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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바람의 노래 / 이은미

 


그냥 소리만 내지 말고 리듬을 타면서 우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문상객들의 마음도 자극하고, 먼 곳 가는 사람의 발걸음도 가벼울 겁니다. 창자가 끊어지듯 애절한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좀 부담스러워서 다들 싫어해요. 편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서 울면 됩니다.

힘을 많이 쏟으면 몸이 금세 지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남자는 자상하게 덧붙인다. 전화목소리가 따스하다. 남자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남자를 봐서라도 오늘은 좀 더 곡진하게 울어야할 것 같다. 외출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 검정 벨벳 투피스를 꺼낸다. 옷장 속에 함께 걸려 있던 정장 바지가 툭 떨어진다. 오늘따라 창문도 심하게 덜컹거린다. 십오 층 높이의 오피스텔 창문 앞을 황사가 가로막고 있다. 멀리 도로변 전봇대와 가로수 사이에는 오피스텔과 상가를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줄과 줄이 뒤엉켜 자꾸 윙윙 소리를 낸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외곽 지역의 오피스텔은 허허벌판에 웅크린 짐승처럼 고적하다.

작은 신음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 그녀에게 다가간다. 은주 씨, 오늘 뭐할 거야? 중얼거려 본다. 그녀의 눈동자가 설핏 움직인다. 당분간이야. 남편의 여자였던 그녀를 오피스텔에 들이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손쉽게 포획한 전리품 같았다. 임신중독증으로 부종과 당뇨가 겹친 뱃속에서 그녀의 아이이자, 남편의 아이는 한 줄기 빛도 쐬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녀를 돌보는 것이 복수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우연히 내 앞에서 쓰러졌을 때, 나는 헬스클럽 스트레칭 매트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중이었다. 그녀는 바로 옆자리 매트 위로 철퍼덕 소리를 내며 널브러졌다. 눈을 흡뜬 채,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낮 시간대라 헬스클럽의 실내는 한산했다. 당황한 트레이너는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떠밀리듯이 구급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출장 중이던 남편은 그녀의 핸드폰으로 걸었던 트레이너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어서 무연고였다. 졸지에 나는 그녀의 보호자가 됐다.

외출에 앞서 그녀에게 정해진 식사를 제공해야한다. 그녀는 후두에 구멍을 뚫어 튜브를 꽂고 있는 상태다. 환자용 영양액을 주사기로 빨아들인다. 치익. 목에 있는 거즈를 벗겨내고 튜브를 통해 주사기로 영양액 100CC를 주입한다. 의사는 후두에 구멍을 뚫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말했다. 혼수상태가 지속되어 식물인간을 면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보호자 동의서에 기꺼이 사인을 했다. 그녀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하지 않는가. 영양액이 흘러 들어가자 그녀는 감전이라도 된 듯 본능적으로 무릎을 세우려고 한다. 발가락, 손가락을 움찔거린다. 후두구멍을 통해 내려간 그녀의 생명줄이 보내는 신호일 것이다. 나는 50CC를 더 주입한다. 150CC가 한 끼 적정량이다. 가제 수건으로 그녀의 후두구멍 주위를 닦아내고 소독한 거즈를 덮는다. 흘러내린 침이 손에 달라붙어 끈적거린다. 나는 수건에 따뜻한 물을 묻혀 그녀의 얼굴을 닦기 시작한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눈자위는 검붉게 변색되어 있다. 날렵한 콧날은 사라졌다. 깊게 함몰된 뺨과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입술을 가만가만 닦는다.

은주 씨.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남편이 무수히 불렀을 은주라는 이름을 나는 아주 메마른 어조로 부른다. 그녀의 입술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속으로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녀의 옆구리를 들어올린다. 악취가 번진다. 먹자마자 배설을 하는 그녀. 나는 기저귀를 갈지 않는다. 그녀의 양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진다. 후두구멍에서 글그렁거리는 소리도 새어나온다. 그녀가 쏟아낸 배설물을 꼭 제 때에 치워야할 의무는 내게 없다. 그녀도 내가 자기를 항상 뽀송뽀송하게 해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꺼내놓은 벨벳 투피스를 입는다. 검정 스타킹은 어울리지 않는다. 비둘기색에 살짝 금사가 섞인 스타킹을 신는다. 머리에는 검은 베일을 덧쓸 것이다. 베일을 개서 가방에 집어넣는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귀에다 입을 바짝 댄다.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그녀의 눈꺼풀이 순간적으로 깜박거린다.

