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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소나기 지나갈 때 / 문신

 

바람이

물살처럼

풀잎 사이로

돌돌돌

여울을 만들고 나면

 

먼 곳에서

소나기 온다

 

콩밭 매고 돌아오는

엄마보다

빨리 온다

 

빨랫줄을 향해

풀뱀처럼 사사삭 온다

 

마루 밑 누렁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는

먼 곳을 보는 사이

 

소나기 지나간다

풀잎 끝에

또록또록 빗방울 맺혔다

 

낮잠에서 막 깬 내 동생

어리둥절해 있는 눈망울에도

그렁그렁하다

 

바람도

조마조마하게

딱 멈췄다



<당선소감>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 아름다운 운율로 추억했으면

 

  문신 소년 시절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느덧 지나가버린 까닭이겠지요. 그 무렵에는 동화든 동시든 읽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뒷산과 앞개울과 그리고 가끔은 거인처럼 무섭게 몰려오던 바닷바람이 이야기였고 노래였습니다. 그것들이 다들 어디로 가버렸는지 제게 남은 거라곤 턱밑에 난 조그만 흉터뿐입니다. 개울가 언덕 돌탑 모서리에 찍혀 울면서 집까지 걸어가던 풍경 하나가 내게도 그 무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엄마가 오래 안아주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동시를 읽고 또 쓰는 이유가 그 시절을 다시 살아가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떠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도 그 시절을 살아갑니다.

 

  열 살이 되는 윤이가 제 동시를 읽어줍니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줍니다. 동생들은 아직 글을 모릅니다. 세영이 주영이도 조만간 아빠가 쓴 동시를 읽어보겠지요. 저를 꼭 안아주었던 엄마의 품처럼,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살내음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멀리서 파도처럼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던 그 바닷바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더듬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신 심사위원님 덕분에 조그마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무뚝뚝한 글자들이 아니라 뒹굴기 좋은 언덕이 되고 자잘하게 부서지며 반짝거리는 물비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언덕에서 그 개울가에서 가벼운 발자국을 남길 아이들이 있겠지요. 그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옹기종기한 발자국들을 생각하며 동시를 쓰겠습니다.

 

1973년 여수 출생

전주대 국문학과·전북대 대학원 어문교육학과 졸업

2004년 세계일보·전북일보 시 당선

 


<심사평>

 

한순간의 풍경 촘촘히 묘사 수채화같은 회화성 돋보여

 

  예년에 비해 소재도 다양해지고 전반적으로 수준도 높아져서 반가웠다. 우선 아동시와 비슷한 유치한 작품이 줄어들고 세련된 시적 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 늘었다. 응모자들이 동시도 시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결과라고 본다. 동심을 바탕으로 시의 표현 기법을 가미하여 동시의 격을 높인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 적은 점이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이병일, 백승현, 강복영, 박은실, 문신의 작품이 남았다. 이병일의 해바라기 치과는 동화적인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그런데 발상이 평범하고 새롭지 못했다. 백승현의 소나무는 아빠에 대한 아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 냈으나 설정이 작위적이었다. 강복영의 봄이 보낸 편지는 동심적 발상으로 봄을 상큼하게 그려냈지만 참신성이 약했다. 박은실의 그림책을 팝니다는 그림책 장수의 신명나는 외침과 그림책을 보려고 몰려든 아이들의 모습을 동심이 가득한 풍경으로 정겹게 그려낸 솜씨가 돋보였다. 그러나 너무 평범한 묘사로만 끝나서 아쉬웠다.

 

  문신의 소나기 지나갈 때는 청신한 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빛났다. 기존 동시의 경향과 달리 시적인 여운과 회화성 짙은 작품이었다.바람이 불어오고 소나기가 지나가는 한순간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촘촘히 묘사하여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바람이 돌돌돌 여울을 만들고 소나기가 풀뱀처럼 사사삭 온다는 비유는 싱그럽고 신선했다. 풀빛과 물빛이 은은히 배어 있는 수채화 같은 서정성 짙은 작품으로서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도 수준작이라서 역량에 신뢰가 갔다.


심사 : 이준관·시인·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