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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도서관의 도서관/임효빈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지만 말 한마디 못했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서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있다


  <당선소감>

   "시의 속도를 따라갈 가속의 전환점 맞아"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체의 ‘뒤처진 새’를 읽었습니다. 도나우강을 건너는 철새의 무리에서 뒤처진 새를 보며 어릴 적부터 남들과 발맞출 수 없었던 시인은, 스스로와 동일시하며 새에게 힘을 보낸다는 고백을 합니다. 저도 늘 한 템포, 아니 몇 걸음은 뒤에 있었습니다.

  시는, 늦게 온 사랑이라 금방 식어버리겠거니 했으나 늦은 만큼 깊어지는 속도가 더딜 뿐 식지도 못하며 알 수 없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부질없이 높아만 가는 사랑의 온도였습니다. 뜨겁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죽일 놈의 사랑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출구마저 잃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생에는 그만하려 이별을 고했지만 그조차 받아 주지 않은 나의 시.

  관계가 지쳐갈 무렵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그가 사랑을 주지 않은 게 아니라 저의 사랑이 부족했던 것을. 그는 늘 뜨겁게 다가왔고 진심을 고백했으며 품에 안기려했지만 저의 속도가 맞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가속을 내는 전환점을 잡았습니다. 측정할 수 없을 진한 온도로 직진할겁니다. 미운 사랑과 함께.

  그 사랑의 행보를 몰라 헤매던 제게 분명한 좌표로 이끌어 보이게 한 이돈형 시인이 있습니다. 오래 감사할 것입니다. 함께한 김혁분 시인과 좋은 인연입니다. 규행과 은재는 거기 언제나 빛으로 있습니다. 뒤처진 새였던 제 날개를 밀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 1966년 충남 부여 출생.


  <심사평>

  "소통 단절된 당대 문제 내밀한 정서로 예각화

  시 부문 투고 작품 수와 질은 예년 수준이지만, 노년 세대 작품들이 늘어나는 경향인지 조금 느슨한 감을 주었다. 신춘문예라는 성격을 고려한다면 기본적으로 표현의 묘미를 갖춘 채, 당대 사회에 대한 역사의식이나 도전의식을 지닌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링(Ring)’ ‘히말라야로 가는 피아노’ ‘관계들’ ‘가르마’ ‘도서관의 도서관’ 이렇게 다섯 편이다.

  우선 ‘링(Ring)’은 권투의 대결장인 링을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비유하여 꽤 세련된 표현으로 삶의 문제를 성찰하였으나, 너무 표현의 묘미에만 치우쳐 역사의식이 없고 발상 자체가 다소 진부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히말라야로 가는 피아노’는 아름다운 표현 속에 우주적인 사유를 담은 점은 보기 좋았으나, 발상이 영화에서 출발하고 사회적 의미를 갖지 못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관계들’은 신발과 발이 갖는 특성을 사회적 관계의 의미로 참신하게 그려내었으나, 발상이 상당 부분 관념적이고 일부 해독되지 않는 표현들이 있는 점이 거슬렸다. ‘가르마’는 당대 현실이 주는 삭막함과 무의미함에 대한 섬세한 자의식은 좋았으나, 너무 표현의 현란함에 도취한 듯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도서관의 도서관’은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당대 문제를 내밀한 정서 의식으로 예각화하면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다. 이에 ‘도서관의 도서관’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니, 선정된 시인은 더욱 분발하여 한국 시단의 별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경복, 조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