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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하구(河口) / 박이선

 


봄은 봄이었다. 겨우내 볼을 얼얼하도록 몰아치던 바닷바람이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부두를 등진 월명산에도 연푸른 빛깔이 제법 진해지고 있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하얀 벚꽃이 온 산을 뒤덮고 꽃구경을 온 사람들로 산이 북적거릴 터였다. 산을 내려와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군산시내와 항구를 이어주는 해망굴이 보였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은 굴이다. 아니 굴이 아니라 터널이었다. 해망굴은 일제강점기 우마차의 통행을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굴속으로 들어가면 습기로 인해 서늘한 기분이 들었고 컴컴했다. 길지 않아서 입구와 출구를 번갈아 몇 번 바라볼 때쯤이면 벌써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해망굴에서 이어지는 길 양편으로는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집들이 허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신호등을 건너 쭉 걸어가면 내항이었다. 소쿠리에 생선을 널어놓고 말리는 생선가게가 이어지고 몇 마리의 개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도둑고양이를 지키고 있었다. 가게를 갖지 못한 아낙들은 좌판을 벌여 놓았고 노점이 끝나는 지점에 도선장(渡船場)이란 간판이 보였다. 군산항은 하루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들락거렸다. 지금은 물이 빠져서 부교(浮橋)가 저 아래로 내려가 뻘밭에 걸친 것처럼 보였다.

요런 날에 죽치고 있을랑게 삭신이 뻐근허구먼.”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도선장 대기실문을 열고 나오면서 하는 소리였다. 말을 마치고 그는 가래를 끌어올려 기세 좋게 뱉었다.

황 선장님. 심심하시지라?”

경사진 부교를 오르느라 가빠진 숨을 내쉬면서 박 기사가 물었다. 그는 부교에 정박한 배들의 홋줄을 걸어주고 풀어주면서 소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물이 찰라믄 얼마나 남았능가?”

벌써 들어오기 시작했구만요. 인자 네 시간이믄 물이 방방해질 겁니다.”

황 선장이라 불린 노인은 눈을 들어 멀리 장항을 바라보았다. 제련소의 높은 굴뚝이 우뚝 솟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멀리 금강하구둑이 아스라이 보였다. 내항에 물이 완전히 찼을 때에는 어선이며 여객선이 부지런히 입출항 하느라 북적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배가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배는 오직 한 척 뿐이었다. 그것은 퇴적토를 퍼 올리는 준설선이었다. 날이 갈수록 군산 앞바다에는 모래가 쌓여서 수심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퍼내지 못하면 선박의 입출항이 매우 힘들었다. 그동안 퍼 올린 퇴적토는 외항 쪽에 쌓아놓았는데 그로 인해 인공 섬이 하나 생겼다. 그곳을 여의도처럼 개발해서 쓴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미쳤다고 물길을 막아서 저 염병을 허능가 몰라.”

황선장은 뿌연 봄기운속에서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금강하구둑을 바라보면서 퉁명스런 말을 내뱉었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준설선에게도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안 혀도 될 일을 허느라 퍽이나 용쓰는구만.”

황 선장의 말에 박 기사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구둑과 준설선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기사는 들고 온 통을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선장님이 아무리 그려도 막힌 물길을 틀 수 없당게요.”

그는 담배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면서 황 선장을 바라보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 깊이 새겨진 주름이 소금기에 쩔어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도선장 문 닫은 것도 한참 지났지 않소. 나도 그 시절이 그립지만 한번 흘러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 벱이지라.”

황 선장은 대꾸하지 않고 박 기사가 가지고 온 통을 뒤적였다. 부교에서 낚시로 잡아온 망둥어와 놀래미 몇 마리가 거품을 물고 퍼덕이고 있었다. 황 선장은 군침을 꿀꺽 삼키면서 박 기사를 재촉했다.

가서 요기나 좀 허세.”

앞장서서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박 기사는 담배를 집어던지고 황 선장을 따라갔다. 두 사람은 해주식당이라 쓰여진 문을 드르륵 열었다. 저녁손님을 받을 준비하고 있던 해주댁이 고개만 돌려서 눈인사를 했다.

어서 오시요.”

여기 쐬주 한 병 주구랴. 안주는 요기 있응게 대충 끓여주고.”

마치 자기 안사람 부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황 선장의 이런 말투에도 해주댁은 불평하지 않고 박 기사가 내민 생선을 받아들었다.

에구, 이렇게 작아서는 손질만 복잡헌디. 그냥 앉아계시요. 내가 탕 하나 끓여줄랑께.”

