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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입체적 불일치 / 사익찬

 


당숙이라는 사람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수의사였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 커다란 금고 하나를 남겼다는 것, 허언증이 심한 이복누이가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것. 얼른 오는 게 좋겠구나. 조금 급박한 어조였지만 냉정을 잃지 않은 채로 당숙이 말했다. 더 묻고 싶은 게 있니? 나는 모든 것이 궁금했으나 당숙과 나의 관계를 따져보아 하나를 먼저 물었다.

금고라고요? 그래, 금고. 무슨 금고지요? 무슨 금고긴, 금고가 금고지. 뭐가 들었는지 묻는 거냐? 당연한 말이었다. 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는 죽었고 누이는 감옥에 들어갔다. 당숙이 말한 세 가지 사실 중에서 나와 유일하게 관련이 생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금고뿐이었다. 마침 잘 말했다. 안 그래도 금고 때문에 골치가 아프려던 차였다. 그게 보안 시스템이 좀 특이하다던데. 뭐라더라, 홍채인식이라던가.

아저씨, 아버지가, 눈을 감으셨습니까? 그래, 어젯밤에 돌아가셨다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버지를 보지 않은 지도 벌써 이십년이 넘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잘 알지도 못하던 당숙에게서 대뜸 부고 통보를 전해 듣다니.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당숙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였으므로 더 자세한 것을 묻는 일은 자제하기로 했다. 밤 열시쯤이었다. 전화를 끊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맥락막 뒤편에 찬찬히 떠올랐다. 오목한 이마며 굵은 쌍꺼풀, 투박한 두 개의 콧볼, 깨진 턱의 흉터 같은 자잘한 부위들이 기억 속에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면서 하나의 아버지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상화라기보다는 콜라주에 더 가까울 법한 형상이었다. 즉각적으로 조립된 그 괴상한 몽타주는 나는 네 아버지다하고 입을 빠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몰골이 너무나 형편없던 나머지 나는 그만 몽타주의 주장을 쉽게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때 또 다른 얼굴을 기억해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처럼 아버지를 알고 있을 내 기억 속의 다른 누군가에게 이 몽타주의 신원을 확인해줄 수 없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증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나를 동시에 아는 사람이라곤 어머니와 이복누이 정도. 그러나 누나의 얼굴은 아버지만큼이나 본 지 오래되었고 어머니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어머니를 애써 떠올렸는데 그런 어머니가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기 싫은 것만큼이나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고, 이건 절대 네 아버지가 아니라고 내게 호통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짜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기억해놓은 아버지의 모습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데도 엉뚱한 사람을 기억하는 꼴이 되는 걸까. 어쩐지 아버지의 몽타주가 자꾸만 비참해지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만 증인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몽타주는 눈을 꿈뻑거리며 내가 네 아버지라니까, 하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고 아버지의 동공은 이제 빛을 빨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홍채가 아주 느슨해져버렸기 때문이고, 안구를 조절하는 시신경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고, 좀 더 근본적으로는 뇌가 모든 근육의 행위를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뇌가 꺼짐과 동시에 그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죽어버렸다. 몇 명이나 그 안에서 몰살당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수의사였으니까 사람보다는 동물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 대신 동물이 한꺼번에 구제역을 치르듯 그렇게 처형당한 게 차라리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버지는 명색이 수의사, 그것도 대동물 전문 수의사였는데 온갖 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평생을 투신한 당신의 치하를 따져보자면 그런 유치하고 단순한 비교는 금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물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 동물밖에 몰랐던 아버지. 그래서 어머니와 헤어질 수밖에 없던 아버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게도 이제 시선을 나눠주지 못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눈빛에 의미가 사라져버렸다는 뜻이다. 적어도 산 사람에게는 그러한데, 문제는 금고에게만큼은 그 눈빛이 유효한가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든 불빛만 있다면야 죽은 자의 눈에도 빛이 담길 것이다. 눈이 부패되어 홍채에 변질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금고는 여전히 아버지의 눈빛을 읽을 수 있다. 눈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금고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아버지라는 점에서 아버지의 눈빛은 아직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의 흔적이 저장되어 있는 금고. 적어도 아버지의 일부 한 가지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금고. 평소에 금고를 열어놓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인즉 아버지가 금고를 열어둘 경황도 없이 죽었을 거라는 말이다. 아버지의 발인 전에 금고를 열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아버지가 땅에 묻히기 전에 아버지의 시신을 홍채인식기 앞에 옮겨 눈알 한 쪽을 가져다 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상관은 없다. 오른쪽이 틀리면 왼쪽을, 왼쪽이 아니라면 오른쪽을 갖다 대면 그만일 테니까. 어차피 두 눈 사이의 간격은 5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묻히기 전에. 아버지의 눈이 썩어버리기 전에. 아버지의 수정체 안에서 구더기가 아늑하게 들어앉아 알을 까기 전에. 그 전에 아버지를 금고 앞으로 모실 수만 있다면. 혹시 아버지의 눈알만이라도 따로 끄집어내어 보관할 수는 없을까.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지문인식이었더라면 정말 손가락 하나를 어떻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숙이 내게 서둘러 내려오라고 한 것 역시 어떤 동의를 구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여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그럴 바에야 죽은 시신의 눈꺼풀을 잠시 열어 인식기 앞에 갖다 대는 것은 수가 아니겠냐는. 물론 그것은 시신에 대한 적절한 예우가 아니다. 그러나 금고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 한편으론 농촌의 대동물 수의사였던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걸 가지고 있었겠느냐는 데에도 생각이 닿았다. 그것을 억지로 열어봤자 허탕만 치는 게 아닐까.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 허접 쓰레기 같은 것들만 가득하다면, 그야말로 김빠지는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그 안에 든 물건은 아주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일 수 있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쓰레기든, 보물이든, 그것은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산이다.

