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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정복의 영웅 / 김희정


- 시나리오 시놉시스 -


 

1. 기획의도


상상 속 영웅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들이 진짜라 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순수한 아이는 누가 봐도 가짜인 그들을 진짜라고 믿을 것이다. 낯설고 외로운 환경에 처하게 된 아이가 우연히 TV 영웅 파워맨을 만나게 된다. 남자는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는 대역배우이지만 자신을 진짜라 믿는 아이의 순수함에 동화된다. 동심이 있기에 가능한 아이와 남자의 우정은 어떤 모습일까?




2. 등장인물


이정복 (남, 7세) : 속 깊고 따뜻한 성품의 아이. 파워맨의 열혈 팬. 상상력마저 풍부하다. 어린 아이지만 고집부리기 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하다.


김현성 (남, 29세) : 스턴트 대역배우. 지방출신으로 액션배우가 꿈이지만 현실은 대역배우에 태권도학원 사범이다. 투박한 인상 때문에 깡패 대역을 주로 맡는다.


양복희 (여, 68세) : 정복의 조모, 작은 과일가게 운영. 말투나 행동은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다. 과부로 키운 외아들이 죽자 며느리와 연을 끊고 살았다.


박윤정 (여, 38세) : 정복의 모, 마트 계약직사원. 혼자 힘들게 정복을 키워왔다.


임세나 (여, 9세) : 새침한 성격. 이혼한 엄마와 산다. 전문직 엄마는 늘 바쁘다.


최관장 (남, 40세) : 태권도학원 관장. 현성의 대학선배로 현실에 만족하고 산다.


서씨 (여, 69세) : 생선장사. 복희와 막역한 사이. 깍쟁이 성격에 남의 말을 잘한다.


그 외 여러분 : 민사장, 교관, 우진, 우진의 일당, 민환, 민환모, 문구점 주인 등등.

 


3. 줄거리


정복의 일곱 살 인생에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떠나 한 번 본 적 없는 친할머니에게 맡겨진다. 할머니는 말도 퉁명스럽고 아이라고 봐주는 법도 없었다.

복희에게도 손자를 떠맡게 된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아들 잡아먹은 것 같은 며느리도 밉고 유복자로 태어난 손자도 보기 싫었다. 연을 끊고 산지 7년이 지난 어느 날 며느리는 손자를 부탁해왔다.

낯선 환경에서 의기소침해진 정복의 유일한 위안은 ‘파워맨’(아이언맨, 파워레인저 類의 가면영웅으로 가상 캐릭터)이었다. 우노 행성에서 낯선 지구로 떨어진 파워맨…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상황을 겪고 영웅이 된 정의의 사도. 정복은 파워맨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 그러다 진짜 파워맨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정복이 새로 다니기 시작한 태권도 학원의 사범 현성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지구에 살고 있는 파워맨을 돕기로 한다.

현성은 액션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었지만 우락부락한 얼굴 탓에 번번이 오디션에 떨어지는 통에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태권도 사범 일을 하고 있었다.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디션을 보지만 들어오는 일이라곤 깡패나 악인 대역뿐이었다.

그러다 가면을 쓴 파워맨 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곤경에 처한 정복을 도와주다 소품으로 차고 있던 팔찌를 들킨 것이다. 그때 파워맨을 연기한다는 얘기를 주변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제작진의 특별 당부가 떠오른다. 소문이 나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뺏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는 웃어넘겼지만 자신을 진짜라고 믿는 정복을 마주하자 심각성이 느껴졌다. 현성은 동심보다는 일자리를 뺏기게 될까봐 걱정됐다.

그러던 중 정복은 불량초등학생인 우진의 일당에게 5만원 지폐를 뺏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복에게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엄마와 약속이 담긴 귀한 돈이었다.

정복은 잃어버린 돈을 찾아 엄마와 한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파워맨의 능력이 필요했다. 현성을 찾아가 파워맨의 힘으로 도와달라고 하지만 현성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 없었다. 대신 나쁜 놈들한테 맞고 다니지 않도록 태권도 특훈을 해준다. 그러다 우연히 우진을 목격한 정복은 결투를 신청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불안한 마음에 차고 갔던 파워맨의 팔찌까지 망가뜨린다. 왠지 모를 죄책감과 자책감을 느낀 현성은 5만원을 봉투에 넣어 정복에게 준다. 하지만 정복은 그 돈이 자신의 돈이 아니라는 걸 안다. 봉투에는 일만원 권 지폐 5장이 들어 있었다.

정복은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정복은 일방적으로 맞고 깨지지만 껌딱지처럼 우진의 뒤를 따라다녀 질리게 만든다. 결국 정복은 우진의 항복을 받아내고 돈을 돌려받게 된다. 정복의 인생 최초의 승리였다.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과 동시에 파워맨과의 끈끈한 우정을 느끼게 됐다. 모두 파워맨의 덕분인 것이다. 정복은 태권도 승품심사에도 도전한다. 자신을 떠나보낸 아픈 엄마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맡아준 할머니를 위해 남자다운 강한 모습을 보이기로 한다. 그렇게 승품심사에서 따낸 품띠를 아픈 엄마에게 보여주는데…


정복의 영웅



변두리 동네 거리 / 오후

정복(7세남), 낡은 유치원 배낭을 메고 어린이용 캐리어를 끌며 걷고 있다.

앞에는 복희(68세여)가 커다란 이민자 가방을 끌고 잰걸음으로 가고 있다.

정복은 그런 복희를 놓칠 새라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열심히 따라간다.

그런데 정복의 캐리어가 바퀴가 돌출된 보도블록에 걸려 기우뚱한다.

정복은 캐리어를 세우고 고개를 드는데 복희가 눈앞에서 사라져 당황한다.

급히 캐리어를 끌고 위태롭게 코너를 돌면 복희가 미간을 찌푸리고 서있다.

복희, 혀를 차며 앞서가고… 정복은 그런 할머니가 무섭기도 하고 눈치 보인다.

그래도 열심히 쫓아가는…


 

과일가게 앞 / 오후

동네 전통시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고 오래된 과일가게다.

정복, 가게 간판을 올려다보면 ‘영봉상회’라는 상호가 붙어있다.

복희는 열쇠로 가게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눈을 끔벅이며 간판을 바라보는 정복… 타이틀, <정복의 영웅> 뜬다.


 

살림집, 방 / 저녁

과일가게에 딸린 살림집으로 작은 부엌과 방이 하나 딸려있다.

김치와 나물 반찬이 대부분인 밥상에 달걀프라이를 담은 접시가 놓인다.

복희, 말없이 밥을 먹는데… 정복도 눈치를 보며 밥을 먹기 시작한다.

정복의 눈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달력이 들어온다. 무슨 날이지?


 

복희 (숟가락질을 멈춘 정복을 보고는) 햇짓 말고 얼릉 먹어.


정복 (흠칫, 괜히 물을 마시다가 컥 걸린다) 컥컥.


복희 쯧쯧, 찬찬치 못하게. (다시 밥을 먹는 정복을 보다가) 밥 먹으면서 들어. 너도 낯설고 힘들겠지만 나도 똑같어. 앞으로 나랑 살라믄 반찬투정, 어리광은 안 돼. 쌈박질도 안 되고 거짓말도 안 되는 거야. (거의 숟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정복을 보고) 그리고 밥 남기는 것도 안 돼. 알아듣지?


정복 네. (눈치 보며 먹는)


복희 누가 지 에미 새끼 아니랄까봐 눈치는… (보다가 한숨)




회상 / 찻집 / 낮

복희, 떨리는 손으로 물을 마시고 컵을 탁 내려놓는다.


맞은편에 앉은 윤정(38세여),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복희 뻔뻔한 것!


윤정 염치없지만 부탁할 데가 어머님뿐이에요.


복희 누가 어머니야? 남의 자식 잡아먹고 이젠 나까지 잡아먹으려고 그러냐?


윤정 (먹먹한 얼굴로 보는)


복희 왜? 억울해? 그래서 나보다 억울하냐? 낯짝도 두껍게 어딜 찾아와!


윤정 (고개를 푹 숙이는) 죄송합니다.


복희 (코웃음) 니가 자식 끼고 혼자 살 위인이 아니지. 에미란 게 새끼 떼놓고 뭐하려고? 왜? 새서방이 싫다더냐! 너 같은 건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아!


윤정 저한텐 뭐라 하셔도 다 괜찮아요. 정복이만 맡아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복희 (미간이 좁아진다) 모질고 뻔뻔한…


 


현재 / 살림집, 방 / 밤

복희, 정복의 옷들을 개다가 돌아보면 정복은 피곤한지 새근새근 자고 있다.


복희, 베개를 꺼내 정복의 머리에 베어주다 손에 들린 목걸이 지갑을 본다.


복희, 목걸이 지갑을 빼내 열어보면 윤정 독사진과 5만원권 한 장이 들어있다.


복희, 지갑을 정복의 손에 쥐어주고 달력을 본다. 빨간 원이 눈에 들어온다.


 


유치원 놀이터 / 낮

정복,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듯이 보다가 다가간다.


그 중에 혼자서 파워맨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남자아이에게 다가가는 정복…


아이(민환, 6세남)보다는 장난감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민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장난감을 움직이며) 피융- (정복을 향해)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수호하겠다. (뒤로 물러서는 정복의 코앞에 장난감을 들이밀며) 사라져라, 악당! 이얍-


정복 그건 파워맨이 아니야.


민환 뭐어? 이거 파워맨 맞아.


정복 파워맨은 이얍- 이 아니라 파워 업- 이라고 하는 거거든.


민환 쳇, 나도 알아. 그래도 나는 내 맘대로 할 거야. 내 거니까.


정복 그건 가짜 파워맨이야.


민환 (화난) 가짜 아니야! 저리 가. 파워맨도 없으면서 잘난 체는…


정복 나도 집에 있어. 그거보다 훨씬 좋은 거야.


 


민환, 정복에게 장난감을 흔들며 약 올리고… 정복은 부러 심드렁하게 간다.


 


유치원 입구 / 낮

복희, 유치원 선생님(20대여)의 배웅을 받으며 나온다.


복희는 선생님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숨을 푹 내쉬며 돌아선다.


복희, 정복이 어디 있나 살피는데 어느새 달려와 기대에 찬 눈으로 보는 정복.


복희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자리 없대. (가는) 윗동네에도 한번 가보자.


정복 (따라가며) 할머니.


복희 (퉁명) 왜에?


정복 저 유치원 안 다닐래요.


복희 (걸음 멈추고) 뭐? 왜 안 다녀?


정복 그냥…


복희 (보다가) 그래, 내년이면 초등학교 들어갈 텐데 그냥 몇 달 집에서 쉬는 것도 뭐… 너 한글은 뗐냐?


정복 네.


복희 숫자는? 덧셈, 뺄셈도 할 줄 알어?


정복 할 줄 알아요.


복희 그럼 됐다. 그만 가자. (다시 걸음을 옮기며) 괜히 반나절 장사만 날렸네.


정복 (유치원을 돌아보고는 아쉬운 발길을 옮긴다)


 


살림집, 방 / 저녁

정복, 공책을 펴고 엎드려 한글공부 중이다.


삐뚤삐뚤하지만 또박또박 쓰고 있다. 이정복, 박윤정, 양복희… 가족의 이름이다.


정복,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TV를 틀려는데… 복희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온다.


 


복희 (밥상을 내려놓으며) 기특하게 공부하냐? 어디, (공책을 가져와 읽는) 이정복, 박윤정, 양복희. (의외)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


정복 엄마가 알려줬어요.


복희 근데 아빠 이름은 안 알려줬어?


정복 알아요. 이영봉. 아빠는 같이 안 살잖아요. 하늘나라에 있으니까.


복희 그래도 다음부터는 써버릇해. 아버지 이름 꼭 써.


정복 네. 근데 왜 복희상회가 아니고 영봉상회예요?


복희 그거야· 원래 가게 이름은 애들 이름 갖다 쓰는 거야.


정복 아빠는 애가 아니잖아요.


복희 할머니한테는 자식이니까. 밥 식겠다. 어서 먹어.


 


복희, 구운 고등어의 가시를 발라서 정복의 숟가락에 놓아준다.


정복은 의외의 친절에 기분이 좋아지면 한 입 맛있게 먹는다.


 


복희 고등어 맛있냐?


정복 네. 저 생선 좋아해요.


복희 (기특한) 그러냐? 뭘 젤로 좋아하는데?


정복 갈치요. (눈치 보며) 할머니 티비 틀어도 돼요?


복희 밥 먹으면서 헷짓하게? 다 먹고 봐.


정복 집에서도 꼭 보던 건데…


복희 그게 뭔데?


정복 파워맨이요.


복희 (마음 약해지는) 티비 보면서도 밥 꼭꼭 씹어 먹을 수 있어?


정복 (밝아지며) 네.


 


복희, TV를 틀어주면 파워맨 시그널 음악이 흐른다.


정복, 신나서 밥을 먹는다. 복희는 정복이 아이다워 보여 다행으로 여긴다.


 


병원 로비 / 저녁

커다란 화면에 파워맨이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파워팔찌를 사용하고 있다.


“파워 업!” TV 앞 의자에 정복 또래의 꼬마들이 푹 빠져서 보고 있다.


그리고 맨 뒷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는 어른의 뒷모습. 환자복을 입은 윤정이다.


신나는 아이들의 표정과 대비되게 윤정의 표정은 슬프다.


 


유치원 놀이터 앞 / 낮

정복, 슬금슬금 다가와 울타리 너머 놀이터 안을 넘겨다보면 아무도 없다.


정복, 실망한 얼굴로 돌아서다 땅바닥에 버려진 바람개비를 본다.


정복, 바람개비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주인이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앞 거리 / 낮

정복, 바람개비를 날리며 슬슬 걷고 있다가 문방구 앞에 선다.


유리 진열장에 파워맨 장난감(6신 민환의 것보다 멋지다)이 진열되어 있다.


정복, 입까지 벌리고 보는… 정복, 목에 걸린 목걸이 지갑을 꽉 쥐며 침을 꼴깍.


정복, 이내 도리질을 하고 돌아선다. 그래도 아쉬움 가득한 시선으로 돌아본다.


 


공원 일각 / 오후

정복, 바람개비를 위아래로 흔들며 달리는데 혼자 노는 것이 심심해진다.


이때, 이얍- 이얍- 기합소리에 멈춰 서는 정복.


 


공원 다른 일각 / 오후

정복,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다.


현성(29세남), 소림사 고수처럼 현란한 무술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포스에 압도당한 정복은 눈을 끔벅이며 보는데… 현성도 정복을 봤다.


 


현성 꼬마야,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형아 멋있냐?


정복 (민망한 마음에 바람개비만 만지며) 뭐, 쪼끔.


현성 아뵤~ (이소룡 포즈)


정복 헤, 그게 모에요? 못생겼어요.


현성 얘가 이소룡을 모르네. 아뵤~ 아뵤~ (이소룡 포즈)


정복 헤헤헤, 진짜로 못생겼어요.


현성 (자존심 상한) 인마, 남자는 얼굴이 다가 아냐. 근데 너 학교 땡땡이 쳤지?


정복 저 학교 안 다니는데요.


현성 그래? 그럼 유치원생?


정복 유치원도 안 다녀요. 이 동네로 오면서 그만 뒀어요.


현성 됐고. 좀 있으면 해진다. 엄마 걱정하시기 전에 빨리 집에 가라.


정복 우리 엄마는 나 안 찾아요.


현성 (참나) 왜? 너 버리고 도망이라도 가셨냐?


정복 (울컥) 못생긴 아저씨! (말을 뱉고는 도망치듯 달려간다)


현성 헉! 어이없어. 저거, 순하게 생겨가지고는… 어른을 이겨먹으려고 하네.


 


과일가게 앞 + 안 / 낮

예쁘게 쌓아놓은 과일들 보이고… 복희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민사장(50대 남), 과일가게 안으로 들어서다 복희를 보고는 한숨을 쉰다.


 


민사장 아주머니!


복희 (퍼뜩 잠이 깨며) 네, 뭘 드릴까?


민사장 주인이 졸고 있는데 어떤 손님이 과일 사러 들어오겠어요? 힘들면 그만 접으시던가요.


복희 과일 장사 안하믄 누가 나 먹여살려주나요? 힘에 부쳐도 해야지. 바쁜 사장님이 어쩐 일이래요?


민사장 그게… 가게 내놓을 생각 없으세요?


복희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이래요?


민사장 10년 간 사정 봐드렸으면 저도 할 만큼 한 거예요. 선친 유언 때문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 드렸다고요. 근데 막내처남이 여기에 치킨집 하겠다고 마누라랑 합세에 졸라대는 통에 골이 울릴 지경이에요.


복희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러믄…


민사장 (말 자르며) 마누라 성화도 있고 이런 때 성의를 좀 보이시면 저도 면이 서죠. 시세에 맞춰 보증금이라도 올려주셔야 할 거 같아요. 막말로 저야 공짜로 들어오는 처남보다 보증금에 월세 내는 아주머니가 훨씬 낫죠.


복희 (어쩔 수 없다) 얼마나요?


민사장 그간 시세가 있는데 못해도 천은 올려야죠.


복희 (놀라는) 천이나…


 


시장, 생선가게 / 오후

서씨(70세 여), 생선을 토막 내 비닐에 담는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여손님에게 건네고 돈을 받다 복희가 오는 모습을 본다.


 


여손님 많이 파세요.


서씨 네, 또 오세요. (복희에게) 안 그래도 올 때가 됐다 했어.


복희 갈치 물 좋은 놈 있으면 한 마리 줘봐.


서씨 짠순이가 그 비싼 갈치를 다 사네. 손주가 무섭긴 무서운가벼.


복희 사지말까?


서씨 아이고, 맘 바뀌기 전에 서둘러야겠네.


 


서씨, 눙치고는 갈치를 좋은 걸로 골라 도마 위에 올려 손질을 한다.


복희는 멍하니 서서 한숨을 쉬고… 그 모습을 보던 서씨는 대충 눈치가 있다.


 


서씨 오늘은 무슨 일이랴, 이놈저놈 고르지도 않고?


복희 알아서 좋은 놈으로 주겠지. 애 입맛이 그래도 지 애비를 닮았드라고.


서씨 다 늙어서 왜 애는 데려와 고생이랴? 애 엄마가 그냥 키우게 두지.


복희 누군 좋아 데려왔어? 사정이 있다는데 어쩔 거야. 그보다 여윳돈 좀 있어?


서씨 갑자기 돈은 왜? 손주 데려오니까 돈 쓸 일이 많아 그랴?


복희 그게 아니고 민사장이 가게 보증금을 올려달라잖아.


서씨 하긴 민사장이 효자였지 나 같음 아부지 돌아가시자마자 영봉상회 보증금부터 올렸을 거여. 얼마나 올려 달라는데?


복희 꼬치꼬치 묻지만 말고, 있어? 없어?


서씨 내가 돈이 워딨어. 이참에 며느리한테 해달라고 혀. 자식 떼놓고 시집가믄서 그 정도는 해주겄지. 사람 도리는 해야 할 거 아녀.


