미친놈아. 정신 나간 놈아.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래 사고를 내."

사내는 아들의 등짝을 치며 소리쳤다. 미친놈이니, 정신 나간 놈이니, 호통을 쳤지만 실은 불쌍한 내 새끼라는 생각뿐이었다. 죽은 애도 녀석도 매 한 가지였다. 그러면서도 사내는 애써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호통도 멈췄다. 자신의 말이 담장을 넘어서는 안 됐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떠올리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살인에 유기까지 한 셈이었다. 이제 와서 자수를 한다 해도, 제 자식이 죽었는데 합의를 하겠는가. 설사 합의가 된다 해도 형사처벌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녀석에게 전과까지 남는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이대로는 안 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아들새끼는 살려야 했다. 사내는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팔다리와 바꿔서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되돌려 아들과 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꾹꾹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살지 않은 게 이런 일을 초래한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사내는 아들이 아니라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됐다. 인자 됐응게 너는 들어가 쉬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급했다. 용연교 위에 있는 보라면 내일 당장 물을 품어내기로 한 곳이었다. 사내는 곧장 창고로 달려갔다.

면적이 사내의 집 마당만한, 그리 넓지 않은 보였지만 깊은 곳의 수심은 어른 키를 넘었다. 다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이 퍼내야 했다. 허리까지만 퍼도 헤집다 보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내는 양수기에 호수를 연결했다. 경운기 소리를 듣고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 사체를 찾는 게 급했다. 사내는 양수중인 경운기의 헤드 방향을 힘겹게 돌려가며 수면 위를 살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없었다. 도저히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정신이 없어 방수복조차 챙겨오지 못한 사내는 늦가을 개울에 그대로 뛰어들었다. 물속은 보이지 않았고 미끄러웠다. 사내는 몇 번이고 물속에 엎어지면서도 보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찾아야 했지만 찾는 상황도 못 찾게 되는 상황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물에 빠진 게 제 아들인 냥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살폈다. 춥다는 생각도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해가 뜨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깊은 곳의 물이 명치 부근까지 빠졌을 때였다. 사내는 발에 물컹한 뭔가가 밟히는 걸 느끼며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지는 와중에도 자신이 밟았던 걸 손으로 더듬어 붙잡았다. 비닐 같은 거였으면, 아들의 말이 심한 농담이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품어보며 손에 잡힌 걸 수면 위로 들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아이를 보는 순간 제 아들의 어린 모습이 떠올라 아이를 놓칠 뻔 했다. 납작한 얼굴에 짧은 목, 오복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사내는 눈앞에서 죽은 아이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들이 사고를 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들을 찾는 심정으로 찾아낸 아이가, 차갑게 물을 먹은 아이의 몸이 정말로 아들 같았다. 아비를 죽게 한 자신의 팔자가 옮겨간 아들. 그래, 내가 죽인 거다. 녀석을 그렇게 자라게 한 내가 죽인 거다. 그 철없는 놈더러, 그 몸 약한 놈더러 어떻게 살라고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녀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어디 물려줄 게 없어 이렇게 숭한 팔자를 물려줬단 말인가. 사내는 자신에게 건너왔어야 할 드센 팔자가 아들에게 잘못 옮겨갔다고 확신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와버렸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사내는 사시나무 떨듯 몸서리치며 물 밖으로 나왔다.

준비한 나락포대에 아이의 사체를 담아 트레일러에 실었다. 포대 위로 다시 방수포를 덮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막막하기만 한 사내였다. 아이의 사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찾아내기까지는 했지만 그 뒤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보의 물을 다 퍼낸 뒤 혹시 모를 흔적이 더 남아있을까 살피고 싶었다.

비가 떨어졌다. 가을비 치고는 굵은 빗줄기였다. 비는 경운기가 힘겹게 퍼낸 보를 순식간에 채워갔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더 많이 와서 이곳의 흔적은 죄다 휩쓸었으면. 녹물이 떨어지는 붉은 경운기는 가죽만 남은 채 부패되어가는 황소 같았다.

어디로, 어디에. 사내는 경운기를 몰고 하천을 빠져나오며 고민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인자부턴 어째야 하것소. 그 망나니 같은 놈을 어찌게 살려야것소. 사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장마가 지면 소를 끌고 사내의 꿈에 찾아오는 흐릿한 얼굴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사내는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무작정 집과 먼 곳으로 경운기를 몰았다. 그때 선친의 봉분이 생각났다. 잔디가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비만 오면 이지러지던 봉분이었다. 사내는 아버지의 봉분을 향해 녹슨 경운기를 몰았다. 이놈아,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상여 노릇 한 번 해야 쓰겄다. 배터리가 약한지 경운기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떨렸다. 덜덜, 어둠 속 빗줄기를 뚫고 소처럼 붉은 경운기가 달렸다.

