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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카메라 자물쇠 / 윤애라

 

카메라 살짝 누를 때마다

찰칵 찰칵

문 잠그는 소리가 납니다

네모난 화면 안에 꼼짝 없이 갇히는 풍경

봄을 묻힌 개나리

노오란 손톱도

가을을 내려놓는

노오란 은행나무도

겨울을 또 이기고 온

진달래 붉은 두 뺨도

찰칵 찰칵

그 안에 소복하게 갇히고 맙니다

엄마를 못 알아보시는

할아버지 흐린 눈동자와

그걸 바라보시는

엄마의 글썽대는 눈동자까지

찰칵 찰칵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잠가버리고 맙니다

내 지문을 기억하는 카메라 자물쇠




<당선소감>

 

벼랑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그래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축복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비처럼 마음 놓고 날아보라고 벼랑에서 허공으로 제 등을 밀어주셨군요. 아이들을 향한 시선을 붙들고 살아가라는 이 행복한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러나 제 사랑을 증명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지금부터 제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낡은 동심을 조심스레 꺼내어 햇볕도 쬐고 바람에도 말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아직 설익은 제 작품을 영광된 자리까지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부족한 이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신 남편 박준현 님과 두 아들, 나의 글쓰기를 허투루 보지 않고 바로 세워 주신 권숙월 선생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라 하시던 노중석 선생님, 항상 문우(文友)로 껴안아 주시는 다움 문학회 식구들, 백수 아카데미 시조반 식구들, 저를 큰언니로 부르는 세 동생과 그의 남편들, 고맙습니다.

 

내 시의 마음 밭을 함께 가꾸던 제자들아, 사랑한다. 너희의 맑은 눈빛과 목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절망하고 말았을 거야. 이제는 몸을 입고 오실 수 없는 먼 집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 밤마다 보내주시는 별빛을 감았다 풀며 생전의 그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걷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름을 호명할 수 있게 섭리하신 나의 하나님! 달란트를 그냥 묻어 놓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63년 부산 출생

▷2004년 자유문학 시 부문 신인상

▷2012년 전국편지쓰기대회 금상

▷2013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차상

▷현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지도교사

 

<심사평>

 

참신한 발상과 삶에 밀착된 동심


동시는 동심과 시심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동심에 너무 무게가 실리면 문학적 향훈이 옅고 말놀이 같은 일상의 모습에 머무르기 쉽고, 반면 시심에 너무 기울어지면 이해와 공감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동시는 동심과 시심이 균형을 이루고, 이것이 화학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응모작품을 심사하면서 느낀 점은 위에 적시된 것과는 유리된 지나친 비약 및 공상, 어른의 눈높이에서 본 심상, 형상화되지 못한 산문적 표현 등과 같은 작품이 아직도 다수를 차지하였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정우기’ 씨의 「할머니 집에 모인 신발」 외, ‘김연자’ 씨의 「돌림노래」 외, ‘윤애라’ 씨의 「카메라 자물쇠」 외였다.

 

‘정우기’ 씨의 「할머니 집에 모인 신발」은 할머니 집에 옹기종기 모인 신발을 동심의 눈으로 포착하여 신발 주인의 삶을 정겨우면서도 건강하게 형상화하였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신인다운 새로움이 결여되고, 유사한 기존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해 먼저 제외되었다.

 

‘김연자’ 씨의 「돌림 노래」는 눈 내린 날의 정경을 동화적 상상으로 형상화한 가작이었다. 판타지와 시심이 결합된 산뜻하고 서정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돌림노래처럼 눈을 굴리고’ 등 몇몇 표현은 매우 신선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이의 밤은 그렇게 열꽃이 피고’와 같은 모호한 표현과 전체적인 심상이 동심에 밀착되지 않았다는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윤애라’ 씨의 「카메라 자물쇠」는 우선 발상이 참신하고, 눈높이가 동심에 맞추어져 있다. ‘찰칵 찰칵’과 같은 의성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여 청각적 이미지를 살린 것도 좋았다. 그리고 가벼운 스케치에 머무르기 쉬운 소재를 일상적 동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의 현장까지 시선을 확장한 시도가 돋보였다. 둘째 연의 사물에 대한 사진 찍기가 셋째 연에서 ‘할아버지 흐린 눈동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글썽이는 눈동자까지/ 찰칵 찰칵’과 같은 표현이다.

 

이것은 어머니의 가슴 저린 회한의 모습과 서로 대비되어 결코 가볍지 않은 이미지를 구현한 것은 유의미한 시적 울림이었다.

그리고 함께 보내온 수 편의 작품이 모두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데 신뢰를 갖게 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하청호(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