복희 비싼 밥 먹고 왜 쓸데없는 소릴 해! 누가 시집을 간대?


서씨 내가 이래봬도 눈치가 백단이여. 딱 봐도 그거 아녀.


복희 이 여편네, 이상한 소리만 들려봐! 주둥이를 확 찢어놓을 테니까.


서씨 왜 화를 낸대. (기세에 눌려 입을 삐죽이고)


 


과일가게 앞 / 오후

문 닫힌 가게 앞에 정복이 쪼그려 앉아 분필로 땅바닥에 파워맨을 그리고 있다.


그때, 누군가 앞에 선다. 정복, 올려다보면 피아노학원 가방을 든 세나(9살여)다.


예쁜 세나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정복, 심장이 떨려 고개를 푹 숙인다.


 


세나 너, 아무데나 낙서하면 안 돼.


정복 (쭈뼛 일어서며) 여기 우리 할머니 가게 앞이야.


세나 이 길은 나라 거야.


정복 (발로 쓱쓱 지우는)


세나 니 이름이 영봉이니?


정복 (보고는) 그건 우리 아빠이름이야. 나는 이정복.


세나 (미소) 그렇구나.


정복 (예쁘다, 설레는) 넌 이름이 뭔데?


세나 임세나. 난 2학년인데 넌 몇 학년이야?


정복 난 일곱 살이야. 내년에 학교 들어가.


세나 그럼 유치원생이네. 너가 아니라 누나라고 해.


정복 나 유치원생 아니야. 유치원 안 다녀.


세나 그래도 내가 누나야. 근데 넌 학원도 안다니니?


정복 (기가 죽어 고개를 끄덕)


세나 그렇구나. 그럼 갈게. (가는데)


정복 무슨 학원 다녀?


세나 피아노 학원, 영어 학원, 미술 학원, 발레 학원 그리고… 다 말해야 해?


정복 아니. 지금은 어디 가는데?


세나 지금은 피아노 학원. 그건 왜?


정복 아니야. 잘 가.


세나 이상한 애네.


 


정복은 활기차게 걸어가는 세나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오던 복희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정복, 복희를 보고는 발로 쓱쓱 낙서를 지운다.


 


복희 잘 그렸는데 그냥 둬. 많이 기다렸어?


정복 조금요.


복희 (가게 문 열며) 니가 하도 안와서 문 잠그고 시장 갔다 온 거니까 원망 마.


정복 네.


복희 들어가자. 담부터는 어디 가면 간다고 얘기하고. (가게로 들어간다)


정복 (혼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따라 들어간다)


 


살림집, 방 / 밤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정복. 뭔가 떠올리며 히죽 웃는다.


 


<플래시백> 16신, 과일가게 앞


꽃미소를 보이는 세나의 모습에 정복의 상상이 더해져 어느새 드레스를 입은 동화 속 공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세나가 된다.


 


<현재> 수줍은 정복, 이불을 끌어올리는데 옆자리에서 앓는 소리가 난다.


정복, 일어나 끙끙거리며 자고 있는 복희의 이마를 짚어본다.


그 결에 복희는 잠에서 깨지만 계속 자는 체 눈을 감고 있다.


정복은 복희의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눕는다.


복희, 그런 정복의 모습을 실눈으로 보며 왠지 모를 흐뭇함을 느낀다.


 


학원 건물 전경 / 낮

1층은 상가, 2층은 피아노 학원, 3층은 태권도 학원, 4층은 미술학원이다.


복희, 학원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정복도 같이 올려다보고 있다.


 


복희 배우고 싶은 거 있음 골라. 없음 다른 데로 가보고.


정복 괜찮은데…


복희 너 하루 종일 가게에 있는 거 꼴 뵈기 싫어서 그래. 친구라도 새겨야 밖에 나가 놀 거 아냐.


정복 진짜 괜찮아요.


복희 내가 안 괜찮아. (건물을 훑어보더니) 사내자식이 너무 맥아리가 없어도 큰일이니까 태권도 배우는 거 어때?


정복 괜찮…


 


그때 정복은 세나가 피아노 가방을 들고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세나의 주변에 빛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세나만 환상적으로 보인다.


정복은 복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복희는 정복의 태도에 헛웃음이 난다.


태권! 태권! 하는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오버랩 되며…


 


태권도 학원 / 낮

일렬로 선 아이들, 일사분란하게 두 주먹을 단전 위에 가져다 놓는다.


수련을 마친 아이들… 마주선 사범(남)과 90도 인사를 하고 우르르 흩어진다.


이때, 관장실에서 최관장(30대 남)의 안내로 복희와 정복이 나온다.


 


최관장 김사범님. (사범, 돌아보면 현성이다) 여기는 신입부원 이정복이에요. 태권도 처음 배운다니까 잘 가르쳐주세요.


현성 아, 예. (정복을 보며) 반갑다. 김현성 사범이다.


정복 (아! 현성을 보고 놀라 눈만 끔벅인다)


복희 인사해야지.


정복 (꾸벅) 안녕하세요? (고개를 푹 숙인다)


현성 어? 너… 혹시, 나 기억 안 나냐?


정복 네? (난처한) 아… 아니요.


복희 애가 워낙 숫기가 없어요. 잘 가르쳐주세요.


현성 네. 걱정 마세요, 할머님. 인마, 내일부터 신나게 해보자.


정복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네.


 


과일가게 앞 / 다음날, 오전

복희, 빗자루를 들고 가게 앞을 쓸고 있는데 한 남자가 기웃거리며 다가온다.


복희, 비질을 멈추고 보면 민사장의 처남(40대 남)이다.


 


처남 할머니가 여기 과일가게 주인이에요?


복희 (이상하게 보며) 그런데요.


처남 가게 언제 뺄 수 있어요?


복희 이 양반이 아침밥을 잘못 먹었나? 밑도 끝도 없이 뭔 소리래.


처남 우리 형님한테 얘기 못 들으셨나? 내가 여기에 치킨집 오픈하기로 했는데.


복희 이런! (빗자루로 삿대질) 뻔히 장사하는 거 보면서 뭐가 어쩌고 어째?


처남 이 할머니가 미쳤나?


복희 민 사장 댁하고 내가 쌓은 세월이 얼만데 어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야!


처남 완전 남하고 처남하고 같아요? 돌아가신 사돈 믿고 이러나 본데. 꿈 깨요.


복희 다 필요 없으니까 가요, 가라고!


처남 거지도 아니고 그만큼 적선했음 양심껏 나가주셔야지!


복희 (빗자루 휘두르며) 이 호랑말코가 마수걸이하기도 전에 어디서 초칠이야!


처남 (빗자루 피하며) 이 할매 완전 노망났네. 노망났어.


 


처남, 주변의 시선도 있고 복희의 기세 때문에 가버린다.


거친 기세가 푹 꺾여버리는 복희, 기운이 쏙 빠져 가게로 들어간다.


 


과일가게 안 / 오전

복희, "소금이라도 뿌려야지."하며 들어오는데 정복이 불안한 얼굴로 서있다.


복희, 괜히 어린 것한테 못 볼꼴 보였다 싶지만 부러 퉁명스럽게 말한다.


 


복희 별 일 아니니까 그러고 섰을 거 없어. 돈 가지고 유세 떠는 인간이 저 인간 하나도 아니고 세상에 쌔고 쌘 게 저런 인간들이야. 저런 인간들 상대하기 싫음 돈 귀한 줄 알고 공부 열심히 해서 악착같이 성공해. 알았냐?


정복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이 무겁다) 네.


복희 아침밥이나 먹자. 사람은 배가 든든해야 힘나는 거야.


 


학원 건물 앞 / 낮

정복, 학원으로 들어가려다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이때, 학원 승합차 도착하고 현성이 아이들을 지도해 하차시킨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건물 안으로 경쟁하듯 뛰어 들어간다.


현성,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정복에게 다가온다.


 


현성 너, 첫날부터 땡땡이치려고?


정복 네?


현성 차에서 봤어. 들어갈까 말까 꽤 고민하는 눈치던데… 인마, 너 나 알지?


정복 (고개를 끄덕이고는) 돈, 돌려주세요.


현성 돈? 무슨 돈?


정복 저 태권도 안 배울 거예요.


현성 에? 야! 사나이가 치사하게 그렇게 나오면 안 되지.


정복 돈 돌려달라고요.


현성 누가 들으면 내가 너 삥 뜯은 줄 알겠다. 니가 좀 버릇없이 굴긴 했지만 내가 그걸로 너 막 어떻게 하고 그러겠냐? 나 그런 인간 아니거든. 나 무지 쿨해. 나보다 약한 사람은 절대 안 괴롭혀.


정복 그냥 학원비 돌려주세요.


현성 얘가 은근 말이 안 통하네. 할머니 모셔와. 그럼 돌려줄게.


정복 (은근 뿔이 나서 보는)


현성 학원 안 다니려는 진짜 이유를 말해. 그럼 관장님께 잘 말해볼게.


정복 선생님이 못생겨서 싫어요.


현성 (어이없어 보는) 못생겨서 싫어? 안 되겠다. 니가 직접 관장님한테 돈 달라고 얘기하는 게 좋겠다.


정복 그럼 선생님이 무섭게 해서 안 다닌다고 할 거예요.


현성 우와, 요놈 착한 놈인 줄 알았더니… 무서운 거랑 못생긴 거랑은 완전 상황이 다른 거거든. 솔직히 말해. 너, 돈 받아서 나쁜 짓 할라 그러지?


정복 할머니 다시 줄 거예요. 나 때문에 할머니가 힘들게 일하면 안 돼요.


현성 할머니 마음은 그런 게 아냐. 손주한테 뭐 하나라도 해주고 싶으신 거야.


정복 엄마 올 때까지만 여기 사는 거라 안 다녀도 돼요. 돌려주세요.


현성 수업 시작할 시간이니까 오늘은 일단 들어가자.


정복 (현성이 내민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 버린다)


현성 (난감해 보는) 맹랑한 자식, 저거…


 


살림집, 방 / 오후

복희, 서랍장을 열고 개어놓은 옷들 밑에서 통장을 꺼낸다.


복희, 통장을 열어보면 잔고가 별로 없다. 다른 통장을 꺼내 봐도 마찬가지다.


복희, 이건 아니지 싶지만 손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두 손에 꼭 잡고는 고민한다.


복희, 통장을 열어보면 이정복 이름으로 된 통장이다. 잔액이 3000만 원이 넘는다.


 


은행 안 / 오후

복희, 번호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꼭 죄짓는 사람처럼 초조하다.


복희, 손가방에서 통장과 도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복희 그래, 잠깐 쓰고 채워놓으면 되는 거지. 그럼 되지.


 


번호가 바뀌는 소리가 날 때마다 점점 불안한 복희다.


 


<플래시백>


택시 뒷자리에 오르는 정복과 복희.


윤정, 택시 문을 닫기 전에 통장 하나를 복희에게 내민다.


 


복희 이게 뭐냐?


윤정 정복이 대학갈 때 쓰려고 조금씩 모으던 거예요. 어머님이 가지고 계세요.


복희 일없다. 니가 가지고 있다가 쓰면 되잖아.


윤정 일단 맡아주세요.


복희 애도 모자라 돈까지 맡길 셈이야!


 


윤정, 복희가 말릴 틈도 없이 통장을 택시 안으로 넣고는 택시 문을 닫는다.


 


<현재>


번호 바뀌는 소리 들리고… 복희가 손에 들고 있는 번호표와 같은 번호다.


복희,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과일가게 / 해질녘

복희, 빈 상자를 접어 한쪽으로 모아놓고는 허리를 편다.


복희, 허리를 두드리며 밖을 보며 혼잣말이다.


 


복희 학원은 벌써 끝났을 텐데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그새 친구라도 생겨서 그러는 건지… 얘가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나… (피식)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네.


 


이때, 술 취한 민 사장의 처남이 들어온다.


 


처남 (버럭) 할마씨! (잘 접어 세워놓은 상자를 발로 퍽- 찬다)


복희 이런 호랑말코 같은 인사가! 어디 남의 가게에 와서 행패야!


처남 행패?! 이 가게, 내 가게거든. 할마씨가 뭔데 다된 밥에 재를 뿌려!


복희 (말리다 처남이 밀친 힘에 넘어지며) 아이고, 어무니!


 


처남, “에잇!” 쌓아놓은 과일을 밀치자 우르르 떨어지는 과일들.


가게로 들어오던 정복의 눈에는 괴물이 할머니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복은 무작정 달려들어 처남의 허리를 주먹으로 마구 때린다.


처남, “이건, 뭐야!” 정복을 홱 밀치는데… 저만큼 나가떨어지는 정복.


그런 정복을 잡아주는 이가 있다. 정복은 그 사람의 손목에서 번쩍이는 것을 보고 눈이 커진다. 파워팔찌! 그 팔찌의 주인은 다름 아닌 현성이다. 헐!


 


복희 (울컥) 이놈의 인사가 누굴 밀쳐! 이놈아, 이 나쁜 놈아!


 


복희, 민사장 처남에게 달려들지만 처남의 힘을 당할 수 없다.


그때, 정복을 내려놓고는 순식간에 거구의 처남을 제압하는 현성.


정복의 상상이 더해져 괴물로 변한 민사장 처남을 제압하는 파워맨으로 보인다.


 


현성 이 아저씨가 어디서 행패야! 당신 같은 인간은 콩밥 좀 먹어야해. 할머니, 당장 경찰 부르세요.


복희 아니, 그래도 그게…


현성 보복 때문에 그러신 거면, (자기 핸드폰 꺼내며) 제가 신고할게요.


복희 과일 좀 상한 걸로 경찰 부를 거까진 뭐…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현성 그래도…


복희 됐어요. 변변찮은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놔줘요. (처남에게) 아무리 민사장 처남이래도 다음번에 또 이럼 그땐 정말 용서 안할 거요!


 


현성이 하는 수 없이 놓아주면 민 사장 처남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간다.


 


살림집, 방 / 저녁

현성은 정복, 복희와 함께 밥을 먹고 있다.


 


복희 찬은 없지만 많이 들어요.


현성 (반찬을 먹으며) 아주 맛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는데요.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밥인지… 제가 더 감사하네요.


정복 선생님 많이 드세요. (잘 먹는 반찬을 앞에 놓아주는)


현성 어, 그래. 니가 갑자기 친절하니까 적응이 안 된다.


복희 에구, 태권도 학원 선생님인지도 몰라봤네요.


현성 헤, 제가 의상에 따라 외모가 확확 달라지는 타입이거든요.


 


정복, 밥을 먹다 말고 현성의 팔찌를 훔쳐보자 현성은 은근슬쩍 가린다.


 


현성 아참,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건넨다) 이거 드리러 왔는데…


복희 이게 뭔데요?


현성 정복이 학원비요.


복희 아니 이걸 왜…


현성 정복이가 태권도 학원 안다닌다고 해서요. 제가 관장님께 한 소리 듣고 환불 받아온 거니까 맘 편히 받으세요.


복희 (정복을 보는) 니가 그만둔다고 했어?


정복 (난감한) 나는 그냥…


복희 아니에요. 다닐 거니까 다시 관장님 갖다 드려요.


현성 솔직히 그 학원 별로예요. (이상하게 보는 복희의 시선을 느끼고) 아, 제 말씀은 억지로 다닐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어차피 정복이 어머님 오시면 그만 둘 거라던데요.


복희 애가 별소릴 다 했나보네.


정복 (고개를 푹 숙이는)


현성 하하, 아까 보니까 정복이가 깡다구가 있어요. 할머니 지켜드리려고 악착같던데요. (어색하게 웃지만 분위기 풀리지 않는다. 눈치 보이는)


 


과일가게 / 저녁

복희, 상처 난 과일들 중에 괜찮은 것만 골라 비닐봉지에 담는다.


민사장 처남이 망가뜨린 과일들이다. 한가득 담은 비닐봉지를 현성에게 건넨다.


 


현성 아, 뭘 이렇게 많이…


복희 좋은 거 못 줘서 미안해요.


현성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복희 (봉투를 주며) 그리고 이거 가져가세요. 정복이 태권도 학원 보낼 거예요.


걔 엄마 올 때까지 만이라도 다니게 해야죠.


현성 아, 예. 근데 금방 안 오시나 보죠?


복희 (말을 못하는) 아무쪼록 선생님이 잘 좀 보살펴주세요.


현성 (무슨 사정이지?) 아, 예, 뭐. 알겠습니다.


 


과일가게 인근 거리 / 저녁

현성, 한가득 받은 과일을 들고 가는데 정복이 쫓아 나온다.


 


정복 선생님.


현성 어? 설마 따지러 나왔냐? 난 너 생각해서 학원비 환불 받아온 거야.


근데 할머니 생각해서 태권도 학원 열심히 다녀야겠더라.


정복 그게 아니고요.


현성 아, 고맙단 인사는 됐어. 나, 약한 사람 괴롭히는 거 못 본다고 말했잖아.


정복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현성 선생님 아니고 사범님. 자, 그게 아니면 뭔데? 뜸들이지 말고 말해봐.


정복 사범님, 파워맨이죠?


현성 (뜨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정복 팔찌 봤어요. 파워팔찌잖아요.


현성 아냐. 무슨… (옷소매를 더 내리며) 액세서리야, 액세서리.


 


정복, 뒤에 숨긴 파워맨 포스터를 보여주면 파워맨의 손목에 팔찌가 선명하다. 현성의 팔에 있는 것과 똑같다. 현성은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본다.


 


현성의 옥탑방 / 밤

남자 혼자 사는 집답게 단출한 살림살이지만 유난히 운동용품이 많다.


현성, 샤워를 마치고 책상에 앉는다. 책상에 벗어놓은 팔찌가 보인다.


 


현성 아, 이건 왜 하고 와 가지고…


 


<플래시백> 숲 속 촬영장 / 오후


도심에서 떨어진 숲에서 파워맨이 악당들과 싸우는 장면을 찍고 있다.


파워맨, 처음에 밀리다가 악당들을 완전히 제압한다.


컷- 소리와 함께 촬영이 끝나자 파워맨 분장의 배우가 가면을 벗는다. 현성이다.


하지만 현성에게 신경 쓰는 스텝은 아무도 없다. 조연출(30대 남), 다가온다.


 


조연출 급하게 연락했는데 수고했어. 어때? 파워맨, 할 만해?


현성 뭐든 시켜주시면 감사하죠.


조연출 오늘 촬영은 끝났으니까 의상이랑 소품 반납하고 가면 돼.


현성 네. 조연출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조연출 참! 그리고 혹시 조카 있어?


현성 네, 있는데요.


조연출 애들한테 파워맨 대역한다고 말하지 마. 잘못하단 동심에 상처 나니까.


현성 에이, 설마요.


 


<현재>


현성 (팔찌를 신기하게 보며) 진짜네. 애들이 진짜로 진짠 줄 아네.


 


인서트신 / TV화면

빛을 번쩍 내며 꽃미남 배우가 타이즈 패션의 가면영웅 파워맨으로 변신한다.