황 선장은 맥주잔 두개에 소주를 나누어 따른 후 내밀었다. 그리고 물마시듯 한 모금 벌컥 들이키더니 조개젓갈을 집어 오물거리면서 짭짤한 맛을 즐겼다.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다시 한 모금을 들이켰다. 연거푸 두 모금을 마신 다음 황 선장은 입을 썩썩 닦으면서 박 기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자네도 여그를 떠나지 못하는구만.”

박기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선장님이 똥 마려운 강아지 맨키로 여그를 뱅뱅 도는 것이랑 같은 이치 아니것소. 도선장에서 일해 온 것이 몇 년인디 갈 디가 어디 있것소.”

하긴 도선장이 문을 닫은 이후로 박 기사는 여러 일을 전전했었다. 어선을 타고 나가보기도 하고 부안까지 가서 염전 일을 하기도 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선장님이 군장정기선을 몰고 운항헐 때가 봄날이었소.”

박기사는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그 때를 떠올렸다. 황 선장은 군산과 장항을 오가는 정기선의 선장이었다. 금강하구둑이 생기기 전만 해도 하루에 56회씩 운항을 했었다. 아침저녁으로는 학생들이 많았고 군산으로 물건을 사러 오는 장사치며 장항제련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모두 황 선장이 운항하는 정기선을 이용했다. 하지만 금강하구둑이 생기면서부터 이용객이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몇 년 전에는 도선장이 문을 닫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가 좋았재. 자네 맨키로 홋줄 잘 던지는 사람이 없었네.”

황 선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 기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 때 군장정기선에서 조수를 맡고 있던 사람이 바로 박 기사였다. 사람들이 타고나면 고리를 걸어놓고 뱃머리로 쫓아가서 던질 채비를 했던 사람이었다. 파도로 들썩이는 뱃머리에서 홋줄을 돌돌 말아 한손으로 들고 힘껏 던지면 정확하게 부교에 박혀 있는 볼라드에 걸쳐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파도가 거친 날 홋줄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면 그만큼 정박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황 선장은 박 기사가 믿음직했다.

인자 홋줄 던지는 일 보다 받아주는 일 밖에 없소.”

박 기사는 힘줄이 툭툭 불거진 주먹을 치켜들며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으니 홋줄 던질 일도 없었다. 부교에서 낚시를 하다가 정박하러온 배에서 던진 홋줄을 볼라드에 걸어주는 일이 전부였다. 간혹 안면이 있는 어선에서 건네준 생선을 들고 해주식당으로 달음질치는 모습을 볼 때 황 선장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이 바닥을 드러내자 해주댁이 냄비 하나를 내밀었다.

빈속에 술만 자시지 말고 요기라도 좀 허시요.”

이 펄펄 오르는 냄비속의 얼큰한 매운탕이 군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황 선장이 군침을 꿀꺽 삼키는 것을 보고 해주댁이 토라진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선장님. 세월만 이렇게 까묵고 내 고향엔 언제 데려다 줄 거유?”

황 선장은 뜨거운 국물을 맛보느라 입을 오리처럼 뾰족하게 내밀고 후후 불어가며 쩝쩝거리고 있었다. 해주댁은 대답을 기다리면서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어허, 조금만 기다려 보랑께. 세상이 변하믄 내가 데려다 준다고 하지 않등가.”

또 기다리란 말유? 그러다가 꼬부랑 할망구 되야도 안 되것네.”

시원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답을 들었으니 되었다는 투로 다시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황 선장은 해주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주댁이 식당일을 시작한 것은 황해도 해주에서 배를 타고 피난을 왔던 남편이 죽고 난 이후였다. 남편은 조선기술자여서 군산에 터를 잡고 부지런히 배를 만들었다. 아이들까지 여기에서 학교를 보내고 세상사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 선거에 올려놓은 배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남편은 추락을 했고 몇 달 동안 끙끙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해주댁의 나이가 서른아홉 살 때였다. 해주댁이 식당일을 시작한 것은 생활고와 군산항에서 출항한 어선들이 때로는 장산곶 앞바다까지 고기를 잡으러 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돌아온 어선들을 통해서 고향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들려오는 소식이래야 북한경비정이 쫓아와서 간신히 도망을 쳤다는 둥, 북쪽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접근을 해서 고기와 술을 바꿔 먹었다는 이야기며, 누구는 정신없이 고기를 잡다가 월경을 하게 되었고 납북되었다는 소리뿐이었다. 그래도 해주댁은 그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바람결에 들려오는 고향소식에 애가 달았다. 황 선장은 도선장에서 군장정기선을 운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주식당에 발길이 잦았다. 그의 아내가 다섯째를 낳다가 불귀의 객이 되어 홀로 살고 있던 시절이었다. 부모가 있는 강경으로 자식들을 올려 보내고 혼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진작에 꼬부랑 할매가 돼부렀는디 무신 걱정을 저리 헐꼬.”

