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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터닝 포인트 / 김유현

 


이정표를 다시 확인한다. 길을 잘못 든 걸까. 내비게이션이 알려 준대로 왔을 뿐인데, 지금 앞에 보이는 이정표엔 엉뚱한 지역 이름이 쓰여 있었다. 또랑또랑한 안내 음성이 귀에 거슬린다. 신뢰를 잃어버린 목소리는 더 이상 확신을 주지 못했다. 다음 안내시까지 직진. 전원을 끄자 차안이 조용해진다. 부유물처럼 떠다니던 기계음이 사라지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결 맑아진다. 얼어붙듯 뻣뻣해진 고개를 뒤로 한껏 제친다. 아귀를 맞추듯 목뼈 쪽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4시간째 운전대만 잡고 있었다. 차로는 초행길이라 긴장도 됐거니와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방향대로 운전을 하다 보니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길을 잘못 든 걸 알았을 땐 불현듯 엄습한 불안감에 쉴 여유조차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예전, 유년의 길 위에서 목적지를 잃었을 때 느낀 감정이랄까. 아무튼 그런 막연한 위태로움에 머릿속이 잠시 복잡했다. 백미러를 통해 슬쩍 뒷자리로 눈을 돌린다. 창밖을 내내 바라보던 딸아이가 한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잠들어 있다. 뒤쪽으로 손을 뻗어 아이를 좌석에 반듯이 눕힌다. 부산한 손길에 잠시 뒤척이던 아이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아이를 바라본다. 마치 쟤가 장시간 운전이나 한 듯 노곤한 모습이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딸아이의 숨결에 피로와 졸음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이정표를 바라본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대로라면 분명 이 길이 맞는데지도를 손에 들고 차문을 연다. 4시간 만에 맞이한 바깥 공기는 서슬처럼 차가웠다. 점퍼를 입고나와 오그라든 몸을 푼다. 지방도라서 차들은 많이 오가지 않았다. 멀리 오리탕 간판 하나만 덜렁 눈에 보일 뿐 인적이 드문 길이라 주위는 한산했다. 차 보닛위에 겹겹이 포개진 지도를 펼친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도로와 지명을 찾아보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토록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길하나 찾기가 이리 힘든데만약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혀가 입 밖으로 비쭉 튀어나온다. 미국이었다면 차라리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나 같은 길치에겐.

 

 언제 가니? 다음 주 월요일이요. 으응, 그렇구나말끝을 흐린 고모의 어투엔 못내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자신이 권했으면서도 한편으론 죄책감을 느끼던 고모였다. 고모는 자신이 우리 모녀를 밖으로 내몬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작은아버지가 잘 챙겨 주실 게다, 거기서 크게 목장도 하고 있으니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을 거야. 그리고 넌 영어강사도 했으니까 소통엔 문제없을 테고. 이민을 생각한 건 올 초 사촌 동생 결혼식에 참석한 작은아버지를 만났을 때였다. 마흔 후반에 이민을 간 작은아버지는 미국 서부지역에서 크게 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민을 간 뒤론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언행이 마치 서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사나이처럼 자유분방해보였다. 같은 형제였지만 웅크린 듯 고지식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작은아버지는 성격부터가 남달라 어렸을 때부터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작은아버지가 우리 아빠였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을 만큼 어릴 적부터 작은아버지를 많이 따랐다. 영란이 오랜만이다, 얘가 네 딸이구나, 허허작은아버지는 딸아이 뺨을 쓰다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아이는 느닷없는 손길에 내 뒤로 몸을 숨기며 울상을 지었다. 허허,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어릴 때 지 엄마랑 똑같네. 고모는 그런 나와 작은아버지를 바라보며 다급히 친지들의 안부로 화제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작은아버지는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노란색 363번 지방도에 나타난 지명은 목적지에서도 한참을 벗어난 곳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새로 이사했다는 고모집은 예전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었다. 창고와 낡은 화장실을 죄다 뜯어낸 뒤 집안 곳곳을 리모델링한 고모는 자신의 작업실로 바꾸었다. 작가인 고모는 아주 그곳에 눌러앉아 집필에만 몰두하며 지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다, 자꾸 꿈에 그곳이 나타나. 고모는 젊은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어 하던 고향집을 몇 해 전부터 그리워했다. 여기 네 할아버지, 아버지 묘 다 있잖니그래도, 떠나기 전에 아버지는 한 번 보고 가야하지 않겠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고모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뜬 뒤 고모에게 많이 의지했던 터라 사이는 여느 모녀처럼 돈독했지만,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이내 대화는 급격히 어색해졌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매번 화를 돋우었고, 그런 내 모습에 고모는 그저 고개만 끄떡끄떡 할 뿐이었다.