29신의 촬영분이 TV화면을 통해 보여 진다.


악당들에게 밀리던 파워맨은 팔찌를 낀 팔을 높이 들고 "파워 업!"하고 외친다.


힘을 얻은 파워맨이 악당들을 시원하게 제압해간다.


 


살림집, 방 / 저녁

정복, TV화면에 정신이 팔려 입까지 벌리고 몰입해보고 있다.


파워맨의 활약에 맞춰 주먹을 불끈 쥐는데…


 


<플래시백> 과일가게 인근 거리, 28신에 이어지는…


정복 그거 파워팔찌 맞죠?


현성 내가 알기론 그 파워팔찌일 거야.


정복 (얼굴 환해지는) 사범님이 파워맨 맞는 거예요?


현성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근데 정복아, 이거 비밀이니까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특히 친구들한테 절대로 비밀이다. 악당들까지 알게 될 수 있으니까.


정복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현성 꼭 비밀 지켜. 쉿!


정복 쉿!


 


<현재>


정복, 파워맨과 비밀을 공유한 것이 뿌듯한… 파워맨 노래를 따라 부른다.


 


살림집, 부엌 / 저녁

복희, 설거지를 하다가 심란해진다. TV 소리와 정복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플래시백> 과일가게


복희, 살림집에서 나오며 통화 중이다.


 


복희 그래, 나다. (사이) 날짜가 미뤄지다니? …혹시 돈 때문에 그래? (사이) 나한테 맡긴 통장 도로 가져가거라. 그거면… (퍼뜩 은행에 갔던 생각이 나서 미간이 좁아진다, 사이) 사람보다 돈이 귀하더냐? 그래? (한숨)


 


<현재>


복희, 고무장갑을 벗고 찬장에서 소주병을 꺼내 소주잔에 따라 마신다.


 


태권도 학원 / 낮

최 관장의 구령에 맞춰 기본 품새를 하는 아이들.


정복은 현성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다. 최관장, 정복의 자세를 잡아주는데…


 


정복 저기, 파워… 다른 사범님은요?


최관장 응? 김 사범님? 며칠 일이 생겨서 안 나오실 거야.


정복 무슨 일이요?


최관장 뭐, 그 쓸데없는… 맞다! 정복이 너, 학원 안다닌다고 했다며?


정복 (뜨끔) 잘못했습니다.


최관장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바보짓이야. 일단 열심히 해봐.


정복 네.


 


최 관장, 다시 앞으로 가서 구호를 하면 아이들 “태권”하며 자세를 취한다.


정복은 열심히 따라 해보지만 잘 안 되는… 소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낄낄거리는 민환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초보수준이다.


 


<인서트>


정복에게 파워맨 장난감을 가지고 놀리는 민환.


 


민환, 정복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학원 건물 앞 / 낮

정복이 터덜터덜 나오는데 민환이 따라와 정복의 팔을 잡는다.


 


정복 뭐야?


민환 잠깐만. 나 모르겠어?


정복 알아.


민환 근데 왜 모른 척해?


정복 널 어떻게 아는 척 해야 하는데? 가짜 파워맨?


민환 나 가짜 파워맨 아니라고. 나는 장민환, 6살이야. 너는?


정복 내가 형이네. 난 이정복, 일곱 살이야. 형이라고 불러.


민환 근데 유치원은 왜 안 다녀?


정복 학교 갈 거라서.


민환 그렇구나. 형도 파워맨 좋아하지?


정복 당연하지. 파워맨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니까.


민환 그럼 나중에 형 파워맨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서 같이 놀자.


정복 (뜨끔) 뭐… 생각해볼게.


 


초등학교 앞 거리 / 낮

정복, 고개가 축 쳐져 걷다가 문구점에 진열된 파워맨 장난감을 보고 멈춰 선다.


정복의 상상이 더해져 장난감이 파워맨 복장의 현성으로 변해 진열장을 뛰쳐나와 정복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한다.


정복, “엄마!”하는 소리에 정신이 드는데 마중 나온 엄마에게 달려가는 초등학생을 본다. 하교시간으로 엄마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가는 학생들을 부러움이 섞인 얼굴로 보다가… 정복은 자리를 피하듯 문구점으로 들어간다.


 


문구점 안 / 낮

주인(40대 남), 초등학교 남자아이를 상대를 하고 있다. 우진(12세 남)이다.


우진은 장난감 이것저것을 보고 있다. 정복도 괜스레 이것저것 보는데,


 


주인남 꼬마야, 뭐 찾는 거 있어?


정복 저기 있는 파워맨은 얼마예요?


주인남 진열대에 있는 거? 3만 원인데 엄마랑 같이 와서 사달라고 해.


정복 나도 돈 있어요. 진짜예요.


주인남 돈이 있어도 엄마랑 와. (우진 보며) 넌 살 거야, 말 거야?


우진 다음에 엄마랑 와서 살게요. (인사하고 나가는)


주인남 봤지? 너보다 큰 형도 엄마랑 와서 산다잖아.


정복 우리 엄마 지금 없어요.


주인남 엄마 없음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무나 어른 손잡고 와서 그때 사가.


정복 됐어요. 안사요! (팩 토라져 나간다)


주인남 (황당) 때려치든지 해야지.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갑질이야.


 


초등학교 앞 거리 / 낮

정복, 아쉬운 얼굴로 문구점을 나와 걷는다.


정복이 샛길로 들어서자 정복의 뒤를 둘러싸는 검은 그림자들.


 


동네 골목길 일각 / 낮

기다랗게 담벼락만 있는 으슥한 곳이다.


정복을 밀치며 다가오는 남자아이들… 조우진과 그 일당들이다.


 


아이1 너, 맞고 내놓을래? 그냥 내놓을래?


정복 (무서워 보는)


아이2 뭘 빤히 봐? (태권도 가방을 뺏고) 눈 안 깔아!


우진 (가방을 뒤지면 도복뿐이다) 문구점에서 다 봤거든. 좋게 말할 때 내놔.


정복 (가슴 부분을 팔로 가리며) 안 돼! 싫어. (뒷걸음치는)


우진 어쭈, 이게 어딜 슬금슬금 뒤로 가?


 


우진네 일당, 점점 다가오는데 정복의 상상이 더해져 우주악당 우진과 졸병들이 도끼눈을 하고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 정복을 붙잡고 정복이 옷 안에 걸고 있던 목걸이 지갑을 빼앗는다.


 


우진 (지갑을 열어보고) 헐! 대박사건! 진짜 있네.


정복 내놔! 내 꺼야!


우진 시끄러워!


정복 (몸부림치며) 엄마가 준 거란 말이야! 내놔.


우진 조용히 못해! (주위가 신경 쓰여) 에잇, 밟아!


 


우진을 비롯한 아이들, 정복을 밀어 넘어뜨리고 발로 짓밟는…


 


건물 옥상 촬영장 / 낮

고층건물 옥상에서 파워맨 촬영 중이다.


주인공 꽃미남 배우(20대 남)가 변신하자 대역으로 가면을 쓰고 들어가는 현성.


현성, 악당 역 배우와 싸우다가 합이 잘 안 맞아 다친다. 조연출, 다가가 살핀다.


현성, 괜찮다고 끄덕인 후 또다시 뛰고, 맞고, 구르고… 그사이 꽃미남 배우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꽃배우 왜 저렇게 몸이 둔해요?


감독 좀 그렇지? 컷! 잠깐 쉬었다 간다. 조연출, 어딨어?


 


촬영을 멈춘 사람들 사이로 조연출이 뛰어온다.


 


조연출 네, 감독님!


감독 파워맨 오늘 어디 아파? 너무 빌빌대니까 그림이 안 살잖아, 그림이.


조연출 아까 격투신하다 좀 다쳤습니다.


감독 뭐? 촬영 못할 정도야? 그럼 빨리 대타 구해야지.


조연출 그 정돈 아니고요. 가서 주의 주겠습니다.


꽃배우 남의 이미지까지 깎아먹지 말고 잘 하라고 전해요.


조연출 (아니꼽지만 참고 간다)


 


<점프>


촬영장이 전체적으로 다음 촬영준비로 분주하다.


현성, 긁힌 팔에 연고를 바르고 발목에 파스를 뿌리는데 조연출 다가온다.



조연출 괜찮아?


현성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


조연출 미안한데 그림이 안 산다니까 좀 더 동작을 크고 멋지게 해줘.


현성 네, 알겠습니다.


조연출 니가 좀만 생겼어도 그깟 가면 안 써도 되는데 안타깝다.


현성 무슨 말씀이세요. 아이들의 영웅 아닙니까.


조연출 그래, 힘내자. 내가 입봉하면 니 얼굴 그대로 써줄게. (미소) 물론 악당역일 확률이 놓지만 말이야.


현성 (활짝)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조연출, 현성의 어깨를 다독이고 가면 현성은 심호흡과 함께 가면을 다시 쓴다.


 


학원 건물 앞 / 낮

상처투성이 정복이 더러워진 학원 가방을 들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피아노학원 가방을 들고 오던 세나, 정복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정복 (학원을 올려다보며) 파워맨만 있었어도… (훌쩍)


세나 여기서 뭐하니?


정복 (돌아보는)


세나 야, 너 왜 그래? 누구랑 싸웠어?


 


정복, 세나를 보자 창피한 마음에 줄행랑을 놓는다. 세나, 걱정스럽게 보는…


 


상가 거리 일각 / 낮

상처투성이 정복은 뛰어가다 약국에서 나오던 현성과 부딪친다.


현성 역시 상처투성이다. 그런 현성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정복.


행인들, 현성의 얼굴에 난 상처와 정복의 얼굴에 난 상처를 수상하게 보는데,


 


현성 (당황) 야, 왜 울어? 울지 마.


 


현성의 옥탑방 / 낮

현성은 거울을 보며 얼굴의 상처에 밴드를 붙인다.


거울을 통해 얼굴에 밴드를 붙인 채 훌쩍거리며 앉아있는 정복을 본다.


 


현성 (돌아보며) 아직도 아프냐?


정복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현성 그럼 왜 그래? 분해서 그러냐?


정복 (훌쩍) 지갑이랑 돈이랑 다 뺏어갔어요. 그 안에 엄마 사진도 있는데…


현성 어휴, 그러게 왜 나를 찾아다녀? 학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볼 텐데.


정복 내가 알아버려서 학원에 안 나오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현성 (어이없는) 동심의 세곈가? 어렵다. (일말의 책임감 느끼는) 그만 울어. 사진은 그렇다 치고 돈은 내가 줄게. (지갑 꺼내며) 얼마야? 얼마 뺏겼어?


정복 5만원이요.


현성 (당황) 뭐? 무슨 꼬마가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지갑을 열면 만 원짜리 2장에 천원 지폐 몇 장이 전부, 난처한) 내가 당장 줄 수도 있지만 사진도 있는데 그걸 찾아주는 게 낫겠지?


정복 (살았다) 네, 꼭 찾아주세요.


현성 (살았다) 그래, 그게 좋겠다. 기다려!


정복 근데 사범님 얼굴은 왜 그래요? 나처럼 맞았어요?


현성 인마, 넌 악당들한테 당한 상처고, 난 악당을 물리친 영광의 상처거든.


정복 (고개 끄덕이며) 맞아요. 파워맨이 얼마나 센데.


현성 (어이없어 웃는) 자식… (정복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너 땜에 웃는다.


 


살림집, 방 / 저녁

복희, 저녁상을 차려 들고 들어온다. 구석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는 정복.


 


복희 그만 팔 내리고 와서 밥 먹어.


 


정복, 손을 내리고 와서 밥을 먹는다. 맛있다.


복희, 정복의 상처에 속이 상하지만 맛있게 먹는 반찬을 앞으로 밀어준다.


정복, 입을 크게 벌려 먹다가 입가가 아프다. 아아…


 


복희 또 쌈박질만 하고 들어와 봐. 밥도 안 주고 쫓아낼 거야.


정복 (고개를 끄덕하며) 네.


복희 니 엄마,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정복 엄마랑 연락 안했어요.


복희 왜? 전화번호 잊어버렸냐?


정복 엄마가 할 때까지 전화하지 말라고 해서…


복희 엄마 말은 그렇게 잘 듣는 놈이 할머니 말은 우습냐! 우스운 거야!


정복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한테 이르지 마세요.


복희 뭐어? (흘기며) 으이구, 속상해서, 진짜.


 


태권도 학원 / 낮

아이들 사이에 섞여서 태권도 품새를 배우는 정복.


팔에 힘도 안 들어가고 발차기도 영 어설프다.


현성, 정복에게 윙크하면 정복도 현성에게 윙크한다.


이때, 정복의 발을 밟는 민환. 고의가 아니라 실수다. 미안해하는 민환.


정복은 아픈 걸 참고 보면 정복보다 더 못하는 민환이다.


 


<점프> 쉬는 시간.


물을 먹으려고 정수기 앞에 줄을 서는 아이들. 정복의 앞에 민환이 서 있다.


 


민환 (뒤를 돌아보고) 아깐 미안했어. 많이 아팠지?


정복 됐어. 괜찮아.


민환 근데 형아, 싸웠어?


정복 안 싸웠어.


민환 근데 얼굴이 왜 그래? 우리 엄마가 싸우는 건 나쁜 애들이랬는데.


정복 우리 엄마도 싸우는 건 나쁜 애들이라고 했어.


민환 다행이다. 형이 나쁜 애면 우리 집에 못 데려가잖아.


정복 너 친구 없지? 유치원에서도 혼자 놀았잖아.


민환 아니야. 내가 안 놀아주는 거야. 너무 유치해서.


정복 헐! 야, 니 차례야. 물이나 마셔.


 


민환, 컵에 물을 따라 먼저 정복에게 준다.


정복이 받으면 민환은 그제야 자기도 물을 따라 마신다. 뭐야, 형 대접인가.


 


병원 입원실 / 낮

수척한 윤정, 침대에 앉아있고 복희가 석류를 까서 내민다.


 


복희 먹어라. 석류가 여자한테 좋단다.


윤정 네. 고맙습니다. (조금 먹고) 정복이는 잘 지내나요?


복희 그놈 나름대로 열심히 적응하고 있겠지. 넌? 수술하면 괜찮은 거지?


윤정 잘 모르겠어요. 수술이 잘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괜한 짓하는 거 같기도 하구요. 그 돈이면 정복이 대학갈 때…


복희 (말 자르며) 어린 거 생각하면 실낱같은 끈이라도 끝까지 잡아야지. 지금 니 새끼한테는 대학 등록금이 아니라 엄마가 더 필요해.


윤정 …정복이 잘 부탁드려요. 저는 미우셔도 정복인 그 사람 자식이에요.


복희 왜? 내가 정복이 구박할까봐 걱정 되냐? 그렇게 걱정되면 나을 생각해.


아무것도 안하고 생으로 죽을 생각 말고.


윤정 죄송하고… 정복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복희 지난 일들 잊을 수 있음 다 잊어라.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생떼 썼던 말도 잊고, 박복한 팔자라고 패악 부렸던 말도 잊어. 그땐 나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자식 앞세우고 정신이 어디 있었겠냐. 미안하다.


윤정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는)


복희 더 먹어봐. 그게 유방암 예방에 좋다는데… (서러운) 이게 뭔 뒷북이라니.


 


학원 건물 앞 / 낮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태권도 학원 승합차에 오르는 아이들.


민환, 탑승 차례를 기다리다 뒤늦게 나온 정복을 보고는 쪼르르 다가간다.


 


민환 형은 왜 차 안타?


정복 가까워. 걸어갈 거야.


민환 무슨 아파트 사는데?


정복 아파트 안살아. 너, 나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야?


민환 좋아하는 게 같잖아. 파워맨.


정복 파워맨 좋아하는 애들 되게 많거든.


민환 (헤헤 웃는) 형아, 내일 봐.


 


민환, 쪼르르 승합차로 뛰어가면 현성이 정복에게 다가온다.


 


현성 드디어 친구 생겼구나?


정복 친구가 아니라 동생이에요.


현성 인마, 어차피 사회 나가면 다섯 살까진 친구처럼 지내도 괜찮은 거야.


정복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현성 아니다. 너한테 좀 이르다. 집으로 가냐?


정복 아뇨. 갈 데가 있어요.


현성 어딜? 설마 할머니 걱정하게 하는 거 아니지?


 


생선가게 / 오후

탁 내리치는 식칼에 다듬어지는 생선.


정복, 진열된 생선들을 신기해하며 구경하다가 입맛을 다신다.


서씨, 자른 생선을 손님에게 주자 손님은 가고…


 


서씨 또 오세요. (정복을 살피다가) 아가, 니 할매는 어디 간다대?


정복 모르겠어요. 그냥 학원 끝나면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서씨 저기, 니 어매가 어디 간 줄은 아냐? 왜 널 할매집에 보냈대?


정복 일이 바빠서… 할머니네 있으라고…


서씨 워매, 불쌍한 거… 지대로 말도 안했나 보네.


정복 근데 할머니?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 친구예요?


서씨 그럼 친구지.


정복 그럼, 열 밤 자면 우리 할머니 생일 맞아요?


서씨 워디 보자, 양씨 환갑이라고 밥 먹었던 게… 봄인디. 그려, 니 할매 생일은 봄이여.


정복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는데? 내 생일도 아니고 엄마 생일도 아닌데.


서씨 동그라미? 니 아배 제사는 정월이고… (눈 커지는) 음마마, 그날인가 보네.


애 떼놓은 지가 얼매나 됐다고 그새 시집을 가는 거여.


복희(E) 이놈의 여편네! 어린 거 붙들고 별 헛소리를 다 늘어놓고 있네.


 


보면, 복희가 무서운 얼굴을 서 있다.


 


정복 (반가워 옆으로 가는) 할머니!


복희 (부르르) 정복이 짐 챙겨 와라. 당장 집에 가자.


서씨 아니, 내가 뭐 없는 말 했나… 며느리 시집갈 날을 버젓이 달력에 표시해놓고는 왜 이제와 딴 소리래?


복희 바늘로 꿰매기 전에 그 입 못 닫아!


서씨 듣자 듣자하니까 양씨가 뭔데 남의 입을 꿰매고 말고 한대!


복희 에이, 상종 못할 여편네. 내가 너희 집 비린 걸 다시 먹나봐라.


 


복희가 죽일 듯 노려보자 서씨는 입을 삐죽이지만 뭐라 말을 못한다.


복희, 정복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가버린다.


 


동네 거리 / 오후

1신과 동 거리. 먼저 걷던 복희, 걸음을 멈추고 뒤쳐져 오는 정복을 기다린다.


정복, 그런 복희 옆에 가서 서고는,


 


정복 할머니, 엄마 시집가요?


복희 아니야. 생선가게 여편네가 괜히 헛소리 한 거야.


정복 엄마는 언제 와요?


복희 나중에, 나중에 온대. (시무룩한 정복의 손을 잡고) 기운 빠져 있을 거 없어. 집에 가자.


정복 (복희가 많이 의지된다)


 


살림집, 방 / 밤

이브자리를 펴는 복희. 정복은 그런 복희를 도와 베개를 꺼내온다.