박 기사가 바닥에 남아 있는 술을 쭉 들이키며 빈정거렸다.

글고 선장님도 그런 약조는 허지 마시요. 통일이 된다믄 모를까 워떻게 배를 몰고 해주까지 간단 말인게라.”

황 선장은 아무 말 없이 매운탕을 뒤적였다. 해주댁도 더욱 요란스럽게 도마질을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제 물이 웬만큼 차오른 모양이었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많아졌고 어선에서 시동을 걸어 통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보세. 물 들어왔응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 선장이 문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니 어느새 물이 들어와서 뻘에 박혀있듯이 꼼짝도 않던 어선들이 둥실 떠올라서 좌우로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물이 차서 더욱 비릿해진 갯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황 선장은 코를 연신 벌름거리면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떼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박 기사는 도선장 대기실문을 열었다. 군장정기선은 더 이상 운항하지 않았지만 좌판을 열거나 하릴 없이 부두를 거니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쉬는 곳이었기 때문에 난로를 피우기 위해서였다. 대기실벽에는 물때를 알려주는 조석표가 붙어 있었고 군장정기선의 운임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색깔이 바래고 페인트가 갈라져서 떨어진 모습이었다. 박 기사가 작은 석유난로에 불을 붙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작은 배를 타고 돌아오는 황 선장이 보였다. 박 기사는 부교를 건너 달려갔다.

또 통선문에 갔다 오는갑소잉?”

황 선장이 탄 배는 어선으로도 쓰지 못할 정도로 너무 작았다. FRP로 만든 배에 스크류만 얹어 놓은 것이었다. 바다가 잔잔할 때 낚시를 하거나 투묘하고 있는 큰 배에 물품을 전해주는 것도 벅차 보일 정도였다.

통선문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당께요. 허가를 받지도 않고 무작정 따라간다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요.”

잔말 말고 단단히 묶어놔.”

차가운 아침바람에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황 선장이 줄을 박 기사에게 건네주고 부교로 올라섰다. 삼월이지만 새벽 찬바람은 매서웠다. 부두에 서있기만 해도 눈물이 찔끔거렸을 것이다. 황 선장은 주르륵 흘러내리는 콧물을 소매로 쓱 닦아냈다. 뱃머리에 부딪힌 물보라를 뒤집어써서 비에 젖은 생쥐 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박 기사는 혀를 끌끌 찼다. 대기실에서 황 선장은 윗옷을 벗어 놓고 얼어 있는 손을 녹였다. 소금물에 젖은 홋줄을 걸고 당기느라 투박한 손이었다.

인자 그만 두시요. 허가도 없이 올라간다고 혀서 통선문을 통과헐 수는 없소.”

뒤따라 들어온 박 기사가 툴툴거렸다.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믄 꼼짝없이 죽을 것이요. 신새벽에 누가 바다를 쳐다보고 있기나 허간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박 기사는 온수통에서 물을 뽑아 황 선장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황 선장은 홀짝이며 몸을 녹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 고향이 강경 아니던가베. 언제고 올라가야 헐 길이란 말여.”

아직 입이 풀리지 않아서 황 선장이 느릿하게 말했다.

요새는 찻길도 좋은디 미쳤다고 통선문을 통과헐라고 그란다요. 백날 쫓아다녀봐야 허가를 안 해준당게라.”

알고 있네. 그려도 물이 차오르믄 가심이 답답혀서 견딜 수가 있어야재.”

황 선장이 새벽부터 배를 타고 다녀온 곳은 금강하구둑이었다. 하구둑에는 배수갑문과 물고기의 통행을 위한 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박의 출입을 위한 통선문도 있었는데 50톤 규모의 작은 선박만이 통행하는 것이었다. 하구둑으로 금강의 민물을 가두어놓아 바닷물은 섞일 수 없었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므로 통선문은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바다에서 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농어촌공사 금강사업단에 통행신청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사업단에서는 선박의 규모와 목적을 보고 통선문의 출입을 허가했는데 군산에서 올라갈 경우에는 하부갑문을 열고 배를 도크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하부갑문을 닫은 다음 상부갑문을 서서히 개방해서 수위를 맞추는 것이었다. 금강에서 군산으로 내려갈 때는 반대로 갑문을 개폐했다. 이 절차가 복잡하고 수위를 맞추는 시간이 짧지 않아서 사실상 통선문을 이용해서 바다와 금강을 오가는 선박이 드문 편이었다.

