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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달똥 박물관 / 조정래

 

  "노란 창고에 온갖 고물들이 가득하던데 정말 보기 흉해요."

"저런 집이 가까이 있으면 아이들 건강에 안 좋아요."

"구청에다 고발해야 해요. 이러다 동네 집값 내려가요."

이것은 이사 오던 날 듣게 된 동네 어른들의 불평들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문제의 집은 우리 집이 아니다. 우리 집 뒤에 노란 창고가 있는 이웃 할머니의 집을 말하는 것이다.

참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다. 난 신천초등학교 6학년 2반 박별효경이다. 주위에선 나를 뚱뚱하다고 호박벌이라고 놀리지만 그래도 난 동네의 골칫거리 또는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는 소녀 명탐정이다.

이사를 오자마자 이렇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다니 나는 무척 기뻤다. 나는 먼저 할머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같은 학년의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엄마는 내가 새로 친구를 사귀기 위한 노력으로 보고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초대한 아이들 7명 중에서 4명이 참석했다. 나는 파티를 하는 동안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 황운섭 증언-동네 아이들은 할머니를 할마라고 부름. 할마는 할머니 마녀를 뜻함. 2. 정예주 증언-할마는 밤이 되면 마법을 부리기 위해 달똥을 주우러 다님. 달똥은 동네 사람들이 버린 잡동사니 쓰레기들. 3. 김윤서 증언-할마는 마고라는 길고양이를 부하로 두고 있음. 마고는 꼬리가 흉측하게 굽어 있음. 4. 신민하 증언-할마의 창고에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제작되고 있음. 괴물이 완성되면 동네가 위험함.>

이건 모두 내 탐정 수첩에 기록된 아이들의 충격적인 증언이다.

나는 본격적인 조사로서 할마의 집을 직접 관찰했다. 관찰은 어렵지 않았다. 내 방 창문으로 보면 할마의 집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할마가 달똥을 가지고 사라지는 의문의 노란 창고였다. 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뭐라고? 할마의 창고로 들어간다고?"

예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창고를 몰래 조사해 보는 거야."

"좋았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고 했잖아."

키가 큰 운섭이가 맞장구를 쳤다.

"할마는 늘 대문을 열어놓고 살아. 창고도 잠그지 않는 것 같아."

"그런데 할마에게 잡히면 어떡하지?"

"당연히 할마가 없을 때 해야지."

"만약 창고에서 괴물이 나오면 어떡해? 괴물과 싸워야 하나?"

민하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기가 죽어버렸다. 나는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뭐가 무섭다고 그래. 이건 우리 동네를 위한 중대한 일이야. 내일 모두 함께 가는 거야. 알았지."

다음날 땅거미가 골목에 내려앉자 난 창가에 달라붙었다. 나는 할마가 집에서 나오면 바로 아이들에게 연락해야 했다. 할마는 예상한 대로 저녁 7시가 되자 달똥을 줍기 위해 손수레를 끌고 나왔다. 나는 재빨리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들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할마의 집 앞에 모였다. 우리는 키가 작은 윤서를 골목 앞에 세워두고 할마의 집으로 들어갔다. 할마의 노란 창고는 다행히 열려 있었다. 우리는 손전등을 켜고 창고 안을 살폈다. 창고는 온갖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어 마치 정글 속 같았다.

"!" 내 뒤에 있던 예주가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 아냐. 곰 인형이었어."

"하하하. 겁쟁이. 근데 이거 우리 집 곰 인형인데……."

민하가 곰 인형을 살피며 말했다.

", 그렇다면 인사나 나누시지."

예주는 약간 삐친 듯한 말투로 민하에게 말했다. 거기에 질세라 민하는 손을 뻗어 곰 인형과 악수를 했다.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려. 제목은 이산가족 상봉하다."

"다들 그만해.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잘못하면 우리 목숨이 위험하다고."

운섭이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때야 다들 웃음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분명 어딘가에 할마만 아는 비밀의 문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해."

운섭이가 여기저기를 만져보았다. 그때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와 함께 뭔가 우리 머리 위로 떨어졌다.