 


복희 (기특한) 오늘 학원은 어땠냐?


정복 오늘 처음으로 관장님 말고 사범님한테 배웠어요.


복희 그래? 아무래도 관장님이 더 잘 가르치는 거 아니냐?


정복 (강하게) 아니에요. 우리 사범님은 파워… 파인애플을 좋아해요.


복희 뭐? 선생님이 파인애플 가져오래?


정복 아니요. 그냥 파인애플이 좋다고… 관장님보다 사범님이 훨씬 좋아요.


복희 그래? 그 사람이 얼굴은 우락부락해도 애들한테 잘하는 모양이네.


정복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복희 아참, 이는 닦았냐?


정복 (아무 말 없이 쪼르르 나가면)


복희 쯧쯧, 할머니가 말하기 전에 못하냐? (피식 웃고는 이부자리를 손보는)


 


현성의 옥탑방 / 밤

현성, 샤워를 하고 나온 듯 침대에 털썩 눕는다.


하지만 탁상달력에 '액션킹 오디션'이라 체크한 것을 보고는 벌떡 일어난다.


현성, 프린트한 대본을 펼쳐 연습을 한다. 액션영화나 조폭영화의 주인공이다.


"널 용서하지 않겠어!" 한껏 감정을 잡고 대사연습을 하는데 전화가 온다.


 


현성 (전화 받고) 어, 누나가 어쩐 일이야? (사이) 회갑? 엄마가 벌써 회갑이야? (한심한, 사이) 아… 깜박했어. (사이) 잠깐만. (탁상달력을 넘겨보는… 달랑 하나 있는 스케줄) 어쩌지? 계속 촬영 스케줄이라 못 내려갈 거 같아. (사이) 미안해. 누나가 알아서 잘 해. (사이) 엄마한텐 따로 전화 드릴게. (사이) 혜진이는 잘 있지? 외삼촌이 서울에 있으면서 구경 한번 못시켜줬네. (사이) 응, 다음에 꼭 내려갈게. (서둘러 전화 끊는) 엄마 용서하세요.


 


현성,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한다.


 


과일가게 앞 / 낮

정복, 누군가를 기다리듯 한쪽을 보고 있다가 얼른 가게로 들어간다.


밝은 얼굴의 세나가 피아노 가방을 들고 가게 앞을 지나간다.


세나가 지나가자 태권도 가방을 들고 나오는 정복. 세나 뒤를 따라 걸어간다.


 


학원 건물 앞 / 낮

앞서 가던 세나가 돌아서자 따라오던 정복은 그 자리에 얼음처럼 선다.


세나, 손짓으로 부르자 정복은 자석처럼 그 앞으로 가서 선다.


 


세나 너, 나 따라온 거니?


정복 따라온 거 아니야.


세나 영봉상회 앞에서부터 계속 졸졸 따라왔잖아.


정복 아니야! 나도 태권도 학원 온 거야.


세나 (정복의 가방을 본다) 너, 여기 태권도 학원 다녀?


정복 응. 너는 여기 피아노 학원 다녀?


세나 너가 아니라 누나! 누나라고 해야지.


정복 (보다가) 싫어. 다섯 살까진 친구랬어! (세나를 지나쳐 학원 건물로 뛰어간다)


세나 (황당해 보며) 웃긴 꼬마네. (가히 싫지 않은 듯) 예쁜 건 알아가지고.


 


세나, 도도한 걸음걸이이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태권도 관장실 / 낮

최관장 앞에 현성이 난처한 얼굴로 서 있다.


 


최관장 야!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딨어?


현성 오디션 일정이 갑자기 당겨져서 그래. 선배 미안해. (꾸벅) 진짜 미안해.


최관장 안 돼. 당장 승합차로 애들 태워 와야 하는데 어쩌라고! 지난번엔 촬영 있다고 며칠씩이나 빠지더니 오늘은 오디션이냐?


현성 부탁해. 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몰라.


최관장 일생일대의 기회? 그렇게 말하고 가서 지금껏 결과가 어땠는데?


현성 (말을 못하는)


최관장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해. 너한테 이 학원이 그냥 알바자린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신성한 일터야. 오디션을 볼지 학원을 그만 둘지 니가 결정해.


현성 혀엉… (단호한 최관장… 허나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미안해.


 


현성, 가방을 챙겨 뛰어 나가면 최관장은 설마 그럴 줄 몰랐다.


 


태권도 학원 / 낮

제일 먼저 도착해 혼자 어슬렁거리던 정복은 현성이 관장실에서 나오자 반갑다.


 


정복 사범님, 안녕하세요?


현성 어, 일찍 왔구나. 연습 열심히 해라. (나가려는데)


정복 어디 가세요?


최관장(E) 야, 이 배은망덕한 인간아!


 


이때, 최관장이 관장실에서 고함을 치며 나온다.


 


최관장 김현성, 너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현성 담에 보자. (쏜살같이 나간다)


 


최관장은 “저 자식이…” 하며 씩씩대다가 놀란 정복과 눈이 마주친다.


민망한 최관장은 정복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관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정복, 걱정되는 얼굴로 학원 창가로 달려가서 아래를 본다.


전속력으로 뛰어가는 현성이 보인다. 무슨 일이지? 걱정되는 정복.


 


오디션장 / 낮

액션영화 주조연을 뽑는 오디션으로 ‘액션킹’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세 명이 한조로 들어가 기량을 뽐낸다. 검도, 쌍절곤, 봉술, 창술 등등.


현성의 차례다. 태권도복을 입은 현성… 가볍고 절도 있는 몸놀림과 현란한 발차기… 시범 도중 띠가 풀려 상체가 드러난다. 보기 좋게 근육이 잡혀있다.


실력과 신체 면에서 우수하지만 심사관들은 시큰둥하다. 인물이 아쉬운…


현성 뒤로 훈남 지원자가 어설픈 무술 실력을 보이고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심사관들은 훈남 지원자를 호감어린 시선을 본다. 현성은 낭패스러운 표정이 된다.


 


오디션장 밖 / 오후

현성, 터덜터덜 나온다. 현성, 뭔가 화를 꾹 참고 있다.


 


현성 액션킹이라면서 노래하고 춤은 왜 보는 건데? 제길, 댄싱킹이냐!


 


<플래시백> 태권도 관장실, 53신에서.


최관장 오디션을 볼지 학원을 그만 둘지 니가 결정해.


 


<현재>


낭패한 표정의 현성… 다리의 힘까지 쭉 빠진다.


 


현성 내가 미친놈이지. 일생일대의 기회는… 젠장!


 


살림집, 방 / 늦은 오후

정복, 책상에 앉아 크레파스로 윤정을 그리고 있다. 딱 아이의 그림이다.


정복, 순간적으로 목에 손이 가는데… 목걸이 지갑이 없는 것이 허전하다.


 


정복 엄마…


 


<플래시백> 생선가게, 47신에서…


서씨 며느리 시집갈 날을 버젓이 달력에 표시해놓고는 왜 이제와 딴 소리래?


복희 바늘로 꿰매기 전에 그 입 못 닫어!


 


<현재>


달력에 쳐져있는 붉은 동그라미가 정복의 눈에 박히는데… 표정이 복잡해진다.


 


정복 정말 무슨 날이지?


 


공원 일각 / 늦은 오후

정복,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메시지만 나온다.


심란한 정복, 수화기를 내려놓고 부스를 나서는데 심란한 얼굴의 현성을 본다.


 


정복 사범님!


현성 여자친구 생겼냐? 꼬마가 왜 이 시간에 공원에 나와 전화를 걸고 있냐?


정복 치, 아니거든요. 그런 사범님은 왜 이 시간에 공원에 나왔는데요?


현성 나야, 어른이잖아.


정복 관장님한테 혼나서 그런 거죠? 다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해서요.


현성 아니야. 내가 먼저 안 나간다고 한 거야.


정복 왜요? (헉!) 혹시 사범님이 파워맨인 거 들켰어요?


현성 (어이없어 피식) 그게 아니라… 내가 너 잡고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러냐.


정복 근데요… 그놈들은 찾았어요?


현성 그놈들…? 아! 그놈들… 미안. 시간이 없어서 못했는데 이젠 시간이 많아졌어. 반드시 찾아줄게.


정복 죄송해요. 내가 뺏기고 파워맨한테 찾아 달래서.


현성 인마, 파워맨이 달리 파워맨이냐. 약한 사람을 돕는 게 파워맨이지.


정복 (고맙고 존경스러운)


 


과일가게 / 늦은 오후

복희, 비닐봉지에 과일을 담고 있다. 그 앞에는 손님1(40대여)이 서있다.


 


손님1 할머니, 서비스로 하나만 더 주세요.


복희 젊은 사람이 공짜를 왜 그리 좋아해? (하나 더 넣으며) 옜다, 기분이다.


손님1 어머, 아주머님이 웬일이래요? 뭐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복희 기분 좋은 일은 무슨… 기분 좋은 일 좀 생기라고 인심 쓴 거지.


손님1 (과일봉지를 받아들고) 그럼 수고하세요.


 


기분 좋게 나가는 손님1과 교차해 민사장이 들어온다. 복희, 긴장해 보는데…


 


과일가게 앞 / 늦은 오후

굳은 얼굴의 민 사장이 나와서 가면 그 반대편에서 현성과 정복이 걸어온다.


복희, 급하게 민 사장을 따라 나왔다가 정복과 현성을 본다.


 


현성 (꾸벅 인사하는) 안녕하세요?


복희 (민 사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 선생님.


현성 우연히 정복이를 만나서 데려다 주러 왔습니다.


복희 (정복을 보며) 넌 방에 있는 줄 알았더니 언제 나간 거야? 내년이면 학교 갈 텐데 놀러만 다니고 공부는 안 할 거야?


정복 잘못했어요. (현성에게 꾸벅) 안녕히 가세요. (가게로 들어간다)


현성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복희 아참, 선생님 잠깐 기다려요. (가게에 들어가서 파인애플을 가져온다) 팔다 남은 건데 가져가서 먹어요. 파인애플 좋아한담서.


현성 네?


복희 우리 정복이가 태권도 선생님 얘기할 때마다 파인애플, 파인애플 하던데.


현성 네? (왜 그랬지?) 파인애플… 그냥 주셔도 됩니까?


복희 싱싱한 거 아니니까 가능한 빨리 먹어요.


현성 고맙습니다. 저, 근데 정복이가 공원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고 있더라고요.


복희 공중전화요?


현성 네, 누군지 말은 안하는데 제 생각엔 엄마한테 전화하려던 게 아닌가 싶어서요. 통화는 못한 눈치였어요.


복희 가게 전화로 하믄 될 걸… (한숨)


현성 죄송합니다. 괜한 말씀을 드렸나 봐요.


복희 아니에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살림집, 방 / 저녁

깨끗하게 씻고 팬티만 입은 정복의 머리를 복희가 수건으로 털어준다.


복희, 장롱에서 깨끗한 새 옷을 꺼내 입힌다.


 


정복 새 거네.


복희 새 거라 좋냐? 그리고 (쇼핑백을 꺼내면 새 운동화다) 한번 신어봐.


정복 나 새 신발 안 사줘도 되는데… 할머니 돈도 없잖아요.


복희 내일 엄마 보러 갈 건데 이쁘게 하고 가야지.


정복 달력에 표시한 날은 몇 밤 더 자야 하는데…


복희 달력? (달력의 동그라미 쳐진 날짜를 보고는) 저 날이 무슨 날인지 아냐?


정복 엄마가… (한숨)


복희 (당황) 니가 어떻게 알았어?


정복 생선가게 할머니가요.


복희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었냐? 니 엄마가 시집가믄서 널 나한테 맡길 사람이야? 넌 니 엄마를 그렇게 생각했냐?


정복 (풀이 죽어 고개를 젓는)


복희 쯧쯧, 사내자식이 수시로 풀이 죽어 버릇하믄 못써. 사내는 니 태권도 선생마냥 배짱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정복 (현성 얘기에 기분이 풀리는) 선생님 아니고 사범님이에요.


복희 으이구, 그렇게 좋냐? (운동화를 대주며) 어서 신어봐.


 


정복, 운동화를 신으면 딱 맞는다. 정복은 거울 앞에서 콩콩 뛰어본다.


정복, 운동화를 이모저모 보다가 달력으로 눈이 간다. 저 날은 무슨 날이지?


 


병원 인근 빵집 / 낮

창 너머로 병원이 보인다. 수척한 윤정, 환자복이 아니라 외출복을 입고 있다.


정복은 윤정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빵을 먹고 있다.


 


윤정 왜? 빵이 맛없어?


정복 아니, 맛있어.


복희 멋대가리 없긴… 엄마 엄마 노랠 부르더니 왜 데면데면하냐?


윤정 너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댄 거야?


정복 아니야. 할머니 거짓말이야.


복희 거짓말은 무슨… 말로 안했다 뿐이지 엄마 안보고 싶었다고? 참말로?


정복 (말을 못하는)


윤정 (안쓰럽지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의젓하게 있는 거 맞지?


정복 응. 근데 엄마 어디 아파? 엄마한테 병원 냄새 나.


윤정 (당황) 엄마 건강해. 여기가 병원 앞이라서 그런가? (말 돌리는) 너야말로 어디 아픈데 없지? 새로운 친구들은 많이 생겼어?


정복 응. 나 태권도 학원 다녀. 우리 사범님이 파워… 아니 파인애플을 좋아해.


복희 얘가 그 사범 선생이 참말로 좋은 모양이더라.


윤정 (정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정복이 태권도 하면 정말 멋있겠다.


정복 엄마도 와서 보면 좋은 텐데… 엄마, 올 수 있어?


윤정 음… 일 끝나면, 일 다 끝나면 갈게.


정복 엄마 일 끝나면 할머니랑 셋이 살면 좋겠다. 할머니 안 외롭게.


윤정 (눈치 보이는) 할머니가 허락하시면…


복희 그래. 같이 안 살아도 가까이 살면서 서로 보고 살면 좋지.


 


정복,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한다.


반면 윤정과 복희는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동네 일각 / 낮

정복, 빵을 담은 봉지를 들고 신나서 걸어간다. 그 뒤로 복희가 걸어가고 있다.


앞서 가던 정복이 먼저 코너를 돌아 복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복희, 서둘러 코너를 돌면, 정복은 콧노래를 하며 복희를 기다리고 있다.


복희는 그런 정복을 보자 마음이 짠해진다.


 


<플래시백> 동 거리, 1신에서…


복희, 모퉁이를 돌며 돌아보는데 정복이 캐리어 때문에 낑낑거리는 모습을 본다.


복희, 모퉁이에 숨어 몰래 정복이 하는 양을 지켜본다.


정복은 복희가 보이지 않자 허둥대며 모퉁이를 향해 뛰어온다. 안쓰럽다.


복희, 몇 걸음 걸어가 정복을 기다리다 정복이 나타나자 괜히 인상을 쓴다.


 


<현재>


복희, 정복에게 다가가 빵이 든 봉지를 대신해서 든다.


정복, 한결 가볍게 앞서 걷는다. 기분 좋아 보인다.


 


태권도 학원 / 다른 날, 낮

품새를 연습하는 아이들 사이사이를 다니며 자세를 체크하는 최 관장.


정복은 현성이 안보이자 원망스러운 눈으로 최 관장을 본다.


 


최관장 (정복의 꿀밤을 때리며) 인마, 너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냐?


정복 (입 나와서) 김 사범님은 왜 계속 안 나오세요?


최관장 그건 내가 묻고 싶다.


정복 (노려보며) 관장님이 나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최관장 (헛기침하고) 너는 김 사범이 그렇게 좋냐? 근데 뺀질거리는 건 닮지 마라. 우리 부원 중에 너처럼 실력이 안 느는 녀석도 드물거든.


 


정복, 바로 옆에 선 민환을 보는데… 정복이보다 더 엉망인 자세다.


최 관장, 보고는 속으로 삭히며 민환의 자세를 고쳐준다.


 


학원 건물 앞 / 낮

최관장, 제일 먼저 나와 승합차에 오르고…


우르르 나오는 아이들 사이에 민환과 나란히 나오는 정복.


 


민환 형아, 내일 우리 집에서 놀래? 파워맨 놀이하자.


정복 내일? 내 파워맨은 누구 빌려줬는데…


민환 괜찮아. 파워맨은 우리 집에 여러 개 있으니까 같이 갖고 놀면 돼.


우리 엄마한테 형아 얘기했더니 집에 초대하랬어.


정복 알았어. 할머니한테 물어볼게.


민환 꼭 물어봐.


 


민환, 정복에게 손을 흔들고는 승합차에 오른다. 정복도 손을 흔들어주고…


승합차가 떠나자 정복은 몸을 돌리는데 현성이 옆에 와서 슬쩍 몸을 부딪친다.


 


정복 (반가운) 사범님!


현성 둘이 사이좋네. 못난이들의 연합이냐?


정복 사범님이 더 못생겼어요.


현성 그렇게 콕 집어주지 않아도 나도 알거든. 근데 관장님은 좀 어떠시디?


정복 나보고 사범님 뺀질거리는 거 닮지 말래요.


현성 이야, 그 형은 애한테 뭔 소릴 한 거야.


정복 관장님한테 사과하고 다시 나오세요.


현성 (정복 머리를 쓰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나 학원 빠지지 말고 다녀.


정복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에이, 참.


 


과일가게 / 오후

복희, 가게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다.


 


복희 그래, 알았다. (사이) 너무 걱정 말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정복 (들어오며) 다녀왔습니다.


복희 (당황하는) 그럼, 이만 끊자. (전화기를 내려놓고) 이제 오냐.


정복 (눈치가 이상한) 네. 할머니


복희 내일 태권도 학원 하루 쉴래?


정복 왜요?


복희 할머니 내일 일찍 가게 문 닫고 어디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구.


정복 내일은 민환이네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복희 친구네 집에? (생각하다) 그래, 할머니 혼자 가는 게 좋겠다. 그 집에서 점심 먹고 놀고 있어. 할미가 데리러 갈게. 그만 들어가서 씻고 공부해.


정복 네. (근심어린 복희의 표정이 신경 쓰여 돌아본다)


 


스턴트회사 연습실 / 오후

훈련생들, 와이어에 매달려 무술동작을 연습 중이다. 멋지다.


2층 난간에서 한꺼번에 1층으로 뛰어내렸다가 다시 솟구치는 훈련생들.


현성, 허공에서 공중회전을 하며 낙하한다. 다른 훈련생들에 비해 월등하다.


 


<점프>


현성, 목검을 가지고 훈련생 한 명과 대련하는… 현성의 월등한 실력.


스턴트 교관(30대남), 그런 현성을 보며 흐뭇하다. 현성의 마지막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훈련생. 현성, 성취감에 미소를 짓고 훈련생의 손을 잡아 일으켜준다.


 


스턴트회사 공용 탈의실 / 오후

젖은 머리를 말리며 샤워장에서 나오는 현성.


