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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의자 / 유은경

 

  기열이는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다리가 네 개나 있지만 걸을 수가 없다. 세상 어디에도 걸어 다니는 의자는 없으니까 말이다.

의자가 되다니. 어휴, 내 팔자야.”

기열이는 울고 싶었다.

할머니 생각도 났다. 내 팔자야를 입에 달고 살지만 손자를 보면 환하게 웃는 할머니. 고양이 씨, 까치 씨, 벚나무 씨……. 할머니는 동물이나 식물에 씨자를 붙여 부르곤 했다. 가끔 손자에게도 기열 씨라고 불렀다. 팔다리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는 할머니는 지금쯤 유모차를 밀고 손자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코딱지만 한 게 무슨 팔자타령이여. 그런 말 하면 못써.”

옆에서 식탁의자가 나무랐다. 식탁의자는 등받이에 막대 한 개가 간신히 붙어있다. 그마저도 조금만 충격을 주면 부러져나갈 것 같았다.

할아버지, 조용히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바퀴의자가 짜증을 냈다. 그러더니 혼자서 중얼거렸다.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바퀴 하나가 빠져나간 바퀴의자는 삐딱하게 서 있다.

저 녀석은 멍 뭐라고 하는 별에서 왔다지?”

식탁의자 위로 붉은 느티나무 잎이 빙그르르 내려와 앉았다.

400살 넘은 느티나무는 올해도 넓은 그늘을 드리웠다. 마을 사람들은 오며가며 그늘에서 쉬어가곤 하였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의자 다섯 개가 둥그렇게 놓여있었다. 고동색 식탁의자, 검정 바퀴의자, 하얀 철제의자, 보라색 플라스틱의자, 그리고 갈색 나무의자. 다섯 개 중 한 개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의자가 뚝딱 생겨나곤 하였다. 그래서 의자는 항상 다섯 개였다. 갈색 나무의자인 기열이도 그중 하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의자를 누가 갖다놨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의자가 거기 있으니 앉았다 갈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여기 와 있는 거야?’

기열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비둘기 똥을 삼킨 뒤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그때 기열이는 생각의자에 앉아있었다.

친구를 괴롭히지 말자.

이달 초에 4학년3반 학급회의에서 정한 약속이다. 친구가 싫어하는 별명 부르지 않기, 놀리지 않기, 고운 말 사용하기, 빌려 간 물건은 꼭 돌려주기. 아이들은 별도로 네 가지 실천사항을 정했다.

김기열,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거야. 알겠니?”

.”

어이구, 대답은 잘해요.”

선생님은 살짝 눈을 흘겼다.

또 고약한 별명 지어서 친구들 놀리면 안 된다. 알았지?”

선생님은 눈에 힘을 주고 기열이를 보았다. 기열이는 이번에도 넵 하고 대답했다.

생각의자는 작아서 유치원 아이에게나 맞다. 몸집이 큰 기열이가 앉으면 의자가 모자란다. 기열이는 저릿저릿한 엉덩이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런데 10분도 채 안 되어 또 생각의자에 앉아야 했다. 옆자리 앉는 친구가 기열이 발에 걸려 넘어져 발목을 삐끗했기 때문이다. 기열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기열이가 발을 내미는 걸 본 친구가 있었다. 사실 기열이는 옆자리 친구가 자기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발을 쓱 내밀었던 것이다.

김기열, 너 생각의자 전세 냈냐?”

아이들이 책가방을 챙기며 깔깔댔다.

기열이는 아이들 머리를 한 대씩 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올 때까지 거기 꼼짝 말고 앉아있어.”

선생님은 엄하게 일러놓고는 교실을 나갔다.

기열이 혼자 남은 교실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열어놓은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열이는 화단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애기사과나무 열매를 쳐다보았다.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그런데 새가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교실 안으로 훅 들어왔다. 제법 통통한 갈색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훠이, 나가라. 구워 먹기 전에 빨리 나가!”

기열이는 생각의자에서 일어나 두 팔을 휘저었다.

구워? 구워?”

비둘기는 굵은 소리를 내며 낮게 날았다. 기열이 머리 위를 뱅뱅 돌다가 날개깃으로 뒤통수를 툭 쳤다.

! 너까지 날 놀려? 넌 죽었다.”

기열이는 청소함으로 달려가 대걸레를 들고 와선 마구 휘둘렀다.

당황한 비둘기는 형광등 갓에 머리를 부딪쳤다.

에잇!”

