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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마중물 / 문일지

 

1

앞마당의 물이 심심한가 봐요.

친구들을 불러내서 신나게 놀고 싶은데요.

맘 좋은 '펌프 아저씨'가 도와주죠

푸 푸 푸 푸

룩 룩 룩 룩

(물들 나와라!

물들 나와라!

모래는 필요 없고 물들 나와라!)*


2

땅속은 깊고 어두워요.

친구들은 아직도 자고 있나 봐요.

마당물이,

달달

맘이 급해서…

키다리 '펌프 아저씨'를 따라 쪼로롱 내려가죠.

푸그 푸그 푸그 푸그

덕 덕 덕 덕

(물들 나와라!

물들 나와라!

흙탕물 필요 없고 새 물 나와라!)


3

와아!

하얀 물이 나와요.

마당물을 따라―친구들이,

'앞으로 나란히' 하면서 모두 모두 나와요.

우루 우루

르 르 좔 좔 좔 좔


4

어떤 친구는 밥솥에 들어가…

뽀글뽀글

솥뚜껑 뚜들기며 놀고요.

어떤 친구는 물뿌리개 미끄럼을 타다…

애구구

나팔꽃에 빠져, 사흘이나 귀가 멍멍하고요.

어떤 친구는 물통 속에 들어가…

흔들흔들

참, 재미나게 놀아요.


* “애들 나와라, 애들 나와라. ○○은 필요 없고 △△ 나와라” 하는 구전 놀이 동요 인용.






  <당선소감>


   여기,

   내가 있었노라 


  긴 잠 깨어나 헤아리니

  수염 희어,

  입술 가리고.


  내 있던 곳 돌아보느니

  여기,

  내가 있었노라.


  해는 지는데 갈 길 멀다.

  말 울음소리,

  길을 재촉하는데…


  밤을 낮 삼아 북소리 울리니

  편월,

  기(旗)처럼 높이 솟았다.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과 조선일보사에 삼가 예를 올립니다.


  ● 1958년 서울 출생.

  ● 철도 공무원 및 공사 직원으로 일하다 퇴직.


 

  <심사평>


  적절한 의성어… 구전 놀이 동요 인용 생동감 넘쳐  


  예년에 비해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 동시도 시의 한 장르이므로 마땅히 시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동심의 생각과 느낌을 바탕으로 하되 시적 형상화를 이뤄야 좋은 동시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동심의 발견과 참신한 시적 표현이 조화로운 작품이 많아 기뻤다. 반면에 아직 시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치한 응모작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최종적으로 추수진·정영애·조진영·윤경주·문일지씨를 추렸다. 추수진씨의 ‘한지 조각보’는 조각보를 만드는 마음을 정감 있게 표현했으나 참신성이 떨어졌다. 정영애의 ‘무방구 해적선’은 흥미진진한 동심의 상상력이 돋보였지만 길이가 너무 길고 산문적인 경향이 아쉬웠다. 조진영씨의 ‘옥수수 밭은 밤마다 시끄럽다’는 동화적 발상과 친근한 이야기체가 눈길을 끌었지만 이야기 내용이 평범하고 밋밋했다. 윤경주씨의 ‘종이봉투 잠옷’은 생각의 깊이와 세련된 기법이 단연 뛰어났으나 다소 어른스러운 시각과 목소리가 들어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문일지씨의 ‘마중물’은 통통 튀는 말과 상상력이 번뜩이는 작품이었다. 경쾌하게 반복되는 리듬이 아이들의 흥겨운 놀이판을 연상케 했다. 적절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구사하고 구전 놀이 동요를 사용해 마중물을 출렁출렁 생동감 넘치게 노래했다. 기존 동시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동시를 쓰려는 시도에도 호감이 갔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