 삼남매 중 첫째 딸이던 나는 항상 아버지 손길에서 겉돌았다. 시골 촌구석에서 할아버지에게 전형적인 구시대 유물을 고스란히 대물림 받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그저 농사만 지을 줄 알았지 세상엔 눈이 먼 사람이었다. 앞뒤 꽉꽉 막힌 촌부지렁이였던 아버지가 고향을 떠난 뒤에도 농사 외에는 할 줄 아는 일라곤 없었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남아(男兒)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농사꾼으로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역 죄인이 되는 양 엄마가 매일같이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는 웃지 못 할 말이 있을 정도로 간절했다고. 하지만 모든 정성과 기도를 비웃듯 내가 태어났고, 그토록 바라던 고추는 문간에 내걸리지 못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품에 안기지 못한 나는 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는데, 당시 나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 부자에겐 탐탁치 못한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첫째가 딸이었으니 오죽했으랴.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따가운 눈길과 구박을 한꺼번에 받았을 것이다. 그 설움은 둘째와 셋째가 태어나면서 무마됐지만 임종 직전까지도 아버지는 사기 전과로 교도소에 있는 두 형제가 더 좋은 모양이었다. 한 달 한 번씩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면회를 갔던 걸 보면. 단지 아들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누군가 지금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시대가 어느 시댄데, 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시대는 전유물처럼 내 곁에 남아 지독히도 천천히 흘러갔다. 내게 있어 아버지 노릇을 톡톡히 한 건 결혼식장에 나를 이끌고 입장한 그 날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한 고모의 말은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다. 떠나는 마당에 못 갈 것도 없지, 고모에게 줄 것도 있으니. 그동안 이민 준비로 분주했던 마음도 정리할 겸 이젠 고모의 집이 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도착할 때까진 아무문제가 없었다. 물길을 따라 흐르듯 유려히 목적지에 닿았지만 되돌아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분명 지나왔던 길인데도 하루도 안 되어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길치에겐 방향성이 문제인걸까, 아니면 기억력이 짧은 걸까.

 지도에 나타난 방향과 이곳 위치를 눈으로 가늠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 무리의 새들이 낮은 저공비행을 시도하며 눈앞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새들이 날아간 도로 옆 강가를 굽어본다. 고즈넉한 산자락에 내려앉은 강줄기가 여유로운 운치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잠시 여유로운 감상에 빠질 새도 없이 지도를 쥔 손이 땀으로 질척인다.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 멀리 강을 둘러싼 산등성이 너머로 땅거미가 몰려들었다. 일찌감치 어둠을 불러들인 야속함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서성이다 문득 차안에 잠든 아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손을 아랫배 밑으로 포갠 채 웅크리듯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잠들 때마다 저런 모습이었다. 의사는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방어기제 같은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아직도 길에서 낯선 남자를 보거나 마주치면 아랫도리를 손으로 가린 채 주춤거렸다. 의사는 평생을 안고 갈 짐을 아이가 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낳은 자식이었다. 그래서 더 애지중지하게 키웠건만.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혼 후,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생활비를 벌기위해 아이를 놀이방 같은 위탁시설에 맡겨야했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자식을 홀로 방치한 부모는 결국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지도를 네 겹으로 포개며 차에 오른다. 어째든 이곳에서 돌아서야 한다. 더 가면 되돌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 핸들을 급히 꺾는다.