당숙과 전화를 끊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는 친구 성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열두시 반이었지만 성혁이라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을 거란 확신이 쉽게 그의 번호를 누르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전화를 받았다. 새로 금고가 하나 생길 것 같아. 금고가 필요해진 모양이지? 그렇게 묻는 성혁의 질문 속에는 금고를 새로 장만할 정도로 진귀한 무엇이 내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나 궁금해하는 눈치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는 금고를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죽음과 유산은 별개의 문제지, 하고 키득거리는 성혁은 죽음과 유산이 일맥상통하는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왕래 없이 살던 늙은 아버지의 소식이 별안간 들렸는데 빚 문제나 부양 문제 따위가 아니라 유산 상속에 관한 것이니 어떤 의미에서는 희소식이라는 것이었다.

희소식인 걸까. 3년 전 집을 마련한다고 대출한 돈이 있다. 얼마 갚지도 못했는데 천정부지로 이자가 붙고 있었다. 이로써 내가 금고에 기대를 걸 만한 이유 하나쯤은 충족된 셈이다. 나는 성혁에게 홍채인식금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성혁은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이 농촌 대동물 수의사의 거대한 비밀이란 무엇일까, 하고 내게 다시 반문했다. 성혁은 이번엔 금고와 비밀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물론 거대한 비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거대한 것은 아버지의 금고뿐이었다.

요즘엔 금고가 정말 흔한 물건이란 말이지. 우리 집에도 작은 금고가 있어. 열쇠로 여는 것인 데다 열쇠의 여분도 두 개나 되지. 싸구려지만, 어쨌든 잠그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서 금고라 부를 만해. 너는 금고에 뭘 넣어두었지? 내가 물었다. 쓸데없는 것들. 성혁이 대답했다.

쓸데없는 것? 정말 중요한 것은 금고에 넣지 않아. 와이프가 의심할 테니까. 금고에 귀중한 것을 넣고 싶다면 금고 자체의 존재를 숨겨야 해. 금고는 기만적인 물건이야. 보는 순간 마치 소중한 것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하게 되잖아? 나 같은 경우에는 아내와 연애시절에 주고받았던 편지 따위 같은 것들을 넣어 두었지. 아내가 열어보았을 때 보고 기뻐할 만한 것들 말이야. 누구도 탐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이지만, 거기 들어있을 만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것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 안에 넣어둔 것은 아내에 대한 두려움이야. 부록으로 불신도 함께 넣어두었지. 내가 정말 그 안에 뭔가를 내 의지대로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절대 구겨진 종이쪼가리 따위를 넣어두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 나는 말없이 성혁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나는 종종 편지를 바꿔치기해서 이혼서류를 넣어두는 상상을 해. 그렇게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어. 어차피 아내는 접힌 종이를 펴볼 생각이 없을 테니까 죽을 때까지 그걸 연애편지라고 믿고 살아갈 테지. 진심인가? 내가 묻자 그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진심이야. 그러나 그럴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거짓말이야. 금고를 볼 때마다 아내도 나도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요새는 정말 금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그러나 문제는 내가 거기에 뭐가 들었는지 잊어버리는 순간 발생할 테지. 나는 거기에 아주 중요한 게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할 테니까. 너의 문제와도 비슷한 경우지 않나? 아버지의 금고를 발견하자 거기에 대단한 의미를 걸고 싶어진 거잖아. 그렇지?

