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수족관 / 장성욱

 


개불이 먼저 나서서 시체의 왼팔을 목에 둘렀다

새우는 다른 쪽 팔을 들었다 "하나, , "

구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산 아래 마련된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보이지 않았다. 침착해. 운전대를 잡고 있던 새우가 속으로 자신에게 되뇌었다. 일이 벌어졌을 때부터 다른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해온 말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자."

조수석에 타고 있던 넙치가 말했다. 일단 사람은 없어 보였다. 운전대를 잡은 새우는 느린 속도로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다. 주차장의 구석에 감시카메라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새우는 차를 카메라 아래쪽 공간에 후면 주차했다. 어떤 경우라도 등잔 밑은 어두운 법이다.

"너 확실히 지웠지?"

뒷자리에 타고 있던 개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가 있는 건물 주차장의 카메라는 관리사무소에서 관리했지만 입구와 내부는 카운터의 컴퓨터에 저장되었다. 카운터는 개불의 담당이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서도 새우는 개불을 시켜 영상을 지우도록 했다. 확실한 공범이 아니면 필요가 없었다. 개불이 불안한 듯 자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또 뭐가."

조수석에서부터 돌아온 신경질적인 반응에 개불은 눈을 깜빡였다.

"지금 새벽 두 신데. 누가 일도 없이 여기 차를 세워두겠어요."

넙치는 주차된 차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은 말이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가 귀찮았다. 차의 시동이 꺼졌다.

"진짜 할 거예요?"

"그럼 가짜로 하냐? 이 새끼는 아까부터."

"아뇨. 저는 그냥."

그제까지 잠자코 있던 새우가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차 안을 메우고 있던 히터의 열기가 빠져나가며 찬 공기가 몰려왔다. 그는 운전석의 문을 열어둔 채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조수석에 앉은 넙치가 차에서부터 멀어지는 새우의 등을 불만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

개불이 앞좌석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아까 폰 꺼두라고 하지 않았냐."

"그랬어요? 전 모르겠는데."

"말을 말자."

"."

다시 뒷좌석에 몸을 기댔다.

"."

"부르셨어요?"

자꾸만 부르는 게 귀찮았지만 개불은 순순히 대답했다. 이번에는 넙치가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명처럼 넙데데한 그의 얼굴에 붙은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요?"

"너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약속이요?"

눈썹 아래의 눈이 골똘해지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그가 그렇게 진지해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개불은 침을 삼켰다.

"나중에 문제 생기면 무조건 쟤한테 뒤집어씌워."

"새우형한테요?"

"너랑 나만 입 맞추면 돼. 무조건 저 새끼가 시켜서 그랬다고 해. 알았지?"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개불을 시켜 영상을 지우도록 한 사람도 새우였다. 진실이란 것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형들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요?"

"친구는 씨발. 쪽팔리게. 저 새끼 중딩 때 나한테 좆나 처맞고 다녔어."

"에이."

"야 내가 인문계로 갔으면 저 새끼 아직도 내 눈도 못 쳐다봐."

넙치가 후회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렇구나."

그때 통화를 마친 새우가 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전화하면서 대충 둘러봤는데 사람은 없는 것 같아. 가자."

새우가 운전석 문에 붙은 레버를 당겨 트렁크를 열었다.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넙치가 차에서 내리며 가벼운 탄성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마치 여행을 하느라 차 안에 오래 앉아있던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행동이 애써 여유 있는 척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새우는 슬쩍 코웃음을 쳤다. 개불은 쭈그려 앉아 구겨 신었던 운동화 뒤축을 당기며 어리둥절해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담배를 피우며 딴청을 부리는 넙치를 뒤로하고 새우가 트렁크를 열었다. 침침한 어둠 속에서 피비린내가 훅 하고 올라왔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불 켜봐."

"."

휴대폰 플래시 불빛에 트렁크 내부에 들어있던 매니저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로 두 시간 전까지 함께 술을 마셨던 그의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개불은 차로부터 한 발짝 멀어졌다.