 

 다행히 이번엔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아무래도 사거리 지점에서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돌아서길 잘했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차창 밖으로 곳곳에 남은 흰 눈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보는 마지막 눈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아린 기분이 든다. 눈을 보자 뒷자리에 있는 아이에게 시선이 간다. 언제 깼는지 아이는 차창에 코를 박은 채 눈꺼풀만 끔뻑이고 있다. 마치 낯선 뭔가를 마주한 듯 얼떨떨한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딸아이는 유독 눈을 좋아했다. 눈만 오면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던 아이였는데. 이젠 내가 없으면 집밖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딸아이는 자꾸만 뭔가를 망설이는 눈치다.

 "눈 구경 좀 하고 갈까?"

 아이의 눈에서 반짝임이 감지된다. 때마침 갓길 옆으로 주유기와 포크가 나란히 그려진 간판이 나타났다.

 

 간이 안 된 팅팅 불은 국수는 별맛이 없었다. 국수대신 햄버거를 입에 문 딸아이가 주유를 하는 동안 흰 눈을 두 발로 꼭꼭 누르고 있다. 얼어붙은 흰 눈덩이가 검게 뭉친 채 갓길에 쌓여있다. 사람들 발에, 혹은 차들에 의해 짓이겨지고 뭉개진 눈덩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아이와 함께 갓길로 치워진 눈 위에 발을 가져간다. 뾰족한 구두 자국이 눈 위에 찍힌다. 순간 사납게 날선 바람이 머리채를 뒤흔들고 지나간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애써 진정시켜보지만 장난을 치듯 바람이 연거푸 불어온다. 몇 킬로 안 떨어진 장소지만 아까 한적했던 강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 . 울부짖듯 겨울바람이 산등성을 타고 넘나들며 우리 모녀 주위를 맴돈다. 아이가 품에 폭 안겨온다. 한국 땅이 이토록 기후가 다를 만큼 넓은 곳이었던가. 이 작은 땅덩이도 표정이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날씨를 간직하고 있는데, 하물며 미국은 어떻겠는가.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긴다는 친구의 말과 토네이도로 집과 농장을 모두 잃었다는 뉴스를 동시에 접했을 때, 미국은 그저 아득히 먼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두려워졌다. 나야 네가 오면 언제든 환영이지. 안 그래도 영어 잘하는 한국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됐구나. 고모에게서 내 이민계획을 들은 작은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 생활영어 정도는 가볍게 구사할 수 있었지만, 서류나 업무에 필요한 형식적인 대화에 있어선 무척 난감해하던 작은아버지였다. 예전에도 몇 번 사업과 관련된 영어를 물어보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작은아버지는 쉽지 않다며 한숨을 내짓곤 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붉게 언 뺨을 어루만지며 길게 숨을 내쉰다. 허옇게 뻗어 나온 입김마저 얼려버릴 듯 시린 바람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온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작년에 시작된 겨울이 1년이 지나도록 내 곁을 맴도는 기분이다. 지독히도 천천히 유장하게. 지금껏 지나온 시간 중에 따뜻한 봄날이 있었던가. 겨울만 있었지 봄의 기억은 없었다. 내 시린 계절은 작년 이맘때쯤 멈춰버렸다. 병원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품에 안긴 아이가 잔가지처럼 몸을 떤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였죠? 의사는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반복했다. 인근 놀이방에 나가면서부터 아이는 급격히 기운을 잃어갔다. 밥을 먹을 때도, 인형을 가지고 놀 때에도, 눈이 올 때에도 좀처럼 아이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처음엔 이혼 직후라 아빠와 헤어지게 되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다. 단순히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그날, 병원에서 본 아이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들짐승에게 쫓긴 초식동물의 떨림 같은 아이의 행동에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검사는 여러 단계로 진행되었고 약물치료와 심리치료가 병행되었다. 화지에 그려진 아이의 정신감정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검은 색 바탕에 홀로 서 있는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환형동물. 딸아이가 다니던 놀이방 원장은 정년퇴임한 학교장 출신이었다. 그런 믿음 때문에 아이를 맡겼건만, 증언에 따르면 딸아이 말고도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이는 몇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원장은 모든 일을 강력히 부인하며 여전히 놀이방을 운영 중이었고, 아이들의 증언만으로는 정황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재판이 기각됐다. 사회적 기부 활동으로 높은 인지도를 쌓은 원장의 과거 이력에 의심이나 반기를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년 이맘때였으니 정확히 일 년 전 일이었다. 강사 일도 그만둔 채 법원과 상담소를 오가는 동안 지난했던 겨울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전화를 했으면 말씀을 하세요. 힘든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듯 여전히 봄은 오지 않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손님. 오만 원 주유 끝났습니다."