오늘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세 번째 우는 날이다. 장례식장은 아담하고 정갈하다. 영정 속의 남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중국에서 섬유업을 하던 남자는 칠 년을 넘게 공들여 지어놓은 공장을 순식간에 중국 관리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중국 공안과 같이 들이닥친 관리는 공장 터에 큰 길을 닦아야 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만을 했다. 남자가 체결했던 이십 년 임대계약서는 휴지조각이 됐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남자는 자동차를 몰고 무작정 사막으로 향했다.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객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남자의 사체는 모래구덩이에 반쯤 잠겨 있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 목구멍으로 치미는 눈물의 뿌리를

자르지 못해 꺽꺽대며 겨우 대답한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여자처럼 처연하게 울고 싶어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매번 얼굴은 눈물 범벅이다.

목이 쉬어서 울 수가 없어요. 제 대신 목청껏 울어주세요. 허무하게 가 버린 사람, 원이나 없게요.

미망인은 내게 빨간딱지가 붙은 드링크제를 건네주면서 담담하게 말한다. 슬픔의 뿌리가 가슴 속에 단단하게 얽혀 있는 듯하다. 미망인의 앞이마에 터럭 같은 흰머리가 삐쳐 나와 있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겉늙어 보인다. 칭얼거리던 아이가 미망인의 상복 고름을 잡아당겼다. 미망인은 옷섶을 여미며 아이를 안고 영안실 뒷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가방에 넣었던 베일을 집어 든다. 검은 베일을 뒤집어쓰자 영안실이 어둠 속에 잠긴다. 드문드문 보이는 문상객들이 베일을 쓴 내 모습을 흘깃거린다. 그들은 주춤거리며 선뜻 영정 앞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배를 힘껏 부여잡는다. 신호를 내기 전에 배가 먼저 감지한다. 뱃속이 타오르는 듯 홧홧해진다. 횟배 앓는 사람처럼 서서히 배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뱃골을 타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울음을 게워내기 시작한다. 울음소리는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곡진하게 흘러나온다.

우연히 인터넷 사이트에서 곱게 치장한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꽃을 머리에 단 그녀의 표정은 슬픔과 희열이 뒤범벅이 된 기묘한 표정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알 수 없도록 눈물로 치장한 그녀의 얼굴이 부러웠다. 나도 그런 얼굴을 지니고 싶었다. 그 일 이후로 매일 넘쳐나는 내 눈물을 팔고도 싶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그냥 울어주는 것, 소리를 높이 내어 울어주는 것,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어주는 것. 곡소리에도 일정한 룰이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곡소리가 폭포수처럼 몰아칠 때, 곡소리가 백 미터 전방을 넘나들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곡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리며 슬픔에 휩싸일 때. 여러 분류가 그럴 듯하게 묘사되었다. 나는 곧바로 울어주는 아르바이트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당신은 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같군요. 내 얼굴을 훑어본 남자는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했다. 남자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안 해 본 것이 없었지만 울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그런대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람 찾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사람을 찾아도 설득하기가 힘들고 험한 일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미망인이다. 눈초리가 살짝 들려 있다. 곡소리에 가속도가 붙어 멈추기가 힘들었다. 목을 외로 조금 꺾어본다. 미망인은 내 앞에 풀썩 앉더니 손을 들어 내 베일을 살짝 위로 올린다. 베일 속에서의 나는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보기 흉한 모습일 것이다.

제가 힘들어서 부탁을 하긴 했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서……. 아무래도 제가 실수한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해도 자꾸 물어봐서 곤란하니까 그만 우시는 게 좋겠어요.

알았어요.