성혁은 내게 억지로 금고를 열어봤자 실망만 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차피 아들인 네가 가져갈 물건이잖아. 맞는 말이었다. 금고 스스로 도망가지 않는 한, 그 안의 물건은 오로지 아버지의 것으로 남았고, 이제는 자식인 나의 수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맨 처음 만난 것은 당숙이었다. 그는 큰 키에 검은 얼굴을 한 초로의 사내였는데 얼마 전 염색을 한 모양인지 얼마 남지 않은 머리가 유난히도 시커맸다. 내가 당숙 앞으로 걸어가자 그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이 너무나 건조했던 나머지 나는 불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잡은 손을 서둘러 놓아버렸다.

당숙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재밖에 남지 않은 집터였다. 한때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이복누이가 살던 곳이었다. 아버지는 화재 때문에 죽었다. 실로 엄청난 화재였다. 모든 것이 새까맣게 타버려서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시신이 다 타버릴 때까지 피어오르는 불을 마을에서 그대로 방치해뒀다는 사실이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숯 더미 앞에서 입을 틀어쥐었다. 사방이 온통 아버지의 잔해들로 보였다.

나보다 앞서 마을 이장을 만났던 당숙은 벌써 경찰서에 다녀온 참이라고 했다. 뜸을 들였더군. 당숙이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내게 말했다. 서울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많았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일한다고? , 약을 팔고 있습니다. 나는 히죽 웃었다. 자네, 이복누이를 알고 있지? 그 정신이 좀 이상한 여자 말이야. 당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에 불을 낸 게 네 누이야. 누나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군요.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누나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나가 어릴 때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은 누나와 함께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그 결과 친모는 사망했지만 누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부인의 자살 이유까진 알 수 없다.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에 대해 귀띔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버지와 이혼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어머니가 그 일을 두고 그 양반이야 사람 미치게 하는 데에 큰 재주가 있으니까하고 비아냥거렸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독극물을 마시고나서부터 누나의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누나가 말을 좀 잘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말은 잘하는데 단지 질 나쁜 말들만 골라서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고. 누나는 태생이 거짓말쟁이였다. 아니, 누나는 죽다 살아난 뒤부터 거짓말만 하게 되었다. 엄마가 자신에게 네스퀵이라면서 농약을 마시게 했다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누나는 주장했다. 어쩌면 그건 정신을 차린 누나가 한 최초의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불과 일곱 살에 불과했던 누나가 어머니를 속여 약을 먹이고 자기도 따라 마셨을 리는 없다. 누나는 피해자였다. 하여튼 팔자가 좀 기구한 사람이었다.

누나가 열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동물병원에 애완견을 데리고 찾아왔던 견주였다. 당시 어머니는 서울에서 여자대학을 갓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 있던 참이었는데 집에서 키우던 페키니즈 한 마리가 마침 발정이 났다. 중성화수술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마을에 딱 하나 있던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아버지를 만났다.

먼저 신호를 건넨 것은 어머니 쪽이었다. 어머니는 신중히 개의 고환을 살피는 의사에게서 야릇한 본능을 느꼈다. 말끔한 가운 차림으로 수술에 대해 성심성의껏 설명해주는 의사의 진지한 모습이 꽤나 늠름해 보였던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추파에서 뭔가를 감지했음에 틀림없다. 개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이 자주 어머니의 얼굴로 향했다.

수술 상처가 다 아물어 개가 수컷의 본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기도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임신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아무래도 과묵한 시골 수의사였던 아버지는 쾌활하고 당돌한 어머니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하루 종일 마주하는 것이라곤 아픈 동물들과 모자란 딸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고단한 홀아비였던 아버지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젊고 예쁜, 그야말로 매력적인 어머니가 등장했는데 아버지는 외로웠던 나머지 그런 어머니를 차마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수의사의 아내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따분한 일이었다. 아니, 꼭 수의사의 아내였기 때문이 아니라, 시골이란 원래 사람이 쉽게 따분해지는 곳이기 마련이었다. 시골 수의사의 아내로 살기에 어머니는 요리를 잘했다. 피아노를 잘 쳤다. 운전을 잘했다. 애교를 잘 부렸고 싫증도 잘 냈다. 어머니는 한마디로 재능도 많고 감성도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가진 게 많다는 것은 그것을 충분히 알아봐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시선만으론 부족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일무이한 동물병원장이자 농장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대동물 수의사였다. 아버지는 병원을 지키고 앉아 아픈 애완동물들을 진찰하는 것보다도 전화를 받고 출장을 가는 일이 훨씬 잦았다. 그건 탈이 난 동물들이 다 소나 말, 돼지 같은 대동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머니 대신 아픈 동물에게 신경을 쏟기에 바빴다. 아버지는 남편보다는 의사로서 더 유능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플 때보다 어머니의 페키니즈가 아플 때 더 도움 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차를 끌고 나가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아이들과 집에 붙어 있을 일이 많았다. 누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선생에게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해서 어머니를 자주 골치 아프게 했다. 어머니가 무슨 훈계라도 하려고 하면 누나는 네스퀵은 싫다며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어머니는 누나와 친해지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집안에서 어머니가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라곤 이제 아들인 나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를 훨씬 더 따랐다. 나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닮은 자식이었다. 말문이 트였을 때 아버지를 먼저 외쳤고, 걷기 시작할 때부터는 아버지만 쫓아다녔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한 뒤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간 것은 내가 열한 살 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의 이혼은 내게는 좀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힘들었지만 어머니 앞에서 함부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서울에서 어머니는 두 번 더 결혼을 감행했고, 두 번 또 이혼했다. 첫 번째 남편은 사업가였고, 두 번째 남편은 중학교 교사였는데 둘 다 아버지보다는 출근과 퇴근시간이 비교적 정확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들에게 깃이 번듯한 셔츠를 다려 입힌 뒤 입맞춤 받는 것을 낙으로 살았다.