접 때도 큰일 날 뻔 허지 않았소. 무작정 앞서가던 선박을 따라가다가 갑문에 부딪혀서 뒤집힐 뻔허지 않았능가베.”

박 기사는 왜 황 선장이 통선문을 얼쩡거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금강하구둑이 건설되기 전에는 군산에서 강경을 지나 공주는 물론 부강까지 뱃길이 이어졌었다.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공주를 오가는 기선까지 두 척 운항될 정도로 항로가 좋았다. 황 선장은 고향 강경에서 배를 타고 군산을 오르내렸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 잊어부리시오. 코딱지만한 배 통과 시킬라고 통선문을 열어줄 리는 없응께.”

박 기사의 매몰찬 소리에 황 선장은 속으로 끙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통선문은 손주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방문을 열어젖히는 것처럼 아무나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었다. 통과신청을 하면 사업단에서 검토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열어주고 있었다.

열어주지 않으믄 지들이 워쩔 것이여. 언제부터 강을 오르내리는디 허가를 받아야 혔냐 그 말이시.”

고집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박 기사는 황 선장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닫아버렸다. 다만 나이를 생각지 않고 부두에서 하구둑을 바라보고 있다가 통선문으로 다가가는 배를 발견했을 때 부리나케 배를 타고 달려가는 모습이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박 기사는 황 선장이 도선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통선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누군가 불쑥 들어왔다.

아따 따숩네이. 뭐 헌디야? 밥 묵었어? 안 묵었으믄 같이 가자고.”

선외기 장사를 하고 있는 김 사장이었다. 수십 년간 황 선장과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에 허물없는 사이였다. 김 사장은 조용한 대기실을 순식간에 떠들썩하게 만들어버렸다. 원래 수다스럽고 알맹이 없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김 사장은 두 사람을 끌다시피 해주식당으로 향했다.

여그 뜨신 국물허고 밥 좀 내주시요.”

해주댁은 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 비녀를 꽂고 있는 모습이었다. 웬만하면 미장원에 가서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파마를 할만도 했지만 아침마다 머리 빗기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머리를 감고 말려서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긴 다음에 또아리를 틀어 비녀를 꽂아야 했다. 젊었을 적 해주댁의 고운 머리를 보고 황 선장이 이런 말을 했던 일이 있었다.

댁네는 참 머리가 고우이. 보고만 있어도 먼저 가버린 안사람이 생각난당께.”

그 말 때문이었을까. 한 때는 황 선장이 못 잊어하는 아내 생각에 약이 올라 머리를 싹둑 자르고도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운 머리를 바라보며 은근한 눈길을 보내며 지그시 눈을 감는 황 선장 때문에 머리를 자를 수가 없었다. 아마 황 선장이 아니었더라도 해주댁은 머리를 자르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도 자신의 길고 윤기 나는 머리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꽃샘추윈가벼. 어제보다 겁나게 추워졌당게로.”

김 사장은 잡담을 늘어놓으면서 소주를 한 병 냉큼 집어왔다

해장부터 술 자실라요?”

해주댁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걱정마시요. 우리가 하루 이틀 해장했간디. 황 선장, 안 그런가?”

황 선장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꼴꼴꼴 술잔이 채워졌을 때 벌컥 한 모금 들이켰다. 그 때 해주댁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생태탕을 내왔다.

술만 자시지 말고 밥이랑 같이 드시요.”

황 선장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그 말에 김 사장은 입을 삐쭉거리면서 해주댁을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았다.

돈은 내가 낼 것인디 호사는 황 선장이 다 누리네. 허허.”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드시요.”

해주댁은 찬바람이 일도록 휑 돌아서버렸다. 그래도 김 사장은 넉살좋게 웃음을 날리면서 개의치 않았다.

아까 배가 들어 오든만 또 올라갔다 온겨?”

김 사장의 물음에 황사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박 기사가 말을 받았다.

신새벽부터 하구둑을 다녀올 사람이 누가 있것소.”

김 사장의 선외기 가게는 부둣가에 붙어 있어서 누가 오르내리는지 훤히 바라보였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있을 때 위에서 내려오는 황 선장을 보았던 것이다.