나는 아직 목구멍으로 치미는 눈물의 뿌리를 자르지 못해 꺽꺽대며 겨우 대답한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여자처럼 처연하게 울고 싶어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매번 얼굴은 눈물범벅이다. 차마 고개를 들기가 창피하다. 미망인에게 고개만 주억거린다. 뭐 하는 여자야. 상가를 나서는 내 등 뒤에 수군거림이 이어진다.

나는 휘적휘적 상가를 빠져나와 아래층 대기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온다. 대기실 입구에 설치된 티브이 모니터에서 황사주의보를 알리는 기상캐스터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다. 병원 현관 입구에 바람이 휘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열려진 문틈으로 황사가 와락 들이닥친다. 대기실을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의 검거나 흰 치마가 들썩거린다. 나는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몸을 피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먼지를 옴팍 뒤집어쓴다. 눈에 이물질이 낀 듯 시야가 부옇다. 눈이 따끔거리면서 미처 튀어나오지 못한 울음이 조금씩 목구멍을 타고 입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대기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그날도 황사가 심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황사주의보가 기상캐스터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전날 오전부터 몽고 고비사막에서 발생한 황사가 대륙고기압 확장에 따라 서해 북부 해상을 거쳐 한반도 내륙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이가 자꾸 채근하는 바람에 남편과 나는 황사주의보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에 가야 했다. 놀이공원은 아이를 대동한 사람들로 가득 차 발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부유하는 먼지가 진군하는 병정들의 말발굽 사이에서 길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만화캐릭터 같이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놀이공원의 경사진 언덕길 입구, 조붓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바로 옆 새장에서 극락조가 무지갯빛 날개를 펼쳤다. 원앙 한 쌍이 서로의 꽁지를 애무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무동 태운 채 아이의 팔을 새처럼 활짝 펴들고 빙빙 돌았다. 아이는 온전히 남편의 차지가 되었다. 부자의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아련하게 펼쳐졌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솟았다. 더도 덜도 아닌 내가 원하던, 내게 꼭 알맞은 행복감이었다.

퍼레이드가 시작된다는 장내 멘트가 단속적으로 흘러나왔다. 퍼레이드 선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노란 선이 순식간에 남편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이를 무동 태운 남편의 모습이 휘황한 마차의 뾰족한 장식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이 퍼레이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라졌다가 불쑥 떠오르곤 했다. 아이가 안보이면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불행의 전조였다. 퍼레이드 막바지에 발리댄스를 추는 무희들의 마차가 등장했다. 율동 중에 한 사람의 베일이 벗겨져 공중을 떠다니더니 내 발치에 너울거리며 내려와 앉았다. 나는 베일을 손에 쥐고 행렬을 따라갔으나 인파에 치어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그 대신 내 손에는 검은 베일이 쥐어져 있었다.

퍼레이드 행렬이 끝났다. 아이는 하늘을 나는 코끼리기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긴 막대모양의 과자도 먹고 싶어 했다. 아이만 탈 수 있는 하늘을 나는 코끼리를 타러 나무계단을 오르던 아이는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나를 향해 두 손을 팔랑팔랑 내저었다. 남편은 아이가 나오는 출구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잠시 후, 막대 과자를 손에 쥔 내가 아이와 남편을 찾았을 때,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출구에서 기다렸지만 아이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분명히 파란 코끼리 날개를 만지며 공중에서 손을 흔들었노라고 말하며 남편은 울먹거렸다. 미아보호소, 방송실, 놀이공원의 각종 놀이시설 구석구석을 뒤졌으나 아이는 없었다.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황사가 아이를 집어삼킨 것은 아닐까. 사막으로 아이를 데려간 것일까. 그 이후, 더 이상 지상에서 아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핸드폰이 울린다. 남편이다. 이혼 서류를 보냈지만 남편은 아직 법원에 접수조차 시키지 않은 상태다. 장기간 출장을 갔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다고 말한다. 당신 요즘, 어때.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남편의 목소리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아이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살아온 과정을 다 잘라내야 했다. 그 중심에 남편이 있었다.