 등 뒤로 주유소 직원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먼저 차에 태운 뒤 코트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도를 꺼내든다. 네 등분으로 반듯하게 접힌 지도를 차 보닛에 펼쳐 보이자 직원이 의아하게 나를 바라본다. 잠시 망설이다 가까스로 그에게 입을 뗀다.

 "그러니까, 제가 여기 처음이라 그런데요. 지금 이곳이 여기쯤인 것 같은데."

 추위에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지도 위를 가리킨다. 주유소 직원도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또다시 길을 잃을까봐 걱정이 돼 확실히 방향을 다잡고 싶은 마음에 재차 그에게 묻는다. 그때 서너 대의 차가 주유소로 들어선다.

 "죄송한데, 목적지가 어디신데요?"

 조금 답답함을 느꼈는지 직원의 목소리에 살짝 살얼음이 낀다.

 "아 그게, 여기요. 여기를 가려고 하는 데요."

 손가락을 짚은 곳으로 시선을 옮긴 그가 고개를 숙인다.

 "이쪽이라면."

 그때서야 직원은 알겠다는 듯 지도에서 눈을 뗀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얼굴에 가득하다. 직원의 그런 모습에 한결 마음이 놓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흰 눈가루가 얼굴로 날아든다. 한기가 든 것처럼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 길 따라 쭉 가시면 군부대가 하나 나오는데, 부대를 지나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이정표가 나올 겁니다."

 직원은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한껏 도취된 모습이다. 그의 설명에 고개만 끄떡거린 나는 지도를 다시 네 등분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직원은 봄볕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카드 영수증을 건넨다.

 "정 모르겠으면 내비를 사용하세요. 그럼, 안전운전 하십시오."

 꾸벅 허리를 숙인 그에게 눈인사를 한 뒤 다시 도로로 들어선다. 꺼져있는 내비게이션을 힐끔거린다. 여자의 안내에 따라 왔다면 지금쯤 도착했어야 한다. 전원을 켜려던 손가락을 냉큼 거둔다. 왠지 목적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 그냥 이정표를 따르기로 한다. 직원의 말을 믿고 가는 수밖에. 핸들을 쥔 손을 꾹 움킨다. 왠지 길을 나선 게 후회된다. 하지만 괜한 충동에 빠져 나선 길은 아니었다. 과거에 미련이 남았던 건 아니지만 그냥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허전해졌다. 이 땅에서 살아온 치열했던 날들에 대한 아쉬움 정도라고 해두자.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터전이었는데. 나는 지나왔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 도로 위를 달린다. 떠날 준비는 모두 끝났다.

 