자네 고집도 엔간하네. 포기헐 때도 됐는디 기어코 물길을 따라 올라가것다고 고집을 부린당가.”

김 사장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뭇잎처럼 작은 배로 오르내리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큰일이었다. 군산 앞바다는 천리를 달려온 금강이 몸을 푸는 곳이어서 넓었다. 예전에 배를 타고 장항까지 가는 데만도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게다가 물이 들어왔을 때에는 오가는 어선들도 많고 금강하구둑에서 배수갑문이라도 여는 날에는 물살이 종잡을 수 없이 거칠어지는 것이었다.

무담시 넘의 일에 간섭허지 말고 밥이나 먹세. 그 놈의 잔소리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구먼. 죽어서도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헐 것이여.”

황 선장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소리에 해주댁이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모양을 보고도 김 사장은 화를 내기는커녕 황사장의 말이 반가운 듯 했다.

하믄, 격식대로 혀야재. 내 성에 차지 않으믄 제사상도 받지 않을 것이네. 그려도 내가 자네보다는 오래 살 것잉게 아모 걱정 말드라고.”

그제야 황 선장도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한 잔 드세. 어김없이 봄이 오건마는 가버린 호시절은 왜 아니 올꼬.”

이제 부두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아침을 먹기 위해 해주식당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해주댁이 생선을 다루는 도마소리가 바빠질 때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꽃피는 봄을 시샘하는 것은 바다에도 있었다. 시퍼렇던 물이 봄기운에 누런 빛깔로 바뀔 때쯤이면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것이었다. 차가운 북서풍에 맞서 밀어 올리는 동남풍이 마주쳐서 바닷물도 한바탕 뒤집어지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겨울바다가 시샘한다고 했다. 월명산의 벚나무에서 새순이 귀엽게 돋아 오르고 있던 삼월 하순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바닷물이 부두까지 넘실거리고 있었다. 정박한 어선의 대나무에 메어놓은 깃발이 찢어지도록 나부끼고 사방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내일까지는 날씨가 심상치 않을 것 같소.”

박 기사가 튀어 오르는 바닷물을 가리느라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부교를 뛰어오고 있었다. 정박해놓은 어선들의 홋줄을 보강해주고 오는 길이었다.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오는 봄을 막지 못할 것이다.”

황 선장은 도선장 대기실 앞에서 박 기사를 맞이했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부교를 오가고 있었다. 선원들은 배를 정박해놓고 시내로 술추렴을 하러 갔든지 아직까지 여관방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부교에 정박한 수십 척의 배는 두 사람이 맡아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교에서 배로 냉큼 건너뛰어서 홋줄을 던지고 두 겹 세 겹으로 보강을 했다. 만약 홋줄이 끊어진다면 거센 바다로 둥실 떠내려 갈 것이 분명했다. 선장들은 정박했다가 떠날 때 수고비를 대기실에 들러 내놓고 갔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웬만치 했응께 들어가서 좀 쉽시다.”

박 기사는 얼굴에 묻은 바닷물을 옷소매로 쓱 닦아내며 대기실로 뛰어 들어갔다. 난로 위에서는 노란 주전자가 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황 선장은 박 기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부두가로 몇 걸음 걸어갔다. 그의 눈은 하구둑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멀리 배 한 척이 보였다. 서해의 거친 파도는 외항에서 성질을 부렸지만 인공섬에 부딪혀서 그 기세가 약해졌다. 그래서 파도가 내항에서는 앙탈을 부리는 정도였다. 내항에서 금강하구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은 굽어져 있었기 때문에 위로 갈수록 고분고분해졌다. 통선문을 통해 선박이 왕래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황 선장은 뚫어지도록 배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바라보니 배가 투묘를 하거나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는 통선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확인한 황 선장의 눈에 광채가 돌았다. 그는 대기실로 뛰어 들어가서 두툼한 외투를 걸치더니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커피를 타고 있던 박 기사가 미처 물을 틈도 없었다.

어어어.”

이 소리만 할 뿐이었다. 황 선장은 부교를 건너서 맨 안쪽에 메어져 있던 작은 배로 뛰어올랐다. 거침없이 엔진에 시동을 걸고 어선들이 빼곡히 정박해서 미로처럼 복잡한 곳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박 기사는 부두에서 그 모습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급하게 가는 곳은 한군데 밖에 없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박 기사의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바다는 거칠었다. 황 선장이 탄 배는 나뭇잎과 같아서 파도를 헤치고 가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박 기사는 부두에서 황 선장을 불렀다.