"아 씨발."

그제야 트렁크 쪽으로 다가오던 넙치가 그 광경을 보고 욕지기를 뱉어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올라가는 길에 누구라도 마주칠 것을 대비해 옷을 갈아입히는 편이 나아보였다. 새우는 시체 앞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침착한 자신이 낯설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 모양이었다. 시체의 양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었다. 넙치와 개불은 뒤쪽에 선 채 서로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시체에 손을 대는 것이 불경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새우는 짜증이 났다. 아까부터 혼자 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하냐. 같이 좀 들어."

넙치가 개불의 등을 시체 쪽으로 밀쳤다. 덕분에 들고 있던 휴대폰 불빛이 시체의 얼굴 위에서 흔들리며 마치 웃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 하지 마요."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쫄았냐."

넙치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새우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다 이내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고 있는 두 사람이 한심해보였다.

"야 적당히 좀 해."

새우의 볼멘소리에 넙치는 기분이 상했다. 도무지 앞뒤가 꽉 막힌 녀석이라니까. 넙치는 잠자코 시체의 다리를 들었다.

"쬐깐한 게 더럽게 무겁네."

확실히 매니저는 몸집에 비해 무거웠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시체를 바닥에 눕혔다.

"이제 어떻게 해요?"

새우는 대답하지 않고 개불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뺏어 시체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바지는 어두운 색이라 괜찮았지만 윗도리와 뒤통수 부근에 피가 많이 묻어있었다. 이대로 누군가의 눈에 띄면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었다. 뒤통수에 묻은 피를 보며 넙치는 마른침을 삼켰다. 새우에게 목을 졸리고 있던 매니저의 손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포크로 향했다. 순간 새우의 등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개불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신 역시도 그렇게 겁먹은 모습일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새우에게 지는 기분이었다. 넙치는 넘어져있던 의자를 들어 매니저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너 가게 유니폼 있지?"

새우가 물었다.

"제 거요?"

깔끔한 성격의 개불은 언제나 퇴근할 때 자신의 유니폼을 챙겼다. 그의 얼굴에 불안한 표정이 스쳤다. 새우는 자신이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벗어 매니저의 머리에 씌웠다. 그렇게 하면 개불 역시도 순순히 유니폼을 내놓으리라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바닥에 앉혔다.

"괜찮겠죠?"

"아마도."

여전히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새우는 자신의 머리칼을 손으로 헝클어뜨렸다. 모자에 눌려있던 머리카락이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부스스해졌지만 불길한 생각은 가시지 않았다.

"몇 시야."

넙치가 자신의 시계를 확인했다.

"네 시."

늦가을이라고 해도 앞으로 세 시간 정도 후에는 해가 뜰 것이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새우가 시체로부터 돌아서서 두 사람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 하자."

"왜요."

"업는 순서 정해야지."

개불은 시체의 모습을 살폈다. 다리를 편 채로 퍼질러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단순히 술에 곯아떨어진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고 믿어야만 했다.

"가위바위보."

세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첫 번째 주자는 보를 낸 개불이었다.

"형 늦게 낸 거 아녜요?"

"뭐 이 새끼야."

넙치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늦게 냈잖아요. 가위."

"씨발 사람을 뭘로 보고. 너 씨발 아까부터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나중에 발뺌하려는 것 아니야?"

개불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컴퓨터를 조금 조작한 것밖에 없었다.

"그냥 내가 업을게."

새우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 하나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개불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결정에 불만이 없는 듯 넙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불이 목 언저리를 만지며 한 발짝 물러섰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옆길로 들어섰다. 플래시로 비춰야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아주 희미한 길이었다. 개불은 시체를 업은 새우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로 낙엽을 치워가며 걸었다. 땀이 났다.

