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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담장 / 정정화

 


담장 너머 앞집에는 굴착기가 기와집을 뭉개고 있었다

내가 집을 새로 지은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예전 우리 터였던 곳 찾아서 담을 칠거니 그리 아세요

아제가 돈 받고 내놓은 땅인데 지금 글카면 우짜능교?”

 

귀를 찢는 듯한 쇳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이 흔들리고, 바닥에서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불편한 손님을 맞이한 주인같이 언짢아졌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담장 너머 앞집에는 굴착기가 기와집을 뭉개고 있었다.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하더니 드디어 공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소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스레 들렸다. 소들은 누웠다가 내가 들어가면 무거운 몸동작으로 천천히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따라 큰 눈을 끔벅이며 모두 일어서 있었다. 암소 여덟 마리에 수송아지 두 마리가 내가 키우는 소의 전부다. 그중 몇 놈은 습관처럼 꼬리를 올려 좌우 등짝을 탁탁 쳤다. 짚을 먼저 주고 바가지에 사료를 퍼서 구유에다 부었다. 소들이 우적우적 씹는 소리를 냈다. 늘 들어도 맛있는 소리다. 소의 분뇨냄새가 아침 공기를 타고 콧속을 파고들었다.

 구제역 때문에 키우던 소와 돼지를 모두 땅에 묻고 새로 시작하기까지 힘든 고비를 넘었다. 매끼마다 맞닥뜨리던 놈들을, 멀쩡하게 눈을 끔벅이는 놈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두 번 다시 짐승을 키우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배운 일이 그것뿐이라 다시 소를 키우게 됐다.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소는 죽여서 매몰을 했지만 돼지는 산 채로 묻었다. 굴착기로 구덩이를 파고 수백 마리의 돼지를 집어넣는다. 굴착기에 달린 차갑고 두꺼운 쇳덩이가 돼지를 구덩이로 밀어 떨어뜨린다. 처음엔 땅을 짚고 서 있던 돼지들이 숫자가 늘어나면서 서로 올라서려고 짓밟으며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른다. 틈 없이 빽빽해지자 돼지들이 앞발을 들고 사람처럼 기립 상태로 절규한다. 돼지들의 귀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아비규환을 방불케 한다. 죽을 힘을 다해 다른 돼지를 밟고 올라서지만 계속 떨어지는 돼지들에 의해 결국 압사당한다. 맨 위의 돼지들 역시 흙에 덮여 죽는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잊히지 않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굴착기의 진동이 텅 빈 돈사를 뒤흔드는 바람에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앞집으로 가는 길, 우리 집과 경계인 담과 길 쪽으로 난 담벼락에 담쟁이들이 무성했다. 푸른 잎들이 아침 이슬을 머금고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얼기설기 무리를 이루고 뻗쳐나가는 게 씩씩한 군인 행렬 같았다. 작은 흡착근이 벽에 딱 붙어서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릴 적엔 영남 형과 함께 담쟁이잎 아래의 줄기를 가지고 눈꺼풀에 끼워 눈을 크게 만드는 장난을 치곤 했다.

 쌍꺼풀진 눈이 유난히 동그란 형수가 입을 야무지게 다물고 팔짱을 낀 채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들어섰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의 영남 형이 눈가에 굵은 주름을 잡으며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인자 드디어 새 집을 짓는갑네.”

 , 동생 왔나? 나야 뭐 그대로 살아도 괜찮은데 집사람이 불편해서 살 수가 없다니 별 수 있나.”

