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실험의 시험 / 이은담

 


당선작 홈페이지 미등록.



<당선소감>

 

"지나보니 많은 것들이 있었다"

 

  도망 다녔다. 빈 워드 깜빡이는 커서가 자꾸만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 커서를 멀뚱히 바라보며 많은 밤 아팠다. 남들은 인생을 열심히 홈질하는데 나 혼자 시침질을 하며 사는 것 같았다. 내 고단하고 고집스러운 꿈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많이도 고민했던 요즘이었다. 그럼에도 우둔했던 내 고집을 쓰다듬고 싶은 밤이다.

  한글을 쓸 수 있게 된 후부터 장래희망란에 한 번도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써본 적 없다. 무작정 동경했고 대책 없이 꿈꿨다. 자주 체했고 걷던 걸음을 멈췄다. 이쯤 되면 저주가 아닐까 했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나 보니 많은 것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어 영광이다.

  부족한 나의 믿음직스럽지 못한 길을 믿어 방관해준 가족들, 절벽에 서 있는 기분이라는 내게 기꺼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거친 바다를 즐기라던 조헌용 교수님, 떨고 있는 내게 기꺼이 체온을 나눠 준 시설(詩說) 동아리 동료들, 귀중한 가르침을 주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 나의 길을 오롯이 함께해주는 김봉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면상 함께 쓰지 못한 이름들을 되뇌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감사하는 모든 분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커서를 쫓는 삶을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마지막으로 방황했던 날들에 의미를 만들어주신 한라일보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약력 본명 이정은 1984년 서울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과도한 제스처 거리둔 점 돋보여

 

178편의 작품이 우리 앞에 놓였다. 별도의 예심은 없었다. 두 사람이 내리 읽기에는 다소 버거운 분량이었으나, 정성을 다한 작품들이 아닌가. 우리 역시 정성을 다 기울여 읽었다.

그것의 분량보다 우리를 질리게 했던 것은 작품들에 깔린 어둠이었다. 시대의 그늘 탓일까. 읽는 차례로, 순번을 정한 듯 주인공들이 죽어 나갔다. 대개는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 또 한 가지 경향성은 재기발랄한 문체이다. 그런 재치가 소설을 읽히는 요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상투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작품의 격을 일격에 결딴내게 된다.

어둠과 재치이 둘 사이에 모종의 시대적 공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선작으로 뽑힌 '실험의 시험'은 가장 우수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공모에서 기인하는 과도한 제스처에서 한 걸음 거리를 둔 점이 돋보였다. 될수록 문장에서 겉멋을 빼고, 의식의 반응의식의 흐름과는 다른에 담백하게 따라붙는 것은 성숙의 징표일 터이다. "인간이 이렇게 단순하다는 것이 슬펐다"는 단순한 문장이 이렇게 슬프게 다가올 수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런 행사에 참여를 해 보면, 당선작을 낸 기쁨은 쉬 지나가고 낙선작에 대한 아쉬움이 괴로운 기억으로 오래 남고는 한다. 책임의 문제를 미묘한 갈등의 움직임으로 잡아낸 '꽃무늬 식탁보', 뗄 데 없이 잘 쓴 소설이나 한 방이 아쉬웠던 '하지 감자', 날짜의 착각이라는 작은 경험에 삶의 회한이라는 주제를 담아낸 '문밖에서', 생활의 무기력이 폭력화하고 환멸로 떨어지는 과정에 심미주의를 잇대놓은 '사라세이나', 소재에 대한 천착이 아쉬웠으나 발상이 특이했던 '참홍어', 솜씨 좋은 이야기꾼인 '천국로맨스', 의인화를 가슴 저리는 서사수법으로 승화시킨 '우산살' 등이 짐작컨대 그럴 것이다.

심사 : 한림화 소설가, 송상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