우연히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중에 옆에서 전화하는 여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녀는 사이클링을 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자기야? , 배가 불러와서 이제 운동하기가 점점 힘들어져. 그래도 애기가 나올 때까지 운동은 조금씩 해둘 거야.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왠지 매력적인 여자. 분명히 나는 그녀와 서너 번 정도 마주친 적이 있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릴 때, 거울에 반사되는 그녀의 다부진 몸매를 망연히 바라보기도 했었다. 여자가 사이클링 자세를 바꾸려다가 손에서 핸드폰을 놓쳤다. 여자의 핸드폰이 떨어지면서 액정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었다. 남편과 그녀가 어깨를 마주하고 활짝 웃고 있었다. 핸드폰은 내 엄지발가락을 툭 건드리고 납작 엎드렸다. 발톱이 빠질 듯 아팠다.

남편과 나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남편의 늦은 귀가나, 이른 새벽의 출근에도 나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사소한 일조차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는 수저와 젓가락의 딸그락거림 같은 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녀의 배를 바라보았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임신 육 개월쯤 되셨나 봐요. 나는 사이클링을 멈추지 않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즘 부쩍 숨이 찰 때가 많아요. 어렴풋한 그녀의 뒷말을 들으며 나는 사이클링의 속도계를 최대속도로 올렸다. 속도계가 올라갈수록 내 발에 박차가 가해졌다. 발이 공중에 붕 헛돌았다. 남편은 내가 헬스클럽을 이용하기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오고 있던 터였다.

남편은 한번 만나자고 말한다. 나는 집에 홀로 남은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에게 오늘 한 끼의 영양액을 주었을 뿐이다. 그녀의 배는 움푹 꺼져 있을 것이고 엉덩이는 배설물로 짓이겨져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녀는 누런 물똥을 싸기 시작했다. 누런 물똥은 그녀의 엉덩이에 물컹거리는 이물감으로 자리 잡아 엉덩이를 헐게 만들고 벗겨진 살갗에 잡균을 퍼뜨릴 것이다. 욕창이 생겨 그녀의 등허리는 썩어 들어가고 그녀의 골반 뼈에 기어 들어간 잡균은 그녀의 전신을 마비시킬 것이다.

엄밀히 말해 나는 그녀의 보호자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를테면 그녀에게 한 두 차례 영양액을 밀어 넣어주고 젖은 기저귀를 가끔씩 갈아 주고 일주일에 한번 시트를 갈아주는 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 이외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도 않다. 아참, 그녀의 뚫린 목구멍으로 튜브를 넣어 가래를 빼내는 일을 잊어버렸다.

석션은 보통 하루에 세 번 정도는 해주어야 호흡하기가 수월하다. 가래가 가득 차오르면 먼저 기도가 막힌다. 가느다란 기관지로 한꺼번에 몰려온 가래가 그녀의 호흡을 중단시킬 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남편에게 대답한다. 오늘 시간 낼게. 오피스텔 부근에서 약속을 정한다. 남편은 오피스텔의 대략적인 위치만 알고 있다.

오피스텔은 원래 쌍둥이 건물처럼 지으려고 하다가, 건축업자가 부도를 내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바로 옆에는 한동안 장막이 쳐져 있었고 땅을 파던 굴착기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굴착기가 사라진 곳에는 꽤 깊게 패인 웅덩이와 그 웅덩이에서 뱉어낸 흙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다. 간혹 술에 취해 그 웅덩이에 빠진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아이가 사라진 후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남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오피스텔 계약을 하고 입주를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내 앞에서 벼락을 맞듯 넘어졌고 남편은 한동안 방황하는 듯 보이더니 오랜 기간 출장을 떠났다.

오피스텔 옆 공터에는 밤이 되면 주홍빛 휘장을 두른 포장마차가 들어선다. 간혹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국수를 먹는다. 아직도 분양중이라는 현수막을 내건 부동산업자들이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들기도 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그들의 안주거리가 되기도 한다. 남편은 주홍빛 포장마차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입은 검은 색 투피스를 보고 놀라는 눈치다.

당신, 검정색 싫어했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금 열린 포장마차 휘장을 통해 그녀가 누워 있는 오피스텔 위치를 가늠해 본다. 그녀의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듯하다.