남자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새아버지로서 나와 친해지기 위해 그들은 아낌없이 자신만의 장기를 꺼내들었다. 야구 마니아였던 첫 번째 계부의 경우 티켓을 흔들며 함께 야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나를 꼬드겼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자기가 응원하던 팀이 패배한 날이면 분풀이라도 하듯 야구방망이로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계부는 그보다는 정격화된 방식으로 체벌을 가했다. 어려운 숙제를 내준 뒤 내가 기한 안에 분량을 다 풀지 못하면 손바닥을 대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가 체벌을 위해 사용하던 것은 30센티 자였는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손바닥을 내리쳤는지 눈금이 다 사라져 사실상 자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부정의 권리로 그들이 내게 행사한 폭력 앞에서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아침마다 더욱 정성스럽게 그들의 넥타이를 고르고 식사에 신경을 썼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언제나 나를 좀 부탁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어머니는 아버지들에게 건네받은 위자료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계시다.

누가 함부로 데려갈 엄두를 내지 못해서 마흔이 넘은 누이를 아버지가 그렇게 책임지고 데리고 살았다는 사실은 그럴싸했는데, 그래도 누나가 아버지가 들어있던 집에 불을 지르고 내빼버렸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다. 누이 역시 어머니처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커졌던 걸까. 외로워서, 그래서 방화를 저지른 것일까. 누나 같은 사람에게 아버지를 벗어나는 방법이란 정말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눈알이라도 찾듯, 집 더미를 발로 건드렸다.

자네 누이가 이상한 말을 지껄여댔다는군. 내 발길질을 빤히 주시하던 당숙이 말했다. 누이를 좀 만나보는 게 좋겠는데. 그 전에 금고는 어떻게 된 거죠? 나는 누이의 일이라면 관심이 없었다. 누이가 집에 큰불을 냈고, 아버지는 집과 함께 타버렸다. 그 결과 누나는 죗값을 치르러 감옥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묘지 안에 들어갈 것이 빈 관뿐이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장례는 치러야 한다. 그러니까 모두, 종결된 사건이었다. 남은 것은 아버지의 금고였고 나와 당숙 사이에 마무리지어야 할 일도 오직 그것뿐이었다. 관 속에 아버지를 대신하듯 커다란 금고를 넣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당숙이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러나 쉽게 불을 붙이지는 못하고 말없이 잔해 더미를 바라보았다.

이복누이는 집 안 구석구석 시너를 뿌렸다고 했다. 어디 한 군데 불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소방차가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집 스스로가 알아서 소화 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고 했다. 거대한 붉은 고양이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 듯한 자세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형상이었다. 모든 걸 태워버린 집 안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것은 강철로 만들어진 금고 하나뿐이었다. 겉이 좀 새까맣게 그을렸을 뿐, 원체 어떤 상황에서도 내용물을 지키게끔 만들어진 물건은 과연 금고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화재 속에서 직사각형의 형태로 살아남았다. 물론 내부가 어떨지는 열어봐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부지깽이로 두드리면 부식된 금고를 금방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금고가 내용물을 잘 보관하고 있길 바라면서 그 입구가 쉽게 개봉되기를 바라는 건 모순이었다. 금고제작회사에 문의했을 때 업체 쪽에서는 금고를 여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했다. 다만 그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아버지의 금고는 생산된 지 얼마 안된 튼튼한 새 제품이므로 더욱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집에 불이 나기 두 달 전쯤 주문한 거라고 하더구나. 대체 뭘 넣어둘 생각으로 그런 비싼 걸 장만하게 된 건지. 당숙이 혀를 차며 말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금고 중에서 열리지 않는 금고란 것은 없다. 문을 열기로 작정한 사람 앞에서 금고는 어린아이처럼 무력하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는 고집스럽다. 융통성도 없다. 심한 낯가림을 하는 농아처럼 충직하게 제 부모만을 기다린다. 금고는 외부인이 아니라 시간을 버티는 기계였다. 즉 금고의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인데 아버지의 금고는 금고 중에서도 특급에 속한다고 했다. 여는 데 빨라야 보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보름씩이나? 아니, 금고를 만들었다면서 그렇게 오래 걸린단 말이오? 당숙이 따졌다. 우리는 주인 아니면 열리지 않는 물건을 만들 뿐입니다. 보름씩이나 걸린다면, 그만큼 훌륭한 상품이라는 뜻이지요. 금고업체 직원은 그렇게 설명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금고를 맡겨두고 기다리면 될 일 아닌가요. 내가 당숙에게 물었다. 아까 자네 누이가 이상한 소릴 했다고 했지? 누나 얘기는 왜 자꾸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년이 글쎄 집에 불을 지르기 전에 제 아버지를 금고에 넣었다는 거야.