"뭐야?"

"으악! 괴물이 내 목에 붙었어."

갑자기 민하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도망치는 민하의 목에 정말 크고 시커먼 괴물이 달라붙은 것이 보였다.

우리는 재빨리 민하를 따라갔다. 민하는 정원 한쪽 구석에 쓰러졌다.

"민하야, 괜찮아?"

". 저기 괴물이 떨어져 나갔어."

난 재빨리 민하가 가리키는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 순간 우리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민하의 목에 달라붙은 것은 괴물이 아니라 물놀이 튜브였다.

바로 그때였다.

"뭐 하고 있어? 할마가 오고 있어."

윤서가 급하게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잡히면 끝장나. 모두 뛰어."

민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우리는 우당탕거리며 할마의 집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컴컴한 골목 어귀에서 벌써 할마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 동작을 멈추었다가 골목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이렇게 우리의 첫 탐정 조사는 막을 내렸다. 괴물 튜브 사건으로 우습게 끝났지만 말이다. 근데 그 튜브는 운섭이가 작년 가을에 버린 것이라고 했다. 아마 할마가 달똥으로 주워간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할마는 창고에다 얼마나 많은 달똥을 모아 놓은 것일까? 그 순간 창문으로 번개가 번쩍거렸다. 난 창가로 다가갔다.

"으악!"

할마가 거실에서 촛불을 들고 내 방 쪽으로 보고 있었다. 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온 집을 흔들며 울렸다. 나는 어서 빨리 아침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음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고 할마의 저주를 받았는지 하는 일마다 꼬였다. 변비 때문인지 아침부터 배가 무척 아팠다. 거기에다가 스마트폰을 집에다 놓고 학교에 갔었고, 집 열쇠는 학교에다 놔두고 집에 왔으니 말이다. 집 앞에서는 멀쩡하던 우산까지 망가졌다.

난 우리 집 대문 앞에 비를 피하려고 몸을 움츠렸다. 어떻게 한다지? 엄마가 퇴근하려면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예주네 집에 갈까? 그때 내 귓전을 의심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왜 이러고 있냐?"

"아악!"

할마다. 왜 이럴 때 나타난 거야?

"비에 다 젖겠다. 빨리 들어가."

"네에."

난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젯밤 일들이 생각나며 등줄기가 오싹했다.

"? 열쇠가 없어?"

"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냥 예주네 집으로 도망을 쳐야 하는 데 말이다.

"우리 집에 가자. 이걸 쓰고 와."

할마가 우산을 나에게 주고는 앞장서서 가버렸다. 등이 굽은 할마가 대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뒷걸음을 치며 돌아섰다. 그 순간 배가 꼬이듯 아파지는 것이 드디어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할마의 집으로 들어갔다.

"할마아니할머니 화장실 가고 싶어요."

"그래. 저기 안쪽이란다."

난 할마가 가리키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급하게 일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라는 운섭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이젠 제대로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 여길 빨리 탈출해야 해. 나는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다. 할마는 나를 기다린 듯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리 와서 따뜻한 차를 마시렴."

할마는 나를 향해 찻잔을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파 밑에서 털실 뭉치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

고양이였다. 이게 바로 아이들이 말하던 길고양이 마고. 마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할머니, 가야겠어요."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긴장되어 피노키오처럼 걸었다. 그런데 피아노 위 액자 속의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소녀의 사진이 나를 붙잡았다. 눈이 예쁜 소녀였다.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할마를 바라보았다.

"우리 딸 사진이다. 지금 미국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단다."

"?"

그러고 보니 할마랑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나는 그때야 할마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주름이 너무 많아 마녀 같은 얼굴이지만 딸과 똑같은 고운 눈빛이 보였다.

"할머니, ……."

"?"

"차 마시고 갈게요."

". 매실차가 참 몸에 좋단다."

난 그렇게 매실차를 마시면서 할마의 딸 이야기를 들었다. 그사이 비는 그쳤고 엄마도 온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할마의 전송을 받으면서 그만 어제 일을 말하고 말았다.