 

막으면 됐다. 경운기의 출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여과장치인 에어클리너나 냉각수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경운기는 지속적인 침묵으로 말을 걸었다. 사내는 그때마다 일일이 손으로 만져가며 여기냐 하고 물었다. 녀석이 매사에 짜증을 부리는 건 통증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고 가냐?”

사내가 경운기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몰라. 봐서.”

그랴? 마침 잘 됐네. 낼 동네 잔치한다고 보에 물푸기로 했는디 너도 가서 고기 좀 잡아라.”

천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놈이 대꾸가 없었다. 대꾸만 없는 게 아니라 낯빛이 창백해졌다.

어째 그라냐, 걍 쉬고 싶냐?”

용연교 위에 보?”

그라제. 니 애릴 적에는 둘이서 물 뿜어 잡지 않았냐. 요 근방에서는 거기가 젤로 잘 나오제.”

씨발, 무슨 물을 푼다고 지랄이야.”

이놈이 애비한테 욕지거리를. 그러나 가만 보니 사내한테 뱉은 욕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눈가가 실룩실룩 거리는 게 뭔가 불안해 보였다. 사내는 가슴이 철렁했다. 한 때 한 달 주기로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게 공부하던 놈한테 퇴비 따위를 쳐내게 하는 게 아니었다. 저 마른 장작 같은 놈이 두 시간 퇴비를 쳐내는 일이 보통이겠는가.

어째 어디가 아프냐? 숨이 안 쉬어져?”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집으로 걸었다. 이럴 땐 짐짓 모르는 채 하는 게 나았다. 걱정에 괜히 더 물었다가는 발작을 일으킬 지도 몰랐다. 사내는 소 사료를 주기 위해 다시 축사로 들어갔다. 아들이 몰고 온 차가 소와 경운기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혹 선친이 경운기를 바라볼 때의 심정도 이랬을까. 사료통을 향해 차를 지나치다 보니 앞바퀴와 보닛 사이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새벽에 그의 차와 부딪힌 건 아이였다. 막 차에서 내렸을 때만 해도 차가 지나온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량의 우측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니 앞바퀴와 보닛 사이의 휀더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젠장. 뭔가 친 건 확실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걸까. 그는 차머리를 돌려 전조등으로 자신이 지나온 도로를 비춰보았다. 뭔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슬리퍼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그때서야 몸이 떨려왔다. 도로 옆 논으로 시선을 돌리자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운전석으로도 쓰러진 아이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차 후미 쪽 방향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오토바이? 아니 자전건가? 희미했지만 자신의 행각이 샅샅이 드러낼 것 같은 불빛이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을 뿐 생각이 모이지 않았다. 일단 도로에 떨어진 슬리퍼를 주워들었다. 그런 후 아이와 희미한 불빛을 번갈아 보았다. 불빛이 서서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논으로 뛰어들었다. 아이는 엎어져 있었고 미동이 없었다. 애야 하고 불러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 뒤 아이를 뒤집었다. 심장이 터질 듯 고동쳤다. 어두워서 아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코에 손을 댔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의 코에서 떨던 손을 목의 동맥 위로 옮겼다. 맥박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손의 감각이 마비 된 걸까. 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느냐 말이다. 그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떡해야 할까. 그는 초조와 공포로 의식이 끊길 것만 같았다. 입 안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희미한 불빛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는 아이를 숨길만한 곳을 찾아 주위를 살폈다.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들쳐 맸다. 그때 도로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얼어붙었던 그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발을 뗐다. 발소리에 놀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 같이 도로를 건너 달아났다. 그는 놀라 쓰러질 뻔 했지만 간신히 버텼다.

트렁크에 아이를 실은 그는 불빛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 방향은 용연교가 있는 곳이었다. 백미러에 비치던 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단 차를 세운 뒤 전조등을 껐다. 누군가 자신의 차를 보게 될까 두려웠다. 마음이 급했지만 눈이 어둠에 익을 때를 기다려 서행했다. 미친놈, 미친놈. 쓸데없이 제로백 따위를 해서는. 때늦은 자책이 들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아이를 숨기는 것뿐이었다.