쇼윈도 안에는 몇 마리의 개들이 목에 이상한 깔때기를 꽂은 채 배를 내밀고 있었다. 어디가 아파 거기 들어가 있는지는 몰라도 꽤나 나른해 보이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한때 아버지의 동물병원이었던 그곳 앞에 서서 오래도록 동물들을 구경했다. 누군가 발견한다면 무척이나 개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비쳐질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반년 전쯤 이 병원을 처분해버렸다고 했다. 농장주들의 호출에 더 이상 호응하지 않게 되었던 것도 그 시기였다. 일흔이 넘어 노쇠해진 아버지는 아마 동물들을 상대하기가 힘에 부쳤을 것이다.

아버지는 한평생 소들의 산파로 살았다. 소가 출산할 때가 되면 어느 농가에서나 빠지지 않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전화가 울리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진찰가방을 챙겼는데 그 안에는 온갖 수술용 도구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차를 몰 때면 나는 자주 조수석을 차지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처럼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망설임 없이 지껄이곤 했다.

아버지가 그런 아들의 손에 쥐어주는 것은 큐브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내게서 큐브를 빼앗아 사정없이 비틀었다. 이것을 다 맞추기 전에 돌아오마. 아버지는 그렇게 단언하고서 차 밖으로 나갔다. 3×3 큐브는 어린 아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가 마련한 시간을 버티는 기계였다. 처음엔 정말 그것을 다 맞추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왔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아버지가 돌아온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것을 풀어봤자 칭찬이나 선물 하나 없이 돌아오는 건 오직 아버지뿐이었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큐브를 맞췄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는 대로 내게서 다시 큐브를 빼앗아갔다. 내가 하루 종일 가지고 놀면 금세 큐브에 대한 흥미를 잃을까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큐브를 푸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큐브는 내게 너무나 쉬운 물건이 되어버렸다. 내가 여섯 면을 맞추는 원리를 완전히 터득해버린 까닭이었다. 그때부터는 큐브를 다 맞춰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거의 다 맞춘 큐브를 두세 번씩 다시 돌려놓고서 아버지가 오기 직전까지 완성을 미룬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때 나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은 큐브를 다 풀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안전벨트마저 풀어버린 적이 있다. 축사로 다가가자 아버지가 소의 가랑이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참 동안 소의 뒤꽁무니를 쳐다보던 아버지는 빨간 비닐을 팔뚝까지 뒤집어 쓴 채 소의 가랑이에 손을 쑤욱 집어넣고서 사정없이 휘저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송아지의 두 앞다리가 아버지의 손에 붙잡혀 산도를 빠져나왔다. 아버지는 미끌거리는 송아지 새끼를 쇠난간 위에 걸쳐놓고 주둥이를 사정없이 훑어 내렸다. 송아지는 혀를 빼물고 죽은 듯 늘어져 있다가 한참만에야 메에, 하는 새된 소리를 냈다. 신기했다. 어린 나에게는 무엇보다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 뒤로 심심할 때면 나는 큐브를 두고 소의 출산을 구경하러 갔다.

가끔은 역산이 돼서 송아지의 뒷다리부터 어미의 몸 밖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농장주에게 어미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한 뒤, 자신은 송아지의 뒷다리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달릴 때면 동아줄로 소의 발을 묶어 농장주와 한쪽씩 사이좋게 붙잡고 영차를 외치기도 했다. 소가 넘어지면 아버지는 몇 번이고 소를 걷어찼다. 일어나! 그리고 다시 실랑이. 소는 조용한데 호들갑을 떠는 것은 주로 아버지 쪽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와 더러워진 옷을 벗으면 나는 호스를 잡고 아버지의 몸 여기저기에 물줄기를 쏴댔다. 소의 오물 더미에서 한참을 뒹굴다 온 아버지의 몸에선 비릿한 흙냄새가 났다.