 지난 주, 처분할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죄다 거실 안에 꺼내놨더니 온갖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숨겨져 있었을까. 각종 접시세트와 집기류, 진열장에 들어 있던 비품까지 몽땅 꺼내 버릴 것과 가져갈 것들을 정리했다. 품목별로 우선순위를 정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물건들이 있었다. 결혼할 때 혼수로 사온 접시세트도, 예복으로 맞춘 드레스도, 모두 미련이 남았지만 입술을 꾹 감쳐물었다. 어차피 짐만 될 뿐이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곳까지 이 물건들을 가지고 갈 이유가 없었다. 유난히 다도를 즐기는 고모에게 다기가 포함된 접시세트를 주기로 하고 하나하나 처분할 것들을 분류했다. 혼수로 장만했던 이불과 예물 상자, 계절별로 나뉜 옷가지들문득, 버릴 물건들을 보자 내 곁을 떠난 이들이 생각났다. 자수가 꼼꼼히 들어간 연분홍 이불에선 엄마가, 예물이 든 상자에선 남편이 눈앞에 포개지듯 떠올랐다. 암으로 일찍 세상을 등진 엄마는 내 결혼식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엄마는 눈을 감기 전, 고모에게 예단과 혼수품을 부탁했다. 연분홍 이불은 네 엄마가 직접 고른 거야고모는 이불을 볼 때마다 옛 생각이 나는지 찔꺽눈이 된 채 코를 훌쩍였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고모 역시 나와 같은 이유로 할아버지에겐 살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일찍 할머니를 여읜 상처 때문에 그 고통은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에게 시집을 온 어머니에게 그렇게도 의지했던 고모였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는 앙숙이라는데하지만 그들은 친자매보다 더한 결속력으로 서로를 꽁꽁 엮어댔다. 어쩌면 엄마에게서 나로 이어지는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고모와의 돈독함은 집안 내력인지 몰랐다. 일단 이불은 가져가기로 했다. 추억이 깃든 물건 정도는 한두 개쯤은 있어야겠지. 그곳에서도 가끔씩 이곳이 그리워질지 모르니까하지만 다음 물건을 봤을 때, 감상적인 기분은 금세 표백되듯 싹 가셨다. 결혼사진. 눈을 유난히 동그랗게 뜬 남편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10년 전 시간 속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었다. 웃고 있는 이들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알고 있을까. 신뢰를 잃어버린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성처럼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음을 말이다. 사진을 보자 마치 타인을 바라보듯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잠자리 한 사실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어차피 육체적 관계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본능적인 일이니 분명 충동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마음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순간은, 손깍지를 낀 채 남편과 그 여자가 마트에서 장을 보던 모습이었다. 그들이 그냥 손만 잡았어도 그리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정하게 여러 갈래로 얽힌 그들의 손가락을 봤을 때, 그때서야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음을. 과연 이혼으로 잘못된 경로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더 가다간 정말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좋아, 당신 뜻대로 해줄게. 남편은 흔쾌히 내 말에 동조해주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남편은 내게 이혼의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그동안 당신에게 나는 무엇이었나? 사진 속 남편은 그저 눈을 크게 뜬 채 웃고만 있었다. 결혼사진은 버리기로 했다. 결혼사진뿐만 아니라 남편이 깃든 모든 흔적을 없애기로 하고 사진을 검은 봉투 안에 따로 모았다. 의외로 남편이 채웠던 자리는 꽤 넓었다. 남편이 깃든 사진을 모두 빼내자 앨범엔 몇 장의 사진밖엔 남지 않았다. 솔직히, 법원을 빠져나와 돌아설 때까지도 당신이 밉지 않았다. 그저 잘 살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딸아이가 잠결에 당신을 찾았을 때, 그때만큼은 당신이 죽도록 미웠다. 