선장님. 황 선장님.”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황 선장은 내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마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바람소리가 요란했고 엔진소리 때문에 박 기사의 외침은 전해지지 않았다. 박 기사는 큰일 났다 싶어 부교를 달려 내려갔다. 위아래로 심하게 들썩이는 어선의 갑판으로 뛰어올라 건너편 어선으로 다시 건너뛰었다. 몇 척이나 건너뛰었을까. 가장자리에 있는 어선의 후갑판으로 가서 박 기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선장님. 돌아오시요. 위험허당께요.”

그 때 황 선장은 기우뚱 거리는 어선들 사이를 빠져나와 위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바람결에 실려 온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입을 벌려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박 기사는 계속 손을 흔들면서 황 선장을 불렀다. 황 선장도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라는 것 같았다. 파도가 뱃머리에 부딪혀서 하얀 포말을 뿜어대자 황 선장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배가 뒤집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황 선장의 배는 박 기사의 눈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축 늘어진 어깨로 박 기사가 부두로 올라와서 하구둑을 바라보니 작은 점이 되어 달려가는 황 선장의 배가 보였다.

무슨 일 있는가? 소금절인 파 맨키로 왜 풀이 죽어 있어?”

김 사장의 목소리였다. 그는 시내에서 볼 일을 마치고 백년광장을 지나 돌아오고 있는 길이었다. 잔뜩 흐려 있는 날씨에다 저녁이 되어 벌써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선장님이 미쳤는갑소.”

박 기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 사장은 눈치 빠르게도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 키발을 짚고 바라보니 만조가 되어 물이 가득 찬 군산앞바다에 몇 척의 배들이 떠있었고 그 사이로 올라가는 작은 배가 보였다. 황 선장이 분명했다. 가운데로 나갈수록 파도가 거칠었는지 황 선장의 배는 사라졌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 큰일 나부렀네.”

김 사장은 도선장 대기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낡은 책상위에 놓인 기관연락처를 뒤적여 전화를 걸었다.

거기 금강사업단이요? 나는 여기 내항에 있는 사람인디, 네네, 그렇당께요.”

전화를 받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답답했던지 김 사장은 화를 벌컥 내기도 했다.

맞소. 접 때 그 황 선장이요. 이번에도 배를 타고 통선문 쪽으로 올라갔응께 통과시키든지 아니면 안전허게 붙잡아 달란 말이외다.”

통화를 마친 김 사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황 선장이 부두에서 하구둑을 바라보다가 통선문을 통과하려는 선박을 보고 쫓아간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허가 없이 통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금강사업단에서는 감시카메라를 통해서 누가 하구둑에 접근하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그것은 하구둑의 안전과 접근하는 선박을 위해서였다. 갑자기 배수갑문이 열리면 엄청난 속도로 물이 쏟아져서 작은 배쯤은 단번에 뒤집어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일정구역내에서의 어로행위까지도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황 선장은 통선문을 통과하려는 선박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쫓아갔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황 선장의 생각대로 하부갑문이 닫히기 전 도크 안으로 들어간다면 금강 상류로 올라가서 강경까지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갑문에 부딪혀서 배가 파손될 수도 있었다. 김 사장이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고 대기실을 들락거리고 있을 때 바지에 손을 넣고 엉거주춤 걸어오는 털보가 보였다. 그는 비응도에 살던 사람이었다. 김 사장과는 거래가 있어 친숙한 사이였다.

여보게, 배 좀 띄우세.”

? 요런 날씨에 무슨 배를 띄운단 말요. 어디 장항에라도 가실라요?”

그게 아녀. 여기 황 선장이 쪽배를 타고 올라갔다네.”

김사장은 아래턱으로 도선장 대기실을 가리켰다. 눈을 껌뻑이고 있던 털보는 무슨 일인지 대강 짐작하겠다는 듯 김 사장을 따라갔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벌써 외등을 밝힌 어선들도 있었고 부두의 가로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부교에 내려가서 보니 털보의 배는 다른 어선들 사이에 있어서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박 기사가 건너편 어선으로 건너가서 홋줄을 걷고 다시 던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서야 겨우 털보의 어선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혼자서 홋줄을 묶고 있던 박 기사는 옆으로 배가 다가왔을 때 훌쩍 올라탔다. 그 때부터 털보의 어선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통통통통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올라 세찬 바람에 흩어졌다. 바다 가운데로 나갈수록 파도가 심했다. 배가 앞뒤로 사정없이 흔들리면서 파도를 헤치고 있었다. 뱃머리에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하얀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그래도 김 사장과 박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뱃머리에 서서 황 선장이 간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쳤당게로. 이렇게 파도가 험헌디 쪽배를 타고 가당키나 허것는가 그 말이여.”