교관, 에너지 음료를 권하며 의자에 앉는다. 현성, 옆에 앉아 달게 마신다.


 


교관 김현성, 무슨 일 있냐?


현성 그냥, 맨날 그렇죠, 뭐.


교관 인마, 아까 패기는 다 어디 간 거야?


현성 다들 열심이네요.


교관 각자 꿈들이 있으니까. 어떤 놈은 배우가 되려고 배우고 어떤 놈은 정말 스턴트를 하려고 배우고… 넌 전자였냐, 후자였냐?


현성 (씁쓸한 미소) 뭐, 이도저도 아니게 됐는데요, 뭐.


교관 자식… 나가자. 간만에 낮술 한 잔 하자.


 


 선술집 / 오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현성과 교관.


 


교관 경민이도 참… 그 정도도 이해 못해 주나?


현성 아니에요. 제가 너무 불성실했어요.


교관 걔도 한때 오디션 열심히 봤어. 알 만한 사람이 그러니까 서운하다.


현성 다 아니까 말린 거예요. 안 될 거 아니까… 안 되면 축 쳐질 거 아니까.


교관 (술을 따라주며) 그렇게 잘 알면 니가 어떻게든 풀든가.


현성 네. 어떻게든 풀어야죠. (술 마신다)


 


그때, 빈자리에 앉는 최관장. 현성은 놀라서 캑캑거린다.


 


최관장 미친 놈아, 술이 들어가냐?


현성 형?


교관 너 하는 꼴이 영 그렇길래 내가 불렀다.


최관장 어떻게든 풀어준대매? 빨리 어떻게든 해봐.


현성 (글썽) 에이, 혀엉- (하며 최관장의 목을 와락 끌어안는)


최관장 (부러) 아, 뭐야? 낮술에 벌써 취했냐? 괜히 왔어.


현성 알았어. 알았어. 내 필살기! 한번만 할 거니까 제대로 봐요.


 


현성, “파워 업!” 팔을 들어 파워맨 흉내를 내면… 최 관장과 교관, 어이없고…


“이런 미친 놈!”, 최 관장은 외면하며 술을 마시고 현성은 “에이, 오리지널이라고.”하며 서로 티격태격하는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웃는 교관.


 


살림집, 방 / 다음날, 오전

정복,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 복희의 이부자리는 말끔하게 개어져있다.


그리고 한쪽에 잘 차려진 밥상을 본다. 상보를 치우면 비엔나햄 반찬이 있다.


정복, 이브자리에서 나오자마자 맛있게 밥을 먹는다.


정복, 달력을 보면 오늘이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날이다.


 


정복 할머니가 어디 가려고 해놓은 거였구나. 아! 맞다. 나도.


 


정복, 연필로 달력에다 글씨를 쓴다. 씩 웃고는 다시 밥을 먹으러 간다.


보면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밑으로 '민훈이네 놀러가는 날' 쓰여 있다.


 


병원 복도 / 오전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 옆을 복희가 따라간다.


윤정, 복희를 보며 손을 내민다. 복희, 손을 꼭 잡아준다.


 


윤정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복희 니 주변에 어쩜 이렇게 사람이 없니? 직장동료 하나 안 찾아오니?


윤정 직장 정리했어요. 아프단 말 안하구요.


복희 아픈 사람일수록 직장은 잡고 있었어야지.


윤정 어차피 계약직이라 그만둬야 했을 거예요.


복희 (한숨) 이럴 줄 알았으면 정복이 데려올 걸… 내 생각이 짧았다. 자식 얼굴 한번 보고 들어가야 하는 건데…


윤정 잘 하셨어요. 수술 끝나면 그때 보면 되죠.


복희 그래, 그렇게 강하게 맘먹고 잘 버텨.


간호사 보호자분은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복희, 안타까운 마음으로 윤정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민환네 아파트 거실 / 낮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잘 꾸며져 있다.


정복은 기가 죽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소파에 앉아 눈으로만 구경 증이다.


반면 신난 민환은 엄마를 도와 직접 구운 쿠키접시를 들고 온다.


뒤에는 상냥해 보이는 민환 모(30대)가 쟁반에 생과일주스를 가져온다.


 


민환모 정복이 아직 배 안고프지?


정복 네.


민환모 민환이가 니 얘기 많이 했어. 민환이가 귀찮게 하거나 그렇진 않구?


정복 아니에요. 저도 이사 온 지 얼마 안돼서 별로 친구가 없어요.


민환모 그렇구나. 우선 쿠키 먹고 민환이 방에 장난감 많으니까 재밌게 놀고 있어. 아줌마가 점심 맛있는 거 해줄게.


정복 감사합니다.


민환 (민환모가 주방으로 가자) 형, 우리 이거 들고 내 방으로 가자.


정복 어? 응.


 


민환, 쿠키접시를 들고 가면 정복은 과일주스 컵을 양손에 들고 따라간다.


 


민환의 방 / 낮

정복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입을 떡 벌어진다.


보면 방에 구색을 맞춘 어린이용 책장에 파워맨을 비롯한 각종 캐릭터 장난감들이 빼곡하다. 민환은 정복을 파워맨이 있는 책장 앞으로 데려간다.


 


민환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준 거야. 어때? 멋지지?


정복 (황홀한) 응.


민환 형 거는 어떤 거야? 내 거 중에 똑같은 거 있어?


정복 어? 아니.


민환 그래? 어떤 건데?


정복 그냥 보통 거… 이거 만져 봐도 돼?


민환 응. 형아는 파워맨해. 나는 (배트맨 장난감을 찾고) 나는 배트맨이야.


정복 (민환이 건넨 파워맨 장난감을 받으며) 좋아. (행복한)


 


몽타주

74-1. 수술실 앞 / 표시등에 수술중이라 불이 켜있는… 초조하게 기다리는 복희.


 


74-2. 민환네 주방 / 민환 모가 차려놓은 서양식 음식을 맛있게 먹는 민환과 정복. 능숙하게 먹는 민환에 비해 정복은 먹는 법이 서툴다. 민환 모가 도와주고…


 


74-3. 수술실 앞 / 수술완료 표시등 바뀌어 있고, 집도의가 나오면 복희, 다가간다. 집도의, 어두운 얼굴로 뭐라 말하고 가면 복희는 쓰러질 듯 벽에 기대선다.


 


74-4. 회복실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는 윤정을 문 너머로 보며 눈물을 훔치는 복희와 민환네 식탁에서 디저트를 먹고 있는 정복의 환한 얼굴 오버랩.


 


살림집, 방 / 저녁

복희,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면… 정복, 무릎걸음으로 다가온다.


 


정복 (작은 봉지를 상 위에 내놓으며) 할머니, 이거요.


순심 그게 뭐야?


정복 쿠키요. 민환이 엄마가 구워줬어요. 되게 맛있어요.


복희 너나 먹지. 뭐 하러 가져왔어?


정복 할머니랑 둘이 산다고 하니까 민환이 엄마가 챙겨줬어요.


복희 (보다가)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정복 (부러 씩씩한 척) 괜찮아요. 얼마 전에 보고 왔잖아요.


복희 밥 먹자. (정복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며) 할머니 내일도 외출할 건데 혼자 있을 수 있지?


정복 어디 가는데요? 저도 갈까요?


복희 나중에. 어서 먹어.


정복 민환이네 음식은 금방 느끼해지는데 할머니 음식은 계속 맛있어요.


복희 참말로? 괜히 거짓말 하는 거 아냐?


정복 정말이에요. 엄마 맛이랑 비슷해요.


복희 (맛있게 먹는 정복을 보고는 숟가락을 뜨는데 입이 쓰다)


 


병원 중환자실 / 낮

호흡기를 끼고 누워있는 윤정… 수술 후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복희, 그 앞에서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과일가게 앞 / 낮

정복, 태권도 가방을 흔들며 오다 문이 닫힌 가게 앞에 선다.


문이 잠겨있는 영봉상회의 간판을 올려다보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든다.


정복,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표정이 밝아진다.


 


과일가게 안 / 낮

정복, 과일들 앞에 쓰여 있는 가격팻말을 보며 외운다.


정복, 과일을 예쁘게 정리해 쌓아놓는데 손님2(30대 여)가 들어온다.


 


손님2 꼬마야, 어른 안 계시니?


정복 과일 사러 오셨어요?


손님2 응. 사과 좀 사려고 하는데.


정복 제가 팔 수 있어요. 할머니 잠깐 나가셨거든요.


손님2 정말? 그럼 사과 10개만 줄래.


정복 (검정비닐을 주며) 맘에 드는 걸로 골라 담으세요.


 


<점프>


손님2, 사과를 담은 비닐을 들고 정복에게 값을 치른다.


정복은 거스름돈을 정확히 세어준다.


 


손님2 어려도 장사 잘하네. 할머니가 든든하시겠어.


정복 (꾸벅) 또 오세요.


 


손님2가 나가자 정복은 사과를 보기 좋게 정리한다.


복희 들어오는데 정복은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한다.


복희는 그런 정복을 보고 기특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계곡 촬영장 / 낮

꽃미남 배우, 악당들에게 쫓기다가 계곡 바위 앞에 당도한다.


“오케이” 소리와 함께 배우들, 연기모드 해제.


아래쪽에서 모니터를 보던 감독이 메가폰에 대고 소리친다.


 


감독 표정 좀만 자신감 있게 가고 악당들 노려보고는 바로 뛰어 내리는 거야.


 


꽃배우, 절벽에서 스탠바이하고… “액션” 소리에 꽃배우, 악당들을 노려보고는 바위 앞에서 멈칫한다. 모니터를 보던 감독, “컷” 외치며 일어난다.


 


감독 왜 그래?


꽃배우 이거 내가 직접 뛸 필요 없지 않나요? 어차피 CG 입힐 거 대역 쓰고 얼굴만 내꺼 따 붙이면 되잖아요.


조연출 (감독만 듣게) 지가 감독이에요? 무슨 배우가 근성이 없어.


감독 조용히 해. 쟤 듣겠다. (꽃배우 보며) 그럼, 그림이 안 살잖아.


꽃배우 스턴트 써요. 같은 의상 입히면 떨어질 때 누가 누군지 알게 뭐예요.


감독 (헉! 열 받지만) 오케이! 떨어지기 전에 표정연기나 제대로 살려줘.


꽃배우 (손으로 오케이 사인)


감독 (조연출에게) 야, 누구 대역할 사람 좀 찾아와.


 


조연출, 근처에 파워맨 복장을 하고 대기하고 있는 현성과 눈이 마주친다.


 


<점프>


현성이 꽃배우와 같은 의상을 입고 바위 위에 서 있다. 가면은 안 썼다.


“액션” 소리와 함께 물로 뛰어내리는 현성… “컷. 다시 갑시다.” 감독의 외침.


물에 다 젖어 밖으로 나오는 현성… 스텝들, 현성의 의상과 머리를 말린다.


현성 보다 젖은 의상과 머리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현성, 다시 바위 위에 서서 대기하다 “액션” 소리와 함께 물로 뛰어내리는…


 


병원 앞 / 낮

복희를 따라온 정복은 불안하게 복희를 올려다본다.


 


정복 할머니 어디 아파요?


복희 할머니 아니고.


정복 그럼요? 누가 아픈데요?


복희 (차마 말을 못하고 본다)


 


병원 입원실 / 오후

침대에 누워있는 윤정을 보며 울먹거리는 정복. 윤정이 손짓으로 부른다.


정복은 울지 않으려고 눈을 깜박이지만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복희도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정복을 살짝 앞으로 민다.


 


정복 (다가가 윤정의 손을 잡고) 엄마…


윤정 엄마, 괜찮아. 그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정복 응.


복희 (비닐봉지에서 배를 꺼내며) 정복이가 엄마 먹으라고 가져왔댄다.


윤정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네. 근데 할머니 파시는 건데…


복희 지가 벌어 사온 거니까 걱정마라.


윤정 네? 그게 무슨…


복희 그런 게 있어.


윤정 (미소) 정복이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안심이다.


정복 엄마 많이 아파?


윤정 괜찮아. 솔직하게 말 안한 거 미안해. 엄마 용서해줄 거지?


정복 (고개를 끄덕이지만 눈물이 또르르)


 


회상 / 정복이네 아파트 / 낮

자그마한 아파트로 거실과 주방의 경계가 없다.


윤정, 커다란 이민자 가방(1부 1신의 것과 동일)을 들고 안방에서 나온다.


정복은 유치원 배낭을 메고 서있다. 옆에는 어린이용 꼬마 캐리어가 놓여있다.


 


윤정 준비 다했어?


정복 (시무룩) 꼭 가야 하는 거야?


윤정 할머니 좋은 분이야. 정복이 아빠를 낳아주신 분이거든. 정복이 많이 사랑해주실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있어야 해.


정복 엄마는 몇 밤 자면 데리러 올 건데?


윤정 잘 모르겠어.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볼게. (지갑에서 5만원 권 한 장을 꺼내 주며) 혹시 뭐 사먹고 싶을 때 사먹어. 알았지?


정복 어? 이 돈에는 아줌마가 그려져 있네.


윤정 아줌마 아니고 신사임당이야. 조선시대 사람인데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대. 그리고 율곡 이이라고 둘째 아들이 엄청 훌륭한 사람이었어.


정복 율곡 이이? 나 알아. (목에 걸었던 목걸이 지갑에서 5000원 권을 꺼내고) 이 사람이 율곡 이이야. 맞지?


윤정 우리 정복이 똑똑하네. 어떻게 알았어?


정복 돈에 쓰여 있어. 우와, 그럼 엄마랑 아들이랑 둘 다 돈에 얼굴이 있네.


엄마 돈이 더 큰돈이고 아들 돈이 더 작은 돈이지? 그치?


윤정 (미소) 엄마가 신사임당처럼 훌륭한 엄마는 아니지만 정복인 훌륭하게 잘 커야 돼.


정복 엄마 훌륭한 엄마야. (5000원을 주며) 율곡은 아들이니까 엄마가 갖고 있어.


윤정 열심히 모은 돈인데 엄마 줘도 돼?


정복 (미소) 엄마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윤정 (미소) 엄마도 정복이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정복, 지폐를 잘 접어서 자신의 목걸이 지갑에 넣고는 목에 건다.


따뜻하게 보던 윤정은 정복을 꼭 안아준다. 토닥이는… 정복도 엄마를 토닥인다.


 


현재 / 현성의 옥탑방 앞 / 아침

정복, “사범님, 사범님”하며 막 문을 두드린다. 아무 대꾸가 없다.


정복, 창문 쪽으로 가서 창문도 두드리지만 아무 대꾸가 없다.


 


현성의 옥탑방

시끄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자고 있던 현성이 괴로워 몸부림친다.


 


현성 아, 제발… (계속 되는 소리에 눈을 뜨는) 이 시간에 누구야?


 


현성,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일어나 문을 열면 정복이 쑥 들어온다.


 


현성 (눈 비비며) 야아, 이정복!


정복 나쁜 놈들 물리치고 착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세요.


현성 너, 간밤에 꿈을 잘못 꿨냐?


정복 나 때문에 엄마가 더 아픈 거 같아요.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 같다고요.


현성 무슨 소리야? 누가 아프다고… (정신 드는) 엄마가 아프셔?


 


<점프>


정복, 고개를 숙인 채 방바닥만 보고 있고… 현성의 표정도 좋지 않다.


 


현성 그래서 할머니네 집으로 온 거였구나. 어쩐지 엄마 얘기에 민감하더라니.


정복 태권도 학원에서 연습하는 대회에 나도 나가고 싶어요.


현성 음… 니 실력으론 승품심사는 좀 어렵지 싶은데…


정복 엄마가 내가 태권도 하는 거 보고 싶다고 했어요. 엄마한테 보여줄래요.


그리고 내 돈 뺏어간 나쁜 놈들도 물리칠 거예요.


현성 (안된) 에휴, 무슨 7살 인생이 그러냐? 알았어. 이제부터 특훈이다. 에취!


 


<플래시백> 옥탑방, 새벽


현성, 기운 없이 들어온다. 온몸이 뻐근하고 몸도 으스스하다.


에취- 재채기를 크게 하며 훌쩍이는 현성… 목과 어깨를 돌려보는데 아프다.


현성, 서랍을 뒤져 약상자를 꺼내 파스를 붙이고 자잘한 상처에 연고를 바른다.


피곤이 몰려든 현성은 약상자를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현재>


현성, 약상자를 아무리 뒤져도 해열제가 보이지 않는다.


정복은 그제야 현성의 어깨에서 목까지 붙어있는 파스를 본다.


 


정복 사범님도 어디 아파요?


현성 어제 악당들하고 계곡물에서 막 싸웠거든. 그래서 감기에 걸린 거 같은데, (지갑에서 5000원 권을 꺼내주며) 약국에서 감기약 하나만 사다주라.


정복 어? 율곡이다.


현성 어? 너, 쬐끄만 게 그런 것도 아냐?


정복 네. 파워맨처럼 훌륭한 사람이니까요. (괜히 비장해서) 감기약 사올게요.


 


과일가게 안 / 낮

복희, 과일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데 비닐봉지를 든 서씨가 들어온다.


 


복희 (힐끗 보더니) 뭔 볼 일로 왔어?


서씨 (봉지 내밀며) 일전에 애가 갈치 좋아한다고 했잖어.


복희 비린 거 안 먹는다고 한 거 못 들었어?


서씨 (손에다 안겨주며) 누가 양씨 먹으래? 손주 먹이라고.


복희 남의 손주 먹을 거 걱정은 왜 하고 그런대. 됐으니까 가져가.


서씨 그래, 나가 잘못했어. 됐남?


복희 나잇살 먹어서 어린 거 앞에서 채신머리없이 그러는 거 아니야.


서씨 알았어. 알았다고.


복희 이참에 연을 끊으려고 했더니 그것도 못하게 하네.


서씨 근데 민사장이 보증금 올려달라고 한 건 어떻게 하기로 했대?


복희 왜? 여윳돈이라도 빌려주게?


서씨 내가 그런 돈이 어딨어? 그냥 걱정되니까 묻는 거지.


 


<플래시백> 과일가게, 59신에 이어지는…


복희와 민 사장, 마주보고 서있다.


 


민사장 처남이 행패부리고 갔단 얘길 듣고 아차 했어요. 피핸 다 변상하겠습니다.


복희 그동안 정리도 있고 변상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민사장 (난처한) 이런 말씀드리기 아주머니께 죄송하지만 가게 빼주셔야겠어요. 밉다고 해도 처남인데 살 길은 열어줘야 할 거 같아요. 아버님하고 인연도 있고 여러 사정이 있으신 것도 아는데 양해 좀 해주세요.


복희 뭔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뭐, 어쩔 수 없죠. 사람부터 살고 봐야지.


민사장 제 맘도 편치는 않습니다. 자리 잡으시면 연락 주세요.


복희 (미소) 아버님도 그렇고 민사장도 그렇고 그동안 고마웠어요.


 


<현재>


서씨 민 영감님이 돌아가시니까 낙동강 오리알이구먼.


복희 보증금 올려줄 돈도 없는데 되레 미안하단 소리까지 들었으니 됐지 뭐.