당신은 어디에도 없는데, 당신을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여보세요, 말씀을 하세요. 누구야? 멀리 희미하게 들리던 낯선 여자의 목소리. 그 여자였겠지. 통화는 이내 끊어졌지만 선뜻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을 켠다. 믿음을 주기엔 탐탁지 않지만 그래도 혼자보단 낫겠지. 차를 갓길에 세워둔 채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낸다. 땀으로 눅진해진 지도가 나달나달해져 있다. 목적지에 집주소를 입력하자 아까 중지했던 여자의 안내 음성이 이어진다. 오백 미터 전방에서 우회전입니다. 아까 주유소 직원이 알려준 방향대로 여자가 길을 안내한다. 조금씩 신뢰가 생긴다. 이대로라면 머뭇거리지 않고도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낮게 퍼지는 둔중한 소리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해가 기웃기웃 넘어가는 아청빛 하늘 위로 빛 하나가 궤적을 이루며 지나간다. 점점이 멀어지는 비행기가 시선을 이끈다. 차를 바로 출발 시키지 않고 핸들에 몸을 기댄 채 비행기를 바라본다. 느른한 고도에 엔진음을 일으키며 상승기류를 탄 비행기가 하늘 위를 뻗어나간다. 회항점을 넘어설 때까지 시선을 유지한다. 터닝 포인트. 그 지점을 넘어서면 결코 돌아올 수 없게 되는, 그 마지막 순간을 잠시 눈으로 감상한다. 준비는 잘하고 있니? 고모집으로 가던 중 걸려온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왠지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제 모든 걸 함께 해야 한다는 기분 때문인지 그가 진짜 내 부모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다운 목소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음성을 들을수록 서러움이 북받쳤다. 정말 같은 형제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둘의 인생은 너무도 달랐다. 왜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까. 팔십 평생 빈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혼했을 당시에도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솔직히 그런 아버지가 남편보다 더 미웠던 건 사실이다. 새삼 지금 와서 아버지에게 아쉬움 있거나 미련이 남진 않았다. 대학 등록금을 낼 때나 서울로 올라와 직장근처에 집을 얻을 때에도 눈곱만큼 바란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런 감정을 남겨둔 채 떠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모든 게 정리됐지만 그 한가지만은 구석에 낀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있었다. 확실히 매듭짓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훌쩍 사라지는 기분이 발길에 채이듯 자꾸만 거치적거렸다. 준비는 다 됐어요. 그래저기, 아버지는 만나봤고? 나는 잠시 망설이듯 입술을 감쳐물었다. 작은아버지도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잠시 뜸을 들이다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지금 가는 중이에요. , 그렇구나그래, 잘 마무리하고 오렴. 통화가 끊기자 주위는 공명처럼 비어갔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빈자리. 그 한가운데 허허롭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석양 위에 뜬 비행기가 서서히 회항점을 넘어 선다. 불현듯 작은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공항 대기실은 한산했다. 출국심사를 기다리는 작은아버지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굳어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작은아버지를 배웅 나온 나와 고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만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들은 줄기차게 떠났고, 또 줄기차게 돌아왔다. 대체로 떠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려한 반면, 돌아온 사람들은 단출하고 소박했다. 입국장에 들어선 이들의 표정엔 여행에 모든 기력을 소진한 모습이 역력했다. 다국적 언어가 혼재된 대기실이 잠잠해 졌을 때, 고모는 커피를 사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작은아버지는 창밖 하늘로 유유히 뻗어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행기가 말이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작은아버지였다.