이제 주위는 어두워져서 하구둑에서 장항으로 이어지는 가로등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박 기사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별 일이야 없것지요? 그려도 바다에서 살아온 양반인디.”

김 사장은 말없이 굳은 표정이었다. 하구둑으로 다가갈수록 파도는 약해졌다. 털보는 어선을 통선문이 있는 곳으로 몰아갔다. 거대한 하구둑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우뚝 서서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개미새끼 한 마리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 거만한 몸집이었다. 그들이 통선문에 이르러 살펴보니 이미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황 선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사장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워떻게 됐소? 황 선장이 안으로 들어갔소 아니면 못 들어갔소?”

김 사장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박 기사가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뭐라고 허등가요. 선장님이 올라갔지요?”

박 기사는 황 선장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 통선문을 통해서 올라갔다고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게 아녀. 사업단에서 방송을 혀서 황 선장을 제지혔는디 기어코 통선문으로 돌진허드래야.”

그러믄 워떻게 됐단 말이요?”

이미 갑문이 닫혔는디 워떻게 허겄능가. 어느 순간 감시카메라에서 사라져 버렸다는디 찾아봐야재.”

그들이 통선문 주위를 뱅뱅 돌면서 황 선장을 찾고 있을 때 사업단에서 뛰어나온 근무자들도 둑 위에서 후레쉬를 비추고 있었다. 뒤이어 소방서에서 구조대를 보내오고 경찰이 도착해서 갑자기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그렇게 황 선장을 찾는 일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끝내 황 선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봄바람으로 바다가 대야에 물을 떠놓은 것처럼 잔잔해졌을 때에도 실종된 황 선장을 찾을 수 없었다. 사흘 만에 수색은 사실상 종료되었고 해경에서 세 척의 경비정을 보내 어청도까지 찾고 있을 뿐이었다. 워낙 밀물과 썰물이 심하게 반복되는 곳이어서 물에 빠진 사람이 순식간에 먼 바다로 떠내려가는 경우는 흔했다. 황 선장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때 먼 바다로 떠내려간 것이 분명했다. 박 기사는 도선장 대기실에서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해주식당에 가서 요기라도 하였겠지만 황 선장이 실종되고부터 식당 문이 닫혔기 때문에 주린 배를 소주로 채우고 있었다. 박 기사가 쥐포를 난로위에 구어서 찢어발기고 있을 때 김 사장이 들어왔다.

허구헌 날 술추렴인가? 가세. 밥이나 묵어야 몸을 건사허재.”

멀건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박 기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김 사장은 해주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흘 만에 해주식당의 문이 열려 있었다. 박 기사는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왔소. 뭐 먹을 것이나 좀 내주시요.”

해주댁은 수건을 쓰고 있었다. 평소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 넘기고 아무 것도 쓰지 않던 모습을 생각하면 낯 설은 모습이었다. 박 기사는 자리에 털썩 앉아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해주댁에게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도 충격이 크셨을 것인디.”

김 사장은 수건을 쓴 해주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군가 어젯밤에 부두에서 울면서 바다에 하얀 무명광목으로 무엇을 돌돌 말아서 던지던 해주댁을 보았다고 했다. 지금 보니 해주댁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한 것이 분명했다. 수건으로 가렸어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바다로 던진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었을까. 김 사장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울적해졌다. 금방이라도 황 선장이 시커먼 얼굴을 들이밀고 나타날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상을 내오는 해주댁의 얼굴은 핼쓱해 있었다.

벌써 부지런헌 벚나무는 봉우리를 틔웠다등만.”

김 사장이 말을 건네도 해주댁은 조용히 쟁반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동안 배가 고팠던 박 기사가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술 한 잔을 따라놓고 해주댁에게 말을 걸었다.

나중에 월명산 꽃놀이라도 가볼라요?”

그래도 말이 없었다. 김 사장은 해주댁의 뒷머리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인자 황해도 해주 고향땅을 못 가게 돼부러서 섭허것지만 황 선장은 잊어뿌리시요. 그 사람도 그것을 바랄 것잉께. 나도 마음이 답답허요.”

평소 김 사장 답지 않은 넋두리였다. 차분한 말투가 수다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도마에서 칼질을 하던 해주댁이 돌아서며 말을 건넸다.

나도 고향 밟을 생각은 버렸소. 그나마 위로해주던 선장님이 없응께 고것이 서운헌 것이재.”

