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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육필肉筆로 새기다 / 제인자

 

넝쿨장미가 웃자라는 담장 아래 구두병원

꼼지락꼼지락 진종일 꿰매고 있다

바깥으로 무너진 뒤축은 뜯어내고

벼룻돌 같은 말씀 한 판 내리친다

헤벌어졌다 오므렸다 촘촘히 재는 입 모양

걸어온 길은 찬찬히 읽어야 보인다

우주를 필사하고 돌아온 햇살 알갱이도 다글다글 읽는다

생의 맨바닥 다독이듯 앞뒤 둘레 쓸어주는

저 손


어떤 말보다 안심이 되는 온기로

온 정신 손끝에 실어 손끝이 중심되어

한 땀 한 땀 흩어진 획 불러 모아 기워 보낸 어머니 편지

곧추세워 살라고 여태 꾸짖으신다

사람을 휘저어 놓는 고지식함

꾹꾹 눌러쓴 글발을 보면 부르르 가슴부터 떨린다


공중에 말아둔 짙푸른 세필

하늘 화선지 닿으면 헐렁헐렁해지는 넝쿨장미의 젖꽃판

선홍색 육필이 배달되면 부활한 예수가 찾아온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철철 피를 흘리며 쓰시러 오신다

흙으로 빚은 몸에 새기는 영혼의 문장



*요한복음 8장 6절~11절 인용함.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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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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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응모작들의 경우도 문학과 기독교문학이라는 말의 뜻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 기독교문학이란 의도적으로 기독교란 종교성을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쓴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작품화 한 것은 문학적 성취와는 거리가 있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주제화 되거나 소재화한 신앙심이 강조될 때 문학적 감흥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육필로 새기다'는 서사구조에 개인적 삶의 궤적을 담은 작품이다. 그 삶을 객관으로 대상화시키고 어머님의 손 글씨에서 배어나는 훈계를 되새기며 스스로의 자기됨을 확인한다. 나아가 예수님이 땅에 손으로 쓴 글자에서 찾아낸 가르침인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라 는 말씀에 영적 필이 꽂힌 것이다. 세 가지 삽화 속에 화자의 정신사적 생애가 집약되었다. 첫 연의 구두수선공이 헌 구두를 수선하며 이끌어 내는 상상력 즉 능숙한 손놀림으로 헌 구두의 내력을 읽어내는 사실적 상황묘사가 돋보인다. 이어 2, 3연에서 정신사적 필연의 궤적을 적시하고 있다. 어머님의 정신적 유산과 예수님의 강론에 의한 정신사를 보여주는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 작품이다. 1, 3연에서 보여주는 수사적 문채가 환상적이다. 회화화한 이미지 빛기의 생동감이 또 다른 시적 감흥을 준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았던 노인 냄새의 무게 등의 작품들이 아쉽다.


 

심사위원 : 박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