서씨 할망구, 그동안 과일장사 헛했어. 혼자 벌어 혼자 쓰면서 모아둔 돈이 1000만 원도 안 돼? 맨날 떨이 고등어만 사먹더니 돈은 워따 다 썼대.


복희 모으는 족족 불우이웃 돕기 성금 냈다. 왜?


서씨 아니 왜 남 좋은 일만 하고 살어? 양씨가 불우이웃이여.


복희 그래, 내 팔자가 하도 드세서 남편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은 거 같아서 남은 자손이라도 잘 되라고 그랬다. 어쩔 거야.


서씨 돈 욕심 없는 것도 병이여. 고질병.


복희 그렇지도 않어. 나 돈 욕심 있어.


 


<플래시백> 은행.


복희, 창구에 번호표를 내밀고 전표와 통장을 내미는데…


은행원, “이정복 님?”하는데 복희는 “됐어요”하며 통장을 챙겨 서둘러나간다.


 


<현재>


복희 욕심 낼 돈이 따로 있지. (자조적으로 웃는)


서씨 뭐가 욕심이여? 손주새끼 입히고 먹이려고 그런 거잖여.


복희 양복희가 이깟 가게 없다고 내 새끼 굶길까 걱정이야? 소싯적에 애 업고 야채행상부터 시작한 사람이야. 좌판이라도 깔고 장사하면 돼.


서씨 큰소리치는 거 보니 워째 불안혀. 한강다리서 뛰어 내리는 거 아니지.


복희 그놈의 주둥이! (과일을 비닐봉지에 넣어주며) 자, 갈치 값이야.


서씨 나가 그걸 어띃게 받어.


복희 받어. 나 아직 영봉상회 양사장이야.


서씨 (속마음을 다 아는) 그래, 양복희 사장 배포 하나는 크다.


복희 (서씨 보며 웃지만 마음이 무겁다)


 


공원 일각 / 오후

현성, 눈높이 맞춰 태권도 품새를 가르치면 정복은 어설프지만 열심히 따라한다.


 


현성(V.O.) 잘 배워둬. 승품심사도 준비하고 싸움기술도 익히는 거야. 나쁜 놈들한테 또 돈을 뺏길 순 없잖아. 이기려면 싸움부터 잘해야지. 여러 명이랑 싸울 때 한 놈만 죽어라 패라고들 하는데…


 


<점프>


정복의 품새 자세가 단단해졌다. 이번에는 태권도 방어기술을 가르친다.


현성, 얼굴막기를 하면 정복이 따라하는, 몸통막기를 하면 정복이 따라하는…


 


현성(V.O.) 내 생각엔 무조건 도망치는 게 최선이야. 명심해라.


정복(V.O.) 파워맨도 도망쳐요?


현성(V.O.) 인마, 넌 파워맨이 아니잖아. (헛기침) 일대일에서는 한번쯤 승부를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점프>


현성, 태권도의 공격기술을 가르친다. 지르기, 치기, 찌르기, 차기 등등.


현성이 발차기를 하면 옆에서 따라 발차기를 하는 정복.


현성, 곧잘 따라하는 정복이 기특하다.


 


정복(V.O.) 저도 언젠가 파워맨처럼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헤헤.


현성(V.O.) 웃지 마. 정 들겠다.


 


동네 거리 / 오후

현성과 태권도복을 입은 정복이 나란히 걷고 있다.


 


현성 근데 넌 파워맨이 왜 그렇게 좋은데? 맨날 당하다가 막판에 변하잖아.


정복 엄마가 정말 힘이 센 사람은 함부로 힘을 쓰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파워맨이 더 좋아요. 천하무적인데 절대로 뽐내지 않잖아요.


현성 (피식) 그렇구나. (갈림길에서 손인사하며) 잘 가라. 오늘 배운 거 잊지 마.


정복 (현성의 손목을 보다가) 근데 사범님.


현성 (가려다 말고) 응? 왜?


정복 왜 파워팔찌를 안 하고 다녀요?


현성 어? 어, 그거야 누가 너처럼 알아채면 안 되잖아. 그래서 조심하는 거야.


정복 (고개를 끄덕하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며 간다)


현성 아, 동심의 세계구나. (피식 웃으며 간다)


 


치킨가게 / 오후

현성 혼자, 자리에 앉아있으면 최관장이 들어온다.


 


최관장 공사다망한 분께서 어쩐 일이야? 대낮부터 술을 다 산다고 하고.


현성 술 보다는 치킨 먹자고 부른 거지.


최관장 (앉고) 수업 끝나자마자 어딜 그렇게 내빼는 건데? 청소 좀 하면 좀 좋아?


현성 다 그럴 사정이 있으니까 그렇지. 잠깐만 기다려. (주인 남에게 쿠폰 10장을 내밀며) 사장님, 후라이드 하나랑 오백 두잔 주세요. 맛있게 튀겨주세요.


최관장 저놈의 넉살… 공짜쿠폰으로 생색내기 전에 얘기부터 해봐.


현성 어? 무슨 얘기?


최관장 내가 널 몰라? 할 얘기 있으니까 불러냈겠지. 밑밥 깔 생각 말고 얘기해.


현성 헤, 다음 달에 울 엄마 회갑인데 돈이 좀 필요해서. (한숨) 차마 내려가진 못하겠고 용돈이라도 좀 부쳐 드리고 싶은데… 비자금 좀 없어?


최관장 미친 놈… 내가 니 금고냐? 이제라도 좀 깨달아라. 니네 부모님은 점점 연로해가실텐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현성 알아. 나도 우리 부모님한테 잘하고 싶다고. 근데 지금 그만두면 살면서 계속 후회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하라고.


최관장 어후, 웬수가 따로 없어. 그래서 얼마?


현성 50만 원.


 


이때, 주인남자가 치킨과 생맥주를 놓고 간다.


현성, 잔을 들어 건배를 유도한다. 최 관장은 반쯤 넘어왔다.


 


아파트 놀이터 / 해질녘

정복과 민환, 놀이터 정글짐을 옮겨 다니며 놀고 있다.


민환모가 놀이터 입구에서 민환을 부르자, 민환은 정복에게 손을 흔들고 간다. 정복도 손을 흔들어주고 아쉬운 마음에 미끄럼틀을 내려왔다 올라가며 혼자 노는데 이얏- 남자애들의 거친 소리와 탕탕- 비비탄 소리에 싸한 느낌을 받는다.


정복, 미끄럼틀 위에서 두리번거리면 우진네 일당이 총싸움을 하는 것이 보인다. 정복의 눈에 불꽃이 이는데…


 


현성의 집 앞 / 저녁

편의점 비닐봉투를 든 현성, 요구르트를 마시며 집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사범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현성, 돌아보면 정복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정복 (헉헉) 사범님 봤어요.


현성 어? 뭘 봤는데 그래?


정복 내 돈 뺏어간 그놈들이요!


현성 뭐? 어디서?


정복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기서.


 


아파트 놀이터 인근 / 저녁

현성과 정복, 둘러보지만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한 발 늦어 억울하다.


 


현성 튀었네. 튀었어. (근처에서 비비총알을 줍고) 이거 걔들이 갖고 놀던 거야?


정복 네, 맞아요. 막 총 쏘고 놀았어요.


현성 (총알을 보며) 위험하게 노네. (정복에게) 무작정 안 덤비고 나한테 온 거 잘했어. 이 자식들 보통이 아니다.


정복 (심각한) 정말요? 파워맨도 힘들어요?


현성 그럴 리가 없지. 파워맨이 어린이 악당도 못 이기면 파워맨이 아니지. 이 부근에 사는 놈들이 분명하고 돈 찾을 날도 멀지 않았어.


정복 (안심이 되면서도 안타까운)


현성 암튼 넌 그놈들 보면 무조건 피해. 괜히 할머니 걱정시키지 말고. 알았지?


정복 (마지못해 끄덕)


현성 (편의점 봉투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주며) 마셔. 뛰어다니느라 힘들었겠다.


정복 (입맛 다시는) 감사합니다.


 


살림집, 방 / 낮

정복, 파워맨 포스터를 펴놓고 물끄러미 보고 있다. 특히 파워팔찌를…


정복의 상상으로, 파워맨 복장을 하고 파워팔찌를 찬 정복과 총을 든 우진네 일당들이 대치하고 있다. 우진네 일당이 총을 쏘며 덤비지만 정복이 "파워 업!"을 외치치자 팔찌에서 빛이 나며 일당들이 펑- 날아가 버린다.


실제의 정복, 신이나 벌떡 일어나 주먹을 올리며 외친다.


 


정복 파워 업!


복희 (들어오다 깜짝 놀라는) 요샌 태권도에서 그런 것도 가르치냐?


정복 (그제서 현실로 돌아온) 헤, 태권도 아니에요.


복희 요새 매일 늦는데 나쁜 친구 사귀고 그런 거 아니지?


정복 그런 거 아니에요. (포스터를 소중하게 돌돌 말아서 잘 둔다)


 


현성의 옥탑방 / 밤

현성, 침대에 앉아 지갑을 열어보면 1000원짜리 몇 장이 전부다.


 


현성 이래서 5만 원을 어떻게 주냐고… (머리 쥐어짜며) 김현성, 이 한심한 인간! 경민이형한테 55라고 했어야지. 그럼 50만원 엄마한테 붙이고, 5만원은 정복이 주면 딱이잖아. 아, 바보팅이! (침대에 벌렁 누워 몸부림친다)


 


태권도 학원 / 오전

현성, 대걸레로 열심히 바닥청소를 하고 있다. 최 관장, 들어오다 깜짝 놀라는…


 


현성 (꾸벅 인사) 오셨습니까, 관장님!


최관장 뭐, 뭐냐?


현성 제가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공구들도 다 닦았고요. 창문도 더럽던데 바닥청소 끝내자마자 바로 닦겠습니다.


최관장 너 또 왜 이러세요? 어제로 얘기 끝난 거 아니야?


현성 에이, 제가 왜 이러긴요. 우리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쾌적한 교육환경과 관장님의 노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겁니다.


최관장 (관장실로 가며) 더는 안 넘어가.


현성 (쫓아가며) 저기요, 관장님!


 


 


태권도 학원 관장실 / 오전

최 관장, 들어와 책상의 컴퓨터를 켜는데 현성이 쫓아 들어온다.


 


현성 들어보지도 않고 왜 그래.


최관장 거봐. 꿍꿍이가 있지.


현성 꿍꿍이가 아니고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


최관장 부탁? 오디션이야? 촬영이야?


현성 아니야.


최관장 (보고) 아니야? 그럼 뭔데?


현성 (손가락을 쫙 펴고) 5만원. 5만원만 가불하자.


최관장 (지갑에서 5만 원짜리 10장을 꺼내 부채처럼 편다) 이 돈은 어떻게 할까?


현성 그건 개인적으로 빌린 거고 이건 공적으로 가불…


최관장 니가 지금까지 가불해간 돈이 마이너슨 건 아냐? 김 사범님은 월급을 받아야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일해서 가불금을 갚아야 한다는 말씀이야.


현성 내가 가불을 그렇게 많이 했어?


최관장 일한 날보다 빠진 날이 더 많은 놈이 입만 살아서는. 너, 어머님 회갑도 거짓말 아냐?


현성 나, 그런 걸로 사기 안쳐. 5만 원만 더 빌려주면 그 은혜 절대 안 잊을게.


최관장 씨알도 안 먹힐 얘기 그만하고 나가서 청소나 끝내세요. (돈을 봉투에 넣어주며) 자, 빌려준다고 했던 50만 원이야.


현성 그럼 청소용역비라고 생각하고 주던가.


최관장 에이, 정말! (옆에 있던 티슈 곽을 들면)


현성 농담이야, 농담! (더 말도 못 꺼내고 도망치듯 나간다)


 


태권도 학원 / 낮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 정복은 자세가 많이 안정됐다.


정복은 현성을 쳐다보지만 현성은 정복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일부러 피한다.


정복은 현성의 태도를 눈치 못 채고… 나서서 민환의 나쁜 자세를 고쳐준다.


 


<점프>


수업이 끝나 자세를 잡고 인사하는 현성과 아이들. “감사합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현성은 쏜살같이 자리를 피한다.


정복은 현성에게 아는 척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다.


 


은행 자동화 코터 / 낮

현성, ATM기에 5만원 한 장을 뺏다 다시 넣었다 하며 고민한다.


띵띵- 경고음이 울리자 현성은 마지막 한 장을 넣고는 확인 버튼을 누른다.


촤르륵 돈 세는 소리. 송금액 50만 원이라는 메시지가 뜨자 확인 버튼을 누른다.


현성, 뭔가 개운하면서도 찜찜하면서도… 복잡하다.


 


현성 잘했어. 45만원은 좀 이상하잖아.


 


현성의 옥탑방 / 낮

정복, “사범님” 하며 안으로 들어오는데 현성이 막 나갈 준비를 마쳤다.


 


정복 오늘은 따로 연습 안 해요?


현성 (뜨끔) 아! 내가 말을 못했구나. 미안한데 한 30분만 혼자 있을 수 있지?


정복 사범님 어디 가는 데요?


현성 중요한 볼 일이 있어서.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기다려.


 


현성, 서둘러 나가면 정복은 현성의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심심하다.


정복, 책상 위 현성의 운동기구를 만져보다 눈이 동그래진다. 파워팔찌다.


정복, 조심스레 팔찌를 껴보는… 커서 헐렁거리지만 힘이 불끈 솟는 것 같다.


 


스턴트회사 건물 앞 / 낮

교관이 서 있으면 현성이 달려온다. 헉헉대는 현성.


 


교관 무슨 일인데 그렇게 뛰어와?


현성 (헉헉) 지금 5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교관 급한 일이란 게 그거였어? 넌 수중에 5만 원도 없냐?


현성 쪽팔리긴 한데 지금 절실하게 필요해요. 출연료 들어오면 바로 갚을게요.


교관 (지갑에서 1만 원 권 다섯 장을 꺼내주는) 뭔 일인지 모르겠다만 그냥 써.


현성 (받으며) 살았다. 근데 꼭 갚을 게요.


교관 정 없게 굴지 말고.


현성 후배 버릇 나쁘게 들이지 마요. 나 뻔뻔한 놈 되기 싫어요.


교관 (피식) 알았다. 너 편한 대로 해.


현성 (찡긋 웃으며) 경민이 형한테는 비밀이에요.


 


현성, 교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교관은 말썽꾸러기 동생을 보듯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아파트 단지 / 낮

정복, 단지 이곳저곳을 살피며 다니지만 우진이나 그 일당들은 보이지 않는다.


정복은 점점 초초한 듯 주머니 속 팔찌를 확인하며 걷는데,


저만치 학원 가방을 들고 혼자 아파트 건물에서 나서는 우진을 목격한다.


보면 총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일당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네 거리 / 낮

까불거리며 걸어가는 우진을 계속 쫓아가는 정복… 거리에 아무도 없다.


굿 타이밍! 정복, 우진을 앞지르고는 당당하게 우진의 앞을 막아선다.


 


우진 너, 뭐냐?


정복 내 지갑이랑 돈 내놔!


우진 뭐? 이게 미쳤나? (하다 알아보는) 아하, 너어!


정복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어!


 


정복, 태권도 자세를 취하자 우진은 코웃음을 친다.


이때, 지나가던 세나는 정복과 우진을 보고는 걸음을 멈춘다.


 


공원 일각 / 낮

현성과 정복이 태권도 연습을 하던 곳이다. 서로 대치해 서있는 정복과 우진.


정복은 한껏 힘이 들어가 있고 우진은 여유롭다.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는 세나.


정복은 "이얍" 기합과 함께 주먹지르기를 하지만 되레 우진에게 일격을 당한다.


너무 아프다. 정복, 자세를 가다듬고 발차기를 하지만 이번엔 헛발질에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가소롭게 보는 우진. 나무 뒤에서 애가 타는 세나.


또 한 번의 공격까지 실패한 정복은 방어에서도 실패해 우진이 휘두르는 주먹과 발길질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 맞는다. 사색이 되는 세나.


 


우진 (때리느라 힘이 들어 헉헉)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정복 (아프지만 주머니에 있던 팔찌를 끼고) 덤벼!


우진 아직 덜 맞았지? 죽고 싶어?


정복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지킨다. (팔찌 찬 팔을 들고) 파워 업! 파워 업!


우진 (황당한) 미친… 어디서 파워맨 흉내야?


정복 너 같이 나쁜 악당은 지구에 둘 수 없어!


우진 뭐어?! 불쌍해서 봐줄랬더니 안 되겠네. 개덕후, 너 오늘 죽었어!


 


우진, 화가 나서 정복에게 달려든다. 정복도 그런 우진을 향해 달려든다.


안타까운 세나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현성의 옥탑방 / 낮

현성, 헉헉거리며 서둘러 들어온다.


 


현성 이정복, 오래 기다렸지?


 


현성, 아무도 없어 둘러보는데… 책상에 메모를 발견한다.


펼쳐보면, 또박또박 쓴 정복의 글씨다.


 


정복(V.O.) 파워팔찌를 빌려갑니다. 절대 어디서 났는지 말하지 않을게요.


현성 (낭패한) 헉, 뭐야? 이 자식이 설마… 에이, 설마…


 


현성, 서둘러 옥탑방을 나선다.


 


아파트 놀이터 / 낮

현성, 숨이 차서 둘러보지만 엄마와 같이 나온 유아들밖에 없다.


 


현성 그래,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했으니까… 여기 왔을 리가 없지.


그럼, 팔찌는 왜…? (헉!) 설마, 높은데서 뛰어 내리는 건 아니겠지?


 


현성, 숨 돌릴 새도 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공원 입구 / 낮

현성, 너무 뛰어다녀 배가 당겨 허리에 손을 얹고 둘러본다. 정복인 어디 있지?


현성, 두리번거리며 “정복아! 이정복!” 부르며 걷는다.


공원에서 달려오던 세나, 현성이 정복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현성에게 달려간다.


 


세나 (헉헉) 아저씨, 이정복 아세요?


현성 어? 어! 너 정복이 어딨는 줄 알아?


 


공원 일각 / 낮

바위에 앉아있는 정복의 뒷모습. 어깨가 축 쳐져 있다.


달려오느라 턱까지 숨이 찬 현성, 정복을 보고는 다가간다.


 


현성 이정복!


정복 (눈이 커져 돌아보고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는)


현성 (어이없는) 저 자식이…!


 


현성은 단숨에 정복의 어깨를 잡는다.


어깨를 잡힌 정복은 으앙- 울음을 터트린다.


 


현성 왜 도망을 가! (하다 얼굴에 난 상처를 본다) 한 놈이랑 붙었다며?


니가 이 정도면 상대 놈은 병원에 실려 간 거지? 그치?


정복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현성 혹시 니 돈 가져간 그놈들 중 하나야?


정복 (고개 끄덕) 대장이요.


