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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심부름

하지혜(하경자)

 

과일농사 짓는 삼촌에게

사과나무가 일을 시킨다.

 

-봉지 씌워

 

-겉봉지 벗겨

 

-속봉지 벗겨

 

-이제 따서 담아

 

사과나무 심부름하느라

이 가을 삼촌 얼굴도

발갛게 익었다.

 

 

<당선소감>


별처럼 반짝이는 이 순간을 함께 나누고파

 

좋은 꿈을 꾸었다. 당선이 된다는 꿈이다. 그러나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올해도 아니구나' 여기며 약간 김빠진 저녁을 먹고 있는데 당선 소식을 들었다. 떨리고 설레고 가슴 뛰었다.

그동안 지어온 동시 농사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2007년부터 해마다 강원일보에 응모, 본선에 두 번 오르고 떨어졌는데 45기 끝에 수확을 거두었다. 마음이 가라앉자 캄캄한 터널 속에서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길러 주신 어머니가 떠오르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낸 형제들을 생각하면 다시 힘이 난다. 이제 즐거운 고통의 길에 들어섰다고 보다. 길을 떠날 때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어디서 출발했는지 잊어버리기 쉽지만, 출발할 때 마음을 끝까지 붙잡고 가겠다. 새들의 깃털이 아닌 비상하는 정신을 그리는 진정한 작가가 될 것이다. 골치 아픈 걸 왜 하냐고 타박하면서도 나보다 더 동시 걱정이 많은 남편, 가장 자연과 가까운 사람이 되어 나무 같은 동시를 써내라는 옥이 언니, 동시 짓는 맘이 고장날 때마다 서로 서로수리해 주는 선생님, 문우들과 별처럼 반짝이는 이 순간을 나누고 싶다. 내게 최고의 상을 주신 강원일보에도 감사드린다.

 

하지혜(하경자·47)

명지대 유아교육학과 졸업, 오늘의 동시문학 신인상 당선 미래 동시모임 회원

 

<심사평>


동심적 상상력으로 사물을 따뜻하게 묘사

 

하지혜 씨의 `사과나무 심부름'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은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방법을 돋보이게 한다. 주변의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시안(詩眼)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어서다. , 달리보기를 통해 사물을 새롭게 형상화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나무 심부름'에는 `삼촌이 사과나무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가 삼촌에게 일을 시키는 것', `사과나무 심부름 하느라 이 가을 삼촌 얼굴도 발갛게 익었다' 와 같은 뛰어난 동심적 상상력으로 사물을 재미있고 따뜻하게 묘사하고 했다.

신인으로서의 신선함이 이런 데 있다. 그리고 명령조로 사과나무가 삼촌에게 일을 시키는 의인화가 바탕에 유머를 깔리게 해 웃음도 함께 선물한다. 하지혜 씨의 다른 작품들도 수작이다. 단숨에 읽히면서도 여운이 남게 하는 시들이다. 이런 점이 그를 선뜻 당선의 자리게 올리게 하였다. 동시단의 새로운 별로 뜰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심사위원 : 이화주·박두순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