 '이륙 후에 계속 비행을 해야 할지 회항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단다. 그걸 반환점, 터닝 포인트라고 하지. 결국, 그 선을 넘으면 이륙한 시점에서 되돌아 올수 없음을 뜻하는 거야.'

 작은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고모한테서 얘기 다 들었다. 작은아버지의 눈가에 주름이 씁쓸하게 잡혀갔다.

 '처음엔 네가 온다는 말에 그저 반갑고 기뻤단다, 하지만 그게 일종에 도피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치 않구나.'

 탑승수속을 받기 전, 작은아버지는 일별하듯 한 마디를 내 귀에 흘렸다.

 

'네 인생에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구나. 기다리고 있으마.'

 

 멀리 고도를 가르는 비행기의 엔진음이 허공을 메워간다. 흰 띠처럼 남겨진 비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눈으로 뒤쫓는다. 비행기는 회항점을 지나 유유히 멀어진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목적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고개를 들어 조감도처럼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산중턱을 가로지른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비행기는 하늘 위로 긴 여운을 아득히 남겨놓은 채 사라진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차를 출발시키지 못한 채 잠시 망설인다. 갑자기 이제 와서 두려워진 거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이란 걸 알면서도 자꾸만 미련이 남는 이유는 왜일까. 백미러에 비친 딸아이는 멍하니 차창만 응시하고 있다. 이게 정말 아이와 나를 위한 일인지 불안해진다. 다시 길을 잃은 기분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도로 갓길에 세워진 이정표를 바라본다. 이번엔 길이 아닌 자신감을 몽땅 잃어버린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다면 과연 내게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다시 고모집에 돌아가고 싶어진다. 멀어지는 고모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다기 세트를 받은 고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고모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린 건, 어서 빨리 차를 우려내 마셔보고 싶다며 물을 끓이던 그때였다. 커피포트에서 뿜어지던 수증기의 진한 여운이 감돌던 순간이마에 손을 짚은 고모의 두 뺨이 눅진하게 젖어 들었다. 잠시 낮잠에 빠져있던 딸아이를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모는 연신 불쌍한 것, 불쌍한 것, 하며 되뇌었다. 불콰해진 눈을 애써 훔치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창피하게울고 싶지 않았다, 아니 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드니깐 주책만 늘었네, 어휴. 찻물을 우려낸 고모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한숨을 몰아쉬며 내 앞에 놓인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고모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셨다. 겨울해의 짧은 역광을 등진 채 바라본 고향집의 앞뜰은 의외로 아늑했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쉬워졌다. 글은 잘 써지겠네. 애써 눙치듯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고모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다음 달 출간이라는 말에 나는 책을 보내지 않으면 고모 팬 카페에 들어가 악플을 달겠노라 으름장을 놓았다. 고모와 나는 한참을 웃다가 시린 겨울의 스러지는 볕처럼 조용해졌다.

 아버지 묘에는 그동안 길고 억샌 잡초들이 자라 있었다. 책과 노트들만 즐비한 고모집엔 낫이나 호미 같은 농기구가 없어 손으로 일일이 풀을 뜯어야했다. 딸아이는 간만에 본 나무와 풀들이 신기한지 연신 묘 주변을 뛰어다니며 신나했다. 왜 조금 더 일찍 찾지 않았을까. 괜히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봉긋이 솟은 묘에 돋은 풀을 뽑으며 엄마 옆에 나란히 묻힌 아버지를 바라봤다.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와 오래 마주한 시간이었다. 독백하듯 나는 아버지에게 두런두런 말을 건넸다. 이민 준비는 모두 끝났으며 당신이 그토록 아끼던 두 아들도 만났노라고 이야기했다. 동생들은 많이 초췌해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동생들은 나를 보자 주뼛거리며 교도관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이민을 가게 됐다는 말에 이내 동생들은 빗방울 같은 눈물 주르륵 쏟아냈다. 그 순간만큼은 파렴치한 사기범이 아닌 철부지 꼬마들이 되어 있었다. 그래, 조금 일찍 엄마를 여읜 탓이겠지내가 엄마 역할을 잘했으면 동생들도 엇나가지 않았을 텐데. 울먹이는 녀석들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출소하면 누나 돈부터 제일 먼저 갚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건강히 잘 지내라고만 말해주었다. 동생들은 잘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산소 주변을 정리하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자 신기하게도 마음속 응어리진 것들이 말끔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랄까. 이민을 생각하기 전에 이곳을 찾았다면 혹시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처음으로 바보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곳만 바라보는 인형처럼 다른 곳을 보지 못한 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런 점이 길치들의 가장 큰 약점이 아닐까 싶다.

 얼마 후면 우리 모녀는 미국인이 된다. 국적이 달라지고 서류상 외국인이 된다는 게 고모는 왠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고모는 떠나는 나와 딸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또 놀러오라며 울먹였다. 멀어지는 고모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 나는 이미 그때 자신감을 잃었는지 모른다. 떠나는 자의 조건 중 돌아보지 말고 가야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이미 수십 번 뒤를 돌아봤다. 마치 떠나기도 전에 되돌아온 사람처럼 초췌하고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나는, 떠나는 방법조차 잊은 채 길을 나섰는지도 모른다.