병원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서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표정이나 행색이 지나치게 수상해 보였던 걸까. 안에 있던 젊은 수의사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필요하신 게 있으세요? 나는 수의사에게 전에 이 병원 원장이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수의사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아버지의 제자라고 밝혔다. 그는 나를 반갑게 안으로 맞이했다. 아버지와 꽤 친분이 두터운 모양이었다. 나는 고향을 찾게 된 연유에 대해 말하면서, 혹시 금고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짐작 가는 게 있느냐고 수의사에게 물었다. 글쎄요, 동물을 마취하거나 안락사시킬 때 필요한 약품들을 거기다 보관하시지 않았을까요? 금고를 병원이 아니라 집에다 갖다 두신 이유는 알 수 없지만요.

아버지가 수의사 일을 그만두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소의 출산을 도우러 갔다가 그만 흥분한 가축의 뒷발에 얼굴을 얻어맞으면서였다고 했다. 목격자인 농장주 말로는 당시 아버지가 삼 분 정도 기절해 있었다고 했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다시 황소의 뒤꽁무니에 달라붙었다.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아버지는 껌껌한 소의 자궁 속을 한참 동안 더듬었다.

간신히 밖으로 빼내고 보니 송아지는 이미 죽어 있었다. 언제나 살아있는 새끼만을 꺼낼 순 없는 것이지만, 아버지는 상심했다고 한다. 농장주가 병원에 태워다주자 내리면서 면목이 없다, 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와 열두 살이나 나이 차가 나던 누나는 내가 열 살 즈음에 임신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다. 자꾸만 배가 커지는 누이를 보고 아버지는 당장 임신을 의심하며 누이에게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물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적 장애가 있는 누이가 어디서 함부로 강간을 당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 동네 남자들 얼굴이 차근차근 떠올랐다. 아버지는 기억나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대며 이 놈이냐, 저 놈이냐, 하고 누이를 닦달했다. 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선 아는 누군가가 딸을 범했다고 생각하면 아마 피가 열 번이고 더 거꾸로 솟구쳤을 것이다. 딸을 강간한 줄도 모르고 범인의 집을 찾아가 그 놈 소유인 암소의 출산을 도왔다고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기가 찼으리라.

한참을 섧게 울던 누이는 병원에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드디어 입을 뗐다. 누이의 입을 통해 밝혀진 전말은 뜻밖이었다. , 소예요 아버지. 잘못 했어요. 누이는 아이의 아버지가 소라고, 그야말로 자신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파시파에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이의 뱃속에 있는 것은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미노타우로스라도 된다는 말인가. 당장 작은 요람이 아니라 거대한 미로를 준비해놓아야 할 판국이었다.

누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누이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산부인과에서 의사는 누이를 진찰하더니 상상임신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까, 누이의 말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누이는 정말로 소가 아이의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윽박지르는 아버지 앞에서, 누이는 얼마 전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를 한 마리 보았다고, 그 소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연정을 품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소 새끼를 뱄다는 누이의 공갈임신은 삽시간에 동네에 소문이 났다. 누나의 배가 너무 많이 불러서 사람들의 눈총을 샀던 게 일차적인 탈이었고, 단단히 화가 난 아버지가 제 딸을 겁탈한 범인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던 게 결정적인 말뚝이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대대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우아하고 고고한 어머니는 어쩌면 그때 아버지와 헤어질 마음을 굳혔던 것일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수치를 준 남자와 남자의 딸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어서.

네가 올 줄 알았어. 면회를 갔을 때, 누나는 유리로 된 방범창 너머에서 싱글벙글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즐거워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로서는 누나를 만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누나가 이유에 상관없이 마냥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기에 나도 마지못해 웃어주었다. , 여기는 밥이 맛이 없더라.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니? 누나가 물었다. 그러게 왜 집에 불은 지르고 그랬어. 불을 지르긴 누가?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빽 소리를 질렀다. 집 곳곳에 시너를 뿌린 게 누나잖아. 왜 그랬어? 누나의 반응은 아랑곳 않고, 나는 계속 불을 지른 이유를 채근했다. 나는 안 그랬어. 진짜 안 그랬어. 누나가 고개를 외로 꼬며 말을 흐렸다. 나는 누나가 예전보다 더 형편없이 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 안 그랬다고 쳐. 누나, 아버지 금고 알지? 금고? 그러엄, 알지. 알다마다. 아버지가 거기에 뭘 넣어 두셨지?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궁금해하지 마, 큰일 난다 얘. 누나는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내겐 그것이 영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정말 궁금해서 그래. 누나가 거기에 아버지를 넣었다며? 누가 그러니? 당숙이 그러던데. 누나가 그렇게 말했다고. 내가 넣은 게 아니야. 아버지가 들어가신 거야. 누나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아버지가 눈을 실명하신 거 아니? 실명하셨다고? 소 뒷발굽에 차였을 때 그만 양쪽 시력을 다 잃어버리신 걸까. , 아무것도 안 보였어. 나 없이는 밥도 못 드시고 일도 못 보셨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몰라. 그러면서 누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나도 못 알아보고, 자기도 못 알아보고, 정말 아무것도 못 알아보셨어. 그런데 자꾸 불을 꺼달라고 하시대? 깜깜한 방안에서. 형광등을 꺼달라고 자꾸 그러셨다고. 눈이 따가우시다면서 도저히 잠을 못 자겠다고 그랬단 말야. 누나가 옷소매로 제 눈을 세게 비볐다.