"여기 맞아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매장을 주장한 사람은 넙치였다. 개불은 그보다는 바다에 던지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새우는 고개를 저었다. 바다까지는 적어도 두 시간은 달려야 했다. 차를 집에 돌려놓는 시간을 생각하면 현실성 없는 의견이었다. 넙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일 학년 때 백일장을 하러 왔던 산이었다. 넙치의 패거리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옆길로 새어서는 담배를 피우고 놀았다. 사실은 패거리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지만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끔은 여자애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당시에도 산을 오르며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래는 불분명했고, 친구들은 가까이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살다보면 잘못 든 길로 접어들어야만 하는 순간이 오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씨발 여기서 인생 쫑낼 수는 없잖아. 시체 앞에서 머뭇거리던 두 사람을 향해 넙치가 한 말이었다.

"잠깐 쉬자."

새우가 말했다. 시체를 내려놓은 후에 바닥에 앉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놀게 되었다. 새우는 올라오는 내내 뒤에서 따라오기만 하던 넙치를 바라보았다.

"."

"아냐. 몇 시야."

"사십 분 됐어요."

"둘이 팔 하나씩 어깨에 걸쳐서 들고 가자. 부축하듯이. 남은 한 명은 앞에서 길 비추고."

넙치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아 씨발. 좆같네. 아까부터 씨발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형들 왜 그래요."

"너 혼자 편하게 올라왔잖아. 나는 그냥 민주적으로 하자는 거지."

"이 지랄을 해놓고 민주는 씨발."

"말 똑바로 해. 네가 머리 때려서 죽은 거잖아."

"이 씨발. 목 조른 건 너 아냐."

"그땐 분명 살아 있었거든?"

매니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후에도 한동안 목을 조르고 있었기에 확신은 들지 않았다.

"형들 하지 마요."

실제적인 살인의 과정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개불은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 잘못하다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우려됐다.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넙치와는 다르게 새우는 시종일관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너는 할 줄 아는 욕이 씨발밖에 없냐."

"씨발. 뭐라고 했냐. 야 비켜봐."

넙치는 막아선 개불을 밀쳐내고 새우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귀까지 먹었어? 쓰레기 새끼. 허기야 대가리에 뭐라도 들어야 욕도 잘하지."

"그만하세요. 우리끼리 싸우면 어떻게 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쏘아보았다. 넙치는 당황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주치면 항상 고개부터 숙이던 놈이었다. 저도 모르게 잡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씨발. 애 앞에서 쪽팔리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하게 오한이 났다.

"우리 얼른 가요. ?"

개불이 먼저 나서서 시체의 왼팔을 목에 둘렀다. 오늘 처음으로 보이는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새우는 다른 쪽 팔을 들었다.

"하나, , ."

구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개불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서워?"

옆에서 함께 시체를 들고 있던 새우가 물었다.

"."

"무서울 필요 없어. 이미 죽었잖아."

확실히 그랬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는 새우였다. 그는 매니저가 죽고 난 직후에도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지켜야할 것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도 새우였다.

"잠깐만."

다시 시체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새우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산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통화내용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개불은 아예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서 있지 말고 앉으세요."

"씨발. 지 목숨 살려준 줄은 모르고. 안 그러냐?"

개불 역시도 매니저의 손이 포크를 향하는 것을 보았다. 매니저가 싫기는 했지만 최대한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넙치와 눈이 마주쳤었다. 개불은 재빨리 눈짓으로 포크를 가리켰다. 무슨 일이 터지기 전에 막으라는 뜻이었다.

"글쎄요."

넙치가 욕지기를 뱉어내며 바닥의 흙을 발로 찼다.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확실히 그는 알고 있는 욕이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착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자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으로 가면 저는 제가 아니어도 될까요?"

넙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너 영어 잘하냐?"

"아뇨."

"가서 어쩌려고."

유학원에서는 일 년 정도 어학연수 코스를 밟으면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거기에는 하기에 따라서라는 전제가 붙었다.