그는 용연교 옆으로 난 방죽길로 차의 방향을 꺾었다. 풀이 많고 길의 폭이 좁아 승용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길이었지만 그 때문에 다른 차들은 올 일이 없었다. 다리에서 백여 미터만 상류로 올라가면 보가 있었다. 시커먼 물속은 그가 지나오며 본 곳 중에 그나마 안전한 곳처럼 보였다. 차를 세운 뒤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를 열기 전 지금까지의 일은 다 꿈이었다고 빌어봤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트렁크 안의 조명등에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납작한 얼굴에 눈초리가 올라간 눈은 감긴 상태였다. 눈가에 덧살이 있었고 코가 낮은 아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았으나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출혈은 많지 않았다. 코에서 흐르는 게 전부였다. 얼른 보면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아이의 대동맥에 손가락을 갔다댔다. 여전히 맥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보 주위를 비롯해 다리와 도로에 이르기까지 불빛은 없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의 허리에나 찰까 싶은 아이였지만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방죽에서 보의 둑에 이르는 내리막길은 열 발짝도 안 됐지만 그는 다리가 떨려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 했다. 둑 위에 이른 그는 아이를 잽싸게 물에 던졌다. 그 사이 어둠에 눈이 적응돼 밤의 풍경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고 그는 더 불안해졌다. 아이가 물에 떴는지 가라앉았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이 그는 둑을 등졌다. 뒤돌아서는 순간 그는 숨이 멎을 뻔했다.

경운기였다. 내려올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거겠지만 그가 서 있는 쪽으로 헤드를 둔 경운기는 감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헤드 앞에 달린 헤드라이트가 그의 행각을 모두 지켜본 듯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 시키며 달아나 듯 차 안으로 숨어들었다. 더 이상 차에 아이는 없었지만 여전히 라이트를 켤 수 없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마음과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조차 빨리 몰 수 없는 상황에 그는 숨이 막혔다. 그로서는 마을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눈에 띠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어쩌다 집에 다 와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제 자신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곳이 사라지자 속도를 높일 수가 없었다. 눈앞은 어둡기만 했다. 조금만 속도를 높이거나 방심하면 도로가의 논에 빠질 수 있었다. 계기판의 최대시속은 시속 240km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는 이제 20km만 넘어도 불안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온 후로 내내 인터넷 검색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패드에 뺑소니, 사체유기 들을 검색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곳에 버리는 게 아니었다. 저수지나 산속에 버렸어야 했다. 당장 내일 보의 물을 뿜는다니. 꼰대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써 없던 일로 생각하려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사체가 발견되면 사인이 밝혀지고 수사가 착수될 거다. 이곳을 벗어나기도 전에 잡힐 지도 모른다. 꼰대에게 말을 할까. 꼰대라면 물을 퍼내지 못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꼰대 앞에서는 거짓말만 나왔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꼰대만, 꼰대만 생각났다.

저녁 식사가 끝나가도록 아들은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내도 그다지 입맛이 돌지 않았다. 밥을 물에 말아 넘겼다.

풍기아제네 애 있잖아요. 밤새 안 들어왔다네.”

한동안 잠잠하더니 아무래도 제 친구 집에서 잤나 보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래도 생각 있는 어른이라면 늦게라도 애 부모에게 연통은 넣어줬을 텐데. 그때 아들이 몰고 온 차의 찌그러진 부분이 생각났다. 아니겠지. 설마 하면서도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마침 녀석이 차를 몰고 온 것도 어제가 아닌가. 식사를 마친 사내는 쓰레기통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아내가 저녁 설거지를 할 때면 쓰레기를 소각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살다보니 각자 일이 자연스레 정해졌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쓰레기 중 종이쪼가리에 불을 붙였다.

샘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들이었다. 녀석은 샘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가로등 빛에 가려 몇 개 안 뜬 별조차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가로등은 이끼 낀 시멘트 블록 담장 위로 뻗은 전신주에 달려 있었다. 가로등 아래 샘은 물때와 물이끼가 번갈아 자리교체를 해온 통에 푸르스름하게 물든지 오래였다. 아내가 설거지물을 쏟았는지 샘의 배관에서 쪼르르 물이 떨어졌다. 작은 소리들은 제 행각을 들킨 초보도둑처럼 달아나지도 달려들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내는 이제는 녀석이 집에 온 이유를 물어야 할 때라 생각했다.

사내가 부르자 녀석이 그의 곁에 다가와 쭈그리고 앉았다.

할 말 있음 엄마 안 듣는 여그서 해라.”

무슨 할 말.”

니 그 차 진짜로 빌린 차여?”

맞다니까.”

그려? 그라믄 인자부터는 빌려 타지 말어라. 매상 끝나믄 한 대 사줄 것인 게. 탈것은 함부로 빌리는 거시 아니여.”

좋아할 줄 알았던 녀석이 대꾸가 없었다. 좋아하기는커녕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고것 땜시 온 거 아니었냐?”