 영남 형이 아쉬움과 설렘이 뒤섞인 듯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먼지가 날리며 한쪽에 남아 있던 망와가 풀썩 내려앉았다.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을 바라보니 지난날 팔작지붕을 자랑하던 위풍당당한 모습이 생각났다. 영남 형네는 마을에서 늦게 집을 새로 짓는 축에 속했다. 기와집이 여느 집보다 크고 깨끗해서 다른 집에 비해 느지막이 양옥으로 바꿀 마음을 낸 것이다. 그것도 형이 형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새로 지을 마음이 없다고 얘기하곤 했다. 형은 사람 좋고 착실했지만, 혼처가 나서지 않아 마흔이 넘도록 노총각으로 있다가 3년 전에 형수를 만나 가까스로 결혼했다. 형수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둔 이혼녀로 형이 자주 가는 식당에서 만났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영남 형 집에서 많이 놀았는데 형이 쓰던 작은방과 대청마루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다. 작은방에서 주로 만화책이나 잡지 같은 흥미를 끌만한 것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햇살이 실처럼 빛을 뿌리던 대청마루에서 딱지치기도 하고, 윷놀이도 하고, 잘 놀다 뜬금없이 싸워서 코피를 쏟기도 했다. 기억의 한 편에 자리잡은 애틋한 추억들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서 쉬이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하루 만에 아래채만 남기고 텅 비어버린 공간을 보며 현대적인 장비가 사람이 할 수 있는 몇 사람 몫의 일을 순식간에 해내는 점에 새삼 놀랐다. 소여물을 주려다가 일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궁금해서 앞집으로 향했다. 가다보니 헐어버린 담벼락 터에 줄기를 잃어버린 담쟁이 밑동이 서너 장의 잎을 매단 채 떨고 있었다. 시골 담벼락에 운치를 더하며 영화를 누리던 날도 어제의 일이 되었다. 담쟁이가 잘려나간 흔적을 보니 앞집에 가보려던 마음이 싹 달아났다. 우리 집 외양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외국산 쇠고기 수입이 늘어나고, 구제역의 여파로 소값이 많이 떨어졌다. 소를 키워도 인건비와 사료비 충당이 어려운 실정이지만 특별한 대안이 없어 이제나저제나 키우고 있다. 소값은 떨어져도 한우의 고기값은 떨어지지 않아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에 대해 문제삼는 일은 흔치 않았다. 언론에서 한 번씩 떠들었지만 어느 순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농사가 천직이라며 살아온 세월이지만 농민의 삶은 도박하는 사람처럼 굴곡이 심하였다. 고추, 양파, 배추도 가격변동이 심했다. 수확도 안 한 배추를 그대로 갈아엎는 농가가 속출했다. 흙과 함께 찢겨져 뒤섞이는 배추를 보면 속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농사지으면 배는 안 곯는다 했는데 요즘엔 아차 하면 빚더미에 앉기 쉬웠다.

 비오는 날 빼고 여름 한 달 내내 집짓는 일이 시끌벅적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가끔 가서 집짓는 구경을 하기도 하고, 새참으로 먹는 막걸리를 한 잔씩 거들어 마시기도 했다. 앞집의 일이 내 일인 것처럼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마누라는 그런 나를 흘겨보며 집안일이나 하지 쓸데없이 다닌다고 지청구를 했다.

 

  맹렬하던 뙤약볕의 열기가 가라앉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앞집에서는 건물의 외장 페인트 작업까지 마쳐 드디어 집이 완공되었다. 내가 집을 새로 지은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앞집으로 가는 길에 잘려나간 담쟁이덩굴 밑동에서 새로운 줄기와 잎이 나서 자라고 있었다. 담장이 허물어져 올라갈 곳이 없어 허방다리를 짚듯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모습이었다.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새 움을 틔운 녀석들이 갈 길을 잃고 공중 곡예를 하듯 흔들렸다. 영남 형에게 집이 다 지어진 걸 축하한다며 인사했지만 담쟁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형은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열없게 웃었다. 내일부터 블록으로 담장 작업을 한다고 했다. 저만치 형수가 다가왔다.

 형석이 아빠, 내일 우리가 담장 작업하는데 예전에 우리 터였던 곳을 찾아서 담을 칠 거니까 그리 아세요.”

 그기 무슨 말인교?”

 아따, 와 사람 말을 못 알아듣노? 원래 우리 땅이었던 터까지 넣어서 담장을 칠 거니까 경운기를 밖으로 빼놓든지 하라고요.”

 그거는 그때 아제가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받고 내놓은 땅인데 지금 와서 글카면 우짜능교?”

 내사 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는 모르겠고, 우리 땅이니까 우리가 건사하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거 참, 그카면 우리는 우째 다니라 말인교.”

 그러니까 경운기를 마을회관에 대놓든지 하라 안 합니까?”

 도시에서 살다 시집온 티를 내는 형수의 말투가 앙칼졌다. 나는 화가 나서 가래침을 카악 내뱉었다.

