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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악수 / 박진경

 

할아버지는 나만 보면

가던 길 멈추시고

손! 그러셔.

키 작은 내가

깨금발 들지 않게

지팡이 짚고 낮아져

손! 그러면?

마음과 마음이 마주해

손을 잡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자꾸만 잡고 싶어.

할아버지 따뜻하게

내가 먼저 마음, 내밀래.

맨날맨날 내밀래.

마음!

할아버지, 여기 마음요!

언제든 마음껏 잡아요.




  <당선소감>


   "오래 들여다보니 다르게 보였다"


  살랑살랑 꽃 한 마리, 꽃 두 마리….

  꽃을 송이로 가두기엔 살아있어 몸부림치는데, 어쩌죠?


  동시를 쓸 때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음에 가만히 두 손이 모아지곤 합니다. 입이 없는 것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저마다의 소리로 아프면 짖고, 슬프면 웁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들이 말보다 더 많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겸손해지곤 합니다. 그렇기에 오래 들여다보고, 깊이 냄새 맡습니다. 그래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 동시는 시보다 마음의 눈을 동그랗게 떠야만

  어! 딱딱한 직사각형이 홀쭉한 타원이 되고, 표정이 보입니다.


  수족관 열대어가 묽묽묽 울고, 연두가 뽀뽀처럼 입술을 내밉니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 버려진 인사들을 가지런히 주워 기사님께 내밀고 싶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먹이고 재웁니다. 세상의 벽에게, 거짓말하는 어른들에게 유쾌한 어퍼컷을 날리려면 똑똑해야 하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두부를 한 마음, 두 마음…. 마음으로 어루만지려면 내 품이 먼저 따뜻해야 하니까요.


  키를 낮추면 눈높이가 맞춰지고

  눈을 맞추면 마음이 마주하는 악수처럼

  동시를 건네고 싶습니다.

  물고기 세듯 꽃을 세는 아이의 이마에

  송사리 한 마리 띄우고 싶은

  신춘입니다.


  ● 1988년 전남 순천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디자인매니지먼트 석사.

  ● 2017년 ‘실천문학’ 신인상 시 부문 당선.


 

  <심사평>


  동심과 시심 작 엮은 따한 감성  


  동시는 동심(童心)과 시심(詩心)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또한 이미지의 명징함도 요구된다. 부연하면 동심과 시심이 생경하게 유리되지 않고,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새롭게 시. 청각적 이미지로 창출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동시가 동심에 치우치면 가볍고 재치 있는 말놀이에 가까워 문학적 향훈이 옅어지고, 시심에 치우치면 주된 독자인 어린이에게 난해의 문제가 야기된다. 그리고 이미지의 명징함은 어린이들이 단순하고 명쾌한 것을 잘 수용하는 사고의 특성 때문이다.

  일천 편이 넘는 작품을 정독한 결과 동심에 눈높이를 맞춘 작품이 많은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으나, 대부분 일상에서 일어난 평범하고 소소한 심상들이라 신선함이 결여되고 시적 완성도 역시 떨어졌다.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이 우열을 가리게 되었다.

  먼저 김연진 씨의 ‘돌림노래’는 눈 오는 날의 정경을 회화적 서정으로 그렸다. 이미지의 펼침이 안정되었고 표현에서도 ‘심심한 도시의 저녁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와 같은 참신함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심에 치우쳐 동심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것이 흠이었다.

  윤송이 씨의 ‘얼음 이불’은 의인화를 활용한 상상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눈이 따듯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시적 대상에 대한 개성적 시각과, 동심에 눈높이가 보다 밀착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박진경 씨의 ‘악수’였다. 우선 이 작품은 따듯한 감성이 돋보이고, 동심과 시심이 유기적으로 교직되었다. 무엇보다 생활에 밀착된 입말을 활용한 표현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전편을 관류하는 조손간의 진솔함이 동심에 용해되어 공감과 위안을 주었다.

  특히 ‘키 작은 내가/ 깨금발 들지 않게/ 지팡이 짚고 낮아져’와 ‘마음과 마음이 마주해/ 손을 잡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등의 감정선(線)이 심사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

  이러한 표현이 새롭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 속에 담긴 함축적 심상 때문이다. 가장 좋은 시어는 ‘우리가 자주 쓰는 일상어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하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