기열이는 대걸레를 내던지고는 책상 위로 올라가 비둘기를 붙잡았다. 한쪽 다리를 붙잡힌 비둘기는 몸부림을 쳤다. 그 와중에 기열이는 비둘기 발에 발가락이 없는 걸 보았다. 비둘기는 기열이를 매달고 날아갈 것처럼 파닥거렸다.

야아, 가만있어. 이 뚱땡아!”

바로 그 순간, 뭔가 입안으로 쏙 들어왔다. 젤리 같은 것이 미처 뱉어낼 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꿀꺽!

전기가 나간 것처럼 기열이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열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며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다.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구워? 구워?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눈을 떴을 때 기열이는 갈색 나무의자가 되어 느티나무 아래 놓여있었다.

기열이는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선은 기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하옵시며, 아니지 거룩히 여기시며?’

친구를 따라 교회에 몇 번 가봤지만 끝까지 외우진 못했다.

나무아비타불 관셈보살.’

할머니를 따라 절에도 가봤지만 기도를 해본 적은 없었다.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 삼신할머니. 저를 다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 할머니, 저 때문에 쓰러지면 그땐……책임지실 거예요?’

처음엔 공손했는데 할머니 얼굴이 떠오르자 벌컥 화가 났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기도했다. 김기열로 돌아가면 친구를 괴롭히지 않고 동물을 못살게 굴지도 않겠다고.

기열이는 아까 교실에서 봤던 비둘기 발이 떠올랐다. 양심이 찔렸다. 언젠가 다리를 저는 비둘기를 향해 돌멩이를 던진 적이 있다. 하필 돌멩이가 비둘기 발을 때렸다. 한참 지난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 비둘기의 아픔이 기열이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비둘기야, 미안해.’

기열이는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그동안 괴롭힌 동물은 비둘기뿐이 아니었다. 길고양이, 청설모, 풍뎅이, 거미, 잠자리, 나비, 애벌레……. 수없이 많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그러면 안 되었다.

얘들아, 미안해.’

친구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기열이가 지어준 별명, 친구들을 골탕 먹인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이, 새로 온 애야. 무슨 기도를 그리도 열심히 혀?”

옆에서 식탁의자가 말을 건넸다.

집에 가야 하거든요. 할머니가 기다려요. 선생님이랑 우리 반 애들이 걱정할 거예요.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낼모레 시험인데 공부도 하고 싶고…….”

공부를 하고 싶다니! 그런 생각은 처음이었다.

에이, 공부는 무슨. 사람으로 사는 게 얼마나 고달픈데 그려. 의자는 안 먹어도 되고, 집 없어도 살잖아. 그냥 속 편하게 의자로 살아.”

식탁의자가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싫어요?”

. 싫구먼.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어. 우리 할멈은 봄에 저 별나라로 가버렸어.”

식탁의자는 쓸쓸히 대답했다.

그럼 아들이나 딸하고 살면 되잖아요.”

식탁의자는 대답이 없었다. 기열이는 괜한 소리를 했나 싶었다.

나는 자식이 둘인데, 딸은 오래전에 사고로 죽었어. 아들 내외하고 손자는 미국에 건너가 사는데……. 흐음.”

한참 만에 말을 꺼낸 식탁의자는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쉬었다.

기열이는 마음 한구석이 찌릿했다. 엄마 아빠는 서로 헤어져 각자 갈 길로 갔다. 기열이가 할머니와 산 지 5년이 되도록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빠만 가끔 전화를 했을 뿐이다. 큰아버지와 삼촌은 전화도 뜸하고, 명절에나 겨우 왔다가 부리나케 가버렸다.

저는 꼭 사람으로 돌아갈 거예요.”

기열이는 의젓하게 자라서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께 효도하고 싶었다.

평소에는 모든 게 귀찮았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더욱 절실히 기열이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려. 너는 앞길이 구만리 같으니까.”

식탁의자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나도 처음엔 돌아가고 싶었지. 그런데 나처럼 낡은 의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나이 들고 몸이 아픈 사람은 길에서 의자를 만나면 무척 반갑거든. 누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냐.”

식탁의자는 등받이가 부서져서 허전하지만, 맘씨 좋은 누군가가 고쳐줄 거라고 했다.

새로 온 애 너도 새똥 먹었냐?”

식탁의자는 좀 전의 쓸쓸함은 잊고 밝은 소리로 물었다.

비둘기 똥이요. 뱉을 틈이 없었어요.”

그럼 그렇지. 다들 새똥 먹고 의자가 된 거여.”

식탁의자가 헐헐헐 웃었다.

