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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돌들은 재의 꿈을 / 최보윤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일이었지

들개가 물고 가는 싱거운 돌 하나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잎사귀 쥐었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달의 무늬 되지 못한 주름진 돌들은

으스름 달 뜬 밤이면

뜬 눈으로 갈라지네


천년을 살 것인 양 견적 없이 괴로워도

뜨거운 재의 꿈을 꾸고 있어 저 멀리

한 마리 개가 오는 동안

선(善)한 피를 흘릴 거야




  <당선소감>


   "나를 쓰게 한 것은… "네 시가 좋아"라는 한마디"


  저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버릴 수도 부끄러워할 수도 없는 저의 출처입니다.

  집이 없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어딘가 얹혀사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고 그 어떤 희망도 욕심도 없이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맥락 없이 비틀대며 글을 쓰던 저에게 시조의 정형성은 아름다운 구원입니다. 형체 없이 허물어져 내리던 저의 시들이 이 율격 속에서 온전해지고 안락해졌습니다. 집이 생긴 느낌입니다. 이 새집에서 저는 울 수도 없이 설레고 있습니다. 아직 배울 것도, 들일 것도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부 때부터 '너는 분명 좋은 시인이 될 거다'라며 격려해주신 오정국 교수님, '믿는다'고 말씀해주신 이승하 교수님, 이제야 감사 말씀 올립니다.

  스무 살, 떠밀려온 언어를 견적 없이 써내려간 제가 있습니다. 그 정체 모를 언어의 조합을 '시'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우고 지난 팔 년간 어떤 의식처럼 신춘문예 투고를 해왔습니다. 그 어떤 언어도 들어오지 않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던 해에도 저를 쓰게 한 것은 고통의 견적 없음도 이 삶의 주인 없음도 아닌 한마디. 네 시가 좋아, 당신들의 그 한마디, 한마디에 빌어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출처를 함께 사랑해 주고 인정해준 나의 당신들. 그리고 어머니 장·미·혜. 당신이 제 출처의 출처이시고, 제가 아는 모든 사랑의 기원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저는 저로, 혼자 아닌 혼자로, 이번 생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 1991년 인천 출생.

  ● 중앙대 대학원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 졸업.

 


  <심사평>


  "전복적 발상과 감각의 쇄신 돋보여"


  오래된 새로움을 찾는다. 오늘의 시로 거듭나야 오래된 정형의 지평을 새롭게 열기 때문이다. 현대시조의 당연한 전제이지만 오늘의 인식과 방향에 무감한 응모가 아직도 꽤 보여 되짚는다. 새로운 목소리를 눈여겨보면 피상성이 걸리고, 안정적 보법을 들여다보면 상투가 드러나 집었다 내려놓는 반복이 길었다.

  끝까지 잡고 있던 김수형은 우리 현실 속 문제의식을 구조에 맞춤하게 앉히는 정형 운용이 돋보였다. 말을 덜어내며 압축미를 더하는 형식의 내면화를 보여준 김율관·이하루·황인선, 미국의 응모자 제이슨 리도 시조의 힘을 오붓이 담아내는 편이다. 또 강대선·김향미·정대섭 등도 발상과 감각의 신선한 조화로 눈길을 오래 잡았지만 기성 시인이라 시조에 진력할지 염려가 앞섰다. 결국 매 편 참신한 인식과 개성으로 정형의 구조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 최보윤을 택했다.

  당선작 '돌들은 재의 꿈을'은 전복적 발상과 감각의 쇄신으로 돌올하다.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같은 기시감 있는 문장이 새롭게 닿는 것은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잎사귀 쥐었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무용하나 잎을 키우는 바람과 '뜬 눈으로 갈라지'는 '주름진 돌' 같은 비유도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곤고한 시간을 담보한다. 돌들이 꾸는 '뜨거운 재의 꿈'이 착한 피를 흘려야만 꿈꾸기가 가능해진 청춘의 환기로 보이는 까닭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돌'의 비상을 바란다. 더 외로워졌을 다른 응모자들의 뜨거운 응전도 기원한다.


 

심사위원 : 정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