"저 이 년제잖아요. 먹고살려면 여기선 답 없어요. 그래도 거긴 못사는 나라니까 가면 좀 낫대요. 집에서도 보내준다 하고. 뭐 갔다 오면 영어라도 하겠죠."

"요즘엔 영어만 가지곤 안 된다던데."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요?"

넙치는 자기야말로 답이 없는 상태라고 자각했다. 고등학교라도 제대로 졸업했으면 군대에라도 짱박혀보는 건데. 물론 검정고시라도 본다면 좋겠지만, 공부를 다시 할 자신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은 학교를 다니는 새우가 부러웠다. 오한이 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전화를 마친 새우가 다시 돌아왔다.

"은어예요?"

개불이 물었다. 은어라는 별명 역시 매니저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온몸이 은색빛깔을 띠는 아주 예쁜 물고기라는 말과 함께였다. 인터넷에서 은어 사진을 찾아본 개불은 그녀의 깨끗한 느낌과 아주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우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질투가 났다.

"이제 일도 안 하는데 무슨 은어야. 현서라고 불러."

새우는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매니저는 항상 은어를 소재로 농담을 했다.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서가 일을 그만둔 첫 번째 이유였다. 회식이라도 있을 때면 더 심한 말을 지껄여댔다. 새우야, 은어 먹어 봤냐? 씹을 때마다 아주 수박향이 나서 한번 맛들이면 다른 건 못 먹어. 하지 말라고 말하면 교묘하게 빠져나갈 것을 알았기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우리가 해산물 뷔페잖냐. 우리 여름 되면 은어 한번 먹으러 갈까? 그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개불아."

그때까지 딴청을 부리던 넙치가 입을 열었다.

"."

"너 은어 먹어 봤냐?"

이참에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을 성싶었다. 새우는 곧바로 넙치를 향해 다가가 주먹을 뻗었다. 얼굴에 주먹을 맞은 넙치가 코를 감싸 쥔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지체하지 않고 달려들어 복부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앞으로도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밟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당했던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밟아놓고 싶었다. 찌질한 복수 따위가 아니었다. 어느 쪽으로든 확실히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조치였다.

"그만하세요. 제발."

그러거나 말거나 새우는 계속해서 쓰러진 넙치를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결국 개불은 뒤에서 새우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참 피곤한 형들이었다. 배를 제대로 맞았는지 넙치는 신음하며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새우는 척추부터 찌르르한 쾌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매니저와 싸울 때도 느꼈지만 생각대로 몸을 움직여서 누군가를 제압하는 일은 상당한 중독성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매일매일 성실하게 운동을 한 결과였다.

"좀 성실하게 살아. 이 한심한 새끼야."

아프기도 했지만 쪽팔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성실하게 살라는 충고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형 괜찮아요? 일어나 보세요."

개불이 넙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목소리가 어딘가 신난 사람처럼 들렸다. 넙치는 신경질적으로 어깨에 얹힌 손을 쳐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맞고 다녔다느니, 그런 말은 안 하는 건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크리스마스 캐럴의 가사 같은 생각을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개불이 기어코 그의 몸을 일으켜주었다. 옷에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넙치는 부적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조그마한 접는 칼을 꺼냈다.

"."

개불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역시나 이런 일에는 끼고 싶지 않았다.

"씨발."

욕지거리를 하며 꺼내놓은 칼 앞에서도 새우는 침착했다. 기억으론 넙치가 중학생일 때부터 겁을 주기 위해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무대 위에 총이 나왔다면, 결국 발사되어야만 한다. 교양으로 들었던 드라마의 이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수업인 줄 알았는데 연극론 수업이었다. 넙치는 주인공이 아니었고,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가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칼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설정상의 오류라고 불렀다.

"시체 하나 더 치우려면 고생하겠네."

침착한 새우의 모습에 넙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예전과는 다르게 칼 정도로는 아무도 겁을 먹지 않았다. 넙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기어코 울음이 터졌다.