"할머니, 저기 창고를 볼 수 있나요? 내 친구들은 할머니 창고에 괴물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저희가 몰래 들어갔어요. 정말 죄송해요."

"호호호. 나도 안다. 내일 이맘때, 친구들을 데리고 오느라."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할마의 창고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괴물은 찾을 수 없었지만 우리는 괴물만큼이나 놀라운 것들을 만났다. 그건 자기가 예전에 좋아했지만 잃어버린 자기 물건들을 찾았다는 것이다. 특히, 예주는 자기가 예전에 가지고 놀았던 분홍색 인형의 집을 보고 무척 반가워 눈물까지 흘렸다. 자기는 버리기 싫었는데 엄마가 몰래 버려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자주 할마의 집을 찾아가 창고에 쌓인 온갖 물건들을 가지고 즐겁게 놀 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로 인해서 이런 행복은 깨어졌다. 어른들은 할마를 찾아가 따지듯이 노란 창고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고, 할마는 그것 때문인지 그로부터 며칠 뒤 몸이 크게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할마의 창고에서 아이들에게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동네 사람들에게서 할마의 누명을 벗겨주자."

"누명?"

"어른들은 모두 할마를 싫어하잖아."

"근데 어떻게 하려고?"

"우리처럼 동네 어른들에게 할마의 창고를 구경시켜 주는 거야?"

"좋아. 근데 사람들이 오려고 할까?"

"창고를 박물관으로 멋있게 바꾸는 거야. 이름은 달똥 박물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박물관을 열고 바자회 행사도 하는 거지."

"바자회?"

"그래. 할마처럼 우리가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값싸게 파는 거야."

"좋아. 근데 번 돈은 어떻게 할 건데?"

"번 돈은 모두 불우이웃 돕기에 쓰는 거야. 그래야 공평하겠지."

나의 계획에 아이들은 대찬성했다. 심심하게 보내던 크리스마스를 우리만의 뭔가 특별하고도 재미난 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창고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도 된다는 할마의 허락을 먼저 받았다.

우리는 노란 창고에 쌓인 물건들을 깨끗이 닦고 보기 좋게 정리했다. 그리고 매일 자기가 안 쓰는 물건들을 집에서 가져왔다. 우리의 학용품과 장난감 그리고 책들이 창고에 차곡차곡 보물처럼 쌓였다.

마침내 한 달의 준비 기간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날이 되자 우리는 달똥 박물관을 열 수 있었다. 부모님은 이날 행사를 도와주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차와 간식을 내어놓았고 아빠는 산타할아버지 옷을 입고 기타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했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많은 동네 사람들이 참석했다. 요정처럼 빨간 노란 파란 색깔의 고깔모자를 쓴 우리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집 물건을 찾아보며 기뻐했다.

"윤서 엄마, 이것 보세요. 이거 우리 운섭이 다섯 살 때 타고 다니던 세발자전거에요. 이렇게 작은 것을 우리 운섭이가 타고 다녔다니 호호호."

"어머머 예주야, 이거 네가 그렇게 찾던 인형의 집이잖아. 엄마도 그때 버리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데. 이렇게 예쁜 것을 내가 왜 버렸을까."

"! 우리 곰돌이 아직 살아 있네. 민하야, 곰돌이랑 빨리 사진 찍어줘. 윤서 아빠도 같이 찍어요."

달똥 박물관을 찾아온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한 추억을 찾았고 이웃과도 오랜만에 인사도 나누었다. 우리는 바자회의 물건을 서로가 값싸게 팔고 싸면서 선물 아닌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이런 행사를 보고는 흐뭇해하며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달똥 박물관이 열리기를 원했다. 바자회 행사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사 와서 겪게 된 명탐정 박별효경의 첫 번째 사건은 다음 내용을 추가로 기록하면서 아름답게 끝났다.