아하하. 정말요? 여기 모두가? 아하하하.”

웃을 때가 아닌 줄 알지만 웃음이 나왔다.

새똥을 먹고 의자가 되다니. 그럼 여기 있는 의자들은 사람이었네?’

기열이는 갑자기 서글퍼졌다.

낮잠을 자는데 제비란 놈이 내 입에 똥을 누고 갔어. 꿈인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여기 와 있지 뭐냐.”

할아버지는 입을 벌리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제비한테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요?”

제비 둥지를 부쉈어. 안방 앞에다 집을 지으니 마루가 더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구먼. 이놈들이 부수면 또 짓고, 또 짓고 하는 거여. , 화가 나서 싸리 빗자루를 휘둘러 쫓아버렸지.”

기열이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놀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제비는 할아버지에게 박씨 대신 똥을 주고 간 것이다.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바퀴의자는 여전히 중얼중얼했다.

저게 무슨 뜻이에요?”

멍 뭐라는 별로 돌아가려면 하루에 999번 주문을 외워야 된다나?”

식탁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퀴의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멍카별이라고요! 멍카별. 멍카별!”

바퀴의자는 심호흡을 하고는 계속해서 외웠다.

허어, 성질머리하고는. 벌 받아도 싸지. .”

식탁의자 말에 의하면, 바퀴의자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슈퍼닭 똥을 삼킨 뒤 의자가 되어 지구로 떨어졌다. 느티나무를 피하려다 착지를 잘못하여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갔단다.

닭 똥구멍을 막대기로 쑤셨대. 짓궂은 녀석이지. 사과하는 의미로 닭 이름을 저렇게 외운다는구먼.”

닭도 새였던가?”

기열이는 잠시 헷갈렸다. 그때 바퀴의자가 끼어들었다.

우리 멍카별 닭들은 날아다녀. 몸집은 크지만 훨훨 날아다닌다고. 저녁이면 닭장으로 돌아오는 게 다른 새들과는 다르지만.”

바퀴의자는 소년이었을 때 아침마다 닭똥을 치우고 달걀을 꺼냈다. 그날은 닭장에 들어가다 닭똥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전날 청소를 게을리해서 닭똥이 쌓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홧김에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슈퍼닭 람보르기니는 되갚아줄 기회를 노리며 문 앞을 얼쩡거렸다. 다음날 소년이 닭장에 들어서자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소년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엄마야 하는 순간 입안에 재빨리 똥을 갈겼다.

우아, 엄청나네. 그런데 왜 999번씩 외워? 진심으로 말하면 한 번으로 충분한데.”

멍카별은 아주 멀어. 여기서 우주선을 타고 50년은 가야 할 걸. 그러니까 거기까지 내 마음이 닿으려면 하루 999번도 모자란다고.”

바퀴의자는 빠르게 대답하고는 다시 람보르기니를 외웠다.

기열이는 바퀴의자의 마음이 언제쯤 멍카별에 가 닿을지 까마득했다.

할아버지, 저기 둘은 어쩌다 의자가 됐대요?”

기열이는 여태 말이 없는 하얀 철제의자와 보라색 플라스틱의자가 궁금했다.

잘 몰라. 어쨌든 새똥을 삼킨 건 확실해. 내가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고.”

식탁의자는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기열이는 그들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나 보다 했다.

오후가 되니 쌀쌀해진 바람이 느티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불그스름하고 노르스름한 잎들이 의자와 그 주변에 떨어져 뒹굴었다. 학교가 끝났는지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지나갔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아이들이 느티나무 아래로 왔다. 기열이네 반 아이들이었다. 기열이가 똥바가지라고 놀린 박서현도 있었다. 박서현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울었는데, 아이들이 달래자 더 크게 울었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박서현은 갈색 나무의자 앞에 서서 사이다를 마시다가 깡통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손이 차갑다며 호호 불고 나서 다시 깡통을 잡으려다 실수로 넘어뜨렸다. 의자에 사이다가 졸졸졸 쏟아졌다. 갈색 나무의자 기열이는 흠뻑 젖고 말았다.

아이들은 잡기놀이를 하면서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의자를 붙잡고, 흔들고, 밀었다. 그 바람에 식탁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어이쿠! 비명을 질렀다. 기열이가 놀라서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아이들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식탁의자는 한 개 남은 등받이 막대마저 부러져버렸다.

박서현은 신발을 신은 채 기열이를 밟고 올라서서 발을 탕탕 굴렀다. 의자에 고여 있던 사이다가 사방으로 튀었다.