 사람살이가 그런 기 아임니더. 형수요.”

 한 마디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섰다.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대문 옆 들어오는 길머리에 놓인 양동이를 발로 힘껏 찼다. 노란 양동이가 시멘트와 부딪히며 둔탁한 쇳소리를 냈다. 마당 곁 채마밭에서 잡초를 뽑던 아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에이 씨발, 더러워서.”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곧장 외양간에 가서 소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데 몸값이 잘 나갈 때는 그렇게 살갑던 녀석들이 사료만 축내는 것을 쳐다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조만간 한 마리를 팔아야 밀린 사료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먹어둬라. 이놈들아.”

 소에게 사료를 챙겨주면서도 형수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나 돌아가는 세탁기에서 이는 세제 거품처럼 분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밤이 새도록 길에 대한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앞집에는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았는지 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찌감치 소여물을 주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앞집에 가서 별난 형수에게 얘기해 봐야 본전도 못 찾을 거고, 면사무소에 가서 민원을 제기해 볼 심산이었다.

 친절 봉사 행정 실현이라고 적힌 현판을 뒤로 하고 지루한 낯빛을 한 공무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 나를 알아보는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건축 민원과 관련해서 볼일이 있어 왔다고 하니 담당자가 있는 쪽으로 안내해줬다. 담당 직원은 사무적으로 인사하고 무슨 일로 방문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 담을 길 쪽으로 나와 치려고 한다는 것까지 내력을 이야기했다. 담당 직원은 어쨌든 좋은 쪽으로 합의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영남 형네로 전화를 걸어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좋게 해결하고 싶지만 막무가내인 형수의 호기어린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아 신경 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리 너머에 끊임없이 들어오는 신설 공장들이 검회색 매연을 뿜어내고 있어 괴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주변이 산업 단지가 되면 지역주민에게 취업의 혜택을 주고, 인구가 유입되어 발전이 될 것이라는 말은 무지갯빛 환상일 뿐이었다.

 통근차 수십 대가 아침저녁으로 나다니며 인근 대도시로 직원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에 난데없이 출퇴근 시간이면 차가 막히는 기현상이 생겼다. 사람들은 통근의 불편함에도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이사를 하지는 않았다.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짙은 회색 매연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청정지역의 공기를 오염시켰고, 페인트 냄새 같은 독한 냄새를 공기에 실어 날랐다.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길 모양이 이상했다. 곧은길에 뭔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이미 땅에 홈을 파서 선을 그어놓은 상태였다. 내가 면사무소에 갔다오는 사이에 작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경운기가 들락거리기 힘들 정도로 좁게 남겨두고 구획이 되어 있었다. 다짜고짜 앞집으로 달려가 형을 불렀다.

 왔는가?”

 영남 형이 약간 멋쩍어하며 마주치는 눈길을 외면했다. 그 옆에 형수가 불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 진짜 너무 함더. 아무리 그래도 경운기 길이라도 내줘야 농사를 지을 거 아닌교? 내가 살다 살다 별꼬라지 다 보겠소. 돈 받을 땐 무슨 맘이고 이제 와서 땅을 찾아가겠다니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짓 아인교?”

 아따, 뭐라 캅니까? 이제까지 남의 땅 밟고 잘 다녔으면 고맙다 해야지 이게 무슨 경웁니까? 권리를 주장하려면 서류를 내놓든가. 안 그러면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세요.”

 사람 인정이 그런 기 아이다 아인교? 농사짓고 먹고 사는데 이레 길을 막아뿌리면 우째 살아라 말인교? 딱 가디가 죽어라 말인교?”

 눈길을 피하는 영남 형의 멱살을 우악스레 움켜잡았다.

 와 이카노?”

 영남 형이 피하려 했지만 내 주먹은 이미 형의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다. 한 대 맞은 형이 씩씩거리며 나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잇달아 주먹으로 형의 얼굴을 때렸다. 순간 붉은 피가 형의 코에서 퍽 쏟아졌다. 흥분된 나는 주먹을 휘둘러댔다. 하늘색 와이셔츠에 영남 형의 코피가 범벅이 되어 퍼져나갔다. 순간 머리에서 탁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깨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형수가 곡식을 옮겨 담을 때 쓰는 빨간 바가지로 내 머리를 내려친 것이었다.