<할마는 퇴원하여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할마가 돌아온 날 동네 사람들은 할마의 창고에 달똥 박물관이란 간판을 달아 드렸고 그날 동네잔치도 크게 열었다. 이 소식은 텔레비전 뉴스에 나와 동네마다 달똥 박물관이라는 창고를 만드는 일이 유행되었다.>





  <당선소감>


   "기나긴 기다림 끝에 받은 선물…감동"


겨울 햇살이 가득한 창가에 앉아 동화 당선 소감을 쓰고 있다. 어제오늘 너무 추워 세상이 동동 발을 구른다. 그래서인지 이 햇살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이럴수록 신난다. 땅은 질퍽하지 않고 아이스크림 같아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재미있다. 차갑지만 너무나 투명한 겨울바람을 따라 어디로든지 가보고 싶다. 집을 나와 새롭고 신비한 것을 찾아서 말이다. 나의 동화는 어쩌면 이런 아이들의 세상을 향한 모험과 꿈을 담고자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너무나 추운 겨울날 집을 나와 산속을 돌아다니다 발견했던 세상에서 가장 큰 솔방울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듯 말이다.

나는 꿈을 꾸었다. 황금빛 만년필의 펜 끝에서 불이 났다. 불은 점점 거세어져 너무나 새파랗게 변했다. 얼마나 뜨거웠던지 옆에서 구경하던 밥솥이 녹아버렸다. 나는 이 꿈을 꾸고 나서 언젠가 나의 펜에서도 불이 나서 나의 동화가 세상을 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았다. 10년이 가도 나의 동화는 루돌프 사슴처럼 가엾은 외톨이였다. 포기하고 싶었고 어쩌면 나는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자책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막고 있는 세상의 벽을 향해 내가 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할 수 있다면 그 벽을 향해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그 벽은 열렸고 무등일보 동화당선이란 파랑새가 나에게 날아왔다.

문과 예가 더 높은 문예의 고장 전라에서 무등일보에서 동화가 당선되었다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된다. 부족하게 여겨지는 작품을 뽑아준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부산에서 동화작가로 지도해주신 글나라 김재원 선생님과 해님반과 달님반의 선생님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문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도해준 영남문학의 장사현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동안 나를 키우고 사랑으로 지켜와 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경북 청도 출생.

  ● 서울 보건대 석사 졸. 

  ● 영남문학 문예지시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심사평>


  "아동 시선에서 사회적 문제 재치있게 풀어내"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까?', '이 글을 읽고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매번 심사를 할 때마다 가지는 나의 심사 기준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형식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즘의 동화는 게임, 유튜브, 스마트폰과 경쟁해서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동시에 그것들이 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보여줘야 하니 그 어떤 장르 못지않게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춘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 여느해보다 많아 놀랐다.

이번에 접수된 원고는 총 179편이었고 10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으며, 최종심엔 누나의 꿈(김혜지), 부리부리돌하르방(김란), 엄마는 1학년(김영인), 한별이 재판(김성준), 달똥 박물관(조정래) 총 다섯편이었다.

누나의 꿈은 요즘 아이들에게 유행인 화장과 유튜버를 소재로 한 이야기였다. 재료는 좋았지만 주제를 담아내는 것에서 힘이 실리지 않았다. 엄마는 1학년은 다문화 이야기였다. 흔히 생각하는 다문화 이야기와는 달리 아이의 시선에서 긍정적으로 펼쳐 나간 것은 좋았지만, 갈등요소가 약해 밋밋한 이야기가 돼 버렸다. 부리부리돌하르방은 돌하르방이 매개체가 돼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해소해줬지만 신선하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별이 재판과 달똥 박물관 두 작품은 모두 읽는 재미도 있고,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좋았다. 특히 달똥박물관은 자칫 님비현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재치있게 풀어나간 점이 좋았다. 동네에서 버려진 물건을 모으며 혼자 사는 할머니에 대한 아이들의 문제해결 방식은 동화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며,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법한 마무리였다. 다만 사회적 사건과 문제를 다룰때 더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스마트폰만 들어도 소셜 미디어에 갖가지 이야기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에는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응모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보낸다.

 

심사위원 : 임지형