"……."

다른 욕은 정말 생각나지 않았다. 새우가 규정한 대로 자신이 무식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서러웠다. 무엇에 대해 서러운지 알 수 없었다. 서러움이란 원래 가닿는 지점이 없는 질투라는 사실을 넙치는 아직 몰랐다. 앞으로 평생 동안 그를 지배할 감정이었다.

얼른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감정에 휩쓸려서 눈앞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들은 새우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찌질한 새끼.

"이따 울어. 시간 없어."

이제 별로 위로하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개불은 무연하게 땅바닥을 발로 차댔다. 그때마다 조그만 돌조각이 튀어 올랐다.

"그런데요."

개불이 재차 발로 땅을 찼다. 새우가 고개를 돌려 개불을 바라보았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가. 땅이 얼었네요."

손으로 땅을 파보았다. 손톱 밑으로 흙이 파고들었다. 표면을 덮고 있는 보슬보슬한 토사 아래의 땅은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손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어쨌거나 그건 다행이었다.

"내려가야겠다."

"?"

"내가 내려가서 삽 사올게."

개불이 넙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좋은 새우가 삽을 잊었을 리가 없다. 어쩌면 여기까지도 이미 그의 계획에 포함된 일인지도 몰랐다. 넙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발로 차서 낙엽 밑에 감췄다.

"지금요?"

"요즘 마트 이십사 시간이잖아."

"씨발 널 어떻게 믿어. 너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아직 덜 맞았나. 새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삽을 챙기지 못한 것은 그냥 실수였다.

"나밖에 운전 못하잖아. 걸으면 삼십 분은 걸리는데. 내려가는 시간도 있고."

"저도 못 믿어요. 솔직히 돌아온단 보장이 없잖아요."

세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럼 나랑 넙치랑 갔다가 올게. 네가 지키고 있어."

탐탁잖은 제안이었지만, 그게 가장 나아보였다. 넙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요."

"왜 또."

"시체랑 둘이 있어야 하잖아요."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서워."

무서운 시체와 시체보다 무서운 인간, 어느 쪽도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몰라요. 저는 혼자 남으면 무조건 도망갈 거예요."

"치사한 새끼."

넙치가 말했다. 개불은 도망가면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그럼 넙치가 남아있든가."

넙치의 머릿속에서 개불과 했던 약속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작정하고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

"씨발. 너희를 내가 어떻게 믿어. 난 무조건 혼자는 싫어."

"저도요. 무서워요."

운전을 하는 사람은 새우 혼자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죽어도 혼자 있기는 싫다고 한다. 선택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 행위이긴 할까. 새우는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넙치가 앞장을 섰다. 그는 이제 말수가 줄었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어딘가 어른처럼 보이는걸. 개불은 생각했다. 새우와 개불은 각각 어깨에 시체의 팔을 하나씩 걸치고 산길을 내려갔다. 새우는 머리가 복잡했다. 선택과 집중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형 괜찮아요?"

숙성한 침묵을 깨고 개불이 말했다. 넙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개불이 재빨리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새우가 재빨리 시체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 형은 왜 이렇게 술을 마셔가지고."

새우는 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산길을 올라오는 사람은 중년의 남자였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모양새가 노숙자처럼 보였다. 넙치가 걸음을 늦추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체를 가렸다. 땅바닥만 바라보며 올라오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니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도리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인사했다. 넙치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에. 안녕하세요."

뷔페에서 서빙을 맡은 새우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반가움을 가장해 화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날이 쌀쌀하네."

남자가 혼잣말처럼 읊조리며 세 사람을 지나쳐갔다. 넙치는 걸음을 늦춰 시체의 뒤편에 섰다.

"얼른 내려가서 해장하자."

"그래요."

"형 좀 일어나 봐요. 어휴."

새우가 과장된 몸짓으로 시체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넙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묻혀 남자의 모습은 이미 잘 보이지 않았다. 구토가 날 것 같았다.