 

 이정표에 새겨진 지명과 거리를 가늠해본다. 딸아이가 의자 등받이에 매달려 왜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딸아이의 뺨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조수석에 펼쳐놓은 지도를 다시 반듯하게 접어놓고는 차를 천천히 출발시킨다. 다음 안내시까지 직진입니다안내음성이 강조하듯 반복한다. 다음 안내시까지 직진입니다.

 멀리, 또 한 대의 비행기가 회항점을 향해 날고 있다.



<당선소감>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생각"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그날부터 5. 글쎄, 누군가에게 5년은 인생의 짧은 한 부분일 것이다. 소설로 치면 단편 정도분량이나 될까.

  5년 동안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결혼을 했고, 이별을 했으며, 또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시간은 사람들 곁을 머물다 각자의 방식대로 흘러갔다. 그럼 그 5년이란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그래, 난 소설을 썼다.

  크리스마스이브,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당선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지금껏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 가장 의미 있고 기쁜 선물이었다. 한편으론 기쁘고 가슴이 벅찼지만, 다른 한편으론 조금씩 두렵고 망설여졌다. 간절히 기다린 일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올 가을부터 내 안에 뭔가가 자꾸 사라져가는 기분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과연 소설을 계속 써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기로에 서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현실이 내민 단 꿀 같은 타협에 내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것일지도 모른다.

  5년 동안 소설을 썼지만 직장생활도 꾸준히 해왔다. 다른 이들처럼 마음 편히 쉬어본 적 없이 일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내 인생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던 문학이란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손을 내밀어준 광남일보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생각하고 다시 느슨해진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다.

  고마운 분들이 아주 많다. 일단 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과 광남일보에 감사드리며, 부모님과 형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다음 카페에서 함께 활동하는 '종각역 글벗들' 그리고 '블라인드 스토리텔러' 문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마 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면 분명 문학의 끈을 놓쳤으리라.

  앞으로 더 좋은 소설을 쓰기위해 노력하겠다.

 

 <약력>

 ▲ 1978년 안동 출생

 ▲ 2002년 장안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2007년 경기문화재단 사이버 문학상 (산문부분) 입선

 ▲ 초등 독서토론 및 글쓰기 지도사 활동

 ▲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휴학 중

 ▲ 파주출판도시 출판유통회사(북센) 근무

 

 

<심사평>

 

서사가 살아야 구성도 탄탄하다

 

  응모작들을 보면 대체로 문장이 평준화 되어 있어, 이제 신춘문예공모에서 문장으로 승부를 겨룰 수 없을 것 같다. 응모작 대부분이 세태를 반영하듯 노인문제나 청년실업 외에 사소한 개인의 일상이 이야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여전히 길고양이 등장도 많았다.

  전체적으로 서사가 부족하고 사회를 꿰뚫어보는 시대적 안목이 결여된 점이 아쉬웠다.

  본선에 오른 10편에서 '시간을 훔치는 도둑', '안드로이드 점원', '지구를 식혀라', '터닝 포인트'  4편으로 압축하고 꼼꼼하게 다시 읽었다. 아들을 감옥에 둔 엄마가 거리에서 교통카드 충전을 해주는 이야기 '시간을 훔치는 도둑'은 주제를 살려내는데 실패했다.

  '안드로이드 점원'은 로봇 점원의 눈에 비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소재가 신선하기는 하나, 구성이 헐겁고 주제도 약하다. '지구를 식혀라'는 여수 해양박물관에서 쓰레기를 줍는 청소 아줌마의 삶을 다루었다. 역시 구성이 산만하고 주제가 약한 것이 흠이다. 이상 세 작품은 서사가 약한 탓으로 구성이 헐거운 결점을 갖고 있다.

  '터닝 포인트'는 미국 이민을 앞둔 이혼녀 이야기이다. 화자는 놀이방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딸과 함께,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아버지의 고향에 내려가 고모를 만나고 돌아온다. 다소 진부한 소제에 구성도 단조로우나 문장이 깔끔하고 서사도 살아 있다.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끌어가고 있는 힘이 돋보이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는다는 주제도 어느 정도 살려냈다. 빼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소설적 완성도를 갖춘 '터닝 포인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 : 문순태 전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