그런데 금고에는 왜 들어가신 건데? 나도 몰라.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아버지가 금고 앞에 앉아 계셨어. 금고 앞에? . 한참을 그 앞에 앉아 계시다가 갑자기 엉금엉금 기어서 그 안에 들어가셨어. 기어 들어가셨다고? . 그걸 보고 내가 아버지, 뭐하세요? 뭐하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야. 여기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냐고. 그래서 들어가시게요? 하고 물었더니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하셨어. 그래서 네에, 고개 잘 수그리세요. 하고 뒤에서 밀어주었어. 누나는 흔들림 없는 눈을 하고서, 내게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 말이 맞았어. 진짜 거기에 몸이 딱 맞는 거야. 안에 들어 있던 건 어쩌고? 밖으로 빼놨어? 몰라, 뺐는지 그대로 뒀는지. 아무튼 아버지가 들어가실 여유는 충분했어. 그런데 아버지가 금고 안에 들어가고서 그러시더라고. 뭐라고? 문을 좀 닫아달라고. ? 추우니까, 문을 좀 닫아달라고 그러셨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누나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닫아달라고 하시기에 닫아드렸지. 당연한 거 아니니? 문을 닫아드리고 아버지 좋으세요? 했더니 참 좋다, 아늑하다, 그러셨어. 기가 막혔다. 누나는 도무지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걸까.

그걸 어떻게 열 줄 알고. 그건 방이 아니라 금고야. 금고 중에서도 홍채인식금고야. 아버지 눈이 열쇠라고. 아버지가 밖에서 눈을 대야 그걸 읽고 금고가 열리는 거라고. 아버지가 거기 들어가시면 아무도 그걸 열 수가 없어. 나는 누나에게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누나는 내가 뭐라고 떠들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죄수복 안에 손을 쑥 넣고서 몸 여기저기를 긁어대던 누나가 활짝 기지개를 켰다. 글쎄, 아버지가 열어달라는 말은 안 하시던걸.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온통 어르신들뿐이었다. 아버지의 도움을 빌리던 인근 농장주 몇몇이 볼이 푹 꺼진 얼굴을 하고서 득시글 모여들었다. 농사일에 치여 살면서도 어두운 외투 하나를 장롱에서 꺼내 걸치고 오는 여유쯤은 구비해둔 모양이었다. 내가 상주의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까 몇몇이 데면데면한 얼굴로 서툰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멀거니 쳐다보던 그들은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금세 소같이 순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걔중엔 나를 기억하는 듯한 이도 있었으나 나는 끝내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엔 함부로 말을 걸기 꺼리는 눈치더니 술을 좀 마시고는 나를 붙잡고 생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입은 내가 신부로 보이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다들 시시콜콜한 일화들을 고해성사처럼 풀어내는데, 종내에는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의사였는지를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동물 고치는 덴 아주 귀재였다니께. 동물 맴을 어뜨케 다 알아 듣구 그러코롬 강단지그 고쳐내는지. 여그 사람들 다 동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디 이 농촌 바닥에서 너그 아부지 없었으면 우린 진즉 망해브렸어. 그러면서 농장주 몇이 하얗게 튼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미칠 노릇이었다.

같은 얘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그 손바닥 위에 내 귀 두 짝을 가지런히 내려놓은 뒤 자리를 비우고 싶은 심정마저 치밀었다. 이제 겨우 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병풍 뒤에는 아버지가 없었지만, 모두 아버지의 혼령이 여기서 벌어지는 대화를 엿듣기라도 하는 듯 점잖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장국에 밥을 말아 먹고 막걸리를 돌려 마신 뒤 새벽녘이 되어서야 조용히 취해 돌아갔다.