대답 대신 녀석의 어깨춤이 들썩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놈이 왜 울고 지랄일까. 차라리 욕을 하고 떼를 쓰지 불길하게 왜 운단 말이냐. 사내는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땅치 않았다. 사내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의 머리를 만져 본 건 녀석이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집에, 집에 오다 애를 쳤어.”

잘못 들었을까. 사내는 정신줄이 끊길 것 같아 이를 악다물었다. 설마설마 했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니다. 아닐 거다.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 녀석이 차 말고 더 필요한 게 있는 거다. 그래서 꼼수를 부리는 걸 거다.

이놈아 뭔 소리여. 나가 잘못 들었다냐?”

애를 쳤다니까.”

애를 치다니. 그걸 왜 이제서 말하는 걸까. 눈물이라고는 생전 안 보이던 놈이 왜 울면서 말하냐는 말이다. 병원에 입원한 정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오복이가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아내의 말과 녀석이 애를 치었다는 말이 겹쳤다. 애라 해봐야 몇 되지 않는 시골마을이었다. 사내는 이렇게 된 게 다 방정맞은 생각을 했던 자신 때문만 같았다. 사내는 더 이상 방정맞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자제해 가며 물었다.

그래서 어쨌냐. 병원에는 데리고 갔냐? 어디가 많이 다쳤다냐?”

, 보에 버렸어.”

눈앞이 깜깜했다. 심장에 파스를 붙인 듯 홧홧했다.

죽었단 말이여? 그 아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이 사형을 선고하는 판관의 망치질 같았다. 사지의 힘이 주르륵 빠져 나갔다.

이 미친놈아. 정신 나간 놈아.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래 사고를 내.”

사내는 아들의 등짝을 치며 소리쳤다. 미친놈이니, 정신 나간 놈이니, 호통을 쳤지만 실은 불쌍한 내 새끼라는 생각뿐이었다. 죽은 애도 녀석도 매 한 가지였다. 그러면서도 사내는 애써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호통도 멈췄다. 자신의 말이 담장을 넘어서는 안 됐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떠올리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살인에 유기까지 한 셈이었다. 이제 와서 자수를 한다 해도, 제 자식이 죽었는데 합의를 하겠는가. 설사 합의가 된다 해도 형사처벌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녀석에게 전과까지 남는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이대로는 안 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아들새끼는 살려야 했다. 사내는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팔다리와 바꿔서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되돌려 아들과 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꾹꾹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살지 않은 게 이런 일을 초래한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사내는 아들이 아니라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됐다. 인자 됐응게 너는 들어가 쉬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급했다. 용연교 위에 있는 보라면 내일 당장 물을 품어내기로 한 곳이었다. 사내는 곧장 창고로 달려갔다.

면적이 사내의 집 마당만한, 그리 넓지 않은 보였지만 깊은 곳의 수심은 어른 키를 넘었다. 다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이 퍼내야 했다. 허리까지만 퍼도 헤집다 보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내는 양수기에 호수를 연결했다. 경운기 소리를 듣고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 사체를 찾는 게 급했다. 사내는 양수중인 경운기의 헤드 방향을 힘겹게 돌려가며 수면 위를 살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없었다. 도저히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정신이 없어 방수복조차 챙겨오지 못한 사내는 늦가을 개울에 그대로 뛰어들었다. 물속은 보이지 않았고 미끄러웠다. 사내는 몇 번이고 물속에 엎어지면서도 보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찾아야 했지만 찾는 상황도 못 찾게 되는 상황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물에 빠진 게 제 아들인 냥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살폈다. 춥다는 생각도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해가 뜨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깊은 곳의 물이 명치 부근까지 빠졌을 때였다. 사내는 발에 물컹한 뭔가가 밟히는 걸 느끼며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지는 와중에도 자신이 밟았던 걸 손으로 더듬어 붙잡았다. 비닐 같은 거였으면, 아들의 말이 심한 농담이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품어보며 손에 잡힌 걸 수면 위로 들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아이를 보는 순간 제 아들의 어린 모습이 떠올라 아이를 놓칠 뻔 했다. 납작한 얼굴에 짧은 목, 오복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사내는 눈앞에서 죽은 아이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들이 사고를 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들을 찾는 심정으로 찾아낸 아이가, 차갑게 물을 먹은 아이의 몸이 정말로 아들 같았다. 아비를 죽게 한 자신의 팔자가 옮겨간 아들. 그래, 내가 죽인 거다. 녀석을 그렇게 자라게 한 내가 죽인 거다. 그 철없는 놈더러, 그 몸 약한 놈더러 어떻게 살라고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녀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어디 물려줄 게 없어 이렇게 숭한 팔자를 물려줬단 말인가. 사내는 자신에게 건너왔어야 할 드센 팔자가 아들에게 잘못 옮겨갔다고 확신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와버렸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사내는 사시나무 떨듯 몸서리치며 물 밖으로 나왔다.