"갔어?"

"."

"모르겠죠?"

"글쎄."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개불은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 하루 십계명 중에 몇 개를 어겼을까. 은어는 새우가 처음으로 잔 여자였다. 수박 냄새. 처음 그녀의 옷을 벗길 때 새우의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그 말이 생각났다. 더러운 농담이었지만, 그 때문에 더 흥분을 했던 것도 같다. 수박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술을 마신 후에 흘리는 땀에서 나는 미약한 지린내와 비릿한 생선육수 같은 냄새가 날 뿐이었다. 은어는 이미 경험이 있는 눈치였다. 입맛이 썼다. 새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너 언제 가냐."

"곧 가죠."

개불의 집은 어느 정도 사는 편이었다. 그는 외국에서 쓸 비자금을 마련해두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그 사실은 중요했다.

"조금만 늦춰라."

"?"

개불이 고개를 돌려 새우를 바라보았다.

"아니,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잠잠해질 때까진 있어. 부탁할 것도 있고."

상식적으로 맞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얼른 도망가야 했다. 앞서 걷는 넙치의 등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 새끼처럼 바보로 보이나. 개불은 속으로 두 사람을 비웃으며 주머니 속 USB 메모리를 만지작거렸다.

"글쎄요. 그게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일은 아니라서. 일정이란 게 있으니까요."

이윽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처음 출발했던 곳이었다.

시체를 다시 트렁크에 넣고 차에 올랐다. 새우는 여전히 운전석에 앉았고, 이번에는 개불이 조수석에 탔다.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었다. 땀이 나서 더운 탓이었다. 비상등 버튼 위에 달린 시계가 다섯 시 이십삼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우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잠시 눈을 감았다.

"가요."

차가 출발했다. 큰길로 나오자 듬성듬성 차들이 보였다. 해가 뜰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형마트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에 걸렸다. 새우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달리라고 말했을 넙치는 팔짱을 끼고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없었다. 세 사람이 탄 차 오른편에 다른 차가 한 대 섰다. 개불은 힐끗 옆 차를 보았다. 은회색의 아반떼였다. 운전자는 여자였다. 자신의 옆에 시체를 실은 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여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 계기반 앞에 올려두었던 새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면 액정에 은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 오는 전화였다.

"안 받으세요?"

"운전 중이잖아."

"제가 받아볼까요."

"아니."

그때 신호등이 바뀌었다. 옆에 있던 아반떼가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새우는 멀어지는 차의 미등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내 잘못만은 아니잖아.

"."

그제까지 조용하던 넙치의 말에 새우는 반사적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휴대폰의 진동이 멈췄다. 핸들을 돌려 마트 주차장 안으로 진입했다. 편한 세계였다. 트렁크 속 시체를 묻기 위해 이 층의 생활용품 코너에서 삽을 살 것이다. 죽은 태아는 어디에 묻힐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편한 세계였다.

"개불아. 나 돈 좀 빌려줘라."

"?"

"금방 갚을게."

마트의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차가 멈췄다.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개불은 이번에는 시체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밝은 곳에서 보니 세 사람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매장의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저희 마트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넙치가 멈춰 섰다. 그의 고개가 향한 방향의 끝에 패스트푸드점 간판이 있었다.

"배 안 고파?"

"우리 뭐 좀 먹어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웃기게도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재밌네."

새우가 중얼거렸다.

"오백 원만 더 내시면 사이즈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점원의 말에 새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겨우 그 정도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애를 떼고, 군대에 간다. 반대쪽의 선택은 뭐가 될 수 있을까. 가늠이 가지 않았다.

세 사람은 각자 시킨 햄버거 세트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넙치가 염소처럼 오물거리며 햄버거를 씹었다. 머리에 흙이 묻어 하얗게 센 꼴이 노인 같아 보였다.

"새우 버거 맛있네."