장례식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내내 당숙의 집에서 머물렀다. 당숙 내외와 조카들은 홀대도 환대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나를 대했는데 그래서 차라리 마음 편히 그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거실 한복판에서 얼굴이 마주칠 때면, 당숙은 내게 여기까지 내려와서 고생이 많다고 했고, 나는 오히려 수고롭게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번번이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이런 인사치레 같은 대화들도 금고가 열리면 끝이었다. 조만간 금고업체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당숙과 나는 그 안에 아버지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를 바랐다.

장례식이 끝나는 마지막 날, 꿈을 꿨다. 까맣게 그슬린 아버지의 금고가 폐품처럼 앞에 놓여 있었다. 무릎걸음으로 그 앞에 다가가 살펴보니 문틈이 슬쩍 벌어져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틈 사이에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었다.

금고에는 큐브가 들어 있었다. 여섯 면이 모두 검은색이었다. 아무리 돌려도 풀 수 없고 어떻게 돌려도 완성되는 이상한 장난감이었다. 앞면과 뒷면을 붙잡고 한 바퀴를 감았을 때, 스르륵, 금고문이 닫혔다. 다시 열려고 했을 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두커니 금고를 바라보다가 아버지, 하고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자 노크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당선소감>

 

 등단이란 목적 위해 창작 고통 참으며 달려

 

 

  크리스마스 날, 스물다섯을 목전에 둔 내가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글을 쓰고 있다. 2015 을미년에 1991년생 양띠인 내가 등단하기까지 딱 24년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뒤 오직 등단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때로는 조급하게, 때로는 너무나 간절하게.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지독한 고민과 고독 속에서 나 자신과 맹렬한 사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힘든 일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창작의 고통이 곧 쾌락이다. 글에 미친 마조히스트처럼 고통을 만끽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소설을 쓴다.

 

  재학 중에 많은 훌륭한 분들을 만났다. 문학의 지평을 크게 넓혀주셨던 나의 정신적 아버지 황종연 교수님, 일학년 때부터 지금껏 쭉 성장기를 지켜봐주신 장영우 교수님, 항상 잘될 거라고 자상하게 격려해주신 이장욱 교수님, 소설 읽어달라고 귀찮게 따라다녔던 서희원 교수님,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않아주신 든든한 지원군 복도훈 교수님,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말해주신 김개영 선생님, 꾸준히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이갑수 오빠, 송지현 선생님, 축하해준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12 동기들, 선후배들, 모두 감사합니다. 대학 시절 내내 친자매처럼 지냈던 경란, 다원, 다영, 유안, 우리 늘 함께 가자. 엄마, 아빠, 딸이 잘할게. 울지 마. 그리고 사랑스러운 나의 성혁,흠잡을 데 없는 인격의 소유자인 네가 내 남자라서 너무 기쁘다. 마지막으로, 무수한 작품들 가운데에서 입체적 불일치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드리는 바다. 내 손을 벗어나 내가 없는 곳에서 꿋꿋이 살아남아준 작품에게도 고맙다.

 

 사익찬(24·본명 김다혜) 1991년 서울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3학년 재학중

 

 

<심사평>

 

소설 다루는 솜씨 뛰어나 다음이 더 기대돼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이들 작품을 놓고 선자들은 전반적으로 현실 환기력이 떨어진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소설이란 무릇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해 삶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장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파편적이고 모호한 장면의 나열에 그치면서 공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 세대의 왜소해진 의식을 반영한 것일까? 이상의 얘기들이 오간 끝에 터널’ ‘오늘의 날씨’ ‘숨바꼭질’ ‘입체적 불일치 네 편으로 압축해 놓고 다시 논의를 진행했다. ‘터널은 비교적 안정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다 후반부에 이르러 서사체계가 붕괴 되었다. ‘오늘의 날씨는 그 어조와 톤이 호소하는 여운에 시선이 끌렸으나, 막상 구체적인 주제 제시가 없어 모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바꼭질 입체적 불일치를 두고 선자들은 긴 시간에 걸쳐 논의를 거듭했다.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게 아니라, 어느 쪽도 당선이 주는 무게감을 지탱하기에 한 움큼씩 부족하다는 의미에서였다. 무려 1200여편이나 되는 응모작 중 단 한 편에 해당하는 소설이기에 더욱 까다로운 심정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숨바꼭질이 제외되었는데, 이 작품은 주제의식이 뚜렷한 데 비해 별다른 전술적 시도 없이 이야기가 수평적으로 흘러가면서 독창성이 결여된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입체적 불일치가 과연 단 한 편의 돌올한 소설일까? 심사가 끝나고 나서도 선자들은 의구심이 포함된 여운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설을 다루는 솜씨는 그중 뛰어났으나, 지나친 기교와 서사가 뒤틀리는 장면도 간간이 목격되었다. 또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끝내 지워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온전히 하회(下回)에 대한 뜨거운 기대 때문이었다.당선을 축하하며 부디 좋은 작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심사 : 최인석 윤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