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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양을 찾아서 / 구녹원

 

마침내 양은 사라졌다

한 의식을 잃고서 나는 은주발에 담긴 눈*이 되고 싶었다

갈피가 다 바랜 경전 속에 없던 신이

밑창 닳아 낮아진 가죽신 아래에서 흘렀다

눈 내리는 게르 뒤란에서 그 의식은 치루어졌지

양 한 마리는 선택되었고

모든 자연의 의식 속에서 가장 무죄한 저 걸음걸이

죽음으로 걸어갈 때 누구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볼 것이다

단도가 양의 숨길을 통과하는 직전 그 눈은 검은 천으로 가리워지고

목자牧者 는 숨 털 한 올을 뽑아 속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한다

산자에게 건너간 울음소리, 가슴에서 질척이고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

양떼구름이 언덕으로 무리 지어 지나갈 때

두루마리 편지처럼 자꾸 도사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

만나고 싶은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침상 캐시미어에 머리를 파묻고 싶었다

천년을 흐르는 구름도 있었다

양은 어디에 있을까



*벽암록 제 13 칙 파릉(巴陵)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차용.





<당선소감>


 나만의 나무를 찾는 사유의 길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왜 그날이 떠오를까? 달걀 3개로 석유 한 홉을 바꾸고 환한 심지를 바라보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훌쩍거렸던…. 사유하는 내 의식, 내 표현은 늘 허기졌다.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발언이다'라고 매슈 아널드 영국의 시인, 문학비평가는 말했다. 나만의 나무를 찾고 싶었다. 어쩌면 저 광활한 초원 위에서 나의 구름을 찾는 한 마리의 양이었을까?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느린 저를 사유의 길로 이끌어 주신 경기대 이지엽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지전문대 이경교 교수님, 열린시학아카데미 하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와 길, `아카데미' 시우님들 친구분들 모두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다섯 번의 장례의식을 치렀지만. 떠난 그 오솔길에서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미소를 지으실 것 같습니다. 더 겸허히 공부하여 좋은 작품 쓰겠습니다.


◎ 약력

▶ 전남 목포 生

▶ 경기대 예술대학원 독서지도과 재학


<심사평>


 신선한 상상력·큰 스케일이 마음 사로잡아

 

 본심에 30여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 편수는 많았으나 산뜻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적 철학이나, 시적 사유의 폭이 약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종적으로 논의가 거듭된 작품은 송현숙의 `배고픈 이름'과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였다. `배고픈 이름'은 잊혀져 가는 `도장'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독특한 시각과 발상으로 `불운한 가족사'를 잘 그려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적 긴장감이 떨어졌다. 제목 또한 상징성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당선작 구녹원의 `양을 찾아서'는 오랜 숙련의 흔적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사라진' 양의 죽음을 통해 삶을 영속하게 하는 존재의 비의에 천착한다. `가장 조용히 자기를 버려 안식을 얻는 양의 침묵을 본다'는 시구의 깊이, `초원을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펼친다'는 신선한 상상력과 큰 스케일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심사위원 : 이영춘·고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