 남의 신랑 잡을 일 있나? 어디 와서 행패고 행패는.”

 코피를 계속 쏟고 있는 형을 보니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억울한 마음으로 치자면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고함을 치며 그곳을 물러났다.

 사람만 겨우 드나들 정도의 길 모양을 보니 흉측하기가 그지없었다. 구획작업을 하면서 몇 뿌리의 담쟁이는 뿌리째 뽑혀나가고 없었다. 작은 손가락을 하늘로 뻗고 구원을 요청하던 녀석들이 담벼락 옆에서 맥없이 몸을 늘어뜨린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갔던 일은 우째 됐는교? 에구머니나, 우야다가 온몸에 피를 이레 묻히가 왔는교?”

 아내가 단춧구멍만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들갑을 떨었다. 걱정스런 눈으로 달려드는 아내를 무시하고 외양간으로 갔다. 소들이 매일 쏟아내는 분뇨도 길이 없으면 실어낼 수가 없다. 소들이 철퍼덕 철퍼덕 똥을 눈다. 분뇨가 켜켜이 쌓인다. 층계를 이루어 지붕에 닿고 축사 전체를 뒤덮는다. 우리 집 소들이 분뇨 속에 파묻히는 상상에 빠진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산다는 것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힘들 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소들이 엉덩이와 다리 쪽에 분뇨를 잔뜩 묻히고 서 있었다. 아버지나 앞집 아제가 살아 돌아온다면 일이 쉽게 해결될까? 면직원이 형수에게 전화하면 효과가 있을까? 방도를 찾지 못한 나는 애가 탔다. 그날따라 밧줄을 풀고 돌아다니는 놈, 철 구조물을 망가뜨려놓은 놈 등 소들이 가지가지로 애를 먹였다. 갈수록 거구거산이라고, 살았을 적 어머니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저녁을 먹는다고 있는데 대문간이 떠들썩했다. 양철 긁는 목소리를 내는 앞집 형수였다.

 내가 알아듣도록 말을 했건마는 뭣 땜에 면사무소에 말을 해가 이리 시끄럽도록 하는지 모르겠네.”

 반말로 마당에서 한 마디 뇌까리고는 방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대통령이 뭐라 캐도 우리 땅 찾아서 담칠 거니까 그리 알아요.”

 살집 없이 깡마른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이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우리도 농사는 짓고 살아야 할 거 아닌교?”

 그건 이 집 사정이고 우리가 알 바 아니지.”

 형님요, 듣자듣자 하니 너무 하네요. 이웃에서 우째 그랄 수가 있는교?”

 못내 아는 척을 하지 않던 아내가 정색을 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이웃이고 뭐고 나는 다 필요 없으니까 이 일 갖고 동네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지 마세요. 온 면에 소문나서 어디 얼굴 들고 다니겠나?”

