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주미경 / 모과나무
모과나무
주미경
휠체어 뒤에 책가방을 달고
재륜이가
학교에 갑니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모과나무 아래에서
길게 숨을 내쉴 때
모과나무는
가만히
휠체어를 내려다봅니다
무릎에 머리가 닿도록
허리를 휘었다가 젖히면서
반 바퀴
또 반 바퀴
언덕을 오르는 동안
뿌리에서 먼 가지 끝까지
잔뜩 힘을 주는
모과나무
재륜이가
언덕을 넘어
허리를 쭉 펴는 순간
뚝
모과가 떨어집니다.
<당선소감>
꽃이 되든지 바람이 되든지…
'신춘문예 응모'라고 적은 봉투를 내밀자 우체국 여직원이 "아!" 그러면서 해맑게 웃었다. 이 설렘을 안고 오늘, 이 작은 시골 우체국을 찾은 사람이 또 있었나 보다. 그 여직원의 미소가 나에게 행운의 신호였을까. 그러나 행운도 실력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행운을 바라기엔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당선 소식을 듣고 이제 비로소 희망을 품어 본다. 이 길에서 나를 찾아오는 누군가와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 말이다. 내 동시가 그 어린 독자에게 꽃이 되던지 바람이 되던지 무엇이든 되면 좋겠다. 88세의 양산 학춤의 명인 학산 김덕명 선생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단디 새겨라! 내는 지금도 하루 한 시간 반씩 추면서 다듬는다." 이제 시작(詩作)을 막 시작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나를 다듬고 동시를 다듬어야 할까. 그 시간을 즐기면서 이 길로 성큼 나가보련다.
나태해질 때마다 김은영 선생님께서 정신 번쩍 들게 해주셨다. '또박또박' 시 동무들이 없었다면 응모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평생의 문함(文銜)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부산일보에 감사드린다. 햇살 드는 안방 한쪽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조용히 문을 닫아준 표정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주미경/1969년 경기도 여주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시 모임 '또박또박' 회원.
<심사평>
생생한 묘사와 깊은 교감 '감동적
주미경, 김자미, 김규학, 이 세 분의 작품 '모과나무'와 '김장하는 날' '시험지'가 최종심 대상작품이었다. 부산은 물론 경상남북도,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수많은 작품 중에는 떨어뜨리기에는 아까운 작품이 너무 많아 마지막 세 편을 남기기까지의 심정은 고통 그것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세 작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좋을 완성도 높은 작품이지만 이 중에서 단 한 편만을 골라내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기도 했다.
그러자니 먼저 '시험지'에서 흠을 찾아냈다. 번득이는 재치가 그것이다. 재치가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고 허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재치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는 맞을지 몰라도 지나친 재치는 문학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김장하는 날'의 '곰실곰실/이야기가 익어간다/아삭아삭/김치가 맛들어간다'고 하는 마지막 연은 '김장하는 날'의 정취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흠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모과나무'는 흠잡을 데가 없을 뿐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는 아이의 생생한 묘사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모과나무와의 깊은 교감이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동시는 이래야 한다'고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
■심사위원 : 공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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