빨리 서류를 처리해주면 좋겠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은 술을 입으로 털어 넣는다. 여전히 남의 말에는 무관심한 척하는 그 사람 특유의 행동이다.

요즘 생활은 어떻게 하지? 내 돈도 안 받잖아.

나 아르바이트 해. 실컷 울 수 있는 아르바이트.

그런 아르바이트가 있나? 놀랍군. 하기야 사람 찾아주는 직업도 있으니까.

누구 찾을 사람이라도 있어?

나도 모르게 꼴딱 침을 삼킨다. 나는 그녀를 보호하고 있을 뿐이니까. 괜찮다.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져서 말이야. 감쪽같이.

담담한 어조로 말하지만 남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다. 쥐고 있던 술잔이 흔들린다.

나도 감쪽같이 없어진 내 자식을 찾아 헤매고 있어. , 여자를 찾고 있다고?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가?’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에 저절로 경련이 일어난다. 바로 앞에 얼굴을 드러낸 남편의 붉게 충혈 된 눈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남편이 손을 내밀어 내 뺨을 어루만지려 한다. 나는 남편의 손을 밀어낸다. 누워 있는 그녀의 혼몽한 눈이 떠오른다. 가래가 끓고 있을 그녀의 목구멍. 무안해진 남편의 목구멍으로 꿀컥꿀컥 술이 넘어간다.

그녀가 떨어트린 핸드폰 액정화면에서 남편의 모습을 본 이후에, 나는 아이가 사라진 시각, 남편의 통화내역을 알아보았다. 남편은 아이가 하늘을 나는 코끼리기구를 타고 손을 흔들던 그 시각에 그녀와 통화를 했다. 십 분. 십 분 정도면 놀이 기구가 멈추고 아이가 출구로 나올 시간으로 충분했다. 출구에서 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엄마 아빠를 찾는 시간은 단 몇 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막대 과자를 사기 위하여 줄을 선 채로 아이와 남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을 때도 남편은 통화중이었다. 내가 길게 늘어 선 줄을 헤집고 막대 과자를 사들고 오기까지 십오 분 정도가 걸렸다. 내가 자리를 뜨자마자 남편은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핸드폰 벨이 울린다.

아이래요, 여섯 살짜리. 오늘 낮에도 힘들었는데……괜찮겠습니까? 아이 엄마는 혼절해 있고 어른들도 그렇고. 특별히 울어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내일 바로 화장할 거라는데.

남자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 있다. 핸드폰에서 새어 나오는 남자의 음성이 들린 탓인지 남편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딴 놈이 생긴 게로군. 어쩐지.

남편은 벌떡 일어나 포장마차 휘장을 걷으며 휘청휘청 걸어 나간다. 나도 곧바로 일어나 돈을 계산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간다. 남편은 공사장 주변에 쌓아놓은 흙더미를 발로 차며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이윽고 허리를 꺾더니 끅끅 토사물을 뱉기 시작한다. 나는 남편의 등을 쳐 주려고 손을 내밀다가 이내 손을 접는다.

아이가 사라진 그 십 분의 시간을 그녀와 통화하느라 아이를 놓친 남편.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녀의 보호자가 된 것도 다 우연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내 오피스텔에 누워있다. 사지가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짐승처럼. 나는 오피스텔을 올려다본다. 불이 켜진 창문이 별로 없다. 그녀가 누워 있는 십오 층의 창문에도 휑한 달빛만 무리지어 있다. 물론 그녀도 어둠 속에서 입술을 달싹거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은 음식물을 토해내면서 무릎을 꺾은 채 흙더미 위에다 머리를 박고 있다. 내가 다가서자 남편은 반사적으로 내 팔을 부여잡는다. 엉겁결에 나는 남편의 어깨를 힘껏 밀어낸다. 남편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넘어진다.

남자는 병원 로비에 나와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나를 향해 웃는다.

오늘은 말하자마자, 재까닥 왔군요. 항상 까다로웠잖아요. 불러내기가 어찌나 힘들었는지. 남자를 원하면 나라도 목청껏 울고 싶은데, 아직 남자를 찾는 상주는 없군요.