준비한 나락포대에 아이의 사체를 담아 트레일러에 실었다. 포대 위로 방수포를 덮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막막하기만 한 사내였다. 아이의 사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찾아내기까지는 했지만 그 뒤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보의 물을 다 퍼낸 뒤 혹시 모를 흔적이 더 남아있을까 살피고 싶었다.

비가 떨어졌다. 가을비 치고는 굵은 빗줄기였다. 비는 경운기가 힘겹게 퍼낸 보를 순식간에 채워갔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더 많이 와서 이곳의 흔적은 죄다 휩쓸었으면. 녹물이 떨어지는 붉은 경운기는 가죽만 남은 채 부패되어가는 황소 같았다.

어디로, 어디에. 사내는 경운기를 몰고 하천을 빠져나오며 고민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인자부턴 어째야 하것소. 그 망나니 같은 놈을 어찌게 살려야것소. 사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장마가 지면 소를 끌고 사내의 꿈에 찾아오는 흐릿한 얼굴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사내는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무작정 집과 먼 곳으로 경운기를 몰았다. 그때 선친의 봉분이 생각났다. 잔디가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비만 오면 이지러지던 봉분이었다. 사내는 아버지의 봉분을 향해 녹슨 경운기를 몰았다. 이놈아,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상여 노릇 한 번 해야 쓰겄다. 배터리가 약한지 경운기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떨렸다. 덜덜, 어둠 속 빗줄기를 뚫고 소처럼 붉은 경운기가 달렸다.

 

 

<당선소감>

안개속 같은 글쓰기 헤쳐나갈 용기 얻어

 

머릿속에 정리한 것들을 글로 써갈 때마다 멀미가 들었습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글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렇게 제가 쓰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활자 속으로 달아나고는 했습니다. 모니터의 여백과 마주할 때마다 외롭고 두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진정성 없는 글을 쓰면서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쓴 글들이 소설이 아니란 말을 들으면서도 짐짓 오기를 부린 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써내지 못한, 그러나 반드시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였습니다. 물론 어떤 글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만 그 불확정성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그 안개를 헤쳐 나가고 싶은 욕망에 저는 여기까지 끌려왔습니다. 보다 정밀하고 단단한 시선을 갖고 싶습니다.

원고를 응모한 뒤 다음 쓸 소설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초조했으니까요. 이번 당선으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 말하면 경솔한 고백일까요. 2011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위의 진심어린 축하와 조언을 깊이 새겨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꿍꿍이 식구들, 그대들과 함께여서 2011년이 따뜻했고 허기지지 않았습니다. 꿍꿍이들의 리더 이화경 교수님, 교수님께서 내밀어 주신 손은 절벽에 매달린 자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제자를 독려해주신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순근이형과 원호형, 형들은 제게 유쾌함을 알게 해줬습니다. 형들과의 약속을 조금은 지키게 돼서 다행이고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있어 산과 강인 아버지, 어머니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1982년 함평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 수료 인문학 스터디 꿍꿍이회원

 

 

<심사평>

안정적 문장·구성의 균형미 발전 가능성 커

 

응모작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추려진 작품은 세 편이었다. 노숙인과 동성애자 등 소외된 도시인을 다룬 거위의 집은 물질문명의 피해자이자 공범인 사람들의 삶을 주목한 문제의식이 두드러졌으나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집중력이 부족해 먼저 제외되었다.

남은 작품은 ()’‘G20 Problem’ 두 편이었는데, 각자 가진 개성과 장단점이 확연히 달라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했다.

‘G20 Problem’의 경우 수학의 수수께끼와 삶의 난제를 대비해 갈등의 긴박성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독자들이 낯선 수학 용어와 공식 등을 어떻게 소화할는지의 문제, 문학 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의 경우, 경운기와 스포츠카로 상징되는 세대·시대의 변화와 대립, 욕망의 이질성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사실주의 기법으로 다루고 있다. 서사 전개가 다소 전형적이고 인물 배치가 상투적이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안정적인 문장과 구성의 균형미로 차후의 발전을 기대함직 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해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생뚱맞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작가가 되는 일은 쉽다. 실로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새해 새 아침에 작가로 탄생한 당선자가 이처럼 고단하고도 황홀한 삶을 굳건히 견뎌내길 빈다.

심사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