 목까지 분노가 차올라 고함을 칠까 하고 있는데 형수는 어느새 방문을 열고 휑하니 등을 보였다. 늘 일방적인 태도로 심기를 건드린다. 아내도 분을 못 참겠는지 설거지를 하면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도통 이룰 수가 없었다. 경운기가 못 다니면 농작물도 실어나르기 어렵고, 소를 키우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실정을 뻔히 알면서도 담을 치겠다는 형수도 그렇지만 그냥 따라가는 영남 형도 괘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추수를 대비하여 논도랑을 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앞집 공사장 옆을 지나는데 삼각자의 꺾어진 등허리 모양으로 삐져나온 선을 보니 잠시 가라앉았던 분통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어릴 적 영남 형과 함께 소먹이러 다니고, 딱지치기, 구슬치기, 썰매타기를 했던 생각이 났다. 친형제처럼 웃고 울고 했던 시절이 아득한 옛일같이 느껴졌다. 나는 홈을 파기 위해 박아둔 말뚝을 발로 한 번 차서 비뚜름하게 만들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금빛으로 넘실대는 들판에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벼에 내린 투명한 이슬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군데군데 거미줄이 갓 세공을 마친 수정처럼 영롱한 이슬을 매달고 미풍에 가만가만 흔들렸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벼들은 잘 여물어가고 있었다. 물이 많이 고이는 고논으로 들어가서 물 빠짐이 좋아지도록 논도랑을 치기 시작했다. 해마다 하는 일인데도 그날따라 허리가 뻐근하고 뒷다리가 평소보다 당기는 것이 피로가 몰려왔다. 고인 물에서 비릿한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제대로 먹지 못한 바람에 속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어지럼증을 간신히 참으며 벼 포기를 뽑아 물길을 텄다. 내가 치는 논도랑처럼 앞집과의 일도 시원하게 해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절 동안 일을 하고 나니 허리를 펴기가 힘들었다. 한 공기의 밥을 먹기 위해서 몇 번이나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지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몰랐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벼가 아니던가. 일이 힘들 때마다 농부들의 숨은 땀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콤바인이 없어서 바인더로 벼를 베야 한다. 이웃집 콤바인을 불러서 하면 마지기당 나가야 하는 돈이 만만찮다. 1년 동안 농사지은 수고가 거의 헛농사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바인더로 작업하려니 고생도 되고 일도 더뎠다. 그렇다고 수천만 원이나 되는 콤바인을 살 엄두는 더더욱 낼 수가 없다. 농사지어서 그렇게 큰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시대 따라 사람들이 쉽게 하는 농사법을 따르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심하다 싶었다. 부대비용은 늘어나고, 생산성은 빤한 농사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교육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축사에 소를 불려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그것마저도 소값이 떨어지면서 사료비를 충당하고 나면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었다. 우울한 생각을 하면 끝이 없을 것이고, 마지막 벼 포기를 뽑아 옮기면서 생각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벌써 홈 아래로 옹벽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 진짜 이럴 긴교?”

 우야겠노. 미안하지만 우짤 수가 없네. 집사람이 자기 뜻대로 안 해주면 집을 나가겠다고 카니 낸들 방법이 없다네. 벽을 치면 경운기가 나갈 수 없으니 우선에 회관 앞에라도 갖다 대놓게.”

 이놈의 담벼락 그냥 다 뿌사버리고 말끼라.”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이혼녀와 결혼할 수 있었던 어리숙한 영남 형이 형수의 엄포에 기가 죽은 것이었다. 우선에 경운기를 회관 앞에라도 옮겨놓아야지 방법이 없었다. 담장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실제로 경운기를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경운기를 회관 앞에다가 옮겨놓았다. 오는 길에 이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하소연을 했다. 이장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바로 넣으면 빨리 해결되니까 그렇게 해보라고 말했다. 조급한 마음에 내일 만나 그곳에 넣을 서류 준비를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을 만나려고 가는 길에 담장 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낯선 사람들인데도 왠지 미운 마음이 생겼다. 굳은 표정으로 그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인부들은 그런 내게 관심도 주지 않고 시멘트블록을 쌓아올렸다. 기필코 저 담장을 무너뜨리리라, 나는 마음을 다져먹었다. 여러 번 마을 일을 맡아 경험이 많은 이장은 어렵지 않게 민원서류를 작성했다. 그동안 있었던 사실을 죄다 넣어서 서류를 꾸몄다. 이장이 작성한 내용을 읽으며 당장이라도 일이 해결될 것처럼 마음이 바빴다. 나온 김에 우체국에 들러 서류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담장 옆을 지났다. 무릎 위까지 쌓아올려진 담장은 길을 더 좁아보이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쇠메를 들고 와서 담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담쌓는 인부들을 눈으로 흘기며 지나갔다. 담을 쌓는데 열중하던 인부 한 명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턱밑에 덥수룩하게 자란, 깎지 않은 수염까지 밉살스레 보였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외양간에 갔다. 분뇨를 쳐낼 때가 되어서 소의 발이 분뇨에 푹푹 빠지고 냄새가 심했다. 다리 중간까지 똥이 거멓게 묻어 질척거리고 있었다. 내 발이 그 속에 파묻힌 것처럼 찝찝한 느낌이었다. 경운기로 한 번 쳐내면 그만일 테지만 지금의 길 상태로는 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작은 수레를 이용하여 꺾어진 담장 부분에서 옮겨 실어야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축사의 분뇨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내 입술은 위 아래로 자꾸만 앙다물어졌다. 영남 형 내외에 대한 증오심이 한여름의 태풍처럼 회오리쳤다.