현성 내가 만나면 무조건 피하랬잖아. 근데 왜…


정복 사범님이 바쁘니까… 나 혼자서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특훈도 받았고…


현성 넌 대체… 그래, 사범님이 미안하다. 그 자식 내가 잡는다.


정복 그보다 팔찌가… 팔찌가…


현성 팔찌가 뭐? 야, 너 팔찌 누구한테 보여줬어?


 


정복, 손을 내밀면 장식이 떨어지고 찌그러진 팔찌가 들려있다.


 


<점프>


바위에 나란히 앉은 정복과 현성. 둘 다 죽을상이다.


 


정복 죄송해요.


현성 괜찮아. 그 자식만 본 거 확실하지?


정복 네. 가짜라고 막 발로 밟았어요.


현성 나쁜 자식! 그걸 왜 발로 밟아. (혼잣말로) 소품팀에서 난리칠 텐데.


정복 네?


현성 아무 것도 아니야. 넌 태권도 특훈까지 시켜줬는데도 못 이기냐?


정복 지난 번보다 많이 때려줬어요.


현성 그래, 잘했다. 잘했어.


정복 파워맨은 파워팔찌 없으면 변신을 못하는데 어떻게 해요?


현성 괜찮아. 다시 만들면 돼.


정복 하지만 우노 행성에서 가져온 스톤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현성 어? 우노 행성? 아! 우노 행성. (피식 웃는)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정복 (그제서 웃는) 다행이다.


현성 이 자식 웃네. (웃으며) 웃기냐? 웃겨?


 


현성, 기분 좋게 웃자, 정복도 기분 좋게 따라 웃는다.


 


과일가게 / 오후

정복의 몰골에 입이 떡 벌어진 복희. 정복 얼굴에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풀죽은 정복에 비해 현성이 되레 몸 둘 바를 모른다.


 


복희 이게, 대체…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현성 그게, 애들끼리 싸움이 있었나봅니다.


복희 (빗자루를 들고) 너 이놈의 자식! 또 쌈박질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어?


정복 (현성의 뒤로 피하며) 할머니 잘못했어요.


복희 밥도 안 주고 쫓아낸다 했지? 그러고 다닐 거면 태권도 학원도 때려치워!


현성 태권도는 싸우라고 배우는 게, (찌릿 보는 복희 눈길에) 할머님, 참으세요.


복희 (때리려하며) 이놈의 자식 이리 안 나와!


현성 (막으며) 할머님, 제발 진정하세요.


복희 (빗자루 홱 던지고) 우리 집에 쌈꾼 필요 없어! 멋대로 할 거면 당장 나가.


현성 (난감하다)


 


편의점 안 / 해질녘

현성, 장바구니에 라면, 즉석밥, 햄, 김치, 캔맥주, 생수 등을 넣으며 통화한다.


 


현성 저녁 먹이고 좀 있다 데려다 드릴게요. (사이) 아닙니다. 저도 정복이 만한 조카가 있거든요. (사이) 네, 너무 걱정 말고 계세요.


 


현성, 전화 끊고 계산대로 가려다 캔맥주를 꺼내고 초코우유를 하나 넣는다.


현성, 계산대 앞에 물건을 내려놓고 지갑에서 지폐를 내고는 깜짝 놀란다.


 


현성 (돈을 다시 가져오며) 죄송해요. 카드로 계산할게요.


 


현성의 옥탑방 / 저녁

현성, 라면을 끓여 밥상에다 올려놓는다.


정복, 배가 고팠는지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현성 맛있냐?


정복 맛있어요. 할머니는 라면 잘 안 끓여주거든요. 앗! 뜨거.


현성 (물 따라주며) 너 라면 먹였다고 나 할머니한테 빗자루로 맞는 거 아니냐?


정복 으히히.


현성 웃냐? 그래 웃어라. 그러니 니가 7살이지. (초코우유를 주며) 이건 디저트.


정복 나 초코우유 디게 좋아하는데. 역시 파워맨은 모르는 게 없어요.


현성 너, 파워맨 너무 좋아하지 마. 팔찌 없음 별 힘도 못 쓰는 놈이잖아. 생긴 건 희멀건 해서 근성도 없고 눈웃음이나 치는 바람둥이 놈에, 순 싸가지.


정복 (보는) 사범님은 사범님이 싫어요?


현성 아, 그러니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파워맨 말이야.


정복 (보는, 무슨 말이지?)


현성 텔레비전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주인공이잖아. 그래서 잘생긴 애가 파워맨인 척 연기하고 있거든. 실제로 악당을 물리치는 건 난데 말이야.


정복 힘내세요. 진짜 파워맨이 사범님이란 걸 내가 알잖아요.


현성 (기특한) 어서, 먹자. 먹고 힘내서 행복해지자.


 


동네 거리 / 밤

현성과 정복, 나란히 걷는데… 현성,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현성 참, 잊고 있었다. (정복에게 흰 봉투를 주며) 받아.


정복 이게 뭔데요?


현성 아까 편의점 갔다 오다 그 악당자식 만났거든. 다행히 자식이 안 쓰고 그대로 갖고 있더라고. 근데 지갑은 못 찾았어.


정복 (실망하지만) 엄마 사진이 있는데… 엄마는 이제 볼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현성 야, 간지럽게 인사는… 근데 그 예쁘게 생긴 애는 누구냐?


정복 누구요?


현성 너 공원에 있다고 알려준 여자애 말이야.


정복 그게 누군데요?


현성 나야 모르지. 너도 몰라?


정복 네,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현성 자식, 은근 시크하다니까. 암튼 이제 그 악당자식은 잊는 거다.


정복 (밝게) 네!


 


과일가게 앞 / 밤

복희, 서성이며 정복을 기다리고 있다.


현성과 함께 오던 정복은 “할머니” 부르며 복희에게 달려간다.


복희는 마음과 달리 자리에 멀뚱히 서서 정복을 기다린다.


현성, 복희에게 인사를 하고 정복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현성, 돌아보면 정복의 귀가를 안도하는 복희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촬영장 일각 / 낮

현성, 망가진 팔찌를 소품담당 코디에게 보인다.


 


코디 이걸 이렇게 만들어 오면 어떻게 해요? 왜 반납을 안 하고 가서는…


현성 죄송합니다.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코디 됐어요. 대역배우 개런티 뻔히 아는데 다음부턴 조심해줘요.


현성 정말 죄송합니다.


 


코디, 뒤에 놓인 박스 중에 하나를 열면… 파워팔찌가 수두룩하다.


코디가 그 중 하나를 꺼내 현성에게 준다. 현성, 완전 허무해진다.


 


현성 우노 행성 스톤이 흔하네.


코디 네?


현성 아니요, 생각보다 팔찌가 많아서요.


코디 중요한 소품인데 미리미리 준비해놔야죠. 안 그랬단 조연출한테 깨져요.


현성 (미소) 그렇겠네요.


코디 그래도 소중히 다뤄줘요. 다 제작비거든요.


현성 (밝게) 네, 조심하겠습니다.


 


촬영장 다른 일각 / 낮

파워맨 옷을 입은 현성, 단역배우들 틈에 섞여 대기하고 있다.


현성, 팔목의 팔찌를 만지작거린다.


 


현성 이깟 걸 구하겠다고 지 몸을 던지다니… (피식) 바보.


조연출(E) 악당들, 출동하고, 파워맨은 촬영대기!


현성 (혼잣말로) 그래, 악당과 싸우러 가자. 파워 업이다.


 


주변에 군데군데 앉아있던 악당복장의 배우들 일어나 촬영장으로 가고…


현성, 가면과 헬멧을 쓰고는 가볍게 몸을 푼다.


 


학원 건물 앞 / 낮

정복, 현성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데 피아노가방을 든 세나가 다가온다.


 


세나 괜찮니?


정복 (수줍은) 뭐, 뭐가?


세나 너 얼굴에 상처 많이 났어. 거울 안 봤어?


정복 싸운 거 아니야.


세나 알아. 싸웠다기보다 너 혼자 맞은 거잖아.


정복 (자존심 상하는) 누가 그래? 내가 이 정도면 걔는 병원에 실려 갔어.


세나 (가까이 다가서며) 흐음, 어느 병원에?


정복 (설레는) 그, 그건 나도 모르지.


세나 거짓말. 내가 첨부터 다 봤어. 니가 먼저 싸우자고 공원으로 데려갔잖아.


정복 우리 사범님한테 말한 게 너야?


세나 너가 죽을 거 같았거든. 엄청 맞았잖아.


정복 (자존심 상하는)


세나 너, 내가 왜 그렇게 학원을 많이 다니는 줄 알아? (고개 젓는 정복) 우리 엄마가 맨날 밤늦게 퇴근하거든. 그래서 집에 나 혼자 두는 게 미안하대. 그러니까 하루종이 학원에 있으라는 거지. 너도 엄마가 바빠서 할머니네 와있는 거라며?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삐뚤어지지 말라고.


민환(E) 정복형아!


 


정복, 놀라 보면 승합차에 내린 민환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오고 있다.


정복, 세나 때문에 난처하고 세나는 별 생각 없고… 민환, 세나를 유심히 본다.


 


민환 형아 여자친구야?


정복 (화들짝) 아, 아직 아니야.


세나 뭐? 아직?


민환 내 타입은 아니지만 형이 좋다면 인정할게.


세나 헐,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것들이! 난 2학년 누나거든. 까불지 마.


정복 (새침하게 건물로 들어가는 세나에게 시선 고정)


민환 형아, 저 누나 무서워.


정복 됐어. 것보다 오늘 김 사범님 봤어?


민환 아니, 관장 선생님 밖에 못 봤는데. 사범 선생님은 왜 찾아?


정복 좀 볼 일이 있어서.


 


정복, 돌아보면 최 관장이 승합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


 


태권도 학원 / 오후

최 관장이 양손에 미트를 들고 있고 한 사람씩 발차기를 시도해 보는데…


많은 아이들이 폼도 엉망, 제대로 차지 못한다. 최 관장이 발에 맞춰주는 실정.


정복은 유심히 출입문만 보고 있는데… 정복의 차례인데도 나가지 않는다.


 


최관장 이정복, 안 나오고 뭐해?


 


정복, 기합과 함께 미트를 차는데 폼도 좋고 잘 맞아 소리도 명쾌하다.


정복, 꾸벅 인사하고 물러나면 최관장, 의외의 실력에 놀란 눈치다.


 


<점프>


겨루기 시합 중이다. 민환은 상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다가 진다.


다음으로 정복이 나서는데 상대 아이와 키 차이가 많이 난다.


최 관장이 시작을 알리자 격렬히 겨루는 두 아이. 처음에 정복이 밀리는 듯 하지만 정복의 회심의 돌려차기에 나가떨어지는 상대아이. 정복의 승이다.


 


최관장 이정복 맞아? 노란띠의 반란일세. 연습 많이 했구나. 품띠 받아도 되겠어.


정복 (헉헉대는, 그래도 칭찬을 받아 좋다)


 


병원 입원실 / 낮

윤정,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고 복희가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복희, 윤희의 손에 꼭 쥐고 있는 5천원짜리를 본다.


 


복희 왜 돈을 쥐고…


윤정 (눈을 뜨고 힘없이 미소) 힘드시니까 자주 오지 마세요.


복희 올 만해서 오니까 신경 쓸 거 없어. 무슨 돈이야?


윤정 이거요. 정복이가 준 거예요. 벌써 엄마 용돈도 주더라고요.


복희 어린 게 속이 꽉 차서… 몸은 좀 어떠냐?


윤정 괜찮아요. 정복이는요?


복희 요새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며 다니는지 통 집에 붙어있질 않아.


윤정 (미소) 정복이 원래 활발한 아이에요. 정 많고 사람 좋아하고…


복희 그런 것 같더라. 사범 선생도 잘 따르고 친구도 좋아라 해.


윤정 다행이에요. 정복이 옆에 어머님이 계셔서 안심이 돼요.


복희 약해빠진 소리 말어. 애한테는 누가 뭐래도 엄마가 최고야.


윤정 네. (미소 지으며 지폐를 본다)


 


학원 건물 앞 / 오후

정복, 태권도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며 한숨을 쉰다.


 


<플래시백> 살림집 방


이브자리 깔려 있고 복희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정복, 뿌듯한 얼굴로 현성이 건넨 흰 봉투에서 조심스럽게 돈을 꺼내는데…


정복의 손에 만원권 5장이 들려있다. 실망하는 정복, 힘이 쭉 빠지는 것 같다.


 


<현재>


정복, 흰 봉투를 보다가 다시 태권도학원 가방에 넣는다.


승합차 도착하고 최관장이 내리면 정복이 한달음에 다가간다.


 


정복 관장님.


최관장 너 아직도 안 갔어?


정복 김 사범님은 오늘 왜 안 나오세요?


최관장 자식이 뻑하면 촬영… (아차!) 김 사범님이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래. 사범님은 왜 찾는데?


정복 드릴 게 있어서요.


최관장 나한테 주고 가. 내일이면 나올 텐데 전해줄게.


정복 아니에요. (꾸벅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최관장 참, 너 승품심사 생각 있니? 품새, 겨루기, 격파 세 가지 시험을 보는데 연습 좀만 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야. 할머님께 말씀 드려봐.


정복 애들이 돈 든다는데 얼마나 들어요?


최관장 심사비 포함해 이런저런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 왜? 돈 아깝냐? 최소 1년은 배워야 볼 수 있는 시험이니까 오히려 돈 아끼는 거야.


정복 좀만 기다려주세요. 나중에 돈 낼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최관장 자식 일취월장했단 말이야. 내 교육노하우가 빛을 발했어.


 


현성의 옥탑방 앞 / 저녁

현성, 피곤해 계단을 올라오는데 정복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현성 이정복?


정복 (일어나며) 사범님? (오래 앉아있어 다리에 쥐가 난다) 아얏!


현성 (달려가 부축하며)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현성의 옥탑방 / 저녁

현성, 정복의 종아리를 주물러주고 있다.


 


현성 너 아무래도 스토커 기질이 있는 거 같다.


정복 스토커가 뭔데요?


현성 무시무시하게 막 쫓아다니는 사람을 스토커라고 불러.


정복 무시무시하게 쫓아다닌 적 없는데…


현성 오늘처럼 약속도 없이 남의 집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기다리고 있는 거, 이런 것도 스토커가 하는 짓이야.


정복 망가진 팔찌 때문에 학원에도 안 나온 거죠?


현성 괜찮아. 우노 행성에선 흔한 스톤이고 파워팔찌도 흔한 거야.


정복 (안도) 진짜 다행이다. (태권도 가방에서 주섬주섬 흰 봉투를 꺼내주며) 사범님, 이거요.


현성 이게 뭔데? (보면 자신이 준 만원짜리 5장이다) …이걸 왜 다시 줘?


정복 제 돈이 아니에요.


현성 니 돈 맞아. 그 자식한테 받아온 거라니까.


정복 거짓말이잖아요.


현성 아냐.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잘 봐봐. 니 돈 맞아.


정복 엄마가 준 돈은 신사임당이 그려져 있는 돈이에요.


현성 (아뿔싸!) 뭐? 그런 걸 왜 이제 말해! 에이… (민망하다)


 


 


동네 골목 / 저녁

정복, 타박타박 열심히 걸어가면 “이정복”하며 현성이 뛰어온다.


 


현성 어두운데 집까지 데려다줄게.


정복 하나도 안 무서운데.


현성 난 니네 할머니 무섭거든. 너 혼자 보냈다고 혼내실라. (피식 웃고) 가자.


정복 네.


 


현성과 정복, 나란히 걷는다.


 


현성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실망했지?


정복 아니에요. (현성을 향해 씩 웃는다)


현성 자식, 이거 살인미소네. (흰 봉투 주며) 받아. 사범님이 주는 거야. 찾아주기로 해놓고 찾아주지도 못하고… 그냥 받아주면 마음이 편할 거 같다.


정복 괜찮아요.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현성 (정복을 살피지만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입구 / 낮

정복, 입구 근처에 쪼그려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책가방을 멘 우진이 오는 것이 보이자, 정복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다.


정복, 우진의 앞을 떡 하니 가로막고 선다. 우진, 어이없다는 표정…


우진, 정복을 무시하고 아파트로 들어간다.


 


학원가 거리 / 낮

우진, 학원 가방을 들고 가는데 정복이 쫓아오고 있다.


우진, 낌새를 느끼고 멈춰서 정복에게 다가간다.


 


우진 개덕후 껌 딱지야! 저리 안 꺼져?


정복 내 돈 내놓을 때까지 스토커처럼 계속 따라 다닐 거야.


우진 조잔한 새끼. 그걸 아직까지 갖고 있겠냐? 다 썼다. 어쩔래?


정복 내 지갑은 어쨌어? 지갑이라도 내놔!


우진 버렸다. 어쩔래!


 


정복, 화가 나 덤벼드는데 우진은 그런 정복을 밀쳐서 넘어뜨린다.


정복, 벌떡 일어나 우진을 있는 힘껏 밀어 넘어뜨린다.


우진, 당황해 울상이 된다. "으이씨! 저게!!" 벌떡 일어난다.


 


다른 학원 앞 / 오후

우진, 학원에서 나오는데 정복이 다가오자 흠칫 놀란다.


정복은 주먹으로 맞은 입가 자리가 터져있어 기괴한 느낌마저 준다.


다른 학원 친구들은 그런 정복과 우진을 이상하게 보고… 수군대기도 한다.


우진, 누군가 나서서 정복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볼까 겁이 난다.


우진, 정복을 피해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정복도 우진의 뒤를 쫓아 달린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 오후

우진, 헉헉거리며 어딘가 노려보면, 좀 떨어진 곳에 정복도 헉헉거리며 서있다.


숨을 고른 우진, 놀이터 근처 화단에 숨겨두었던 모종삽을 꺼내 들고 나타난다.


정복, 갑작스런 흉기의 등장에 침을 꼴깍 삼키는데… 우진, 정복을 향해 모종삽을 힘껏 던지고… 정복, 몸이 굳어 그 자리에 얼음이 된다.


정복의 상상으로 악당이 쏜 폭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챙- 정복의 발 아래로 떨어진 모종삽. 현실로 돌아온 정복은 살았다 싶은…


우진, 한 발짝도 피하지 않은 정복이 더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또라이다.


 


우진 저쪽 화단 파봐.


정복 (어리둥절해 보는)


우진 으이씨- 개덕후 껌 딱지, 니 돈 저기 묻어놨으니까 가져가라고!


 


정복, 속는 셈치고 모종삽을 들고 화단으로 가서 파본다.


얼마 파지 않아 검정비닐에 잘 싸놓은 목걸이 지갑이 나온다.


 


우진 너, 앞으로 내 앞에 나타면 진짜 죽을 줄 알아! (치를 떠는)


정복 (너무 기쁜 나머지 우진의 협박이 들리지 않는다)


 


현성의 옥탑방 / 오후

정복의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주는 현성. 정복, 아프지만 잘 참는다.


 


현성 아우, 내 팔자야. 가르친 보람이 없다.


정복 제가 이정도면 그 자식은 어떻겠어요? 병원 갔을 거예요.