저번에 어떤 광고를 보니까 음대 나온 남자를 채용한다고 하던데요. 성량이 풍부하고 정성이 담긴 울음으로 장례식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천천히 바라본다.

이제 보니 말도 잘하시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아왔을 때는 울려고 아예 작정한 사람 같았는데. 허허.

남자가 말끝을 흐리며 웃는다. 남자와 이야기를 오래 나눈 것은 처음이다. 남자의 전화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느꼈던 정겨움이 되살아난다.

아이는 여섯 살 정도의 여아다. 소아암에 걸렸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는데 응급처치를 했지만 끝내 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영안실 주변은 조용하고 한산하다. 아이의 엄마는 영안실 뒤쪽 방에 실신한 채 누워있다고 했다. 영정사진 속 아이는 돌쟁이다. 어릴 때부터 아프기 시작한 아이의 유일하게 아프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눈을 두릿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갈 곳 잃은 천사 같다. 아이의 영정사진 밑에 얼룩이 묻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나는 휴지를 꺼내 침을 묻혀 얼룩을 지운다. 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고 점점 더 번진다. 모래바람이 불어 닥치듯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갑작스레 목구멍이 타 들어가는 것 같다.

장례를 치러줄 수도 없는 내 새끼. 사라진 내 새끼. 가슴께가 홧홧 타오른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면 이럴까. 뜨거워 견딜 수 없다. 나는 검은 벨벳 윗옷을 벗는다. 가슴팍을 부여잡는다. 너무 뜨겁다. 가슴을 쥐어뜯다가 손으로 바닥을 쾅쾅 내리친다. 급기야 바닥에 널브러진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나를 일으켜 세운 뒤 남자는 내 옆에 벗어놓았던 옷을 챙기기 시작한다. 남자가 내 팔을 옷에 꿰어 넣느라 안간힘을 쓴다. 나는 비로소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마에 땀이 배어 있다. 남자는 아이의 가족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나를 부축하고 상가를 빠져나온다. 어깨를 감아쥔 남자의 손이 따뜻하다.

왜 오늘은 베일을 쓰지 않았죠? 베일을 쓸 때는 씩씩해 보이고 울음소리도 듣기 좋았는데. 마치 성스런 의식을 행하는 사람 같았거든요.

장례를 치러줄 수도 없는 내 새끼. 사라진 내 새끼.

가슴께가 홧홧 타오른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면

이럴까. 뜨거워 견딜수가 없다. 나는 검은 벨벳

윗옷을 벗는다. 가슴팍을 부여잡는다. 너무 뜨겁다.

남자가 내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남자는 나를 보듬듯 안고 밖으로 나와 차로 향한다. 히터가 켜진 차 안은 따뜻하다. 남자가 눈물 자욱이 채 마르지 않은 내 얼굴을 부드러운 손으로 감싸 안는다. 남자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뺨에 닿는다. 눈을 감은 순간, 황사가 내 머리채를 힘껏 휘어잡는다. 나는 남자를 밀쳐낸다.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남자는 구석구석 온 몸에 퍼져있는 내 눈물의 뿌리를 탐색하는 것 같다. 나는 남자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남자가 오피스텔 입구에 나를 내려놓으며 잘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눈물을 닦아 주던 감촉이 아직도 내 뺨에 남아 있다. 나는 뺨을 손으로 감싼다. 누군가 내 눈물을 좀 더 일찍 닦아줬더라면. 나는 문득 남편이 빠졌던 웅덩이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둠이 깊게 깔려 있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갖고야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기어 올라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비명을 질렀을까. 남편의 비명이 오피스텔 십오 층 그녀의 귓가에도 들렸을까.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허공 어딘가에서 서로 뒤엉키진 않았을까.

오피스텔 번호키를 꾹꾹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현관 인공감지등이 켜짐과 동시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실내에 악취가 진동한다. 인기척 소리에 눈을 치켜뜬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잔뜩 원망에 찬 시선이다. 그녀가 누워 있는 침구는 겹겹이 접혀 있다. 온 힘을 다해 움직거렸을 그녀의 시위는 겨우 자기 육신이 깔고 누운 침구를 조금 흩트려 놓았을 뿐이다.