 회관 앞에 있는 경운기를 몰고 왔다. 소의 분뇨를 작은 수레에 삽으로 떠서 싣고, 그것을 다시 경운기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경운기를 돌려 뒤로 들어와야 했다. 시간과 노력이 두세 배는 더 들었다. 앞으로 이 일만이 아니라 짚을 들이거나 벼를 담은 포대를 실어나를 때도 똑같은 수고를 해야 한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여러 번 옮기다 보니 옷에 분뇨가 묻고 길바닥에 떨어지고 난리였다.

 나는 계속 구시렁거리며 작업을 했다. 인부들은 일찍 퇴근하고 없었지만 집 안에 분명 사람이 있을 텐데도 앞집에서는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네 시간에 걸쳐 하고 나니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일하는 과정이 힘들고 속도가 나지 않아 진이 빠지고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한밤중에 새 담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담장을 뭉개버릴 마음으로 허리 부분까지 쌓아올려진 곳에 올라가서 발로 밀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 집 아래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흠칫 놀라 내려서려 했으나 발이 시멘트블록 사이에 끼었다.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발을 빼내는 순간 슬리퍼가 시멘트블록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을 넣어 빼내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더 깊이 들어가 버렸다. 문을 열고 형수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한쪽이 맨발인 채로 부리나케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한밤중에 다시 나가 찾아보려 했는데 낮에 분뇨를 치우느라 진을 뺀 탓인지 잠이 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다음 날에 나가보니 담장 작업이 더 진행되어 있었다. 내 슬리퍼는 담장 속에 파묻혀 찾을 수가 없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우편물은 보낸 지 보름이 넘어서야 배달되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소가 찍힌 서류봉투를 조심스럽게 개봉했다. 그곳에 회신 내용을 보니 통행만은 보장해줘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애매한 답변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들고 이장에게 달려갔다. 이장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영남 형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그 길로 면사무소에 가서 담당자에게 민원 결과를 보여줬다. 농사짓는 경운기 길이라도 틔워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소유자인데다가 길을 만들 당시에 주고받은 증거서류도 없으니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다니는 길이 막힌 것도 아니어서 담을 허물기도 힘들어요. 게다가 그 집 사모님 성정이 보통이 넘던데.”

 담당자는 난색을 표했다. 앞집에서 경운기 길을 막았으니 이건 농사짓는 사람더러 죽으라는 말과 같다며 담당자에게 짜증을 냈다. 한 번 더 설득해 보겠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바빠 보이는 직원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앞집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사람 네댓 명이 앞집 마당에 모여서 형 내외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 땅을 확실히 안 해놓으면 언제 찾으라고요. 이렇게 와서 얘기해봐야 소용없으니까 확실하게 우리 땅이 아니라는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형수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렸다.

 사람 사는 도리가 그게 아니지. 이집 선친이 살았을 때 그때 시세대로 값을 쳐서 길을 내준 거라 말일세.”

 바우 영감이 점잖게 한 마디 했다.

 우린 그런 거 모르니까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왈가불가하지 마세요. 왜 남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드는지 모르겠네요.”

 영남이 자네는 알잖는가? 이 동네 살라카면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 이기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고.”

 말깨나 하는 소호 아제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영남 형은 아무 말도 못하고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지 땅 지 가져가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법적으로 해결하세요. 그럼 매매계약서라도 가져와서 따지든지요. 저는 할 말 다했으니 모두 가 주세요.”

 형수가 눈에 불을 켠 듯 희번덕이며 똑부러지게 반박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더 이상 대화가 안 될 것 같은지 한 명 두 명 발걸음을 돌렸다.

 혼자 잘 묵고 잘 사소. 에이 더럽다 더러워.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 같은 기 동네 들어와 물 다 흐리네. , , 사람도 아이니 이만 갑시다.”

 바우 아제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는 멈칫거리다가 동네 어르신들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어이, 형석이. 인자 농사짓기 수월찮겠네. 이 집 안주인이 오죽 드세야 말이지.”