알지요. 그 마음. 아마 선장은 강경으로 올라갔을 것이요. 살아서 못 가믄 죽어서라도 물고기들이 데려다 줄 것잉께.”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밥 먹는 것에 열중하던 박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웬만큼 양이 찬 모양이었다. 그는 문득 창밖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봄볕을 바라보았다. 강아지들이 젖꼭지 하나씩 물고 배부르게 젖을 먹은 다음 한가하게 어미 품에서 잠들어 있을 법한 날이었다.

아따 봄볕이 좋구만이.”

박 기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말에 김 사장과 해주댁도 밖을 바라보았다. 백년광장에는 바람을 쏘이거나 관광을 하러 온 사람들이 한가하게 거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곧 월명산에 꽃이 만발하렷다.”

김 사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세 사람은 항구에 내려 쪼이는 따뜻한 봄볕에 잠시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당선소감>

 

 "주마가편의 상문청 자세 잊지 않을 터"


  작년에 시골로 이사를 해서 겨울이면 땔감을 장만하느라 바쁩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현관문을 꼭 걸어 잠그고 토끼가 굴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할 사람 없지만 시골은 자질구레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눈이 많이 왔을 때 깜빡 잊고 늦장을 부리면 이웃집 영감님이 깨끗이 치워놓으니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닙니다.


  오전에 이웃집 영감님과 함께 복숭아밭에서 나이 든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만들고 돌아와 먼지를 털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든 전화기 너머에서 신문사라는 말과 함께 축하한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순간 몸이 쩌르르 울렸습니다. 환호성을 질러야 할지 아니면 침착하게 응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헝클어진 정신을 가까스로 추슬러서 묻는 말에 간신히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처마 밑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킥킥거리며 웃었습니다. 아마 누가 보았으면 저 사람이 실성했구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행운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소설을 쓴답시고 수차례 응모해보고 당선을 기다리며 당선되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할까 행여 속물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혼자 노심초사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순간 기습적인 전화를 받고 보니 공들여 준비했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말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당선소감을 쓰고 있으려니 말문이 막히는 느낌입니다.


  이번 신춘문예 당선은 더욱 좋은 글을 쓰라는 의미에서 주신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는 것이 상에 보답하는 길이요 문청의 자세임을 잊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하늘의 어머니께 영광을 돌리고 졸작을 읽어주는 수고를 마다 않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박이선, 1969년 남원 출생, 7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전주덕진소방서 119대원



<심사평>

 

"노인의 꿈, '글과 서사' 참하게 다가와"


  소설을 글로 듣는 이야기로 정의해볼까요? 그렇게 규정하는 순간, 소설이 마땅히 갖춰야 하는 두 눈꺼풀이 절로 열립니다. ‘서사라는 양쪽 눈이 그것입니다. 예컨대 글이라는 것에는 눈썹이랄 수 있는 비유, 눈동자를 이루는 문장, 눈매로 상징되는 문체, 동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주제 의식 등이 있습니다. ‘서사 쪽 눈에도 구성, 갈등, 반전 등의 요소가 있을 테지요.


  출품작 집행은 이혼 자녀 집행관이라는 소재가 아주 매력적입니다. ‘이라는 측면만 놓고 본다면 그 눈동자가 자못 선연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서사 측면의 눈초리는 분명치 않고 현실적으로도 매우 흐릿합니다. 특히 갑작스런 결말로 인해 독후감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러브 터치는 청년 취업을 통해서 본 첫 세상 엿보기입니다. 헌데 비정규직 문제인지, 기업 스파이인지, 부업인 꿀벌치기에 대한 언급인지 어지럽습니다. 물론 그게 다일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그 낱낱의 소재가 서로 유기적으로 녹아들어야만 하겠지요.


  이모의 죽음을 반추하는 달이 뜬다와 풀 수 없었던 사랑의 방정식을 추억하는 세상의 끝에서는 소품이라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 류의 작품들이 흔히 극복하지 못하듯 이른바 이야기 너머의 그 어떤 것,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더 이상을 열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당선작 하구는 얼핏 보면 흘러간 가요처럼 고답적인 양식의 소설에 지나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바닷가 폐선 같은 쓸쓸한 배경에 입혀진 삶의 풍경들, 힘찬 망둑어처럼 물길을 거슬러 오르려는 노인의 꿈이 잔잔한 선율과 어우러져서 무리 없게 읽힙니다. 문득 금강하구언을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비록 빼어나진 못해도 글과 서사 양쪽 눈매가 참하게 다가왔습니다. 정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