하루 종일 잘 지냈어요? 나는 상냥하게 인사한다. 그녀의 몸을 질질 끌어 냄새나는 매트 위에 똑바로 올려놓는다. 남편을 만나느라고 좀 늦었어요. 내 남편이요, 잃어버린 아이의 아빠. 당신은 임신중독증으로 아이를 잃었지만 나는 불과 십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아이를 잃었어요. 그녀의 옆구리께로 다가가 손을 집어넣는다. 그녀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가래 끓는 소리가 모닥불 지피는 소리처럼 탁탁탁 분절되어 들린다. 검불같이 삭은 그녀의 몸뚱아리. 어쩌면 후두에 구멍을 내지 말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의사는 말했다. 후두에 구멍을 내는 것은 전적으로 보호자의 의견에 달려 있는 거라고. 나는 의사의 눈빛에서 그녀의 목을 뚫어야만 한다는 강렬한 의지를 느꼈다. 그녀의 임시 보호자였기에 동의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녀의 눈자위에 경련이 인다. 가래가 거의 목구멍까지 가득 차오른 듯 그녀는 숨을 헐떡인다.

누군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쿵쾅대는 울림에 놀란 그녀가 달팽이처럼 몸을 오므리는 시늉을 한다.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남편의 목소리다. 웅덩이를 빠져 나온 후 오피스텔 주변을 배회하다가 내 뒤를 밟기라도 한 걸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오피스텔 복도 끝에 웅크린 동물 같은 그림자를 보긴 했다. 남편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아니 남편이었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헐렁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이제 두려운 것은 없다. 흡입기계를 꺼낸다. 손에는 비닐장갑을 꼈다. 전원을 올린다. 기잉. 튜브가 펴지면서 기계도 따라 그 몸을 길게 늘어뜨린다. 똬리를 틀었던 뱀이 스르르 몸을 푸는 형상이다. 기계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온 몸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난다.

나는 그녀의 후두구멍으로 십 미리 미터 굵기의 튜브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 넣는다. 가래는 순식간에 튜브에 가득 빨려 들어온다. 그녀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다. 나는 튜브를 그녀의 목구멍에서 빼내고 준비한 그릇에 가래를 털어낸다. 가래의 모양이 꾸물거리는 벌레 같다. 다시 그녀의 목구멍으로 튜브를 집어넣었다가 빼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녀의 얼굴이 백랍처럼 창백해진다. 석션을 할 때의 느낌은 힘센 남자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목을 하루에 두 세 번씩 조르는 셈이다. 두 세 번씩 그녀의 목을 쥐락펴락 조르는 일이 그녀의 목숨을 부지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남편은 계속적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현관문에 몸을 내던지는지 퍽퍽 소리가 벽면까지 울린다. 거기 있는 것 다 알아. 남편은 또 한 번 외친다. 남편답지 않은 목소리다. 그녀가 숨을 할딱거린다. 실낱같은 숨이다. 이물질로 가득한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숨소리는 나까지 밭은 숨을 내쉬게 만든다. 어둠 속을 지나가는 바람이 창문을 흔든다. 그녀의 가래 끓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뒤섞여 사막의 거대한 돌풍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듯하다. 나는 흡입기계의 전원을 끈다. 그녀의 출렁거리던 가슴께가 잦아든다. 등 뒤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차츰 잦아든다. 더 이상 내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렁거리던 그녀의 가래 끓는 소리만이 이명처럼 남는다. 나는 가만히 서서 십오 층을 휘돌아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이윽고 현관문을 열었다. 남편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문에 들어서자마자 앞으로 무너지듯 무릎을 접는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 남편이 울기 시작한다. 나는 생전처음 남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이를 잃은 후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남편의 우는 모습을 나는 망연히 바라본다. 남편의 울음소리에 그녀의 글그렁거리던 숨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녀는 아직도 숨의 꼬리를 잡고 있는 걸까. 나는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오피스텔 복도 막다른 곳에 이르러 창문을 열었다. 창문에 매달려 아우성치던 황사가 와락 얼굴을 뒤덮는다. 나는 품속에서 베일을 꺼내 넘실거리는 황사를 향해 힘껏 던졌다. 베일은 새처럼 공중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시야에서 천천히 사라져갔다. 나는 창문을 닫고 비상구를 통해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마지막 계단에 발을 내딛었을 때 황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