, 그만 해!”

기열이가 소리쳤지만 박서현은 들은 척하지 않았다.

네가 의자라면 좋겠냐?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말해놓고 보니 입장 바꿔 생각할 사람은 기열이 자신이었다. 그동안 말 한마디로 친구들 마음을 밟아서 상처를 줬으니까. 그에 비하면 박서현이 밟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었다.

할머니, 어디 있어요? 빨리 오세요. 나 좀 살려줘요.”

기열이는 욱신욱신 아팠다. 이러다 식탁의자처럼 부서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아이들은 한참 수선을 피우더니 의자를 처음 있던 대로 세워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설핏 기울었다.

아가, 기열아. 우리 기열이 어딨냐.”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기열이는 울컥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유모차를 세워놓고 앉을 자리를 살피는 할머니의 등허리가 더욱 굽어 보였다.

할머니는 갈색 나무의자로 다가와 손바닥으로 쓸었다.

누가 뭘 흘려놨대. 끈적끈적하네.”

할머니. 흐엉!”

할머니 손길이 닿자 기열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유모차에서 신문지와 비닐봉지를 꺼냈다. 다른 의자도 있는데 웬일인지 갈색 나무 의자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할머니는 비닐봉지에서 뻥튀기 조각을 꺼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어디선가 비둘기 무리가 날아와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비둘기들은 머리를 갸울이며 할머니 손에 든 뻥튀기 조각을 올려다보았다.

할머니는 뻥튀기를 잘게 부숴서 흩뿌렸다. 비둘기들은 허겁지겁 달려들어 쪼아댔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할머니는 뒤로 밀려난 비둘기를 가까이 불러서 남은 부스러기를 쏟아줬다.

줄 거라고는 이것밖에 없네.”

뒤뚱뒤뚱 다가온 갈색 비둘기는 한쪽 발에 발가락이 없었다.

저런, 저런. 자네도 사느라고 애쓰네.”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찼다. 기열이는 훌쩍거리다 말고 피식 웃었다. 할머니는 참새나 무당벌레, 민달팽이한테도 자네라고 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을 보고도 인사를 건넸다. 말 못하는 것들도 살려고 세상에 나왔으니까 다 소중하다고 했다.

비둘기 씨, 우리 손자가 없어졌어. 송민초등학교 김기열이야. 벌써 이틀이 지났어. 개구쟁이여도 더없이 착한 아이야. 할머니 어깨도 주물러주고 심부름도 곧잘 했지.”

갈색 비둘기는 뻥튀기부스러기를 쪼아 먹다가 멈칫했다.

구워? 구워?”

비둘기는 머리를 갸웃갸웃하며 할머니를 보았다.

그래. 별일 없을 거네. 꼭 돌아올 거야.”

할머니는 비둘기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울 애기가 집에 가 있을지도 몰라. 얼른 가봐야겠네.”

할머니는 유모차 손잡이를 붙잡고 에고고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구워? 구워?”

비둘기는 푸드덕 날아오르며 갈색 나무의자에 똥 한 방울을 찍, 떨궜다.

나갔던 전기가 들어온 것처럼 기열이 눈앞이 환해졌다. 인형 뽑는 집게에 매달린 듯 기열이 몸이 붕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릴 때처럼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구워? 구워? 소리가 먼 산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기열이는 4학년3반 교실 생각의자에 앉아있었다. 기열이는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두 발을 들었다 놨다 해보았다. 팔다리가 멀쩡하게 움직여서 어찌나 기쁘고 감사한지. 기열이는 큰 소리로 웃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오늘은 안 도망치고 얌전히 앉아있네? 일어서도 좋아.”

!”

기열이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일어섰다.

벌 받고도 기분 좋은 애는 처음 본다. 그래, 생각의자에 앉아서 무슨 생각했어?”

많은 생각이요. 그런데 이 의자는 너무 작아서 불편해요. 궁뎅이에 쥐가 나요.”

기열이는 주먹으로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푹신하고 바퀴 달린 의자로 바꾸면, 정말로 생각의자 전세 내려고?”

선생님이 빙긋 웃었다.

일부러 불편한 의자로 갖다놓은 거야. 그래야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할 게 아니니.”

기열이는 씩 웃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졸음이 몰려와서 잘못을 반성하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기열이는 사람들이 편히 쉬어가도록 자리를 내주고 싶다던 식탁의자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편안한 의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남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기열이는 멋진 생각을 한 자신이 기특해서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으로 기열이는 시험을 앞두고 수학문제를 풀어보고 교과서도 읽었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가 대견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기열이는 시험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느티나무 아래로 가보았다. 바퀴의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분홍 쿠션의자가 놓여 있었다.