 공장에서는 오늘도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물든 듯 노랗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벼들도 몸을 웅크린 모습이었다. 앞집을 지나쳐 오는데 형수가 대문간에 널어 놓은 콩을 뒤집고 있었다. 인사도 하기 싫어 그냥 외면하고 지나치려 했다.

 이제 사람을 숫제 그림자 취급을 하네요.”

 형수가 원인 제공해 놓고 뭔 참견인교?”

 도면을 보니까 옆집이 길을 많이 잡아먹고 있던데 왜 모두들 나만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네.”

 형수가 악을 쓰며 말할 때마다 눈썹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형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내일 면사무소에 가서 다시 한 번 방법이 없는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수가 성재 형 집에서 길을 잡아먹고 있다고 한 말도 어찌된 내막인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면사무소에 가서 지적도를 열람해 보니 실제로 성재 형 집이 길 쪽으로 나와서 담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큰 문제가 안 될 때면 집의 경계를 주인 맘대로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농사짓는데 경운기가 들락거리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길을 둘러싼 주변 집에 대해 정확한 측량을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담당 직원이 공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현장답사한 후에 가부를 결정해서 연락하겠다고 했다.

 이 일을 성재 형에게 가서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말을 하면 형이 뭐라고 할까 걱정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며 성재 형 집 대문에서 뒤돌아섰다.

 농작물을 수확하여 집에까지 옮기려면 골머리를 썩이며 일을 하게 된 나는 더 이상 성재 형 생각을 하며 걱정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든 경운기가 다닐 길은 확보되어야 내가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직원과 군청 직원들이 와서 정밀 측량을 하고, 성재 형 집의 땅 일부가 길이라는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나는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괜스레 성재 형과 부딪히면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아서였다.

 면사무소에서 성재 형네의 담을 허물어야 된다고 통보한 날이었다. 늦은 밤에 성재 형은 술이 잔뜩 취해 우리 집에 와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 두 집이 싸우는데 내가 왜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속으로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고개만 주억거렸다.

 시골 인심 이레 사나워져서 무서워 살겠나?”

 성재 형이 원망할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농사지을라 카면 우짤 수 있는교?”

 성재 형이 원망스러운 듯 눈을 부라렸다. 그날 밤 성재 형의 핏발 선 눈이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서 떠나지 않았다.

앞집에는 발길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는데 이장으로부터 형수가 가출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성재 형과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영남 형이 형수에게 우리가 양보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했는데, 그 소리에 화가 난 형수가 영남 형과 대판 싸운 것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형수는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늦게 결혼한 영남 형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들여다보지 않았다.

 성재 형 집 주위로 측량선이 그어지고, 그 집 담장이 허물어지고 앞집에서 튀어나온 모양과 비슷한 형태로 담이 다시 쳐졌다. 옛날처럼 경운기가 일직선으로 가지는 못하지만 핸들을 꺾으면 경운기는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길이 완성되던 날 소의 분뇨를 경운기에 실어나를 때는 가슴 위까지 차오른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길을 가운데 두고 벌인 쟁탈전 때문인지 우리 세 집은 기름과 물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형 아우 하던 것도 아랑곳없이 내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까지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것 때문에 마주보며 이야기하기가 어색했다.

 집사람이 돌아왔다. 이웃끼리 밥 한 끼 먹자.”

 뜻밖에도 영남 형의 전화였다. 그동안 영남 형을 찾아가 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선뜻 가겠다고 했다. 소문에 형수는 아들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갔다가 못 만나고 여기저기 떠돌았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예전에 다니던 식당에서 일하다가 일주일 전쯤에 장날에 낫을 사러 나간 영남 형과 조우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날 동네 사람 대여섯 명이 함께 영남 형 집에서 밥을 먹었다. 성재 형도 섞여 있었다. 막걸리를 함께 내놓는 바람에 얼굴이 벌게지도록 마셨다. 술이 들어가니 처음에 어색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형 아우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영남 형, 새 집 지어놓으니 넓어 좋네요.”

 글라. 내사마 우리 집에 사람들이 이래 법석대는 기 더 좋다. 그동안에 여러 가지로 미안케 됐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성재 니한테도 참말 미안타.”

 고마, 됐다. 지난 야기하면 뭐하노. 술이나 묵자.”