현성 어쭈, 배우라는 건 안 배우고 허풍은 잘도 배우네.


정복 (씩 웃는)


현성 웃기냐? 니네 할머니한테 뭐라고 하냐. 태권도 학원에서 싸움질만 가르쳤다고 하실 거 아냐?


정복 잘 말하면 괜찮아요. (기분 좋은)


현성 치, 그래서 찾으니까 좋냐?


정복 (목에 걸린 목걸이지갑을 만지며) 이제 엄마한테 떳떳할 수 있어요. 이 돈으로 태권도 시험 볼 거예요.


현성 아… 좀 모자랄 텐데… (흰 봉투 내놓고) 보태라. 너 때문이 아니고 니네 엄마 때문에 주는 거야. 사범님 덕에 잘 배워 합격했다고 자랑해야지.


 


정복, 고마워 보는데… 이때, 울리는 현성의 핸드폰. 정복할머니다.


 


현성 (목소리 가다듬고 받는) 네, 여보세요? (사이) 아, 안녕하세요? (사이) 네, 정복이 지금 저랑 같이 있습니다. (사이) 네? (정복을 보는) 아, 예. (사이)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걱정스레 정복을 보는)


정복 우리 할머니가 왜요?


현성 그게… (걱정되는 표정으로 본다)


 


병원 중환자실 / 낮

윤정, 호흡기를 하고 누워있고 위생복을 입은 정복과 복희가 면회를 와 있다.


윤정, 정복에게 손을 뻗으면 정복이 그 손을 잡아준다.


복희는 정복 모르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정복 많이 아파?


윤정 얼굴이… (헉헉) 얼굴이 왜 그래?


복희 친구랑 싸워서 그랬단다. 태권도 가르쳤더니 쌈박질만 하고 다닌다.


윤정 친구랑… (헉헉) 사이좋게 지내야지.


정복 응. 이젠 안 싸워. 그러니까 엄마도 아프지 마.


 


윤정, 고개를 끄덕하자 정복은 윤정에게 귓속말을 한다.


복희,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다가 돌아선다.


 


윤정 (헉헉, 미소) 태권도 하는 모습 꼭 보여줘.


정복 응.


 


중환자실 앞 / 낮

복희, 먼저 나오면 현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있다 일어난다.


 


현성 정복이는?


복희 엄마랑 비밀 얘기가 있는 거 같아서 먼저 나왔어요. 오늘 신세 많았어요.


현성 아닙니다. 저도 언제 한번 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복희 말이라도 고마워요.


현성 죄송합니다. 정복이 상처… 제가 좀 더 신경 썼어야했습니다.


복희 애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애들이 할머니랑만 산다고 놀린다거나 그런…


현성 그런 일 없습니다. 정복이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정복이가 그랬거든요. 힘이 세져서 엄마랑 할머니 지키겠다고요.


복희 그런 말을 했어요?


현성 네. 정복이 의젓한 녀석이에요. 염려마세요.


 


그때, 정복이 중환자실에서 씩씩하게 나온다. 애써 웃는 정복이다.


그런 정복을 보는 복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정복 (복희의 손을 잡고) 울면 안 아픈 사람도 아프대요.


복희 그래, 안 울어. (코 훌쩍) 으이구, 다 늙어서 주책이다.


 


현성,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온다.


 


연습 몽타주 / 각각 다른 날

128-1. 공원, 현성과 겨루기 연습을 하는 정복. 발차기, 주먹 지르기 등등.


 


128-2. 학원, 현성의 지도에 따라 품새를 연습하는 아이들. 현성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정복의 어설픈 부분을 일일이 교정시키면서 가르치고 있다.


 


128-3. 학원, 현성, 아이들 앞에서 격파시범을 하면 아이들 물개박수를 친다.


아이들도 격파를 해보는데… 곧잘 하는 아이도 있지만 못하는 아이도 태반이다. 정복은 격파성공. 하지만 손이 아픈지 주먹을 만지작거린다. 현성이 봤다.


 


약국 / 낮

연고를 정복의 손에 발라주는 현성. 약사(40대여)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


 


현성 자식이 미련하게… 그때그때 치료 안하고 뭐했어?


약사 아빠가 참 젊으시네요.


현성 에? 아빠라뇨? 총각 혼사길 막을 일 있으세요?


약사 어머, 미안해요. 그럼 삼촌이신가?


정복 우리 태권도 사범님이세요.


약사 어쩐지 하나도 안 닮았다 했어. 애는 참 잘 생겼는데…


현성 (약사의 말에 기분 확 상한다) 저기요.


 


과일가게 앞 + 안 / 오후

정복,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복희는 시무룩하게 의자에 앉아있고 민사장 처남이 가게를 둘러보고 있다. 정복의 눈에는 악당이 복희를 잡아둔 것처럼 보인다.


정복, 이야- 달려가 날라차기로 민사장 처남의 엉덩이를 차버리는데…


스톱모션으로… 갑작스런 일격에 놀라고 아픈 민사장 처남,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복희, 씩씩거리는 정복.


 


살림집, 방 / 저녁

갈치튀김, 소고기무국 등등 신경 쓴 밥상에서 정복, 맛있게 밥을 먹는다.


복희, 옆에서 갈치 살을 발라주다 피식 웃다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정복 왜요?


복희 니가 그 인간 엉덩이 걷어찬 게 웃겨서 그렇지.


정복 (고개를 푹 숙이고) 잘못했어요. 할머니 괴롭히는 줄 알았어요.


복희 당연히 잘못했지. 전후좌우 따져보지도 않고 발길질부터 해대는 놈이 어딨누. (정복의 숟가락에 갈치살 올려주며) 엄마한테는 가게 이사 간다는 말은 말어. 나중에 할머니가 기회 봐서 말 할 테니까.


정복 네.


복희 (기특한) 그래도 할머니가 든든해. 우리 정복이가 있어서 든든했어.


정복 (기쁘다. 맛있게 밥을 먹는) 할머니, 나 태권도 시험 보는데 올 수 있어요?


복희 태권도 시험?


정복 잘하는 애들만 하는 건데 관장님이 나가보라고… 엄마도 보고 싶댔어요.


복희 오냐. 우리 정복이 태권도 하는 거 구경 가야겠구나.


정복 할머니가 엄마도 데리고 올 수 있어요?


복희 그래,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볼게. 만에 하나 의사선생님이 허락 안하시면 할머니가 보고 그대로 말해줄게. 그니까 연습 많이 해서 꼭 합격해야 돼.


정복 밥 먹고 힘내서 합격할게요.


 


정복, 맛있게 밥을 먹는데 복희는 그런 정복이 안쓰럽기만 하다.


 


국기원 심사장 앞 / 낮

‘국기원 승품?단 심사대회’ 플랜카드가 붙어있고,


태권도복을 입고 우르르 줄지어 다니는 초등학생들.


현성과 최관장이 아이들을 이끌고 오면 기다리던 몇몇 학부형들이 다가온다.


정복, 둘러보지만 복희도 윤정도 보이지 않자 아쉽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현성, 그런 정복이 마음이 쓰인다.


 


국기원 심사장 안 / 낮

한패의 아이들이 끝나고 뒤이어 일렬로 들어서는 아이들. 그 중에 정복도 있다.


정복, 자리 잡고 심호흡을 하다 복희가 관중석에서 손 흔드는 것을 본다.


인사를 시작으로 품새 심사가 시작된다. 정복은 아이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품새를 하는… 현성, 열심히 응원하고 복희도 마음을 졸이며 보고 있다.


할머니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정복은 틀리지 않고 동작을 마무리한다.


 


<점프>


격파 심사다. 깨끗하게 격파에 성공하는 정복.


현성은 심사를 끝내고 돌아온 정복에게 윙크를 하면 정복도 윙크로 답해준다.


 


<점프>


겨루기 심사다. 상대는 나이에 비해 덩치가 큰 아이다.


정복, 몸집과 자신감에서 밀리며 시작한다. 힘으로도 당해볼 수 없다.


 


정복 (심호흡하며 중얼) 괜찮아. 엄마가 보고 있다고 상상하면 돼.


 


정복의 상상으로 관중석 복희의 옆에 윤정이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복, 힘과 용기가 불끈 솟는 것 같다.


열성적으로 겨루기에 임하는 정복. 갑작스러운 반격에 당황하는 상대.


정복, 이얍- 회심의 발차기로 상대의 얼굴을 가격한다. KO승.


정복, 기뻐서 관중석을 보면 윤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복희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나가는 것을 본다. 정복… 불안한 생각이 든다.


 


승합차 안 / 낮

현성이 운전을 하고 뒷자리에 정복과 복희가 타고 있다.


정복, 심난한 얼굴로 품띠(검정과 빨강이 반반인 띠)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복희, 불안해하는 정복의 어깨를 감싸준다.


현성, 룸미러로 두 사람을 보고는 액셀을 밟아 속도를 높인다.


 


병원 입원실 / 낮

호흡기를 한 윤정, 침대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정복, 다가가면 윤정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정복, 윤정이 잘 보이도록 품띠를 보이면 윤정의 입가에 미소가 보인다.


정복, 윤정이 알아준 것 같아 기쁘고 안타까운데… 의료진들이 들어온다.


뒤로 밀려난 정복… 눈이 시큰해 깜빡이면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태권도 학원 / 오후

보호구들을 정리하고 있는 현성, 가볍게 한숨을 쉬는데 최관장이 들어온다.


 


최관장 정복이 어머님은 좀 어떠셔?


현성 모르겠어. 병원에만 내려주고 왔어.


최관장 하긴 니가 있는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현성 품띠나 잘 보여드렸나 모르겠다.


최관장 정복이 자식, 어쩐지 열심이더라니… 은근 독종이다 생각했는데 미안하네.


현성 형은 좀 너그러워져야 해.


최관장 너 또 관장한테 개기냐? (주먹을 드는데 현성의 핸드폰이 울리자 멈춘다)


현성 (받는) 네, 조연출님. (사이) 아… 그날은 안 될 거 같은데요. (사이) 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사이) 죄송합니다. 다음에 연락주세요. (끊는)


최관장 뭔데? 왜 내 눈치를 보는데?


현성 내가 무슨 형 눈치를 봐요. 아니야.


최관장 갔다 와. 괜히 후회하지 말고.


현성 엄마 회갑 잔칫날 오라는 걸 거절한 거야. 없는 스케줄 핑계대고 안 갈까 했는데 진짜로 스케줄을 잡기는 싫었어. 후회할 거 같아서.


최관장 김현성, 너… (보는)


현성 그렇게 보지 마. 별 뜻 없어. 아무래도 엄마 쪽이 선약이니까.


 


현성,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비품들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한다.


최관장, 옆에서 도와주며 기특하게 본다.


 


병원 입원실 / 오후

윤정,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고… 침대의 철제 난간에 묶여 있는 태권도 품띠.


품띠가 윤정을 지켜주고 있듯 든든하다.


 


살림집, 방 / 오후

정복, TV에서 나오는 파워맨을 보고 있다.


 


<인서트> TV화면, 79신의 촬영 분.


악당들에게 쫓기던 꽃배우, 바위에서 절벽을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다.


꽃배우, 뒤쫓아 온 악당을 노려보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데…


 


화면을 집중해 보던 정복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파워맨이 솟구쳐 오르자 그제서 정복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방문을 열어보는 복희, TV에 푹 빠져 보고 있는 정복이 그래도 안심이 된다.


 


공원 일각 / 다른 날, 낮

현성, 이얍- 이얍- 기합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쿵푸, 가라데… 여러 가지 무술동작을 한다.


현성, 숨을 내쉬며 손을 단전 아래로 내리자 짝짝짝 박수소리 들린다.


현성, 돌아보면 정복이 바위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현성 또 너냐? 어때? 사범님이 좀 멋있지?


정복 뭐, 쪼끔.


현성 에이, 박한 자식. (옆에 앉고) 엄마한테 품띠 보여드렸어? 기뻐하시지?


정복 네. 그래서 엄마한테 선물로 주고 왔어요.


현성 잘했어.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소중한 걸 줄줄도 알아야해.


정복 어제 티비에 사범님 얼굴이 나왔어요. 난 알아볼 수 있었어요.


현성 (당황) 뭐? 그럴 리가 CG로 한다고… (아차!) 내 얼굴이 나왔어?


정복 네. 확실히 봤어요.


현성 정복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악당들도, 파워맨도 모두 연기하는 거야. 그러니까 난, 나는… 가면을 쓰고 파워맨인 척…


정복 알아요. 사실 점점 의심이 들었거든요. 사범님이 내가 어리다고 파워맨이라고 속이는 거 아닌가 하구요. 근데 이젠 완전히 믿게 됐어요.


현성 (헉!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냐?) 그, 그래?


정복 (미소) 네. 저도 파워맨처럼 뒤에서 누군가를 돕고 살 거예요.


현성 (머리 쓰다듬는) 자식… 파워맨 아닌 척 하려고 했더니 안속아 넘어가네.


 


복희네 안방 / 몇 달 후, 낮

새로 이사한 방으로 예전보다 앉은뱅이책상 등 아이 물건이 더 많아졌다.


책상 위에 문구점에 진열되어있던 파워맨 장난감도 놓여있다.


거울 앞에 선 정복, 넥타이에 와이셔츠를 입고 2대8 가리마를 했다.


복희가 뒤에서 재킷을 입혀주는데 정복의 시선은 TV에 머물고 있다.


복희는 한복을 입고 화장과 머리를 곱게 했다.


 


<인서트> TV 화면


파워맨이 악당을 물리치고 "파워 업!"을 외치는 장면. 팔찌 클로즈업.


갑자기 펑- 암전되는 화면.


 


정복, 파워 업을 외치려고 팔을 들다 놀라보면, 복희가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정복 아, 할머니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야.


복희 입학식 가는 거 보다 중요해? 늦었어. 이름표랑 준비물 다 챙겼어?


정복 (초등학생용 새 책가방을 가져와) 당연하지. 근데 가게 쉬어도 돼?


복희 이런 날 안 쉬면 언제 쉬겠냐. (가방을 메어주며) 어여, 가자.


정복 응. 아참, (돌아보는) 엄마, 나 멋있지?


 


정복의 시선을 따라가면 서랍장 위에 놓여있는 윤정의 영정사진.


복희, 그런 정복을 보자 코끝이 아려온다.


 


정복 할머니, 또 울어?


복희 으이구, 울긴, 누가 운다고. (코 훌쩍)


정복 엄마, 입학식 잘 갔다 올게.


 


정복, 윤정의 사진에 뽀뽀를 하는데 한쪽 손목에 파워팔찌를 하고 있다.


정복, 팔찌를 소중하게 소매 안으로 넣고는 복희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간다.


 


새 점포 앞 / 낮

예전 과일가게보다 작은 규모의 점포로 '정복상회'라는 간판이 새로 걸려있다.


가게 문을 잠근 복희는 정복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한다.


정복은 책가방을 메고 있지만 그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에필로그 / 공원 일각 / 낮

139신에 이어지는…


 


현성 이정복, 너 내가 진짜 파워맨라고 생각하는 거 맞지?


정복 (고개를 끄덕한다)


현성 좋았어. (주머니에서 파워팔찌를 꺼내 정복의 팔에 끼워준다)


정복 (놀라 보는) 이건… 나한테 주면 어떻게 해요? 변신은요?


현성 (자기 손목의 팔찌를 보이며) 우노 행성에 많다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이 정도는 줄 수 있지.


정복 우와, 기뻐요. 어떤 일이 있어도 힘낼 수 있을 거 같아요.


현성 좋았어! 우리 우정의 표시다. 비밀엄수!


 


현성과 정복,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하더니 동시에 벤치에서 일어난다.


두 사람, 팔을 하늘로 번쩍 들더니 "파워 업!"을 외친다.


정복의 상상이 더해져 현성과 정복은 둘 다 파워맨 유니폼을 입은 멋진 영웅의 모습이 된다. 행복한 정복의 표정에서….



<당선소감>

 

작은 봉우리 올라… 이젠 ‘좋은 글’이란 산에 도전

 

영화는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인간의 영혼을 그립니다.

당선 소식을 듣던 날 집 근처 영화관에서 설산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해 가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감정이입은 확실했습니다. 대가 없이 히말라야를 오르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몇 년째 대가 없는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이었으니까요.

영화관을 나서며, ‘동아일보입니다. 전화 부탁합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선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산의 정상에 서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르며, 긴 기다림 끝에 나도 신춘문예에 받아들여졌구나 싶었습니다. 매년 신춘문예에 도전하며 좌절하고, 무너지고, 또다시 마음을 추슬러 도전하고…. 높게만 보이던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고지에 올라섰다는 생각에, 해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해마다 연말 연초가 우울했는데 새해는 우울하지 않게, 기쁘게 맞게 됐습니다. 이제 아주 작은 산봉우리에 올랐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신중하게 내디디며 더 크고 높은 산봉우리들을 오를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불안한 저를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에게 아주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글을 쓰며 만났던 많은 문우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고집불통인 저를 챙겨주고 인정해준 친구들에게도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에도 장점을 봐주신 두 분 심사위원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갈등을 견디어내고 목적을 이루기 때문에 주인공입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목적을 세워, 그 목표를 성취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반드시.



◎ 약력

▶ 1976년 서울 출생

▶ 목원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감동-재미 잘 버무려… 코끝 시큰한 가족영화

 

지난해에 비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고 꽤 괜찮은 시나리오들이 본심에 올랐다. 12편의 본심 진출작 중 심사위원들은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안 돼 쉽게 의견을 모았다.

‘아비규환’은 다른 응모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른’이 쓴 것 같다. 영상을 생각하며 찬찬히 쓴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죽어도 가족’은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사흘간의 소동극이다. 기획력이 돋보였지만 잘 가다가 세 번째 날부터 식상함으로 마무리되어 아쉬웠다. ‘태양의 피’는 서스펜스 설정이 좋았으나 막판에 힘이 빠지고 좀 더 정교한 플롯이 필요하다. ‘양색인’은 흥미를 유발하는 상업적 소재로 쉽고 대중적인 이야기로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많다. ‘춘앵전’은 조선 역사에서 길어 올린 신선하고 독창적인 소재의 발굴이 의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자가 왜 춤에 열중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약하다.

당선작인 ‘정복의 영웅’의 ‘정복’은 일곱 살 주인공 이름이다. 소재와 이야기는 TV 단막극에 어울릴 법한 작은 규모지만 감동도 있고 코끝이 시큰한 가족영화로 손색없게 잘 직조했다. 뭉클하고 소박하고 잔잔한 감동과 재미까지 있어 꼭 영화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정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당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떨어졌다고 어렵게 선택한 소재와 이야기를 그냥 노트북 파일 속에 묻어 두지 말고 수정과 퇴고를 거듭하며 완성해 보기를 바란다. ‘만다라’ ‘짝코’의 송길한 선생님께서는 ‘시나리오는 발로 쓰는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지름길은 없다. 자꾸 쓰고, 고치고, 퇴짜 맞고 하면서 시나리오는 좋아지는 것이고, 어느새 영화로 제작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심사 이정향·주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