바퀴의자의 진심이 슈퍼닭에게 전해졌나 봐. 다행이다.’

기열이는 바퀴의자가 다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 애도 바퀴의자였을 때를 기억하겠지?’

멍카별로 돌아간 소년은 닭똥을 밟고 넘어지더라도 닭에게 화풀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닭똥 치우는 일을 게을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갈색 나무의자가 되기 전과 사람으로 돌아온 기열이가 다르듯이.

누가 고쳐놨는지 식탁의자에는 등받이가 튼튼하게 박혀있었다. <>





  <당선소감>


   "아이들이 편히 쉬어가는 의자 같은 동화 쓰겠습니다"


한동안 그림책만 봤어요. 그림책을 펼치면 파도치던 마음이 잔잔해졌거든요.

어느 날 홈런을 한 번도 쳐보지 못한 너에게라는 책을 읽었어요. 홈런을 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동네 형이 말했지요.

나가사키 포크스의 조지마 선수는 자신이 원하는 몸을 만드는 데 10년이나 걸렸대. 식사를 조절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그렇게 힘든 훈련을 10년 동안 꾸준히 했대.”

이 대목을 읽다가 잠시 멈추었어요. 그리고 나에게 물었지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려고? 10년도 안 해보고 절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말이 되냐?

우리 동네 작은 공원에는 나무벤치 두 개가 있어요. 언제부턴가 그 앞에 의자가 하나씩 늘어나더니 여덟 개가 됐어요. 대부분 낡은 의자였어요. 그런데 저만치 검정 바퀴의자가 외따로 놓여있었어요. 바퀴가 빠져나가 기우뚱하니 서 있었지요.

의자들의 사연이 궁금했어요. 어디서 왔을까? 저희끼리 무슨 이야기를 할까? 혹시 깊은 밤이면 노래 부르고 춤추다가 날이 밝으면 안 그런 척하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도 바퀴 빠진 의자에게 바퀴를 달아주고 싶었어요.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변함없이 격려해주시는 김재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어린이가 편히 앉아 쉬어가는 의자 같은 동화를 쓰겠습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또 힘을 내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 1969년 전북 임실 출생.

  ● 전주대 경영학과 졸업.


 

  <심사평>


  "‘역지사지’ 상투적인 주제지만 발랄한 상상력·상큼한 문장 눈부셔"


올해의 심사는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작품 수는 예년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내용은 사뭇 달라진 투고작들. 왕따, 다문화, 길고양이, 이런 유행도 보이지 않았고, 상당한 완성도를 갖춘 동화들이 많았다. 작가 지망생들의 저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한 것일까. 최종으로 올린 네 편의 작품들은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없어서, 그중 하나를 가리는 일에 즐겁고도 안타까운 고민이 깊었다.

사과의 맛은 인간이 모두 거대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반기를 들고 사과를 키워낸 노인과, 사라진 노인의 뒤를 잇고자 사과 씨를 품은 채 떠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묵직한 주제를 인상적인 배경과 사건 설정으로 잘 살려내고 있는데, 그 모든 요소들을 장악하면서 끌고 나가야 할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 아쉬움이었다.

밤일 나가는 부모가 묶어 놓은 일곱 살 아이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열세 살 아이의 만남을 다룬 선 위의 아이들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병적인 상황과 인물인데도 그것을 비극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문장의 힘이 강력했다. 이 작가의 깊은 뱃심이 동화적인 호흡을 타고 올라온다면 남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마지막 버킷 리스트는 행성과의 충돌로 지구멸망이 다가온다는 설정이다. 사람들은 절망과 혼란 대신 버킷 리스트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성숙한 여유를 보여준다. 이런 유쾌한 판타지라니! 그런데 아이들이 생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이것일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게 아이들이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일들이었더라면 싶다.

당선작은, 거의 퉁명스러울 정도로 한 단어만 툭 던진 의자로 정해졌다. 친구들을 못살게 굴던 말썽꾸러기가 반성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만 의자로 변해버리고, 그런 식으로 변신한 다른 의자들을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 의자, 외계인 의자 등등. 입장 바꿔 생각하자는 고전적 주제, 그래서 반성하고 조금 착해진 인물, 상투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발랄한 상상력과 상큼한 문장이 눈부시게 살려낸다. 통통 튀는 유머를 지그시 눌러주는 문체도 좋다. ‘동화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어진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서정, 김남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