넙치가 건너편에 앉은 새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개불은 이상하게 목이 메어 콜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새우가 기침을 하는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아?"

"저 사실 외국 가기 싫어요."

한참을 캑캑거리던 개불이 말했다.

"나는 현서가 임신했어."

"와 진짜요? 축하드려요."

세 사람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웃음이었다. 새벽부터 쇼핑을 하러 온 쇼핑객들은 이상한 사람도 다 본다는 눈으로 그들을 힐끔거렸다. 넙치가 가장 먼저 트레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발 나가서 담배나 피우자."

세 사람은 마트 밖으로 나왔다.

"해다."

누군가 말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셋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평범한 하루의 시작 같았다. 깊은 밤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깊은 아침이란 말이 없는 이유는 이미 감춰야 할 것들을 모두 감췄기 때문이다. 아마도. <>



<당선소감>

 

"내 이기심으로 해온 글쓰기 배려해준 분들에 감사"

 

  학교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등단 소식을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일들이 나에게도 생긴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는 후배와 간짜장을 먹었다. 학교 앞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 폐업을 해서 둘째로 맛있는 집으로 갔다. 물론 내가 샀다. 커피는 후배가 샀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 후에 지금은 수상 소감을 쓰고 있다. 사실 워낙에 처음 있는 일이라 뭐라고 써야 하나 모르겠다.이제까지 고생했던 기억이 스쳐가고 그런 것도 없는 걸 보니 그다지 고생은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억지로 돌이켜보면, 글을 쓴다는 이유로 나는 나의 세대에서는 드물게 된 대학시절을 보냈다. 술 마시고 깽판도 많이 쳤고,글을 쓴다는 이유로 제멋에 취해 많이 날뛰기도 했다. 그때 내가 야지(野地)라고 생각했던 학교는 온실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그런 나를 어여삐 여겨 손해를 감수해준 모두의 배려 덕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십여 년 전 이용지가 해주었던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말에 힘을 싣기 위해 열심히 벌린 일들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글을 쓰는 일이란 결국 주변을 끊임없이 소모시키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매달렸던 건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보다 우울해졌으며, 더 비열한 인간이 되었다. 가면도 몇 개 가지게 되었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조금 더 들여다볼 생각이다.

 

1983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심사평>

 

생의 막장도 보통날처럼 빤하지 않은 관점이 매력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 '당신의 귀', '수족관'을 주의 깊게 봤다. '당신의 귀'는 캐나다 북부의 오일샌드 채취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데, 이 낯선 풍경이 낯설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지구의 어느 한 끝에 던져진 듯한 존재,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땅속에 묻혀 있는 아주 오래된 고독밖에 없는 인물이 작품 속에서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결말을 내는 방식이 치밀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지적되었다.

 

  ''은 쉽게 가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 이른 인생, 혹은 세계를 연극 무대 같은 ''에 집어넣어 의미 없는 순간들을 촘촘히 직조해낸다. 이 세계는 수몰 지역에서 서서히 몰락해가는 홀이고, 우리는 그 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잘 버텨낸다'라는 문장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이 촘촘한 직조가 답답하게도 여겨진다. 출구가 없는 홀이라는 소설의 배경이 배경에 머물지 않고 소설 자체로도 여겨진다. 이 작가가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게 있었음에도 '수족관'의 활달함이 주는 매력에는 살짝 못 미쳤다.

 

  '수족관' 역시 전폭적인 지지를 하기에는 망설임이 생기는 작품이다. 작품은 거의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가독성이 생기지만 이것이 작가의 치밀한 의도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논의가 이어졌다. 이 작품 역시 생의 막장, 출구가 꽉 막힌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상황을 빤한 방식으로 보는 대신 한 번 더 비틀어보는 시선이 매력적이었다. 이 시대에는 인생의 막장 같은 어느 하루조차도 모든 평범한 날들의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사는 것이다. 축하를 보낸다

소설가 최수철·김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