 영남 형이 잔이 넘치도록 막걸리를 따랐다. 형수가 음식 뒷수발을 마치고 밥상 귀퉁이 쪽에 앉았다.

 형수도 한잔 하소. 내가 그동안 여러 가지로 형수한테 섭섭했지만 우쨌거나 이레 돌아와서 다행임더.”

 형수가 빈 술잔을 내밀면서 동그란 눈을 초승달처럼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술기운 탓인지 형수의 눈웃음이 밉지가 않았다.

  술이 기분 좋을 만큼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달빛이 밝아서인지 앞집 담벼락에 담쟁이가 새순을 틔우고 작은 손을 시멘트벽에 고정시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많은 우여곡절에도 살아남은 담쟁이가 한 그루 있었다. 길이 꺾이지 않은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서 겨우 살아난 듯했다. 지난날 담장을 가득 메웠던 담쟁이의 푸른 행렬처럼 새 담장을 타고 진군할 보드라운 순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당선소감>

 

욕심 내려놓고 침잠의 세월더 보고싶은 그리움 써갈것


  실낱같은 기대를 붙들고 연말 내내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당선 소식을 들은 그날, 흥분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문학적 성과에 목이 타던 때가 있었습니다.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는 막막한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작가처럼 묵묵히 쓸 수 있을 때 소설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생각의 변화를 알아챈 것처럼 작품이 답을 해왔습니다.


  꽃상여가 나가던 길에서 저도 모르는 그 무엇을 잃어버린 느낌을 붙잡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더욱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 풀어헤쳐 보기가 겁나는 알 수 없는 현실, 일상에서 주고받은 상처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제 작품에 큰 격려말씀으로 소설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심어주신 권지예 선생님, 날마다 글을 써서 밥값을 하는 일이 작가의 소임임을 깨우쳐주시고 제 글이 튼실하게 자라도록 이끌어주신 장창호 선생님과 동리목월문창대학에서 가르쳐주신 엄창석 선생님, 이우상 선생님, 소설에 첫발을 딛게 해주신 조돈만 선생님 고맙습니다. 함께 글공부를 한 오두막 문우, 동리스터디 회원, 독자로서 작품을 읽어준 남편, 응원해준 딸 민정·현정, 그리고 여든이 넘어서도 밭을 일구시는 엄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던 길 계속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농민신문사와 두 분 심사위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끊임없이 정진하는 작가가 되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습니다.

 

 정정화 1968년 울산 출생 1992년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구성 탄탄하고 진행 안정적화자의 소박한 시선 돋보여


  본심에 오른 10편의 작품은 대체로 고른 수준을 보여줬다. 소재도 다양했고 저마다 개성을 지닌 작품들이어서 심사위원들을 적잖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신중한 검토를 거쳐 마지막까지 남은 세 편의 소설은 <독감> <친전> <담장>이었다.


  <독감>은 서민들이 모여 사는 소도시 주택가의 병원을 무대로, 간호사인 화자를 통해 노인 환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병원 내부의 일상적인 풍경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자잘한 에피소드를 퍽 실감나게 엮어냈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낼 만한 갈등구조와 중심사건이 빠져 있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었다.


  <친전>은 지하철 택배 일을 하는 노인의 하루를 차분하게 그려냈다. ‘친전이라 적힌 스티커가 붙은 봉투를 수취인에게 전달하기까지의 동선을 꼼꼼하게 잡아낸 점은 인상적이었지만, 정작 노인의 개인사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빈약했다. 결말 부분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담장>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구성의 탄탄함과 안정감 있는 이야기 진행이 돋보였다. 이 소설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농촌의 이웃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사실 소재 자체만 놓고 보자면 자칫 진부하고 빤한 이야기로 떨어지고 말 위험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그 위험으로부터 용케 구해낸 힘을 든다면, 우선 화자의 소박하고 진솔한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절제된 문장이며 감칠맛 있는 대화도 인상적이고, 다른 무엇보다 도시 출신 형수라는 인물이 상황의 실재감이랄까, 이야기에 사실성을 주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럼에도 결말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나치게 깔끔한 화해 장면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장차 문운이 활짝 피어나기를 바란다.

 

 심사 : 최인석<소설가임철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