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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

 

나뭇잎은 어쩌면

나무들의

생각인지도 몰라


뾰족뾰족

돋는 생각


여름

푸릇푸릇

펼쳐 낸 생각


가을

알록달록

재미난 생각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갖 생각

다 떨쳐버리고


다시 생각에 잠기는 

겨울




[당선소감] "작고 아무것도 아닌것들의 목소리 일깨워 주고 싶죠"

 

중학교 어느 땐가, 살림을 온통 뒤집어 놓는 어머니의 집안 정리를 돕던 중, 누렇게 바랜 원고 뭉치를 보았습니다. 설마 아버지의 습작일 줄은 몰랐습니다. 

문학을 위해 특별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20여 년 초등학교에서 지내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읽을 만한 동시를 뒤적이게 되고, 결국 그러다가 동시를 너무 사랑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시도 읽고 수필 쓰는 재미도 알지만, 3년 전부터 나는 이미 동시에 너무 깊이 빠져 버렸습니다.

 

작고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목소리를 일깨워 주는 동시, 아이들을 위로하는 동시, 가끔은 아이들을 철들게 하는 동시를 쓰고 싶습니다.

졸작에 미련을 두지 않는 생각하는 나무이고 싶습니다. 수많은 생각의 나뭇잎을 나부끼다가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다 떨구어 버리고 다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용기 있는 나무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문향이 내게로 이어져 기쁘시다는 어머니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가슴에 동그란 파문을 일으킵니다. 종종 내 동시를 읽고 재미있다며 호들갑 떨어주는 아내와 두 아이가 나의 연료입니다. 

내게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리라는 약속을 남겨둡니다.

 

 

[인터뷰] "어두운 방에 불 켜는 느낌… 메마른 동심에 위로 됐으면"


"작고 보잘 것 없어서 하찮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목소리를, 그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제 동시가 아이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동시 부문 당선자 한광일(47)씨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아침 자습으로 칠판에 동시를 써놓기도 하는데, 간혹 흥미를 끄는 글이 올라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다른 거 또 없어요, 선생님'하며 관심을 보인다.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마른 정서가 안타깝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아날로그적인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고 했다.

2005년에 문예지 두곳에서 수필로 등단한 한씨는 뒤늦게 동시를 읽고 쓰는 맛에 푹 빠졌다. 지난해까지 통일전망대에서 멀지 않은 탄현면 삼성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때 얻은 심상이 마르지 않는 샘이 됐다. "전학년이 6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가 산에 안겨 있는 형상이었어요. 학교쪽으로 구부러진 나무들이 많았는데, 참나무에서 나온 사슴벌레 유충을 채집해 기르는 등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시가 떠올랐죠." 

일산 집과 거리가 꽤 먼 삼성 초등학교로 출퇴근 하기 위해 자동차는 필수였지만, 책 읽을 시간을 얻으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동시 쓰기에 나섰다. 

"주변 동료들에게 동시를 써서 보여주기도 했지만 특별히 따로 공부를 한적은 없습니다. 아이들과 20년 넘게 지내다 보니 저절로 아이들의 말과 생각이 담긴 글에 관심이 커진 까닭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죠." 그의 시를 지지해주는 학생들은 또다른 힘이 됐다. 학교 계발활동에서 '동시부'를 꾸리고 있는 한씨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편으로도 동시쓰기를 권장했다. 

"패러디 동시 쓰기를 많이 하는데, 좋은 동시를 골라서 직접 써보는 겁니다. 한부모, 다문화, 조손가정 등 다양한 가정형태가 늘면서 전체적으로 예전 아이들이 겪는 것보다 힘들고 복잡한 감정을 혼자 겪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요즘엔 일기를 쓰는 아이들도 많이 줄었는데 내면을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동시는 자연스럽게 자기 생활을 비춰보게 합니다." 동시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는 그는 "아동문학이야말로 우리나라 문학의 저변"이라고 강조했다.

당선을 알리는 전화에 "어두운 방에 불이 확 켜진 듯한" 느낌이었다는 그는 "동시는 쓸 때마다 새로운 게 나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여러권의 동시집을 낼 때까지 꾸준히 정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사평] "군더더기 없는 생략의 문법… 그 여백이 큰 울림으로"


응모작들을 읽으며 설???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함을 겸비한 작품을 만나 머리가 찌릿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을 기대했다. 시 한 편으로 동심의 세계를 확 열어 제치는, 동심의 아름다운 세계를 탈칵! 열어주는, 열쇠 같은 명작의 탄생을 내심 고대했다. 

동시를 쓰는 마음 자체가 소중하여 응모된 작품들을 몇 번에 걸쳐 꼼꼼히 읽었다. 그러나 작품에 큰 느낌표 표시를 하며, 따로 뽑아놓을 작품이 나타나지 않아 안타까웠다. 

시골의 옛날 풍경을, 마치 그런 풍경이 동시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을 했던지, 밋밋하게 그려 놓은 작품들이 많았다. 또 발상의 재미에만 치우쳐 시의 깊이나 완성도를 소홀히 한 것들도 많았다. 응모작 중에는, 도서관에서 책이 대출 되는 순간을 책의 입장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잘 그려낸 작품도 있었고, 비좁은 돌 속에 살아도 미소를 변치 않는 부처를 멋들어지게 형상화해낸 작품도 있었으나, 같이 응모한 작품에 편차가 있어 제외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15편을 골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뒤, 시의 기본인 운율, 이미지, 사유의 깊이를 중요시하여 당선작을 결정하였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박서진의 '동그란 걸음'은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재기 와 발상의 재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단조롭고 울림이 작은 게 단점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한광일의 '생각하는 나무'는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한 작품이다. 생략의 문법으로 여백을 만들어 울림이 크다. '생각하는 나무'를 통해 '생각이란 나무'를 그려내는 그의 사유에는 분명 격조가 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맛깔스러운 언어와 수일한 이미지로 대상을 잘 그려내고 있음을 높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