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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콧구멍에 낀 대추씨 / 안안미

 

우리 할머니 집 세탁기는 

덜커덩덜커덩 

참 요란스럽게도 일한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 집 수리기사가 되는 

우리 아빠 

두리번두리번 

세탁기 한 쪽 받칠 만한 걸 찾는다 

-쪼매만 있어봐라잉 

창고에 다녀온 할머니 손에는 내 손바닥만한 장판 한 조각 

-콧구멍에 낀 대추씨도 다 쓸 데가 있제잉 

한 번 접고 두 번 접어 

세탁기 밑에 끼어 넣었더니 

수평이 딱 맞는다 

세탁기에 낀 장판 조각

콧구멍에 낀 대추씨




<당선소감>


 “아이와 함께 하는 벅차는 황금빛 동시로 옮겨 써”

 

 세상에는 글로도, 말로도 표현 못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억지로 표현해내려고 하면 할수록 본디 그 색은 바래버리고 맙니다.


 지금 제 상황이 그렇습니다. 당선 소감을 적어내려고 하니 자꾸만 제 자신이 옅어지는 느낌입니다.

 막연하게 바라기만 했던 신춘문예 당선의 자리.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처럼. 하지만 그 감정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어리빙빙해지는 제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져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춘문예 당선의 무거움, 이제 허투루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스스로의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꽃피어납니다.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제 목소리에 미어캣처럼 고개를 드는 아이들. 선생님이 출장을 가게 되었다는 말에 “그럼 우리는 어떡해요”하며 걱정하는 아이들. 내년에도 담임선생님이 되어주라며 종알대는 아이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선을 다해 문제를 푸는 아이들. 아침 독서시간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생긋 웃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제 가슴은 종종 벅차오릅니다. 마음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어느 가을날의 바스락거림으로 가득 차는 그 느낌. 그런 하루하루를 동시로 옮겨 썼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사랑하는 가족,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저와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작은 제 동시를 다독거려주신 한국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아이마음을 갈망하며 삶과 언어를 탐구하기

 

 100편의 투고작 가운데 가장 동시다운 동시를 고르는 일이니, ‘동시’란 무엇인지 그래서 어때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는 ‘동’시이기 전에 시이며, 아이는 아이이기 전에 인간이다. 그러므로 동시는 다만 시다워야 하며, 시다움의 바탕에는 인간과 세계의 탐구라는 문학적 과제가 놓인다. ‘아이’라는 꾸밈말은 아이와 함께 읽는다는 뜻이다.

 시는 응당 새로워야 하고 간결해야 하며, 삶과 세계의 본질에 육박하는 직관적 각성과 감성을 담아야 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읽는 시이니 아이가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써야겠지만, (아이에게) 준다거나 (아이인) 척한다거나 (아이를) 가르치거나 엿보는 따위로 아이를 ‘대상화’해선 아니 될 것이다. 동시는 존재하지도 않는 천사의 꽃밭을 그리거나 꽃밭에 사는 천사들에게 곱게 빚어 선물하는 멸균된 시가 아니라, 인간 품성의 궁극으로서 아이마음을 갈망하면서 그 마음으로 삶과 세계와 언어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표현하는 시다.

 그런 기준으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좋은 동시를 쓰겠다는 마음은 진실하고 한결같았겠지만, 동시에 대한 안일한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은 많지 않았다. 쉽지만 치열하고 풍성하나 간결하며 별나지 않아도 신선한 작품은 더욱 귀했다. 말을 금처럼 아끼는 미덕 또한 내내 아쉬웠다. 그런 가운데도 표현의 상투성을 깨뜨리는 실험적 시도(유승희 ‘쥐꼬리’)나 일하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김류 ‘생선 파는 할머니’), 스마트 시대의 역설을 포착한 눈매(이미화 ‘스마트 섬’), 아이 눈으로 바라본 노부부의 넉넉한 해학(정성수 ‘즐거운 식탁’)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작지 않았다.

 이견 없이 최종 두 명의 투고자가 가려졌다. 고심 끝에 안안미의 ‘콧구멍에 낀 대추씨’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평범한 일상에서 연륜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건져내는 과정을 이야기하듯 전개한 솜씨가 자연스럽고, ‘손바닥만 한 장판조각’에서 ‘콧구멍에 낀 대추씨’를, 다시 삶의 한 국면을 환기하는 은유의 연쇄가 흥미로웠다. 함께 투고한 두 작품도 신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견지해 좋았다. 경합한 신미균의 세 작품은 모두 기성의 역량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간결하면서도 이미지가 풍부한 ‘뭉게구름’을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제 몸을 줄였다 늘였다, 폈다 접었다, 잘랐다 붙였다 하며 혼자 노는 구름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러나 다른 두 작품의 새로움이 조금 아쉬웠다. 선에 들지 못한 까닭은 단지 그뿐이다.


심사위원 : 김장성, 이상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