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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

조정일

숨 멈추고

한 발

보고, 듣고,

숨쉬고

숨 멈추고

한 발

보고, 듣고,

숨쉬고

가랑잎 한 장

내려앉듯이

그 위로

빗방울 한 개

구르듯이

산새가 걸을 때

 

 

<당선소감>


"선생님, 또 느껴도 돼요?" 한 아이의 말이 나를 깨워

 

있잖아요 사월에. 최순우 옛집 뒤뜰에서 볕 쬐는데, 어떤 선생님이 애들을 데리고 와요. 오 분 동안 봄 햇살 느끼고 시 쓰라고. "지금부터 말하는 사람은 시 하나 더 쓰기. 지난번에는 선생님 감동시킨 사람이 하나도 없어. 시작."

하니까 애들이 봄 햇살 느낀다고 요래조래 가만 앉아있어. 오 분 동안 말 안하고, 말 하면 시 하나 더 쓰니까. 나도 가만있었지. 부스럭거리면 방해될까봐 똑같이. 한 애는 해 보고, 한 애는 나무보고, 한 애는 담 쳐다보고, 오 분이 지났어.

이제 시를 쓰는데, 애들이 목소리 작게 묻는다. "선생님, 24행으로 해요?", "바람은 아직 겨울바람이에요?", "화장실은 어디에요?" 다른 애들이 시 쓰고 있으니까 말을 소곤소곤 해. 애들은 시 쓰고, 난 계속 한쪽에 가만있고. 시는 더 오래 쓰잖아. 혼자 심심하고 궁금하지, 뭘 쓰는지. 그런데 성격이 내성적이라 못 물어보고 그냥 '아이들이 오 분 동안 봄 햇살을 느끼고 시를 쓴다.' 그렇게 수첩에 적었어.

그런데 애들 말 중에 진짜 웃기는 말이. "선생님, 시 쓰면서 또 느껴도 돼요?" 우리는 보통 그런 말 안 쓰잖아. 그런데 걔는 조금만 더 느끼면 좋겠는데 느끼는 시간은 끝났고, 자기 느낌은 안 끝나고. 어떡해. 일부러 안 느끼려고 참다가 안돼서 물었나봐. 된다 그랬지 선생님은. 그런데 나는, 느껴도 돼요 선생님 또 느껴도 돼요? 와 그 말이 정말.

봄이 새로 옵니다. 아버지, 어머니, 태선, 정호 그리고 지금 저를 떠올리는 분들 모두와 이 기쁨을 나눕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5515행의 한 줌 언어로 생명과 자연의 심연을 보여줘"

 

먼저,'무의식이 말을 할 때에는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J. H. 휠록의 말을 빌려 당선작 '산새'(조정일)를 세상에 내보이는 기쁨을 외치고자 한다. 190여명의 응모작을 읽어내면서, 예년과 다름없이 '동시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말의 잔치'라는 해묵은 오해에 거듭 시달리던 심사위원들은 응모 번호 172번에 이르러서야 수작을 발견하고 감탄하며 안도했다.

5515행의 한 줌 언어로 영성으로 가득 찬 자연과 우주의 심연을 보여준 이 시는, 산새와 함께 우리를 걷게 한다. '숨 멈추고/ 한 발// 보고, 듣고,/ 숨쉬고'의 긴장감 넘치는 리듬과 행과 행 사이의 무한 간극 또한 자연계의 질서를 그려낸 듯 거리낌이 없다.

맑은 시 정신을 보여준 '겨울 발자국' '노래' '이른 아침'(이상 김우섭), 재기 넘치지만 양감이 부족한 '투명한 말''등산'(김아삭)도 눈에 띄었다. 더욱 발전되고 완성되면 뛰어난 동시가 되리라 믿는다.

'산새'를 읽는다면 어떤 침략자도 황폐하고 남루한 삶의 주인공도 그 작고 가벼운 걸음과 그 걸음의 찰나를 숨 쉬면서 가랑잎과 빗방울의 낙하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생명과 자연의 영성을 호흡하게 될 것이다.

심사위원 : 김용택(시인) 이상희(시인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