<당선소감>

 

소설은 내게 삶의 미로이자 실타래올곧게 나갈 것

 

  시리고 시린 가슴이 뻥 뚫립니다. 허허로운 사막을 홀로 걷다가 신기루를 만난 느낌입니다. 가장 힘들고 처절할 때 보물처럼 찾아온 귀한 낭보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타래를 생명줄처럼 부여잡은 테세우스가 미로를 탈출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소설은 제게 삶의 미로이자 실타래였습니다. 그런 양면성이 저를 오랫동안 소설 곁에 머무르게 한 것 같습니다. 테세우스는 미로를 빠져나온 후 아리아드네를 버렸다고 합니다. 소설은 그렇게 피하고 싶은 천형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저는 그 미로 속을 헤맵니다. 어디선가, 제게 툭 던져질 실타래를 놓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말입니다.

 

  창문을 열면 눈꽃이 만개한 길이 보입니다. 그 길 위에 수없이 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가만히 뒤돌아보면 하나였다가 둘이였다가 뭉크러지고 짓밟히고 뒤섞인 많은 발자국들이 보입니다. 이젠 남겨진 발자국을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발자국의 모양을 신경 쓸 나이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과 사막을 걷고 있는데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던 사막에 어느 새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황망해진 그 사람은 왜 나만 홀로 남겨 두십니까하고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네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너를 업고 걸어왔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나를 업고 걸어오신 예수님처럼 묵묵하고 올곧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 동반자 역할을 할 든든한 소설이라는 빽도 생겼으니까요.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항상 든든한 지원군 역할, 앞으로도 평생 부탁합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조금 늦은 나이지만 열정만큼은 물 만난 고기처럼 항상 파닥파닥 숨죽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도록 증명해보이겠습니다.

 

[약력-이유미]

-201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2011년 목포문학상 동화부문 당선

 

 

<심사평>

 

상징물의 위트·스토리텔링에서 높은 점수 받아

 

  단편소설은 뚜렷한 주제 하나를 단순하고 통일된 사건으로 압축해 인생의 단면을 극명히 표현해야 하므로, 간결 정확한 문장, 설령 비극을 이야기할지언정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해학적 여유로움, 세상만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결말의 반전(反轉)이 요건이다.

  이것은 체홉, 모파상, 헨리 같은 대가들이 예전에 이미 정립해놓은 단편문학의 정석인데, 신진들 작품에서 이런 맛깔스런 소설미학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지 모르겠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아홉 편은 각각 나름의 개성과 자질이 엿보이지만, 이 중에 소설적 완성도가 비교적 높은 <금요일의 남자> <바람의 노래> 두 편을 일단 골랐다.

  <금요일의 남자>는 평범한 정년퇴직자가 후쿠시마원전 폭발사고를 계기로 방사능 오염공포에 민감해져 회복불능 정신병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아내의 안타까운 시선을 통해 추적한 작품인데, 그 갑작스러운 병적 심리악화의 필연성이 납득되지 않아 아쉽다.

  <바람의 노래>는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잃고 파경에 든 별거부부의 후일담이다. 아이 실종이 남자가 내연녀와의 통화에 몰두한 부주의 때문이고, 곡비(哭婢)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는 식물인간이 된 그 내연녀를 자기 오피스텔에 숨겨 가학적으로 돌보며, 이 사실을 알아버린 남편의 경악과 절망이 작품의 큰 틀을 이루고 있다.

  복잡한 구성과 사건 연결고리의 작위가 껄끄러우나, 황사와 검정베일을 상징물로 배치한 위트, 소설의 첫째 덕목인 스토리텔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꾸준한 정진을 당부한다.

 

[약력-손영목]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현대문학작가상, 한국문학상 등 수상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